2015년에 맞은 제35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박근혜 정부에 의한 분열 그 자체였습니다. 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여전히 거부했고, 마땅히 참석해야 할 박근혜 대통령은 기념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참석한 여야 대표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가운데 정부 대표로 온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침묵했습니다. 한편 광주를 찾은 여당 대표 김무성은 물벼락을 맞았으며 야당 대표 문재인은 야유와 비난을 받았습니다. 군부 독재에 맞서 분연히 일어선 민주 시민의 정의로운 항쟁이 정부의 조직적인 방해와 여야 정치권의 무능과 혼탁으로 자꾸 그 정신이 퇴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비행은 5.18 민중항쟁의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 여러 차례 5.18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출처 – EBSi


다시 기억해야 할 5.18 광주민주화운동, 신군부의 독재와 언론·방송의 굴종사

http://ideas0419.com/145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며 표현의 자유를 다시 돌아보다

http://ideas0419.com/354

 

군사 독재 정권의 후계자와 그 조력자들로 이루어진 현 정부의 조직적인 방해나 여당의 기회주의와 야당의 무능은 질리도록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일베를 중심으로 급격히 증가한 5.18 희화화와 모욕은 다른 의미에서 대한민국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 일베가 게시글이나 이미지 합성으로 5.18의 역사적 의미를 왜곡하고 희생자와 유족을 모욕하는 일은 이미 악명 높습니다. 하지만 일베의 주장은 명백히 사실이 아닙니다. 당시 외신만 살펴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튜브


그런데도 한 일베 회원은 5.18 희생자의 관을 '홍어 택배'에 빗대어 표현하는 반인륜적 명예훼손을 저질러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생각비행은 우리 사회에 파문을 일으킨 일베를 어떻게 봐야 할지 분석한 적도 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 일베, 어떻게 봐야 하나? : http://ideas0419.com/439

 

우리 사회에서 일베의 활동은 도가 지나쳐 점입가경입니다. 바로 어제 2015년 5월 18일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습니다. 일베가 제35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행사장에도 침투해 있었습니다. 일베의 한 회원은 자원활동가 복장을 하고 자원활동가 표찰을 든 채 이른바 일베 손동작을 인증했습니다.

 


출처 - 아시아경제



이는 독일로 치자면 종전기념일에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에서 치러지는 유대인 학살 추모 행사장에서 자원봉사 복장을 한 채 '88' 혹은 '18'을 인증한 셈입니다. 욕이냐고요? 아닙니다. 88과 18은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극우인 네오 나치의 은어입니다. 생각비행이 최근에 출간한 책, 《알고나 까자 ―독일 사회를 통해 본 대한민국》을 통해 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암호는 '88'이다. '하일 히틀러Heil Hitler'의 앞 글자인 HH에서 H가 알파벳 순서상 여덟 번째이기 때문에 88은 곧 '하일 히틀러'가 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18'도 있는데, 앞의 이유와 마찬가지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A와 H를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또 다른 유명한 암호로 '14단어(14Words)'가 있다. 이는 “We must secure the existence of our people and a future for white children(우리는 백인 민족의 존립과 백인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이라는 문장의 단어 수를 의미한다. 또 RAHOWA라고 RAcial HOly WAr(인종적 성전)의 앞 글자를 딴 단어도 있다.

 



《알고나 까자 ―독일 사회를 통해 본 대한민국》 (김동석 | 생각비행) 21쪽  05 네오나치의 암호

 

전후 청산과 사죄의 모범이 되는 나라이자 이제 유럽의 리더로 우뚝 선 독일. 하지만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네오나치. 독일과 네오나치의 사정을 통해 우리나라와 일베 등 극우의 관계를 엿보는 일은 교훈이 되지 않을까요?


《알고나 까자》의 저자는 네오나치가 눈에 띄게 폭력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한 시기를, 독일이 통일되고 경제적 불균형이 심화되기 시작한 때로 보고 있습니다.

 

이들의 지역 기반은 구동독 지역인데, 독일 통일 이후 폭력이 심화되었다는 이야기는 이들의 움직임이 통일 이후 불어닥친 경제적 불균형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동독인은 그들의 문제를 내부에서 찾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소수의 네오나치들은 현실을 직시하기보다 2차 대전 때 방식처럼 '남의 탓', 즉 외국인과 사회적 소수자 혹은 좌파 정치가들에게 화를 풀어버리는 얄팍한 방식을 택했다.

이들이 분노를 해소하는 방식은 군중 심리에 의거해 작동하는 것이 분명히 보인다. 네오나치들은 서로 모여서 자신들의 사상에 대한 복종심을 강화한다. 이때 범죄자는 자신이 매우 칭송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고 확신하는데, 그 확신은 동료들의 지지를 받을수록 더욱 자연스러워진다. 이들의 행위를 법적으로 처벌하시는 쉬우나 심리적으로는 그들의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설득하기는 굉장히 힘들다. 이 부분이 정말 어렵고도 가장 중요한 문제다.

여기에 어설픈 사상가 한둘이 가세해 자기합리화에 걸맞은 학문적 용어들을 보태주면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당위성에 더해 자부심까지 갖게 되며, 사상이 종교로 변해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순교로 받아들이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알고나 까자 ―독일 사회를 통해 본 대한민국》 (김동석 | 생각비행) 16쪽  03. 네오나치의 규모


IMF와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 붕괴와 양극화, 남의 탓을 하기 위해 찾아낸 상대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혐오, 민주화 좌파 세력에 대한 증오와 테러, 군중 심리와 또래 집단끼리의 관계에 집착하는 10대를 중심으로 한 일베가 인기를 끄는 이유를 네오나치의 성립에 기대어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여기에 극우 언론과 극우 논객들의 부추김까지, 극우파의 대두는 서로 통하는 면이 있나 봅니다.

 

출처 - 한겨레


그렇다면 독일은 이 네오나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요? 우선 독일은 정부 차원에서 강력한 규제를 합니다. 2차 대전 이후 독일은 민족주의 혹은 극우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나치 깃발인 하켄 크로이츠가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독일 국기가 집밖에 걸려 있어도 경찰이 찾아올 정도였다고 하죠. 인종차별을 처벌할 법적 근거도 있기 때문에 조치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점점 더 교묘해지는 극우세력을 억누를 수 있을까요? 정말 제목 그대로 알고나 깝시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2012년 튀링엔 지방에서 네오나치가 일으킨 테러에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는 추모식에 참석하여 "우리나라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부끄러운 줄 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부끄럽다면 이를 고치려는 노력을 하면 된다. 물론 그 노력은 힘들다. 그리고 단기간에 되는 것도 아니다.



독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구 중의 하나가 "Kein Ort Fur Neonazis(네오나치를 위한 자리는 없다)"이다. 버스에도 지하철에도 길가에도 흔하게 붙어 있다. 지역 커뮤니티 형식으로 작은 조직들이 네오나치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는 것이다. 모여서 시위를 하거나 홍보를 하기도 한다.

그 외에 네오나치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지원해주는 엑시트 도이칠란트Exit Deutschland라는 단체도 있다. 극우 그룹에서 나오려다가 신체적 위협이나 협박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주로 그런 일을 해결해준다.


《알고나 까자 ―독일 사회를 통해 본 대한민국》 28쪽  08. 극우와 작별하는 법


극우가 잘못된 것이며 이 사회에 발붙일 수 없음을 시민사회 차원에서 공고히 하고 극우 세력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사람들에겐 협력을 아끼지 않는 성숙한 의식이 독일의 대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엑시트 도이칠란트의 '오퍼레이션 트로얀 티셔츠 운동'처럼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들에게 손을 내밀기도 했습니다.

 

2011년 8월 네오나치들이 주최한 음악 축제 현장에서 엑시트 도이칠란트는 해골이 그려진 티셔츠를 네오나치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해골 프린트에는 과격한 네오나치 찬양 문구와 나치 문양이 들어가 있었다. 극우파들은 신나서 그 티셔츠를 입고 음악 축제를 즐겼다. 그리고 네오나치들은 각자 자기 집에 돌아와 그 땀에 절은 티셔츠를 빨았다. 그랬더니 티셔츠 위에 새겨져 있던 해골 프린트와 네오나치 찬양 문구들은 깨끗이 씻겨 내려가고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문구가 드러났다.


“네 티셔츠가 한 것을 너도 할 수 있어. 우리가 도와줄게 – 엑시트 도이칠란트”


《알고나 까자 ―독일 사회를 통해 본 대한민국》29~30쪽

 

결국 네오나치나 일베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대부분도 사회적 약자이기에 오히려 다른 약자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잠시나마 강자가 된 기분을 느껴보는 가련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극우 성향의 단체나 커뮤니티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독일, 미국, 세계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들이 절대 사회적 강자가 아니면서 강자의 방식을 빌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사회적 강자들이 동조해주면 정말로 히틀러가 다시 세상에 나오는 것이지만 다행히 현대 사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이들의 행동은 자신들이 현재 소수자로서 혹은 사회적 약자로서 핍박받는다는 사실을 이상한 방식으로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도 인정받고 잘하고 싶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고, 세상은 나를 알아주지 않기에 그것이 불만인 것이다. 과도한 경쟁을 불러오는 자본주의에도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알고나 까자 ― 독일 사회를 통해 본 대한민국》 30쪽  08. 극우와 작별하는 법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독일 사회와 달리, 사회적 강자들이 은근히 일베와 같은 무리를 부추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더 위태로운 상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한층 더 씁쓸하고 맥빠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었습니다. E. H. 카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로 파악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잊지 말자고 한목소리로 외쳤던 세월호 참사 1주기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빨리 잊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은 분명히 다릅니다. 과거 2차 대전 당시 많은 이들을 학살한 나치의 수뇌부를 단죄하기 위해 아직도 찾고 있는 독일과, 과거의 치부를 미화하려는 몇몇 잘못된 사람들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한국, 딱 그만큼이 두 사회의 차이점일지 모릅니다.



생각비행이 펴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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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할매귀신'을 혹시 기억하시는지요? 1980~1990년까지 초등학생 사이에 널리 유행했던 괴담으로 그 파급력이 대단했던 나머지 뉴스데스크에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그 인기를 틈타 어린이 베스트셀러 코너가 무서운 표지로 도배된 귀신 이야기로 도배되다시피 한 적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서점의 어린이 코너를 지날 때마다 간을 뽑아 먹는다는 흉흉한 괴담을 이미지화한 표지에 무서워한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끔찍하고 무서운 내용이 담긴 홍콩할매귀신 부류의 이야기와 괴담은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책은 계속 돌려 읽은 탓에 다 헤질 정도였고, 그런 책을 보지 않으면 대화에 끼지 못할 정도였죠. 물론 부모님들은 이런 책을 읽지 못하게 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만.

 

출처 - 연합뉴스


최근 잔혹 동시 논란을 보면서 옛날 일이 생각나 홍콩할매귀신 이야기를 서두에 꺼냈습니다. 최근 10살짜리 초등학생이 직접 썼다는 동시집 《솔로 강아지》가 논란의 핵심입니다. 이 동시집에 실린 <학원가기 싫은 날>이라는 작품이 동시답지 않은(?) 잔혹한 표현으로 잔혹 동시라 불리며 사람들의 비난을 사고 있습니다. 우선 어떤 동시인지 직접 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출처 - 쿠키뉴스


학원가기 싫을 땐 엄마를 씹어 먹으라는 표현으로 시작해 심장은 맨 마지막에 가장 고통스럽게 먹으라는 내용을 보면 확실히 기존의 동시와 다르고 표현의 잔혹함 때문에 거부감과 불편함 그리고 섬뜩함을 주는 게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이를 삽화로 직접 저렇게까지 표현해야 했을까 싶어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합니다. 시의 특성상 글만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논란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어린이가 썼다고 보기엔 잔혹한 내용의 동시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자 사람들은 잔인한 표현의 동시를 쓴 아이와 이를 용인한 학부모, 출판사, 삽화가를 싸잡아 심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논란이 확산되자 출판사는 사과문을 내고 동시집 《솔로 강아지》를 전량 회수하여 폐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하여 문제가 사그라드나 했는데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동시집을 쓴 아이의 부모가 책 회수와 폐기에 대해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솔로 강아지》 회수 및 폐기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기 때문입니다. 시집에 수록된 58편 중 단 1편만 문제가 되는 것인데 책 자체를 회수하여 폐기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입니다. 시의 내용과 삽화가 잔혹하다면 미성년자 구입불가 서적처럼 비닐 포장을 해서 성인들에게만 판매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죠. 지금의 잔인한 한국 현실을 살아가는 아이가 스스로 느낀 바를 시로 쓴 것인데, 사회적 논란이 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책을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폐기하는 방법이 과연 옳은 것이냐 하는 얘깁니다.


얼마 전에 일어난 레진코믹스 차단 사태 때는 방심위를 질타하던 여론과 달리 이번 잔혹 동시 문제에 있어서는 저자와 출판사를 맹비난하고 있다는 점은 사실 조금 우려스럽습니다. 아무래도 저자가 아이이기 때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 싶긴 합니다만, 자칫하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도 있는 까닭에 감정적으로만 대응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과연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번 잔혹 동시를 비난하는 분들과 옹호하는 분들, 양쪽의 의견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솔로 강아지》가 미성년자 구입불가 도서로 판매가 제한되지 않았고, 동시집이라는 작품의 특성상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책이기 때문에 삽화가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비판은 타당해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책을 회수해서 폐기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법 또한 그리 이성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서두에 이야기했다시피 다양한 귀신 이야기와 잔혹한 내용을 담은 괴담집을 어린 시절에 읽었다고 해서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가요?

 

출처 - 트위터


물론 잔혹 동화를 출간한 출판사 측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책 출간이나 판매와 관련하여 조금 더 신중하게 처신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책이 사회전 논란에 휩싸이자 출판사 측은 회수해서 폐기하겠다고 의사를 표명했으나 동화책을 쓴 아이의 어머니가 그런 처리 방식이 지나치다고 반발하고 있는 만큼, 이 문제가 어떻게 흘러갈지 조금 더 주시해야겠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동화가 금서가 된 적은 많았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우습기 짝이 없지만, 당대에는 아이의 심성을 망치고 사회를 붕괴시키는 악마의 책으로 치부된 책도 많았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해리 포터》는 마법이 기독교 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미국 한 공립학교에서 금서로 지정된 황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한편 어린 시절에 읽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인 동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금서 목록의 단골이었습니다. 내용이 아이들의 공격심을 유발한다는 게 그 이유였지요. 미국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호밀밭의 파수꾼》은 어떤가요? 신성모독, 성 묘사, 인물들의 부정적 사고방식 등을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었던 책이죠. 지금은 미국 거의 모든 중고등학교에서 영어 교과서처럼 쓰일 정도인데 말이죠. 지금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읽히지 못해 안달인 로알드 달의 동화 역시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는 어른들이 몹시 불편해하고 곤란해하던 책이었죠.


출처 - EBS


홍콩할매귀신처럼 어린이의 필독서였던 《먼나라 이웃나라》 다들 기억하시죠? 저자인 이원복의 다른 만화인 《현대문명진단》이라는 책을 보면 힙합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랩과 힙합의 내용이 너무 과격하고 자극적이며 어둡다고 사람들이 비난하자 힙합 뮤지션 스눕 독이 자기 어린 시절 사진을 내보이며 이런 말을 합니다. 자신을 포함해 이 사진에 찍힌 20명은 어린 시절 함께 축구를 하며 친하게 지낸 친구들인데, 거의 대부분이 빈민가 생활 중 총에 맞아 죽거나 범죄를 이유로 감옥에 들어갔다. 이 사진 속에 온전히 살아남은 건 나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인생이 아름답네, 예의 바르게 살자 같은 노래나 부르고 앉았으면 그게 더 정신이 이상한 게 아니겠느냐고 일침을 가합니다.


이번에 사회적 논란에 휩싸인 <학원가기 싫은 날>이라는 동시는 그 표현의 경중은 차치하더라도 학원과 경쟁으로 내몰리는 아이들의 현실적인 비명소리라고 생각해볼 여지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어른의 세계에서 '삼포세대'네 '5포세대'네 하는 지옥도가 경쟁에 내몰리는 아이들의 세계에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어쩌면 아이는 그냥 한국에서 엄마로 대표되는 한국이란 현실의 잔혹함을 느끼는 대로 묘사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인 이 동시집 작가의 어머니는 딸의 시가 사회적으로 잔혹성 논란을 일으켜 송구스럽다면서도 논란에 휘말린 시 <학원 가기 싫은 날>이 숨쉴 틈 없이 학원으로 내몰리는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우화로 인정될 만한 예술성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자신도 이 시를 보고 느끼는 바가 있어 일주일에 두 번 보내던 영어 학원을 그만두게 했다면서요. 그러면서 논란이 된 점을 수정하기 위해 책을 회수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폐기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범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출처 – 다음 뉴스


사회 일각에선 동시집에 대한 비난이 지나쳐 이 시를 쓴 아이를 패륜아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또한 사이코패스라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이런 비판은 작품으로서의 시와 시를 쓴 아이를 지나치게 동일화해서 보는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인터뷰를 통해 아무 문제 없이 잘 자라고 있는 아이이며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논다고 밝혔습니다. 온라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대에게 원색적인 욕을 해대며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들 쪽이 더 잔혹하지는 않은지 돌아볼 점이 있습니다.


분명 사회에는 준수해야 하는 상식과 기준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은 상식과 터부에 도전하고 이를 깨부수면서 나아가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나아간 예술은 다시 다음 시대의 상식과 기준이 되었죠. 표현의 자유는 과연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 걸까요? 감정적인 비난에 앞서 이성적인 토론이 필요한 때입니다.



생각비행이 펴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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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달'인 5월, 어린이날 잘 챙기셨나요? 아이들이 있는 곳에 웃음꽃이 만발했길 빕니다. 어린이날 하면 소파 방정환 선생을 떠올리는 분이 많으실 줄 압니다. '어린이'란 말을 처음 쓰기 시작하고 어린이날을 제정한 분이기도 하죠.

 

지금은 어린이날이 5월 5일이지만 원래는 5월 1일이었습니다. 1922년 5월 1일에 제1회 어린이날(소년일) 기념식이 열렸죠. 1923년에는 방정환 선생이 소년운동 활성화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색동회를 창립했습니다. 이후 노동절과 겹쳐 5월 첫째 일요일로 옮겼는데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 5일이 어린이날로 재지정되었습니다. 어린이날이 휴일로 지정된 건 1975년부터입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분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방정환 선생이지만, 그분의 면모를 단순히 어린이에 국한해서 볼 일은 아닙니다. 그는 편집자, 기획자, 시사평론가이자 문화운동가이기도 했기 때문이지요. 생각비행은 출판사로서 방정환 선생의 잘 알려지지 않은 출판 문화인으로서의 면모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



어린이는 물론 여성지부터 영화잡지까지, 미다스의 손


방정환 선생을 논하면서 어린이 관련 잡지를 빼놓을 순 없겠죠. 그가 내놓은 잡지 《어린이》는 당시 어마어마한 인기를 구가하고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소년운동에 불을 지폈고 나라 잃은 설움에 신음하는 사람들에겐 민족적 정체성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른들에게 어린이를 존중하는 마음을 심어주었습니다. 

 

한편 방정환 선생은 잡지 《어린이》를 통해 시대를 풍미한 많은 작가를 길러냈습니다. 윤석중, 마해송, 이원수, 최순애, 윤극영, 박목월, 정순철, 서덕출 등 국어책에서 한 번쯤 들어본 분이 즐비합니다. 당시 《어린이》는 지금도 베스트셀러로 통할 정도의 양인 10만 부를 발행했습니다. 그때 서울 인구가 32만 명이었다고 하니 대체 얼마나 어마어마한 인기였는지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출처 - 동심넷


출판 문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재능을 발휘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3.1 독립운동 당시 독립운동 활동을 알리는 지하신문 《독립신문》을 직접 제작해 몰래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된 적도 있습니다. 또한 그가 창간을 주도한 《신청년》은 한국 최초의 문예동인지로 알려진 《창조》와 앞뒤를 다투던 잡지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 최초의 영화잡지인 《녹성》을 창간하기도 했고, 최초의 여성잡지인 《신여성》, 그리고 《학생》 같은 잡지의 주필과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글을 기고했습니다.



계급투쟁부터 양성평등까지 아우르다

― 작가, 번역자, 시사평론가, 저널리스트로서의 방정환


소파 방정환 선생은 현진건, 염상섭 등이 소설을 기고한 것으로 유명한 잡지 《개벽》에 계급 투쟁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성격의 우화들을 연재했습니다. 1920년 《개벽》 3호에 번역 동시인 <어린이 노래: 불 켜는 이>를 발표하며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일본 유학 기간에는 <안데르센 동화> <그림 동화> <아라비안 나이트> 등의 외국 소설을 선별해 번역한 《사랑의 선물》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해당 작품의 우리말 첫 번역임과 동시에 우리말로 씌어진 첫 동화집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방정환 선생은 <왕자와 제비> <잠자는 왕녀> 등 우리에게 친숙한 동화의 번역자이기도 한 셈입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어린이 문학이 발전한 일본에 비해 누릴 것이 없었던 조선의 어린이들을 위해 동화집까지 냈으니, 그의 어린이 사랑은 참으로 깊고 넓다 하겠습니다.

출처 - 한겨레


한편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뿐 아니라 양성평등을 이야기하며 여성에 대한 기고를 많이 했습니다. 여학교 동창회의 풍경을 그림 <여학생과 결혼하면>이란 글에선 "제발 월급쟁이나 시어미 있는 데는 연애 아니라 아무거래도 가지를 말아요. 사람이 그냥 썩어요 썩어!"라고 쓰거나 "혼자 살면 혼자 살지 누가 그런데로 가!"와 같이 직설적인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대가족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조선사람의 가정은 하루종일 직무에 충실하느라고 피곤해 가지고 돌아와서 평안히 쉴 수 있는 재미있는 가정이 아니라 커다란 객주집 여관"이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면모를 보면 오늘날 남성들보다 더 진보적인 말을 거침없이 한 시사평론가이기도 한 셈입니다. 하긴 100여 년 전에 이미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써야 한다고 역설하신 분이니까요.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방정환 선생은 동요, 동화극, 동화, 번안동화, 논문, 탐사기, 수필 등 800편에 이르는 글을 신문과 잡지에 기고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글을 기고하기 위해 쓴 필명도 한두 개가 아닙니다. 잔물, 잔물결, 물망초, 몽견초, 몽견인, 삼산인, 북극성, 쌍S, 서삼득, 목성, 은파리, CWP, 길동무, 운정, 김파영, 파영, ㅈㅎ생 등이 모두 방정환 선생의 필명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모두 일본의 언론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일제에 의해 활동을 금지당할 때까지 해마다 70회 이상, 통산 1000회 이상의 동화 구연과 순회 강연을 했다고 합니다. 어린이 대상 강연회에서 <난파선>이란 이탈리아 동화를 번안해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야기하는 재주가 매우 뛰어나 어른과 아이 구분 없이 눈물 바다에 빠졌고, 심지어 감시하러 온 일본 경찰까지 눈물을 훔치느라 바빴다고 합니다. 1967년 《신동아》 기사에 따르면 일본 고등계 경찰관 미와는 방정환을 이렇게 평가했다고 합니다.

 

“방정환이라는 놈, 흉측한 놈이지만 밉지 않은 데가 있어... 그놈이 일본 사람이었더라면 나 같은 경부 나부랭이한테 불려다닐 위인은 아냐. 일본 사회라면 든든히 한 자리 잡을 만한 놈인데... 아깝지 아까워.”



출판 문화계의 큰 별, 방정환 선생

 

이처럼 작가이자 편집자, 기획자, 번역자, 저널리스트, 사회운동가, 독립운동가, 시사평론가 등등 초인적인 활동을 했던 방정환 선생은 안타깝게도 과로와 고혈압의 합병증으로 33세에 요절했습니다. 어린이를 사랑한 위인으로서뿐 아니라 출판 문화인으로서도 큰 족적을 남긴 방정환 선생의 작품과 연보는 한국방정환재단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소파 작품 연보 : http://www.korsofa.org/sub_2_2-b1.php

소파 발굴 작품(동화, 동요, 시, 수필, 교양 등) : http://www.korsofa.org/sub_3_1.php


앞으로 어린이날이 돌아오면 출판 문화인으로서 큰 족적을 남긴 방정환 선생의 업적도 되새겨보면 어떨까요? 어린이들에게 물려줄 가장 큰 유산은 곧 선생이 지키려 했던 우리의 문화일 테니까 말입니다.



생각비행이 펴낸 책


Posted by 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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