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10번 출구 추모의 물결, 무엇을 의미하나?

서울 강남에서 여성 혐오로 인한 살인 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저녁부터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는 살해된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포스트잇과 헌화 그리고 추모의 행렬이 줄을 이었습니다. 하루가 지난 19일부터는 강남역뿐 아니라 고려대 등 대학가에도 '#살아남았다'는 해시태그가 붙은 대자보와 포스트잇이 번지고 있습니다. 대구, 부산 등 지방 번화가에서도 포스트잇을 이용한 추모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일반인뿐 아니라 문재인 전 더민주당 대표 등의 인사가 추모를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를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국민의당, 정의당은 이번 범죄가 여성 혐오에 의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편 박원순 서울 시장은 이 추모의 현장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유튜브


 

이례적인 추모 열기의 이유

 

온·오프라인을 넘어 살해된 피해자를 추모하는 열기가 전국적으로 번진 일은 우리 사회에서 다소 이례적인 일입니다. 지금까지 여성을 표적으로 한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종종 보도되었습니다. 지난 2일에는 대전의 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냥 화가 나서 20대 여성의 머리를 벽돌로 내리친 16세 소년이 검거되었습니다. 지난달 17일 광주에서는 여성 이 모 씨가 등산 중 한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의해 숨진 사건도 있었죠. 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표적으로 한 강력범죄가 지속적으로 일어났지만 이번처럼 추모 열기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출처 - SBS


그렇다면 지난 17일 강남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은 어떤 차별점이 있는 걸까요? 이번 추모 열기의 배경에는 강남역 살인 사건이 단순한 묻지마 범죄가 아니라 '여성 살인'이라는 명확한 의미가 전달되어 여성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던 사건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하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한국 문화에서 지속되던 여성 혐오가 온라인 공간 일베 등을 통해 비정상적으로 범람하고 실제 살인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나자 '여성 혐오' 분위기가 바로 나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음을 인식한 여성들의 마음이 사회적 행동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출처 - 한겨레


강남역 10번 출구는 한국에서 가장 번화하고 가장 많은 사람이 움직이는 곳 중 하나입니다. 이런 장소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는 건, 여성의 입장에서는 내가 이런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합니다. 피해자를 추모하는 한 여성의 말마따나 '남자들은 조심해라 조심해라 말만 하는데 대체 뭘 더 어떻게 조심해야 살 수 있는 거냐'는 두려움을 느낄 법하고요. 내가 단지 운이 좋아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라고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는 게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일입니까?

 

 

'여성 혐오' 문제를 단순히 보면 안 되는 이유

 

이번 사건을 저지른 범인은 "평소 여자들한테 무시를 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끔찍한 것은 1시간이 넘게 남자는 그냥 보내고 반항하지 못할 것 같은 여성 1명이 화장실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여성 가운데서도 범죄 대상을 신중히 골랐다는 얘깁니다. 이번 살인 사건을 지금까지 빈번하게 일어난 묻지마 살인으로 볼 수 없는 지점입니다. 범인은 현장을 지나가는 수많은 여성 중에 대상을 고르고 또 골라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잠깐 생각해봅시다. 평소 여자들에게 무시를 당했다면 남자들한테서는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왜 범인은 남자를 대상으로 삼지 않았을까요? 시쳇말로 '분노조절장애도 상대를 가려가며 터지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범행 대상으로 버거운 남자보단 만만해 보이는 여자로 말입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그동안 범인의 자백을 그대로 받아적거나, 범인이 게임, 영화, 만화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런 영향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손쉽게 원인을 규정짓던 경찰이, 이번 사건에서는 여자 때문에 저질렀다는 범인의 자백을 두고도 '정신병력'으로 원인을 몰고 가는 것은 좀 이상합니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 아니냐, 남녀 대결 구도로 몰고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우리 사회에 팽배한 '여성 혐오' 문제를 왜곡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남북전쟁 당시 미국 사회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전 인구의 절반인 북부에서는 노예가 된 당사자인 흑인은 물론 백인들도 힘을 합해 흑인 노예 해방을 위해 피를 흘리고 싸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흑인들이 아무 백인에게나 호감을 느끼고 안전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나라의 절반 이상이 자기들을 위해 싸워주고 있더라도 백인 농장주의 채찍질을 감내해야 하는 흑인들의 사례가 있는 한 어떤 흑인이라 할지라도 백인 대다수를 일단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백인에 대한 인식이 논리적으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라도 살기 위해선 오히려 그 오류가 흑인들에겐 당연한 겁니다. 비뚤어진 사회구조 속에서 흑인들에게 '백인이 나쁜 게 아니야. 그러니 함부로 매도하지 마'라고 쉽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일제강점기의 우리 사회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독립투사들을 변호해준 양심 있는 일본인 변호사의 사례처럼 식민지 상황에 처한 한국인을 차별하지 않고 잘 대해준 일본인도 일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인이 당시 일본인에게 살가운 감정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지금도 많은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데요.


출처 - 한겨레


그러므로 현재 우리 사회에 팽배한 '여성 혐오' 문제를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 통계만 봐도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 피해자의 여성 비중이 1995년 72.5퍼센트에서 2014년 88.7퍼센트로 대폭 증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범죄 피해자 가운데 여성의 비중이 높은 편이지만, 강력범죄 피해자의 약 90퍼센트 그러니까 절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상황이 상당히 비정상적임을 방증하는 지표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강력범죄가 일어나면 90퍼센트의 확률로 여성이 죽는다는 얘긴데, 불안해하지 않을 여성이 어디 있겠습니까?


출처 - 경향신문


여성을 침묵시키려는 힘을 고찰한 9편의 산문을 묶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라는 책을 낸 레베카 솔닛의 말대로 "모든 남자가 다 여성 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며 살아간다는 점이다"라는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제정신인 남성이라면 이번 살인 사건에 대해서 '남녀 대결로 몰고 간다'라거나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지 마라'는 얘기를 하기 이전에 불안해하는 여성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야 합니다.


간디는 한 나라의 위대성과 그 도덕성은 동물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동물이 안전하다면 사람이야 더 말할 게 뭐가 있겠느냐는 뜻을 담았을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의 안전이 보장된 사회라면 남성의 경우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번 살인 사건이 남긴 사회적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연일 이어지는 추모 열기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되는 상징적인 일이 되겠지요. 이제 우리에게 여성 혐오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숙제가 남았습니다. 이번 살인 사건을 포함하여 우리 사회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숱한 여성 피해자분의 명복을 빕니다.

 

생각비행이 펴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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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연합 게이트, 그 배후에 관하여

어버이날 올라온 한 유튜브 영상이 화제입니다. 우리 일상에서 희미해지던 어버이를 '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방송작가 유병재가 만든 〈고마워요 어버이〉는 전경련과 국정원, 그리고 청와대가 얽혀 있는 어버이연합 게이트를 풍자하는 내용을 담은 동영상입니다. 그런데 이 영상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자 소식을 끊고 잠적했던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이 등장했습니다. 〈고마워요 어버이〉 동영상이 어버이연합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에 고소장을 내기 위해 등장한 겁니다. 그동안 해외로 잠적했다는 소문부터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까닭에 국정원이 '마티즈 태웠다'는 자살설마저 돌기도 했는데, 풍자 동영상 하나가 추선희 사무총장의 행방에 대한 논란을 잠재운 셈이죠.


출처 - 유튜브


어버이연합에 위안부 관련 합의 지지 집회를 지시했다는 《시사저널》 보도에 대해 허현준 청와대 행정관이 제기한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은 기각한 바 있습니다. 재판부는 "청와대 행정관으로서 상당히 공적인 지위에 있으며, 《시사저널》이 사건 기사와 같은 내용의 의혹을 품을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 보인다"며 "보도 내용이 객관적 자료에 의해 최종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현 단계에서 허 행정관의 인격권이 언론의 자유보다 우선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습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유병재를 고소한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의 고소장도 기각될 가능성이 큽니다.

 

 

보수 단체의 배후, 국정원

 

허현준 청와대 행정관은 '시대정신'이라는 단체 출신인데 원래 이름은 '뉴라이트 연합'이었습니다. 종북척결을 주장하던 극우단체로, 미군 장갑차에 치여서 숨진 미선이 효순이 사건과 이명박 정부 당시 광우병 사태가 종북 빨갱이들의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던 곳이죠. 이 단체에 7년간 21억이 넘는 후원금이 들어왔으나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후원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쓰였는지는 불투명합니다. 

 

21억의 후원금은 이 단체 전체 수입의 90퍼센트가 넘는 금액으로 사실상 존립의 근거가 된 자금이었습니다. 이 돈 역시 전경련과 당시 정권에서 흘러들어온 돈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사고 있죠.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정점에는 국정원이 있습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뉴라이트 연합이던 시대정신과 재벌들의 집단인 전경련, 그리고 보수 정권이 잡은 청와대와 국정원의 4각 관계가 이번 어버이연합 게이트에 의해 사실상 드러났고, 점차 그 실상이 밝혀지고 있는 중입니다.


출처 - 시사저널


《시사저널》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보수단체 대표 등과 회동하고 이들에게 창구 단일화를 요구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회동 시기는 이병기 비서실장이 국정원장으로 재직할 때로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는 보수 주요 단체인 애국단체총협의회, 재향군인회, 고엽제 전우회, 재향 경우회 등이 창구를 단일화해달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돈을 지원할 창구를 하나로 해야 쉽게 돈을 넣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창구로 사실상 애국단체총협의회를 지목했다고 하는데, 이 단체는 이명박 정권 때부터 본격 활동한 단체로 재향군인회장 출신의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이 상임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봐도 국정원의 사주에 의해 보수 단체들이 국민의 혈세를 축내면서 정부 비판 시위를 막고 친정부 성향의 여론몰이에 동원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군부 독재의 잔재가 21세기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었던 겁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유튜브


이번 어버이연합 게이트만이 아니라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당시에도 문제의 근원은 국정원으로 지목되었습니다. 당시 국정원 3차장으로 있던 이종명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종북 좌파들이 다시 정권을 잡으려고 하니 국정원에서 확실하게 대응을 해야 된다"는 지시를 받습니다. 2012년 2월 17일의 일인데, 정확하게 같은 달에 전경련 자금이 최초로 어버이연합 차명계좌에 입금되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드러난 정황만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꼭두각시일 뿐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흑막은 국정원이라는 음모론이 그럴싸해 보입니다. 이번에 흑막이 공개된 어버이연합 게이트는 재벌과 보수단체를 거느린 국정원의 대표적인 국기 문란 사건이었습니다. 군사독재 시절의 장성들이 소속된 단체가 다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전두환과 같은 제2의 내란을 꿈꾸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정보 조작, 여론 날조가 국정원의 주 업무가 된 현실


국정원은 최소한 북한 관련 업무라도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국정원의 대북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난 2월 국정원이 숙청되어 처형됐다고 보고되었던 리영길 총참모장이 3개월 만에 공식 석상에 나타난 일이 있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이로써 리영길 총참모장에 대한 처형 소식은 개성공단 폐쇄를 결정하며 국정원이 뿌린 헛소리에 불과했음이 드러났습니다. 애초에 통일부가 리영길 처형설을 공개한 일 자체가 이례적이었습니다. 통일부는 북한 관련 정보를 생산하는 곳이 아니며 국정원에서 받은 정보를 통일부가 언론에 문건 형식으로 공개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리영길 처형설은 이례적으로 통일부가 언론에 노출했습니다.

 

국정원이 죽었다던 북한 인사가 버젓이 살아나는 일을 우리 국민이 한두 번 겪은 게 아닙니다. 2013년 8월 29일 《조선일보》는 북한의 은하수관현악단 소속 예술인 10여 명이 부적절한 영상을 찍어 총살되었다는 기사를 단독 보도했습니다. 2013년 10월 8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국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까지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죽었다던 보천보전자악단 소속 가수 현송월이 2014년 5월 16일 모란봉악단 단장 자격으로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에 참석하여 첫 번째 토론자로 나왔습니다. 〈조선중앙방송〉이 이를 보도한 겁니다. 한편 지난해 국정원이 국회에서 해임된 것으로 보인다던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겸 화력지휘국장도 사실은 건재했죠. 

 

이처럼 국정원은 본연의 임무라 할 북한 관련 정보 수집 및 분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국가기관입니다. 그런 주제에 국민을 사찰하고 간첩을 만들고 여론을 조작하는 데에는 엄청난 혈세를 썼습니다. 심지어 대통령선거에 개입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죠. 국기 문란의 원흉인 국정원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해체의 대상일 뿐입니다.

출처 - 한겨레

 

국정원이 연루된 사건, 사고가 하도 잦아 머리가 아플 지경이지만,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쳐 만천하에 공개해야 합니다.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검찰이 제대로 된 역할을 못 한다면 특검과 청문회를 통해서라도 사실을 밝혀내야 합니다. 그것이 20대 국회에 보내는 국민의 뜻임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생각비행이 펴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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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는 5.18 광주

올해로 36주기가 되는 5.18 민주화항쟁도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으로 시작했습니다. 상식적인 사회라면 이런 일이 논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겠죠. 박근혜 대통령은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사실상 제창하지 못하게 지침을 내렸으며 박승춘 보훈처장은 이 교시를 받들어 올해도 제창을 불허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청와대 회동에서 협치를 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또 하나의 쇼였을 뿐이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대부분이 거짓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야당은 청와대 회동 무효를 선언하며 강하게 반발했고, 심지어 새누리당 원내대표조차 청와대와 보훈처의 결정에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야당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해임촉구 결의안을 내기로 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1997년 김영삼 정부 때부터 제창된 〈임을 위한 행진곡〉은 2008년 이명박 정부 때부터 제외되기 시작했습니다. 집권당과 정권의 성격을 보면 그 의도가 너무나 명백하죠. 보훈처의 해석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음악적으로 제창과 합창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개념이지만, 보훈처의 유권해석으로는 제창은 참석자 전원이 의무적으로 불러야 하지만 합창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죠.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5.18 민주화항쟁 기념식 동영상을 보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입을 다물고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외워서 부르고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는 주먹을 움켜쥔 채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반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들고 있는 종이만 들여다볼 뿐 입을 열지 않습니다.


출처 - 유튜브


보훈처의 유권 해석대로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국가 기념식의 관행을 어긴 것이며 '의무적'으로 불러야 하는 노래를 고의로 부르지 않은 셈이 됩니다. 그렇다면 보훈처는 박근혜 대통령의 무례와 무식함을 계속 알리고 싶어 이런 방침을 자꾸 고수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다면 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를 막기 위해 다른 핑계를 대고 있는 걸까요?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보면 그 이유가 그대로 드러나긴 합니다.


출처 - 페이스북


〈임을 위한 행진곡〉은 보수단체의 주장과 달리 종북이나 김일성 찬양을 위한 노래가 아닙니다. 탈북하여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는 주성하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북한에서 허락없이 부르면 잡혀가 정치범이 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북한과 연결시키는 찌질한 짓거리" 좀 그만하라면서 말입니다. 삼척동자도 다 알 만한 노래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보면 그 수준의 저열함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한편 5.18 민주화항쟁 당시 학살의 책임자였던 전두환은 자신이 광주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4대 조건이 선결되어야 된다는 망언을 했습니다. 신변 보호와 박탈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를 갖추는 등의 조건이 선결되어야 5.18 묘역을 참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광주에서는 죄인에게 무슨 예우냐는 반응이 나오고, 5.18 관련 단체는 책임 인정과 광주에 대한 사죄 그리고 대국민사과가 선결 조건이라고 대응하기도 했죠. 

 

출처 - KBS


하지만 살인마 전두환은 지난달 27일 《신동아》 기자와 나눈 인터뷰에서 5.18 민주화항쟁 당시 시민군을 향해 총을 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동석한 전두환의 지인들도 인터뷰에 참여했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상황이 나왔습니다.

 

(5·18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광주 침투와 관련된 정보 보고를 받은 적 없다는 전 전 대통령 말에)


고명승 전 삼군사령관 "북한 특수군 600명 얘기는 연희동에서 코멘트 한 일이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 "뭐라고? 600명이 뭔데?"

정호용 전 의원 "이북에서 600명이 왔다는 거예요. 지만원 씨가 주장해요."

전두환 전 대통령 "오, 그래? 난 오늘 처음 듣는데."


일베에서 5.18 관련으로 "종북, 빨갱이" 타령할 때 흔하게 나오는 주장이 북한 특수군 얘기죠. 그런데 그 주범인 전두환이 이런 논거를 부정한 셈입니다. 광주와 북한이 관련 있다는 일베의 주장이 헛소리임을 전두환이 밝힌 셈입니다. 한편 역사적 책임감으로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전두환은 "광주에 내려가 뭘하라고요"라고 되물어 책임 인정과 사과할 마음이 전혀 없음을 드러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출처 - 스포츠동아


한국인 작가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의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얘기했죠.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출처 - 《소년이 온다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과 같이 고립되고 힘으로 짓밟히고 훼손된 사건 이면에는 광주를 수없이 되태어나게 한 국가의 원죄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아물지 못하고 해마다 후벼지는 그 상처에서는 여전히 피가 철철 나고 있습니다. 5월 광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생각비행이 펴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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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meofga.tistory.com BlogIcon 마조갤옷

    괴거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2016.05.18 22:28

    • Favicon of http://ideas0419.com BlogIcon 생각비행

      맞습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역사는 그대로 반복된다고 하지요.

      2016.05.19 10:12

  • Favicon of http://doolytubbies.tistory.com BlogIcon 둘리토비

    대다수의 사람들은 과거를 잊지 않았습니다.
    과거를 잊고 싶은 소수의 사람들이 안면에 철판 깔고 나오는 것입니다.

    어쩜 이리도 똑같을까요?

    2016.05.19 18:44

    • Favicon of http://ideas0419.com BlogIcon 생각비행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부역한 친일세력과 유신의 후예, 전두환 정권 일당 그리고 이들과 이해관계에 있는 무리가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국정 역사 교과서를 추진하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교육 개혁이 시급합니다.

      2016.05.2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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