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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고성 GOP 총기난사 사건, 무엇을 남겼나?

by 생각비행 2014. 6. 24.
세월호 참사의 아픈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총기난사 사건

6월의 주말을 아찔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원도 22사단 55연대 GOP에서 복무 중이던 병장 한 명이 수류탄을 투척하고 총기를 난사한 뒤 무장탈영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인데요, 이 사건으로 동료 병사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했습니다. 전역을 3달 앞두고 있던 임 병장이 무장탈영한 뒤 체포되어 사건은 종결되었으나 꽃다운 나이에 희생된 장병들의 안타까운 죽음과 부상한 장병들로 인해 우리 사회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출처 - 경인일보

지난 21일 밤 사건 직후 임 병장이 소총과 실탄 등을 소지하고 무장탈영하여 인근 주민의 안전을 고려해 소개령이 내려지고 체포 작전이 펼쳐졌습니다. 23일 임 병장은 자살을 시도한 뒤 생포되었습니다. 강원도 22사단 총기난사 및 무장탈영 사건을 그저 탈영병 한 사람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길 일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점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GOP 총기 난사 사건은 예고된 인재

출처 – 뉴시스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시피 전역을 3개월 앞둔 임 병장은 관심병사였습니다. 자살 징후까지 나타나는 특별 관리 대상인 이른바 A급 관심병사였다고 하는데요, 이상하게도 7개월 후 임 병장은 B급 관심병사로 재조정됩니다. 이 때문에 경계근무 인원이 부족한 GOP에 근무할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등급을 하향조정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당사자인 임 병장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닌 관심병사 제도 자체에 허술함이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장병의 정신 건강을 책임지고 상담 역할을 맡아야 할 전문가가 아니라 부대 지휘관이 관심병사 판정을 도맡아 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크게 결여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때그때 편의에 따라 관심병사가 결정되어왔기 때문입니다. A급 관심병사였던 임 병장이 특별한 조처를 받지 못한 채 반년 후 B급으로 임의 조정되어 근무에 투입된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국방부가 관심병사 제도를 고수할 마음이 있었다면 A급으로 판정받은 임 병장을 GOP 근무 부적격 인원으로 분류하여 타부대 전보 등의 조처를 함이 마땅했습니다. 만일 국방부가 관심병사 제도가 미흡하다고 생각했다면 외부 전문가 영입 등의 대책을 마련함이 마땅했겠지요. 하지만 이번 GOP 총기난사 사건으로 관심병사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한 허울뿐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허울뿐인 제도와 규칙조차 지키지 않고 방치해 일어났던 것과 너무나 흡사한 상황이 아닌가요?

출처 - 연합뉴스

현실적이지 못한 살인적인 GOP 근무 형태도 화를 자초했습니다. 22사단은 전방과 해안 경계를 동시에 맡고 있기에 GOP 사단 중 담당 경계선이 가장 긴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군 병력은 다른 사단과 비슷한데 경계해야 할 지역은 거의 세 배나 되는 형편입니다. 이 때문에 교체될 예비 연대도 없이 항상 모든 연대가 경계근무에 투입되어 있습니다. 온전히 휴식을 취할 겨를도 없이 쪽잠을 자며 여름의 불볕더위와 겨울의 폭설을 무릅쓰고 매일같이 야간 경계를 서야 하는 젊은이들의 정신이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근무 형태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달씩 이어지니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상황입니다. 2012년 발생했던 이른바 노크귀순 사건은 이런 과중한 임무 가운데 벌어진 인재였습니다.


군의 뒤늦은 초동 대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 해경과 정부의 늑장 대응으로 안전을 담보할 골든타임을 놓쳤습니다. 이번 임 병장의 총기난사 및 무장탈영 사건에서 확인된 군의 초동 대처는 세월호 참사 당시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했습니다.

임 병장은 21일 오후 8시 15분 GOP 내 후방 보급로 삼거리에서 수류탄 1발을 투척하고 소총을 난사한 뒤 무장 상태로 탈영했습니다. 하지만 총기 난사로 부상한 병사들이 구조된 건 사건 발생 후 네 시간이 지나서였다고 합니다. 군 응급의료 체계의 부실은 군대를 경험해본 분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이번 사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출처 - 뉴스1

탈영병 발생 상황을 인지한 이후 군이 취한 조치도 늑장이었습니다. 22사단이 최고 수준의 비상 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한 시점은 사건 발생 후 2시간이나 지난 10시 12분이었습니다. 대통령 보고도 사건이 발생한 지 2시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고, 언론에 알려진 것은 이보다도 늦은 10시 40분경이었습니다.

임 병장이 무장탈영한 인근 마을의 주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혹여 마을에서 총기 난사가 벌어졌거나 인질극을 벌였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참 뒤늦은 시점에 주민 소개령이 내려졌으나 그나마도 완벽하지는 못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탈영 직후 군은 포위망을 좁히며 체포작전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으나 임 병장은 야간 산악행군으로 무려 10킬로미터 가까이 이동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A급 관심병사로 분류되기도 했던 문제 병사가 이런 신출귀몰함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은 군이 무능하다는 걸 말해주는 걸까요? 아니면 알고 보니 임 병장이 특출난 군인이었음을 말해주는 걸까요?

체포작전 와중에 교전이 벌어지기도 했고 군 수색팀은 체포조의 오인사격으로 1명이 부상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군은 상황을 장악하지 못했고, 무장탈영한 장병 한 사람을 쫓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부모님이 투항 권유 방송을 하며 임 병장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고 교섭에 나선 것이 효과가 있어 자살 시도 직후 생포했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잇단 총기 난사 사건에도 실질적 개선책을 내놓지 못하는 국방부

출처 - TV리포트

군에서 발생하는 총기난사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00년대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죠. 불과 3년 전인 2011년에는 해병대 특유의 잔혹한 왕따인 기수열외를 당한 김 상병이 동료들에게 무차별 난사를 가해 4명이 죽고 2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2005년 연천 GP에서는 한 일병이 내무반에 폭탄을 던지고 총을 난사해 무려 8명이나 되는 동료를 죽인 끔찍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도 근본원인은 동료 간 왕따로 지목되었습니다. 이번 22사단 GOP 임 병장의 총기난사 사건의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 중 하나일 것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총기 난사로 동료를 죽인 당사자는 응분의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국방부는 총기난사 사건이 군 내부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했어야 합니다. 단편적인 처방밖에 되지 않는 소원수리나 관심병사 제도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상명하복의 경직된 분위기 속에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밀어넣고 집단생활을 강요하는 것만도 위험천만인데 이에 대한 대비책과 관리 제도는 너무나도 미비합니다. 2000년대 들어 두 번의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지만 군의 정책이나 제도가 획기적으로 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 결과 또 다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를 겪고도 바뀐 게 없었던 우리 사회에 세월호 참사가 닥친 것처럼 말입니다.

출처 - 채널A

이밖에 세월호 참사 때 큰 문제로 드러났던 언론의 받아쓰기는 이번 22사단 총기 난사 사건 때도 여전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첫 뉴스가 승객 대부분을 구조했다는 대형 오보였음을 이제는 국민 대다수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번 임 병장 무장탈영 사건을 보도하는 미디어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국민의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임 병장이 60여 발의 실탄을 소지했다는 보도부터 300발에 이른다는 보도까지 나와 그 차이가 무려 5배에 달했습니다. 한 언론에서는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라는 사람이 출연해 이번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을 '게임'으로 지목하는 뜬금없는 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뉴시스

지금까지 말씀드렸듯이 이번 22사단 GOP 총기난사 및 무장탈영 사건은 군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병사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사건의 보고와 초동 대처가 늦었으며, 체포작전은 허술했고 민간인 보호조차 미흡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합리하고 부패한 군대의 관행이 군 복무를 하는 개인은 물론 대한민국 전체의 안위를 위협하는 위험요소라는 사실입니다. 이번 22사단 총기난사 및 무장탈영 사건을 계기로 병영문화 전반, 나아가 우리나라 군 제도에 대한 철저한 진단과 개혁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형식적인 사과로 문제를 덮어버린다면 제2, 제3의 임 병장은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국민의 여론을 의식해 유병언 한 사람을 잡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대한민국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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