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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5조 원이 걸린 론스타 ISD, 밀실주의로 일관하는 한국 정부

by 생각비행 2015. 5. 28.

무려 1000억이 넘는 세금이 걸린 론스타 소송에서 우리나라 정부가 절반의 승리와 절반의 실패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지난 27일 서울고등법원은, 론스타가 역삼세무서가 빌딩매각대금에 부과한 법인세 1045억 원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에서 론스타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습니다. 역삼세무서의 법인세 부과 자체는 정당하지만 여기 붙은 가산세 393억 원은 납세고지서에 종류와 산출 근거가 쓰여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겁니다. 법원은 정부가 추징한 세금 중 60퍼센트 정도만 인정한 셈입니다.

 

출처 - 국민일보



스타타워와 외환은행, 먹튀의 대명사 론스타


이 내용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겠다는 분도 계실 듯합니다. 사건의 시작은 IMF 외환위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IMF 외환위기로 중견 건설업체인 극동건설 등 여러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론스타는 조세 부담이 적은 벨기에에 거처를 둔 KC홀딩스 S.A.를 통해 극동건설, 외환은행 등을 인수합니다.

 

1989년 미국 댈러스에서 설립된 부동산투자 전문 헤지 펀드인 론스타 펀드는 IMF 외환위기로 휘청거리던 대한민국을 제물로 삼아 설립 10년도 채 안 돼 대박을 친 셈입니다. 나라가 휘청거리던 시절, 헐값에 기업과 건물들을 사들인 론스타는 2004년 한국이 IMF를 극복해내자 이를 다시 우리나라에 되팝니다. 당연히 막대한 시세 차익을 남겼지요. 2004년 역삼동 스타타워 빌딩을 매각해 2450억 원이라는 막대한 양도차익을 얻은 론스타와 우리나라 세무 당국과의 악연은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출처 – 파이낸셜뉴스


론스타는 KC홀딩스 S.A.가 벨기에 법인이어서 한국-벨기에 조세조약에 따라 비과세, 면세 대상이라고 주장합니다. 역삼세무서는 KC홀딩스 S.A.는 조세 회피를 위한 유령회사일 뿐이며 빌딩을 매각해 실제 이득을 본 론스타가 양도소득세 1017억 원을 내야 한다고 통보했습니다.

 

론스타가 제기한 양도소득세 부과 취소소송에서 법원은 론스타의 경우 외국 법인이라 소득세 부과 대상이 아니라며 역삼세무서에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10여 년 만에 이런 판결이 나자 역삼세무서는 론스타를 상대로 이번에는 법인세를 부과했습니다. 받을 수 없게 된 양도소득세와 비슷한 1045억 원이었습니다. 론스타는 이에 불복하여 다시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7일 법원이 이 중 60퍼센트 가량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훨씬 더 큰 문제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이었습니다. 스타타워와 마찬가지로 론스타는 IMF 외환위기로 휘청거리던 때 외환은행을 헐값에 샀다가 2년 만에 무려 4조 원대의 매각 차익을 얻고 되팔았습니다. 스타타워 빌딩 20개분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외환카드 주가 조작, 로비 등 광범위한 탈법과 불법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는 건데요, 당시 검찰과 정치권이 적극 수사에 나선 데 반해 매각을 주도한 외환은행 책임자들과 이를 허가한 정부 관계자는 당시에는 그렇게 해서라도 파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론스타는 론스타대로 외국 자본에 대한 차별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지요. 여기에 검찰이 신청한 론스타 경영진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두 차례 기각하면서 검찰과 법원의 갈등으로 비화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일요신문


외환은행 의혹의 초점은 애초에 국내 은행을 인수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던 사모 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BIS비율(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을 낮춰준 당시 정책 책임자들과 외환은행 고위층 그리고 론스타 간에 비리가 있을 것이라는 추정에 있습니다. 

 

원래 은행은 정식 금융회사만 살 수 있지만, BIS비율이 낮은 부실 금융기관은 사모펀드도 인수할 수 있다는 은행법 예외조항이 있었습니다. 이 예외조항에 맞추기 위해 정책 책임자들이 BIS비율을 기준 이하로 책정하고 이를 위해 론스타는 로비 등의 비리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한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을 2년 만에 국민은행에 거의 4배 가격에 되팝니다. 단기간에 4조 원을 꿀꺽한 셈입니다. 당시 정부는 대체 왜 그렇게 헐값에 급히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팔았던 걸까요? 그냥 외환은행이 스스로 정상화되기를 기다리거나 처음부터 국민은행이 인수하도록 하면 될 일을 말입니다. 

 

굳이 4배 뻥튀기와 먹튀 하도록 중간에 론스타를 집어넣을 이유가 있었느냐 하는 것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이른바 '론스타 먹튀 사건'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때 제대로 파헤치지 못한 이 일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질질 끌고 있는 론스타 ISD로 이어집니다.



한미FTA 이후 첫 ISD, 숨기기 급급한 한국 정부


론스타는 2012년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지분 매각을 늦게 승인하고 스타타워 빌딩 매각 등에 부당한 세금을 매겨 손해를 봤다며 5조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ISD를 신청했습니다. ISD는 투자자-국가소송제(Investor-State Dispute)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외투자자가 상대국의 법령, 정책 등에 의해 피해를 당했을 경우 국제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한미FTA 당시 독소조항이라며 말이 많았던 조항이죠. 론스타가 제기한 ISD는 5조 원이라는 막대한 세금이 걸려 있으면서 첫 ISD 사례로서도 중대한 사안입니다.

 

출처 - 조선일보


최근 1차 심리가 마무리된 가운데 다음 달 29일부터 2차 심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1차 심리에서 론스타는 기존 입장 그대로 한국 정부의 원칙 없는 행정과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 등으로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승인이 늦어진 것은 론스타가 수사와 재판을 받는 중이었기 때문이며 금융당국은 다른 금융회사와 같은 잣대로 외환은행을 감독했다는 취지로 반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ISD 진행에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데 한국 정부는 이를 밀실주의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부는 론스타 ISD 소송을 위해 올해까지 239억 4100만 원을 투입할 예정이며,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들어갈 돈은 국내외 로펌 법률 자문 비용, 중재비용, 중재재판 전문가 참여 비용, 중재절차 참가 여비 등 총 5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었습니다.


막대한 세금이 걸려 있고 이를 지키기 위해 또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국제 소송인데도 정부는 이를 숨기는 데 급급합니다. 지난 26일 정부는 론스타 관련 1차 심리기일 종료라는 내나 마나 한 보도자료를 저녁때 내어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 자체가 2년 만에 나온 보도자료입니다. 정부는 2013년 중재재판장에 영국 국적의 조니 비더가 선정됐다는 소식을 알린 이후로 보도자료를 낸 적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민변에서는 관련 정보를 숨기며 의미 없는 보도자료만 내는 것이 ISD와 관련된 밀실주의적 행태 때문에 비판받는 정부가 알리바이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며 비판했습니다.

 


출처 - 국민일보


대한민국 정부는 론스타 먹튀 사건을 끝낼 의지나 능력이 있긴 한 걸까요? 다음 달로 내정된 2차 심리가 걱정되는군요. 안 그래도 어려운 대한민국 경제에 어마어마한 먹구름이 드리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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