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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DMZ 지뢰폭발 사고, 이중배상금지로 고통받는 피해자들

by 생각비행 2015. 8. 13.

지난 4일 휴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군이 매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목함지뢰가 폭발해 두 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목함지뢰는 나무상자에 TNT 화약과 신관을 넣은 지뢰의 한 형태입니다. 지난 2010년 민통선 내 임진강 부근에서 나무상자를 주운 한 모 씨가 무심코 뚜껑을 열다 폭발해 사망한 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졌지요. 지난 4일 발생한 목함지뢰 폭발사고로 김 하사는 오른쪽 발목을 잃었고, 하 하사는 양쪽 무릎 아래로 두 다리를 모두 잃었습니다. 20대 초반으로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평생토록 안고 가야 할 상처를 입은 셈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번 사건과 관련한 국방부의 긴급 현안보고를 위해 12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의 내용을 보면 지난 4일 북한 도발 가능성이 확인됐고 우리 군 하사 2명이 지뢰 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통일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다음 날인 5일 아무 생각도 없이 북한에 남북 고위급 회담을 제안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에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조차 정신 나간 짓이라고 돌직구를 날리며 정부 부처 간 엇박자를 질타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지뢰 사건이 터진 나흘 뒤인 8일에서야 열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늑장 대처는 세월호 사고 때나 메르스 사태 때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의 백군기 의원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사건 당일인 4일 밤에라도 열려야 했는데 4일이나 지나 열렸다니 이게 국가인가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메르스 때는 재난 관리의 컨트롤 타워는 청와대가 아니라며 발뺌하더니 이제는 국가안보의 컨트롤 타워조차 아니라고 발뺌하려나 봅니다. 이쯤 되면 대체 청와대의 존재 이유가 뭔지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출처 - 경향신문

 

황당한 일은 또 있습니다. 최전방의 지뢰폭발 사고는 군 관련 사건임에도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를 하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국방부 장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보고받은 것으로 안다고 했지만, 정확하게 언제 어떻게 보고를 받았는지에 관해서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간 많은 참사를 겪고도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 부재는 바뀐 게 없다는 사실만을 재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국정원 해킹 사건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지뢰 사건이 터진 다음 날인 지난 5일 경원선 남측구간 철도복원 기공식에 참석해 "북한은 우리의 진정성을 믿고 용기 있게 남북 화합의 길에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축사했습니다. 지뢰 사고에 대한 초동 대처가 재빨랐다면 대통령에게 관련 사실이 제때 보고되었을 것이고, 경원선 기공식에서 대통령이 이런 축사를 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정부 부처 간 불통 외 그 이면에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할 뿐입니다.

 

출처 - 뉴시스

 

아무튼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목함지뢰 사건의 희생자들만 불쌍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지고 가야 할 상처를 입었지만, 군인 신분인 김 하사와 하 하사는 군 당국의 불법이나 과실이 드러나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공무원은 당국의 불법이나 과실이 드러날 경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지만, 군인과 경찰은 불가능합니다. 헌법 29조 2항과 국가배상법 2조 1항인 이중배상금지 규정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군인과 경찰의 기본권, 평등권을 침해하는 이 법률을 헌법에까지 박아넣은 사람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이중배상금지는 군인이나 경찰이 전사하거나 순직, 부상했을 때 정해진 재해보상금, 유족연금, 상이연금 등만 받을 수 있을 뿐, 국가의 불법이나 과실이 밝혀져도 이에 따른 손해배상은 청구할 수 없도록 규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달러벌이 목적으로 베트남에 파병하면서 생겼습니다. 베트남전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우리나라 젊은이가 죽거나 다쳤습니다. 전쟁 상황에선 상관의 부당한 명령이나 다른 군인의 직무상 불법행위, 과실 등으로 숨지거나 다칠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정상적이라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청구해 국가 배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하지만, 박정희 정부는 이를 사전에 봉쇄하고자 국가배상법 2조를 공표한 것이죠.


1971년 대법원은 이 조항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군인과 경찰을 차별하는 조항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반기를 든 데 격노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위헌 결정을 내린 대법관들의 연임을 막고 1972년 유신헌법을 제정하여 이중배상금지를 아예 헌법에 박아넣은 겁니다. 헌법 29조에 유신헌법의 잔재가 지금도 남아 있는 셈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도 베트남전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박정희와 박근혜 부녀를 위해 각종 맞불 시위에 동원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이중배상금지 규정으로 군인과 경찰은 국가로부터 부당한 취급을 받거나 불법에 노출되어도 법에 호소할 길이 없어졌습니다. 이번 목함지뢰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군이 지뢰를 매설했다는 국방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는다면 무장한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우리 군이 경계 임무에 실패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죠. 작전에 실패해온 우리 군의 무능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2014년 6월 강원도 22사단 55연대 GOP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을 기억하시는지요? 국방부가 운용한 관심병사 제도의 유명무실함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뿐 아니라 최전방의 살인적인 GOP 경계근무의 문제점이 드러난 사건이었죠. 임 병장의 총기 난사 및 무장탈영 사건에서도 군의 초동 대처는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물론 군의 DMZ 감시체계의 허점이 노출된 사건은 그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2012년에 발생한 이른바 노크 귀순 사건이었죠. 북한군 병사가 철책을 넘어 우리 군의 생활관 문을 노크해서 귀순 의사를 밝힌 참으로 어이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전방 경계의 허술함과 군 기강 해이의 문제점이 드러난 사건으로 국가 안보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천안함 사건이 있습니다. 침몰한 천안함을 둘러싼 의혹은 지금도 법정 공방 중입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의 원인은 아직도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무능한 이명박 정부와 군은 북한을 원흉으로 몰아 면피하려 했을 뿐, 무고한 병사들의 죽음을 책임지는 지휘관은 없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난 4일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의 원인을 규명해 군 지휘부의 실책이나 과실이 있었다면, 그리고 이에 대해 혹시 불법적인 입막음이 있었다면, 김 하사와 하 하사는 국가에 배상을 청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여야 합니다. 이번 목함지뢰 사건에 대해 새누리당 의원인 주호영 의원조차 군의 경계 실패라는 지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요즘은 정부와 국가기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만, 지뢰 사고와 관련된 국방부의 발표가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면 정전협정을 어긴 북한의 도를 넘은 행위에 대해서는 군사정전위를 통해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울러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억울하게 희생되는 병사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이중배상금지라는 독소 조항을 철폐하는 데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무장지대(DMZ)를 '드리밍 메이킹 존(Dreaming Making Zone)'으로 만들겠다는 한심한 소릴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Dreaming Making Zone이 아니라 Dakaki Masao Zone"이겠지 하며 비웃겠습니까?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이중배상금지가 들어간 유신헌법 제정에 투표한 사람이라 썩 믿음이 가진 않지만, 아버지의 잘못을 이제라도 바로잡기 바랍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젊은이를 돌보지 않는 국가가 어떻게 애국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출처 - 경향신문

출처 -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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