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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전쟁 위협 끝? 안보 상업화가 더 큰 문제!

by 생각비행 2015. 8. 27.

무박 4일, 49시간의 마라톤협상을 끝으로 백척간두의 전쟁 위협 상황이 해소되었다는 뉴스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신 분이 많으실 줄 압니다. 목함지뢰 사건이 터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20일에는 포격이, 그 후에는 50척의 잠수함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듣다 보면 '안보'에 어지간히 무관심한 국민이라도 '이러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서부전선 포격 도발에 전역을 앞둔 몇몇 장병이 전역을 미루는가 하면, 페이스북에는 예비군복을 입고 참전의 의지를 불태우는 이들의 인증사진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SK 등 일부 기업은 전역을 미룬 장병들을 특채 형식으로 입사시킨다 하여 '어떤 의미'에선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YTN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희생하려는 뜻은 고귀한 것이겠지요. 복잡한 국제관계에서 안보를 위한 '무력'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간 급격한 남북 관계 경색으로 사회 분위기는 너무나 위험했습니다. 핀다로스의 어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겪어보지 못한 자에게 전쟁은 달콤한 것이다. – 핀다로스



하루 만에 240만 명 사상, 한반도 전쟁 나면 민족 공멸


보수 진영의 호전론자들과 그 추종자들은 북한과의 전쟁을 너무 가볍게 입에 담습니다. "언제든 올 테면 와라! 모조리 물리쳐 주마!"라면서요.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남북한 사이의 상식적인 전력차를 생각할 때, 십중팔구 한미 연합군이 승리하겠지요. 하지만 전쟁에 승리하는 게 관건이 아닙니다. 전쟁이 나면 사람이 죽습니다.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는다는 간명한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출처 - 허핑턴포스트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 해봤더니…하루만에 240만명 사상(시사in)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7482

 

지난 2010년 천안함 사태로 남북 간 전쟁 위기감이 확산할 때 주간지 《시사in》이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 결과를 분석하여 기사를 낸 적이 있습니다. 1994년 1차 북한 핵위기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만든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 결과도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남북한 사이에 전면전이 발생할 경우, 막강한 화력을 지닌 한미 연합군이 승리한다는 결과를 높은 확률로 점쳤습니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맛볼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는 허울뿐인 승리입니다.

 

전쟁을 선포하는 건 늙은이들이지만, 싸워야 하고 죽어야 하는 건 젊은이들이다. – 허버트 후버

 

시뮬레이션은 개전 24시간 안에 군인 20만 명을 포함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150만 명이 사상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24일이 아니라 24시간입니다. 개전 1주 이내에 군인만 100만 명이 사망할 것이고, 같은 기간에 남한에서만 500만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모든 것이 집약된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 인구의 10퍼센트가 1주 만에 문자 그대로 사라진다는 얘깁니다. 

 

또한 100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 3000억 달러의 피해 복구 비용이 든다는 예측이 나왔습니다. 이 땅에서 전쟁이 발생하는 순간 120조 원의 경제적 손실이 생기고, 360조 원의 복구 비용이 든다는 얘깁니다. 이러한 추정치도 20년 전인 1994년 기준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와 인구의 수도권 집중을 생각하면 인명 피해는 물론 경제적 피해 역시 과거의 추산을 훨씬 웃도는 천문학적인 단위로 뛰겠지요.

 

부자들이 전쟁을 일으키면, 죽는 건 가난한 이들이다. – 장 폴 사르트르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누군가는 이기겠지요. 하지만 그 승리를 남한이나 북한이 고스란히 챙길 수는 없습니다. 반사적 이익을 미국, 일본, 중국 등이 누리겠죠. 전쟁 규모에 따라 다르긴 하겠으나, 이 글을 쓴 저희나 보고 계신 여러분이 살아 있지 못할 가능성도 큽니다.

 

현대 전쟁에서 더 이상 아름답거나 조화로운 죽음은 없다.

당신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개처럼 죽을 것이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전쟁은 실로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쟁을 대체 왜 그렇게 목청 높여 부르짖는 걸까요? 전쟁이란 순간적인 감정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순간,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존재가 사라지는 끔찍한 일이 일어납니다. 아무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요. 전쟁은 그런 것입니다.

 

스필버그 감독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를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지요.

 



극단으로 치닫는 안보 상업화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전역을 연기하며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나라를 수호하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들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거나 의심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언론과 정부가 이들을 다루는 방식은 비정상적이며 극단적으로 위험했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육군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전역을 연기한 육군 병사의 사례를 소개하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연합뉴스》는 이런 소식이 훈훈한 감동을 준다며 소개했습니다. YTN은 2030 세대의 군복 인증 물결이 지뢰 도발에 이어 포격 도발로 긴장이 높아진 가운데 우리 군에 힘을 보태고 있다며 미담으로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2030 세대의 안보 의식이 40대보다도 높다며 오랜만에 젊은이들을 칭찬하기 바빴습니다. 한편 《조선일보》는 2002년 제2연평해전 때는 북한의 유감 표명이 사과가 아니라며 분기탱천하더니 이번에는 유감이 곧 사과 표명이라며 박근혜 정부에 아부하기 바빴습니다. 북한이 유감 표명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말입니다.

 


출처 - 조선일보



출처 - 아이엠피터


전문가들은 안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는 정부나 언론이 할 역할도 아니며,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이대훈 성공회대 교수는 바람직한 애국이나 국방의 의무인 것처럼 부추기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며, 정치적 목적이나 이념적 목적으로 청년층의 군사적 극단주의를 부추기는 사회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와 언론은 긴장 국면에서 위기감을 조장하기보다 이건 우리가 해결할 문제이니 진정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이야기를 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전쟁 위협을 강조하고, 언론은 그 광풍에 편승해 클릭 장사를 했습니다. 혼란에 빠진 국민을 뒤로한 채 정부는 자기 입맛에 맞춰 이번 위기를 통해 얻을 것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시민의 질타를 받던 기업들은 애국심에 호소하며 은근슬쩍 자기 치부를 가리기에 바빴습니다. 이번에 전역을 연기한 장병들을 특채하겠다고 밝힌 SK의 최태원 회장은 광복절 특사로 논란 속에 사면된 바 있지요. 이러다 '5포 세대, 7포 세대' 하며 현실에 짓눌린 젊은이들이 앞으로 '참전 스펙'마저 쌓아야 하는 건 아닐지 잘 모르겠군요.

 

미국에서 심각한 안보 위기 상황으로 비화했던 9.11 테러 당시 많은 시민이 테러리스트에 대한 복수를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뉴욕 시장이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일상으로 돌아가십시오." 세월호 사고의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많은 시민에게 우리의 위정자들도 똑같이 얘기했습니다. 일상으로 복귀하라고 말입니다. 같은 말이지만 왜 이렇게 담긴 의미가 다른 걸까요?

 

안보 상업화가 점점 더 심해지는 대한민국의 상황을 국민이 두 눈을 부릅뜨고 주시해야 합니다. 국민의 생명마저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는 미치광이들이 우리에게 각자도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얘기해줍시다. "바보야, 문제는 너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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