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보도

일가 비리 보도하는 언론에 재갈 물리는 윤석열 대통령

by 생각비행 2024. 5. 7.

지난 4월 10일 실시된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MBC가 7일 방영 예정이던 <복면가왕> 특집 방송을 연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작진은 방송 9주년을 맞아 노래 <은하철도 999>를 부르는 등 숫자 9를 강조한 방송을 준비했으나 조국혁신당 기호가 9번이어서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방송을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MBC가 터무니없이 몸을 사리는 것 아니냐 하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MBC 제작진이 그런 결정을 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출처 - 오마이TV

 

지난 2월 27일 MBC <뉴스데스크> 기상 캐스터가 당일 서울 몇몇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가 1㎍/㎥까지 떨어졌다고 전하면서 "지금 제 옆에는 키보다 더 큰 1이 있다. 오늘 서울은 1이다"라고 했습니다. MBC는 숫자 1 때문에 방송통신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로부터 관계자 징계라는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화면에 크게 띄운 파란 1이 문제였습니다.

 

출처 - MBC

 

권재홍 심의위원은 "당일 서울 시내 평균 미세먼지 농도가 '1'도 아니었다"며 "뉴스 가치가 없는데 1을 부각했다"라고 했고, 임정렬 위원은 "순수한 날씨 정보였다면 1 옆에 미세먼지 농도라고 자막을 달거나 단위를 표시했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MBC를 대표해 의견 진술에 참석한 박범수 MBC 뉴스룸 취재센터장은 날씨 보도에 대해 이런 식의 정치 프레임을 씌워서 공격하는 것을 선방위에서 정색하고 심의할 사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심의 자체가 언론 탄압 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선방위는 지난 2월 25일 최재영 목사가 김건희 여사에게 고가 명품 브랜드 가방을 주며 몰래 촬영한 영상 일부를 공개한 MBC <스트레이트>에도 관계자 징계를 의결한 바 있습니다. 

 

출처 - MBC

 

그런데 이 방송은 총선을 두 달 앞둔 시점에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검증하는 방송이었으므로 총선이 임박한 시점에 프레임을 짜서 보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MBC <스트레이트>는 해당 방송분에서 김건희 여사에 대한 몰카 취재 방식을 함정 취재로 규정하고 몰카 사건 자체를 '정치 공작'으로 규정한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국회의원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습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김건희 여사가 가담하지 않았다는 대통령실 입장 역시 반영했을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 수사 결과 김 여사의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내용까지 전달했고요. 그런데도 선방위는 MBC뿐 아니라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각 의혹을 다룬 방송사에 연달아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1월 16일 방송된 CBS <박재홍의 한판승부>는 관계자 징계, 2월 25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는 제작진 의견진술, 1월 12일 방송된 YTN <이브닝뉴스>, <뉴스나이트>는 경고, 1월 16일 방송된 MBC <신장식의 뉴스하이킥>도 경고, 1월 16일 방송된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은 주의, 2월 20일 방송된 CBS <김현정의 뉴스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출처 - CBS

 

김건희 여사 이름을 언급하기만 하면 징계를 내렸으니 대체 선방위는 언론을 무엇으로 보는 걸까요? 선방위의 조치는 현 정권의 편에 서서 언론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박범수 MBC 센터장은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안건으로 올라온 것이 대략 20건이 넘는다, 이 중 약 17건 정도가 선거와 관련 있는 내용인지 상당히 의심스러웠다. 이태원특별법이나 방통위의 심의 등 이런 내용들이 선거와 무관해 보이는 내용인데 이게 과연 선거방송심의대상이 되는지 MBC는 공식으로 문제를 제기한다"면서 MBC를 상대로 한 표적 탄압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MBC DTV, KBS 1TV 등은 올 연말 방송사업자 재허가 심사가 예정돼 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사업자 재허가 재승인 심사에서 방송 공정성 관련 평가를 강화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방위가 무차별 남발하는 중징계가 재허가 유효기간이 곧 만료되는 MBC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출처 - MBC

 

시사 주간지인 <시사인>은 2008년부터 2024년까지, 선방위가 다룬 안건 1126건(4월24일 기준)과 역대 선방위원 235명 명단(중복 포함)을 전수 분석한 뒤 지난 4월 26일 <역대 선방위 안건 전수 분석, 이번 선방위가 '역대급'>이라는 기사를 내놨습니다. 4월 24일 기준 22대 총선 선방위가 의결한 법정 제재는 모두 26건이었습니다. 2008년 현 방심위가 신설된 이후, 2012년 제18대 대선 선방위가 지금껏 가장 많은 법정 제재 17건을 의결했다고 합니다. 이어 2016년 제20대 총선 선방위가 14건, 나머지 선방위가 내린 법정 제재는 5건 내외에 그쳤습니다. 2012년 제19대 총선 선방위는 법정 제재를 한 건도 의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에 반해 제22대 총선 선방위 제재는 대부분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보도를 향했습니다. 역대 선방위는 여론조사 보도나 특정 후보자에 대해 사실관계가 틀리거나 편파적 보도를 중점으로 심의하고 감독해왔는데요, 제22대 총선 선방위는 달랐습니다. 사법농단 재판 1심 판결을 비판(MBC)하거나, 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참사 특별법 거부권 행사를 비판(CBS, 가톨릭평화방송)하는 등 선거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떨어지는 보도에도 징계를 내렸으니까요. 이 때문에 제22대 선방위에 '역대급'이라는 수식어가 줄곧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출처 - 시사인

 

제22대 총선 선방위는 제재 수위 또한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선방위가 내리는 결정 중에서 의견제시나 권고 같은 '행정지도'는 계도적 성격의 조치입니다. 선방위에 따르면, 경미한 규정 위반일 때 행정지도를 내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징계로 인식되는 '법정 제재'는 다릅니다. 주의·경고·관계자 징계 순으로 수위가 높아지는 법정 제재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때 감점 사유가 됩니다. 앞서 선방위가 무차별 남발하는 중징계가 재허가 유효기간이 곧 만료되는 MBC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정황에 관해 말씀드렸는데요, <시사인> 보도 내용을 보면 의구심을 넘어 명확히 MBC를 겨냥하고 있다고 봐도 되는 상황 아닐까요?  

 

출처 - 연합뉴스

 

그래서일까요? 지난 4월 29일 영수회담에서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민의를 전하겠다며 이렇게 발언했습니다. "MBC 법정제재 7건도 집행정지가 됐는데 이런 과도한 수사나 법정 제재에 문제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민주당 측 참석자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른다'는 취지로 반응했다고 합니다. 윤 대통령은 정말 몰랐을까요? '입틀막' 논란을 부른 선방위의 폭주는 파행적인 방심위 운영에서 비롯된 결과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방심위 위원 9명 중 야권 위원 5명을 해촉했습니다. 그사이 여권으로 류희림 위원장을 위촉하면서 여야 4 대 1 구조가 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여권 추천 위원 자리만 채워지면서 9명 정원인 방심위는 여야 6 대 1 구도까지 기울었습니다.

출처 - 시사인

 

방심위는 선방위 위원 추천권을 가질 단체를 여야 방심위 상임위원(원래는 3인) 협의하에 정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여야 협의가 '전무'했습니다. 야권 추천 방심위 상임위원이 없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여권 추천 방심위 상임위원끼리 논의해 TV조선과 보수 성향 시민단체 공정언론국민연대에 선방위 위원 추천권을 줬습니다. 그 결과 전례 없는 무더기 징계가 나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방심위 위원을 해촉했으니 관련 사실을 모를 리 없죠. 선방위 위원을 대통령이 직접 추천하지 않으니 상황을 모른다고 발뺌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최근 중징계를 남발한 선방위를 놓고 보수신문도 사설을 냈습니다. 지난 3월 4일 《조선일보》는 "권력이 정부 기관을 동원해 언론을 통제하려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했고, 《동아일보》는 3월 5일 "이러다간 방심위와 선방위 모두 '심기경호위'란 소릴 듣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방심위와 선방위는 독립기구지만 정치적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집권 세력에 유리하게 방심위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연달아 야권 위원 해촉 사태가 벌어졌고, 그 핵심에 윤석열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영수회담에서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른다'라고 반응한 윤석열 대통령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도 못 하는 '무능'한 사람인 걸까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