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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물/도서비행

[김대중 대통령을 추모하며 - 사랑의 승자 9] 꼬마의 소원

by 생각비행 2011. 10. 6.
꼬마의 소원

역사를 보면 많은 창조적 선구자들이 고독하고 절망적인 것 같이 보이는 투쟁을 전개한다. …… 그러나 그는 백성은 결코 그들의 안에서 울려오는 진리와 정의에의 갈망의 소리를 오래 외면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역시 잘 안다.


오 기자 대통령님과 악수 못했지? 손을 잡아보고 싶어 그 짧은 팔을 쭉 뻗고 있던데. 나도 꼬마와 악수하는 대통령을 찍고 싶어 기다렸지만, 경호원들이 하도 설쳐대는 바람에 나는 사진을 못 찍고 넌 악수를 못 했구나.
여자아이 하필 내 앞에서 돌아서시잖아요. (악수했다면) 친구들한테 무지 자랑했을 걸요? 아쉬워요. 며칠 손도 안 씻었을 텐데요.
오 기자 그분이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오실 때, 그때는 꼭 악수할 수 있을 거야.
여자아이 그럴 거예요. 오늘은 운이 없어서 못했지만, 그땐 꼭 손을 잡아 드릴 거예요. 수고 많이 하셨다고.
오 기자 왜 그렇게 악수하고 싶은 건데?
여자아이 대통령이시잖아요. 그것도 우리 동네 대통령이요.
오 기자 그래. 5년 후에 다시 돌아오실 때 나도 이 자리에 너랑 같이 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길 바라며 이 기자 아저씨랑 악수, 어때?
여자아이 꿩 대신 닭으로요? 음, 좋아요. 아저씨도 그때 꼭 다시 오셔야 해요.

‘너, 내가 닭띠인 줄 어떻게 알았지?’ 농담 한마디 못 하고 황급히 꼬마와 헤어졌다. 나는 아직도 그 꼬마의 말을 기억한다. 아마도 순진한 여자아이는 그날, 대통령이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꼬마의 소원은 어른의 입장에 의해―사정이야 어떻든 간에―깨지고 말았다. 어떤 낯으로 그때 그 꼬마를 볼 수 있을지. 어떤 경우든 약속, 특히 어른이 아이에게 하는 약속은 지켜야 한다. 그 꼬마에게 직접 한 약속은 아니지만 당연히 기대하는 소박한 희망은 약속과 다름없다. 나는 아이의 지금 심정을 듣고 싶다. 하물며 당사자인 김대중 대통령께서야 더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침묵이 폭력보다 더 나쁜 죄악이라며 간디를 비유해 얘기했던 김대중, 계속 침묵만 하실 것인가.

이 꼬마만이 아닌 모든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이 있다. 국민에 대한 화답을 기다린다. 하지만 현충원에서는 절대 들릴 리가 없다. 갇혔으니까. 국민과 단절되어 있으니까. 편하게 가서 마음을 탁 터놓고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어도 군인이, 그것도 칼날같이 옷을 다려 입은 장대 키의 늠름한 헌병이 지키고 있는 곳을 자연스럽게 드나들 국민이 얼마나 될까. 곁에 기대어 하소연하고 울음도 터트렸다가 돌아설 땐 마음에 작은 희망이라도 품을 만한 곳으로 현충원은 적합하지 않다. 그곳은 그저 서서 하는 참배나 어울린다. 과연 경례를 받으려고 그곳에 계신 것인가. 김대중은 경례보다도 어깨동무를 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마음을 기댈만한 위인이 우리 곁에 있으면 좋겠다.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는 1931년 40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1922년 6월 4일자 일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조금 내려가면 조선신궁 공사를 하고 있다. 아름다운 성벽을 파괴하고 장려한 문을 떼어내 가면서까지 굳이 숭경을 강제하는 신사 따위를 거액의 돈을 들여 지으려는 관리들의 속내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산 정상에서 경복궁 안의 신축청사(조선총독부 건물) 등을 내려다보면 어이가 없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백악, 근정전, 경회루, 광화문 사이에 무리하게 비집고 들어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나 뻔뻔하다. 게다가 기존 건축의 조화를 완전히 깨뜨려 정말이지 볼썽사나워 보인다. 백악산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일본인의 수치로 남게 될 것이다.”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 중에서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
-《한일교류의 역사》 중에서

김대중, 평생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다간 사람. 그가 얼마나 한국을 사랑했던가. 지역갈등과 민족분열을 넘어 소통과 통합, 화합과 통일을 외치던 그는 한국의 빛나는 미래를 꿈꾸었다. 그런 그가 영원히 잠들 곳으로 현충원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그곳은 민중의 땅이 될 수 없다. 차갑고 쓸쓸한 땅을 떠나 국민의 곁으로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래야 영원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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