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36주기가 되는 5.18 민주화항쟁도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으로 시작했습니다. 상식적인 사회라면 이런 일이 논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겠죠. 박근혜 대통령은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사실상 제창하지 못하게 지침을 내렸으며 박승춘 보훈처장은 이 교시를 받들어 올해도 제창을 불허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청와대 회동에서 협치를 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또 하나의 쇼였을 뿐이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대부분이 거짓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야당은 청와대 회동 무효를 선언하며 강하게 반발했고, 심지어 새누리당 원내대표조차 청와대와 보훈처의 결정에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야당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해임촉구 결의안을 내기로 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1997년 김영삼 정부 때부터 제창된 〈임을 위한 행진곡〉은 2008년 이명박 정부 때부터 제외되기 시작했습니다. 집권당과 정권의 성격을 보면 그 의도가 너무나 명백하죠. 보훈처의 해석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음악적으로 제창과 합창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개념이지만, 보훈처의 유권해석으로는 제창은 참석자 전원이 의무적으로 불러야 하지만 합창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죠.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5.18 민주화항쟁 기념식 동영상을 보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입을 다물고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외워서 부르고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는 주먹을 움켜쥔 채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반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들고 있는 종이만 들여다볼 뿐 입을 열지 않습니다.


출처 - 유튜브


보훈처의 유권 해석대로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국가 기념식의 관행을 어긴 것이며 '의무적'으로 불러야 하는 노래를 고의로 부르지 않은 셈이 됩니다. 그렇다면 보훈처는 박근혜 대통령의 무례와 무식함을 계속 알리고 싶어 이런 방침을 자꾸 고수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다면 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를 막기 위해 다른 핑계를 대고 있는 걸까요?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보면 그 이유가 그대로 드러나긴 합니다.


출처 - 페이스북


〈임을 위한 행진곡〉은 보수단체의 주장과 달리 종북이나 김일성 찬양을 위한 노래가 아닙니다. 탈북하여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는 주성하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북한에서 허락없이 부르면 잡혀가 정치범이 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북한과 연결시키는 찌질한 짓거리" 좀 그만하라면서 말입니다. 삼척동자도 다 알 만한 노래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보면 그 수준의 저열함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한편 5.18 민주화항쟁 당시 학살의 책임자였던 전두환은 자신이 광주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4대 조건이 선결되어야 된다는 망언을 했습니다. 신변 보호와 박탈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를 갖추는 등의 조건이 선결되어야 5.18 묘역을 참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광주에서는 죄인에게 무슨 예우냐는 반응이 나오고, 5.18 관련 단체는 책임 인정과 광주에 대한 사죄 그리고 대국민사과가 선결 조건이라고 대응하기도 했죠. 

 

출처 - KBS


하지만 살인마 전두환은 지난달 27일 《신동아》 기자와 나눈 인터뷰에서 5.18 민주화항쟁 당시 시민군을 향해 총을 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동석한 전두환의 지인들도 인터뷰에 참여했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상황이 나왔습니다.

 

(5·18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광주 침투와 관련된 정보 보고를 받은 적 없다는 전 전 대통령 말에)


고명승 전 삼군사령관 "북한 특수군 600명 얘기는 연희동에서 코멘트 한 일이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 "뭐라고? 600명이 뭔데?"

정호용 전 의원 "이북에서 600명이 왔다는 거예요. 지만원 씨가 주장해요."

전두환 전 대통령 "오, 그래? 난 오늘 처음 듣는데."


일베에서 5.18 관련으로 "종북, 빨갱이" 타령할 때 흔하게 나오는 주장이 북한 특수군 얘기죠. 그런데 그 주범인 전두환이 이런 논거를 부정한 셈입니다. 광주와 북한이 관련 있다는 일베의 주장이 헛소리임을 전두환이 밝힌 셈입니다. 한편 역사적 책임감으로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전두환은 "광주에 내려가 뭘하라고요"라고 되물어 책임 인정과 사과할 마음이 전혀 없음을 드러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출처 - 스포츠동아


한국인 작가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의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얘기했죠.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출처 - 《소년이 온다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과 같이 고립되고 힘으로 짓밟히고 훼손된 사건 이면에는 광주를 수없이 되태어나게 한 국가의 원죄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아물지 못하고 해마다 후벼지는 그 상처에서는 여전히 피가 철철 나고 있습니다. 5월 광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뜻깊게 보내셨는지요? 5월은 가정의 달이지만 우리 이웃 중 유독 슬픈 시간을 보낸 분들도 계십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비롯해 사과 아닌 사과를 받은 옥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및 유가족들 얘깁니다. 오늘은 '안방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라는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지난 5년 동안 어째서 문전박대를 당해야 했는지 들여다보겠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옥시 가습기 살균제, 안방에서 일어난 화학 테러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접수한 결과에 의하면 현재까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가 최대 239명, 심각한 폐질환이 최대 1528명에 이릅니다. 사상 최악의 화학 참사라고 할 수 있죠. 인명 피해 규모뿐 아니라 사망자의 대부분이 산모와 영유아였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이를 안방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 비견되고 있습니다.


2011년 원인 불명의 폐질환으로 환자가 급증하고, 특히 임산부와 영유아의 폐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역학 조사 결과 가습기를 세척할 때 쓰는 가습기 살균제가 폐를 손상시키는 원인임을 알게 되었죠. 이때 가습기 살균제 6종은 회수되었습니다.


출처 - 환경보건시민센터


그런데 문제는 1997년 출시된 가습기 살균제가 2011년까지 연간 60만 개 정도 판매되었다는 겁니다. 회수 조치를 했으나 이미 사태가 심각했고, 판매량으로 추측할 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가 있어도 사실상 원인 불명으로 돌아가신 분이 많았을 겁니다.


가습기 살균제에는 PHMG, PGH, MCIT 성분이 있는데, 피부에 묻을 경우 독성이 다른 살균제에 비해 10분의 1에 불과해 샴푸, 물티슈 등 여러 제품에 이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성분을 호흡기로 흡입할 경우 독성이 오히려 치명적이었습니다. 더구나 가습기 살균제는 공산품으로 분류되어 식품위생법이나 약사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일반적인 안전 기준만 적용되었기에 피해 예방도 늦어졌습니다.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인 PHMG 계열엔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롯데마트의 와이즐렉, 홈플러스의 홈플러스가 있고, PGH 계열에는 버터플라이이펙트의 세퓨, MCIT 계열에는 애경의 애경가습기메이트, 이마트의 이플러스 등이 있습니다. 옥시 제품의 사망자와 피해자가 가장 많긴 해도 롯데, 홈플러스, 이마트, 애경 등 이름만 들으면 아는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가습기 살균제 참사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판박이, 피해자들 두 번 울려


명백한 화학 테러이자 대량 학살이라고 불릴 만한 참사가 일어났지만 책임의 주체 중 단 하나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는 지난 5월 2일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공식 사과를 하고 보상계획안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뒤늦은 대응이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오기 시작한 2011년 이후 무려 5년이 흘렀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옥시 측의 사과와 보상안발표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극도로 나빠진 여론을 의식해 마지못해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 이전에 옥시 측은 언론 취재엔 무응답, 피해자에겐 사과 같지 않은 사과로 일관했습니다.


출처 - 뉴시스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산모와 아기들이 죽든 말든 관심도 없더니 정작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왔는데도 발뺌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자 옥시레킷벤키저의 영국 본사는 한국 지사와는 경영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연히 거짓말입니다. 옥시는 논란이 한창이던 2011년 12월 기존 법인을 고의로 해산하고 유한회사로 새롭게 설립하기까지 했으니까요. 법인이 변경되면 이미 사라진 법인의 죄를 새 법인이 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속셈이었겠죠.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이들은 자사 게시판에 부작용을 호소한 소비자들의 글을 일괄 삭제했습니다. 옥시레킷벤키저의 홈페이지에 15년 전부터 가습기 살균제 부작용을 호소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왔으므로 옥시 측이 가습기 살균제의 부작용을 모르고 있었을 리 없습니다. 부작용을 호소한 소비자의 글을 삭제한 것이 바로 강력한 증거입니다. 이를 알고서도 옥시가 계속 제품을 판매했으니 살인죄를 적용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혹시 측은 발뺌할 뿐 아니라 증거 인멸까지 적극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의 유독성을 검증하고 고발했어야 할 연구팀조차 돈을 받고 연구 결과를 조작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죠. 서울대 연구팀의 조명행 교수는 옥시레킷벤키저 측의 연구 용역을 받아 수행한 연구 결과를 조작했습니다. 개인 계좌로 수천만 원을 받고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큰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도출해준 것이죠. 이 연구 결과는 기존의 재판 과정에서 옥시 측을 변호하는 결정적 증거로 쓰였습니다. 검찰은 증거 인멸 및 뇌물 수수 혐의로 서울대 조명행 교수를 긴급 체포했습니다.


출처 - JTBC


환경부는 이번 달 들어서야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피해 재발 방지를 위한 살생물제 전수조사 관리 체계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이 모든 사태를 감독하고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 당국의 직무유기에 대한 질타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돈에 미쳐 있다면 이를 제재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피해자들의 호소에 무관심했을 뿐 아니라 기업과 개인 간의 문제로 국한해 피해 규모를 축소해왔습니다. 애경 제품은 옥시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부는 애경 제품을 검찰 기소에서 제외하기까지 했죠.



5년 동안 가습기 특별법 막은 새누리당과 전경련


가습기 살균제 검찰 조사가 속도를 내자 뻔뻔하게도 새누리당은 여기에 숟가락을 얹었습니다. 사건을 철저히 규명하여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인데요, 철면피가 따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2013년 새누리당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 특별법 제정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박근혜 정부는 피해자 실태조사만 하고 사법부의 판단에 맡긴다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당시 친박 실세인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은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 사안이 아니라며 강력히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만 특별 보호해주고 교통사고 당한 피해자는 안 해주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죠.

 

출처 - 세계일보


요즘 어버이연합을 지원한 사실이 들통난 전경련도 새누리당과 똑같았습니다. 2013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안 제정에 대해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안 된다고 극구 반대했으니까요.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원인기도 한 유독물질을 생산한 기업인 SK케미칼 같은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기업들의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참사의 1차적 원인이 기업의 과실과 불법행위에 있었음에도 사과나 대안 마련은커녕 특별법 제정을 방해한 새누리당과 전경련은 후안무치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번에 갑자기 태세를 바꾼 건 어버이연합―전경련―국정원 연계설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우리나라도 징벌적 배상제 마련해야


최근 미국에서 존슨앤드존슨이라는 기업이 거액의 배상 판결을 받았습니다. 땀띠용 파우더가 난소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판결이 잇따라 나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 난소암 피해자에게 처음으로 800억 원의 배상 판결이 나왔고, 우리나라에서 옥시가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했던 지난 2일에는 다른 난소암 피해자에게 60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또 나왔습니다. 기업의 책임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차이가 큽니다. 우리나라에선 대기업들이 가습기 피해자 전원을 대상으로 마련한 기금이 고작 50억 원이 될까 말까 하는 상황이니까요.


출처 - JTBC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라는 게 있습니다.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금을 부과해 유사한 부당행위를 방지하는 제도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처럼 소비자의 줄이은 신고를 듣고 기업이 피해를 예상했음에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경우도 이에 포함됩니다.

 

1992년 미국에서는 커피 컵 뚜껑을 열다 커피를 쏟아 화상을 입은 여성에 대해 맥도날드가 일반 배상금 16만 달러, 손해배상금 48만 달러를 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맥도날드 측이 그간 커피가 너무 뜨겁다는 소비자 불만이 계속 제기되었음에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이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반대로 제정되지 못했습니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는 허울 때문에 국민이 죽어 나가더라도 규제를 오히려 더 풀겠다는 심산입니다.


출처 - 피키캐스트


수많은 피해자가 난 끔찍한 사태를 두고도 기업과 정부는 제대로 된 사과도,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변명만 무성할 뿐인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은 망하는 게 마땅합니다. 이제라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이전에 일어난 기업의 잘못을 더 철저히 규명해 처벌해야 합니다. 아울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응당한 보상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진박' '친박'으로 권력 다툼을 조장해 총선을 말아먹고 국민의 심판을 받은 박근혜 대통령. 위기 국면 때마다 외국으로 도망하는 건 당연지사가 되었죠. 총선이 있던 지난달에는 멕시코, 이번 달에는 이란으로 외유한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최고의 경제외교 성과를 올렸다는 자화자찬을 하며 돌아왔습니다. 이란에서 벌인 패션 외교로 MOU 64건 체결, 42조 원 경제 가치를 지닌 성과를 올렸다는 겁니다. 이명박 정권의 자원 외교 거짓말에 당한 경험이 있으니, 이제 경제 성과 운운하는 보도를 그대로 믿는 분은 안 계시겠죠?

 

출처 - 뉴스타파


 

대통령의 패션 외교,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패션 외교는 국내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때마다 벌어진 일입니다. 2013년 대선 여론조작,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파문, 2014년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세월호 참사, 정윤회 문건 유출, 2015년 '성완종 리스트' 파문, 국정원 해킹 사건, 메르스 사태 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국내 현안을 내팽개치고 해외로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그러고는 돌아와서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의 신분을 망각한 채 심판자라도 되는 양 아랫사람들을 단죄하는 유체이탈 행태를 보였죠.

 

출처 - 프레시안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대한민국을 뒤흔들던 지난해에 이뤄진 방미도 그런 연장 선상의 외교적 외유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방미 중 박근혜 대통령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정상회담이 끝난 후 회담 결과에 관해 양국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자리가 이어졌습니다.

 

한미정상회담 직후 CNN 기자는 미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폭력 사태에 관해 물었습니다. 반면 한국 관련 질문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 측 기자석과 수행원 석에선 웅성거리는 동요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다른 질문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란 미사일 실험과 시리아 문제, 힐러리 클린턴이 TPP에 반대한 것 등에 관해서만 질문할 뿐 한미 정상회담 직후임에도 한국에 대한 질문은 없었습니다.

 

겨우 하나 질문이 나오긴 했습니다. 중국 전승절 행사에 가서 러시아, 중국 지도자와 함께한 것으로 미국에 무슨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던 것이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답변은 '하도 길게 말씀하셔서 질문을 잊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미 정상이 만나는 자리에서 저렇게 답변할 수밖에 없었는지 의아합니다.


출처 - 노컷뉴스


상황이 이런데도 국내 언론은 여느 때와 같이 호들갑을 떨었죠. 펜타곤 의장대 행사를 16분이나 한 건 파격적인 최고의 예우였다느니, 숙소인 블레어 하우스에 처음으로 한국 대통령 사진 액자가 3개 배치됐다느니, 부통령 관저로 아시아 정상을 오찬 초청한 건 처음이라느니,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를 찬양하는 기사가 줄을 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외교는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속셈으로 보였습니다.


뭐, 패션 외교든 한복 외교든 외교적 성과가 있다면 국민은 그나마 납득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난번 방미로 거둔 성과는 전무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도입할 차세대 전투기 KF-X 핵심기술 이전 건을 해결하려다가 망신만 당하고 돌아왔죠. 여기에 들어갈 세금만 18조 원이었습니다. 방미 후 여론이 불리해지자 국방부는 차세대 전투기 핵심 기술을 국산화하겠다고 호언장담했죠.

 


MOU는 구속력 약해, 경제 효과도 거의 없어


박근혜 정권에 빌붙어 있는 언론들은 도박 용어인 ‘잭팟’에 ‘대박’까지 써가며 이란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외교 성과를 역대 최고라고 기사를 쏟아내기 바빴습니다. 이란 최고 지도자인 하메네이와 단독 면담하는 것처럼 사진도 정성스레 잘라서 내보냈지만, 이란 신문을 보니 그 자리에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국내 경기가 위축되고 점점 위기가 가시화화하는 가운데 대통령이 그나마 외교로 밥값을 하는가 싶었지만, 실상을 뜯어보니 '혹시나'가 '역시나'였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MOU는 'Memorandum Of Understanding'의 약자로 그 문자적 의미는 ‘서로 이해한 것을 정리해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 간 국제 계약에서 본 계약서 전 단계로 MOU를 체결하고 그다음 수순으로 법적 구속력이 있는 본 계약을 맺습니다.


출처 - JTBC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업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국가 간 외교 문서의 격으로 따지자면 MOU는 가장 낮은 단계, 그러니까 그 문제에 대해 두 국가가 서로 얘기를 나눠봤다 정도를 확인하는 문서에 지나지 않습니다. 법적 구속력이 필요하고 진짜로 일을 진행할 거면 바로 계약을 맺거나 조약을 발표하지 MOU나 맺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출처 - JTBC


박근혜 정부가 이번 세일즈 외교 성과로 발표한 30건의 프로젝트 중 정말로 실행될 수 있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 것은 가계약 2건, 일괄 정부계약 1건, 그리고 업무협력합의각서까지 6건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이란이 손바닥 뒤집듯 말을 뒤집을 수도 있고, 우리나라와 똑같은 얘기를 다른 나라와도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치장만 요란한 경제 외교, 언제까지 국민을 기만할 텐가?


치장만 가득한 허세로 점철된 경제 외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원 외교를 빼놓을 수 없죠. 이명박 정권이 자원 외교로 맺은 것도 MOU였습니다. 총 96건의 MOU로 단군 이래 최대 경제 외교 성과라고 떠들었지만, 지금 와서 보면 본 계약이 된 것은 16퍼센트인 16건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계약된 것도 경제적 성과는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내막을 살펴보니 우리나라가 퍼줘야 하거나 그 과정에 비리가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도 수두룩했죠.
 

출처 - JTBC


이명박 정부의 외교 허세는 박근혜 대통령의 패션 외교에서 그대로 이어집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동안 13차례 33개국 순방을 다녀오며 566억 달러, 우리 돈으로 62조 원가량의 투자를 해외에서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청와대가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집행되거나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난해 방미 성과로 7개 기업에서 약 4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떠들었지만, 실제 계약된 곳은 단 1곳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도 진행 중이라 그 돈이 언제 들어올지는 미지수입니다.

 

출처 - 뉴스타파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이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도 MOU 34건 체결로 사상 최대의 경제효과를 거뒀다며 자화자찬했죠. 하지만 그 MOU 내용은 '멕시코 기업은 좋은 한국 상품을 열심히 발굴하고, 코트라는 한국 수출 중소기업을 소개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라는 의례적인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친구끼리 언제 밥 한번 먹자 하는 약속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박근혜 대통령이 체결한 MOU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명시까지 되어 있었다지요.


출처 - 뉴스타파


이번 이란 MOU 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란 언론들은 한국 기업들이 이란에 투자를 할 것이며 기술 이전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한술 더 떠 한국이 이란에 25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기사까지 떴습니다. 한국은 42조 원을 벌었다고 떠드는 반면 이란은 250억 달러를 벌었다고 떠듭니다. 돈을 낸 사람은 없는데 번 사람만 있으니 아무도 모르게 중간에서 돈을 낸 호구는 누굴까요?

 

출처 - 경향신문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도 들통날 거짓말을 열심히 떠드는 청와대와 정부기관 그리고 주요 언론은 대체 언제까지 박근혜에게 빌붙을 생각일까요? 참으로 한심합니다. 지금껏 드러난 사실만 봐도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동안 세계 33개국을 국민의 혈세로 패션쇼 하러 놀러 다닌 것밖에는 안 됩니다. 국민의 비판을 면하려면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멕시코, 이란 순방길에서 맺은 MOU를 실제 계약으로 성사시켜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살림을 하는 분이라면 지정일에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고 일반 쓰레기는 종량제봉투에 담아 버리고 계실 겁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면 일반 비닐봉투 대신 종량제봉투를 주기도 합니다. 1995년 전국적으로 시행된 쓰레기종량제는 분리수거를 촉진하고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배출하는 쓰레기양에 따라 요금을 부과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쓰레기종량제는 상당히 잘 정착된 편에 속합니다. OECD 국가 통계에서 매번 꼴찌 하기 바쁜 우리나라이지만 폐기물 재활용률에선 북유럽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쓰레기봉투가 SNS와 인터넷에서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은 이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 헤럴드경제



논의 없는 통보식 쓰레기 실명제, 사생활 노출 위험만 커져


논란의 핵심이 된 건 수원시 영통구에서 시행하려던 '쓰레기 실명제'였습니다. 말 그대로 누가 버린 쓰레기인지 알 수 있도록 정보를 기재하라는 겁니다. 내달 2일부터 수원시 영통구청에서 시범 시행할 예정이었죠. 영통구에 있는 가정이나 업소는 배출하는 종량제 봉투에 전용 스티커를 붙여서 배출해야 합니다. 일반 개인은 주소를 적어야 하고, 아파트 거주민은 아파트명과 동, 호수를 적어야 합니다. 사업자인 경우 업소명과 주소를 기재해야 하고요. 

 

쓰레기를 배출하는 데 개인 정보를 기재해야 한다니 황당한 일로 느껴집니다. 이런 정책을 제안한 누군가는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내걸면 음식물 쓰레기를 섞어서 버리는 일도 줄고 쓰레기도 감소할 것으로 기대했겠죠. 

 

사실 지난해에 쓰레기 실명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강원도 평창군의 사례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주민들이 먼저 군청에 건의해 시작된 사업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2013년 광진구 구의2동에서 시범 추진한 쓰레기 실명제는 이번 영통구청 사례처럼 사생활 침해라는 항의가 끊이지 않아 중단한 바 있었습니다. 

출처 - 다음



이번 시범 사업에 대해 해당 주민들과 네티즌을 중심으로 사생활 노출 등에 대해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다음 아고라에 개설된 쓰레기봉투 실명제 반대 서명 운동에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미 서명했습니다.

출처 - SBS


사람들이 우려하는 가장 큰 문제는 개인 정보 유출과 그로 인한 2차 범죄 위험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고전적인 정보 수집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쓰레기통 뒤지기(Dumpster diving)죠. 어떤 사람이 버린 쓰레기를 분석하면 그 사람의 생활양식을 추측할 수 있고, 이를 감시나 범죄에 이용하는 거죠.

 

국정원이 문서쇄절기로 갈아버린 쓰레기를 모아 국정원이 정치공작과 보수단체와 커넥션이 있었다는 증거를 복원해낸 좋은 사례가 있긴 하지만, 사실 쓰레기를 뒤지는 일은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택배 상자에 찍힌 주소를 무심코 떼어서 쓰레기 봉투에 넣을 경우, 이것만으로도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는 물론 경우에 따라 그 사람이 자주 쓰는 ID 같은 인터넷상의 정보도 특정할 수 있게 됩니다. 

 

잘라서 폐기한 신용카드가 쓰레기봉투 안에 들어 있다면, 이런 정보를 조합해 금융범죄나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에 악용하는 일도 가능합니다. 여자 혼자 사는 원룸이나 노인이 홀로 사는 방의 경우 쓰레기에 담긴 정보를 이용해 스토킹하거나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노출될 위험도 뒤따릅니다. 쓰레기 실명제의 문제는 또 있습니다. 일부러 주소를 헷갈리게 적거나 밉상인 이웃을 골탕 먹이려고 이상한 일을 저지를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처벌은 또 어떻게 하고요?



소통 없는 탁상행정이 문제, 주민 의견부터 수렴해야


영혼 없는 외계어를 구사하는 불통의 아이콘, 박근혜 대통령과 박근혜 정권이 공무원 사회에 엄청난 악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무엇 하나 바꾸기가 쉽지 않은데, 박 대통령은 임기 내내 남 탓만 하고 앉아 있으니까요.

출처 - 경향신문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를 개최했죠. 그곳에서 세월호와 관련해 특조위 활동으로 국민 세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을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세월호 유족을 헤아리는 마음을 엿볼 수 없었습니다. 국민 304명이 희생된 대참사 앞에서 제대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지도자 밑에서 공무원들이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뭔가 하려 했다가 윗선에 찍히기 십상이지요. 상명하복, 복지부동으로 대표되는 공무원 사회의 적폐도 문제지만, 이번 쓰레기 실명제 논란의 경우 영통구청이 자초한 바가 큽니다.

 

출처 - 경기일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쓰레기 실명제가 실패한 사례가 종종 있었음에도 영통구가 이를 밀어붙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수원시 4개구 중 쓰레기 감축 실적이 가장 부진했기 때문이죠. 이를 만회하려는 의도는 좋았지만, 구민의 의견을 묻는 과정 없이 탁상행정으로 결정하고 현장에 적용하려 했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진 겁니다. 예전에 버스비 70원 운운했던 정몽준 의원 같은 분한테서 서민을 위한 정책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 쓰레기 실명제 논란도 마찬가지입니다. 행정편의주의에 젖어 인권침해나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를 고려하지 못했으니까요. 주민의 의견을 묻지 않는 불통은 사소한 실수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공무원의 안일한 인식이 자칫 큰 범죄와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일이라도 방법과 과정이 잘못되면 현실화할 수 없는 이유죠. 세월호 2주기를 보내며 국민의 눈높이에서 머리를 맞대고 소통하며 만드는 정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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