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대관이라고 하면 거창한 일로 생각하시는 분이 많으실 텐데요. 의외로 요즘은 연인 간 이벤트나 회사 워크숍 등으로 생각보다 대관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저자와의 만남 같은 출판계 행사가 영화관에서 이뤄지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영화관을 대관하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혹시 학생들과 영화를 단체 관람하려는 건가 싶었지만 아니었습니다.

 

대광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최태성 선생님이 그 주인공인데요, 이분은 사비를 털어 사람이 많이 오가는 강남의 한 멀티플렉스 5개 관 무려 434석을 빌렸습니다. 들어간 돈만 한 달 월급을 훌쩍 넘는다고 합니다. 최태성 선생님이 영화관 대관에 사비를 털어 넣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 귀향을 볼 권리


지난 설날 <검사외전>이 폭발적인 흥행세를 보인 것은 영화의 만듦새보다 스크린 독과점을 이용한 거대 자본의 힘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영화 한 편이 과반이 넘는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어 스타도 자본도 없는 작은 영화는 사람들이 잘 보기 어려운 시간대에 상영되거나 아예 스크린을 잡지 못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작은 영화 중 하나인 <귀향>이 지난 24일 개봉했습니다. 무려 14년의 준비 기간과 시민 7만 5270명의 십시일반 후원으로 제작된 영화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봉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지난주까지 전국 상영관은 30여 곳밖에 안 됐습니다. 보고 싶어도 영화를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출처 – 유튜브


이런 문제점 때문에 최태성 선생님은 사비를 털어 사람이 많이 몰리는 강남 한복판의 영화관을 빌린 겁니다. 오로지 <귀향>을 상영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귀향>을 더 많은 사람이 보고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최태성 선생님은 SNS를 통해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았는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젊은이의 뜨거운 열기로 매진되었다고 합니다.


최 선생님 같은 분의 노력이 빛을 본 걸까요? SNS를 중심으로 화제가 되기 시작하던 <귀향>은 적은 상영관 문제에도 불구하고 예매율 25.6퍼센트로 1위를 차지하자 개봉 전날부터 극장들도 호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가 합류해 전국 300여 극장에서 상영할 길이 열렸습니다. 일주일 사이에 스크린이 10배 넘게 늘어났습니다.

 

<검사외전>의 스크린 독점 논란을 일으킨,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스크린을 가진 CGV는 마지막까지 <귀향>을 배제하다가 개봉 직전 수많은 관객의 항의에 무릎을 꿇고 스크린을 배정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한일 위안부 문제에 합의를 해주었으니 <귀향> 같은 영화를 걸었다가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눈치만 보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나라 3대 체인의 상영관을 잡을 수 있게 된 <귀향>은 500여 개 스크린에서 상영되어 개봉 첫날 예매율 1위, 관객 16만 명이라는 기록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합니다. 영화와 관객이 만들어낸 놀라운 결과입니다.



박근혜 정부, 교과서에서도 위안부 삭제


반면 국민의 분노와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박근혜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 지키기는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외교적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뒤통수를 심하게 맞으면서도 굴욕적인 합의를 지켜나가다니, 과연 친일파 자손들로 이루어진 정부답습니다. 친일파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 죽이기, 역사 왜곡하기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우선 올해부터 초등학교에 보급되는 사회과 교과서에서 '위안부'라는 용어와 사진이 사라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위안부라는 용어와 사진은 2014년에 발행된 실험본 교과서엔 실려 있었는데 최종본에선 삭제된 것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후 박근혜 정부가 일제 치하의 시대상에 대한 교육 내용조차 바꾸기 시작한 셈입니다. 실험본에서는 "전쟁터에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 노예가 되었다"라는 설명과 사진이 있었는데 최종본 교과서에는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 여성들은 일본군에게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는 식으로 완곡한 표현으로 뒤바뀌었습니다. UN에서 공식 용어로 쓰는 '성 노예'와 '위안부'라는 표현이 모조리 삭제된 겁니다. 이쯤 되면 대체 어느 나라 정부가 어느 나라 교과서를 만들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경입니다.


한편 외교적 공조를 통해 일본군의 패악을 국제사회에 고발해도 모자랄 판국에 박근혜 정부는 미국 의원에게도 위안부 관련 활동을 중지하라는 요청을 보내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미국 공화당의 일리애나 로스-레티넌 의원실에서 올해 초 일본군 위안부 관련 조치를 준비하려고 했지만, 한국 주미대사관의 요청으로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로스-레티넨 의원은 미국의 한국 교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소식을 알렸는데요, 갑자기 한국 주미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며 앞으로는 위안부 관련 인권 활동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당황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위안부 합의 이전까지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에 접근해서 미 의회 내에서도 지지를 끌어내기 시작한 문제를 왜 인제 와서 하지 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굴욕적인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이미 국제 사회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출처 - 서울신문


국제적인 비웃음의 대상이 된 박근혜 정부의 각 부처는 국내에선 공포 정치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지병으로 별세한 위안부 피해자 최 할머니에 대한 분향 시설을 수요집회가 열리는 일본대사관 앞 공간에 마련하려 하자 경찰이 혐오감을 줄 수 있다며 철거를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일본 정부의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서 굴욕적인 합의를 해놓고 이해해달라는 식으로 강요한 것도 모자라, 돌아가신 분 영전에서 혐오감을 줄 수 있다며 철거를 요구하다니, 인간의 형상을 하고서 감히 그런 말을 꺼낼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한편 경찰은 오해라며 오히려 추모시설이 엄연한 불법인데 봐줘서 운영할 수 있는 거라는 식으로 마치 대단한 시혜라도 베푼 것처럼 변명했습니다. 박근혜의 충견다운 대응입니다.

 


영화 <귀향>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여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입장에 서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지점입니다.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로 피해자 할머니들을 분노하게 한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 영화관 나들이를 하시고 <귀향>을 보신 후에 이 문제에 관해 얘기를 나눠보시는 건 어떨까요? 교육의 기본은 진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요? 잊어서는 안 될 일을 기억하고 후대에 물려주는 일, 변화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생각비행의 관련 기사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10시간 18분과 5시간 32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에 의해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해 야당 의원들이 시작한 필리버스터의 기록입니다. 1973년 폐지되었던 필리버스터는 2012년 국회선진화법으로 다시 도입된 것으로 국회법에 의거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방법입니다. 국회의원 3분의 1의 동의를 받으면 해당 법안에 관해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무제한 토론으로 시간을 끌어 국회 회기를 넘기면 법안이 자동 폐기되는 점을 노린 방법입니다. 미 대선에서 태풍의 눈으로 급부상한 버니 샌더스도 8시간 넘게 부자 감세에 관한 필리버스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필리버스터는 세력이 작은 야당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 같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는 새누리당 의원들은 야당 의원의 발언 도중에 삿대질을 하며 공천 타령을 하거나 네이버에 '필리버스터 저지하는 방법'을 검색하는 모습이 포착되는 한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새누리당이 자신들의 무능과 무식을 증명하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입니다.

출처 - 한국인터넷언론협동조합


국민을 억압하는 테러방지법을 책상을 두드려 가며 추진하는 박근혜 대통령. 사실 그가 의원 시절에 발의한 국회선진화법 덕택에 대한민국 정치사에 새로운 장이 쓰이게 된 셈인데요, 정작 본인은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한편 필리버스터가 올림픽 종목도 아닌데 '기록 경신'에 주목해서 트래픽 끌기에 바쁜 언론도 한심한 수준입니다. 그보다는 이런 일이 왜 발생했는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등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주는 것이 언론과 방송의 역할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생각비행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테러방지법? 국민 때려잡는 중정부활법이 그 정체!


박근혜 정부 3년,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대한민국을 휩쓸 정도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하였으나 박근혜 정부는 특정 기업과 특정 계층을 위한 '성장 제일주의'에 몰두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어제 《한겨레》가 박근혜 정부 3년을 빅데이터로 분석한 기사를 보니, 박 대통령의 신년사에 경제성장과 관련된 핵심 키워드가 20개로 가장 많았습니다. 박 대통령이 지난 3년간 한 공개발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국민' '대한민국' '경제'였습니다. 단어가 합쳐진 결합 키워드로는 '창조경제' '경제활성화' '경제혁신' 등을 가장 많이 언급했습니다. 평화통일의 연관어는 2013년 '한반도' '신뢰'에서 2014년 '통일준비위원회' '대박'으로 변하다가 2015년 들어서 '이산가족'으로, 2016년에는 '도발' '제재' 등으로 변화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최근 언론과 방송 기사는 북한 관련 소식이 주를 이룹니다. 2016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남북 긴장 관계를 극단적으로 조장하는 한편 '안보 위기 프레임'으로 자신의 국정 운영의 미숙함을 타개하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읽을 수 있는 지점입니다. 지난해 목함 지뢰 사건 당시 남북 간 전쟁 위기 상황을 타개하여 단기간에 국민의 지지율을 끌어올렸던 행보와는 너무나 상반된 것이어서 과거의 행보가 과장된 연출이었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세계적인 테러와 북한의 핵 도발 등 '안보 이슈'와 관련된 기사가 판을 치니 당연히 테러방지법을 도입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쉽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런데 알고 계십니까? IS가 생기기 전부터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의 숙원사업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은 지난 15년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되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국정원의 과도한 권한에 의한 인권 침해 등의 우려가 너무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 중인 테러방지법은 대테러 활동에서 국정원 정보수집 권한을 대폭 확대하고 범정부 차원의 테러 대응기구를 설치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핵심은 이 정보수집권을 어느 기관에 부여하느냐겠죠. 야당은 국민안전처를 주장했지만 새누리당은 국정원을 고수했습니다. 당연합니다. 국정원의 댓글 공작과 대선 개입 같은 파렴치한 행위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국정원이 권력을 더 많이 얻을수록 자신에게 유리한 지점이 한둘이 아닐 테니까요.


테러방지법에 독소 조항이 너무 많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선 이번 테러방지법은 테러범으로 의심되는 외국인에 한정되어 있던 활동을 국민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은 원칙적으로 국내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국외의 정보활동을 통해 안보를 지키는 것이 정보기관인데, 테러를 내국인도 저지를 수 있는 행위로 규정한다면 테러방지법의 칼끝이 대한민국 국민을 향하리라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지요.

 

현재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 17조를 보면 테러단체의 수괴에게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테러방지법이 규정하는 테러의 정의조차 모호한 상황입니다. 세월호, 메르스 사태 당시 국민이 적법하고 상식적으로 진행한 시위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박근혜 정부라면 테러방지법이 통과될 경우 시위단체와 시위주동자를 테러단체와 테러범으로 몰아 극형에 처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유신시대처럼 국민을 공포로 통치할 수 있게 되는 길이 열리는 셈입니다. 이를 볼 때 테러방지법은 유신시대 중앙정보부, 안기부의 부활을 노리는 법과 다름없습니다.

 

애초에 우리나라는 테러방지법을 새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형법이 있음에도 국가보안법으로 이중처벌을 하는 것처럼 테러방지법이 생길 경우 이중, 삼중의 처벌이 줄을 이을 테니까요. 더구나 필리버스터로 기록을 세운 더불어민주당의 김광진 의원의 질문으로 굴욕을 당한 황교안 총리의 사례를 보면 왜 테러방지법이 필요 없는지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82년부터 국가테러대책회의라는 기구가 있었습니다. 국정원과 경찰을 포함한 11개 부처가 반기에 한 번씩 정기회의를 하게 되어 있으며 의장은 다름 아닌 국무총리입니다. 그런데 황교안 총리는 그런 기구가 있는지조차 몰랐으니 자신이 그 기구의 의장인 줄은 꿈에도 몰랐겠죠. 이미 있는 기구를 쓰지도 않으면서, 자기가 그런 조직의 장인지조차 모르는 무능한 사람이 모인 조직이 테러방지법이 생긴다고 갑자기 유능해지고 대테러 활용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테러방지법은 국민감시법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또한 테러방지법에 끼워 통과시키려는 감청설비의무화법은 전 국민의 카카오톡과 문자, 통화를 도청, 감청하겠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런 법을 시도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합니다. 정치 수준이 참으로 저열합니다. 테러방지법과 감청설비의무화법이 통과되면 전 국민은 국가의 감시 속에 사는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누가 엿들을까 봐 조심해야 하는 유신시대로 회귀하는 겁니다. 이는 심각한 헌법 위반이며 인권 침해입니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35년 전부터 국가테러대책회의가 존재해왔는데 왜 테러방지법을 통해 국정원 단독의 테러대책기구를 두어야 하는가?


-합법적인 영장 집행 절차를 통해 정보 수집을 할 수 있는데 왜 테러방지법을 통해 국정원의 독단적인 판단의 정보 수집을 허가해야 하는가?


-정보통신법에 따라 합법적인 게시물 삭제가 가능한데 왜 테러방지법을 통해 국정원 독단적 판단에 의한 긴급삭제권을 주어야 하는가?


-박근혜 정부는 무슨 저의로 이미 있는 법과 기구들까지 무시해가며 국정원에 무제한적인 권력을 주려고 하는가?

 

 

필리버스터에 대한 관심을 테러방지법 무산으로 연결하자


최근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버너디노 테러범의 아이폰을 FBI가 잠금해제 해달라고 애플에 요구한 사건입니다. FBI는 총기 테러를 벌인 뒤 사살된 사예드 파룩이 쓰던 아이폰 5c의 보안 기능을 해제할 수 있는 특별한 백도어를 제공할 것을 요구했으나 애플은 거부했습니다. 사생활 보호가 안보에 우선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때 구글, 페이스북을 비롯한 미국 IT업체들과 인권단체는 일제히 FBI를 비난하며 애플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대상이 테러범일지라도 국가 정보기관을 위해 특별한 백도어를 제공할 경우 선량한 국민의 아이폰도 FBI가 사찰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애플은 누리집에 세계 각국의 언어로 "우리는 국가 안보를 위해 개인의 사생활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라는 장문의 공지를 올렸습니다. 애플 코리아 누리집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애플 코리아 누리집

 


국가기관에 의한 개인의 인권 침해는 어느 시대에나 어느 나라에나 있던 일입니다. 하지만 이를 막아내느냐 막아내지 못하느냐는 국민의 지속적인 노력과 권리 행사의 결과로 귀결됩니다. 국민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권리 행사는 투표입니다. 올해 4월 13일 총선에서 올바른 선택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국민을 사찰하는 당에 표를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당에 표를 주시겠습니까?

 


테러방지법에 반대하지만 필리버스터를 할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한 진보 진영의 당도 있습니다. 시민은 권리와 책임이 있는 주체입니다.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떳떳하게 누리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가꿀 책임 있는 존재들입니다. '할 수 없다' '될 수 없다'는 패배감을 극복해야 합니다. 거대 정당 중심으로 짜인 선거판을 뒤집고 국민의 뜻을 받드는 진보 정당에 힘을 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총선이 그 첫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출처 - 녹색당

 

출처 - 노동당

 

국가 비상사태를 과연 누가 만들고 있는가?

 

북한이 쏜 위성을 계속 미사일로 규정하던 일당이 한반도의 긴장을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부, 새누리당이 바로 그 주체입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 23일 국가 정보원에 테러 용의자 감청, 계좌추적 등을 허용하는 테러방지법안을 직권상정했습니다. 테러방지법 제정 지연을 '국가비상사태'로 판단한 것이죠. 정의화 국회의장이 박근혜의 안보위기 여론몰이에 굴복한 것이라고 봐야 하겠죠.

 

출처 - filibuster.me

 

 

하지만 야당 의원들은 테러방지법 입법 저지를 위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무제한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지난 23일 오후 7시 5분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시작한 필리버스터는 국민의당 문병호 의원, 더민주 은수미 의원을 거쳐 24일 오후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광진 의원은 장장 5시간 33분간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1964년 4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의원 시절 세운 최장시간 발언 기록인 5시간 19분을 경신해 많은 이를 놀라게 했죠. 그런데 그것도 잠시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은 무려 10시간 18분간 토론을 벌였습니다. 이는 1969년 신민당 박한상 의원이 3선 개헌을 막기 위해 법사위에서 진행했던 10시간 15분의 최장연설 기록을 경신한 것이라고 합니다.

 

'통일은 대박'이라던 대통령은 과연 어디로 갔는지 전쟁 위협을 부추기는 언사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보수 언론과 보수 종편 방송은 온종일 북한을 탓하는 얘기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얻으려는 것이 뭘까요? 시쳇말로 "기-승-전-테러방지법"입니다. 

 

출처 - 한겨레

 

어쩌면 이는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국회 연설에서 테러방지법 통과를 강조한 이후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국민을 호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언론과 방송이 이에 결합하면서 위기감을 조성하기 시작했지요. 결국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개성공단 폐쇄로 맞섰습니다. 개성공단에 직간접적으로 목을 매고 있는 국민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안보 위기를 조장함으로써 테러방지법 처리를 강행하려 합니다.

 

 

사드 배치 관련 한미 공동실무단 약정 체결 돌연 연기

 

주한미군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관련 한미 공동실무단 약정 체결이 지난 23일 서명 직전에 돌연 연기되어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미국의 요청에 의해 연기된 것이라고 하는데요, 예정된 약정 체결 연기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물밑 조율의 여지를 남기기 위한 포석이라는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미국은 강도 높은 북핵 제재를 요구하는 반면 중국은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입장이라 미-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양국의 입장을 절충하는 방안이 논의되겠지요.   

 

출처 - 경향신문

 

대테러방지법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기 전만 해도 대한민국은 사드 배치 문제로 점입가경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2월 10일 발표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협의 개시가 대북 억제력 유지를 위한 조치의 일환이라고 밝혔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드 배치 문제조차 대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수순이 아니었나 싶군요. 오늘은 한반도 사드 배치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출처 - 뉴스타파


 


사드 한반도 배치가 현실화함에 따라 일전에 말씀드렸던 문제가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드 배치는 대한민국 경제에 적신호일 뿐


이명박근혜 정권이 좋아하는 경제 문제부터 짚어보겠습니다. 문제는 중국과 러시아입니다. 미국은 바다 건너에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에 인접한 나라들이죠. 냉전 시대에는 공산주의를 막아내는 최전선으로서의 지정학적 가치 때문에 한국은 미국의 보호와 경제적 수혜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냉전이 종식된 후 고도의 경제 발전의 결과로 겪은 IMF 사태로 알 수 있다시피, 무한경쟁 시대의 한국은 과거와 같은 지정학적 가치를 누리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협상에 대한 논평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미국의 선택은 한국에서 물러나 일본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냉전 시대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진 중국, 러시아와의 무역 규모입니다. 1992년 수교 이후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과의 교역은 약 40배나 늘었습니다. 미국, 일본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무역을 하는 상대국이 바로 중국입니다. 러시아 역시 1990년 수교 이후 수출은 90배, 수입은 210배가 증가해 주요 무역상대국이 되었죠.


이런 상황에서 사드 배치가 현실화한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무역은 타격을 입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사드가 일단 배치되고 나면 되돌리기가 어려워지겠지요.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과 척을 질 경우 과연 우리 경제는 이를 견딜 수 있을까요? 연내 사드 배치를 추진하겠다는 박근혜 정권은 과연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외교적 해결책과 경제적 충격을 타개할 대비책이 있기나 한 걸까요? 심히 우려스러운 지점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한국과 북한의 군사적 긴장 관계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중단된 비무장지대 안보관광의 현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평소와 달리 안보관광지가 텅텅 비었으니까요. 남북 관계의 긴장 고조로 중국인 단체 관광이 끊겨 파주 안보관광지 방문객은 평소의 3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뻔한 사드 배치가 진행된다면 중국인 관광객이 과연 한국을 찾을까요? 무엇보다 경제를 생각한다면 사드 배치는 가볍게 언급할 문제가 아닙니다. 

 

출처 - 한겨레


48일 만에 재개된 안보관광을 위해 지난 23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 전망대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망원경으로 개성공단 등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남북 긴장 관계가 나빠지면 국민이 얻을 것은 전무합니다. 평화가 우리를 배부르게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이유입니다.


 

동아시아 외교 관계 급랭, 일본만 어부지리


중국 외교부는 한미가 사드 한반도 배치를 가시화하기 시작할 때부터 결연히 반대한다며 강경한 성명을 내왔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취임 후 한중 관계 개선에 꽤 많은 공을 들여왔기 때문이지요. 작년 9월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한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한동안 미국보다 중국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죠. 그런데 현재는 중국의 반발을 잠재우지도 못하고 있고, 개성공단 폐쇄가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경제 제재가 되지도 않는 상황이어서 아무런 실리도 없이 그저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출처 - 뉴스타파


무엇보다 사드가 배치가 된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우리나라 방위에 실효성이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재 배치 후보지들을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사드의 최대 사거리는 200킬로미터이고, 요격 고도는 40~150킬로미터입니다. 한반도는 그리 큰 땅이 아니어서 북한이 미사일을 쏜다면 3~5분 이내에 우리나라에 도달하게 됩니다. 또한 산악 지형이라 초기 발사 탐지 및 추적에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발사 탐지-추적-표적 확인-요격이라는 사드 작전 시간이 굉장히 촉박하기 때문에 과연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할 만한 시간이 나올지 의문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사드 배치도 문제입니다. 평택에서 70킬로미터 떨어진 수도권을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사드 요격 고도는 최소 40킬로미터인데 북한에서 수도권으로 미사일을 쏜다면 이미 미사일은 하강 단계일 테니까요. 과연 평택에서 쏜 사드 미사일이 북한의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을까요? 평택에서는 미군 기지와 오산공군기지 정도를 방어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평택은 국방부에서도 끊임없이 얘기하는 북한 신형 방사포의 사정거리 안에 속합니다. 사드 자체가 표적이 되므로 미사일이 아닌 포격에 의해 무력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습니다. 과연 사드 배치는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것인이 의문이 들지 않으시나요?

출처 - 뉴스타파


미국에서 원하는 대구라면 어떨까요? 수도권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 사드를 배치한들 수도권 방위는 어불성설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이 대구를 바라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한국전쟁 당시처럼 한국은 초토화되더라도 유사시 낙동강 이남의 부산과 진해를 통해 미 해군 전력을 전개할 수 있고 신형 방사포 사정거리 밖에 있기 때문이지요. 미국의 병력 전개에 용이하고 일본은 한국을 방패로 바다 건너 자기 나라를 지키기에는 용이하기에 사드 배치에 찬성하고 있을 뿐입니다. 

 

출처 - 비즈니스포스트


이처럼 사드 한반도 배치는 미국의 세계 구상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적어도 우리에게는 실익이 없는 일입니다. 경제, 외교적으로는 파국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고 안보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데 돈만 들어가는 국가 사업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사드 배치를 자신의 치적으로 삼고, 북풍으로 선거에 유리한 국면을 조장해보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는 선거 승리 외에 국민의 안위에는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방증하는 사례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바란다면 사드 한반도 배치는 절대 불가한 일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그가 시대를 따라잡은 게 아니라 시대가 그를 따라잡았다. ― 《워싱턴포스트》


헌사에 가까운 이 기사의 주인공은 바로 미 대선을 앞두고 돌풍의 핵으로 떠오른 버니 샌더스입니다. 1~2년 전까지만 해도 미미한 지지율에 인지도가 거의 없었던 그가 민주당의 강자 힐러리 클린턴과 자웅을 겨루는 대선 주자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현재 박빙의 명승부를 치르는 중입니다. '4전 5기' '대기만성'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정치 인생 역시 파란만장합니다.

 

출처 - TIME



미 의회의 유일한 사회주의자


'매카시 열풍'이라는 말이 생겨난 나라답게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자신을 '사회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로 밝히는 것은 주의 성향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긴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나라에서 버니 샌더스는 자신이 '민주적 사회주의자'임을 공언한 유일한 연방 상원의원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대선은커녕 '빨갱이'로 낙인 찍혀 통합진보당 의원처럼 의원직을 빼앗기고 인생을 망쳤을 법한 인물이 미국 대선에 혜성으로 등장했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오바마케어'에 대해 미국 사회가 보인 히스테리에 가까운 보수성을 생각할 때 어떤 의미에선 우리나라보다도 더 좌파 정치에 민감한 미국에서 말이죠.


또한 버니 샌더스는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거대 정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정치 역사에서 대선에 뛰어들기 직전까지 25년간 줄곧 무소속 외길 인생을 산 사람이기도 합니다. 상원의원 100명 중 무소속 의원은 버니 샌더스를 포함에 단 둘 뿐이었죠.

 

출처 - AP


버니 샌더스는 대학생 시절 마틴 루서 킹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에 참여하고 베트남 반전운동 등 민권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의 정치적 뿌리가 될 버몬트 주로 이주 후에는 작가, 다큐멘터리 감독, 목수 등 여러 직업을 전전 하기도 했죠. 그런 그가 정치에 뜻을 둔 이유는 홀로코스트로 학살된 자신의 친척들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선거로 뽑힌 히틀러와 나치가 세상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 가족의 비극을 통해 체험한 그는 정치로 세상을 바로잡는 일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방 2칸짜리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하던 그의 경제 상황은 그가 경제적 불평등과 계급 의식에 천착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보수가 지지하는 좌파 시장


1970년대 초 처음으로 뛰어든 지방선거에서 샌더스는 고작 2퍼센트 득표 후 낙선했으나 4전 5기로 도전하여 1981년 불과 10표 차이로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에 당선되어 본격적 정치 인생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1981년 당시 버몬트 주는 보수적인 지역 중 하나였고, 미국 전체적으론 신자유주의를 세계 만방에 뿌린 레이건이 대통령이 된 해이기도 합니다. 세계적으론 냉전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이기도 했죠. 그런 상황에서 평생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버니 샌더스가 시장으로 선출되었으니 보수층이 걱정할 법도 합니다. 당시 UPI통신이 버니 샌더스 시장 당선 기사 제목을 <모든 사람이 겁을 먹었다>로 뽑을 정도였으니까요. 처음엔 그를 시장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시의회는 샌더스가 참모 몇 명을 시청 직원으로 채용하려는 것조차 불허했고, 관료사회는 그의 구상을 좌절시키려고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기업인들의 적대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출처 - CNN


그런데 샌더스는 이후 4번이나 연속으로 시장에 당선되다가 마지막에는 72퍼센트라는 주민들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서 연방 상원의원 재선에 성공합니다. 그후 샌더스는 하원의원을 8번이나 하고 상원의원까지 연임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의 정치 인생을 좌우한 뿌리는 벌링턴 시장 시절 쌓은 업적이었습니다. 무소속이던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어 미국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하고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뛰어들겠다는 포부를 발표한 곳 또한 벌링턴이었죠. 버니 샌더스가 확고한 지지를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답은 시민을 위한 정치였습니다. 샌더스는 벌링턴의 갑부였던 토니 포멀로가 호숫가에 호화 호텔을 지으려던 계획을 불허했습니다. 그러고는 그곳을 시민을 위한 호수로 바꾸어버렸죠. 또한 시장 직속 예술위원회를 만들어 시민으로 하여금 무료로 예술과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한편 서민을 위한 영구임대주택 사업도 벌였습니다. 시예산으로 공공기금을 조성해 토지를 매입하고 서민들이 이곳에 집을 지어 소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드러났듯 서민의 사정은 아랑곳없이 주택 매매가 정글 자본주의에 충실했던 미국 사회에서 샌더스의 각종 조처는 혁명적 정책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대형 식료품 체인점이 대형 마트를 만들겠다고 제안하자 이를 거부하고 시민이 주인이 되는 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시장의 추진력과 정책이 뒷받침되자 지역 안에서 경제의 선순환이 일어나 서민의 삶이 점차 나아졌습니다. 현재 버몬트 주는 실업률이 가장 낮고 경제가 안정되어 있는 주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이런 결과를 놓고 볼 때 단순히 샌더스의 정치적 지향성 때문에 그를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호숫가 호텔을 짓지 못하게 된 갑부 토니 포멀로조차 샌더스의 우군이 됩니다.


샌더스는 "정부가 주민을 위해 '일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민주적 사회주의의 기본"이라고 말합니다. 행동하는 사회주의자라는 그의 면모는 현실에서 지지층을 다지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또한 일생을 지켜온 신념을 현실적 결과물로 만들 줄 아는 그의 능력은 정치적 지향과 상관없이 폭넓은 지지를 끌어내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부자의,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미국을 바꾸자


정치에 투신한 후 40년 동안 샌더스의 주장은 한결같습니다. 부자의,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과두제 국가인 미국을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 샌더스는 기괴한 수준의 불평등을 낳고 있는 조작된 경제를 끊임없이 고발해왔습니다. 그리고 대형 금융기관 해체와 조세제도 개혁 등을 통해 1퍼센트 극소수에 편중된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뛰어든 샌더스는 심화된 경제적 불평등을 이 한마디로 압축합니다.



 

"주 40시간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를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도 바로 이 문제였습니다. 2010년 미국 상원 의사당 연단에 오른 샌더스는 먹지도 앉지도 화장실에 가지도 않은 채 8시간 30분 동안 마라톤 연설을 합니다. 이른바 필리버스터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 사이에 이뤄진 감세 연장 타협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야합이며 그 야합으로 망가진 부자 감세안 법안을 이대로 통과시킬 수 없다며 샌더스가 택한 방법이었습니다. 이 일로 샌더스는 전국적인 유명인으로 떠올랐으며 이 필리버스터 영상을 보기 위해 접속자가 몰려 상원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죠.


여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새누리당이 기를 쓰고 없애려고 하는 국회선진화법에 필리버스터가 들어 있죠. 한국 기네스 기록은 김대중 대통령의 필리버스터였습니다. 민주당 국회의원으로서 1964년 임시국회에서 자유민주당의 김준연 의원 체포동의안 통과를 막기 위해 무려 5시간 19분 동안 쉬지 않고 발언한 덕분에 임시국회 회기가 마감되면서 체포동의안을 무산시켰습니다. 동료 의원이 박정희 정권하에서 체포되면 왜 안 되는지에 관해 허튼 소리 하나 없이 논리적, 감성적으로 조목조목 짚어내어 그의 연설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당시 박정희 정권이 김준연 의원을 체포하려고 날뛴 이유는 한일협상 관련 비자금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랄까요, 굴욕적 위안부 합의로 시끄러운 박근혜 정권에 대해 무력한 야당 정치인에 실망한 분이 많으실 줄 압니다. 더 엄혹했던 시절 박정희 정권을 향해 사자후를 토하던 김대중처럼 소신 있는 정치인이 많아져야 합니다.



샌더스가 내세운 공약은 부자 증세, 월스트리트 규제와 초대형 금융기관 해체, 전 국민 의료보험 도입, 최저임금 인상과 사회보장 확대, 공공기금에 의한 선거 등 양극화에 신음하는 미국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큰 이슈들입니다. 특히 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초래하고 세계 금융 위기를 야기한 월스트리트를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나는 월스트리트의 은행들을 무너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파산하기에 너무 크다면 그들은 존재하기에도 너무 큰 것이다."


이는 대기업 해체에도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삼성이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지고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식의 말을 너무 쉽게 하니까요. 하지만 대기업이 무너져 나라가 무너진다면 그 전에 안전하게 그 기업을 분할해야 합니다.


샌더스는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을 금융권에 쏟아부어 세계 금융 위기를 극복해냈으니 이번에는 월스트리트가 세금을 돌려줄 차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세금으로 대학 교육의 무상화를 이루어낼 것을 약속했습니다. 교육은 부의 재분배를 위한 계층 이동의 가장 중요한 고리이기 때문이지요.



이 때문에 70대 할아버지인 샌더스를 지지하는 지식인과 젊은이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굉장한 세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후원금 규모도 월스트리트 금융권의 슈퍼팩 후원을 받는 힐러리 못지 않게 커졌습니다. 샌더스의 후원금은 전체 후원금의 87퍼센트가 250달러 이하의 소액 후원일 정도로 풀뿌리 기부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 개혁을 천명한 그이기에 슈퍼팩을 거부한 그의 행보는 주목할 만합니다.


힐러리 클린턴과 맞붙은 아이오와 경선에선 패배하긴 했으나 거의 동률을 이뤘고, 뉴햄프셔에선 샌더스가 압도적인 우위로 승리했습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시민의 저항과 힘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버니 샌더스에 대한 비판 지점도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은 예산 확보에 관한 부분입니다. 현실적으로 그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될 확률은 그리 높아보이지 않습니다. 간접 선거인 미국 선거 시스템상 이미 수많은 연방 의원이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버니 샌더스의 대선 행보가 무의미한 건 아닙니다. 버니 샌더스에 대한 공개 지지를 표명한 노엄 촘스키 교수는 그 가치를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금권선거하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겠지만, 샌더스가 이긴다고 해보자. 그는 혼자일 것이다. 그는 의회 대표자들도, 주지사도, 관료체계 내 지지자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가 많은 일을 할 수는 없다. 진정한 정치적 대안은 백악관의 한 인물이 아니라, 전면적인 폭넓은 정치적 운동이어야 한다. 사실 샌더스 캠페인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캠페인은 이슈를 제기하고, 주류나 민주당이 진보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압력을 가하고, 대중의 힘을 동원한다. 만일 대선 후에도 그들이 남아 있다면 가장 긍정적 결과가 될 것이다. 4년씩 선거 때마다 나오는 헛소리라 치고 집으로 돌아간다면 심각한 실수가 될 것이다. 변화는 그런 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동원력은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대중적 조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대중적 조직, 결국 대중의 힘이 향방을 좌우할 것이라는 얘깁니다. 미국 대중은 현재 샌더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4.13 총선을 앞두고 이를 지켜보고 있는 우리나라 진보 정치가 꿈꾸고 실현할 수 있는 지점은 과연 어디까지 일까요? 버니 샌더스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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