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잘 보내셨나요? 가족, 연인, 친구, 지인들과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휴일의 의미도 있겠으나 낮은 데로 임하는 삶의 표본인 예수가 탄생한 날이라는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도 뜻깊을 겁니다. 세상에는 크리스마스가 행복하지만은 않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겠지요.


크리스마스였던 지난 25일 파인텍 노동자들이 단체협약 이행 등을 요구하며 75m 높이의 굴뚝에 오른 지 409일째를 맞이했습니다. 408일이던 기존 고공농성 세계 최장기록을 깼습니다. 기존의 408일 고공농성 기록 역시 이 회사의 노동자들이 수립한 것이었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처 - 창업일보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 등은 파인텍 모기업인 스타플렉스가 약속한 공장 정상화와 단체협약 이행을 촉구하며 지난해 11월 12일 굴뚝에 올랐습니다. 앞서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차광호 지회장은 모기업인 스타플렉스의 공장 중단과 정리해고에 반발해 2014년 5월 27일부터 408일 동안 굴뚝에서 농성을 벌인 바 있습니다. 이 기록이 이번 크리스마스에 깨진 것이었죠.


출처 - 뉴스1


409일이면 단순 계산으로도 1년이 넘는 기간입니다. 봄철의 심각했던 미세먼지부터 올여름 유난히 극심했던 폭염을 고스란히 견디고 이젠 겨울의 혹한을 하루하루 체감하고 있는 노동자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그 때문일까요? 고공 농성자들의 건강이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공농성 시작 이래 6번째 건강검진을 마치고 내려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어떻게 409일을 버티셨는지 의학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라며 농성자들의 건강 상태가 심각함을 알렸습니다. 청진기를 가슴에 대보니 두 분 모두 뼈밖에 남아 있지 않고 활력징후가 상당히 좋지 않으며 혈압, 혈당도 매우 낮다고 한숨을 쉬었다고 합니다. 굴뚝 위이다보니 잠잘 때 다리를 제대로 펼 수 없고 돌아누울 수도 없어 허리와 다리 통증이 심하고 스트레스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죠.


출처 - 뉴스1


이들이 목숨을 걸고 굴뚝 위에 오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이 일을 하면서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파인텍의 모회사인 스타플렉스의 공장 중단과 정리해고에 반발해 사측이 파인텍조합 5명의 고용과 노조를 승계하며 선 단체협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사항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앞선 굴뚝 농성이 408일에서 끝난 이유는 회사 측이 공장 정상화와 단체협약 체결을 약속했기 때문이었는데요, 농성자가 내려오자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다시 굴뚝에 올랐습니다.


출처 - KBS


굴뚝에 오른 사람들과 뜻을 함께하기 위해 차 지회장은 무기한 단식투쟁에 돌입했고, 이후 나승구 신부와 박승렬 목사 등 진보 원로들도 연대 단식투쟁에 돌입했습니다. 그들은 수구세력에 대한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지만, 촛불시민의 염원을 바탕으로 탄생한 현 정부의 노동 정책과 그 진행 속도에 실망감이 늘어가고 있다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보통 사람이 자신의 뜻을 내보이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이 자신의 목숨을 내거는 일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파인텍 노동자들은 몸도 마음도 이미 지친 상태이지만 여전히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데요, 작년 겨울에 이어 두 번째 겨울을 맞이했지만 지난 겨울만큼 춥지는 않아 버틸 만하다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하루 빨리 그들이 굴뚝에서 내려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노동자가 살기 좋아지는 2019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최근 국회 다수당의 대표를 청와대 참모가 정면 공격하는 정치판의 모양새를 보노라면 정당 민주화의 역풍이 참으로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을 필두로 한 청와대의 정치 개입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내쫓을 때 침묵했던 김무성 대표는 결국 화를 자초한 꼴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둘러싼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충돌 양상이 정치판의 핫이슈가 되고 있어 진보정치의 움직임은 언론과 방송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형국입니다.

 

이는 2015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을 때부터 사실상 예견된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당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이었건만, 보수진영은 헌재가 정의를 구현했다며 일제히 쾌재를 불렀고, 진보진영은 몸을 사리며 자구책 마련에 안간힘을 쏟았습니다. 심지어 진보진영의 한편에서는 차라리 이참에 도려내는 편이 더 낫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진보정치의 실패에 대한 지지자들의 원망이 적지 않은 이때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 몸담았던 네 명의 실무자가 반성과 성찰의 기록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는 진보정치 실패의 원인을 수구세력의 전례 없는 공안탄압 탓으로 돌리기보다 내부의 문제에서 찾기 위한 통렬한 자기반성에서 출발합니다. 현실정치에서 적지 않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신을 긍정적이고 진취적 사고의 담지자로 진보적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지 못한 뼈저린 후회를 바탕으로 삼아 진보정치의 한 시대가 지나가는 흐름을 담아낸 것이죠.

 

오래전부터 한국 정치의 세대교체와 세력교체를 주장하던 진보정치의 한 축이 정당해산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사라지면서 진보정치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운 때입니다. 많은 것이 모호하지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부터 정리해봐야 합니다. 진보정치의 전진과 좌절을 경험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로 달리 무엇을 더 찾을 수 있을까요?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

반성과 성찰의 기록

 

▸분야: 정치·사회  ▸지은이: 신석진, 김정엽, 이상민, 안창민  ▸판형: 신국판(152*225)

▸쪽수: 312  ▸가격: 16,000원  ▸ISBN 978-89-94502-46-5 (03320)

 

 

통합진보당에 대한 사법적 살인, 무엇을 남겼나?

 

이 책은 통합진보당의 ‘실패’를 자인한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면서 민주주의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도륙되고 있는 지금, 이들의 실패를 특정 정당이 아닌 민주주의의 실패라고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충분히 많다. 대한민국의 폐색 상황을 ‘헬조선’과 ‘죽창’이라는 유행어가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지금,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는 진보가 정작 무엇인지, 또 진보정치가 어떻게 새로 시작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이고 진솔하게 얘기해준다. 참혹하고 아름다운,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는 멋들어진 좌우명을 누군가가 독차지해야 한다면, 그것은 진정 이들의 것이다.
―장정일(작가)

 

 

진보정치, 반성과 성찰의 기록

 

한때 200만 명이 넘는 유권자가 보내준 표를 받은 정당이 공중분해 됐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사법적 살인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파문을 남겨야 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엔 진보정치 실패에 대한 지지자들의 원망이 적지 않다. 아니, 오히려 진보정치가 그 전에 이미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인지, 통합진보당의 해산이 야기한 정치적․사회적 여파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최근 몇 년에 걸친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극적인 ‘흥망성쇠’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경험한 저자들은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인 2015년 봄에 작은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6개월간 이어진 토론의 결과를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반성과 성찰의 기록》이란 책으로 엮어냈다.


많은 사람이 통합진보당의 해산에는 수구세력의 전례 없는 공안탄압이라는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진보정치의 실패를 인정하면서 우호적 여론이나 민주주의라는 대의에 입각해 통합진보당을 지원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실패한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고로 이 책은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치가 실패한 책임이 당사자들에게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해 그것이 무엇인지 밝혀보려는 치열한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저자들은 현실정치에서 적지 않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왜 스스로를 긍정적이고 진취적 사고의 담지자로 진보적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지 못했는가 하는 뼈저린 후회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이 책에 담아냈다.

 


진보정치의 한 시대가 갔다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밀어낸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누가 새로운 것이고 누가 낡은 것이냐의 문제만이 남는다. 이 책의 저자들을 비롯해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일한 사람들은, 새로운 존재가 자신들이라고 믿었다.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며 희생을 결단한 것도, 진보정치에 대한 헌신을 결심한 것도 그런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곤혹스러움은 믿음의 바탕이 흔들리는 데서 왔다. 수많은 이의 눈물과 땀이 어린 진보정치 15년 역사의 좌절은 단지 헌법재판소의 판결 때문만은 아니었다. 통합진보당은 박근혜 정부와의 대결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진정한 패배는, 그들에게 믿음의 원천이 되어주었던 ‘국민’의 냉담함에서 기인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억압을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통합진보당을 옹호해주지 않았다. 진보진영의 한편에서는 차라리 이참에 도려내는 편이 더 낫다는 말까지 나왔다.


진보는 오래전부터 한국 정치의 세대교체와 세력교체를 주장했다. 저자들은 교체의 ‘주체’가 자신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교체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도전은 때로 실패할 수 있고, 그때에도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낙관을 만들어가는 근거인 ‘새로움’에서, 자신들이 제외됐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진보정치를 위한 치열한 노력이 좌절되면서, 한 시대가 같이 마감됐다. 저자들이 떠나보낸 시대는 단지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역사만은 아니다. 혁명을 꿈꾸던 독재시대에 해오던 생각과 이론, 습성, 관성도 함께 떠밀려 가고 있다. ‘운동의 힘’으로 고난을 견뎌왔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과거의 준거가 낡은 것의 표상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완전히 밀려간 존재로 끝날지, 새로운 시대의 한자리를 다시 맡을 수 있을지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많은 것이 모호하지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부터 정리해야 한다.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는 ‘운동의 관성’과 제도 정치에 진입한 ‘대중 정당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과 모순을 일으켰던 통합진보당의 속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쓴 저자들은 진보정당 15년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의 시기를 남들과는 다소 다른 위치에서 지켜봤다. 합당과 분당, 그리고 정당 해산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에 필요한 실무를 처리한 당사자로서 치열한 현장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경험과 반성과 성찰은 진보정치의 향방을 가늠하는 지남차가 되어준다. 진보정치에 진지한 각성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면, 이들이 기록한 반성과 성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신석진
지난 7년간 이정희 대표를 가까이에서 보좌해왔다. 국회의원 보좌관, 대표 비서실장,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다. 직함은 달랐지만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학생운동과 통일운동을 했고, 이정희 대표를 만나기 전엔 인천 남동공단에서 공장 노동자로,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부위원장으로, 당 기관지 《진보정치》 편집장으로 일했다. 
 
김정엽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을 하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이정희 의원 보좌관을 했다. 금융정책과 경제정책, 재정정책 등을 다루는 국회 정무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 보좌 업무를 했다. 19대 국회에서는 이석기 의원 보좌관이었다. 덕분에 통합진보당의 문제적 인물 두 사람을 연속해서 보좌한 특이한 경력을 갖게 됐다. 이 책의 기획과 목차 구성을 맡았다. 
 
이상민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에서 일하다 18대 국회에서 이정희 의원의 정책비서관으로 일하면서 민주노동당과 인연을 맺었다. 그전까지 진보신당 당원이었다. 19대 국회에서는 김재연 의원 보좌관과 통합진보당 정책전문위원을 지냈다. 우리나라 조세제도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진보적 조세정책 개발, 재벌지배구조 문제점과 개선방안 모색이 그의 전문 분야다. 
 
안창민
유일하게 아무런 직책을 맡지 않은 평당원 출신이다. 학생 시절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에서 활동했고 이후 오래도록 직장생활과 개인사업을 했다. 그는 한 포털사이트에 1000권이 넘는 책의 서평을 올린 독서광이기도 하다. 지금도 직장생활을 하는 안창민은 부득이 가명을 썼다. 해산된 진보당 출신이 느끼는 사회적 낙인의 여파가 여전한 탓이다.

 

 

차례

 

추천사 |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
서문 | 진보정치의 한 시대가 갔다

 


1장 다수파의 원죄, 패권주의
당권파는 억울하다? | 민주주의, 진보진영도 내면화해야 한다 | 당내 이견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 참여당은 ‘개조’ 대상이었나? | 진성당원제의 딜레마 | 패권주의, 제도적 해법으로 가능한가? | 솔직해야 해법이 나온다

 

2장 진보의 멍에, 종북주의
종북공세는 ‘현재진행형’ | 북에 대한 입장 표명, 거부할 수 있나? | ‘종북’의 이념으로 정치하는 것이 가능한가? | ‘반북 진보’ vs. ‘종북 진보’ | 북한 ‘3대 쟁점’, 해명 불가능한가?

 

3장 운동의 가치, 운동의 관성
‘이념 논쟁’, 관행을 극복하자 | ‘정통’과 ‘이단’의 이분법 | 일사불란함의 전제, 자유롭고 개방적인 토론의 힘 | 전민항쟁의 향수 | 의회주의, 합법주의 비판의 두 측면 | 진보는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

 

4장 진보 혁신의 고정관념
운동과 정치의 이분법이 불편한 이유 | 성숙한 진보, 온건한 진보 | 진보의 급진성을 이제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 이제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만 남았나? | 자주는 시대착오적 담론인가? | 정말로 ‘노동중심성’이 문제일까? | 노동운동 위기 진단 10년, 뭘 했는가? | 진보정치 원조 논쟁 | 보편적 복지는 절대선인가 | 반복되는 평가, 빈약한 실행

 

5장 경제정책, 이념에서 현실로
보수와 진보의 뒤바뀐 경제철학 | 재벌 문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 | 진보도 성장을 말해야 한다 | 부유세 논쟁-성찰하면서 정책 만들기 | 증세 논쟁-디테일이 중요하다 | 기회비용 없는 정책은 없다

 

6장 2016년 총선 대응, 어떻게 할 것인가?
2016년 총선의 의미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새누리당은 지난달 30일 19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총선공약 이행의 일환으로 비정규직 법안 등이 포함된 '희망사다리 12개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새누리당 진영 정책위의장은 이를 "비정규직, 중소기업, 장애인, 학생 등에게 희망을 주는 법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법안이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법안이라면 좋겠지만 그중에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은 생각할 여지가 많습니다. 

이 법안의 취지는 노동법의 사각지대인 사내하청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지만 실상 속셈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내하청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면 지금 불법인 사내하청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으로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법을 만들어야지, 사내하청을 합법화는 법안을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사내하도급은 명백한 불법파견을 합법화하여 이를 양성화하겠다는 의도가 있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법치질서에 어긋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번 새누리당의 법안은 겉으로는 노동자를 위하는 척하면서 기업의 사내하청을 부추기는 법안이요, 사다리를 걷어차서 희망을 절망으로 만드는 법안일 뿐입니다. 
 
생각비행은 6월 출간을 목표로 《입사부터 퇴사까지 직장인이 알아야 할 노동법》이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노동자의 권익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이번 새누리당의 '희망사다리법'(통합민주당의 표현에 따르면 '절망미끄럼법') 발의를 목도하면서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이란 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20년 전에 읽었던 시집 《노동의 새벽》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1984년 출간된 초판본

노동의 새벽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줏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노동의 새벽》 초판 표기를 따름

《노동의 새벽》은  박노해 시인의 첫 시집으로 1984년에 출간되었습니다. '노동해방'이라는 말에서 딴 '박노해'라는 필명을 가진 얼굴 없는 시인은 곧 노동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91년 7월, 7년의 수배생활 끝에 두 손에 수갑을 찬 박노해의 얼굴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그는 노동현장의 체험을 시로 승화시킨 행동하는 시인이었습니다. 

시인 박노해이기 전에 그는 노동자 박기평이었습니다.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그는 독서와 글쓰기를 즐기고 천주교 사제를 꿈꾸던 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난은 16세 소년을 서울 빈민가로 내몰았습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선린상고 야간부에 다니며 체험한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그는 사제의 꿈을 접고 맙니다. 그렇지만 노동 야학에 열심히 참여하며 《사상계》《창작과 비평》 같은 진보적 잡지를 탐독하며 민주회복을 열망하는 집회에 참여하고 노동자 파업에도 적극 가담하면서 현실 참여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철공소, 구로공단, 성수공단 등에서 섬유, 화학, 금속 노동자로 지내면서 잔업, 철야, 특근을 반복하는 저임금, 인권유린의 노동 현실하에서는 미래가 있을 수 없음을 절감하고 성수공단에서 최초의 파업을 이끌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경찰에 납치되어 폭행당한 후 살해 위협을 받은 채 어두운 둑길에 버려졌습니다. 이후로 그는 대학생들과 연대를 모색하며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군대에서 전역한 후에는 안양 시내버스 정비공으로 취직하여 여러 활동을 펼쳤습니다. 영치회라는 친목회를 만들어 '우리만 좋아지지 말고 다른 노동형제들의 삶도 함께 개선하자'며 공부와 실천을 병행하는 조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노동현장과 투쟁현장 속에서 노동자 박기평은 1970년대부터 "저는 노동자이자 시인이며 혁명가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고 합니다. 처절한 고통의 시간과 체험이 빚은 결과물이 곧 시인 박노해와 《노동의 새벽》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전보다 풍요로운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전과 비교하면 노동현실도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얻은 풍요의 열매를 지금 누가 거두고 있습니까? 1970, 1980년대와 비교해서 노동현장이 더 나아졌으니 이제는 만족해야 할까요? 

'한강의 기적'이란 말로 대한민국의 외형적인 발전을 자랑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기적이란 없으며 말없이 이 땅에서 피땀 흘린 노동자가 있을 뿐입니다. 많이 개선되었다는 오늘날의 노동현장에서조차 다치거나 죽는 노동자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 기업의 행태는 여전합니다. 사내하청, 하도급, 파견 등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기업의 도구로 쓰이다 버려지는 노동자의 현실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노동의 새벽》이 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였던 채광석과 김사인의 노력이 지대했습니다. 그들은 박노해의 시를 두고 "민중문학의 실체를 찾았다"면서 출간을 위해 여러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문학성'과 '위험성'을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그 와중에 나병식이 사장으로 있던 풀빛이라는 출판사에서 간신히 출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오윤과 김봉준의 판화가 인상적인 《노동의 새벽》 초판본에서 작가 소개를 보면 '1956년 전남 출생. 15세에 상경하여 현재 기능공'이라는 간단한 이력만 나올 뿐입니다. 그런데 《노동의 새벽》이 출간되었을 때 문단은 경악했다고 합니다. 지식인은 아무리 애를 써도 쓸 수 없는 현장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비수 같은 시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이 시집은 1980년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아우르는 민중문학의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시를 읽거나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정의합니다. 문학이론서를 봐도 이런저런 표현으로 좋은 시란 무엇인지를 규정합니다. 저희가 생각하기에 현실을 토대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며 쓴 박노해의 시야말로 세대를 초월하여 가슴에 깊이 남는 좋은 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요?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출간된 시집

박노해
196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서울에 올라와 선린상업고등학교 야간부를 졸업했다. 현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1984년 《노동의 새벽》을 출간하면서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이 되었다. 1989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했다. 7년의 수배생활을 하다가 1991년 체포되어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1998년 8월 15일 석방되었다. 그는 감옥에서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과 수필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석방 후 그는 2000년부터 스스로 사회적 발언을 금한 채 세계의 분쟁지역과 빈곤지역을 돌며 평화운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노동의 새벽》《참된 시작》《사람만이 희망이다》《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등이 있으며 두 번의 사진전 <라 광야> <나 거기에 그들처럼>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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