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40주년을 맞이하는 중요한 해입니다. 올해 5.18 40주년 기념식은 사상 최초로 옛 전남도청 앞 5.18 민주광장에서 열렸습니다. 옛 전남도청은 1980년 5월 당시 시민군이 계엄군과 맞서 싸운 최후의 항쟁지였던 만큼 그 의미가 참 남다릅니다.


출처 - 한겨레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가 주요 인사들과 5.18 유공자,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습니다. 광주의 자식들이 전두환을 단죄하기 위해 모인다는 설정의 영화 〈26년〉, 5.18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영화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등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들이 기념식 영상으로 사용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기념식 행사의 백미는 기념식 장소이자 최후의 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 옥상 등에서 제창된 〈님을 위한 행진곡〉 헌정 공연이었습니다. 1980년 5월 그날을 재현한 듯 수십 명이 옛 전남도청 옥상에 올라 이 노래를 제창한 겁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난무하던 이명박근혜 시절과 달리 이번 5.18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을 비롯하여, 정우성, 송가인 등 유명 연예인이 자신들의 방식대로 기념했습니다.


출처 - MBC


문재인 대통령은 5.18 40주년 기념사를 통해 정부가 발포 명령자 규명과 민간인 학살 등 진상 규명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했습니다. 또한 한 방송 인터뷰를 통해 5.18 정신이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움직임도 시작되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2018년 제정 및 개정되었고 2019년 말 5.18 진상조사위 구성이 완료되었죠. 위원 구성에 대한 비판이 높았지만 5.18 40주년을 맞이해 이번에는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의지가 큽니다. 진상조사위는 5월 12일 본격적으로 조사 개시를 선언했습니다.

 

출처 - KBS


정치권도 의욕적입니다. 광주 지역 21대 국회 당선인들은 1호 법안으로 5.18역사왜곡처벌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5.18진상조사위원회의 강제조사권 강화를 골자로 한 진상규명특별법 개정 가능성도 커지고 있고요. 미래통합당마저 총선 패배를 의식했는지 납작 엎드렸습니다. 5.18 망언과 관련해 사과를 했으며 4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했죠. 참석한 주호영 원내대표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지난 과오를 볼 때 과연 진심일까 싶긴 하지만, 최소한 인간으로서 이 정도의 예의는 앞으로도 지켜주길 바랍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5.18 광주민주화 40주년을 맞이한 때입니다만, 5.18 관련 혐오 발언과 망언은 여전히 쏟아집니다. 종편은 전두환 때가 우리나라 최고의 호황이었고 헬기 사격과 관련해 전두환은 몰랐다고 변호하기 바빴습니다. 김진태 등 5.18 망언을 일삼는 정치인을 두둔하는 왜곡 보도가 지난 총선 기간에도 계속된 바 있죠.

 

출처 - 경향신문


광주의 진실을 규명의 길은 여전히 험난합니다. 광주에서 있었던 민간인 학살 및 암매장 관련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시민군 최진수 씨는 40년간 동료 주검 행방을 찾고 있고, 광주교도소에 끌려간 강길조 씨는 52명의 사망을 목격했다고 증언했습니다. 행불자가 적어도 78명인데, 그간 있었던 5차례의 암매장 조사는 성과가 없었죠. 이번에 출범한 5.18진상조사위는 실종자 규모와 암매장, 사체유기 등 진상을 규명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뉴스타파


최근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1980년 5~6월 일본외무성 문서에 미국과 일본이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의 움직임을 평가한 내용이 담긴 기록이 여럿 있다고 합니다. 이 기록에서 당시 주한 미국 대사는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이 미쳐가고 있다고 직설적인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군부의 힘을 이용해 한국 정치의 실권을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이 쥐고 있다는 것 역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신군부 쿠데타의 핵심이 이 3명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전두환은 지난 40년간 광주 학살은 물론 쿠데타의 수괴 역할을 줄곧 부정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드러난 자료에 의해 일본과 미국은 1980년 5월의 상황이 전두환의 쿠데타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이 국보위 이전에도 국사혁명위원회를 만들어 사실상 군부 정권 수립을 기도했다는 사실, 전두환이 언론사 편집장들을 모아놓고 광주진압작전 계획을 직접 설명한 사실 등을 보면 전두환이 주모자라고 보는 것이 국내외적으로 타당하다는 겁니다.


출처 - SBS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한 올해지만 전두환 일가는 범행 자체를 부인하며 호의호식하고 있습니다. 2013년 전두환의 큰아들 전재국은 전방위 수사에 압박을 느끼고 아버지인 전두환에 대한 추징금 자진 납부계획서를 제출한 바 있죠. 자신의 부동산과 북플러스라는 도서 유통업체 경영에서 손을 떼며 해당 지분을 다 내놓겠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 약속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전재국은 북플러스의 비상무이사로 재직하며 급여와 법인카드를 받아 펑펑 쓰고 다녔습니다. 그 와중에 어려워진 회사 사정은 아랑곳없이 자기 월급을 44%나 올렸습니다. 법인카드를 술집이나 국외여행 등 업무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사용한 경우는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합니다. 압박이 들어올 땐 수그리다가 지나가면 활개 치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부전자전입니다. 40년이 지났지만 우리가 여전히 5.18에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번에 출범한 5.18 진상조사위의 활동과 진실 규명, 전두환 일가의 단죄를 위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두 눈을 부릅떠야겠습니다.

올해로 36주기가 되는 5.18 민주화항쟁도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으로 시작했습니다. 상식적인 사회라면 이런 일이 논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겠죠. 박근혜 대통령은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사실상 제창하지 못하게 지침을 내렸으며 박승춘 보훈처장은 이 교시를 받들어 올해도 제창을 불허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청와대 회동에서 협치를 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또 하나의 쇼였을 뿐이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대부분이 거짓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야당은 청와대 회동 무효를 선언하며 강하게 반발했고, 심지어 새누리당 원내대표조차 청와대와 보훈처의 결정에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야당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해임촉구 결의안을 내기로 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1997년 김영삼 정부 때부터 제창된 〈임을 위한 행진곡〉은 2008년 이명박 정부 때부터 제외되기 시작했습니다. 집권당과 정권의 성격을 보면 그 의도가 너무나 명백하죠. 보훈처의 해석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음악적으로 제창과 합창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개념이지만, 보훈처의 유권해석으로는 제창은 참석자 전원이 의무적으로 불러야 하지만 합창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죠.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5.18 민주화항쟁 기념식 동영상을 보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입을 다물고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외워서 부르고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는 주먹을 움켜쥔 채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반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들고 있는 종이만 들여다볼 뿐 입을 열지 않습니다.


출처 - 유튜브


보훈처의 유권 해석대로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국가 기념식의 관행을 어긴 것이며 '의무적'으로 불러야 하는 노래를 고의로 부르지 않은 셈이 됩니다. 그렇다면 보훈처는 박근혜 대통령의 무례와 무식함을 계속 알리고 싶어 이런 방침을 자꾸 고수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다면 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를 막기 위해 다른 핑계를 대고 있는 걸까요?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보면 그 이유가 그대로 드러나긴 합니다.


출처 - 페이스북


〈임을 위한 행진곡〉은 보수단체의 주장과 달리 종북이나 김일성 찬양을 위한 노래가 아닙니다. 탈북하여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는 주성하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북한에서 허락없이 부르면 잡혀가 정치범이 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북한과 연결시키는 찌질한 짓거리" 좀 그만하라면서 말입니다. 삼척동자도 다 알 만한 노래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보면 그 수준의 저열함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한편 5.18 민주화항쟁 당시 학살의 책임자였던 전두환은 자신이 광주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4대 조건이 선결되어야 된다는 망언을 했습니다. 신변 보호와 박탈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를 갖추는 등의 조건이 선결되어야 5.18 묘역을 참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광주에서는 죄인에게 무슨 예우냐는 반응이 나오고, 5.18 관련 단체는 책임 인정과 광주에 대한 사죄 그리고 대국민사과가 선결 조건이라고 대응하기도 했죠. 

 

출처 - KBS


하지만 살인마 전두환은 지난달 27일 《신동아》 기자와 나눈 인터뷰에서 5.18 민주화항쟁 당시 시민군을 향해 총을 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동석한 전두환의 지인들도 인터뷰에 참여했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상황이 나왔습니다.

 

(5·18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광주 침투와 관련된 정보 보고를 받은 적 없다는 전 전 대통령 말에)


고명승 전 삼군사령관 "북한 특수군 600명 얘기는 연희동에서 코멘트 한 일이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 "뭐라고? 600명이 뭔데?"

정호용 전 의원 "이북에서 600명이 왔다는 거예요. 지만원 씨가 주장해요."

전두환 전 대통령 "오, 그래? 난 오늘 처음 듣는데."


일베에서 5.18 관련으로 "종북, 빨갱이" 타령할 때 흔하게 나오는 주장이 북한 특수군 얘기죠. 그런데 그 주범인 전두환이 이런 논거를 부정한 셈입니다. 광주와 북한이 관련 있다는 일베의 주장이 헛소리임을 전두환이 밝힌 셈입니다. 한편 역사적 책임감으로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전두환은 "광주에 내려가 뭘하라고요"라고 되물어 책임 인정과 사과할 마음이 전혀 없음을 드러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출처 - 스포츠동아


한국인 작가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의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얘기했죠.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출처 - 《소년이 온다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과 같이 고립되고 힘으로 짓밟히고 훼손된 사건 이면에는 광주를 수없이 되태어나게 한 국가의 원죄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아물지 못하고 해마다 후벼지는 그 상처에서는 여전히 피가 철철 나고 있습니다. 5월 광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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