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비상사태를 과연 누가 만들고 있는가?

 

북한이 쏜 위성을 계속 미사일로 규정하던 일당이 한반도의 긴장을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부, 새누리당이 바로 그 주체입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 23일 국가 정보원에 테러 용의자 감청, 계좌추적 등을 허용하는 테러방지법안을 직권상정했습니다. 테러방지법 제정 지연을 '국가비상사태'로 판단한 것이죠. 정의화 국회의장이 박근혜의 안보위기 여론몰이에 굴복한 것이라고 봐야 하겠죠.

 

출처 - filibuster.me

 

 

하지만 야당 의원들은 테러방지법 입법 저지를 위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무제한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지난 23일 오후 7시 5분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시작한 필리버스터는 국민의당 문병호 의원, 더민주 은수미 의원을 거쳐 24일 오후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광진 의원은 장장 5시간 33분간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1964년 4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의원 시절 세운 최장시간 발언 기록인 5시간 19분을 경신해 많은 이를 놀라게 했죠. 그런데 그것도 잠시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은 무려 10시간 18분간 토론을 벌였습니다. 이는 1969년 신민당 박한상 의원이 3선 개헌을 막기 위해 법사위에서 진행했던 10시간 15분의 최장연설 기록을 경신한 것이라고 합니다.

 

'통일은 대박'이라던 대통령은 과연 어디로 갔는지 전쟁 위협을 부추기는 언사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보수 언론과 보수 종편 방송은 온종일 북한을 탓하는 얘기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얻으려는 것이 뭘까요? 시쳇말로 "기-승-전-테러방지법"입니다. 

 

출처 - 한겨레

 

어쩌면 이는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국회 연설에서 테러방지법 통과를 강조한 이후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국민을 호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언론과 방송이 이에 결합하면서 위기감을 조성하기 시작했지요. 결국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개성공단 폐쇄로 맞섰습니다. 개성공단에 직간접적으로 목을 매고 있는 국민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안보 위기를 조장함으로써 테러방지법 처리를 강행하려 합니다.

 

 

사드 배치 관련 한미 공동실무단 약정 체결 돌연 연기

 

주한미군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관련 한미 공동실무단 약정 체결이 지난 23일 서명 직전에 돌연 연기되어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미국의 요청에 의해 연기된 것이라고 하는데요, 예정된 약정 체결 연기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물밑 조율의 여지를 남기기 위한 포석이라는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미국은 강도 높은 북핵 제재를 요구하는 반면 중국은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입장이라 미-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양국의 입장을 절충하는 방안이 논의되겠지요.   

 

출처 - 경향신문

 

대테러방지법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기 전만 해도 대한민국은 사드 배치 문제로 점입가경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2월 10일 발표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협의 개시가 대북 억제력 유지를 위한 조치의 일환이라고 밝혔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드 배치 문제조차 대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수순이 아니었나 싶군요. 오늘은 한반도 사드 배치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출처 - 뉴스타파


 


사드 한반도 배치가 현실화함에 따라 일전에 말씀드렸던 문제가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드 배치는 대한민국 경제에 적신호일 뿐


이명박근혜 정권이 좋아하는 경제 문제부터 짚어보겠습니다. 문제는 중국과 러시아입니다. 미국은 바다 건너에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에 인접한 나라들이죠. 냉전 시대에는 공산주의를 막아내는 최전선으로서의 지정학적 가치 때문에 한국은 미국의 보호와 경제적 수혜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냉전이 종식된 후 고도의 경제 발전의 결과로 겪은 IMF 사태로 알 수 있다시피, 무한경쟁 시대의 한국은 과거와 같은 지정학적 가치를 누리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협상에 대한 논평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미국의 선택은 한국에서 물러나 일본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냉전 시대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진 중국, 러시아와의 무역 규모입니다. 1992년 수교 이후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과의 교역은 약 40배나 늘었습니다. 미국, 일본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무역을 하는 상대국이 바로 중국입니다. 러시아 역시 1990년 수교 이후 수출은 90배, 수입은 210배가 증가해 주요 무역상대국이 되었죠.


이런 상황에서 사드 배치가 현실화한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무역은 타격을 입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사드가 일단 배치되고 나면 되돌리기가 어려워지겠지요.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과 척을 질 경우 과연 우리 경제는 이를 견딜 수 있을까요? 연내 사드 배치를 추진하겠다는 박근혜 정권은 과연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외교적 해결책과 경제적 충격을 타개할 대비책이 있기나 한 걸까요? 심히 우려스러운 지점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한국과 북한의 군사적 긴장 관계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중단된 비무장지대 안보관광의 현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평소와 달리 안보관광지가 텅텅 비었으니까요. 남북 관계의 긴장 고조로 중국인 단체 관광이 끊겨 파주 안보관광지 방문객은 평소의 3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뻔한 사드 배치가 진행된다면 중국인 관광객이 과연 한국을 찾을까요? 무엇보다 경제를 생각한다면 사드 배치는 가볍게 언급할 문제가 아닙니다. 

 

출처 - 한겨레


48일 만에 재개된 안보관광을 위해 지난 23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 전망대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망원경으로 개성공단 등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남북 긴장 관계가 나빠지면 국민이 얻을 것은 전무합니다. 평화가 우리를 배부르게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이유입니다.


 

동아시아 외교 관계 급랭, 일본만 어부지리


중국 외교부는 한미가 사드 한반도 배치를 가시화하기 시작할 때부터 결연히 반대한다며 강경한 성명을 내왔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취임 후 한중 관계 개선에 꽤 많은 공을 들여왔기 때문이지요. 작년 9월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한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한동안 미국보다 중국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죠. 그런데 현재는 중국의 반발을 잠재우지도 못하고 있고, 개성공단 폐쇄가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경제 제재가 되지도 않는 상황이어서 아무런 실리도 없이 그저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출처 - 뉴스타파


무엇보다 사드가 배치가 된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우리나라 방위에 실효성이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재 배치 후보지들을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사드의 최대 사거리는 200킬로미터이고, 요격 고도는 40~150킬로미터입니다. 한반도는 그리 큰 땅이 아니어서 북한이 미사일을 쏜다면 3~5분 이내에 우리나라에 도달하게 됩니다. 또한 산악 지형이라 초기 발사 탐지 및 추적에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발사 탐지-추적-표적 확인-요격이라는 사드 작전 시간이 굉장히 촉박하기 때문에 과연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할 만한 시간이 나올지 의문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사드 배치도 문제입니다. 평택에서 70킬로미터 떨어진 수도권을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사드 요격 고도는 최소 40킬로미터인데 북한에서 수도권으로 미사일을 쏜다면 이미 미사일은 하강 단계일 테니까요. 과연 평택에서 쏜 사드 미사일이 북한의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을까요? 평택에서는 미군 기지와 오산공군기지 정도를 방어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평택은 국방부에서도 끊임없이 얘기하는 북한 신형 방사포의 사정거리 안에 속합니다. 사드 자체가 표적이 되므로 미사일이 아닌 포격에 의해 무력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습니다. 과연 사드 배치는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것인이 의문이 들지 않으시나요?

출처 - 뉴스타파


미국에서 원하는 대구라면 어떨까요? 수도권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 사드를 배치한들 수도권 방위는 어불성설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이 대구를 바라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한국전쟁 당시처럼 한국은 초토화되더라도 유사시 낙동강 이남의 부산과 진해를 통해 미 해군 전력을 전개할 수 있고 신형 방사포 사정거리 밖에 있기 때문이지요. 미국의 병력 전개에 용이하고 일본은 한국을 방패로 바다 건너 자기 나라를 지키기에는 용이하기에 사드 배치에 찬성하고 있을 뿐입니다. 

 

출처 - 비즈니스포스트


이처럼 사드 한반도 배치는 미국의 세계 구상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적어도 우리에게는 실익이 없는 일입니다. 경제, 외교적으로는 파국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고 안보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데 돈만 들어가는 국가 사업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사드 배치를 자신의 치적으로 삼고, 북풍으로 선거에 유리한 국면을 조장해보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는 선거 승리 외에 국민의 안위에는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방증하는 사례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바란다면 사드 한반도 배치는 절대 불가한 일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국회선진화법이 여야가 아닌 청와대와 여당 사이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경제살리기 법안 통과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국회를 압박한 것도, 서명운동이란 우스운 방법까지 동원한 이유도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가로막혔기 때문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얼마 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18대 국회 말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된 과정을 두고 많은 의원들이 반대했지만 당시 권력자가 찬성으로 돌아서자 반대하던 의원들도 찬성으로 돌아서 버렸다고 언급해 청와대가 부글부글하고 있습니다. '권력자'로 지목된 사람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대체 이딴 법 누가 만든 거야?" 하고 소리 지르며 박근혜 대통령을 뚫어지게 바라본 셈입니다. 국회선진화법 논란이 청와대와 여당 대표의 충돌 국면으로 들어간 형국이죠.


출처 - JTBC


식물국회 싫다고 동물국회로 회귀할 건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0일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국회 기능을 원천 마비시키고 정치 후퇴를 불러온 희대의 망국법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여당은 현재 소수인 야당에 발목 잡혀 아무 법안도 처리할 수 없게 된 속칭 식물국회의 원흉을 국회선진화법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2012년에 도입한 법임에도 말이죠.

출처 – the300


국회선진화법이란 2012년 5월 2일자로 개정된 국회법의 별칭입니다. 국회선진화법은 기존 국회법에 의장의 직권상정 요건 강화, 폭력국회 방지 및 처벌, 안건 조정제도, 예산안 처리 강화, 본회의에서 무제한 토론 도입 등을 정하는 법 조항을 추가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날치기 법안 통과와 의회 내 폭력사태 방지를 위한 개정이라고 할 수 있죠. 국회선진화법은 예의 있는 국회 진행과 소수당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법에 가깝습니다. 식물 국회가 싫다고 또다시 날치기 통과가 횡행하고 이 때문에 폭력 사태가 발생하는 정글의 왕국 같은 동물국회로 다시 돌아갈 순 없지 않겠습니까?

출처 - 노컷뉴스


현재 여당인 새누리당은 국회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 예전 같으면 날치기로 단독 통과시킬 수 있는 노동개혁이나 경제활성화 법안 등을 일일이 야당의 동의를 얻어야 하니 답답함을 느끼는 겁니다. 게다가 같은 당 출신인 정의화 국회의장마저 의장 직권 상정에 완강히 반대하며 법대로 하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으니 샛길 또한 막힌 셈이죠. 현재 국회선진화법은 의장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국회법 87조로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하려는 새누리당


하지만 국민에겐 무능하지만 자신들에겐 유능한 새누리당은 우회로를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지난 18일 새누리당은 본회의의 전 단계인 국회운영위원회를 열어 국회법 개정안을 상정한 후 바로 폐기했습니다. 이상하죠? 그렇게나 뜯어고치려던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개정안을 상정했다 왜 자기들 손으로 폐기한 걸까요? 이는 국회법 87조의 맹점을 이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출처 - the300


국회법 87조는 "위원회에서 본회의에 부의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된 의안은 본회의에 부의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위원회의 결정이 본회의에 보고된 날로부터 폐회 또는 휴회중의 기간을 제외한 7일 이내에 의원 30인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그 의안을 본회의에 부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은 조건을 충족하는 의원 30명을 미리 모아놓고 자기들 손으로 개정안을 상정했다 폐기합니다. 이후 폐기된 개정안을 30명이 본회의에 부의를 요구하는 겁니다. 이런 꼼수를 쓰면 야당의 반대를 뚫고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할 수 있게 됩니다. 상정만 된다면 국회 과반을 새누리당이 차지하고 있으니 표결을 통해 법안 통과가 가능하겠죠. 국회선진화법이 있는 현재로써는 날치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죠. 법의 맹점을 이용해 법을 바꿀 개정안을 상정한다니 참 자기들 이익에는 도가 튼 사람들입니다.


야당은 3선 개헌하듯 날치기했다며 법 통과를 위해 법을 부결시킨 극단적 꼼수이자 의회 파괴 행위라고 맹비난했습니다. 당연합니다. 김무성 대표가 신년기자회견에서 정의화 의장을 향해 국회선진화법을 직권상정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한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은 때였으니까요. 이 모든 꼼수를 부리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5분이었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 중재안 제안, 새누리당 개정안은 반대


우선 정의화 국회의장은 21일 국회에서 "현재 선진화법 위헌 소지의 가장 큰 부분은 의회민주주의 부분 과반수의 룰을 어긴 것이지 직권상정 엄격히 제한한 것을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며 사실상 새누리당의 개정안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새누리당의 꼼수에 의해 본회의에 법안이 부의되더라도 국회의장이 상정하지 않으면 처리할 수 없으니까요. 이에 정의화 국회의장은 중재안을 제시합니다. 위원회 단계에서 여야 합의가 안 되면 정수의 60퍼센트 찬성으로 신속처리가 가능하게 한 룰이 선진화법 문제의 핵심이므로 이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현재 330일인 안건신속처리제도의 심의 시한을 최대 75일로 단축하는 추가 중재안을 내놨죠. 2012년 국회법 개정 당시 국회선진화법을 반대한 사람이 지금은 이 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같은 모양새가 되다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출처 - the300


일단 새누리당은 정의화 의장의 중재안을 수용해 절충안을 찾아보겠다고 한 모양새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의화 국회의장이 설득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야당은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국회가 국회답게 제대로 작동하고, 정치인이 정치인답게 행동하려면, 국회선진화법은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다만 현실적으로 총선 전 선거구 획정을 위해서도 여야 간 신속한 사태 해결이 필요하긴 한 상황입니다. 과연 국회선진화법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요? 법 하나에 수많은 현실 문제가 얽혀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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