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00일이 지난 시점에서 국민은 현 정부의 가장 잘한 정책으로 복지 정책을 꼽았습니다. 부동산 대책, 탈원전 정책 등에 대한 긍정 평가도 많았지만 그중 제일은 복지였습니다. 특히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이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것은 피눈물나는 일이다"라며 발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에 대해서는 국민의 3분의 2가 넘는 67.9퍼센트가 찬성한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도 오바마 케어를 도입하면서 한국의 의료보험 체계를 극찬한 바 있죠.


출처 - JTBC


문재인 케어의 핵심은 미용과 성형을 제외한 전 의료 분야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는 겁니다. 2022년까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을 대폭 줄여 고액 의료비 때문에 가계가 파탄나는 일이 없도록 만들겠다는 것이죠.

출처 - 뉴스1

 

아울러 하위 30퍼센트 저소득층 환자가 연간 부담하는 진료비를 100만 원 이하로 낮추고 비급여 문제를 해결해 실질적인 의료비 100만 원 상한제를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암을 비롯한 4대 중증질환에만 한정됐던 의료비 지원제도도 모든 중증질환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정책이 시행되면 대표적으로 목돈 들어가던 진료들, 예를 들어 100만 원 정도 내야 받을 수 있던 MRI 진료도 적게는 20만 원만 내고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출처 - JTBC


국민은 크게 환영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복잡한 심경을 표출하며 찬반 논란이 뜨겁습니다. 포퓰리즘이라는 야당의 딴지는 차치하고서라도 현실적으로 문제는 '돈'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5년간 30조 6000억 원을 투입해 전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평균 18퍼센트 줄일 계획입니다.


일단 30조 6000억 원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의료보험료나 기타 세금이 폭탄처럼 뛰지 않을까 우려하거나 더 나아가 문재인 케어가 발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 그 정도 재원만으로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입니다.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현 정권 내에서는 큰 문제가 없을지라도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입장을 밝혔습니다. 기획재정부와 충분히 협의해 재원대책을 꼼꼼히 검토했고 2022년까지 단계적 시행을 전제로 설계했더니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이 이번에 발표한 문재인 케어라는 겁니다. 이를 위해 그동안 쌓인 건강보험 누적흑자 21조 원 중 절반 가량을 활용하고 나머지 부족 부분은 국가 재정을 통해 감당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10년간 평균 보험료 인상률인 3.2퍼센트 수준에 맞춰 정부가 매년 보험료를 조정하고 과도한 외래진료나 허위 부당 청구 등 의료비 지출 누수 방지와 재정 절감 대책을 통하면 감당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에 대한 의료계의 의견은 찬반 양론으로 갈립니다. 일단 일차적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동네 병원, 즉 개원의들을 중심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쪽도 문재인 케어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찬성하는 입장은 문재인 케어 발표대로 재원 마련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사전에 의료계와 협의가 없었던 진행 속도와 의료수가가 문제의 핵심으로 인식됩니다. 일리가 없는 주장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공단이 의사들의 진료 행위에 대해 보장해주는 의료수가는 원가의 60~7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으며, 문재인 케어에 찬성하는 쪽도 이보다 높은 80퍼센트대에서 아주 높게는 90퍼센트대까지 보기도 하지만 100퍼센트에 미치지 못 한다는 점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출처 - 코메디닷컴


어떤 의미에서 한국 건강보험 시스템은 많든 적든 의사들의 손해를 전제로 돌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이 때문에 대학병원들을 중심으로 특진비나 비급여 진료를 통해 손해를 보전하고 있었는데, 규모에서 달리는 동네 병원들은 모든 항목이 급여화될 경우 앞으로는 그 부족분을 메울 길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또한 비급여가 급여화된다는 건 의료 서비스의 가격을 앞으로 정부가 완전히 통제한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의료 시장에서 의료계의 입지가 상당히 축소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면 급여화를 진행하더라도 이 의료수가를 적정수가로 현실화한 후에 하라는 반대 의견이 나오는 것입니다.


출처 - JTBC


많은 사람이 가입해 있는 실손보험도 문제가 됩니다. 문재인 케어대로 비급여 부담이 대폭 줄면 사실상 실손보험의 필요성이 줄어듭니다. 전문가들은 고가이면서 치료효과가 애매한 질병은 예비 급여 대상으로 정해 3~5년 정도 효과를 점검하기로 한 만큼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합니다. 다만 이미 가입한 보험의 경우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은 대폭 줄어들 전망입니다. 복지부는 지급액 감소폭을 검토한 뒤 보험료 인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혼란은 병실 대란과 간호사 부족입니다. 내년 하반기부터 1~2인실까지 건강보험이 보장되면 환자와 병원 모두 상급병실 쏠림 현상이 나타나겠죠. 같은 값이면 적은 인원 병실에 들어가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니까요. 안 그래도 병실 부족 현상이 심각한데 우려가 될 법합니다. 또한 현재 면허 취득자 대비 50퍼센트도 현장에서 일하지 않기에 발생하는 간호사 부족 문제도 심화될 수 있습니다. 고된 현장에 비해 수입이 많지 않기 때문인데, 앞으로 이탈이 가속화될 수도 있습니다.


출처 - 헤럴드경제


또한 문재인 케어가 시행되어도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건강보험료를 체납한 저소득층인데요, 연 소득이 500만 원 이하인 체납 세대가 145만 가구에 달합니다. 평균 체납액이 119만 원라 많지 않은 것 같지만, 모두 합하면 1조 7000억 원이 넘는 막대한 금액입니다. 저소득 체납자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주기 위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출처 - JTBC

 

이 많은 현실적인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문재인 케어의 방향성에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습니다. 각계각층이 머리를 맞대고 현실적인 조율의 묘를 발휘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도 의료보험료나 세금에 대한 부담을 어느 정도 짊어진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돈이 없어서 아프고, 돈이 없어서 사람이 죽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비정규직 청년의 죽음을 기억하는 1주기 추모식이 지난 지난 5월 28일 있었습니다. 하루 12시간 2교대라는 살인적인 근무에 쫓긴 스무 살이 채 안 된 하청노동자의 유품 가운데에는 컵라면 하나가 있었습니다. 밥 먹을 시간조차 없었던 그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모습이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죠.

 

출처 - 오마이뉴스

 

사실 김군의 죽음은 예상치 못한 참사가 아니었습니다. 생각비행이 출간한 《하청사회》의 내용 일부를 인용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김군 사망사고 1년 전 강남역에서도 비슷한 사망사고가 있었습니다. 원칙적으로 스크린도어 점검은 2인 1조로 진행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김군처럼 한 사람이 담당하고 있었죠.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 점검 업무를 수주한 하청업체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극도로 인력을 축소한 상태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2인 1조 점검이란 애초에 불가능했습니다.

 

 

구의역 지하철 사고와 관련한 기본 근로 조건을 보면, 49개 역사의 스크린도어를 관리하는 직원은 6명으로 1명당 5개 역을 담당하는 셈입니다. 하나의 역을 점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개 두세 시간인데 반해 하루 평균 고장 신고는 40여 건에 달했습니다. 여름철과 겨울처럼 온도가 급격히 변하는 계절에는 최대 하루 200여 건 가량의 신고가 접수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황을 정확히 파악해서 근본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지만, 서울메트로는 유사한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며 비정규직 근로자 개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서울시와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구의역에서 김군 혼자 스크린도어 점검 작업을 하고 있을 당시 서울메트로에서는 김군이 작업 중이라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청사회에서는 힘없는 을들에게 이러한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갑이 비용 절감을 위해서 시행하는 외주화란 결국 ‘위험의 외주화’를 포함하거나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 청년 김군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서울시에서 8월까지 서울교통공사 등 투자출연기관에서 근무 중인 무기계약직과 기간제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전까지는 개선했다는 게 고작 고용기간만 연장하고 처우는 비정규직 그대로인 무기계약직이어서,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직도 아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중규직'이라는 비아냥도 있었죠.

출처 - 경향신문

 

'위험의 외주화'는 지하철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도처에는 위험을 하청업체로 떠넘기는 외주화가 만연해 있습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1주기 추모 행사가 있던 지난 5월 1일에는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이 넘어지면서 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사망한 작업자 6명은 모두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이었고, 중경상을 입은 25명 역시 대부분 협력업체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정규직 근로자가 휴식하는 법정공휴일에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쉬지 못하고 근무하다 참변을 당한 것이죠. 또한 5월 20일에는 인천공항에서 변전설비 정기점검을 하던 부산지하철공사 소속 간접고용 비정규직 근로자 3명이 감전사고로 크게 다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게 우리 사회 노동의 현주소가 드러나는 사건이었습니다. 재난의 현장에 본청의 정규직은 존재하질 않습니다.

 

출처 - JTBC


첨단산업에 속하는 스마트폰 제조 현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계적인 기업이 된 삼성전자, LG전자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젊은이 6명이 업체의 관리 소홀과 보건 조치 미흡으로 생산공정에서 쓰는 독극물인 메탄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시각을 잃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피해 노동자는 비정규직이 아니라 불법 파견이기까지 했습니다. 앞날이 창창한 20대가 시력을 잃은 것만이 아나라 심한 경우 뇌손상까지 입었다고 합니다.

 


출처 - JTBC

 

지난 6월 9일 열린 유엔인권이사회 총회에서는 유엔인권이사회 산하 실무그룹이 조사한 국내 대기업들의 인권 침해 현황을 담은 보고서가 제출되었습니다. 유엔 측은 메탄올 피해자 사례와 노조 탄압 등을 언급하며 원청 대기업들이 인권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6명의 노동자가 시력을 잃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 사이 본청의 정규직들은 과연 어떻게 지냈을까요? "이게 나라냐?" 싶을 정도로 별탈 없이 지냈습니다.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건의 경우 크레인 신호수로 일한 1명만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됐을 뿐 원청업체 관련자에 대한 영장은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스마트폰 공장 메탄올 실명 사건의 1심 판결은 불과 일주일 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 중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다. 6명이 눈을 잃고 뇌 손상을 입었지만 불법 파견과 메탄올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실명의 책임이 있는 업체 사장까지 모두 집행유예와 수십 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불법 파견사업주들도 집행유예에 끽해야 벌금 100만 원이 다였습니다.

 

6명이 앞을 보지 못하는 채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제대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는 이상한 노동 현실이 계속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보다 돈이 먼저이기에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제도와 장치를 불합리한 규제라고 우기는 기업가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뉴시스


지난 3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50회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 자리에서 영상메시지를 통해 제도는 물론 관행까지 바꿀 근본적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산업 현장의 위험을 유발하는 원청과 발주자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이 납득할 때까지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이는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을 더 이상 외주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원청과 발주자의 책임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긴 하나, 이런 내용은 다른 정권에서도 한 적이 있습니다. 말보다 실행이 중요하다는 점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산업재해를 당하는 노동자 중 하청업체 노동자 비율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인 만큼,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사람이 먼저다'라는 그들의 슬로건을 실행으로 증명할 때입니다.

 

매년 돌아오는 호국 보훈의 달 6월, 모처럼 제대로 된 현충일 추념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곁을, 이전 정권에 늘 앉아 있던 4부 요인들 대신 원래 그 자리에 앉아 마땅한 분들이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목함 지뢰 사건으로 발을 잃은 김정원, 하재헌 중사를 비롯해 국가유공자인 박용규 씨와 아들 박종철 씨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목함 지뢰 사건으로 부상한 개개인에게 돌아갔어야 할 돈을 빼돌려 흉물스러운 발 동상을 세웠던 지난 박근혜 정부와 달리 '사람이 먼저'인 상식적인 대우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어 다행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애국의 역사를 통치에 이용한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면서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기보다 전쟁의 경험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념의 정치, 편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은 애국, 정의, 원칙, 정직이 보상받는 나라를 만들어가자고 이야기하며 국회가 동의해준다면 국가보훈처의 위상부터 강화해 장관급 기구로 격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가유공자와 보훈대상자, 그 가족이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말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제 한 걸음 더 나가겠습니다. 국회가 동의해 준다면, 국가보훈처의 위상부터 강화하겠습니다. 장관급 기구로 격상하겠습니다. 국가유공자와 보훈대상자, 그 가족이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보상받고 반역자는 심판받는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국민이 애국심을 바칠 수 있는, 나라다운 나라입니다.

 

애국이 보상받고, 정의가 보상받고, 원칙이 보상받고, 정직이 보상받는 나라를 다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개인과 기업의 성공이 동시에 애국의 길이 되는 정정당당한 나라를 다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국가보훈처' 하면 지난 8년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막은 이상한 정부 기구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으실 텐데요, 그건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상식 없는 극우 인사를 보훈처장에 앉히는 등 기구 자체가 망가져서 그렇습니다. 국가보훈처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여정부 때 장관급 기구로 격상한 바 있죠. 하지만 이명박 정권 때 차관급으로 격하하여 박근혜 정권에서도 그 상태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런 주제에 이명박근혜 정권이 안보와 보훈을 얘기했으니 우습지 않습니까?

 

이번에 보훈처를 제대로 되돌려놓자는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 장관급 기구로 격상하자는 말을 꺼냈습니다. 최초의 여성 헬리콥터 파일럿이자 진보 성향의 예비역 여군 중령인 피우진을 신임 국가보훈처장에 임명한 것도 그런 의도로 파악됩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일입니다만 국가 유공자들을 나라가 책임지겠다는 뜻이니까요.


출처 - 노컷뉴스


이런 과정은 정상 국가로 재편되는 좋은 일이지만 그간 쌓인 군 관련 적폐는 제대로 청산해야 합니다. 사드 부지 환경 평가를 원점에서 다시 하게 되어, 국방부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뒤통수까지 쳐가며 강행하려던 사드 추가 배치가 사실상 내년으로 넘어갔습니다. 국방부와 군피아들이 자초한 일이죠. 사소한 군납 비리부터 국가 안위를 뒤흔드는 거대한 비리까지, 그간 '생계형 비리'라는 터무니없는 말로 국민 혈세를 후안무치하게 빼먹은 군피아들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것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와 더불어 그동안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부분에 대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국립 현충원 안장에 관한 것인데요, 현충원은 초등학생도 알다시피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하고 공헌한 분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입니다. 하지만 현충원에도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습니다.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을 모시기 위한 현충원에 친일파와 민간인 학살, 군사독재 부역자와 관련자들이 함께 묻혀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현충원이 한국의 야스쿠니 신사도 아니고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 싶으시겠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3.1 운동 정신과 4.19 혁명 정신을 우리나라 정통성의 양대 기둥으로 삼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 아닙니까? 애초에 현충원 안장 기준부터 이상합니다. 아무리 나쁜 짓을 많이 하고 독재자라도 대통령, 장관을 역임하면 그냥 현충 시설에 안장됩니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내용을 한번 살펴볼까요?

 

제5조 (국립묘지별 안장 대상자) 
 ①국립묘지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른 사람의 유골이나 시신을 안장한다. 다만, 유족이 국립묘지 안장을 원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국립서울현충원 및 국립대전현충원
가.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 또는 헌법재판소장의 직에 있었던 사람과 「국가장법」 제2조에 따라 국가장으로 장례된 사람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국립묘지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희생·공헌한 사람이 사망한 후 그를 안장(安葬)하고 그 충의(忠義)와 위훈(偉勳)의 정신을 기리며 선양(宣揚)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만, 위 내용대로라면 대한민국의 가치 구현을 위해 기려야 할 분을 모시는 게 아니라 생전에 성공한 사람을 자동으로 모시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던 어처구니없는 판결처럼 말입니다. 


현재 현충원 안에는 민간인 학살자나 군사독재 부역자, 관련자를 제외하고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사람만 해도 72명이나 됩니다. 여기에 독재나 부정부패 같은 여러 독직 사건을 더하면 100명도 넘어가게 생겼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대표적으로 수년간 시민단체가 이장을 요구한 대전 현충원의 김창룡 준장이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사람인데, 공교롭게도 대전 현충원은 백범 김구 선생과 그의 모친, 아들이 안장된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김구 선생을 두 번 죽이고 있었던 셈입니다.


극우 테러 집단의 대명사로 제주 4.3 사건을 일으킨 서북청년단을 이끈 문봉제도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테러 집단의 장이 단지 이승만의 충견이었다는 이유로 현충원에 있는 겁니다. 전두환의 경우 군사독재와 광주 학살의 장본인이지만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란죄 판결로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하여 그 자격을 잃었죠.

 

그 이후 형을 사면받았는데 이런 경우 어떻게 되는 건지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입니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 제4항을 보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는 기준이 있긴 합니다만 전두환 같은 사례가 있으므로 더 구체적인 내용을 추가해야 할 듯합니다. 지금대로라면 자서전에서 자신이 피해자라고 밝힌 전두환이 현충원에 묻히겠다고 주장할 경우 명확하게 반박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생깁니다. 애초에 만주군관학교 출신인 박정희가 제일 양지바른 곳에 묻혀 있다는 것부터가 문제입니다만.

출처 - 오마이뉴스


현충원 안장에 관련된 법과 제도를 정비하여 대한민국 헌법정신과 시민정신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퇴출함이 마땅합니다. 앞으로는 단순 직책에 따른 안장이 아닌 국가와 공동체에 실제로 공헌하고 희생된 사람들이 안장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민간인 학살이나 독재 같은 중죄를 지은 것이 밝혀질 경우 현충원에서 다른 곳으로 강제 이장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해야 할 듯합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우리는 광복절이 돌아올 때마다 총리나 국방장관 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일본 정치인들을 지탄했습니다. 당연합니다. 그런데 현충일이면 매년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요인, 시민단체들이 기리는 대한민국 현충원에 친일파와 독재자, 학살자들이 합사되어 있다는 건 참으로 모욕적인 일 아니겠습니까? 하루빨리 현충 시설에 관한 법과 제도의 정비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하루에 5000만 원씩, 2달 만에 35억 원을 펑펑 쓴 금수저가 있습니다. 다들 누군지 아실 겁니다. 바로 요즘 한창 재판 받는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35억이란 돈이 자기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국민의 혈세이며 탄핵 가결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어 쓸 권한이 없었던 대통령 비서실 특수활동비였다는 게 문제가 되고 있죠. 주머니돈이 쌈짓돈이고 마치 왕족이나 된 듯 나랏돈이 자기 돈이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아무튼 박근혜의 청와대는 특수활동비란 눈먼 돈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안 그래도 법무부와 검찰의 이른바 돈봉투 만찬 사건으로 특수활동비가 연일 여론의 도마에 오르내렸으니까요.

 

출처 - JTBC

출처 - 아이엠피터


특수활동비란 사건 수사, 정보 수집이나 각종 조사활동 같은 특정한 업무수행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말합니다. 특성상 일일이 허가를 받으며 지출하기엔 화급무비하거나 국가 안보나 외교상 비밀을 요하는 데 쓰기 위해 비축해놓은 돈이기도 합니다. 영수증 등 증빙 서류를 요하지 않아 이른바 눈먼 돈으로 인식됩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조성된 이 특수활동비가 사실상 비자금 등 비리를 위한 검은 돈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사용처와 수령 절차가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운용의 불투명성 때문입니다. 매년 예산안을 편성할 때도 총액만 공개될 뿐 누가 어떻게 가져다 쓰는지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출처 - SBS


특수활동비가 그동안 고위 공직자나 부서의 용돈처럼 사용된 것은 뿌리부터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품위 유지비, 업무추진비 등으로 불리던 판공비가 그 뿌리이기 때문이죠. 특수활동비는 그중에서도 판공비 항목 아래 정보비라는 이름으로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이 돈은 당시 공무원의 품위 유지나 원활한 직무 수행을 위한 수당으로, 추가 급여처럼 마음대로 가져다 써도 문제가 없는 돈으로 여겨졌습니다.


출처 - SBS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 10여 년간 쓰인 특수활동비는 약 8조 5000억 원에 이릅니다. 1년에 꼬박꼬박 8500억 원씩 세금이 증발한 셈입니다. 과연 어느 정도의 돈일까요? 8500억 원이면 국가 최대 이벤트인 대통령선거를 1년에 3번 치르고도 남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이명박근혜 정권 10여 년간 특수활동비를 가장 많이 끌어다 쓴 건 아니나 다를까 국정원이었습니다. 전체 특수활동비 금액의 절반이 넘는 4조 7000억 원 정도를 국정원 혼자 독식했습니다. 박근혜 대선 조작 댓글부대 운용비나 '자살 당한' 사람들의 마티즈 비용도 포함되어 있겠죠. 국정원 뒤를 이어 국방부가 1조 6000억 원, 경찰청이 1조 2000억 원 남짓으로 군사독재 시절부터 힘있고 뒷배 있는 부처가 특수활동비란 눈먼 돈으로 호의호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JTBC


다시 박근혜의 특수활동비로 돌아오겠습니다. JTBC 취재 결과 박근혜 탄핵 당시 청와대는 비서실장부터 일반 직원까지 수당으로 현금을 돈봉투에 넣어 매월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 청와대 관련 예산의 20퍼센트가 넘는 액수를 자기들 마음대로 돈봉투에 넣어 돌린 겁니다. 청와대를 압수 수색하려고 진입하려던 특검을 그렇게 성심껏 막은 이유가 바로 돈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박근혜의 궐위 상태로 권한 없이 집행된 돈이라면 박근혜 혹은 청와대 책임자의 횡령이나 배임 등의 혐의가 성립하는지 여부를 추가적으로 가려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청와대


이런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과 가족의 개인 식비나 사적 비품 구입 비용은 대통령 급여에서 공제하고 지급하겠다며 특수활동비 절감 방안을 지시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우리 부부 식대와 개·고양이 사료값 등은 내가 부담하는 게 맞다"고 직접 밝히기까지 했죠. 아울러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를 사용목적에 부합하는 곳에 최대한 아껴 사용하고 절감된 재원은 정부가 청년일자리 창출과 소외계층 지원 등을 위한 예산을 편성하는데 활용하겠다고 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에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은 올해 남은 127억 중 42퍼센트에 이르는 53억을 절감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감사원의 특수활동비에 대한 계산 증명지침에 따라 증빙 서류를 작성해 사후관리도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청와대가 특수활동비 축소와 투명성 확보에 솔선수범함에 따라 다른 정부 부처들도 그 뒤를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먹은 밥값은 자기가 내자. 이 당연한 소리가 당연해지기까지 왜 그렇게 힘들었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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