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인수위원회가 지난 4월 28일 '에너지 정책 정상화'라는 제목으로 5대 중점 과제를 발표했습니다. 다른 공약과 마찬가지로 모든 걸 다 쌍팔년도로 되돌리겠다는 다짐을 참 거창하게도 포장했습니다. 어이없는 중점 과제 하나를 짚어볼까요? 윤석열 인수위는 국제적으로 약속한 탄소중립 목표는 존중하되 실행 방안은 원전 활용 등으로 보완하겠다고 합니다. 이건 뭐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같은 소리 아닌가요?

 

출처 – 이데일리

 

그런데 5대 중점 과제 중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발표에서 사실상 전기 민영화의 밑밥을 까는 발언이 나왔다는 점이죠. SNS나 커뮤니티에서 이를 풍자하는 글이 넘쳐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만, 오만가지 표현으로 포장하더라도 전기 민영화는 결국 민영화일 뿐입니다. 민소희가 얼굴 어디에 점을 찍어도 민소희이듯 말입니다.

 

 

시장개방: 해쳐먹고 싶다

지분매각: 팔아넘기고 싶다

경영선진화: 한자리 해먹고 싶다


경쟁체제도입: 공기업만 병신으로 만드는 경쟁을 도입하겠다


이익공유: 물론 비용은 너희가 공유하는


영리 허용: 한번 꽂으면 평생 돈 들어오는 빨대


독점 해소: 민간업체끼리 담합할 건데 어쨌든 독점은 아니니까


경쟁력 향상: 너희를 털어먹는 경쟁력이

 

윤석열 인수위는 '경쟁'과 '시장' 원칙에 기반한 에너지 시장 구조 확립에 나선다며 전력구매계약 허용 범위 확대 등으로 한국전력의 '독점' 판매 구조를 점차 허물고 다양한 수요 관리 서비스 기업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제도가 바뀌면 한전이 전력거래소를 통해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구매한 뒤 독립적으로 판매하던 구조에서 민간 발전사업자가 직접 수요자와 계약을 맺고 직접 공급할 수 있게 됩니다. 인수위는 전기요금의 원가주의 요금 원칙을 확립한다면서 전기 생산에 필요한 연료비 변동분을 요금에 반영하는 원칙을 강화하겠다고 합니다. 말이 좋아 원칙이지 민간 개방이 되고 전기요금을 연료비 변동분에 연동하게 한다면 기름값이 오를 때는 가파르게 전기요금을 올리고 기름값이 내릴 때는 온갖 이유를 붙어 전기요금을 유지하려 할 게 뻔합니다. 수익을 내야 하는 민간 에너지 기업들이 한전처럼 적자를 내며 낮은 전기료를 유지하며 사업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기를 민영화하면 전기요금은 필연적으로 오르게 됩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윤석열 인수위는 경쟁, 시장, 원칙을 떠들며 독점을 타파하겠다고 하지만 위의 풍자에서 드러나듯이 민영화의 다른 말일 뿐입니다. 스마트폰 없는 현대 생활을 생각하기 어려운 것처럼 전기는 필수재입니다. 그렇기에 국가가 모든 국민이 사용 가능하도록 최대한 통제하고 적자를 보더라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출처 - MBC

 

전기를 민영화한 결과 어두운 미래가 현실이 된 사례는 많습니다. 내로라는 선진국인 미국와 일본의 사례만 봐도 답이 보이지 않습니까? 2002년부터 전기 민영화가 시작된 미국의 텍사스주에서는 70% 이상이 민영화된 전기를 씁니다. 항상 무더울 것 같던 텍사스에 기후위기로 인한 2021년 한파로 중대 재난 지역이 선포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죠. 이때 '변동 요금제'가 적용되는 민간 업체에서 시간당 전기요금을 1MW당 50달러에서 9000달러로 올리면서 주민들은 졸지에 1000만 원이 넘는 전기요금을 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습니다. 저택이 아닌 방 세 개짜리 가정집에서 말이죠.

우리나라는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지만 공기업인 한전이 공급하는 전기의 단가가 '상수'로 고정돼 있기 때문에 재난 상황이 닥쳐도 전기요금이 요동치지는 않습니다. 위기 상황일지라도 전력망이 끊어지지 않는 한 적어도 돈 때문에 전기를 못 쓰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전기요금 역시 정부의 심의를 거쳐야 하므로 한전이 마음대로 인상할 수도 없습니다.

출처 - 매일경제

 

전기 민영화의 폐해는 이례적인 한파로 인한 재난 상황에서 빚어지는 전력 불균형으로 일어나는 일만도 아닙니다. 일상적으로 전기 공급에 차질을 빚지 않더라도 민영화되면 전기요금이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2016년 일본은 전기 소매 판매를 민간에 개방했습니다. 첫해 400개나 되는 기업이 전기 공급사업자로 등록했습니다. 300만 가구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런 민간 전력 회사로 갈아탔죠. 그런데 기후위기와 전쟁 같은 요인으로 국제 유가가 오르기 시작하자 전기요금이 급등해 결국 민영화되기 이전에 비해 전기요금이 4배 이상 올랐습니다. 너무 오른 전기요금을 견딜 수 없어 해지하고 기존 전력 회사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민간 전력 회사가 약관에 의해 막대한 위약금을 요구하는 바람에 서민들은 그대로 쓸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400개나 되는 민간 전력 회사가 난립했지만 경쟁으로 전기요금 득을 보기는커녕 담합으로 요금 인상만 계속되고 시설 투자는 뒷전으로 밀려 폐해가 정말 심각합니다. 산업화 시대에 오염된 단어가 많습니다. '적자'가 마치 국가와 서민을 해치는 말처럼 쓰이고 있지만 국가 공공 서비스 기관의 '적자'는 나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 공공 서비스에서 사업성보다 안정성과 지속성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물론 지금 한전처럼 적자가 계속되는데도 성과급 대잔치를 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그렇다고 전기를 민영화하자는 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입니다.

 

 

국민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인수위 대변인실 관계자는 자신의 SNS에 변명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한전의 민영화 여부를 논의한 적이 없다면서 말이죠. 하지만 이조차 민영화에 대한 치장에 지나지 않자 이 게시물마저 다시 삭제한 상황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저열한 인식이 너무나도 투명하게 보이는 순간입니다. 향후 5년간 수많은 역경이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2번을 찍었던 분들이라도 전기, 가스, 수도, 교통, 의료 등 우리 서민의 생존과 생활에 절대 기반이 되는 공공 서비스에 대한 민영화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민영화는 한번 물꼬를 터주면 되돌리기가 너무나도 힘들고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중차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4일 박근혜 대통령은 서울 정부청사에서 열린 공공기관장 워크숍에 참석해 에너지 산업, 민간이 잘하는 부분은 민간에 이양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126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에너지.환경.교육분야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을 의결하고 이를 발표했죠. 예를 들어 한국전력이 독점하고 있는 전력 소매 분야를 단계적으로 민간개방하고 한국가스공사가 독점하고 있는 가스 도입, 도매 시장도 2025년부터 민간직수입제도를 통해 개방하는 등 공공기관과 공기업이 담당하는 분야를 민간에 대폭 개방하겠다는 겁니다.


출처 – SBS

출처 - 경향신문


명목상 수명을 다하여 자본 잠식에 들어간 석탄공사 같은 경우가 있긴 합니다. 이번 발표로 석탄공사와 광물자원공사의 기능은 단계적으로 축소돼 사실상 폐지 수순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전기와 가스 등 국민의 기본공공재는 얘기가 전혀 다릅니다. 박근혜 정부는 경영투명성을 높인다는 핑계로 한국수력원자력과 남동발전 등 발전 5개사와 한전 KDN, 가스기술공사 등 공공기관 8곳을 내년 상반기부터 주식시장에 상장할 방침이라고 밝혔죠.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이런 기관이 주식시장에 상장되면 주주들의 이익이 최우선이 되고 그들의 배당금을 높여주려 할 테니 당연히 가스비와 전기요금이 오르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출처 - 브릿지경제

 

전기 민영화로 서민이 피해를 본 사례는 세계적으로 목격되었습니다. 최근 국민투표 결과 EU에서 탈퇴하기로 한 영국 사회를 한번 살펴볼까요? 1990년부터 2003년까지 13년 동안 소비자 전기요금은 12.7퍼센트 올랐지만, 요금 규제를 폐지한 2004년 이래 전기요금은 2년 만에 무려 51.7퍼센트가 올랐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1998년 미국 최초로 전기를 완전 민영화했죠. 그 결과 화력발전소를 산 에너지 회사들의 담합으로 전기요금이 무려 70배나 올랐습니다. 게다가 전기 발전소 수리를 핑계로 수많은 화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함으로써 2000년과 2005년에 정전 사태를 자초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스포츠경향


전기, 가스 등 에너지 사업 부문의 민영화를 추진하면 소비자 편익이 증가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소비자란 일반 시민이 아닌 해외에서 에너지를 수입하는 민간업자들을 말합니다. SK E&S, GS에너지, 포스코, 중부발전 같은 에너지 직수입 민간업자들이죠. 에너지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로서는 해외에서 전량 사와야 하니 사오는 그들도 소비자라면 소비자라는 식의, 참 말도 안 되는 논리입니다. 

 

국내 전기요금은 현재도 원가 이하여서 시장을 민간에 개방하더라도 요금을 더 낮추기는 어렵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전력 공급이 중단되어 전기요금이 급상승했던 일본과 우리는 상황이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가스공사는 단일 기업으로는 세계 최대의 구매력을 갖추고 있어 만일 민영화 추진으로 구매력이 분산된다면 국내 기업 간의 경쟁으로 되레 가스 도입 단가가 높아질 우려가 큽니다.

 

하지만 민영화로 편익을 누리려는 에너지 수입업자들은 국내 일반 소비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전기, 가스 요금을 인상함으로써 수익을 보전하려 할 테니 결국 진짜 소비자인 서민들의 에너지 지출은 점점 더 늘어날 뿐입니다. 지금도 공공요금이 부담스러운데 말이죠.


출처 - 디지털타임스


공공기관의 기능조정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은 이명박근혜 정권의 무능한 낙하산 기관장들이었습니다. 보은인사로 곳곳에 꽂아넣은 전문성 없는 기관장들이 탐관오리처럼 방만한 경영을 한 잘못은 그대로 두면서 공공기관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민영화를 꾀하겠다는 건 그야말로 맛있는 살을 다 발라먹은 것도 모자라 뼈마저 우려먹겠다는 심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기관과 공기업을 필두로 4대강 사업, 해외 자원개발 등 국가 예산을 탕진하고 자기네 배만 불린 일이 어디 한두 가지입니까?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전 "국민의 뜻에 반하는 민영화를 절대 추진하지 않을 것"이며 "국가 기간망인 철도는 가스, 공항, 항만 등과 함께 민영화 추진 대상이 아니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출처 – 박근혜 공식 트위터


출처 - 프레시안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민영화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공공이 51퍼센트 이상의 지분을 가지는 형태의 상장이라며 상장과 민영화는 다르다는 논리를 펼쳤죠. 산업은행 등이 조선업 부실 기업들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조 원을 퍼준 마당에 공공이 51퍼센트 이상의 지분을 가진다고 해서 공공의 안녕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을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우리 국민은 이명박근혜 정권에 너무 많이 속았습니다.


출처 - SBS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시장개방과 경쟁에 따른 인하 효과 역시 교언영색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장개방은 특정 대기업의 서비스를 장악으로 이어져 오히려 경쟁이 제한되고 서민들은 각종 요금폭탄의 부작용의 희생양이 될 우려가 큽니다. 이동통신 3사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요? 결합상품으로 요금 인하 효과를 가져온다고 했던 주장과 달리 애초부터 높은 기본요금 탓에 약간 싸졌다는 착시효과를 유발했을 뿐입니다. 전기와 가스 부문도 이런 착시효과를 유발해 국민을 속일 뿐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역사학자 전우용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박근혜 정부의 민영화 추진 방침에 대해 "눈 뒤집힌 도박꾼이 마지막에 들고 나가는 게 집문서고, 부패한 권력이 마지막에 팔아넘기는 게 나라 재산"이라고 지적한 뒤, "눈 뒤집힌 도박꾼은 자식까지 망치고, 부패한 권력은 후손에게까지 고통을 떠넘긴다"고 비판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낙하산 인사, 에너지 공기업의 방만 경영 등으로 대한민국을 빚더미에 올려놓은 건 다름 아닌 이명박근혜 정권입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환율 조작과 법인세 인하, 부동산 투기 정책 등을 통해 99퍼센트의 부를 단 1퍼센트의 재벌들이 빨아먹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마당에 박근혜 정부가 한전산하 발전회사들과 가스공사의 민영화 방침을 발표한 것은 각종 재벌로 하여금 에너지 공기업을 인수할 수 있도록 또 한 번 장을 마련해주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상 '공기업의 민영화'라는 말 자체가 잘못된 표현이죠. '국민 재산의 사유화'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따라서 공공기관, 공기업 정상화는 이 지경을 초래한 책임자들과 단물을 빨아먹은 자들을 발본색원하는 것으로부터 방향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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