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내려가고 세월호는 올라오라!"

 

추운 겨울 광장에서 외치던 이 한마디가 드디어 실현되고 있습니다. 2017년 3월 23일 1073일 동안 바닷속에 가만히 잠들어 있던 세월호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1000일이 넘는 시간을 차가운 바닷속에서 보낸 세월호를 꺼내는 데에는 만 이틀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인양 결정은 박근혜 탄핵 5시간 만에 결정됐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세월호 선체는 바지선의 유압 장비로 시간당 3미터씩 끌어올렸습니다. 2.4미터 높이까지 끌어올린 뒤에는 세월호를 바지선에 고정하는 작업이 진행됐죠. 목표했던 13미터까지 끌어올려야 반잠수식 선박에 세월호를 옮겨싣는 2단계 작업에 들어가게 되지만, 인양 과정에서 세월호 선체가 흔들린 데다 바지선 두 척 사이가 좁아져 세월호 환풍구와 바지선 도르래가 부딪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방금 속보를 보니 2시께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대기 중인 반잠수식 선박으로 세월호가 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2척의 잭킹바지선이 와이어로 세월호를 묶어 한 덩어리가 돼 5대의 예인선에 이끌려 반잠수식 선박 쪽으로 이동 중이라고 하는군요. 천만다행입니다.

출처 - 뉴스토마토


고은, 조정래 등 문인들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이렇게 짧은 시간에 끌어올릴 수 있는 세월호가 1000일이 넘도록 바다 밑에 가만히 있어야 했던 이유가 대체 뭐냐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사실 세월호 인양은 업체 선정 당시부터 잡음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시도한 세월호 인양 방식은 상하이 샐비지가 제안했던 방식이 아닙니다. 상하이 샐비지가 제안했던 방식이 실패로 끝나 다른 회사들이 제안했던 방식으로 선회하면서 시간과 돈을 허비했죠. 당시 입찰에 실패한 업체는 기술평가도면에서 1위였고, 이번에 이뤄진 인양 방식으로 세월호를 인양하겠다고 제안했는데도 최종 낙찰은 해수부가 고집한 상하이 샐비지로 선정되어 의구심을 자아냈습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인양이 미뤄진 이유로 정부의 부실한 사전조사와 판단착오를 꼽습니다.


출처 – 추적 60분


사실 지난해 9월 30일 기한 만료를 주장하는 정부에 의해 강제로 해산된 세월호 특조위, 그에 대한 보수단체의 비난과 방해공작 뒤에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통해 이런 사실을 잘 알 수 있었죠.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의 행적을 감추기에도 바빴지만, 유가족에게 약속한 인양에도 무능과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 겁니다. 아니, 사실은 인양을 막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 것이죠.  


출처 - 노컷뉴스


일부 보수언론은 세월호 인양에 든 예산 1000억이란 돈에 집착하며 박근혜가 탄핵당한 지금에도 마치 유가족들 때문에 나랏돈 1000억이 샌다는 식의 프레임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박근혜와 똑같은, 인면수심의 종자들입니다. 나랏돈 낭비가 걱정이라면 박근혜가 탄핵당한 마당에 박정희 기념사업이나 폐기하라고 주문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구미시를 중심으로 짜인 전국의 각종 박정희 기념사업 예산이 1873억 원입니다. 탄신제, 추모제 같은 굿판들에 쓰인 예산이 세월호 인양 비용의 거의 2배에 달합니다. 보수언론이나 일베의 프레임대로라면 나랏돈을 좀 먹는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이 아니라 박정희의 유가족인 박근혜와 그 일당들인 셈입니다.


출처 - JTBC


박근혜 탄핵 후 구속과 진실 규명을 위한 수사가 진짜 싸움인 것처럼,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도 인양 이후부터가 진짜 싸움입니다. 4월 초 인양은 예고돼 왔지만 참사 원인과 진실을 어떻게 규명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합의나 계획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작성한 인양 관련 기본 방침에 선박 자체는 아무 의미 없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침몰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는 애초부터 관심 밖이었죠. 대법원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조사 결과인 '조타 미숙'을 인정하지 않기도 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여전히 미궁 속입니다. 자로의 <세월X> 다큐의 경우 정부의 침몰 원인 전체를 부정했죠. 과적이나 조타 미숙 급변침 등의 원인이 아니라 '외력'이 작용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세월호 선체의 정밀한 조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해수부는 제대로 된 선체 조사 계획은 마련치 않고 대형 선박 참사에 대한 조사 경험도 없는 산하 기관에 선체 조사를 맡기겠다는 한마디뿐이었습니다.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국회가 나서자 21일에서야 선체 조사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죠.


출처 - 경인일보


아직 9명의 미수습자가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과 이를 밝히기 위한 싸움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지난 22일 오후 6시 38분께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단구사거리에서 세월호 리본 모양의 구름이 촬영됐습니다. 자연적인 구름인지 비행 항적에 의한 것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의 순간을 보며 하늘나라에 있는 아이들이 화답한 것이 아닌가 싶어 반가운 마음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그 날까지 함께 힘을 내야겠습니다.

 

지난 1월 12일, 안산 단원고에서 눈물의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학생과 교사 등 262명이 희생되어 2000년대 최악의 사건으로 한국 역사에 기록될 세월호 참사. 해가 두 번 바뀌어 살아남은 사람들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지만 아직 배에 희생자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월호 참사의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 아이들과 유족들의 억울함도 풀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생존 학생들이 졸업할 정도로 시간이 지난 지금, 세월호 참사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요?


출처 – 서울신문



망언만 무성했던 세월호 청문회

 

생각비행은 지난 연말 피해자들의 뒤통수를 치듯 한일 양국 간 졸속으로 합의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말씀드리며 박근혜 정부가 과연 세월호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아니 최소한 방해는 하지 않을지 우려된다는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예상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진상 규명은 커녕 이를 수습할 의지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밝혀지는 것은 정부 차원에서 세월호 진상 규명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뿐입니다.


출처 – 세월호 유가족방송 416 TV 유튜브


지난해 12월 14일에 열린 세월호 참사 특조위 1차 청문회 당시 구조에 나섰던 해경이 유족들 앞에서 배에 타고 있던 "아이들이 철이 없어" 배 밖으로 나오지 않아 탈출하지 못했다는 망언을 해 큰 분노를 샀습니다. 그 외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로 일관했습니다.


그들로서는 기억이 나면 큰일 나긴 할 겁니다. 《미디어오늘》의 취재 결과를 보면 당일 구조 임무를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해경123정은 현장 도착 직후부터 사진과 영상을 카톡으로 보내느라 시간을 허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청와대는 세월호 승객을 구조해야 할 골든타임에 해경 핫라인 등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할 사진과 영상 자료를 보내라며 최소한 7차례 이상 독촉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습니다. 심지어 청와대는 다른 일 하지 말고 영상부터 띄우라고 독촉하기도 했습니다.


10시 25분의 핫라인 통화에선 다음과 같은 지시가 내려진다. 


청와대: 오케이, 그다음에 영상시스템 몇 분 남았어요?

해경: 거의 10분정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청와대: 예.

해경: 10분 이내에 도착할 거 같습니다.

청와대: 거 지시해가지고 가는대로 영상바로 띄우라고 하세요. 다른 거 하지 말고 영상부터 바로 띄우라고 하세요.

해경: 예.


[단독] 해경 세월호 현장 도착해서 한 일은 청와대에 카톡 전송


구조하러 간 해경에게 구조보다 먼저 영상부터 띄우라고 했으니 박근혜 정부의 일 처리가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는지 잘 드러납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한 사진과 영상 자료를 요구하던 청와대는 정작 구조를 위해서는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고, 구조를 위한 지원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보고를 받아야 할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은 지금도 오리무중입니다.



해수부 공무원이 세월호 유족 고발하라고 사주했다


사태 예방과 수습에 놀랍도록 무능했던 박근혜 정부는 이후 세월호 참사를 국민의 기억에서 지우는 데는 기가 막힌 조직력과 행동력을 선보입니다.

 

출처 - KBS


세월호 참사 보도가 어느 순간부터 TV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들지 않으셨나요? 청와대에서 직접 개입해 세월호 보도를 막은 사실이 폭로되었습니다. 그것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망언으로 논란을 낳았던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이 폭로한 것입니다. 청와대가 길환영 KBS 사장을 통해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해경에 대한 비판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세월호 참사 보도와 관련해 청와대가 KBS 인사에 직접 개입했다는 의혹도 터져 나왔습니다. 과연 청와대의 이런 개입과 조작이 KBS에 국한된 것이었을까요?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열렬히 지지하며 전범기를 꺼내 들기까지 한 홍위병들처럼 세월호 416연대 내에 보수단체 회원이 암약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피해 유가족과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에 보수단체 회원들이 몰래 가입해 동향을 살피고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확산시켜온 것이죠. 이들은 416연대 내에서 활동하며 흠이 될 법한 발언이나 행동을 스파이처럼 훔쳐 듣고는 이를 보고서로 만들어 박근혜 정부 쪽에 보고해왔다고 합니다. 외부든 내부든 세월호 특조위를 흠집 내려는 정보 유출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죠.

 

출처 - 미디어오늘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이 보수단체와 결탁해 특조위 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해온 사실이 폭로되었다는 겁니다. 세월호 특조위에 파견된 해양수산부의 3급 공무원이 세월호 유족에 대한 고발과 특조위 해체 주장을 해온 보수단체와 결탁한 정황이 드러난 것인데요, 당시 해수부 공무원은 보수단체 대표에게 세월호 유가족 중 홍모 씨를 왜 고발하지 않느냐며 "다 조국을 위하는 일이니 홍씨를 재차 고발해 달라"고 사주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사주로 인해 유족인 홍 씨는 대통령 명예훼손과 국가보안법으로 고소를 당했죠.

 

이는 일반 공무원 몇몇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 차원에서 조직적인 특조위 활동 방해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들의 '최고 존엄'을 위해서는 아이를 잃고 슬퍼하는 엄마조차 빨갱이로 몰아 고소하기까지 했으니, 박근혜 정부는 무능할 뿐 아니라 사악하기조차 합니다.

 

출처 - 민중의 소리


결국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26일 광화문광장에서 해수부의 세월호 유가족 핍박 사주와 특조위 조사활동 방해에 대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사주한 해수부 공무원과 직원을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릅니다.

 

출처 - 뉴시스


같은 날 오후 한강에서 125톤 규모의 유람선이 운항 도중 가라앉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다행히 승객과 승무원 등 11명은 무사히 구조됐지만 영동대교 부근에 가라앉은 유람선은 아직 예인되지 못했고 침몰 원인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크고 작은 선박 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이젠 서울 한복판에서 유람선이 가라앉는 일마저 생겼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출처 - 다음 영화

 

얼마 전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의 1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를 본 관객수가 3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저희도 이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만, 사실 독립영화의 특성상 1만 관객을 동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나쁜 나라》의 흥행은 경이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영화에 소개된 《나쁜 나라》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2014년 4월, 진도 앞바다에서 생중계된 세월호 침몰사건은 304명의 희생자가 속해 있는 가족들에게 평생 지고 가야 할 상처를 안겨줬다. 그중에서도 단원고 학생들의 유가족들은 자식 잃은 슬픔을 가눌 틈도 없이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 앞에서 노숙 투쟁을 해야만 했다. 그들의 질문은 단 하나,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는 것. 하지만 그 진실은 1년이 지나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평생 ‘유가족’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마주친 국가의 민낯, 그리고 뼈아픈 성찰의 시간을 그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투쟁 1년의 기록.

 

지난 30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나쁜 나라》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토론토 사람들'이 노스욕 시청 대회의실을 빌려 무료 공동체 상영을 한 것이고 합니다. 해외에서 세 번째로 열린 상영회였는데, 250여 명의 관객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세월호 진실 규명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입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영화 상영 후 요크 대학교에서 온 현지 학생은 "그런 사고가 일어났는데 어떻게 바로 조사를 들어가지 않았는지, 가족들이 어떻게 저렇게 해야 하는지 여기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지요.


세월호 인양은 7~9월로 예정돼 있는 데 반해 특조위의 활동기한은 6월까지입니다. 특별법 7조 1항에 따르면 위원회의 의결로 한 차례 활동기간을 6개월 이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대체 얼마나 무능하길래, 혹은 대체 무엇이 밝혀지는 게 그렇게 두려워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이렇게까지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걸까요? 세월호에 아직 사람이 있습니다.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사도>는 수차례 만들어진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황산벌> <왕의 남자> 등 사극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던 이준익 감독과 신들린 연기를 선보인 배우 송강호, 유아인에 힘입어 흥행은 기세가 대단합니다. '왕으로서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던 아버지'라는 역사적 실화가 주는 울림이 아무래도 영화 흥행의 가장 큰 요인이 아닌가 합니다. <사도>는 실록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자격을 갖춘 왕자'를 바랐던 왕과 '자애로운 아버지'를 바랐던 아들의 엇갈린 감정으로 여백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오늘날 세대론과 맞닿는 부분도 보이더군요.

 

출처 - 조선일보


사도세자처럼 죽고 싶지 않으면 공부하라는 엄마들


영화 <사도>가 40대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라고 합니다. 10대 학생인 아이들을 대동하고 관람하는 엄마들이 많다는 건데요, 아이들의 부족한 국사 교육을 위한 목적일까요? 아니면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조선일보》의 취재 내용에 의하면 일부 엄마들이 영화관을 찾는 이유가 좀 섬뜩하기도 합니다.

 

출처 - YTN

 

"영화에서 아버지 영조의 뜻을 어기고 공부를 게을리 한 사도세자가 왕이 되지 못한 채 결국 뒤주에 갇혀 죽는 걸 보면서 아이들이 느끼는 게 분명 있을 것"이라며 "요즘 사춘기라 그런지 부쩍 말을 안 듣는데, 이 영화가 스스로 '사도세자처럼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부는 영화 '사도' 바람 (《조선일보)


이는 달을 가리키는 이의 의도와 달리 손가락을 쳐다보는 상황에 해당합니다. 영조-사도세자 부자 사이에서 벌어진 비극을 다룬 영화를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성공한다'는 교훈을 가르치는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니까요. 영화 속에서 영조의 지나친 교육열과 권위주의는 사도세자를 망치는 데 큰 몫을 차지하는 요인입니다.


과연 영화를 본 아이들은 일부 강남 엄마들의 생각대로 죽지 않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도세자가 갇혀 죽은 뒤주를 보고 '저거 현실에도 있는 건데?'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작년에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스터디룸은 사실상 현대판 뒤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군요. 아이들이 이런 상황을 이상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영화 <사도>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엄마들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엄마는 "아이들에게 역사 공부가 될 것 같아 극장엘 갔는데, 나올 땐 오히려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며 "영조처럼 자식을 몰아붙이다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으니까요.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지나치게 과열된 교육열과 자식 사랑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장을 어지럽히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범탕'에 '총명 주사'까지 수험생을 위한 영약 천태만상


2015년 수능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금, 강남에 수능 보약 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캥거루 꼬리, 철갑상어, 산삼과 함께 캐나다산 하프물범을 달여서 만든 물범탕이 수험생에게 좋다는 소문 때문에 한 달에 50만 원을 넘게 들여 아이들에게 먹이는 부모가 많다고 합니다. 강남 엄마들 사이에선 수험생인 자식에게 물범탕을 안 먹이면 죄짓는 것이라는 얘기마저 돌고 있다는군요.

 

출처 - 조선일보


이뿐 아닙니다. 강남 성형외과는 수능 주사가 주가를 올리고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영양제와 태반 성분을 섞은 주사가 기억력 증진과 학습 능력 향상에 좋다고 하면서 '총명 주사' '집중력 주사' 등의 이름을 내걸고 수험생을 대상으로 놓아준다고 합니다. 한 번 맞는데 10만 원 정도 든다고 하니 만만치 않은 가격입니다.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총명탕과 달리 단기간에 효능을 볼 수 있다는 수능 응급약 '수능환'은 한 알에 5만 원이라고 합니다. 정력에 좋다거나 수험생에게 좋다는 건 안 팔리는 게 없다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넘길 일이 아닌 셈입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의사들은 보양식이나 환으로 집중력 혹은 기억력을 향상하거나 장기간 유지하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평소에 먹지 않던 약품을 잘못 복용하면 오히려 컨디션을 망쳐 수험생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강남 엄마들의 자식 사랑에 대한 집념은 사이비 종교에 대한 광신과도 같아서 불합리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죽는 나라는 결국 어른들이 만드는 것


사실 영화 <사도> 흥행으로 드러난 강남 엄마들의 호들갑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닙니다. 올 초에 개봉한 영화 <위플래쉬>를 자기 편할 대로 왜곡해서 해석한 강남 엄마들의 호들갑이 있었으니까요. <위플래쉬>는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 명문 음대에 입학한 주인공이, 실력은 최고지만 최악의 폭군이기도 한 플렛처 교수에게 발탁되면서 벌어지는 광기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사도>의 송강호처럼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플렛처 교수 역의 J. K. 시몬스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기도 했지요. 올해 갓 서른이 된 감독의 사실상 데뷔작인데도 저예산 독립영화로는 의외라고 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죠. 

 

출처 – 다음 영화


영화 제목인 '위플래쉬'는 채찍질을 뜻하기도 합니다. 플렛처 교수는 문자 그대로 주인공을 채찍질하듯 잡아가며 가르칩니다. 아니, 가르친다기보단 괴롭힌다는 말이 더 적합할 것 같군요. 플렛처 교수의 광기 어린 지도에 따라 점점 몰입해가는 주인공의 광기가 맞물려 그야말로 불꽃이 튀는 연주 장면을 그려내는 감독의 감각이 탁월하긴 합니다. 그런데 일부 강남 엄마들은 이 영화를 스파르타식으로 애를 잡아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자기합리화의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영화 공개 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주인공이 30대에 약물 중독으로 죽거나 자살했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어쩌면 영화의 메시지와 달리 일부 강남 엄마들은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한 채 학벌이란 도박에 자신과 아이의 인생을 판돈으로 내걸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 한겨레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11년째 자살률 1위를 지키며 자살률이 세 배나 증가하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청소년 사망의 원인 중 자살은 줄곧 1위였습니다. 그런데 올해 발표된 통계를 보면 2015년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 때문에 사고로 인한 사망이 1위로 올라서고 자살이 2위였습니다. 

 

 

출처 - 생각비행

 

경쟁 중심적인 교육 상황을 만들어놓고 영어·수학을 잘하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일류학교를 졸업하면 출세가 보장되는 전근대적인 학벌 사회를 바꾸지 않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선생님과 어른의 의견에 무비판적이고 순응적인 아이를 양산하는 교육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배가 기울고 물이 차올라도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따라 기다리다 희생된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인은 우리 기성세대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생각비행이 펴낸 책,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사랑으로 되살아나는 교육을 꿈꾸다》의 저자 김용택 선생님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건강한 사회란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행복한 사회다. 그런데 사회적인 존재여야 할 인간을 개인적인 존재로 키우고, 국영수 점수로 가치와 서열을 매기는 교육으로 다수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리 없다. 학벌로, 경제력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줄 세우고 차별하는 사회를 만들어 누가 행복하겠는가? 무한경쟁에서 학교를 구해내는 것만이 사회적 존재인 인간을 참되게 기르는 건강한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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