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며 4관왕을 차지했습니다. 한국 영화 100년의 해인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데 이어 한국 영화의 새로운 100년 역사를 쓰는 첫 해에 이룩한 실로 놀라운 쾌거입니다. 올해부터 '외국어영화상'에서 '국제영화상'으로 이름을 바꾼 상의 수상은 점쳐진 바 있지만, 그 이외의 주요 부문인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휩쓸 줄은 몰랐습니다. 예상 밖의 일이라 기쁨도 더 큽니다.




〈기생충〉이 세계 영화계의 지지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해외 영화, 그것도 영어도 아닌 한국어로 된 영화에 작품상을 줄 것을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작년에 멕시코어로 된 멕시코 영화 〈로마〉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작품성을 지녔음에도 감독상 수상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세계인이 목도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거의 '죽음의 조'라고 할 만큼 훌륭한 작품들과 쟁쟁한 감독들이 후보인 상황이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 쿠엔틴 타란티노, 샘 멘데스 같은 거장의 틈바구니에서 〈기생충〉은 전통의 강호를 모조리 꺾고 트로피를 거머쥔 셈입니다.


출처 - 한국일보


그런 의미에서 봉준호 감독의 작품 〈기생충〉은 한국 영화사뿐 아니라 세계 영화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혔습니다. 한국 영화 사상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것도 최초이며 수상한 것도 처음이지요. 또한 영어가 아닌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 역시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 첫 언어가 한국어 영화라니 참으로 뿌듯합니다. 한 영화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한 것은 역대 두 번째이자 64년 만의 일이라고 하죠. 아시아계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것은 대만 출신인 이안 감독에 이어 역대 두 번째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안 감독은 대만계 미국인으로 현재 할리우드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으니 사실상 봉준호 감독이야말로 처음으로 가장 한국적이자 아시아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준 감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출처 - 경향신문

 

그래서인지 산드라 오를 비롯한 한국계 미국인 배우들을 비롯해, 아시아계 미국 영화인들은 마치 자기 나라의 일인 것처럼 함께 기뻐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시상식장에서 특유의 달변으로 같은 후보에 오른 감독들을 기쁘게 하는 수상 소감을 선보였습니다. 이로 인해 국내는 물론 해외 곳곳에서 상찬을 받았죠. 시상식을 지켜본 모두가 벅찬 감정을 느끼고 기쁨을 만끽한 역사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출처 - JTBC


그 기쁜 순간에 우리에게 또 하나의 역사가 존재했음을 잊지 맙시다. 〈기생충〉이 4관왕이 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우리나라는 아카데미 후보작 하나를 더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오른 〈부재의 기억〉입니다.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가 '부재'했던 당시의 기억을 담은 다큐멘터리죠. 이날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에는 〈기생충〉 팀과 또 다른 한 무리의 한국인이 섰습니다. 세월호 유족인 단원고등학교 2학년 8반 장준형 군 어머니 오현주 씨와 2학년 5반 김건우 군의 어머니 김미니 씨였습니다. 검은 자켓에 검은 드레스 차림을 한 이들은 〈부재의 기억〉의 감독 이승준, 프로듀서 감병석과 함께 노란 명찰을 달고 레드카펫에 섰습니다. 이들은 단원고 세월호 희생자 아이들의 얼굴이 새겨진 노란색 천과 함께였습니다. 

 

출처 - 감병석 프로듀서 페이스북

 

수상을 하지는 못했으나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라 한국뿐 아니라 세계인이 세월호 참사와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기릴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역시 수상이 목적이 아니었고, 세월호 참사가 한국의 비극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 어디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희생자 어머니들과 참석했다고 밝힌 바 있죠. 현재 제작진과 배급사의 뜻에 의해 〈부재의 기억〉은 유튜브에 작품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꼭 한번 감상해보시길 권합니다.


출처 – Field of Vision 유튜브


되돌아보면 이번에 4관왕이 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이명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라 일이 들어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고 하죠.

 

출처 -  경향신문

 

그러니 시민들의 힘으로 국정농단을 끝내고 대통령을 탄핵했기에 오늘 이 같은 영광이 있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출처 - BBC


한국인으로서 뿌듯함과 기쁨을 만끽한 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되돌아봅시다. 〈부재의 기억〉에 얽힌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 처벌은 현재 진행형인 과제입니다. 또한 영화 〈기생충〉이 세계 영화계를 제패했다는 영광에만 주목할 게 아니라 그 영화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양극화와 불평등, 연대 없는 각자도생이 우리 사회를 지옥으로 만들었다는 주제의식을 곱씹어봐야 합니다. 사람을 갈아넣지 않아도, 표준계약서를 쓰고 정당한 노동 환경 조건에서 영화를 찍어도 이런 엄청난 결과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통해 건진 진정한 성취가 아닐까 싶습니다.

태국 치앙라이 탐루엉 동굴에 17일간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해 세계의 축하를 받은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과 코치가 지난 18일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태국 치앙라이 매사이의 무 빠(야생 멧돼지) 축구클럽에 소속된 선수들과 코치는 자신들의 팀 유니폼을 차려입고 등장했습니다. 자신들을 구조한 태국 네이비실 대원들과 치료를 담당한 의사 등과 함께 축구공을 차는 모습으로 건강을 증명했고, 밝은 얼굴로 동굴 고립 당시 상황을 풀어놓았습니다. 한 소년은 동굴에 갇혔을 때 집에 가서 엄마에게 꾸중을 들을까 봐 겁났다고 말해 그 순진함에 사람들이 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모두 무사히 구조되어 웃는 얼굴로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건 당시만 해도 생존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웠고 이들을 구조할 수 있을지 세계의 걱정이 집중되던 사건이었죠. 지난 6월 23일 선수 가운데 한 명의 생일파티를 위해 탐루엉 동굴에 들어갔다가 갑작스러운 폭우로 동굴 내 수로에 물이 불어나면서 이들은 밖으로 나올 수 없었습니다. 동굴 앞에서 팀원들이 타고 다니던 자전거와 가방, 축구화 등을 발견한 태국 당국은 이튿날부터 수색에 나섰습니다. 아이들과 코치는 실종 열흘째인 지난 2일 영국 잠수전문가들에 의해 동굴 안쪽 깊숙한 에어포켓 공간에서 생존이 확인됐던 바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아이들의 생존을 확인한 태국 당국은 전 세계와 공조를 통해 이들의 구조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아이들의 생존을 확인한 사람이 영국 잠수 전문가들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 공군 구조대원 30명을 비롯한 동굴 잠수 및 구조 분야에서 활동하는 세계적 전문가들을 불러모았습니다. 한편 이 아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태국 정부는 통상 외교관에게만 부여하는 면책특권을 약속하며 세계에서 전문가들을 초빙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동굴 잠수 및 구조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호주의 의사 해리스와 2명의 보조 인력을 초청했는데요, 그들이 임무에 최선을 다했지만 일이 잘못됐을 경우 명시적으로 보호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에 응한 해리스는 4km가 넘는 구간을 잠수해 들어가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점검했고, 그의 진단 결과는 생존자들의 구조 시기와 순위를 정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쓰였습니다. 태국 당국은 동굴 곳곳에 고인 물을 빼내는 한편 아이들에게 수영과 잠수장비 이용법을 가르친 뒤,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3일에 걸쳐 안전하게 전원을 구조하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출처 - 뉴시스


동굴에서 종유석에 맺힌 물만 먹고 살아 2kg 정도 체중이 줄고 기력이 없긴 했지만 아이들의 생명에는 이상이 없었다고 하죠. 이는 당시 아이들과 같이 갇혔던 엑까뽄 코치가 아이들을 잘 돌보며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엑까뽄 코치는 음식물을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굶은 채 구조를 기다렸습니다. 이 때문에 발견 당시 건강 상태가 가장 나빴던 것으로 알려졌죠. 살신성인하며 아이들을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돌본 엑까뽄 코치는 아이들이 모두 무사히 구조된 다음 마지막으로 동굴을 나왔습니다. 이런 미담 때문인지 엑까뽄 코치는 태국의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런 그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함께 무국적 난민이 되었다는 사실이 또 한 번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했죠.


출처 - JTBC

 

태국 동굴에 갇힌 유소년 축구팀을 무사히 구조하는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습니다. 정부의 빠른 대처, 적확한 판단을 내린 전문가, 사건 현장에서 아이들을 돌본 코치의 살신성인 등을 보면 세월호 참사와는 거의 정반대일 정도로 훌륭한 대응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9일 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가 초동 대응과 구조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며 국가가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년여 만에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겁니다.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고 피해를 키운 정부와 해경, 무리한 증·개축을 한 청해진 해운, 사고 당시 단원고 학생들을 버려두고 제일 먼저 달아난 선원들과 선장 같은 탐욕스러운 어른들, 제대로 된 대처와 피해 보상을 등한시했던 정치권과 공권력 등등, 이 모든 대응에 국가의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겁니다.


출처 – 연합뉴스


태국 정부와 사회, 그리고 언론은 동굴에 갇힌 아이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침착함을 유지했습니다. 구조에 관계없는 사람의 출입을 제한하고, 감정적인 보도가 이뤄지지 않도록 정보를 통제했습니다. 태국 정부는 구조 작업 과정에서 구조대원 1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차분함을 유지했습니다. 나롱싹 오소따나꼰 치앙라이주 주지사는 실종사건 도중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하지만 태국 정부는 현장 책임자였던 그에게 계속 지휘권을 부여하며 구조 과정을 책임지도록 했습니다. 그는 다국적 구조팀을 지휘하는 책임자로서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태국 정부는 순조롭게 구조가 이뤄지는 와중에도 구조된 아이들의 이름조차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구조되지 못한 소년들의 가족이 겪을 수도 있는 감정적인 동요나 혼선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출처 - 뉴스1

 

소년들의 가족들도 구조 순서를 일절 묻지 않는 성숙한 자세로 구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동굴 속에 갇힌 태국 소년 중 한 명인 나이트의 가족을 취재한 AFP는 그의 생환을 기원하며 생일 파티를 열 수 있기를 기도하는 나이트의 동생의 목소리를 소개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오빠가 살아 돌아올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냉장고 안에 둔 케이크를 버리지 않았다." 나이트라는 별명을 가진 소년은 실종 당일인 지난 6월 23일 17세 생일을 맞았다고 하죠. 가족들은 구조 작업이 성과 없이 흘러갈 때도 그가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출처 - phonphotchanan jitasa

 

태국 치앙라이주 정부는 과도한 대중의 관심이 아이들에게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해 18일 열린 인터뷰 이후 아이들은 물론 가족들 또한 언론 인터뷰에 일절 응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생환자와 가족의 생활을 방해하는 경우 아동보호법에 따라 기소될 수 있다는 경고를 잊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깔끔한 마무리입니다.

 

출처 - MBC

 

하지만 우리는 어땠습니까? 생각비행은 세월호 참사 당시와 그 이후 구조 과정에서 드러난 언론과 방송의 보도 행태를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주류 언론이라는 기사를 통해 질타한 바 있는데요, 권력과 자본에 굴복한 언론과 방송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사고 당시부터 오보를 속출하고 감정적이고 선정적인 보도 경쟁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어둡게 했습니다.

 

출처 - MBC

 

JTBC는 세월호 참사 당시 뉴스특보를 전하며 생존 학생과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끔찍한 일을 겪은 당사자에게 절대적 안정이 중요한 순간에 피해생존자를 생방송으로 인터뷰한 것부터가 잘못이었습니다. 문제가 지적되자 JTBC 측은 이에 대해 공식 사과했지만 인터뷰를 시도한 것 자체가 매우 부적절한 취재행위였습니다. 한편 공영방송 MBC는 세월호 희생자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단원고 학생들의 여행자보험을 들먹이며 사고 피해자들이 받을 보험금을 소개하는 어처구니없는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그러고도 MBC는 사과조차 하지 않았죠. 

 

출처 - 아이엠피터

 

일부 언론과 방송은 피해생존자들에게 세월호 내에서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을 요구하기도 하는 등 재난보도 준칙을 어기는 행위로 질타를 받았습니다. KBS는 박근혜 정권의 눈치를 보며 권력에 굴복하여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기레기(기자+쓰레기) 취급을 받았고, KBS와 MBC 내부에서 정권과 권력에 항의하며 진실을 전하려 했던 기자들과 PD들은 회사를 떠나야 하는 상반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2014년 4월 17일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세월호 사건을 취재하는 언론들의 무분별한 취재경쟁을 중단하고 취재와 보도에 신중을 기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언론이 재해보도준칙에 입학하여 다음의 원칙을 준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 신속한 보도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 감정적, 선정적 어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 피해 상황을 반복, 중복하여 보도하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
- 피해 상황을 전달하는 것보다 구조대책 및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추가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보도에 주력해야 한다.
- 보도는 피해자를 안심시키는 내용이어야 하며, 피해자와 유족, 피해생존자의 명예, 사생활, 심리적 안정을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 피해생존 청소년과 아동에 대한 취재는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 공익에 상당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피해자와 유족, 피해생존자를 담은 근접촬영 화면의 사용은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4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겨우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는 형국입니다. 태국 동굴소년 구조와 세월호 구조, 과연 무엇이 달랐을까요? 2018년 현재 대한민국은 달라졌을까요? 두 사건의 교훈을 곱씹어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4년입니다. 생각비행이 출간한 책에서 여러 저자분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피력하셨는데요, 여기 간략히 정리합니다.  

 

 

요즘은 문밖을 나서 조금만 걸으면 거리에 걸린 노란 바탕색 현수막 천에 박힌 검정색 글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중에는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안산의 단원고등학교 학생들과 유가족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 애도도 있고, 정치인들의 ‘보여주기’식 행위도 있습니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한 후 참 많은 진단의 언사가 있었습니다만, 단연 정확하고 포괄적인 진단은 ‘대한민국 전체가 침몰 중’이라는 선언(!)일 것입니다.


대체 우리는 어디에 빠져서 침몰하고 있는 것일까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는 서방 식민 제국의 자본주의가 무차별적으로 이식되면서 자체의 역량을 키울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급격하고 과격하게 자본주의로 편입되었습니다. 한국은 전후 복구와 재건이 최우선 과제가 되면서 자본의 개발과 성장 논리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사회가 되었고, 급기야는 사회 전체가 무한 증식하는 자본의 거대한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그 무서운 바다에서 구명해줄 보트나 조끼 따위가 있긴 하지만 그 수는 턱없이 모자라고 또 아무나 타고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야말로 피튀기는 생존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보트를 탄 사람들과 구명조끼라도 입은 사람들,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버티며 살벌한 각축전을 벌이는 사람들 사이에는 그 어떤 연대도 연민도 없습니다.


 까딱 잘못하다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타인을 향한 서슬 퍼런 차가움만 있을 뿐입니다. 살기 위해 싸워야 하는 삶 속에선 자존감은커녕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갖기 어렵습니다. 쌍용자동차 부당 해고 노동자들의 힘겨운 투쟁이 그렇고, 평생의 삶터를 지키기 위해 밀양에서 송전탑 반대투쟁을 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하루가 그렇습니다.

 

자본 권력의 공격에 ‘인제, 그만!’이라고 외칠 때도 되었는데, 아니 한국 사회의 내구력은 진작 ‘임계점’에 달했는데, 왜 우리는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죄 없는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고 있는 것일까요?

 

―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 옮긴이 후기 중에서

 

 

 

 

이 글은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분들과 그 가족들을 위로하려 쓰는 글은 아닙니다. 저는 그런 고통을 겪어본 적이 없기에 그 무게를 알지 못하고, 글 몇 줄로 나서서 위로할 자격은 더욱 없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참사를 목도한 우리도 심적으로 큰 상처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야기하는 분노와 환멸도 있지만, 어린 학생들의 때아닌 희생, 그리고 그로 인해 환기된 죽음 자체의 어두움이 전하는 절망과 허무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종교가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풀어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저 자신에게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우리는 죽어서 우리를 만들어준 별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세상을, 새로운 삼라만상을 탄생시킵니다. 이 광대한 순환의 드라마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인간적인 처연함과 안도감이 교차합니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용을 써 본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요. 부자가 되고 유명인이 되고 나아가 세계를 정복한다 한들 광대한 시공간 속에서는 티끌이자 찰나일 뿐입니다. 은하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세운다 한들 긴 세월이 지나면 결국 폐허로 변하고 맙니다.


하지만 우리가 별에서 와서 별로 돌아가는 우주적 순환 과정의 신성한 일부라는 사실과 우리를 이루던 요소들이 머나먼 시공을 넘어 새로운 세상의 씨앗이 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떤가요. 그간 세상을 떠난 모든 사람과 앞으로 죽음을 맞이할 우리와 한때라도 여기 존재하던 모든 것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 죽음의 허망함이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절실한 소중함으로 뒤바뀝니다.


그렇다 하여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이 거대한 의미만을 붙잡고 살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의 일은 이곳에서 풀어나가야 합니다. 죽음은 삶의 귀결이지만, 삶이 죽음을 ‘목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특히 때아닌 어린 죽음에 관해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삶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고통과 슬픔을 줄이고 악을 단죄하는 일은, 탄소나 인 같은 원소로 이뤄진 존재가 아닌 의지와 양심이 있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당연한 책무입니다. 지옥 같은 배 속에서 먼저 떠난, 어쩌면 아직도 버티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남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말이죠.


하지만 분노를 표출하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생각만으로는 이미 떠난 사람들로 인한 공허함을 채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 훌륭한 세상을 만든다 한들 아이들이 되살아나 그곳에서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천국이 정말 있어서 모두가 그곳에 갔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 비뚤어진 나라에서 어려서부터 겪어야 했던 삶의 무게와 죽음의 공포가 한낱 꿈이었을 뿐이고 이제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누리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저는 순진했던 우리 아이들이 조금 먼저 별을 향해 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도 천천히 그곳을 향해 가고 있고요. 언젠가 때가 되면 만나서, 살아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거대한 기적의 신성한 일원으로 함께할 거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미안하지만, 그때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중에서

 

 

 

 

2014년 4월 16일… .
오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족들의 아픔에 함께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공교육의 정상화를 꿈꾸다》 중에서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여 탑승자 476명 가운데 29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7년 11월 현재까지 5명은 실종(미수습) 상태다. 대참사가 일어난 그날,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대통령이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의 약 7시간 행적이 공백으로 남아 무수한 추측이 난무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문제가 불거지자,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행적은 국가 기밀 사항이라 절대 발설할 수 없다. 만약 그랬다가는 북한의 공격 목표가 되어 국가 안보가 위험해진다. 세상 어디에도 대통령의 행적을 일일이 다 국민들한테 밝히는 나라는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된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600년 전 조선왕조 시절에도 국가 지도자의 행적은 국가 공식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 사관들의 손에 의해 낱낱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태종 임금은 말을 타고 사냥을 나갔다가 낙마한 일이 창피해서 실록에 적지 말라고 했는데, 그런 발언조차 고스란히 실록에 담겨 있을 정도다.

 

이런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데도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과 관련된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않거나, 그나마 남아 있는 기록조차 폐기한 흔적이 역력하다. 행여 기록이 남겼다가 비판을 받을까 봐 없애버린 것이다. 이것이 역사 말살이 아니고 무엇인가?

 

조선이 구시대적인 전제왕권 국가라서 현대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과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론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한국과 같은 현대 민주주의 국가이자, 보수층이 본받아야 할 선진국이라고 그토록 선망하는 미국은 어떨까? 미국의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은 전 세계 테러리스트들의 최고 공격 목표다. 이 때문에 미국 백악관에는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에 대비하여 중무장한 경호 부대가 배치되어 있다. 그렇지만 미국 대통령의 모든 행적은 낱낱이 기록되고 백악관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다.

 

똑같은 국가 지도자인데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행적을 다 공개했고, 한국 박근혜 대통령은 행적을 끝까지 숨겼다. 이제 와서 보면 2014년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무슨 일을 했느냐보다 대체 7시간의 행적을 왜 감추려고 했는지가 더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 《부끄러운 이명박근혜 9년》 중에서

 

생각비행은 세월호 참사와 희생자 한 분 한 분을 잊지 않겠습니다. 시대적 소명으로 사회에 유익한 책을 펴낼 것을 약속드립니다. 아울러 세월호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는 그날까지 연대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잃어버린 7시간에 대한 봉인이 풀리고 있습니다. 지난 28일 청와대 캐비닛 문건 의혹 등에 대한 검찰의 수사 발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간 잃어버린 7시간에 대한 숱한 루머가 있었죠. 정윤회와의 밀회설, 종교의식 참석설, 프로포폴 투약설, 미용 시술설 등 온갖 추측과 보도가 난무했습니다. 하지만 검찰 수사 발표로 드러낸 진실의 일부를 보면 어떤 의미에서 루머보다 더 황당합니다. 박근혜는 최순실이 데리러 올 때까지 그냥 멍하니 있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다녀온 일정 외에는 종일 관저에 머물렀고, 최순실과 미용사 등을 제외한 외부인은 출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동시에 당시 박근혜의 청와대와 김장수, 김기춘, 김관진 등 연루자들이 입을 맞추고 문서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검찰은 대통령 보고 및 지시 시간을 임의로 바꾸고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을 무단 수정한 김장수, 김기춘, 김관진 등을 재판에 넘기고 그 밖에 해외로 도주한 부역자들도 적색수배 등을 내렸습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무엇보다 박근혜가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에게 구조를 전화로 지시한 시각은 오전 10시 15분이 아니라 골든 타임이 지난 10시 22분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첫 서면 보고도 10시 19~20분으로 드러났고요. 탄핵 이전 10시에 첫 서면 보고가 들어갔다는 주장과 10시 15분에 첫 전화 지시가 있었다는 당시 박근혜 청와대의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세월호 탑승객이 외부로 마지막 문자 메시지를 보낸 시각이 10시 17분이었으니 이미 배가 전복되어 구조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을 때에야 비로소 박근혜와 청와대는 꿈지럭거리기 시작했던 겁니다.

 

더 참담한 건 김장수 전 실장이 박근혜에게 전화를 2번 했으나 받지 않아서 안봉근 전 비서관이 차를 타고 관저로 가서 직접 침실 문을 두드리자 그제야 박근혜가 밖으로 나왔다는 겁니다. 박근혜는 정말로 무슨 생각으로 대통령이 되고 청와대에 있었던 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진실은 이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관련 첫 보고와 지시 모두 세월호 구조의 골든타임이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또한 실시간으로 11회 서면보고했다는 것도 거짓입니다. 늦은 오후와 저녁에 2회에 걸쳐 출력 보고한 게 다였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사고 당일 오후 2시 15분 최순실이 청와대 관저에 들어와 박근혜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 등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와 최순실 그리고 문고리 3인방의 5인 회의가 개최되어 박근혜가 중대본부를 한 번 방문하도록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죠. 이때 나온 작품이 박근혜의 올림머리입니다. 그리고 중대본을 방문한 박근혜는 "구명조끼 입었는데 그렇게 발견이 힘듭니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출처 - 부끄러운 이명박근혜 9년

 

탄핵심판 과정에서 박근혜는 세월호 7시간 의혹과 관련해 당일 간호장교와 미용사를 제외하고 어떤 외부인도 관저에 들어온 사실이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까지 최순실과 국정농단의 실체를 숨기려 든 겁니다.


출처 - 한겨레

검찰의 수사 발표를 접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반응은 분노 속에서도 황당하다는 반응과 함께 그럴 줄 알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검찰의 수사 발표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청와대와 박근혜에게 세월호 참사는 중요하게 다뤄지는 일이 아니었고, 박근혜 개인의 일탈을 숨기기 위해 국가기관이 나서서 공문서와 여론을 조작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검찰 수사 결과 외에 참사 원인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의 지휘 체계가 어떻게 개입했는지 수사가 더 진전되어야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세월호 변호사로 국회의원이 된 박주민 의원은 박근혜의 7시간 중 4시간의 행적은 의혹이 남는다고 했습니다. 2014년 4월 들어 박근혜는 수요일엔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했다는데 공교롭게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도 수요일이었습니다. 쉬느라 늦게 일어났더라도 어쨌든 안봉근 비서관이 침실에서 불러낸 10시 남짓부터 오후 2시 최순실이 올 때까지의 4시간의 행적은 이번 발표로도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노컷뉴스

다음 달이면 세월호 참사 4주기가 됩니다. 그날의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지만 정확한 실체가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억울함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미진한 박근혜 4시간의 행적과 공문서 조작 등과 관련한 여죄를 검찰이 명명백백하게 풀어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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