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내려가고 세월호는 올라오라!"

 

추운 겨울 광장에서 외치던 이 한마디가 드디어 실현되고 있습니다. 2017년 3월 23일 1073일 동안 바닷속에 가만히 잠들어 있던 세월호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1000일이 넘는 시간을 차가운 바닷속에서 보낸 세월호를 꺼내는 데에는 만 이틀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인양 결정은 박근혜 탄핵 5시간 만에 결정됐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세월호 선체는 바지선의 유압 장비로 시간당 3미터씩 끌어올렸습니다. 2.4미터 높이까지 끌어올린 뒤에는 세월호를 바지선에 고정하는 작업이 진행됐죠. 목표했던 13미터까지 끌어올려야 반잠수식 선박에 세월호를 옮겨싣는 2단계 작업에 들어가게 되지만, 인양 과정에서 세월호 선체가 흔들린 데다 바지선 두 척 사이가 좁아져 세월호 환풍구와 바지선 도르래가 부딪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방금 속보를 보니 2시께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대기 중인 반잠수식 선박으로 세월호가 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2척의 잭킹바지선이 와이어로 세월호를 묶어 한 덩어리가 돼 5대의 예인선에 이끌려 반잠수식 선박 쪽으로 이동 중이라고 하는군요. 천만다행입니다.

출처 - 뉴스토마토


고은, 조정래 등 문인들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이렇게 짧은 시간에 끌어올릴 수 있는 세월호가 1000일이 넘도록 바다 밑에 가만히 있어야 했던 이유가 대체 뭐냐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사실 세월호 인양은 업체 선정 당시부터 잡음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시도한 세월호 인양 방식은 상하이 샐비지가 제안했던 방식이 아닙니다. 상하이 샐비지가 제안했던 방식이 실패로 끝나 다른 회사들이 제안했던 방식으로 선회하면서 시간과 돈을 허비했죠. 당시 입찰에 실패한 업체는 기술평가도면에서 1위였고, 이번에 이뤄진 인양 방식으로 세월호를 인양하겠다고 제안했는데도 최종 낙찰은 해수부가 고집한 상하이 샐비지로 선정되어 의구심을 자아냈습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인양이 미뤄진 이유로 정부의 부실한 사전조사와 판단착오를 꼽습니다.


출처 – 추적 60분


사실 지난해 9월 30일 기한 만료를 주장하는 정부에 의해 강제로 해산된 세월호 특조위, 그에 대한 보수단체의 비난과 방해공작 뒤에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통해 이런 사실을 잘 알 수 있었죠.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의 행적을 감추기에도 바빴지만, 유가족에게 약속한 인양에도 무능과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 겁니다. 아니, 사실은 인양을 막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 것이죠.  


출처 - 노컷뉴스


일부 보수언론은 세월호 인양에 든 예산 1000억이란 돈에 집착하며 박근혜가 탄핵당한 지금에도 마치 유가족들 때문에 나랏돈 1000억이 샌다는 식의 프레임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박근혜와 똑같은, 인면수심의 종자들입니다. 나랏돈 낭비가 걱정이라면 박근혜가 탄핵당한 마당에 박정희 기념사업이나 폐기하라고 주문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구미시를 중심으로 짜인 전국의 각종 박정희 기념사업 예산이 1873억 원입니다. 탄신제, 추모제 같은 굿판들에 쓰인 예산이 세월호 인양 비용의 거의 2배에 달합니다. 보수언론이나 일베의 프레임대로라면 나랏돈을 좀 먹는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이 아니라 박정희의 유가족인 박근혜와 그 일당들인 셈입니다.


출처 - JTBC


박근혜 탄핵 후 구속과 진실 규명을 위한 수사가 진짜 싸움인 것처럼,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도 인양 이후부터가 진짜 싸움입니다. 4월 초 인양은 예고돼 왔지만 참사 원인과 진실을 어떻게 규명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합의나 계획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작성한 인양 관련 기본 방침에 선박 자체는 아무 의미 없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침몰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는 애초부터 관심 밖이었죠. 대법원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조사 결과인 '조타 미숙'을 인정하지 않기도 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여전히 미궁 속입니다. 자로의 <세월X> 다큐의 경우 정부의 침몰 원인 전체를 부정했죠. 과적이나 조타 미숙 급변침 등의 원인이 아니라 '외력'이 작용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세월호 선체의 정밀한 조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해수부는 제대로 된 선체 조사 계획은 마련치 않고 대형 선박 참사에 대한 조사 경험도 없는 산하 기관에 선체 조사를 맡기겠다는 한마디뿐이었습니다.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국회가 나서자 21일에서야 선체 조사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죠.


출처 - 경인일보


아직 9명의 미수습자가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과 이를 밝히기 위한 싸움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지난 22일 오후 6시 38분께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단구사거리에서 세월호 리본 모양의 구름이 촬영됐습니다. 자연적인 구름인지 비행 항적에 의한 것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의 순간을 보며 하늘나라에 있는 아이들이 화답한 것이 아닌가 싶어 반가운 마음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그 날까지 함께 힘을 내야겠습니다.

 

지난 1월 12일, 안산 단원고에서 눈물의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학생과 교사 등 262명이 희생되어 2000년대 최악의 사건으로 한국 역사에 기록될 세월호 참사. 해가 두 번 바뀌어 살아남은 사람들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지만 아직 배에 희생자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월호 참사의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 아이들과 유족들의 억울함도 풀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생존 학생들이 졸업할 정도로 시간이 지난 지금, 세월호 참사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요?


출처 – 서울신문



망언만 무성했던 세월호 청문회

 

생각비행은 지난 연말 피해자들의 뒤통수를 치듯 한일 양국 간 졸속으로 합의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말씀드리며 박근혜 정부가 과연 세월호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아니 최소한 방해는 하지 않을지 우려된다는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예상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진상 규명은 커녕 이를 수습할 의지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밝혀지는 것은 정부 차원에서 세월호 진상 규명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뿐입니다.


출처 – 세월호 유가족방송 416 TV 유튜브


지난해 12월 14일에 열린 세월호 참사 특조위 1차 청문회 당시 구조에 나섰던 해경이 유족들 앞에서 배에 타고 있던 "아이들이 철이 없어" 배 밖으로 나오지 않아 탈출하지 못했다는 망언을 해 큰 분노를 샀습니다. 그 외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로 일관했습니다.


그들로서는 기억이 나면 큰일 나긴 할 겁니다. 《미디어오늘》의 취재 결과를 보면 당일 구조 임무를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해경123정은 현장 도착 직후부터 사진과 영상을 카톡으로 보내느라 시간을 허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청와대는 세월호 승객을 구조해야 할 골든타임에 해경 핫라인 등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할 사진과 영상 자료를 보내라며 최소한 7차례 이상 독촉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습니다. 심지어 청와대는 다른 일 하지 말고 영상부터 띄우라고 독촉하기도 했습니다.


10시 25분의 핫라인 통화에선 다음과 같은 지시가 내려진다. 


청와대: 오케이, 그다음에 영상시스템 몇 분 남았어요?

해경: 거의 10분정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청와대: 예.

해경: 10분 이내에 도착할 거 같습니다.

청와대: 거 지시해가지고 가는대로 영상바로 띄우라고 하세요. 다른 거 하지 말고 영상부터 바로 띄우라고 하세요.

해경: 예.


[단독] 해경 세월호 현장 도착해서 한 일은 청와대에 카톡 전송


구조하러 간 해경에게 구조보다 먼저 영상부터 띄우라고 했으니 박근혜 정부의 일 처리가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는지 잘 드러납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한 사진과 영상 자료를 요구하던 청와대는 정작 구조를 위해서는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고, 구조를 위한 지원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보고를 받아야 할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은 지금도 오리무중입니다.



해수부 공무원이 세월호 유족 고발하라고 사주했다


사태 예방과 수습에 놀랍도록 무능했던 박근혜 정부는 이후 세월호 참사를 국민의 기억에서 지우는 데는 기가 막힌 조직력과 행동력을 선보입니다.

 

출처 - KBS


세월호 참사 보도가 어느 순간부터 TV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들지 않으셨나요? 청와대에서 직접 개입해 세월호 보도를 막은 사실이 폭로되었습니다. 그것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망언으로 논란을 낳았던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이 폭로한 것입니다. 청와대가 길환영 KBS 사장을 통해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해경에 대한 비판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세월호 참사 보도와 관련해 청와대가 KBS 인사에 직접 개입했다는 의혹도 터져 나왔습니다. 과연 청와대의 이런 개입과 조작이 KBS에 국한된 것이었을까요?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열렬히 지지하며 전범기를 꺼내 들기까지 한 홍위병들처럼 세월호 416연대 내에 보수단체 회원이 암약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피해 유가족과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416연대)에 보수단체 회원들이 몰래 가입해 동향을 살피고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확산시켜온 것이죠. 이들은 416연대 내에서 활동하며 흠이 될 법한 발언이나 행동을 스파이처럼 훔쳐 듣고는 이를 보고서로 만들어 박근혜 정부 쪽에 보고해왔다고 합니다. 외부든 내부든 세월호 특조위를 흠집 내려는 정보 유출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죠.

 

출처 - 미디어오늘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이 보수단체와 결탁해 특조위 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해온 사실이 폭로되었다는 겁니다. 세월호 특조위에 파견된 해양수산부의 3급 공무원이 세월호 유족에 대한 고발과 특조위 해체 주장을 해온 보수단체와 결탁한 정황이 드러난 것인데요, 당시 해수부 공무원은 보수단체 대표에게 세월호 유가족 중 홍모 씨를 왜 고발하지 않느냐며 "다 조국을 위하는 일이니 홍씨를 재차 고발해 달라"고 사주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사주로 인해 유족인 홍 씨는 대통령 명예훼손과 국가보안법으로 고소를 당했죠.

 

이는 일반 공무원 몇몇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 차원에서 조직적인 특조위 활동 방해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들의 '최고 존엄'을 위해서는 아이를 잃고 슬퍼하는 엄마조차 빨갱이로 몰아 고소하기까지 했으니, 박근혜 정부는 무능할 뿐 아니라 사악하기조차 합니다.

 

출처 - 민중의 소리


결국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26일 광화문광장에서 해수부의 세월호 유가족 핍박 사주와 특조위 조사활동 방해에 대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사주한 해수부 공무원과 직원을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릅니다.

 

출처 - 뉴시스


같은 날 오후 한강에서 125톤 규모의 유람선이 운항 도중 가라앉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다행히 승객과 승무원 등 11명은 무사히 구조됐지만 영동대교 부근에 가라앉은 유람선은 아직 예인되지 못했고 침몰 원인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크고 작은 선박 사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이젠 서울 한복판에서 유람선이 가라앉는 일마저 생겼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출처 - 다음 영화

 

얼마 전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의 1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를 본 관객수가 3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저희도 이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만, 사실 독립영화의 특성상 1만 관객을 동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나쁜 나라》의 흥행은 경이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영화에 소개된 《나쁜 나라》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2014년 4월, 진도 앞바다에서 생중계된 세월호 침몰사건은 304명의 희생자가 속해 있는 가족들에게 평생 지고 가야 할 상처를 안겨줬다. 그중에서도 단원고 학생들의 유가족들은 자식 잃은 슬픔을 가눌 틈도 없이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 앞에서 노숙 투쟁을 해야만 했다. 그들의 질문은 단 하나,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는 것. 하지만 그 진실은 1년이 지나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평생 ‘유가족’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마주친 국가의 민낯, 그리고 뼈아픈 성찰의 시간을 그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투쟁 1년의 기록.

 

지난 30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나쁜 나라》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토론토 사람들'이 노스욕 시청 대회의실을 빌려 무료 공동체 상영을 한 것이고 합니다. 해외에서 세 번째로 열린 상영회였는데, 250여 명의 관객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세월호 진실 규명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는 방증입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영화 상영 후 요크 대학교에서 온 현지 학생은 "그런 사고가 일어났는데 어떻게 바로 조사를 들어가지 않았는지, 가족들이 어떻게 저렇게 해야 하는지 여기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지요.


세월호 인양은 7~9월로 예정돼 있는 데 반해 특조위의 활동기한은 6월까지입니다. 특별법 7조 1항에 따르면 위원회의 의결로 한 차례 활동기간을 6개월 이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대체 얼마나 무능하길래, 혹은 대체 무엇이 밝혀지는 게 그렇게 두려워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이렇게까지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걸까요? 세월호에 아직 사람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인 24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추모 문화제 '네 눈물을 기억하라'가 열렸습니다. 3만여 명의 시민이 운집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했습니다. 안산분향소에서 출발해 1박 2일간 행진한 희생자 가족들이 추모 문화제에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부는 세월호 100일을 외면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한 달여 만인 지난 5월 19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의 모든 명운을 걸겠다"고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에서 180도 돌변한 것입니다. 실로 괴물 같은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각비행은 세월호 참사를 목격한 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을 출간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문제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곪아 터진 결과요,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을 활개 치게 방치한 결과입니다. 

 

이 책은 자본주의적 욕망에 생을 저당 잡힌 채 괴물을 닮아가는 우리의 일그러진 얼굴을 포착한 문화비평집입니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의 심연을 함께 들여다보시죠.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대형 참사가 드러낸 자본주의의 민낯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곪아 터진 결과요,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을 활개 치게 방치한 결과였다. 승객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선령 규제 완화, 더 많은 화물과 승객을 싣기 위한 선박 개조와 증축, 안전 규제 완화와 철폐, 승무원의 비정규직화, 사고 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구명벌, 승객보다 선장과 선원을 먼저 구조한 이해할 수 없는 해경의 구조 방식, 인명 수색 작전에서 전권을 휘두르다시피 했던 잠수업체 언딘과 해경의 알 수 없는 유착 관계, 승객 구조의 골든타임에 중앙부처 고위급 인사를 위한 의전 통화에 바빴던 119상황실과 해경, 사고 초기부터 인명 수색에 이르기까지 재난구조체계의 총체적 부실,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며 책임 면피에 급급한 정부와 대통령, ‘정피아’ ‘해피아’ ‘관피아’로 통칭되는 정부와 산업계 전반의 이권을 매개로 한 유착 관계, 허위 정보를 받아쓰기한 것도 모자라 진실을 감추는 언론의 저급한 보도 행태…. 이 모든 게 인간과 생명보다 돈과 이윤과 권력을 우선시하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끔찍한 모습이었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생각비행)

 

청대 말기 오견인(吳趼人)은 견책 소설(譴責小說, 사회 개혁을 목적으로 폭로와 풍자적 성격을 담은 소설)인 〈20년간 목도한 괴현상〉에서, 구사일생(九死一生)이라 자칭하는 주인공이 20년간 겪은 내용이라는 형식을 빌려, 청조 말기의 관계에 있던 매관(賣官) 풍습, 뇌물의 실태, 관료의 부패·타락, 민중 박해의 상황을 낱낱이 폭로했다. 숱한 세월이 흘러 시대가 변했지만 위정자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그렇기에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은 대만판 ‘20년간 목도한 자본주의의 괴현상’이라 할 만하다. 국립대만대학교 외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대만《연합보(聯合報)》의 명인 칼럼과 《중국시보(中國時報)》의 시론광장 칼럼에 기고한 문화평론을 엮어, 인간과 생명보다 돈과 이윤을 우선시하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기 때문이다.

 

2009년 8월 7일 태풍 모라꼿이 대만 남부와 동부 지역을 강타하여 700명이 넘는 사상자와 엄청난 물적 피해를 남겼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8·8 물난리를 몸소 겪으며 공포에 떨었을 이재민과 구조대원들보다 복구 작업의 불성실 등을 이유로 여론의 맹렬한 비난을 받은 정부 관료들한테서 ‘충격 방어’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징후가 먼저 포착되었다. 신속하게 재해 상황을 조사하고 복구 작업에 힘써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이재민처럼 행동했다. 심지어 복구 대상이 ‘태풍’의 재해인지 ‘정당’의 재해인지(당시 마잉주 정부는 여론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급기야 관련자 처벌 명단을 발표하고 내각을 개편한다고 밝혔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먼저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정부와 관계 당국의 ‘보신주의’는 이 책의 저자가 비판하는 대판 사회의 ‘정치 재난학’을 떠오르게 한다. 대형 참사 앞에서 책임을 면피하려는 위정자의 행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괴물을 닮아가는 우리의 일그러진 얼굴

 

과거 ‘자본주의는 괴물이다’ 식의 경직되고 완고한 사유 방식에서 자본주의는 사람을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뼈까지 통째로 잡아먹는 무소불위의 거칠 것 없는 힘과 잔인성을 소유한 괴물로 비유되곤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정태적 사고로는 ‘생산’하고 ‘변화’하고 ‘도주’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본주의의 실태를 포착하기 어렵다.

 

세계화 시대에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은 신감각의 산물로 엄청난 운동에너지와 시장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시대의 괴물들은 자본주의의 신세대 권력으로 인간의 욕망을 조작한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은 급진적이고 돌발적인 방식으로 경계를 허물고 다시 경계를 만들어 해체와 재편, 분출과 흡입을 거듭하는 ‘시장 괴물’ ‘정치 괴물’ ‘미인 괴물’ ‘영상 괴물’ ‘젠더 괴물’ ‘공간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이 책은 ‘자본주의’와 ‘괴물’을 문화비평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유 방식으로 관찰하면서 대만 사회라는 ‘문화 유격전’의 현장에서 작동하는 괴물의 실체를 생생히 포착한 비평집이다.

 

‘시장 괴물’은 과연 어떻게 움직이는 것일까? 그 작동 방식을 살펴보자. 저자는 ‘늙지 않는 젊음’에 대한 대중의 경이와 흠모, 그리고 그런 시선을 비판적인 인식으로 들여다본다. 여배우의 ‘영원한 젊음’은 여성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부권 사회의 강박과 내화(內化)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늙는 것은 자연의 한 현상이지만 부권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또 여배우의 ‘영원한 젊음’은 자본주의 상품 시장이 여성의 몸을 어떻게 다루고 착취하는지 잘 보여준다. 나이가 들면 몸집이 불고 늙기 마련이다. 하여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미션 임파서블’, 그러니까 영원히 소녀 같은 몸매와 피부와 얼굴을 유지하는 것은 가장 이문이 남는 장사가 된다.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생각비행)

   

우리 사회에서 ‘공간 괴물’은 또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많이 긁을수록 이득이 되는’ 방법으로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현대 자본주의 논리 안에서 ‘이성’은 ‘욕망’적 소비 충동으로 전락해버린다. 모든 ‘욕망’ 안에 ‘이성적’ 계산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경제 발전 동력의 지표가 되는 각종 성장률이 지속적 하락세를 보이는 대만의 상황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본의 흐름에서 불균등하게 이뤄지는 자원 분배의 문제는 은폐되고, 거시적 ‘문제’들이 개별 소비자군의 미시적 ‘징후’로 단순화되는 현실이 거론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은 창립 기념 할인 행사를 하는 백화점의 화장품 매장 앞에서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여자들만 볼 수 있을 뿐, 현재 우리의 소비 관념과 소비 유형, 소비 내용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한 경제구조의 변화는 볼 수 없다.

 

다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자. 세월호 참사로 대한민국 국민은 대통령, 정부, 정치인의 약속만으로는 앞으로 벌어질 참사의 반복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와 가치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이 없는 한, 그리고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우리가 흘린 눈물은 의미 없이 증발하고 말 것이다. 이런 시점에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의 저자가 대만 사회의 자본주의 문화 현상을 비판하며 들려주려는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은 동시대 자본주의적 욕망에 생을 저당 잡히고 점점 괴물을 닮아가는 우리네 모습에서 벗어나 삶의 근본적인 조건을 변혁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장샤오홍(張小虹)

국립대만대학교 외국어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 대학교에서 영미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대만대학교 교수로서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전투적 글쓰기로 자본 권력과 남성 중심의 지배구조를 해체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여성》《젠더 크로싱》《욕망의 새로운 땅》《‘성’ 제국주의》《정욕 미물론》《이상한 가정 로맨스》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대만에서 최고의 책에 수여하는 ‘금정상(금정상)’과 ‘최우수 도서상’을 받았으며, ‘10대 좋은 책’에 다수 선정된 바 있다.

 

 

옮긴이 박성희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은 5년 동안 오로지 책만 읽은 시기가 있었는데, 그 시간이 없었다면 세인이 알아주는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고백한 바 있다. 이른바 고령 출산모인 나는 기운 뻗치는 머스마 둘과 부대끼며 “혼자 있고 싶어!”를 하루 한 번은 꼭 외친다. 그만큼 공부(책 읽기)가 간절한 까닭은 가진 것 없는 부모로서 물려줄 건 ‘바른 가치’라는 깨달음과 믿음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번역학을 전공한 뒤 저작권 에이전시 그린북(Greenbook)에서 책 기획과 번역을 겸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행 중국어 회화》가 있고, 옮긴 책으로 《중국어 어휘 시리즈―언어(속담편) 》《중국문인열전》 등이 있다.

 

 

목차


저자 서문  오늘의 대만, 그 자본주의적 감성 배치


시장 괴물
짝퉁의 속도 혁명
대국굴기와 짝퉁 정신
팝 마오쩌둥
‘자본주의’와 유통기한
베이징의 비자소(妃子笑), 타이베이의 앵두홍(櫻桃紅)
합법 복제판 장아이링(張愛玲)
여자들의 자기 노출
상어 피부를 입은 수영복 그리고 스포츠 신화
수전 보일의 심미적(審美的) 아비투스
뚱보들의 아메리칸 드림


정치 괴물
달라이라마의 영어
‘가짜’ 책가방의 역사 미물론(微物論)
국부의 새 옷
정계의 ‘머리 타래 강탈’
놀라운 ‘정치 재난학’
청년들, 아저씨 아주머니들과 함께 거리에 나서다
소수의 힘, 집단 자수운동
명명법(命名法) 속에 숨겨진 부권 논리
세계 정상들의 ‘슬픈’ 패션쇼
협상 테이블 위의 우울한 유머       


미인 괴물
동안거유(童顔巨乳)라는 괴물
글로벌 몸 
두려낭(杜麗娘)의 가슴
바비는 집에 없어요
여배우의 미션 임파서블
여학생의 몸
폭식증의 봄날   
여산(廬山)에는 진면목이 없다
옷을 입은 토용과 벗은 토용   


영상 괴물
영부인의 옷장
강렬한 일별(一瞥)의 영상 미학
인간의 ‘성(性)’은 줄곧 과학기술과 함께했다
시각이 지배하는 문화
누란녀(樓蘭女) 부활하다  
‘명화-영화’ 속의 악마
영상의 매력과 말의 힘
삼국지 이야기
‘얼굴’을 포기한 루브르 박물관 


젠더 괴물
공자의 딸 성씨는 ‘공’이 아니다     
‘국민 욕설’의 젠더 정치
왕씨 집안의 ‘세기적’ 결혼식
우리는 나쁜 여자는 사랑하지 않아요
연극 〈올랜도〉 보면 영화 〈매란방〉 관람은 공짜! 
여성의 몸에 관한 두 가지 신화
문학 월계관의 성별
너의 두건을 벗어던져라
여성 총리의 옷장  


공간 괴물
도시의 꽃들
도시와 괴수
백화점의 경제 살리기?
만국기의 공간 정치학        
문학원의 복수전
노래하는 몸, 유랑하는 영화제
타이베이 아레나의 아프리카 대초원
박물관을 집으로
화약 예술가 차이궈창(蔡國强)
미술관에 갈까 예랑에 갈까?


옮긴이 후기  세월호 참사가 드러낸 자본주의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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