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오늘은 신간 《키워드 오덕학―자생형 한국산 2세대 오덕의 현재 기록》을 소개합니다. 덕후 또는 오덕은 ‘특정 분야의 정보나 관련 상품, 지식을 적극적으로 수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일본어 ‘오타쿠’에서 유래해 이미 오래 전부터 생명력을 얻고 있는 한국식 표현이지요. 우리의 오덕 문화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으되, 그 말이 쓰이는 맥락은 태반이 혼란스럽거나 혼동되거나 심지어는 적잖게 달라지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의 ‘오덕’은 일본의 ‘오타쿠’와는 또 다른 맥락성을 지니고 자생해가고 있는 중인데요. 《키워드 오덕학》은 ‘웹툰(WEBTOON)/오타쿠/코스프레/야오이 그리고 BL/OSMU(ONE SOURCE MULTI USE)/기록과 통계/백합(百合)/모에(萌)/지역 캐릭터/짤방/병맛/츤데레에서 얀데레까지/서브컬처(subculture)’에 이르는 총 13가지 키워드(열쇳말)를 통해 오덕 문화가 우리네 현실과 닿아 있는 접점이 무엇인지 상세히 살펴봅니다. 한마디로 《키워드 오덕학》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오덕 문화’를 충실히 소개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 인식

 

'덕후'의 어원이라 할 수 있는 '오타쿠'(おたく)는 일본에서도 멸칭으로 시작되었다. 칼럼니스트 나카모리 아키오는 《만화 브릿코》 1983년 6월호부터 실은 칼럼 〈'오타쿠' 연구〉에서 오타쿠를 '안경에 파묻혀 영양실조 걸린 하얀 돼지 같은데' '엄마가 사준 옷 차려입고' '세기말적으로 어두컴컴하다가 만화 행사장에선 잔뜩 모여 활개 치는' '남창 같은 구석이 있어 여자를 사귈 수 없을 것 같은 놈들'이라고 묘사했다. 명색이 연구란 말을 제목에 달아놓은 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감상적 악담을 쏟아낸 까닭에 연재가 중단되긴 했으나 이 칼럼은 '오타쿠'라는 용어의 정립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다 1989년 미야자키 츠토무가 도쿄·사이타마 연속 여아유괴 살인 행각을 벌이자 일본 사회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일본 경찰은 처음으로 프로파일링 수사기법을 동원해 범인을 검거했다. 그런데 그의 집에서 5763개의 비디오테이프가 발견되고, 그 안에 호러 영화와 로리콘 성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언론은 '오타쿠=잠정적 범죄자'란 부정적인 인식을 유포하기에 이른다. 미야자키 츠토무는 '롤리타 콤플렉스 살인귀'라고 불렸다. 이 때문에 한동안 일본에서 오타쿠는 시각 기호로 창작된 캐릭터에 집착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범죄 예비군 정도로 인식되었다. 2008년까지 NHK는 오타쿠를 금지어나 다름없는 방송 문제 용어로 구분하기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후 오타쿠에 대한 인식이 재정립되고 그들이 심취한 산업의 규모가 재조명되면서 인문학적 연구가 거듭되고 있다. 이로써 오타쿠는 '꽂히는 취향에 일정 이상으로 몰입하는 사람'을 뜻하는 표현으로 일반화하는 지리멸렬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한때 일본의 신어사전은 오타쿠를 '만화, 애니, 비디오게임, 아이돌 등 허구성 강한 세계관을 좋아하는 이들을 일컫는다'라고 정의한 바 있지만, 현재 오타쿠의 관심 대상은 철도나 밀리터리, 성우, 특정 인물 등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우리의 덕후 문화, 어디까지 왔나?

 

'덕후' 또는 '오덕'은 '특정 분야의 정보나 관련 상품, 지식을 적극적으로 수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일본어 ‘오타쿠'에서 유래해 오랜 시간을 거쳐 생명력을 얻고 있던 한국식 표현이었다. 그런데 인터넷 커뮤니티 공간을 넘어 다수의 일반 한국 대중 사이에서 '오덕'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 건 TV 프로그램 〈화성인 바이러스〉(tvN, 2009. 3. 31~2013. 11. 26)였다. 2010년 1월 27일자 〈화성인 바이러스〉 프로그램은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안는 베개(끌어안고 잘 수 있는 등신대 베개)를 들고 나와 "이 캐릭터와 혼인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출연자를 소개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서 조롱처럼 돌아다니던 '안여돼'(안경 여드름 돼지)형 인물이 화성인(=상식 밖 인물)의 대표주자 '덕후'의 표상으로 정립되는 순간이었다. '오덕' '덕후' 부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대중에게 고정된 것이다.

 

이를 보면 한국의 '오덕' 또한 일본 ‘오타쿠’의 전철을 밟은 듯하지만, '오덕 문화'는 거기에 머무르고 있지만은 않았다. 웹툰이 상업적 정립 10년을 넘긴 2013년을 거치며 미끼 상품에서 벗어나 콘텐츠와 상품으로서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로, 덕후 문화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향유층과 함께 나이를 먹기 시작했다. 문화 코드란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 정의되던 범위 바깥으로 확장하며 경계를 무너뜨리고 급기야 멸칭마저도 유희화하는 현상을 겪게 마련이고 그러지 못하는 문화는 역설적으로 박제화하거나 사멸하는데, 오덕 문화는 다행스럽게도 확장되기 시작했다.


근래 화제를 모은 TV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능력자들〉(MBC, 2015. 11. 13~2016. 9. 8)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인류는 덕후들의 능력으로 인해 진화되었다" "당신의 덕심이 바로 당신의 능력이다"(프로그램 소개 중에서)라며 '덕후'를 별다른 주석문 하나 없이 전면에 내세웠다. 재밌는 건 〈능력자들〉이라는 프로그램의 제목 자체다. 말 그대로 덕후를 '능력자'로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여기서 한술 더 떠 "개개인의 전문성이 나라의 경쟁력이 된다"라고까지 피력했다. 새로운 프로그램의 등장 정도로 여길 수도 있겠으나, 어떤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상전벽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변화로 비치는 현상 이었다. 여기서 어떤 사람들이란 바로 덕후들, 바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TV 미디어가 '능력자' 이전에 '화성인'으로 분류했던 이들을 의미한다.


아스카(〈신세기 에반게리온〉 여주인공 가운데 한 명)를 향한 애정을 감추지 않는 연예인과 〈도라에몽〉에 미쳐 사는 몸짱 훈남 연예인처럼 사회적 인지도와 실력을 갖춘 그럴싸한 오덕층의 출현은 스스로를 덕이라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일반 대중에게는 나름대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라? 우와? 세상에?' 하며 놀라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그런 사람이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많다는 생각에 도달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들이 '사회성 결여' 같은 비상식적 면모와 거리가 멀다는 점도 인지하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 모두는 어느 무언가에는 '덕'이다. '덕질'이 즐거운 유희가 되는 시점에 '오덕·덕후=안여돼' 프레임은 힘을 잃게 된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 창궐하던 사방천지의 덕질 놀이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TV라는 절대적 대중문화 살포 도구(!)에까지 침투하고 있다. '오덕' '덕후' '덕질'이라는 말이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나 〈능력자들〉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다. 〈능력자들〉에 출연한 이들은 겉보기에 멀쩡하고 자기 일에도 충실했다. 더구나 관심 대상을 향한 애정과 노력은 실제 해당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조차 혀를 내두르다 못해 "너 이쪽으로 와라"라며 취업 제안을 즉석에서 받을 만큼 전문성마저 갖추고 있었다. 오덕들의 노력과 지식은 '덕질'이라는 범주 안에 놓이지 않아 왔을 뿐 덕후 문화가 애먼 논란 속에 정체를 겪고 있던 시기부터 이미 쌓이고 있었던 것들이다. 우리 시대의 흐름이 이들이 쌓아온 면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칭찬할 수 있는 데까진 온 것이다.


 

오덕 문화가 우리네 현실과 닿아 있는 접점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오덕 문화가 새로운 경제 동력이 되고 있다. 이들이 몰입하는 분야를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 게임 같은 콘텐츠 시장이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이면 이 분야만 약 1700억 달러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오타쿠 시장의 규모를 알려주는 단적인 자료가 있다. 2004년 8월 24일 노무라종합연구소(野村総合研究所)가 발표한 〈마니아 소비층은 애니메이션, 만화 등 주요 5개 분야에서 2,900억 엔 시장—오타쿠층의 시장 규모 추계와 실태에 관한 조사〉라는 보도자료를 보면 '애니메이션/만화/게임/아이돌/조립PC' 다섯 개 분야에 걸친 오타쿠들의 소비 시장 규모는 2900억 엔(약 2조 9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콘텐츠 관련 네 개 분야, 즉 애니메이션, 아이돌, 만화, 게임 산업 전체의 시장 규모는 약 2조 3000억 원이며 이 가운데 오타쿠 소비층이 금액 기준 11퍼센트를 차지했다. 이처럼 오타쿠는 구매 의욕이 높을 뿐 아니라 커뮤니티 형성의 핵심, 차세대 기술 혁신의 장, 신상품 실험 대상으로서의 가치도 높아 산업 관점에서 기대되는 역할이 큰 모집단이라 할 수 있다. 오타쿠든 한국화한 오덕이든, 이들에게 통하는 코어한 부분을 이용하려면 이들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오덕들의 문화와 역할은 일본의 오타쿠들과는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되 다르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더욱 달라질 것이다. 이 때문에 《키워드 오덕학》의 저자는 '오덕'을 '오타쿠'와 단순 동의어로 놓고 용어를 해설하기보다는 우리나라의 오덕 문화가 우리네 현실과 닿아 있는 접점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려 노력했다. 이 책의 특징은 일본에서 유래한 '바닥 문화'를 파고드는 차원이라기보다 우리나라에서 오덕 문화와 개념들이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제목이 《키워드 오타쿠학》이 아닌 《키워드 오덕학》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우리에겐 우리에게 맞는 '오덕' 담론이 필요하다. 아울러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 책이 그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을 공유하고자 한다.


 

지은이 

 

서찬휘
본명 임채진. 1979년생. 1998년 이후 지면과 형식을 가리지 않고 만화 이야기를 해온 만화 칼럼니스트. 자생한 한국산 2세대 오덕으로 한국 오덕 문화의 흐름과 성격을 역사라는 맥락 안에서 꾸준히 탐색하고 정리해왔다. 만화, 애니, 성우, 애니송, 라이트노블 등을 덕질하다 현재는 만화를 중심으로 정착 중. 만화 정보 웹진 《만화인manhwain.com》 운영을 비롯해 대학 강의, 인터뷰, 팟캐스트 진행, 전시 기획, 세미나 기획 및 진행, 캘리그래피 등 만화와 연관성 있는 일들에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다.

 

 

차례

 

들어가며 _자생형 한국산 2세대 오덕의 현재 기록

 

01. 웹툰(WEBTOON)
‘MADE IN KOREA’ 만화 형식 웹툰의 정립 과정과 대외 브랜드화 현황에 관하여

-생각할 거리들

 

02. 오타쿠
‘화성인’에서 ‘능력자’까지, ‘덕후’의 즐거운 위상 변화

-생각할 거리들

 

03. 코스프레
불분명한 유래 집착과 일본 콤플렉스를 넘어서

-생각할 거리들

 

04. 야오이 그리고 BL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섹슈얼리티 판타지

-생각할 거리들

 

05. OSMU(ONE SOURCE MULTI USE)
똑바로 서지 못한 원 소스, 멀티 유즈가 무시한다

-생각할 거리들

 

06. 기록과 통계
한국 만화가 진정 튼튼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

-생각할 거리들

 

07. 백합(百合)
소녀(여성) 간의 우정과 유대에 천착한 판타지 픽션

-생각할 거리들

 

08. 모에(萌)
극단적으로 부품화한 취향 코드와 언캐니밸리

-생각할 거리들

 

09. 지역 캐릭터
한국에서 ‘쿠마몬 성공신화’를 바라고 싶다면

-생각할 거리들

 

10. 짤방
이미지 속 맥락의 만화적 재해석

-생각할 거리들

 

11. 병맛
조롱을 내재화한 이 시대의 산물

-생각할 거리들

 

12. 츤데레에서 얀데레까지
상반된 마음의 간극을 부품화하다

-생각할 거리들

 

13. 서브컬처(subculture)
오타쿠 컬처? 문화콘텐츠?

-생각할 거리들

 

마무리하며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의 졸업사진 찍기 문화

 

생각해보니 요즘 생각비행 블로그에 무거운 주제만 다뤘군요. 오늘은 재미있는 내용을 다뤄볼까 합니다. 훈훈한 고등학생들의 귀여운 일탈(?) 이야기입니다. 최근 의정부고등학교 졸업사진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교복 정장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질서정연하게 서서 찍는 일반적인 졸업사진에서 벗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부터 당대에 이슈가 된 인물에 이르기까지 패러디해서 재미있는 졸업사진을 찍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코스프레 쇼처럼 말이죠. 

 

출처 - SBS

 

실제로 몇 년 전부터 인터넷 게시판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 기상천외한 졸업사진이 이슈가 되곤 했습니다. 올해 의정부고등학교가 화제의 중심에 놓이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교감선생님이 이러한 졸업사진 촬영 문화를 저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학생들의 행위가 학교의 위신을 떨어뜨린다는 게 주된 이유였습니다. 일부 학부모와 졸업생 사이에서도 자제를 부탁한다는 요청이 들어왔다고 말입니다. 이에 교감선생님은 학생들이 정갈하게 교복을 입은 모범생처럼 보이지 않으면 졸업앨범 촬영을 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은 선배들에게 지지 않을 졸업사진 촬영을 위해 1년을 준비해왔습니다. 그런데 촬영 당일 갑자기 교복을 입은 모습이 아니면 졸업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요? 결국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은 단체로 촬영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졸업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졸업사진을 찍는 행위를 두고 두 가지 시선이 엇갈리는데요, 생각비행은 여기서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를 구분하는 시선의 폭력성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교감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튀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이런 것이죠. 단정하거나 멋진 모습이 아니라 이상하고 추잡한 모습으로 졸업사진을 찍으면 남부끄럽다는 겁니다. 평생 남을 졸업사진인데 기괴한 모습만 남는다면, 학생 개인이야 그렇다 쳐도 학교 위신이 떨어지고 이런 졸업사진을 찍기 위한 준비로 학교생활도 소홀해진다는 게 이유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거창하고 남들이 인정할 만큼 훌륭한 것만을 문화라고 생각하는 콤플렉스가 뒤섞인 시각의 폭력성이 숨어 있습니다. 거창하거나 훌륭하지 않더라도 <강남스타일>처럼 외국에 알려지거나 돈을 벌면 문화라고 인정하는 현실은 또 어떻습니까? 묘합니다. 과연 문화라는 게 원래부터 그런 것일까요?


잠시 우리 사회에서 시야를 돌려 세계 모든 고등학생이 꿈에 그리는 명문대학교, 그중에서도 세계 제일의 명문대 중 하나라고 하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문화를 살펴보겠습니다.



MIT 캠퍼스 건물 위에 자동차를 올리다


MIT에는 IHTFP(I Hate This Fucking Place)라는 해킹클럽이 있습니다. 공대생이자 해커인 이들의 관심사는 소프트웨어 해킹 이외에 또 하나가 있습니다. MIT 캠퍼스의 상징적 건물 중 하나인 그레이트돔에 무언가를 올리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게 뭐 별일일까 싶지만 일의 규모나 주제가 남다르기 때문에 유명해졌습니다. 자동차부터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으로는 도저히 건물 지붕에 올라갈 일이 없는 기상천외한 것들을 올려놓기 때문입니다. 혈기 넘치는 MIT 학생들에겐 그레이트돔 자체가 일종의 해킹 대상이 된 것이죠.




<빅뱅이론>이란 미드를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영화 <스타워즈>는 MIT 학생들로서는 성전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선지 학생들은 1999년 5월 <스타워즈 에피소드1 – 보이지 않는 위협>의 개봉을 기념해 MIT 그레이트돔을 스타워즈의 마스코트 로봇인 R2D2로 만들었습니다.


 


2003년에는 첫 동력구동 비행기 100주년을 기념해 라이트 형제가 만든 비행기를 재현해 그레이트돔 위에 올렸고요.


 


2006년 9.11 테러 5주년 때는 테러 발생 당시 인명구조에 나섰다 숨진 소방관들을 추모하기 위해 소방차를 그레이트돔 위에 올렸습니다.


 


이런 행위를 MIT에 다니는 천재들의 기행, 창의력 넘치는 괴짜들의 문화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문화의 기원을 알고 나면 맥이 빠질 겁니다. 돔 위에 차를 올리는(CP Car on the Great Dome) 문화는 1994년 어느 학생이 경찰에게 억울하게 딱지를 떼이자 그 보복으로 친구들과 함께 딱지를 뗀 경찰의 경찰차를 그레이트돔 위에 올려버린 사건에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당연히 큰 이슈가 되었는데요. 이때 총장은 학생을 벌하거나 경찰에 넘기지 않고 대체 어떻게 경찰차를 돔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는지부터 물었다고 합니다. 정말로 궁금하지 않습니까? 유동 인구가 많은 캠퍼스에 기중기가 나타난 흔적도 없고 UFO가 출현한 것도 아닌데 경찰차를 대체 어떻게 돔 위로 올렸을까요?

 

문제의 학생은 친구들과 합심해 경찰차를 완전히 분해한 뒤 돔 위에서 재조립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완벽하게 재조립했기에 밑에서 본 사람들은 차를 그대로 들어서 올려놓은 것처럼 보였겠지요. 이처럼 어떤 문화의 시작은 거창하지도 훌륭하지도 않은 경우가 빈번합니다. 오히려 아무런 의미가 없어 한심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그 문화를 따르는 사람들도 즐거워한다면 그것이 바로 뜻깊은 문화가 아닐까요?

 

딱지 떼여 열 받은 김에 시작한 사건이 유쾌하고 재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참여가 시작되어 돔 위에 차를 올리는 문화는 학교의 명물이 되었고, 9.11테러 희생자를 기리는 문화로 확장되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자생적이고 참여적인 문화야말로 진정한 문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거창해야 하고 훌륭해야 한다는 보여주기식 강박증이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새로운 문화를 싹 틔울 가능성마저 짓밟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의정부고 졸업사진 문화는 계속된다


2014년 의정부고등학교 졸업사진 찍기 문화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 때문에 빚어진 신구의 격돌(?)은 순식간에 퍼져 사회관계망 서비스와 인터넷 게시판을 달궜을 뿐 아니라 방송에서 취재를 나올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올해 메릴린 먼로로 분장하고 졸업사진을 찍으려던 의정부고등학교 한 학생은 인터뷰를 통해 공부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졸업사진 촬영이 끝나면 즐거운 추억과 성취감을 가진 채 바로 공부에 전념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5년 전부터 시작된 이 기상천외한 졸업사진 찍기 문화를 하나의 졸업식 전통으로 이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출처 - 한국경제TV

 

“메릴린 먼로 최연호 학생입니다. 제가 그렇게 선정적이었나요, 교감선생님? 이렇게 찍는 게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은데, 저희가 이걸 한다고 갑자기 공부를 손 놓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학교 또는 다른 분들께서도 '얘네는 공부도 잘하면서 놀기도 잘 노네'라는 아주 좋은 말씀도 해주시는데, 선생님들도 저희 되게 좋게 보고 계시는데 저희 좀 도와주세요.”

 

다행히 의정부고등학교 교감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꽉 막힌 분들은 아니었습니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 언론까지 나서서 개성 넘치는 졸업사진을 찍지 못하게 된 것에 아쉬움과 질타의 목소리를 내자 촬영을 막았던 교감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사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졸업사진을 검열하겠다던 방침을 철회하고 학생회 주도하에 졸업사진 촬영을 학생들의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고 합니다. 요즘 보기 드문 훈훈한 모습입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이 주축이 된 자생적인 문화가 더 많이 생겨나기를 기대해봅니다.



10월 말부터 이번 주말(11월7일)까지 4호선 대공원역 5번 출구에 있는 과천과학관에서 2010과천SF영상축제가 열립니다. 원래 작은 영상축제였는데 올해부터 영화제급으로 격상해서 운영하기 시작했나 봅니다. 많은 영화, 애니메이션의 원작이 되곤 하는 SF가 중심 테마라면 독서의 계절 가을에 어울리는 행사가 아닐까 싶습니다.^_^ 그래서인지 개막작은 요즘 한국 출판계의 화두이기도 했던 장르 문학, 그중에서도 라이트 노벨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2010과천SF영상축제를 통해 국내에 처음 공개되었죠.


불시착한 UFO를 그대로 만들어내다니 매표소도 SF 느낌이 물씬 나네요.^_^;; 행사가 열리는 과천과학관 전반에 걸쳐 SF를 중심 테마로 여러 가지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과천SF영상축제와는 또 다르게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대형 설치물 전시인 테오얀센전을 하고 있고, 과천SF영상축제 행사장 앞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SF하면 아이들을 위한 상상력을 빼놓을 수 없지요.^_^ 주최 측에서는 과학이란 테마에 맞춰 놀이터 안에 기차는 물론 친환경 전기 자동차를 운전해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더라고요. 전기 자동차는 제가 다 타 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_^;;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나들이 나가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기쁘기도 하지만 부모님들은 변변히 즐기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죠. 그런 부모님을 배려해선지 상영되는 영화들은 아이들보다 오히려 부모님들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작품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위 사진에서도 보이는 백투더퓨처〉가 있었네요. 아쉽게도 상영은 끝났지만요.


개막식에는 동물원〉 출신 가수 김창기 씨가 등장해 널 사랑하겠어〉를 열창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지겨워서 꿈지럭대는데 정작 많은 부모님께서 무척이나 좋아하시더라고요. 노래도 다 따라부르시고 손뼉까지 치며 아이들보다 더 즐거워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_^;; 주최 측에서 아이들은 밖에서 뛰놀 수 있게, 어른들은 안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안배를 잘한 것 같습니다. 실내에는 <아이언맨> <터미네이터> <스타워즈> 등 SF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인형과 장난감들이 전시되어 있으니 구경하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


마지막 주말이지만 아직 볼만한 작품이 상당히 남아 있습니다. 세계 3대 SF 작가 중 한 명인 아서 C. 클라크의 소설이자 SF영화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불멸하는 걸작인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전 세계적으로 로봇 로비 신드롬을 일으켰던 금지된 행성〉, 경찰 로봇이란 독특한 설정으로 일본의 가짜 평화를 해부한 기동경찰 패트레이버〉인셉션〉처럼 꿈과 심층의식을 다뤘지만 몽환적인 분위기가 일품인 파프리카〉까지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 많이 남아 있네요.^_^
 
그중에서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실제 암스트롱이 달착륙을 하기도 전에 우주를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지금까지도 시대를 앞서 간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지요.

이번 주말에 아이들과 부모님이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과천 과학관으로 나들이 어떠신가요?^_^

2010과천SF영상축제 공식 블로그 : http://2010isf.tistory.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