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열풍입니다. 챗GPT는 미국의 스타트업인 오픈AI사의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로, 회원 가입 후 무료 혹은 유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결에서 승리한 인공지능인 알파고와 무엇이 다른지 궁금하신 분도 계실 텐데요, 그래서 챗GPT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챗GPT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기능: AlphaGo는 보드 게임 바둑을 세계적 수준으로 플레이하도록 설계된 인공 지능 프로그램이며 chatGPT는 텍스트 기반 입력에 대해 인간과 유사한 응답을 생성하도록 설계된 자연어 처리 모델입니다.

입력: AlphaGo는 보드 위치를 입력받아 이동하고 chatGPT는 텍스트를 입력으로 받아 응답을 생성합니다.

학습 데이터: AlphaGo는 인간 게임에서 수백만 개의 보드 위치에 대해 학습한 다음 개선을 위해 스스로 대결했으며 chatGPT는 인터넷의 대규모 텍스트 데이터 모음에서 학습했습니다.

학습 알고리즘: AlphaGo는 심층 신경망과 Monte Carlo 트리 검색의 조합을 사용하여 결정을 내리는 반면 chatGPT는 변환기 기반 신경망 아키텍처를 사용합니다.

도메인 특정성: AlphaGo는 바둑을 두는 특정 작업을 위해 설계되었으며 chatGPT는 언어 생성, 언어 번역 및 언어 분류와 같은 광범위한 언어 관련 작업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응용 프로그램: AlphaGo는 주로 바둑 게임을 높은 수준으로 플레이하는 데 사용되며 chatGPT는 챗봇, 언어 번역 및 텍스트 요약과 같은 자연어 처리에서 많은 잠재적 응용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내용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대규모 텍스트 데이터를 통해 언어 학습을 한 인공지능이란 것 정도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답변 내용이 일목요연하여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설명해줘도 될 정도입니다. 사람과 대화하며 질문에 답하는 언어 AI 모델은 그동안 많았지만, 챗GPT는 관련 전문가들이 인정할 정도로 단연 높은 수준의 챗봇입니다.

 

출처 - 파이낸셜뉴스

출처 - zdnet / UBS

 

그러서일까요? 챗GPT는 출시한 지 두 달 만에 이용자가 1억 명을 돌파했습니다. 투자은행 UBS가 지난 한 달 동안 한 번이라도 접속한 사람의 수(월간 활성 사용자 수)를 추정하여 내놓은 결과인데요, 이렇게 급속도로 이용자 수가 급등한 경우는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알파고 이후 최대의 AI 열풍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군요.

 

출처 - JTBC

 

마이크로소프트는 챗GPT의 개발사인 오픈AI에 10억 달러를 투자한데 이어 추가로 100억 달러, 그러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12조 원이 넘는 투자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빌 게이츠는 챗GPT가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이며 과거 인터넷의 발명만큼 중대한 사건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지금까지 AI는 읽고 쓸 수는 있었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했다며 챗GPT와 같은 새 AI는 인간과 대화하여 청구서나 편지 쓰는 일을 도움으로써 사무실 업무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는 과연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의료와 교육 분야에서 상당한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출처 - 전자신문

 

챗GPT가 촉발한 대화형 AI 전쟁은 기업의 가치를 좌지우지할 지경입니다. 과거 알파고를 내놨던 IT 공룡인 구글은 챗GPT에 자극을 받아 이에 대항하는 AI 챗봇 '바드'를 급히 내놓았다가 수백조 원을 날렸습니다. 지난 8일 파리에서 구글의 신기술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시연된 바드는 CEO인 순다 피차이의 질문에 오답을 내놨습니다.

 

출처 - ELLE

 

단순한 사실 확인 수준의 질문에 바드가 오답을 내놓자 구글의 지주 회사인 알파벳의 주가가 7.68% 급락했습니다. 한화로 약 216조 원이 증발한 겁니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검색 시장에서 구글에 비해 절대적인 열세였지만, 일찌감치 챗GPT에 투자한 결과 분위기가 반전되어 이 분야에서 라이벌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받는 위치에 올랐습니다.

 

출처 - JTBC

 

이런 챗GPT를 긍정적으로만 봐도 괜찮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서구권 교육계는 챗GPT의 등장으로 실시간으로 큰 충격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부정행위 빈도가 당장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학교는 시험과 숙제를 전면 중단하고 챗GPT 사이트를 차단하는 해프닝도 있었죠. 교계에서는 챗GPT가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와 창의력을 저하할 수 있기 때문에 교육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의견과 인간의 학업 능력 효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언어적 계산기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기도 합니다.

 

출처 - SBS

 

챗GPT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 챗GPT는 MBA와 의사 면허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어떤 정보를 암기하고 요약해서 답하는 문제라면 인간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챗GTP과 관련된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대필입니다.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벌써 관련 사건이 터졌습니다. 수도권의 한 국제학교에서 재학생 7명이 영문에세이 과제를 챗GPT로 써내 적발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학교는 'GPT 제로'라는 프로그램으로 대필한 사실을 잡아내어 모두 0점 처리했다고 하죠. 3월이면 개강해야 하는 대학들은 챗GPT 때문에 그야말로 비상 상황입니다. 대필 검증 프로그램 도입과 가이드라인 마련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까요.

 

출처 - 유튜브

 

한편 챗GPT는 노래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커맨드스페이스'라는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요한 씨가 챗GPT로 4분짜리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어떤 방법을 썼을까요? 우선 챗GPT와 대화하며 G 코드로 진행되는 곡을 써달라고 한 다음, AI가 만드는 이야기로 간단한 가사도 붙여달라고 했습니다. 첫 가사가 좀 직설적이어서 "좀 더 시나 문학 작품같이 가사를 바꿀 수 있을까?" 하고 요청했더니 수정본을 내놨습니다. 음악도 재즈풍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한 결과 노래가 완성됐습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0분이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음악을 하는 인간의 작업 방식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 짐작할 수 있는 사례였습니다.

 

출처 - 전자신문

 

챗GPT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합니다. 학계에서는 연구 설계 단계부터 실제 논문 작성까지 다양한 활용 사례를 선보였습니다. 특히 논문 초록의 글자수 요약부터 목차 작성을 불과 수초 만에 처리하고 창의적인 연구 제목까지 제안했습니다.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챗GPT를 활용해본 경험담이 속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챗GPT로 특정 개념의 요약을 요청하고 추가로 교수님이 가르친 관점에 따라 정리해달라고 해서 나온 결과물을 외우는 방식도 소개됐는데요, 주요한 핵심을 다 챙기면서 기말고사 시험공부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출처 - 동아일보

 

챗GPT는 코딩까지 가능해 프로그래밍 분야에서 아주 활발하게 쓰입니다. 간단한 코딩은 그냥 맡기거나 코드의 오류를 찾고 수정하는 분야에서 챗GPT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존에 만든 프로그램 플랫폼이 유료화되어 무료 배포 중인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로 바꿔야 했는데, 예전 같으면 일일이 다시 짜야 했겠지만 챗GPT에게 부탁하자 순식간에 다시 짜주었다고 합니다. 90% 이상의 코드가 제대로 작성되어 시간을 획기적으로 아낄 수 있었다고 하죠.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광고 카피, 보고서 작성 등에서 준수한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마케팅을 할 경우 스프레드시트와 챗GPT를 접목해 다양한 화장품 카피를 한 번에 작성하는 방법도 공유되었습니다. 화장품 종류, 브랜드 이름, 검색 키워드, 타깃층, 특징 등을 입력하면 적합한 문구를 한 번에 표로 제시해준다고 하는군요. 

 

 

이렇게 보면 실로 놀라운 발전이라 할 수 있겠지만 챗GPT가 미숙한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우선 영어권 국가인 미국에서 개발했기 때문에 영어로 하는 대화에는 상당한 수준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지만 한국어 같은 다른 언어에는 대응이 늦고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얼마 전 누군가가 챗GPT에게 "역사적으로 꼽히는 비극적인 사건 10개를 뽑아줘"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동여지도 연금술사들의 폭동 (1392)"이 5번째 항목으로 나왔습니다. 대체 어떤 사건일까요? 챗GPT에게 "대동여지도 연금술사들의 폭동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줘" 하고 물었더니 1392년 조선 시조인 태조의 즉위 후 일어난 사건으로,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불평등이 겹쳐져 연금술사들이 과세 정책에 반발하여 일으킨 폭동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답변이 이상해서 영어로 다시 물어보면 챗GPT는 장영실이 납을 금으로 바꿀 수 있는 현자의 돌을 만들기 위한 연금술 실험을 했다고 하고 허준도 연금술에 관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질문을 거듭해한 결과 챗GPT가 '한의학'을 '연금술'로 생각한 해프닝이었습니다.  챗GPT의 답변을 곧이 곧대로 믿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출처 - 트위터

 

기술의 발전에 따른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그만큼 큰 법입니다. 챗GPT 말고도 생성형 AI는 여럿 있습니다. 그중에는 키워드를 주면 그림이나 사진을 그려내는 AI 모델도 있습니다. 위 사진은 2월 7일 발생한 프랑스 시위 집회에서 촬영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실제 보도 사진이 아닙니다. 가만히 보면 경찰관의 손가락이 6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성형 AI가 사진이나 영상까지 곁들여 가짜뉴스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계와 업계에서는 내년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을 앞두고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가 가짜뉴스를 쏟아낼 것을 심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전과 달리 누구든 쉽고 정교하게 가짜를 만들고 조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런 신기술의 악용이 인간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도무지 알 수 없군요. 현재의 AI 모델은 인간과 대화하거나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학습을 거듭할수록 점점 정교해지고 똑똑해지니까요.

 

출처 - 연합뉴스

 

지난 2월 21일 챗GPT 등 생성형 AI가 만들어낸 콘텐츠의 저작권이 인정될 수 있는가에 대한 미국 당국의 결정이 나왔습니다. 미 저작권청은 이미지 생성 AI가 생성한 이미지는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애초 이 문제는 이미지 생성 AI인 미드저니로 만들어진 만화가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래픽 노블 작가인 크리스 카슈타노바는 자신의 그래픽 노블 <여명의 자리야((Zarya of the Dawn)> 스토리와 대사를 작성한 후 이에 기반해 미드저니에게 만화를 그려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내용을 구상하고 대사를 썼지만 그림은 AI가 그린 작품인 셈이죠. 미 저작권청은 작가가 직접 쓴 글과 그가 한 편집, 그러니까 이미지 선택과 배치와 관련하여 저작권이 인정된다고 했지만, AI인 미드저니가 생성한 이미지에는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작가인 카슈타노바 역시 이미지 자체의 주인은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AI가 그린 그림의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고, 이미지 자체도 인간에게 귀속되지 않는다는 결정인 셈입니다.

 

 

알파고 열풍이 불 무렵 언론에서는 단순 노동이 AI 자동화에 대체될 확률이 높고 인간의 감성이나 예술성이 부각되는 분야는 대체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생활에서 쓰이기 시작하는 AI를 살펴보면 그림, 사진, 글쓰기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점점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판사나 변호사가 그간 하던 일 중에서 막대한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해 정보를 요약하고 이를 기반으로 결정을 내리는 일은 사람보다 AI가 나을 수도 있다는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문에 인간이 몸으로 하는 단순 노동을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어렵다는 다소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는 중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출처 - 동아일보

출처 - 머니투데이

 

AI는 챗GPT로 다시 한번 우리를 새로운 경지로 데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AI 기술이 세상을 이롭게 할지 해롭게 할지는 명확하지 않은 시점입니다. 이 때문에 안심 반, 불안 반의 심정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로운 세상을 만드는 건 역시 도구를 활용하는 인간의 마음에 달려 있지 않을까요?

"나라면 전승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커제는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에서 3연패를 당하고 끝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바둑 세계 랭킹 1위였던 중국의 커제가 인공지능에 패하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러다가 인류사에서 인공지능에게 승리한 마지막 인간이 이세돌이 되는 거 아니냐는 얘기까지 돌았습니다.



출처 - 아주경제


커제의 완패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지금까지 인간 바둑 기사들이 쌓은 전체 기보가 16만여 개에 머무르는 반면 알파고는 이번 커제와의 대국에 임하면서 일부러 인간 기보 데이터를 빼고 인공지능끼리의 대국으로 3000만 개 이상의 기보를 축적한 상태였습니다. 짧은 시간에 알파고가 압도적인 성과를 올린 것은 인간의 지력과 비교 자체를 불허하는 자기 학습 덕분입니다. 커제에게 완승한 인공지능의 압도적인 기량을 보면서 이젠 정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서막이 올랐다는 생각을 하는 분이 많으실 겁니다.


물론 인공지능은 특정한 분야에 국한해서만 그 성능을 선보이기 시작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그 발전 속도는 무섭죠. 레이 커즈와일이 2045년 기술적 특이점이 오면 인공지능은 더 이상 인간이 감히 도달할 수 없는 차원으로 도약하리라 예측했는데 벌써 수긍할 만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인간이 쌓아놓은 데이터를 토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때때로 섬뜩한 일도 벌어집니다. 인공지능이 인간들의 편견까지 학습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서울신문


글로브(GloVe)라는 유명한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연구를 진행한 미국 프린스턴 대학 연구팀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언어를 학습하는 동안 사회적 편견까지 덩달아 학습할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글로브는 인터넷상에 퍼져 있는 텍스트들을 분석하고 인간 언어를 이해하는 딥러닝 AI 알고리즘입니다. 이 알고리즘은 인터넷에 올라온 글의 통계적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인간의 중간 개입 없이 텍스트를 스스로 학습하고 각 단어 사이의 의미적 연결성을 스스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출처 - 한겨레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생성해놓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학습한 이 인공지능이 인종차별이라는 인간의 편견까지 학습하기 시작한 겁니다. 예를 들어 유쾌함(pleasant), 불쾌함(unpleasant)의 두 그룹으로 단어를 분류하는 실험에서 꽃은 유쾌함으로, 벌레는 불쾌함으로 분류했습니다. 이런 실험을 인간에게까지 연장해보니 흔히 백인 이름으로 쓰이는 에밀리나 맷은 유쾌함으로 분류했는데 흑인에게 주로 쓰이는 이름인 에보니, 자말은 불쾌함으로 분류했다고 합니다. 이는 인공지능이 인간 언어를 학습하면서 부정적인 편견까지 그대로 학습했음을 방증합니다.



출처 - 로봇뉴스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보다 먼저 마이크로소프트의 트위터 AI 테이(Tay)는 인터넷에 확산된 인간 언어 습관을 학습하고 이를 공유하는 인공지능이 있었습니다. 테이가 막상 작동을 시작하자 사용자들의 질문에 백인우월주의, 흑인 비하, 대량학살 옹호 등을 일삼아 마이크로소프트가 황급히 서비스 자체를 종료해버린 적이 있습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인간의 언어를 중심으로 한 문제는 인공지능 연구에서 큰 화두 중 하나입니다. 2017년 현재 전 세계 295가지 언어로 총 4400만 건 이상의 기사가 공개된 위키피디아에도 그런 문제가 있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기본적으로 그 기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직접 작성과 수정을 하고 있지만, 방대한 규모 때문에 기사 편집 작업의 일부를 자동화된 소프트웨어, 이른바 봇(Bot)이 담당하게 하여 효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양적으로 봇은 인간의 0.1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위키피디아 전체 편집 작업의 15퍼센트 정도를 담당할 정도로 뛰어난 작업 효율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옥스퍼드 대학교가 2001년부터 2010년까지의 위키피디아 편집 이력을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봇끼리 서로의 편집 작업을 삭제하는 싸움을 벌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사람이라면 자기가 작성한 글이 반복해서 삭제되고 반려된다면 그 이유를 알아보고 토의를 통해 타당한 결론을 도출했겠지만, 당시 봇에는 이런 기능이 없었습니다. 이론적으로 봇끼리는 편집을 두고 싸움이 일어나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연구 결과 이 싸움은 여러 가지 언어를 관통하는 주제에 대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한 기사의 특정 단어에 대해 링크가 있다면 봇끼리 영문 정보 링크가 정답이다, 일문 정보 링크가 정답이다를 두고 싸운 겁니다. 언어의 차이가 맹점이 되어 예상치 못한 사태가 일어난 것이죠. 다행히 이런 현상은 2013년 다른 언어 간 링크를 보조하는 위키데이터가 세워진 후 사라졌다고 합니다.



출처 - 이데일리


옥스퍼드 대학교의 연구 결과 언어에 따른 봇의 행동 경향 차이도 드러났습니다. 이는 각각의 봇이나 봇이 동작하는 환경의 이면에 인간 설계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입니다. 인공물인 인공지능이 인간 문화를 체현하고 있다는 것이죠. 인류 역사 속에 나타나는 신화를 보면 늘 인간은 조물주인 신을 닮아가려고 합니다. 인공지능이 자신의 조물주인 인간을 닮아가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인공지능 기술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실제로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사라질 일자리에 대한 다양한 분석 자료가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감소하는 일자리를 걱정하여 연대해야 할 대상을 경쟁자로 생각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기존 일자리를 다소 감소시킬 수 있겠으나, 그와 반대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여지도 함께 존재합니다.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공포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공지능 같은 유행에 함몰되어 기계화 기술의 등장으로 우리의 고용 형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하청사회의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일자리 파이가 줄고 그 줄어든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 '을들'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결국 문제는 개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의 '갑들'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상세한 내용은 생각비행이 펴낸 책, 《하청사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을 위협할까 걱정하기 이전에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과 기업의 문제를 더 근본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앞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편견을 학습했다는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성찰해야 할 대목은 인공지능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문화 속에 있는 차별 혹은 추악한 욕망에 대한 경계가 아닐까 합니다.

 

'갑'을 더 부자로 만들어주는 기술을 만들지, '을'을 자유롭고 풍요하게 만들어주는 기술을 만들지는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의 문제입니다. 우리 속에 내재한 편견을 깨고 화합하는 세상을 위해 노력한다면 인공지능에 의해 내 일자리가 사라질 것을 고민하는 일은 줄어들 겁니다. 인공지능 같은 신기술에 대한 걱정보다 우리에게 시급한 일은 하청사회를 살아가는 '을들'의 단단한 연대가 아닐까 합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지속가능한 갑질의 조건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불금을 기다리며 매일 야근에 시달리시는 직장인분들, 지금도 모니터를 보며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계시겠지요? 예전에 '독수리타법'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컴퓨터를 잘 사용하지 않는 어린 분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일지도 모르겠네요. 과거 컴퓨터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나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았던 기성세대가 손가락 한두 개로 겨우겨우 키보드를 치던 모습을 묘사한 단어입니다.

 

주판알을 튕기고 펜글씨 교본처럼 반듯한 글쓰기가 사회인의 무기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들이닥친 컴퓨터를 중심으로 한 업무 환경의 변화는 기성세대에겐 가혹했습니다. 대기업 고위직들은 처음엔 손으로 쓴 종이를 부하 직원에게 입력하게 하며 버텼으나 결국엔 말단 직원한테 키보드로 입력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이런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퇴출당하기 일쑤였죠.


출처 - 연합뉴스


생각비행이 속한 출판업계만 놓고 봐도 컴퓨터를 중심으로 한 업무 환경의 변화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한 글자씩 꾹꾹 눌러 쓴 원고지 더미가 작가의 방을 상징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디지털 원고로 출판사에 입고되고, 편집-디자인-출력 등 작업 대부분이 컴퓨터를 통해 이뤄집니다. 책을 출간한 이후에도 주문 접수, 출고, 재고 관리 등을 컴퓨터의 도움 없이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한 세대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책을 둘러싼 업무 환경이 이전과는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좋은 만년필이 작가의 필수품이던 시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좋은 기계식 키보드, 스캐너, 스마트폰, 태블릿 등 다양한 디지털 도구가 이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글씨를 잘 쓰는 게 작가와 편집자의 미덕인 시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캘리그라피가 아닌 이상 이를 신경 쓰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서로의 필기체를 확인할 기회가 드물어지는 세상이니까요.

출처 - 연합뉴스


입력 방식의 차이가 어쩌면 사람과 업계의 세대를 가르는 척도가 될 수 있겠군요. 일본에서는 이 문제가 나름 이슈입니다. 작년에 저명한 비즈니스 주간지 《다이아몬드》에 '「젊은 세대의 컴퓨터 이탈 현상」이 시사하는 두려운 미래’라는 칼럼이 실렸습니다. 독수리타법을 쓰는 기성세대를 은근히 깔보던 자신이 다음 세대인 젊은이들의 핸드폰 입력과 스마트폰 터치 입력 때문에 기성세대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한 글입니다.
 

「若者のパソコン離れ」が示唆する恐ろしい未来(원문) : http://diamond.jp/articles/-/98503


「젊은 세대의 컴퓨터 이탈 현상」이 시사하는 두려운 미래(번역문) : http://isao76.egloos.com/2592896


물론 이는 일본의 문제입니다. 일본에서 키보드로 글자를 입력하려면 영문 발음을 쳐서 변환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 때문에 효율적인 스마트폰의 자동완성 기능이 더 빠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 입력은 이와는 다르죠. 현재로는 키보드 입력이 스마트폰 터치 방식보다는 훨씬 빠릅니다. 일부 엄지족이 웬만한 성인의 키보드 입력 속도를 웃도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만, 대부분의 직업 현장에선 여전히 마우스와 키보드를 통한 입력 방식이 최적의 조건입니다.

 

출처 - 기즈모도닷컴


애초 효율이나 속도만 따진다면 '쿼티' 방식이 아닌 '드보락', 즉 두벌식이 아닌 세벌식 자판 입력 방법을 써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방식이 제일 효율적인 업무 환경이 되는 법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도도한 시대의 변화는 우리에게 익숙함과의 결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요즘 4차 산업혁명이 시대적 화두인데요, 이런 조류에서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수는 없겠죠.

 

지난해 처음으로 모바일 기기의 인터넷 트래픽이 PC를 넘어섰습니다. 한국은 스마트폰 사용률이 90퍼센트를 넘은 지 오래됐습니다. 이런 접속 환경의 변화는 세계적인 추세이며 앞으로도 가속화할 겁니다. 지금도 회사 업무 외에는 PC를 쓰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일수록 키보드보다 스마트폰 입력에 더 익숙합니다. PC보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고 스마트폰 인터페이스에 익숙해진 세대가 회사에 입사할 때쯤이면, 한국에서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들은 뒤처진 기성세대가 되어 퇴출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출처 - 디지털데일리


2016년 딥러닝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나온 후 업계 판도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신경망 인공지능을 적용하여 모바일 기기의 음성 인식과 번역의 완성도는 이미 놀라운 수준으로 향상되었습니다. 바둑은 이미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고, 올해는 고도의 전력이 중요한 프로포커판을 인공지능이 휩쓸기도 했죠.

출처 - 경향신문

 

타이핑의 시대가 저물고 말로 인공지능 기반의 기계와 소통하는 일이 대세가 되는 시대로 들어서는 것은 아닌가 싶군요. 이런 변화의 흐름에서는 키보드도 터치스크린도 아닌 인공지능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가장 중요한 소양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말에 두서가 없고, 우주의 기운 운운하는 사람은 퇴출 대상 제1호가 되겠죠. 이런 변화를 마냥 좋아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시대든 말의 무게는 동일할 겁니다. 자신이 한 말을 책임지는 사람이 설 자리가 없어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2016년을 마무리하며 크리에이티브 시각디자인 집단인 버틀러 잉크(Beutler Ink)에서 한 해 동안 벌어진 전 세계 사건, 사고를 한 장의 그림에 담았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보신 분들도 계실 텐데요, 이 그림은 16세기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명화인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을 패러디하여 제작된 것입니다. 그림 안에는 탐욕스러운 트럼프 당선부터 카스트로, 데이비드 보위, 프린스 등 우리 곁을 떠난 명사들에 대한 추모도 담겨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과연 어떻게 표현되었을까요? 삼성 갤럭시노트7 폭발 사건이 조그맣게 실려 있을 뿐입니다. (그림에 노란색 상자로 표시해두었으니 그림을 클릭해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면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출처 - Beutler Ink.com


2016년은 우리나라나 전 세계적으로 정말 '격동의 해'라는 말이 어울리는 해였습니다. 훗날 역사가들에겐 흥미진진할 장면일지 모르겠으나 '지금'을 사는 우리에겐 더없이 고된 한 해였죠. 굵직한 사건만 훑어봐도 이렇습니다.

 

 1월 북한 4차 핵실험

 2월 개성공단 폐쇄

 3월 이세돌 vs 알파고 대국

 4월 총선으로 16년 만에 여소야대 및 3당 체제 형성

 5월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

 6월 브렉시트

 7월 영남권 진도 5 규모 지진

 8월 브라질 대통령 탄핵 및 갤럭시노트7 폭발 사건

 9월 이화여대 정유라 특혜 의혹

10월 최순실 국정농단 / JTBC 태블릿 PC 특종

11월 카스트로 사망 /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12월 박근혜 대통령 퇴진 100만 촛불집회 / 탄핵 가결 / 송박영신


이미 일어난 일들이긴 합니다만 정치, 사회, 경제적인 이슈부터 자연재해와 세계적인 사건에 이르기까지 이 많은 일이 대체 어떻게 한 해 동안 다 일어날 수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훗날 2016년 역사를 공부해야 할 아이들이 이 시기를 과연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집니다.


출처 - 유튜브

 


이 많은 사건, 사고 속에서 우리가 이뤄낸 것 역시 작지 않습니다. 국민의 힘으로 국회를 움직여 대통령 탄핵 가결을 이끌어낸 일은 하나의 쾌거이자 세계인에게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영국 BBC는 100만 명 이상이 모인 대규모 시위를 평화롭게 진행한 대한민국 시민의 힘에 놀라워했습니다. 폭력으로 권력을 뒤집어엎는 피의 혁명이 아니라 평화와 비폭력의 방법으로 국민이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그 대리자인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뜻을 받들게 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교과서와도 같은 모습을 거시적으로 실현해냈기 때문입니다.


출처 - JTBC


이 때문일까요? 2016년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였습니다. 《교수신문》은 전국의 교수 611명을 대상으로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이메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2016년 한 해를 규정할 사자성어를 뽑았다고 밝혔는데요, '군주민수'란 《순자》의 왕제 편에 나오는 말로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 君以此思危 則危將焉而不至矣)."는 뜻입니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 교수는 좀 더 전복적인 추천 사유를 덧붙였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군주가 배고 백성은 물이란 비유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개념이라는 거죠. 유가사상에 입각한 전국시대의 지식인인 순자가 지배자에게 민본주의를 훈수하는 제왕학에서 파생됐기 때문입니다. 민주공화국에서는 더 이상 무조건 존경받아야 하는 군주도 없고 그 자리에 그냥 가만히 있는 착하고 어린 백성도 없으니 이 사자성어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번역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민주공화국에서 권력자는 국민의 힘을 대리하는 선출직 공무원일 뿐임을 잊어선 안 될 이유입니다.



이 밖에도 '역천자망(逆天者亡)' '노적성해(露積成海)' '빙공영사(憑公營私)' '인중승천(人衆勝天)' 등 민주주의 원칙과 재권주민의 의미를 밝히고 공적인 일을 빙자해 사익을 챙긴 이들에 대한 비판이 어린 사자성어가 후보에 올랐다고 합니다.

 

출처 - 뉴시스

 

2016년 12월 31일 서울 광화문을 비롯한 도심에 시민 110만 명이 운집해 '송박영신' 촛불집회를 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 박근혜 정권이 물러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길 바란다는 염원이 10차 촛불집회까지 누적인원 1000만 명의 시민이 촛불을 든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출처 - YTN

 

201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7년은 최순실-박근혜, 그리고 그 부역자들을 엄벌에 처하고 세월호를 비롯한 숱한 의혹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생각비행 독자 여러분의 행복을 빕니다. 저희도 사회에 필요한 책을 펴내면서 힘차게 날아오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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