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부터 사법농단의 원흉들이 보석을 신청해서 우리를 긴장하게 했던 한 주였습니다. 이명박은 조건부이긴 하나 보석이 허가되었습니다. 김기춘과 양승태는 보석 청구가 다행히 기각됐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지난 6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석 허가를 받아 조건부 석방이 되자 시민단체인 조선의열단 관계자가 집 앞에서 항의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보석 허가 결정을 내린 서울고등법원은 "자택구금에 상당한 엄격한 보석조건을 붙인 보석 허가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자세히 설명하기도 했죠. 사실 보석은 법에서 정한 요건에 충족되면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원칙적인 이야기이긴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보석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토록 들끓게 하는 건 법률적 판단을 하는 법관, 나아가 법질서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크기 때문일 겁니다. 특히 이번에 보석을 신청한 사람이 사법농단의 장본인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보석과 관련된 이 상황 자체가 자기 회귀적이고 아이러니가 아닌가 합니다.


출처 - JTBC


지난 5일 검찰은 양승태 시절 사법농단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 10명을 추가 기소하고 법관 66명에 대한 징계 사실을 통보했습니다. 66명이나 되는 법관 중에 현직에 있는 이도 8명이나 됩니다. 혐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등이며 불구속기소 되었습니다. 이들은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에 개입하고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 모임에 대한 와해를 시도한 데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당시 법원행정처 이민걸 실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시 국민의당 의원들의 재판을 심리한 재판부의 심증을 빼내 전달한 혐의가 드러났습니다. 박근혜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 재판과 민변 변호사들 체포치상 혐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도 있었으며, 신광렬 전 부장판사는 정운호 게이트 당시 판사들 상대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영장전담 재판부를 통해 검찰 수사 상황을 빼내고 영장 심사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냈다고 하죠. 지난달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구속한 성창호 부장판사 등도 수사기밀을 보고한 혐의로 함께 기소되었습니다.


출처 - 국민일보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파기환송심 재판장이었던 김시철 부장판사의 경우 2015년 무죄를 끌어내기 위해 검사, 변호인에 대한 문답 시나리오를 준비한 사실이 지난달에 드러난 바 있습니다. 사전에 무죄 판결문 초안까지 작성해두고 무죄 선고를 시도했으나 같은 재판부에서 주심을 맡은 최 모 판사가 반대해 실행하지 못했다고 하죠. 이제 대법원이 해당 법관들에게 비위 사유가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요, 법관 징계 공소시효가 3년인 점을 고려하면 이들 중 일부는 징계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점쳐집니다.

 

출처 - MBC

법관의 판결이 외부의 과도한 비난을 받게 된 건 일선 법원의 이런 어이없는 판결들 때문입니다. 사법농단을 지켜본 국민들은 사법부가 삼권분립에 의해 독립된 기관이라는 생각을 더는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기관보다도 독립적이어야 할 법원을 자신의 영위를 위한 거래 수단으로 이용했던 양승태, 그리고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들이 던진 부메랑이 돌아와 결국 법조계의 불신을 야기한 것이죠.


출처 – 연합뉴스


국정농단과 사법농단이 자행되던 때 단물을 빨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이제 자유한국당의 신임 당대표가 됐습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그대로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박근혜와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을 수사하던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 기간 연장 요청을 대통령 권한대행의 자격으로 거절한 이가 바로 황교안이었습니다. 그는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 "박근혜를 최대한 잘 도와드리고자 특검 연장도 불허"했다며 스스로 공치사를 하듯 말을 꺼냈습니다. 국정농단을 최대한 덮어주고자 사심을 갖고 특검에 대한 수사 지휘를 했다고 스스로 고백한 꼴 아닙니까?

 

출처 - 경향신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수감된 지 353일 만에 석방됐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수감된 지 384일 만에 석방됐으며, 이번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져 349일 만에 석방됐습니다. MB의 보석 석방 때문인지 '보석 제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보석이란 구금된 사람을 일정한 돈이나 채권을 받고 석방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재판에 연루된 피의자에게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조처죠. 자기변호를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어 무고한 사람에게 형벌을 부과하는 사태를 예방하려는 목적입니다. 형사소송법은 일정한 예외 사유를 정해놓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보석 허가 청구를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외 사유에 해당하여 보석 허가를 할 수 없는 경우라도 법원이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임의적 보석 또는 직권 보석 허가 결정을 내려 피의자나 피고인을 석방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는 '병보석'도 이런 임의적 보석의 경우입니다. 일각에선 보석 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법원이 자초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재벌 총수와 정치인 등 막강한 변호인단의 조력을 받는 권력자들에게 예외적으로 보석을 허용해준 과거가 있기 때문이지요. 


 

출처 - 중앙일보

 

사실상 우리나라의 보석 허가율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한다면 낮은 편에 속합니다. 대법원이 발간한 《2018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석 허가율은 36.3%(2204명)였다고 합니다. 2008년 이후 법원의 보석 허가율이 점차 낮아지는 경향도 보인다고 하는군요.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가 지난해 말 발표한 '미국 보석 제도의 경제학'이라는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 1999~2009년 사이 보석 청구가 기각된 경우는 대체로 10%대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보석으로 풀려나는 사람이 많은 미국에서는 오히려 높은 보석금 때문에 보석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고 하죠.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피고인이 보석 허가를 기대하지 않아 청구하는 비율 자체가 낮습니다. 지난해 전체 피고인 중 11.4%(6079명)만이 보석 신청을 했고 실제로 보석이 허가된 피고인은 3%대에 불과했다고 하죠. 

 

출처 - 노컷뉴스

 

이런 상황에서 보석으로 풀려나온 이명박을 바라보는 여론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이른바 'MB 보석은 특혜 아닌 특혜 같은 특혜'라는 얘기입니다. 이명박의 보석 석방은 특혜라고 단정해서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특혜가 전혀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는 겁니다. 우선 이명박 보석의 결정적인 이유는 구속 기간이었습니다. 이명박은 1심에서 징역 15년을 받아 2심 재판이 진행 중이죠. 이명박의 항소심 재판 과정을 보면 4월 8일로 예정된 구속 기간 만료 시점까지 끝날 가능성이 없습니다. 형사소송법은 1심, 2심, 3심 각 6개월만 구속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고 있는데요, 어차피 구속 기간 내에 재판을 끝낼 수 없어 장기적으로 가야 하는 상황에서 보석을 결정한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심에서 징역 15년이 선고될 정도의 중대한 범죄혐의를 받고 있는 이명박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그간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했느냐 하는 부분에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또한 형법이 보석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긴 해도 실제로 풀려나기가 어려운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본다면 권력이 있거나 돈이 있는 수감자에게 주어지는 특혜로 인식될 측면이 크죠. 물론 일반 국민의 경우에도 구속 기간보다 예상 재판 기간이 더 길어지면 보석을 허가해주긴 하지만, 일반인의 재판이 이 정도로 길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입니다. 또 하나 이명박의 보석 석방이 특혜로 인식되는 측면은 형사 피고인에게 불구속 재판은 그 자체로 엄청난 특혜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경우 법원이 조건을 까다롭게 걸긴 했으나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보다 자택에 자유롭게 머무는 상황이라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훨씬 커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측근들에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고 법정에서 그들의 진술 증거가 중요한 증거가 되기 때문에 진술을 번복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죠. MB가 보석으로 풀려났다는 사실 자체가 지렛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 않겠습니까?

 

출처 - 연합뉴스

 

이명박의 보석 석방을 두고 일각에서는 MB의 재판지연전술이 먹힌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김현정의 뉴스쇼〉 '권영철의 Why뉴스' 꼭지를 맡은 권영철 기자는 이번 MB 보석 석방에 관해 취재하며 검찰의 한 핵심관계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판을 지연시켜 기간 내에 끝내지 못하게 하려고 작전을 짠 것"이라며 "재판부가 그런 의도를 알고도 이를 묵인한 셈"이라고 인터뷰한 내용을 들려주었습니다. 실제로 MB는 1심에서 자신의 측근들을 증인으로 법정에 세우지 않았지만 항소심에서는 23명이나 되는 증인을 신청하며 재판지연작전을 펼쳤습니다. 이명박의 경우 별건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있는 것이 없어 박근혜와 달리 영장을 추가로 발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를 충분히 이용했고 재판부가 수용한 상황이 됐습니다.

 

출처 - 카카오 1boon

 

앞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법원의 사전 허를 받고, 복귀 후에도 법원에 보고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구치소에서 석방돼 자택에 머무르면서 재판 준비에만 집중해야 한다"며 "법원 허가 없이 자택에서 한 발짝도 밖으로 나올 수 없고 변호인과 직계 혈족 외의 사람과 접견 통신할 수 없다"고 조건을 달았죠. 아울러 재판부는 "보석조건을 준수한다는 조건으로 임시 석방하는 것일 뿐 구속영장의 효력은 유지되는 셈"이라며 "만일 피고인이 조건을 위반하면 언제든지 취소하고 다시 구치소에 감금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풀려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가사도우미와 경호원, 운전기사 등과 "만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접견 허가를 요청했습니다.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이라 하더라도 100억원이 넘는 뇌물을 받아 챙긴 혐의로 징역 15년형의 중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가사도우미까지 두는 데 대해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보석 허가에 대해 사실상 가택 구금이라고 밝힌 법원의 엄격한 석방 지침과도 사뭇 다르다는 지적도 뒤따릅니다. 얼마 전 이른바 '황제보석'으로 논란이 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사례 때문인지 재판부는 이명박의 보석 석방이 '병보석' 사유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MB 보석이 특혜라는 점이 분명해보입니다.


출처 - YTN

 

이명박이 보석으로 풀려 나오는 날 YTN '돌발영상'이 오랜만에 영화 같은 영상 한 편을 찍었습니다. 이명박이란 배우 자체가 스포일러이긴 했으나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 뺨치는 연기를 보고 있자니, '벽 짚고 보석 석방되기'라는 특권층을 위한 고급 기술의 창시자가 될 성싶다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명박의 보석 석방,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재판부가 아무리 조건부라는 단서를 달았더라도 결국 그 보석을 허가한 것은 법원입니다.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날이 참으로 멀어보이는군요.

사법농단의 핵심으로 지목되어 오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월 24일 새벽 구속됐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사법행정권 남용의 혐의에 대해 검찰이 제기한 구속영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구속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죠. '헌정 사상 처음'이라는 표현을 이렇게 자주 사용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박근혜 전 대통령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대통령, 국정원장, 대법원장 등 국가 권력 서열 1위부터 줄줄이 구속되다 보니 요즘 인기 있다는 넷플릭스 드라마처럼 '지정생존자'라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농담이 인터넷에 유행하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대한민국 헌법은 법관이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삼권이 분립되어 있고 법관 한 명 한 명이 헌법적 기관으로 존중받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대한민국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법원행정처를 통해 법관들의 인사권을 거머쥐고서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었으며, 박근혜 정권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재판 사건을 들고 가서 정치적 판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원세훈 국정원장 댓글부대 여론조작 사건 등의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사실이 만천하에 다 드러났죠. 누구보다 사법부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지켜내야 했던 대법원장이 자기 이익과 협잡에 앞장섰던 겁니다. 이런 마당에 누가 사법부 판결의 권위와 헌법적 가치 그리고 양심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출처 - MBC


들끓는 여론 때문인지 서울중앙지법은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적시하며 양승태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죠. 사실상 법원도 양승태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이자 이 사태의 최종 결정권자이자 책임자라고 판단한 것이죠. 이전에 박병대,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을 때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특히 양승태가 이 사법농단 사태의 주범으로서 후배 법관들의 진술에 대해 거짓 진술이라는 취지로 반박하거나 자신의 개입 근거가 되는 주요 증거자료에 대해 사후조작 가능성을 주장하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점을 특히 고려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양승태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이 시작될 경우 후배 판사들과 말 맞추기 등 증거인멸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 31일 YTN은 <'양승태 구속' 언론 성향별 보도 형태는?>이라는 꼭지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다룬 언론, 방송의 보도 형태를 분석했습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전 대법원장 구속이라는 사건에 대해 5대 일간지를 분석한 결과 조선, 중앙, 동아 중에서 《조선일보》가 130여 건으로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중에서 《경향신문》은 《중앙일보》보다 보도량이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독자층이 젊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출처 - YTN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사회적 정의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이 주제에 민감한 독자층을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박근혜 정권의 사법농단이 이제야 해결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게 되고, 젊은층과 진보층을 중심으로 블랙리스트 사건이 어떻게 종결되는지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 측면이 있습니다.


출처 - YTN

 

한편 언론, 방송의 보도를 보면 문제점도 드러났습니다. 사건 자체를 스포츠 중계하듯이 일일이 다 중계하는 것이죠. 사법농단이라는 큰 구조 속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관련된 재판의 의미가 무엇이고, 이와 관련해 사법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개혁적 논의 등에 대한 심층적인 기사를 내보내기보다는 당시 일어나고 있는 사실 위주의 스트레이트성 보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언론, 방송 환경의 제한성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심층적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하는 개선점이 보입니다.

 

출처 - MBC

 

사법농단 사태의 몸통인 양승태의 구속으로 사법 적폐 청산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양승태의 지시를 따른 법관들에 대한 탄핵이 거론된 바 있는데요. 이론상 법관에 대한 탄핵이 가능하지만 이전에는 법관에 대한 탄핵이 실제로 일어난 적은 없었죠. 시민단체들에서 탄핵 소추가 필요한 법관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기도 했으니 어쩌면 또 하나의 '헌정 사상 최초'라는 표현을 쓰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 MBC

출처 - 한국일보


행정부, 사법부가 헌정 사상 최초 기록을 세웠는데 입법부라고 문제가 없을까요? 양승태 구속의 여파로 국회의원들의 각종 재판 청탁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정황은 검찰 조사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죠. 청탁은 보수, 진보 진영을 가리지 않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2015년 국회 파견 판사한테 지인 아들의 강제추행미수죄에 대한 선처를 요청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홍일표 의원은 자신의 민사 사건과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 대해 법원행정처에 청탁한 의혹을 받고 있죠. 특히 홍일표 의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을 일으킨 원인 중 하나인 상고법원 신설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국정농단에 이어 사법농단에 대한 단죄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향후 수사와 재판으로 부정한 청탁과 불의한 거래를 속속 드러내길 바랍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요 며칠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전국 법관 대표들은 경기도 고양에 있는 사법 연수원에서 정기회의를 열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에 관해 법관 탄핵을 검토해야 한다는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법관 대표들은 의견서를 통해 이 사법 농단이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위반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법관들이 스스로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들을 탄핵해야 한다고 요구한 겁니다.


출처 - 뉴시스


이 발의가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자 회의장에서는 1시간이 넘도록 찬반 공방이 오갔습니다. 반대 의견도 만만찮았지만 1회 수정을 거친 이후 참석 법관 대표 과반의 찬성으로 최종 가결되었습니다. 법관들 스스로 반헌법적인 요인들을 탄핵해 국민을 설득하려는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면 대체 누가 앞으로 법원의 판결에 권위를 부여하겠느냐고 판단한 겁니다. 의혹에 연루된 법관이 누군지까진 삼권분립 위배를 우려해 구체적으로 거명하지 않았지만 사법농단이 명백히 반헌법적 행위라는 점을 법을 다루는 법관들이 인정했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이와 연관된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설치 등에 대한 법학자 등 전문가들의 의견은 일단 긍정적입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 1일부터 16일까지 대학전임교수인 법학자 70명을 대상으로 사법농단 특별재판부의 위헌 여부와 그 건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사법농단 특별재판부 구성이 위헌이 아니라는 응답이 71.4%로 나왔습니다. 특별재판부도 현직 법관으로 구성된 재판부이기에 문제가 없고, 사법농단에 얽히지 않은 객관적인 판사들이 재판을 진행해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근거가 제일 많았습니다. 현재 대법원은 사법농단의 핵심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을 신설 형사합의부에 배당하는 등 나름의 자구책을 내놨지만 여전히 국민의 불신이 큰 상황입니다. 사법부가 사법농단을 명명백백히 진상규명하기 위해서는 특별재판부 도입이 합리적이고 불가피한 대안으로 보입니다.


출처 – SBS 유튜브


문제는 다시 국회입니다. 공이 입법부인 국회로 넘어왔기 때문입니다.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인 법관을 탄핵하려면 국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과반이 찬성해야 의결됩니다. 재적의원 과반수 발의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한 대통령 탄핵에 비하면 요건이 낮은 편이죠. 박근혜 탄핵 때와 마찬가지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 이후 헌법재판소 심판을 통해 탄핵 여부가 결정됩니다.


출처 - SBS


문제는 국회가 이 탄핵을 진행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국회가 예산안 심사 정국에 돌입하고 있어 여야 간에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국회 보이콧에 나섰다가 가까스로 정상화에 합의한 상태죠. 국회가 어지러운 상황인데 과연 법관 탄핵 절차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특히 사법농단의 원흉인 박근혜 정권의 근원인 자유한국당은 이번에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끝나자 사법농단을 바로잡기 위해 법관 탄핵소추안 의결을 촉구하기로 의견을 모았죠.


출처 – SBS 유튜브


같은 날 검찰과 법원 등에 따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당시 사법 행정에 비판 목소리를 낸 법관에 대해 보복성 좌천 인사를 한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특정 성향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가하기 위해 작성됐다는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의 구체적인 내용이 처음으로 확인된 겁니다. 양승태는 퇴임 당시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공언한 바 있죠. 하지만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서'라는 문건에 의하면 양승태 사법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법관의 인사 평정 순위를 낮춰 지방법원으로 전보하는 계획 등이 담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해당 문건에 양승태가 손으로 직접 결재한 사실까지 확인됐습니다. 한 입으로 두말을 했으니,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리던 법조인으로서 부끄러워 해야 할 뿐 아니라 처벌받아 마땅합니다.


출처 – SBS


굴곡이 많은 우리 역사에서 인혁당 사건과 같이 법원의 치부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법부는 우리 사회에서 최루의 보루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사법부는 스스로 자신의 목을 치는 진정성을 보여야 합니다. 그것이 사법농단이라는 꼬리표를 떼는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기상청의 최고 기온에 관한 기록을 또 한 번 경신하던 여름 폭염 속에서 제73주년 광복절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보다 하루 앞선 8월 14일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행사가 처음으로 개최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북한과 함께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해방이 되면 고국에 묻어달라고 했던 안 의사의 마지막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시사위크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이후 1년간 여성 독립운동가 202분을 찾아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인 강주룡 지사와 고차동, 김계석 김옥련, 부덕량, 부춘화 등 제주에서 시작된 해녀 항일운동을 일으킨 해녀들을 호명했습니다. 이번에 공식 인정된 배화여학교 학생 6명 김경화, 박양순, 성혜자, 안희경, 안옥자, 소은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을 위한 모든 노력에 반드시 정당한 평가와 합당한 예우를 받게 하겠다고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약속했습니다. 동시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잇따라 만나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단순히 외교만의 문제가 아니며 세계 인권과 평화에 관한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출처 - 국가보훈처


이런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와는 달리 박근혜 정권 시절 양승태 대법원장은 재판 거래에 나섰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더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은 심지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소송과 강제 징용 관련 소송을 두고 외교부와 거래를 한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 이후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는데, 당시 양승태의 법원행정처는 위안부 합의 일주일 만에 5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가며 관여하려 한 정황이 드러난 겁니다. 이 시나리오는 모두 재판이 시작되기 전 박근혜 정부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성됐습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첫 번째 시나리오부터 네 번째 시나리오는 한국 법원에 재판권이 없다는 결론을 정해놓고 소송 자체가 성립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본 재판부인지 한국 재판부인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유일하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손을 들어주는 마지막 시나리오마저 일본의 강력 반발과 박근혜 정부 기조와 다른 판단으로 갈등이 우려된다며 문건 말미에는 한국 법원에 재판권 자체가 없다는 첫 번째 시나리오와 같은 결론으로 회귀해버립니다. 이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소송은 지난 2년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심리가 열리지 않았죠. 그러는 사이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절반 이상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전범기업 상대 소송에 박근혜의 비서실장이었던 김기춘이 직접 개입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기 때문입니다.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장이었던 차한성 대법관이 2013년 말 김기춘과 만나 재판 진행 상황을 논의하고 청와대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는 관련자 진술과 회동 기록 등이 확보됐습니다. 이 내용은 최근 외교부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문건들에서 확인됐다고 합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대법원은 2012년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는데 2013년 해당 전범기업들의 재상고로 사건이 대법원에 다시 접수된 상태였습니다. 이때 김기춘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 소송의 최종 결론을 최대한 미루거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판결을 뒤집으라는 요구를 대법원에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5년 동안 결론을 미루다가 최근에서야 전원합의체에 회부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실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이 사법농단에 직접 관여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 또한 커지고 있죠. 

 

출처 - 뉴시스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와 강제 징용 피해를 거래 품목으로 삼아 청와대, 외교부, 사법부가 매국적인 장사를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로 미루어볼 때 사법농단의 몸통은 양승태 대법원장이며 그 재판 거래의 상대는 박근혜의 청와대였다는 점이 명백해지고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국가가 나서서 지켜줘야 할 위안부 피해자들과 강제징용 피해자들마저 정부 책임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버림패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은 그야말로 충격적입니다. 그러므로 각계각층의 사법농단 청산 요구는 사법부를 다시 세우는 일일뿐만 아니라 전쟁 범죄 후속 대처와 세계 보편적인 인권을 바르게 다시 세우는 일과도 맞닿아 있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출처 -경향신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은 첫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을 맞아 세계연대집회를 개최했고 광복절인 수요일에는 제1348차 정기 수요 시위도 열렸습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로 사람들이 다시 상기하게 된 실제 모델인 이용수 할머니 등도 참석했습니다. 시위 참석자들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범죄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과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이행을 통한 정의 실현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또한 평화비 건립 방해 행위 중단과 아직도 버티고 있는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등도 요구했습니다. 36도가 넘는 뜨거운 날씨보다 더 맹렬했던 사람들의 연대가 안타깝게 돌아가신 피해자 할머니들께 닿지 않았을까요?

 

출처 - 뉴스원

 

부산 지역 시민단체가 사법농단 사태와 관련하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는 지난 20일 부산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농단의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적폐 판사들을 해임하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며 "진정한 사죄와 반성은 철저한 수사와 사법 적폐세력들에 대한 단호한 처벌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출처 - 뉴시스

 

같은 날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정론관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양승태 사법농단 시국회의,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사회모임이 기자회견을 열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특별법에 대한 심사와 논의를 조속해 진행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헌법재판소의 내부 기밀을 파견 법관을 통해 몰래 빼돌린 단서를 포착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법원에서 헌법재판소로 파견을 나간 최모 부장판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 당시 헌재 내부 동향 등을 대법원으로 빼돌린 사실이 발견된 것이죠. 검찰은 지난 20일 강제 수사에 착수했는데요, 빼돌린 기밀을 통해 법원이 헌재를 적극 견제해왔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최근 양승태 사법부가 재판거래를 시도한 단서들이 드러나면서 양 전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이고 있죠. 법조계는 검찰이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물증과 진술을 다수 확보한 만큼, 이들 대법관에 대한 조사를 곧 진행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했습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KTX 근로자 복직소송, 쌍용차 해고소송 등 사회적 관심이 큰 재판을 사법부가 정치권력의 시녀가 되어 제대로 심리하지 않은 사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최근 드러난 사법부의 사조직화도 치명적입니다. 과연 어떻게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사법개혁은 국민의 요구입니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되찾는 길밖에 없습니다. 인사권, 운영권을 독립시켜야 함은 물론 권한에 대한 책임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사법농단 세력을 제대로 처벌하고 다시는 헌법 유린, 국기문란 사태로 국민이 희생되지 않도록 온 국민이 사법개혁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던 신임 대법관들이 국민 신뢰를 회복할 만한 개혁을 이뤄내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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