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5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공식적으로 사망했습니다. 급성심근경색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 6년 만인 향년 78세였습니다. 세계 주요 외신들도 이건희 회장의 사망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이건희의 업적은 모두가 알다시피 대단합니다. 재벌 2세로 출발했다고는 하나 회장 취임 당시 국내 3위에 지나지 않던 삼성을 세계 5위 브랜드로 키웠으니까요. 삼성의 주식 시총은 그 기간에 1조 원에서 396조 원으로 396배 증가했습니다. 수많은 정·재계 인사들과 해외 정상까지 조의를 표한 가운데, 지난달 28일 영결식이 비공개 가족장으로 엄수됐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처럼 삼성이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재벌 그룹임에는 분명하지만, 이건희로 대표되는 삼성이 그에 걸맞은 행보를 보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삼성은 우리 사회에 큰 어둠을 드리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건희가 개인적으로 저지른 성매매 같은 오점은 별개로 하더라도 정경유착과 비자금 등의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튀어나왔죠. 삼성이 그만한 기업으로 클 수 있었던 이유가 단지 이건희의 경영 능력만이 아닌, 마땅히 그 부를 같이 누렸어야 할 임직원과 하청 업체를 쥐어짠 결과이자, 정치권과 야합하여 온갖 편의와 세금을 지원받은 결과임을 방증합니다. 삼성이 그간 유지해온 무노조 경영은 그 증표입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미디어오늘》 [민언련 종편 일일모니터] 기사를 통해 종편3사 시사대담 프로그램이 이건희의 공로에 비해 과실을 얘기하는 데 인색했다는 점을 알렸습니다. 프로그램별로 살펴보면 이를 확연히 할 수 있습니다. 채널A 〈김진의 돌직구쇼〉는 30분이나 이건희의 공로를 다루면서도 과실을 다룬 건 고작 48초에 불과했습니다. MBN 〈뉴스와이드〉는 10월 26일 한 차례만 이건희 소식을 13분 다루며 공로는 10분간 언급하면서도 과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방송을 보면 삼성의 힘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아버지인 이건희를 이어받은 이재용의 삼성은 국정농단 사태에 깊숙이 관련되어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따라 가고 있는 것이죠. 지난 5월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이 사과를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한두 가지 혐의가 아닌 일로 재판이 걸려 있기 때문이죠.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과 삼성 전직 고위 임원들을 기소하지 않고 수사를 중단하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검찰은 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본시장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를 한 바 있습니다.


출처 - 팩트TV


이건희의 시대가 가고 이재용의 시대가 왔으니 삼성도 뭔가 바뀌어야 하건만 대를 이어 삼성의 문제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초, 삼성전자의 한 임원이 자신을 국회 출입 기자로 등록한 뒤 기자 출입증을 이용해 의원실을 자유롭게 드나든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삼성전자의 대외협력팀 소속의 상무였는데 국회 출입을 위해 필요한 의원실 방문 확인을 매번 거치지 않았습니다. 재벌 그룹의 상무임에도 언론사 기자로 국회 출입증을 받아 돌아다닌 것도 의문을 자아냅니다. 이 상무는 새누리당 당직자 출신이기도 했죠. 이 일이 들통나자 이 상무는 잠적했고, 그가 소속돼 있다던 언론사 홈페이지는 바로 폐쇄됐다고 합니다. 삼성전자는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사과했지만 보수 정치권과의 야합, 언론과의 짬짜미, 국회를 안방 드나들 듯했지만,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뿐만 아니라 최근 5년간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에서 최소 10건의 산업재해 사고가 감독기관에 보고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지난 8월 한국노총 산하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은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생산직 노동자 53명을 대상으로 산업재해 피해 여부 조사를 해 삼성이 산업재해를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그 의혹이 사실임이 폭로되었죠. 삼성전자는 그간 산업재해 신청 은폐 의혹을 부정해왔지만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나마 노조가 출범하기는 했으나 비상식적인 노동환경과 직원 쥐어짜기는 변함이 없고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삼성전자가 받은 과태료는 6640만 원이 다였습니다.


출처 – 저널리즘 토크쇼 J


하청업체 쥐어짜기와 기술 도둑질도 여전합니다. 삼성을 대표하는 스마트폰 사업의 협력 업체인 한 중소기업이 가진 기술을 도용해 다른 기업에 넘긴 것도 이번 국정감사에서 폭로됐습니다. 2018년 6월 특허를 받은 한 기업의 제품을 납품받던 삼성전자는 그 제품과 기술을 다른 기업에 넘겨 더 싼 가격으로 공급받기 시작했습니다. 특허까지 받은 ‘협력’ 업체는 한순간에 버려졌습니다. 그런데 국정감사에서 삼성이 한 변명이라곤 부품은 넘겼지만 기술은 넘긴 게 아니랍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식의 해괴한 변명을 국회에서 늘어놓은 것이죠.


출처 - 진실의길


삼성과 짬짜미하여 가장 큰 폐해를 보인 건 역시 언론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삼성의 산재 은폐에 대해 보도한 언론은 《한겨레》, 《경향신문》, 《매일경제》,  단 3건뿐이었습니다. 조중동은 물론 나머지 경제지들도 삼성을 위해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번에 이건희가 사망하자 기레기 언론사들은 앞장서서 삼성 일가가 내야 할 상속세 10조 원을 대신 걱정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삼성과 짬짜미한 전·현직 정치인들은 대기업의 상속세율에 대해 다시 공격하기 시작했죠. 


출처 - 경향신문


기레기에 홀린 사람들은 마치 본인도 상속세를 10조쯤 내야 하는 양 이재용과 삼성 일가의 상속세를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98%는 상속세를 낼 요건에 해당하지도 않습니다. 삼성의 상속세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2% 최상위층이라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정희가 죽었다고 박근혜를 걱정했던 사람들처럼 대체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출처 - 진실의길


애초 이건희가 ‘공식적’으로 사망하는 데 6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도 바로 이 상속세 때문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건희가 쓰러진 이후 지난 6년간 이건희 일가가 받은 배당금은 3조 원에 이릅니다. 총 배당금 가운데 이건희가 받은 배당금이 약 1조 8000억 원, 가족 전체가 받은 배당금의 65%를 차지하는 금액입니다. 왜 이건희가 살아 있어야만 했는지, 왜 간간이 기레기들이 병실에서 이건희가 뭘 했다는 식의 기사를 냈는지 이해가 갑니다. 이 기간에 이건희 일가가 받은 배당금은 3배 이상 증가했고 10조 원을 웃도는 상속세 납부 자금 마련을 위해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의 배당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출처 - 민중의소리


이건희의 죽음과 이재용의 승계로 이어진 삼성이라는 대기업이 드리운 어둠은 너무 선명하고 짙습니다. 이건희의 사망에 부쳐 반올림은 "삼성의 어두운 역사는 이건희의 죽음과 함께 끝나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반올림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로 삼성 반도체 생산직 노동자의 백혈병 때문에 생긴 시민단체죠. 이건희가 독차지했던 삼성의 경제적 성공과 반도체 신화 역시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으로 이룩된 것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반올림의 논평처럼 과연 이건희의 죽음으로 삼성이 거듭날 수 있을까요? 현재 진행형인 삼성의 행보를 보면 개과천선은 참으로 요원해 보입니다.

지난 7일 박영수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습니다. 뇌물공여와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 국회 위증 등 5가지 혐의를 종합했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특검은 공범으로 재판 중인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임원 등 4명 중 3명은 징역 10년, 비교적 범행 가담 정도가 적다는 1명에게는 7년을 구형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선고는 이달 25일 열릴 예정이며 재판장의 재량하에 지난 박근혜 탄핵 선고 때와 같이 생중계를 고려 중이라고 합니다. 지난 박근혜 탄핵 선고에 이어 초미의 관심이 쏠린 세기의 재판의 서막이 열린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선고 결과가 아무래도 국정농단의 핵심인 박근혜와 최순실의 1심 재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출처 - SBS


이 때문에 마지막까지 특검과 삼성측 변호인들은 큰 견해 차이를 보였으며 법조계는 각종 경우의 수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특검은 한마디로 경제계와 정계의 최고 권력자가 은밀하게 뇌물을 주고받기로 합의한 전형적인 정경유착에 따른 부패범죄라고 정의하고 있어 이를 엄단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한편 삼성측 변호인들은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 등을 동원했다는 프레임 자체가 특검이 만들어낸 가공일 뿐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출처 - 이데일리


특검이 구형한 징역 12년이라는, 법조계 예측보다 다소 높은 형량은 4가지 혐의 중 재산국외도피가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최순실의 딸인 정유라의 승마 지원 등과 관련해 독일로 보낸 78억 원이 재산국외도피죄에 해당한다는 건데, 도피액이 50억 원 이상일 때 최소 징역 10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범죄입니다. 300억까지의 횡령은 최대 징역 5~8년, 1억 원 이상 뇌물을 준 뇌물공여죄의 경우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재산국외도피죄보다는 모두 최소 형량이 낮습니다. 뇌물의 경우 받은 사람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가중처벌하지만 준 사람의 경우 가중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출처 - JTBC



하지만 그럼에도 핵심은 뇌물공여죄입니다. 사건의 중대성을 고려한 특검이 형량이 가장 높은 재산국외도피죄를 기준으로 삼아 구형했지만, 많은 혐의가 뇌물을 줬느냐는 사실 판단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죠. 특검에 따르면 이재용이 박근혜에게 뇌물을 건네기 위해 회삿돈을 횡령했고, 이 돈을 독일로 보낸 것에 대해 재산국외도피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그러니 이 뇌물 공여가 무죄로 선고된다면 다른 혐의들도 무죄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 경우 이재용은 징역 형량이 3년 이하로 줄어 역대 기업 회장들이 그랬듯 집행유예로 1심 판결이 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뇌물을 받은 박근혜와 최순실 역시 가장 핵심이 되는 뇌물 혐의를 비껴나갈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물론 뇌물과 회삿돈이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이동했느냐는 별개이기 때문에 국외재산도피, 범죄수익은닉 등은 뇌물공여죄보다 횡령 혐의가 인정되느냐 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재용의 경우 뇌물공여죄와 횡령죄 두 혐의가 모두 무죄로 결론이 나야 징역 3년 이하가 될 수 있고, 그에 따라 집행유예도 가능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재판은 특검으로서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서나 모 아니면 도의 선고가 날 가능성이 큽니다.


출처 - 아주뉴스


이 세기의 재판에서 핵심은 물증입니다. 재판부에서 안종범 수석 비서관의 수첩과 대통령 말씀 자료 등을 물증으로 채택할 것인지, 새로 제출된 청와대 캐비닛 문건이 증거로 채택될 것인지 등의 여부에 따라 판결의 향방이 바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증거 채택 여부는 판결문을 봐야 알 수 있으니 정말로 끝까지 가봐야 아는 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재판부는 구형이 있던 날 심증을 충분히 형성했다고 말했습니다. 5개 혐의에 대해 각각 유무죄를 어느 정도 결론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미 진실을 알고 있지만 법적인 판단이 여론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연 역사의 시곗바늘이 어느 쪽으로 흐르게 될까요? 첫단추를 잘 꿰어야 할 텐데 걱정 반 기대 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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