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6.13 지방선거 막판에 '이부망천'이란 망언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지난 6월 7일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 방송에 출연해 "서울 사람들이 양천구 목동 같은 데 잘 살다가 이혼 한 번 하면 부천 정도 간다. 부천에서 살기 어려워지면 인천 중구나 남구 쪽으로 간다"라며 지역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죠. 이에 자유한국당은 정태옥 의원의 대변인직을 박탈했고, 정태옥 의원은 자진 탈당했습니다. 자유한국당으로서는 망할 게 뻔한 지방선거여서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었죠.


출처 – JTBC 유튜브


정치인의 망언만이 아니라 지역이나 출신, 성별에 대한 편견으로 우리가 무심코 쓰는 차별 용어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일상적으로 쓰는 구어뿐 아니라 공식적인 행정 용어에도 차별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일상 속에 잠재한 차별어와 그 대체어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지난 4월 서울시는 차별 철폐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는 행정 용어를 고치고자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행정 용어를 다듬었습니다. '미망인, 학부형, 정상인'처럼 얼핏 생각하면 '뭐가 잘못됐다는 거지?' 싶은 말들입니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문제가 있는 어원을 가진 말이 꽤 많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미망인'은 남편을 여읜 여자를 가리키지만 정확한 유래를 따져 어원을 살펴보면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 따라 죽었어야 했는데 미처 그러지 못하고 아직 세상에 남아 있는 여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양성평등이라는 현대적 성 관념에 비추어 맞지 않을뿐더러 부부 관계를 마치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부속된 존재로 치부하는 말이라 인권 의식에도 맞지 않습니다. 이제 서울시는 '미망인'이 아니라 '고 OOO 씨의 부인'이라는 말로 대신한다고 합니다.


'학부형'이란 용어도 마찬가집니다. 학부형은 학생의 보호자를 이르지만 엄밀히 아버지와 형만을 이르는 말입니다. 현실적으로도 어머니가 제일 교육에 관여를 많이 할 텐데 이상하죠. 따라서 학부형 대신 학부모로 쓰는 것이 맞습니다. 또한 편부와 편모는 특정 성을 지칭하지 않는 중립적인 단어인 '한부모'로 바꿨습니다.


'정상인' 역시 순화 대상입니다. 정상인은 사전적으로 상태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사람을 의미하는데 장애인과 대조돼 장애가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종종 쓰여왔죠. 이는 장애인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회적 차별을 전제로 한 말입니다. 따라서 정상인 대신 비장애인이라는 단어로 고치기로 했습니다.


특정 지역을 범죄 도시로 설정한 영화로 논란이 되었던 '조선족'이란 용어도 순화 대상입니다. 중국에 사는 우리 겨레를 가리키는 말인 조선족은 '중국 동포'로 바꿨습니다. 생각해보면 미국에 살면 재미 동포, 일본에 살면 재일 동포인데 중국만 조선족으로 부르는 건 이상하기도 하고 형평성에 맞지 않죠.


이 밖에도 '불우 이웃'은 어려운 이웃으로 '결손 가족'은 한부모 가족이나 조손 가족 등으로 바꾸기로 했으며 '포트폴리오'나 'RMS' 같은 어려운 외래어도 실적자료집이나 기록관리시스템으로 순화해나가도록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최근 이슈가 되는 성 평등이라는 관점에서는 수정되어야 할 더 많은 단어가 있습니다. '주부'라는 단어는 이미 집에서 일하는 것이 여성으로 전제되어 있죠. 맞벌이가 늘고 있고 살림을 하는 남편도 늘고 있는 시대인 만큼 대체어가 필요합니다. '부녀'라는 용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결혼한 여자와 성숙한 여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지만 그 기준에 남성을 중심에 두고 그 아내 또는 딸을 이르는 말이니까요. 남성과 마찬가지로 오롯이 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여성이라고 쓰면 될 일입니다.


문단에서 자주 쓰는 '처녀작'이란 용어도 마찬가집니다. 처음으로 지었거나 발표한 작품을 이르는 말이지만 이 역시 과거 여성의 순결에 대한 강박에서 나온 용어이니 첫 작품이나 데뷔작이 더 나은 표현이겠죠. 처녀성과 관련된 '윤락'이란 단어도 바꿔써야 합니다. 여자가 타락하여 몸을 파는 처지에 빠졌다는 뜻인데, 성매매의 사회 구조적 원인을 무시한 채 성매매가 여성의 성도덕에만 문제가 있어 발생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그냥 성매매라는 표현을 쓰면 될 것입니다.

출처 - 〈사회적 의사소통 연구: 성차별적 언어 표현 사례조사 및 대안마련을 위한 연구〉

 

〈사회적 의사소통 연구: 성차별적 언어 표현 사례조사 및 대안마련을 위한 연구〉를 보면 성차별적 언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을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사회․문화적 영향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각이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페미니즘 언어학의 공헌이 컸다고 하죠. 페미니즘 언어 연구에서는 ‘성차별적 문화의 표현물로서 언어’를 조명하기 때문입니다. 

 

성차별적 사회에서는 여성이 불평등한 위치에 있는 만큼 언어 역시 필연적으로 차별을 표현합니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페미니즘 연구는 이런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를 활발하게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어의 차별성을 사회 실천적인 개념으로의 전환을 통하여 페미니즘 연구는 전반적인 여성차별체계에서 언어, 사회적 상호작용, 사회구조, 문화현상을 통합해 파악하는 시도로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 최근의 페미니즘 연구는 언어가 성차별성을 띄게 되는 과정이 여성성, 남성성에 대한 가치와 태도, 성역할 규범, 성별에 따른 권력관계 등이 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전개해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프레시맨’ 같이 성중립적이지 않은 표현이 주법 등 공문서에서 점차 사라졌습니다. 주법에 사용된 남성 중심적 용어를 성중립적인 표현으로 바꾸기 위해 워싱턴주는 꾸준한 개정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워싱턴주는 소방관을 '파이어맨' 대신 '파이어파이터'로, 경찰관도 '폴리스맨' 대신 '폴리스오피서' 등으로 바꾸어 사용하도록 권장해왔고 주법을 개정하여 '옴부즈맨'은 '옴부즈'로 '왓치맨'은 '안전요원(safety guards)' 등으로 대체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은 워싱턴주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미국 주의회의 연합 모임인 전국주의회회의(NCSL)는 미국 주의 절반 이상이 법에 성중립적인 표현을 쓰도록 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밖에도 성중립적인 시도는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뉴욕 지하철은 과거에는 "신사 숙녀 여러분(ladies and gentlemen)"이라고 방송했으나 현재는 "승객 여러분(passengers)"과 같은 성중립적 표현을 쓰고 있죠. 런던 지하철도 안내방송을 "신사 숙녀 여러분" 대신 "여러분 안녕하세요(Hello everyone)"로 바꿨습니다. 이처럼 성차별적 문화의 표현물로써 언어를 대하는 양상은 동서를 막론하고 주요한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앞서 소개한 '미망인, 학부형, 주부, 부녀, 처녀작, 윤락' 등의 용어만 봐도 우리 사회에서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 그로 인한 여성의 불평등한 위치 등이 언어에 어떤 식으로 고착화되어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정치인의 망언에 화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도 일상 속 차별어에 관심을 두고 순화해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출처 – 네이버 웹툰


남녀노소 쉽게 읽을 수 있는 웹툰이 때론 우리 생각의 사각지대를 메워주곤 합니다. 네이버의 수/토 웹툰인 〈나는 귀머거리다〉(라일라)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청각장애인인 작가 라일라는 어린 시절부터 대학생활에 이르기까지 귀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비장애인과 다르게 느낄 수 있었던 면면을 재밌게 표현하여 공감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수어'에 대해 연재하고 있는데요, 수어에 외국어는 물론 사투리, 나아가 에스페란토 같은 국제수화가 따로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비장애인들이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이런 시도가 비장애인들로 하여금 장애인의 삶을 생각하고 배려하게 해주는 작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스타벅스 유튜브


생활 속에서 장애인을 배려하는 서비스도 조금씩 확산하는 추세입니다. 식사 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찾아가는 스타벅스 매장에는 '사이렌 오더'라는 게 있습니다. 스타벅스의 앱 서비스인데요, 스타벅스 앱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접수, 음료 제조, 그리고 픽업까지 모두 때에 맞춰 알려주기 때문에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과정을 일일이 다 알려주고 볼 필요가 있나 싶겠지만, 청각장애인에게는 정말 편리한 서비스입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자기 차례가 언제 돌아올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이렌 오더를 이용하면 픽업대를 보면서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고, 매장에서 무선호출기를 받는 수고로움도 없어집니다. 청각장애인의 일상에서 보면 우리가 배려해야 할 부분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출처 - 국립국어원



국립국어원 한국수어사전 : http://sldict.korean.go.kr



국립국어원은 장애인의 날인 오늘(4월 20일)부터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온라인 한국수어사전에서 손가락 모양으로 단어 뜻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수형 검색 기능을 제공한다고 밝혔습니다. 여태까지는 한글로만 수어를 찾을 수 있어 실제 이용자인 청각장애인들이 수어로 사전을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컸습니다. 이런 미진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국립국어원은 의견 보내기 기능을 추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우리 사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간극을 조금씩 좁혀가곤 있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현실입니다. 특히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사회적 편견이 문제입니다. 

 

사이렌 오더로 호평을 받은 스타벅스는 2007년부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손잡고 체계적인 장애인 바리스타를 양성해 현재 190여 명의 장애인이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청각장애인이 물을 떠주자 옆의 비장애인에게 아이가 마실 거니 당신이 다시 떠달라며 장애인을 마치 전염병자 취급을 하거나, 술 취한 아저씨가 자기 말을 무시한다며 청각장애인 바리스타에게 뜨거운 커피잔을 던지는 등 안하무인의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하죠. 이런 어이없는 사례를 볼 때마다 우리 사회의 인권감수성이 너무 낮은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장애인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장애인등급제 폐지를 공약으로 발표한 대선 후보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 1명에 불과합니다. 장애인등급제는 장애인을 소득과 중증, 경증 등 의학적 판단에 따라 1~6등급으로 나눠 복지 서비스를 차등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중증장애인이어도 인프라가 좋을 경우 공공서비스가 필요 없을 수도 있고 경증장애인이라도 처한 환경에 따라 더 많은 서비스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필요 없는 곳에 과잉 서비스가 되는 곳도 있고 절실히 필요한데 등급 때문에 지원을 못 받는 경우도 생깁니다. 

 

선진국은 장애 서비스를 우리나라 같이 의학적 등급이 아닌 개인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분류하여 시행합니다. 필요한 곳에 적합한 복지를 제공하는 세심한 서비스가 우리 사회에도 필요합니다. 박근혜도 대통령 후보 시절 장애등급제 폐지를 약속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국정을 농단하며 기업들로부터는 돈을 챙기면서도 예산 핑계를 대며 장애인등급제 폐지 공약을 공수표를 날려버렸죠.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이번 대선에서 각 후보들의 복지 관련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또한 후보들이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인지, 각자의 평소 인권감수성이 어떠한지까지 아울러 따져보시길 바랍니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애인이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국격의 기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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