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5월입니다. 5.18 민주화항쟁을 떠올리게 되는 때죠. JTBC 보도에 의하면 당시 공수부대 대대장이 시민을 향해 "저건 죽여도 좋다"고 지시하고 계엄군이 그 지시에 따라 시민을 사살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학살자 전두환과 쿠데타 세력은 광주의 시민군이 먼저 공격해 자위권, 즉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총을 쐈을 뿐이라고 주장해왔지요. 그런데 국방부에 의해 내용이 지워진 채 공개됐던 11공수 상황일지 원본에는 계엄군이 시민을 사살해서 시범을 보였다라고 나와 있다고 합니다. 시민 1명이 버스를 몰고 분수대를 돌아나가려 할 때 그 자리에서 사살, 폭도들 앞에서 시범을 보였다고요.


출처 - JTBC


공수부대원의 자필 수기는 더 자세합니다. 버스가 오고 있을 때 대대장이 저건 죽여도 좋다고 했다며 중대장이 병사에게 실탄을 줘 조준 사격을 했다고 합니다. 그 사격에 의해 운전을 하던 시민은 내리다 쓰러졌습니다. 버스가 계엄군에게 돌진한 것도 아니고 돌아나가는 순간 시민을 상대로 사람을 죽이는 시범을 보인 겁니다. 학살자의 수괴인 전두환의 죄는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MBC가 입수한 해병 7연대 상황일지에 의하면 전두환은 부마항쟁의 진압 또한 지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979년 10월 박정희가 죽기 직전 부산과 마산에 들불처럼 번진 민주화 시위인 부마항쟁을 당시 박정희 정권의 계엄령으로 공수부대가 투입돼 무차별 진압했죠. 그런데 당시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이 현장에서 이를 직접 지휘한 사실이 군사 기록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출처 - MBC


전두환은 소요사태 수습은 초기 진압이 가장 중요하다며 시위대에 강력한 수단을 사용하라는 등 당시 계엄사령관, 3공수 특전여단장 등과 강경진압 작전 계획을 강행합니다. 5.18 민주화항쟁과 관련해 당시 지휘계통에 있지 않았으므로 진압작전과 무관하다고 주장해왔던 전두환이 사실은 그 전인 부마항쟁 진압 때도 현장에서 계엄사령부, 특전단과 작전 지휘를 했던 겁니다. 3공수 여단장을 앉혀놓고 전두환이 직접 보고를 받는다는 자료가 나온 것을 보면 전두환은 그때도 이미 권력의 핵심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두환은 부마항쟁 진압 후 10.26으로 박정희 유신정권이 무너지자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찬탈합니다. 요컨대 전두환에게 부마항쟁은 5.18 민주화항쟁 학살의 예행연습이었던 셈입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얼마나 망가뜨리고 왜곡시켰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출처 - 경향신문


힘겹지만 왜곡된 역사를 시민의 힘으로 하나둘 고쳐가고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지난 23일 '박정희의 긴급조치 발령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당시 수사 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1970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옥살이를 했던 김모씨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건데요.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긴급조치 1호는 헌법의 근본 원리인 국민주권주의 등에 비춰봤을 때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동시에 박정희는 국민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해 긴급조치 1호를 발령해 대통령의 의무를 어겼다고 설명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 판결은 지난 2015년 3월 사법농단의 주역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대법원이 긴급조치가 위헌이긴 하지만 박정희의 긴급조치 발동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대통령은 국민 전체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개개인의 권리에 법적 의무를 지지는 않기에 불법행위는 아니라고 판결했던 것과 정면으로 대치됩니다. 게다가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현행법상 양승태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지 못한다고 결정한 이후 나온 판결이기에 더욱 값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오늘 TBS 〈김어준의 뉴스쇼〉에 출연한 자유한국당 홍문종 의원이 "촛불집회는 아스팔트 쿠데타"라고 말했습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진행된 탄핵을 쿠데타로 규정해 파문을 일으켰는데요, 전두환, 노태우에 의한 군사정권 당시 여당을 계승한 자유한국당이 촛불집회를 쿠데타로 운운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부마항쟁, 5.18 등 굴곡진 한국 현대사는 파면 팔수록 친일, 독재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친일파, 독재자가 아닌 민중의 시각에서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역사의 시곗바늘을 되돌리려는 무리에 대항해 온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최근 국회 다수당의 대표를 청와대 참모가 정면 공격하는 정치판의 모양새를 보노라면 정당 민주화의 역풍이 참으로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을 필두로 한 청와대의 정치 개입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내쫓을 때 침묵했던 김무성 대표는 결국 화를 자초한 꼴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둘러싼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충돌 양상이 정치판의 핫이슈가 되고 있어 진보정치의 움직임은 언론과 방송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형국입니다.

 

이는 2015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을 때부터 사실상 예견된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당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이었건만, 보수진영은 헌재가 정의를 구현했다며 일제히 쾌재를 불렀고, 진보진영은 몸을 사리며 자구책 마련에 안간힘을 쏟았습니다. 심지어 진보진영의 한편에서는 차라리 이참에 도려내는 편이 더 낫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진보정치의 실패에 대한 지지자들의 원망이 적지 않은 이때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 몸담았던 네 명의 실무자가 반성과 성찰의 기록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는 진보정치 실패의 원인을 수구세력의 전례 없는 공안탄압 탓으로 돌리기보다 내부의 문제에서 찾기 위한 통렬한 자기반성에서 출발합니다. 현실정치에서 적지 않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신을 긍정적이고 진취적 사고의 담지자로 진보적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지 못한 뼈저린 후회를 바탕으로 삼아 진보정치의 한 시대가 지나가는 흐름을 담아낸 것이죠.

 

오래전부터 한국 정치의 세대교체와 세력교체를 주장하던 진보정치의 한 축이 정당해산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사라지면서 진보정치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운 때입니다. 많은 것이 모호하지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부터 정리해봐야 합니다. 진보정치의 전진과 좌절을 경험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로 달리 무엇을 더 찾을 수 있을까요?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

반성과 성찰의 기록

 

▸분야: 정치·사회  ▸지은이: 신석진, 김정엽, 이상민, 안창민  ▸판형: 신국판(152*225)

▸쪽수: 312  ▸가격: 16,000원  ▸ISBN 978-89-94502-46-5 (03320)

 

 

통합진보당에 대한 사법적 살인, 무엇을 남겼나?

 

이 책은 통합진보당의 ‘실패’를 자인한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면서 민주주의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도륙되고 있는 지금, 이들의 실패를 특정 정당이 아닌 민주주의의 실패라고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충분히 많다. 대한민국의 폐색 상황을 ‘헬조선’과 ‘죽창’이라는 유행어가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지금,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는 진보가 정작 무엇인지, 또 진보정치가 어떻게 새로 시작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이고 진솔하게 얘기해준다. 참혹하고 아름다운,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는 멋들어진 좌우명을 누군가가 독차지해야 한다면, 그것은 진정 이들의 것이다.
―장정일(작가)

 

 

진보정치, 반성과 성찰의 기록

 

한때 200만 명이 넘는 유권자가 보내준 표를 받은 정당이 공중분해 됐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사법적 살인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파문을 남겨야 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엔 진보정치 실패에 대한 지지자들의 원망이 적지 않다. 아니, 오히려 진보정치가 그 전에 이미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인지, 통합진보당의 해산이 야기한 정치적․사회적 여파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최근 몇 년에 걸친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극적인 ‘흥망성쇠’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경험한 저자들은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인 2015년 봄에 작은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6개월간 이어진 토론의 결과를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반성과 성찰의 기록》이란 책으로 엮어냈다.


많은 사람이 통합진보당의 해산에는 수구세력의 전례 없는 공안탄압이라는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진보정치의 실패를 인정하면서 우호적 여론이나 민주주의라는 대의에 입각해 통합진보당을 지원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실패한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고로 이 책은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치가 실패한 책임이 당사자들에게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해 그것이 무엇인지 밝혀보려는 치열한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저자들은 현실정치에서 적지 않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왜 스스로를 긍정적이고 진취적 사고의 담지자로 진보적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지 못했는가 하는 뼈저린 후회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이 책에 담아냈다.

 


진보정치의 한 시대가 갔다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밀어낸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누가 새로운 것이고 누가 낡은 것이냐의 문제만이 남는다. 이 책의 저자들을 비롯해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일한 사람들은, 새로운 존재가 자신들이라고 믿었다.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며 희생을 결단한 것도, 진보정치에 대한 헌신을 결심한 것도 그런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곤혹스러움은 믿음의 바탕이 흔들리는 데서 왔다. 수많은 이의 눈물과 땀이 어린 진보정치 15년 역사의 좌절은 단지 헌법재판소의 판결 때문만은 아니었다. 통합진보당은 박근혜 정부와의 대결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진정한 패배는, 그들에게 믿음의 원천이 되어주었던 ‘국민’의 냉담함에서 기인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억압을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통합진보당을 옹호해주지 않았다. 진보진영의 한편에서는 차라리 이참에 도려내는 편이 더 낫다는 말까지 나왔다.


진보는 오래전부터 한국 정치의 세대교체와 세력교체를 주장했다. 저자들은 교체의 ‘주체’가 자신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교체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도전은 때로 실패할 수 있고, 그때에도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낙관을 만들어가는 근거인 ‘새로움’에서, 자신들이 제외됐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진보정치를 위한 치열한 노력이 좌절되면서, 한 시대가 같이 마감됐다. 저자들이 떠나보낸 시대는 단지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역사만은 아니다. 혁명을 꿈꾸던 독재시대에 해오던 생각과 이론, 습성, 관성도 함께 떠밀려 가고 있다. ‘운동의 힘’으로 고난을 견뎌왔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과거의 준거가 낡은 것의 표상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완전히 밀려간 존재로 끝날지, 새로운 시대의 한자리를 다시 맡을 수 있을지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많은 것이 모호하지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부터 정리해야 한다.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는 ‘운동의 관성’과 제도 정치에 진입한 ‘대중 정당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과 모순을 일으켰던 통합진보당의 속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쓴 저자들은 진보정당 15년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의 시기를 남들과는 다소 다른 위치에서 지켜봤다. 합당과 분당, 그리고 정당 해산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에 필요한 실무를 처리한 당사자로서 치열한 현장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경험과 반성과 성찰은 진보정치의 향방을 가늠하는 지남차가 되어준다. 진보정치에 진지한 각성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면, 이들이 기록한 반성과 성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신석진
지난 7년간 이정희 대표를 가까이에서 보좌해왔다. 국회의원 보좌관, 대표 비서실장,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다. 직함은 달랐지만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학생운동과 통일운동을 했고, 이정희 대표를 만나기 전엔 인천 남동공단에서 공장 노동자로,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부위원장으로, 당 기관지 《진보정치》 편집장으로 일했다. 
 
김정엽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을 하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이정희 의원 보좌관을 했다. 금융정책과 경제정책, 재정정책 등을 다루는 국회 정무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 보좌 업무를 했다. 19대 국회에서는 이석기 의원 보좌관이었다. 덕분에 통합진보당의 문제적 인물 두 사람을 연속해서 보좌한 특이한 경력을 갖게 됐다. 이 책의 기획과 목차 구성을 맡았다. 
 
이상민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에서 일하다 18대 국회에서 이정희 의원의 정책비서관으로 일하면서 민주노동당과 인연을 맺었다. 그전까지 진보신당 당원이었다. 19대 국회에서는 김재연 의원 보좌관과 통합진보당 정책전문위원을 지냈다. 우리나라 조세제도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진보적 조세정책 개발, 재벌지배구조 문제점과 개선방안 모색이 그의 전문 분야다. 
 
안창민
유일하게 아무런 직책을 맡지 않은 평당원 출신이다. 학생 시절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에서 활동했고 이후 오래도록 직장생활과 개인사업을 했다. 그는 한 포털사이트에 1000권이 넘는 책의 서평을 올린 독서광이기도 하다. 지금도 직장생활을 하는 안창민은 부득이 가명을 썼다. 해산된 진보당 출신이 느끼는 사회적 낙인의 여파가 여전한 탓이다.

 

 

차례

 

추천사 |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
서문 | 진보정치의 한 시대가 갔다

 


1장 다수파의 원죄, 패권주의
당권파는 억울하다? | 민주주의, 진보진영도 내면화해야 한다 | 당내 이견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 참여당은 ‘개조’ 대상이었나? | 진성당원제의 딜레마 | 패권주의, 제도적 해법으로 가능한가? | 솔직해야 해법이 나온다

 

2장 진보의 멍에, 종북주의
종북공세는 ‘현재진행형’ | 북에 대한 입장 표명, 거부할 수 있나? | ‘종북’의 이념으로 정치하는 것이 가능한가? | ‘반북 진보’ vs. ‘종북 진보’ | 북한 ‘3대 쟁점’, 해명 불가능한가?

 

3장 운동의 가치, 운동의 관성
‘이념 논쟁’, 관행을 극복하자 | ‘정통’과 ‘이단’의 이분법 | 일사불란함의 전제, 자유롭고 개방적인 토론의 힘 | 전민항쟁의 향수 | 의회주의, 합법주의 비판의 두 측면 | 진보는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

 

4장 진보 혁신의 고정관념
운동과 정치의 이분법이 불편한 이유 | 성숙한 진보, 온건한 진보 | 진보의 급진성을 이제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 이제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만 남았나? | 자주는 시대착오적 담론인가? | 정말로 ‘노동중심성’이 문제일까? | 노동운동 위기 진단 10년, 뭘 했는가? | 진보정치 원조 논쟁 | 보편적 복지는 절대선인가 | 반복되는 평가, 빈약한 실행

 

5장 경제정책, 이념에서 현실로
보수와 진보의 뒤바뀐 경제철학 | 재벌 문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 | 진보도 성장을 말해야 한다 | 부유세 논쟁-성찰하면서 정책 만들기 | 증세 논쟁-디테일이 중요하다 | 기회비용 없는 정책은 없다

 

6장 2016년 총선 대응, 어떻게 할 것인가?
2016년 총선의 의미

 

"테러라고 하지 말자. 민주화 운동이다." 이 말이 끔찍한 의미로 쓰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 2014년이었습니다. 신은미 토크 콘서트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 고등학생의 비행(非行)을 마치 도시락 폭탄을 일제의 심장을 향해 던진 윤봉길 의사라도 되는 양 추켜올리며 일베와 극우 인사들이 내뱉었던 저 말은, 2014년에 군사독재의 망령과 공안정치의 부활도 모자라 마침내 백색테러까지 부활했음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았습니다. 

 

출처 - 주권방송



백색테러의 기원,

프랑스대혁명부터 제주 4.3사건까지


백색테러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암살, 파괴 등을 수단으로 하는 테러의 일종으로, 그 행위를 저지른 주체가 극우나 우파인 경우를 지칭합니다. 프랑스대혁명 중 혁명파에 가한 왕당파의 보복에서 이 말이 유래했는데요, 프랑스 왕가의 상징이 흰 백합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백색테러는 위정자가 체제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가하는 탄압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죠. 현대에는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에 대한 탄압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합니다. 미국의 악명 높은 인종차별 단체 KKK단이 현존하는 대표적 백색테러단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처 - 유튜브


어떻게 보면 백색테러의 부활은 감히 이 땅에 서북청년단이란 백색테러단체를 재건하겠다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나오면서부터 예견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해방 직후 결성된 서북청년단은 경찰을 도와 좌익 색출 업무를 하고 좌익 세력에 대한 테러를 주도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백색테러 중 하나인 제주 4.3사건 당시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토벌대의 상당수가 서북청년단이었고, 백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도 서북청년단 정회원으로 활동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공공연한 인터뷰에서 이승만을 찬양하며 한국에 우파는 있지만 극우가 없다며, 네오나치 같은 극우가 한국에도 필요하다는 헛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토크 콘서트에서 자행된 백색테러


이런 시류 속에서 백색테러가 부활했습니다. 2014년 12월 10일, 전북 익산에서 열린 신은미 황선 토크 콘서트 현장에 사제 폭탄을 투척한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놀랍게도 테러범은 19세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테러의 시작은 시쳇말로 '중2병' 걸린 한 소년의 인터넷 허세인 줄 알았습니다. 자주 가던 사이트에서 한 학생은 자신이 구한 인화물질들의 사진을 찍어 올리며 "신은미 폭사당했다고 들리면 난줄알아라"라고 썼습니다. 사람들은 관심병이 도진 이가 왔구나 싶어 폭발물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질 것 같으냐며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신은미 황선 토크 콘서트에서 폭발물 테러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오군(18)은 강연 도중 뜬금없이 말을 끊으며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하셨죠?"라고 묻습니다. 그런 소릴 한 적이 없는 강연자들은 부정했지만, 오군은 끈질기게 강연을 방해하여 사람들에게 제지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오군은 준비해온 냄비에 불을 붙여 던졌고, 폭발로 토크 콘서트장은 아수라장으로 돌변했습니다. 맨 앞에 있던 분이 순간적으로 냄비를 손으로 쳐 바닥으로 떨어뜨려 인명 피해가 나지는 않았으나 폭발물을 사람이 정통으로 맞았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출처 - 유튜브


오군은 현장에서 더 난동을 피우다 체포되었는데 당시 황산 1리터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폭발물 테러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나왔고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오군은 경찰서에서도 자신의 행위를 자랑스러워하며 수갑 찬 사진을 인증샷으로 인터넷에 올리기까지 했습니다. 명백한 백색테러라는 얘기지요.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양극화와 역행적인 정치 상황과 맞물려 축적된 상호 간의 증오가 결국 이런 형태로 터지고 만 것입니다. 적어도 민주화 이후에는 사라졌던 백색테러가 부활했다는 것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죽여도 괜찮다고 하는 사회 해체적인 선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이 사회 안전에 대한 근본을, 농협 인출 사태가 경제 안전에 대한 근본을 뒤흔들었다면, 이번 백색테러는 자신이 믿고 지지하는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근본을 뒤흔든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극단의 분기점에 서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박근혜 정부의 테러 대응방식

―테러범은 열사로 추앙받고, 피해자는 종북으로 검찰 소환당해


우리 사회에 설사 적색테러가 일어났다 한들 다르지 않습니다. 백색이든 적색이든,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해하려는 행각은 대한민국에서 단죄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테러 없는 사회, 최소한의 사회 안정을 위한 당연한 조치겠지요.

출처 - 뉴시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사회 안정이라는 국가의 근본을 생각해야 할 일국의 대통령이 진영 논리를 따라 가해자를 옹호하는 입장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월 1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테러 사건을 거론하면서 콘서트가 종북 성향이라는 말만 했을 뿐 테러 행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넘겼습니다. 

 

실정법을 위반해 사회 전체에 위기를 야기할 수 있는 가해자의 범법 행위에는 눈을 감은 채 억울한 피해자를 종북몰이했으니 개인으로서는 물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자각이 전혀 없다고 봐야겠지요. 대통령의 한마디 때문에 테러의 피해자인 신은미, 황선은 오히려 테러를 당해도 마땅한 '종북주의자'로 낙인 찍혔고, 경찰과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피해자 두 명을 소환하기에 이릅니다. 출국금지까지 했으니 참 가관입니다.




출처 - 시사in


폭발물 테러를 저지른 오군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일베와 우익 사이에서 열사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미쳐도 단단히 미쳐 돌아갑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종북주의자에게는 관대하고 이를 보다 못한 청년에 대해서는 법을 집행하는 게 정상인가"라는 망언을 했습니다. 인터넷 《독립신문》의 신혜식 대표는 테러범인 학생을 위한 모금을 시작했고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엄마부대봉사단 등 때 되면 나오는 보수 단체들도 선처를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오, 애국열사 장하다. 19살 어린 의사가 빨갱이를 척결했다. 헌재 재판관보다도 더 훌륭하다." 이런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사건 당시가 2014년인지 1947년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새누리당 내에서 백색테러를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차 없이 다 제명해야 한다." “청와대에선 정윤회 건 터져 나오고 우파들은 황산 테러 옹호하고, 일부 우파님들 제발 정신 차리세요. 옹호할 걸 옹호하세요. 어떻게 폭력과 테러를 옹호합니까"라고 비판한 하태경 의원 같은 사람이 있긴 했지만요.

출처 - 헤럴드경제


종편과 언론도 미쳐 돌아가긴 마찬가지였습니다. TV조선 같은 종편은 인터넷 《독립신문》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을 보였고, 《헤럴드경제》는 폭탄 테러범에게 '용감한'이란 수식어를 붙였다가 비난이 빗발치자 부랴부랴 기사 제목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진짜 속내야 어쨌든 최소한 테러는 안 된다 폭력은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언론이 보여야 할 마땅한 모습일 텐데, 퇴행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그런 기대조차 사치인가 봅니다.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는 단죄된다는 엄격함을 보여야


지난 2006년 박근혜 대통령이 지원 유세 도중 얼굴에 칼을 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살짝 베였다고는 하나 이 역시 명백한 테러 행위입니다. 당시 '커터 칼 테러'를 저지른 할머니는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계획대로 되었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줬을 폭발물 테러범에게 과연 어떤 처벌을 내릴까요?

출처 - 위키피디아


위 사진은 아사누마 이네지로 암살 사건 현장을 포착한 사진입니다. 퓰리처상을 받기도 해 유명해졌지요. 이네지로 암살 사건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대표적인 백색테러 중 하나입니다. 1960년 일본 좌익 정치인인 아사누마 이네지로가 TV 연설회 도중 극우 소년인 야마구치 오토야의 칼에 찔려 살해당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테러범의 나이는 불과 17세였습니다. 야마구치 오토야는 소년원에서 천황폐하 만세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후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보수로서는 불리한 상황이었는데도 예상을 깨고 다음 선거에서 우익인 자민당은 과반을 넘겨 압승합니다. 일본의 후진적 정치와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이어지고 있지요. 우리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왜 이리도 50년 전 일본과 겹쳐 보일까요. 2015년 새해가 밝았지만, 대한민국의 앞날이 참 암울합니다.


헌정 사상 최초로 헌법재판소(헌재)에 의해 정당이 해산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19일 헌재의 결정으로 통합진보당(통진당)이 해산되었는데요, 다소 놀라웠던 점은 재판관 사이에 갑론을박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8 대 1의 압도적인 의견으로 해산 결정이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보수 진영은 헌재가 정의를 구현했다며 일제히 쾌재를 불렀고, 일부 진보 진영과 법률가들은 일단 헌재의 판단을 존중하긴 하지만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문은 법률에 대한 지나친 과대 해석과 사실관계 왜곡으로 정당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었다며 저항하는 모양새입니다.


출처 - 기자협회보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주목하라


헌재는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며 대한민국 정부(법무부 장관)가 청구한 통진당 해산 청구에 대해 재판관 8 대 1의 의견으로 해산 및 소속 국회의원 5인의 의원직 상실 결정을 내렸습니다. 공안 검사 출신 두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나 이처럼 압도적인 의견차는 가히 충격적입니다.


출처 - 서울경제


헌재의 다수는 통진당의 주도 세력이 이념 활동을 해왔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당이며 폭력에 의한 이념 실현을 위한 활동을 해왔다며, 이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했습니다. 현재 내란음모 및 내란선동죄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이석기 전 의원 등 이른바 RO조직과 활동이 통진당의 주도 세력이며 의지인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심대한 위협을 끼치는 종북정당으로서 폭력에 의한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 정당이니 이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 해산 결정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논리입니다.

출처 - 한국일보


이에 반해 유일하게 소수 의견(마이너리티 리포트)을 낸 김이수 재판관은 이석기 등의 일부 세력의 활동을 통진당이라는 정당 전체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라며 기각 의견을 냈습니다. 생각비행은 일전에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사회 변화의 씨앗 있다>라는 기사를 통해 법리적 판단이 상식적이지 않을 때 다수의 의견이 옳은 것만은 아니며 소수의 의견이 옳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김이수 재판관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보고자 합니다.


 

김이수 재판관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 그리고 그 의미는 가능한 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수용 가능한 해석 방법론에 의해 확정돼야 하고 또 정당 해산의 요건을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서는 어떤 논리적 오류나 비약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통진당에 은폐된 목적이 있다고 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말도 엄격하게 증명되어야 할 사항인데, 통진당 해산을 청구한 정부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통진당은 당비를 내는 진성 당원만 3만 명이 넘는 탄탄한 정당인데 문제를 일으킨 몇몇의 행동을 통진당이라고 하는 3만 명 전체의 의지라고 생각하는 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논리입니다. 또한 단순히 기존 체제에 도전한다는 것을 민주주의를 향한 전복적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체제에 대한 비판은 민주국가 어느 곳에서나 세대별, 계층별로 늘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통진당 해산 헌재 결정의 후폭풍


출처 - SBS


많은 이가 비판한 내용처럼 법률을 논리적 비약 없이 엄정하고 합리적으로 적용한 판단은 소수 의견에 가까웠습니다. 다수 의견의 논리 비약과 끼워 맞추기식 해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재화 변호사는 최종 변론 이후 한 달도 안 돼 정당 해산 결정이 났다는 건 재판관들이 17만 쪽 분량의 증거 자료를 안 봤다는 이야기라고 비판했습니다. 민사든 형사든 재판이라면 응당 판사가 선고하기 전에 증거 자료를 보고 어느 주장이 옳은지 판단해야 하는데, 이런 기초적인 과정을 생략하거나 무시했다는 얘기입니다. 1950년대에 있었던 독일 공산당 해산도 심리 기간이 4년 7개월이나 되었습니다.


출처 - 국민TV


미심쩍은 면은 한둘이 아닙니다. 헌재 결정문에 쓰인 A씨는 형사소송에서 검찰과 국가정보원이 회합 참석자로 한 번도 거론하지 않은 사람이고 현재 당원도 아닙니다. RO모임 참석자로 언급한 B씨도 형사소송에서 거론되지도 않았고 실제로도 회합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결정문에 등장합니다. 헌재는 이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며 사실상 오류를 시인했습니다. 이쯤 되면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은 애초에 무리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 국민TV


사안에 비해 지나치게 짧은 결정기일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 당선 2주년 선물로 일정을 짜 맞춘 게 아니었느냐는 추측마저 나돌았습니다. 일각에서는 인혁당 사건에 이은 사법살인에 가깝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통진당 해산 결정의 후폭풍이 크고 다양합니다. 일단 일반적인 해석은 이번 결정이 오히려 민주주의에 심대한 타격을 안길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소수 의견인 김이수 재판관은 해산 결정은 비례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해산 결정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사회적 이익이 크지 않은 반면 해산 결정으로 초래될 사회적 불이익은 민주 사회의 순기능에 장애를 줄 만큼 크다고 했습니다. 정당 해산 결정이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보호해야 할 사상의 다양성, 특히 소수자의 정치적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훼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수자의 정치적 자유를 위협하는 일은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통진당 해산 결정이 나자마자 고영주 변호사 등은 통진당 당원 전원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고영주 변호사는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의 주요 사건으로 등장한 부림사건을 담당한 검사였습니다. 누구든 빨갱이로 몰아 때려잡던 검사 출신 변호사인 것이죠. 지난 9월 부림사건이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자 사과나 반성도 없이 좌경화된 사법부가 자기 부정을 했다며 비난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없는 간첩도 만들어서 족치던 군부독재 시절을 생각할 때 신유신 정국의 박근혜 정부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앞이 캄캄합니다.


검찰은 한술 더 떠 통진당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등에 대해 일반 당원들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총 13만 명입니다. 통진당 거리 집회를 모두 촬영해 검토 후 수사에 착수한다고 합니다. 일사천리로 '모조리 꼼짝하지 마'라는 위협이자 경고가 아니겠습니까? 



지나친 헌재 의존도 문제, 정치는 정치로 풀어야


사실 통진당 해산 문제는 헌재가 해결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민주적으로 해결할 문제였지요. 만약 정말로 통진당이 사회에 타격을 입히는 정당이고 민심이 돌아섰다면 다음 총선에서 국민의 손으로 정당의 존재 유무가 판가름 날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사회에서 무슨 문제만 벌어지면 정부와 정치에 대한 불신이 사법부, 특히 헌재에 대한 의존을 키워왔습니다. 그러다 결국 정당 해산 결정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삼권분립이 명확해야 하는데 행정부나 입법부의 문제마저 사법부가 판단하다 보니 헌재가 필요 이상의 정치적 권력을 갖게 된 꼴입니다.

 

출처 - 문화일보

 

국민의 지지가 없는 정당이라면 어떤 활동 근거가 있겠습니까? 그런 정당이라면 자연스럽게 해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석기 내란 음모와 폭력 사태, 투표 조작 등 갖가지 의혹으로 누가 봐도 국민의 마음이 통진당에서 다소 멀어졌다고 볼 수 있는 때였습니다. 통진당 스스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을 때 정부가 청구하고 헌재가 결정한 강제 해산으로 통진당은 탄압받는 피해자의 지위를 재차 획득했습니다. 이런 복잡하고 미묘한 정치적 엇갈림이 앞으로 대한민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이러한 때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일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을 두고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했다지요. 박근혜 정권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란 대한민국 헌법과 민주주의의 근간과 참 멀어 보입니다.

 

정치판의 혼돈 상황이 극에 다다른 지점에서 '새로운 진보 정당'을 창당하려는 진보 진영 일각의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와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명진 스님 등 진보 성향의 학계·종교계·문화계 인사가 주축이 된 '새로운 정치세력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국민모임)'은 지난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보적 대중정치' 복원과 '평화생태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새로운 정치세력 건설을 촉구했습니다. 통진당 해산이라는 정치권의 큰 문제와 맞물려 신당 창당 움직임이 어떤 효과를 자아낼지 궁금해지는군요.

 

이번 통진당 해산 결정이 알려진 이후 《뉴욕타임스》와 BBC 등 외신은 박근혜 정부가 정치인을 종북으로 몰고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며 비판했습니다. 이 가운데 세계 헌법재판기관 회의체인 베니스위원회는 헌재 해산 결정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1999년에 베니스위원회는 정당 해산의 근거를 폭력의 행사 등으로 엄격하게 하고 당원 개별 행위에 대해서 정당에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는 등의 규정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과연 베니스 위원회는 이번 통진당 해산 결정문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요? 정부와 기업에 이어 이젠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마저 국제적 망신거리가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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