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진화법이 여야가 아닌 청와대와 여당 사이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경제살리기 법안 통과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국회를 압박한 것도, 서명운동이란 우스운 방법까지 동원한 이유도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가로막혔기 때문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얼마 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18대 국회 말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된 과정을 두고 많은 의원들이 반대했지만 당시 권력자가 찬성으로 돌아서자 반대하던 의원들도 찬성으로 돌아서 버렸다고 언급해 청와대가 부글부글하고 있습니다. '권력자'로 지목된 사람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대체 이딴 법 누가 만든 거야?" 하고 소리 지르며 박근혜 대통령을 뚫어지게 바라본 셈입니다. 국회선진화법 논란이 청와대와 여당 대표의 충돌 국면으로 들어간 형국이죠.


출처 - JTBC


식물국회 싫다고 동물국회로 회귀할 건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0일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국회 기능을 원천 마비시키고 정치 후퇴를 불러온 희대의 망국법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여당은 현재 소수인 야당에 발목 잡혀 아무 법안도 처리할 수 없게 된 속칭 식물국회의 원흉을 국회선진화법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2012년에 도입한 법임에도 말이죠.

출처 – the300


국회선진화법이란 2012년 5월 2일자로 개정된 국회법의 별칭입니다. 국회선진화법은 기존 국회법에 의장의 직권상정 요건 강화, 폭력국회 방지 및 처벌, 안건 조정제도, 예산안 처리 강화, 본회의에서 무제한 토론 도입 등을 정하는 법 조항을 추가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날치기 법안 통과와 의회 내 폭력사태 방지를 위한 개정이라고 할 수 있죠. 국회선진화법은 예의 있는 국회 진행과 소수당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법에 가깝습니다. 식물 국회가 싫다고 또다시 날치기 통과가 횡행하고 이 때문에 폭력 사태가 발생하는 정글의 왕국 같은 동물국회로 다시 돌아갈 순 없지 않겠습니까?

출처 - 노컷뉴스


현재 여당인 새누리당은 국회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 예전 같으면 날치기로 단독 통과시킬 수 있는 노동개혁이나 경제활성화 법안 등을 일일이 야당의 동의를 얻어야 하니 답답함을 느끼는 겁니다. 게다가 같은 당 출신인 정의화 국회의장마저 의장 직권 상정에 완강히 반대하며 법대로 하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으니 샛길 또한 막힌 셈이죠. 현재 국회선진화법은 의장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국회법 87조로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하려는 새누리당


하지만 국민에겐 무능하지만 자신들에겐 유능한 새누리당은 우회로를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지난 18일 새누리당은 본회의의 전 단계인 국회운영위원회를 열어 국회법 개정안을 상정한 후 바로 폐기했습니다. 이상하죠? 그렇게나 뜯어고치려던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개정안을 상정했다 왜 자기들 손으로 폐기한 걸까요? 이는 국회법 87조의 맹점을 이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출처 - the300


국회법 87조는 "위원회에서 본회의에 부의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된 의안은 본회의에 부의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위원회의 결정이 본회의에 보고된 날로부터 폐회 또는 휴회중의 기간을 제외한 7일 이내에 의원 30인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그 의안을 본회의에 부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은 조건을 충족하는 의원 30명을 미리 모아놓고 자기들 손으로 개정안을 상정했다 폐기합니다. 이후 폐기된 개정안을 30명이 본회의에 부의를 요구하는 겁니다. 이런 꼼수를 쓰면 야당의 반대를 뚫고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할 수 있게 됩니다. 상정만 된다면 국회 과반을 새누리당이 차지하고 있으니 표결을 통해 법안 통과가 가능하겠죠. 국회선진화법이 있는 현재로써는 날치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죠. 법의 맹점을 이용해 법을 바꿀 개정안을 상정한다니 참 자기들 이익에는 도가 튼 사람들입니다.


야당은 3선 개헌하듯 날치기했다며 법 통과를 위해 법을 부결시킨 극단적 꼼수이자 의회 파괴 행위라고 맹비난했습니다. 당연합니다. 김무성 대표가 신년기자회견에서 정의화 의장을 향해 국회선진화법을 직권상정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한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은 때였으니까요. 이 모든 꼼수를 부리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5분이었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 중재안 제안, 새누리당 개정안은 반대


우선 정의화 국회의장은 21일 국회에서 "현재 선진화법 위헌 소지의 가장 큰 부분은 의회민주주의 부분 과반수의 룰을 어긴 것이지 직권상정 엄격히 제한한 것을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며 사실상 새누리당의 개정안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새누리당의 꼼수에 의해 본회의에 법안이 부의되더라도 국회의장이 상정하지 않으면 처리할 수 없으니까요. 이에 정의화 국회의장은 중재안을 제시합니다. 위원회 단계에서 여야 합의가 안 되면 정수의 60퍼센트 찬성으로 신속처리가 가능하게 한 룰이 선진화법 문제의 핵심이므로 이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현재 330일인 안건신속처리제도의 심의 시한을 최대 75일로 단축하는 추가 중재안을 내놨죠. 2012년 국회법 개정 당시 국회선진화법을 반대한 사람이 지금은 이 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같은 모양새가 되다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출처 - the300


일단 새누리당은 정의화 의장의 중재안을 수용해 절충안을 찾아보겠다고 한 모양새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의화 국회의장이 설득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야당은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국회가 국회답게 제대로 작동하고, 정치인이 정치인답게 행동하려면, 국회선진화법은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다만 현실적으로 총선 전 선거구 획정을 위해서도 여야 간 신속한 사태 해결이 필요하긴 한 상황입니다. 과연 국회선진화법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요? 법 하나에 수많은 현실 문제가 얽혀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국회선진화법 주역이 직권상정을 요구하는 기막힌 현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도 모자라 민주주의 시스템의 근간인 삼권분립에도 마수를 뻗고 있습니다. 청와대가 지난 15일 정의화 국회의장을 직접 만나 쟁점 법안의 직권상정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지요.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정의화 국회의장을 만나 노동5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법, 테러방지법 등의 직권상정을 요구했습니다. 일반 해고와 같은 독소 조항이 가득 담긴 하나같이 악법들인데, 국회선진화법 등으로 날치기가 어려워지자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하여 얼른 통과시키라고 종용한 것이죠. 

 

잘 아시다시피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어낸 주역은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예산안이 날치기 통과되고 국회에서 대립과 마찰, 폭력이 난무하하면서 여론이 등을 돌렸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당시 한나라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정치 쇄신안을 내놓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국회선진화법이었죠. 이 법안의 골자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극도로 제한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정의화 국회의장은 새누리당 출신이면서도 선거법 단 하나만 직권상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나머지는 직권상정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그렇게도 직권상정을 원한다면 청와대에서 법적인 명분을 제시하라면서 거부의 뜻을 밝혔습니다. 같은 새누리당은 직권상정을 거부한 정의화 국회의장에 대해 '직무유기' '해임결의' 등의 언사를 동원하며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새누리당의 비난에 대해 말을 함부로 배설하듯 하면 안 된다고 격노했습니다. 지난 24일 보도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정기국회 폐회를 앞두고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노동개혁 관련 5개 법안 등 쟁점 법안의 직권상정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에 정의화 국회의장은 법률 전문가들에게 자문까지 한 결과 현재로써는 직권상정 요건이 안 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민주주의란 힘이 절차에 의거해 행사되는 과정을 골자로 하는데, 이를 무시하는 정치 형태를 우리는 흔히 '독재'라고 부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요청'이라는 겉모습을 취했다고는 하나 현 정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행적을 비추어볼 때 사실상 국회의장에게 내리는 명령과도 같아 보입니다.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오늘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삼권분립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볼까 합니다.



미국 헌법과 프랑스대혁명


우리나라에서 '삼권분립'이라고 주로 표현하는 권력분립은 한 개인이나 집단에 힘이 집중되지 않도록 나누어 구분하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존 로크가 행정과 입법의 이권분립을 주장한 바 있고, 몽테스키외에 의해 입법, 행정, 사법이라는 삼권분립의 틀이 잡혔는데요, 그 목적은 상호 견제와 세력 균형을 유지하여 권력의 남용을 막고 권리의 보장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권력분립은 근대적 의미의 헌법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1787년 필라델피아 비밀헌법회의 모습을 그린 그림


 1787년 세계 최초로 미국이 헌법에 삼권분립을 명시하고 이에 따라 사법부를 독립시켰다고 합니다.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은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어 있지 않고, 권력의 분립이 규정되어 있지 아니한 모든 사회는 헌법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다'고 규정했죠. 1789년은 프랑스대혁명이 시작된 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권력분립은 법치와 민주주의의 모태가 되는 근대적 헌법의 공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부회 모습을 그린 그림


근대적 의미에서가 아니라면 프랑스대혁명 이전에도 권력분립과 유사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삼부회인데요. 프랑스의 귀족, 고위 성직자, 평민, 이 세 신분의 대표자가 모여 중요 의제에 관해 토론하던 신분제 의회를 말합니다. 200여 년간 유명무실했던 삼부회가 1789년 세금징수 문제로 국왕 루이 16세에 의해 다시 소집되었습니다. 루이 16세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남편으로 당시 프랑스는 누적된 권력 과시와 사치 그리고 미국 독립전쟁 지원 등으로 재정이 파탄 상태였습니다.

 

이에 대해 근대적 인권 개념에 눈뜬 평민 대표는 봉건적 특권의 축소와 폐지를 요구하며 앞선 문제에 대해 삼부회에서 다수결로 표결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귀족과 성직자 두 신분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삼부회 자체를 해산해버렸죠.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역사 시간에 배워 우리가 잘 아는 대로입니다.

 

혁명에 필요한 무기를 탈취하기 위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파리 민중을 그린 그림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민중이 혁명에 가담한 까닭은 일시적인 불만이나 부르주아의 선동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스대혁명 당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사람들은 불평등한 사회체제에 저항하는 사회개혁 의지를 품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파리 시청 앞 광장에 모여 국왕과 의회에 음식을 요구하는 생존권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국왕이었던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죠. 왕정하에서도 말입니다. 하물며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권력의 근원은 어디일까요? 두말할 필요없이 국민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잘 모르는 듯합니다. 그렇기에 국민에게 있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권리를 짓밟고, 공권력을 동원해 시민을 사찰하고, 무고한 이를 간첩으로 조작하며, 비판 세력은 종북 몰이로 탄압하고, 세월호 참사 당일 자신의 7시간 행적을 감추기 위해 사이버상 검열을 강화하는 조처를 강제했을 뿐 아니라 급기야 민중총궐기에 나선 시민을 테러리스트에 비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친일, 독재의 역사를 정상으로 생각하기에 뉴라이트 사관에 입각한 국정교과서를 만들고자 그토록 노력 중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여,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 행정부의 수반이면서도 선거부정과 부정헌법개정을 저질러 사법부와 민주주의를 유린한 행위로 하야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에서 배우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이 자리에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프랑스대혁명에서 삼권분립과 민주주의에 대해 좀 배우기 바랍니다. 그 목 부지하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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