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어린이날이 10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어 이들의 인권을 존중해줄 것을 당부하고 아이들이 골고루 행복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든 날이죠. 방정환 선생은 "대륙이나 전기의 발견보다 어린이의 발견이 더 위대합니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습니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이한 지금, 우리는 위대한 발견인 어린이를 그만큼 소중히 대하고 있을까요?

 

출처 - 국민일보

 

안타깝게도 '어린이'라는 단어 자체가 혐오에 오염되어 가고 있습니다. 방정환 선생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사람답게 대해야 한다는 뜻에서 만든 어린이란 단어를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어떤 분야에서 수준에 미달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미숙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낮춰 쓰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공감신문

 

주식투자를 막 시작해서 잘 모르는 사람을 '주린이', 요리를 막 배우기 시작해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사람을 '요린이', 토익 공부를 막 시작한 사람을 '토린이'로 부르고 있습니다. '어린이'라는 말은 17세기부터 써온 말이지만, 100년 전 방정환 선생이 유년과 소년을 대접하고 본래 없었던 높임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격상한 단어입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 좋았던 의미가 퇴색된 모습을 보면 방정환 선생 앞에서 부끄러울 일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예전부터 쓰던 '초딩', '급식충', '잼민이' 같은 단어는 아동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조장할 수 있는 혐오 표현에 가깝습니다. 혐오 표현이 고착화하면 차별로 이어지고 사회적인 문제로 불거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육방송인 EBS마저 문제의식 없이 재미로 쓰는 지경입니다. 지난해 7월 EBS 공식 트위터는 ‘잼민좌’라는 단어를 사용해 논란을 일으키고 사과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잼민이는 여러 곳에서 민폐를 끼치는 무개념 저연령층을 뜻하는 표현으로 어원부터 혐오와 비하가 들어간 질이 낮은 표현입니다.

 

출처 - 인스타그램 / SBS

 

과거 찬반으로 의견의 분분했던 '노키즈존' 역시 어린이를 배제한다는 측면에서는 문제의 여지가 있습니다. 2017년 인권위는 합리적 사유 없이 나이를 이유로 아동을 배제하지 말 것을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권고'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업장의 편의에 따라 어린이를 배제하는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방정환 선생이 1923년 제1회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낭독한 선언 중 첫 번째는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였습니다. 100년이 지난 현재 다시 과거의 상황이 되풀이되는 모습을 본다면 방정환 선생은 어떤 기분이 들까요?

 

출처 - 프레시안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어린이 차별을 실질적으로 철폐하기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국가인권위나 UN아동권리위원회 등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인권 기관들이 한국 사회의 아동 차별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이를 시정할 법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2006년 인권위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이후 17년이 지나도록 온갖 이유를 대며 미뤄온 것이 우리의 현 상황입니다.

 

출처 - MBC

 

얼마 전 우리나라 방송에서 세계적인 장난감 기업 레고의 경쟁 상대가 누구냐는 질문이 나온 바 있습니다. 뽀로로나 타요 등 다른 캐릭터나 장난감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레고 코리아의 경쟁 상대는 한국 교육 시스템이라는 답변이 나왔습니다. 한국 어린이들은 정말 우수하지만 그만큼 놀 시간이나 방법이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아이들의 주당 평균 학습시간은 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할 정도입니다. 레고가 아니더라도 어린이들에게 놀이는 평화를 선물합니다. 어린 시절 놀이를 통한 심리적 안정감은 학업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입니다.

 

출처 - SBS

 

이런 이유로 방정환 선생은 아이들의 놀이를 위해 90년 전에 보드게임을 만들어 보급한 바 있습니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개최한 '오늘은 어린이날, 소파 방정환의 이야기 세상'에서는 그가 큰 애정을 가지고 제작한 보드게임판인 '세계발명말판'과 '금강껨'의 원본이 처음으로 전시되었습니다. 재밌는 보드게임을 만들기 위해 방정환 선생은 컬러 게임판을 만드는 데 잡지 7000권에 해당하는 돈을 쏟아붓기도 했습니다. 옛날부터 우리에게 놀이문화가 없었던 게 아니라 이를 지키지 못할 정도로 아이들을 몰아붙이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는 인식의 발로였습니다.

 

출처 - YTN

 

다행히 100주년 어린이날을 맞아 보건복지부는 올해 '아동기본법' 초안을 만들고 내년 중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아동기본법은 어린이를 보호나 교육의 대상으로만 규정하지 않고 권리를 행사하는 주체로 인정하고 그 구체적인 권리를 선언하는 법입니다. 무엇보다 '놀 권리'가 교육만큼이나 중요한 권리로 보장받게 되며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 발달권, 생존권, 참여권, 환경권 등 어린이가 누려야 하는 구체적인 권리들이 명시된다고 합니다. 국가가 어린이를 위해 건강한 성장환경을 조성해야 할 책임이 있고 보호자는 아이를 존중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기업은 아이에게 유해한 환경 조성을 방지해야 한다는 점도 명시될 예정입니다. 이는 수십 년간 제기되었던 UN아동권리협약의 권고 사항이기도 합니다. 방정환 선생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어린이 뜻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출처 - 부산광역시

 

늦었지만 이제라도 권고를 받아들여 어린이의 권리를 명시적으로 선언하려고 한다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100주년 어린이날을 맞아 방정환 선생의 '어른에게 드리는 글'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재보궐선거가 끝난 바로 다음 날인 지난 8일 국회 앞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연내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 그리고 노동당, 녹색당, 미래당, 진보당 대표들까지 원내건 원외건 크고 작은 정당 대부분이 모여 포괄적 차별금지법 연내 입법을 촉구했습니다. 국민의힘 같은 보수 정당은 빠졌습니다.

 

출처 - 뉴스핌

 

차별금지법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는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13년째 표류 중입니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국회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습니다. 다음 해 노회찬 민노당 대표가 발의한 차별금지법도 마찬가지로 자동폐기되었습니다.

 

출처 - 시사저널

 

이후 권영길 민노당 의원, 김재연 통진당 의원, 김한길, 최원식 민주통합당 의원이 각 국회마다 발의했지만 대부분 회기 만료로 자동폐기됐고 민주통합당의 발의안은 종교계의 반발, 정확히는 극우 개신교계 대형 교회들의 반발을 이기지 못해 철회됐습니다. 당시 지방선거를 의식한 결과였습니다.

 

출처 - 서울신문

 

작년에도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필두로 소속 의원 5명과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이동주 의원,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발의했으나 이 역시 결국 무산되었습니다. 당시 극우 기독교계는 조간신문에 심상정과 차별금지법을 저격하는 전단을 살포하며 발의를 막으려 했습니다. 차별금지법이 한국 교회를 말살하는 반헌법적인 시도라는 어이없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죠. 그러나 이들은 한국 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며, 자신들이 성경적 가르침이 아니라 차별과 혐오에 바탕을 둔 주장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듯합니다.

 

출처 - YTN

 

우리 사회 곳곳에서 차별로 인한 부작용이 여실히 드러난 바 있습니다. 작년 1월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가 학내 반발로 입학을 포기하거나, 성전환 수술이란 이유로 강제 전역시킨 국방부의 조처에 반발하다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변희수 하사의 예처럼 말입니다. 여기에 더해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여성 혐오, 장애인 혐오, 소수자 혐오, 민족 혐오와 차별까지 생각한다면 이제 우리나라도 차별과 혐오에 대한 기준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출처 – 한겨레

 

차별금지법은 병력과 출신 국가, 출신 지역, 인종, 피부색, 언어,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성적 지향, 학력과 학벌, 사회적 신분, 용모 등 신체 조건,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 전력 및 보호처분 등을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시하는 법입니다. 이 법 하나로 일시에 혐오와 차별이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가 무엇을 차별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제시하여 문제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는 14년 만에 다시 한번 평등법이라는 이름으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국회의장에게 촉구했습니다. 평등법 시안 차별의 개념을 직접 차별, 간접 차별, 괴롭힘, 성희롱, 차별 표시 및 조장 광고고 나누어 각 개념의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했습니다. 아울러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유전정보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사회적 신분 등 21개에 해당하는 차별 사유를 명시했습니다.

 

출처 - MBC

 

그리고 차별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조항도 포함됐습니다. 악의적 차별이 인정될 경우 차별 행위자에게 재산상 손해액의 3~5배에 해당하는 배상금을 가중 부과할 수 있게 했습니다. 차별 피해자와 그 관계자가 차별 내용을 진술, 답변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을 경우 불이익을 준 당사자에게 가중적 손해배상 무담과 함께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한 겁니다. 하지만 가장 첨예한 논란의 대상인 종교계에 대한 평등법 적용이 애매하게 되어 있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 문제는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의 발의안에 특정 종교단체 및 소속 기관에 대한 예외 조항이 들어가며 더 큰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출처 - 시사IN

 

조계종은 종교를 예외로 둔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며 이상민 의원 발의안에 대해 아쉬움을 밝혔습니다. 특정 종교 단체와 소속 기관을 예외로 두면 종교 안에선 차별해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종교 자체는 물론 그 종교법인의 학교, 병원, 사업체 등에서 차별이 발생해도 차별금지법 적용이 애매해질 여지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차별금지법에는 종교도 명문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극우 개신교계에 의해 방화나 폭행 등 수많은 테러 행위를 당했던 불교계로서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작년 10월에도 개신교 광신도가 저지른 방화로 경기도 남양주 수진사가 전소된 사건이 있었죠. 개신교계 입장에서도 코로나19로 더욱 심해진 기독교 혐오를 막고 싶다면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면 좋을 텐데 동성애 반대와 선교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핑계를 대며 반대 입장을 취하는 쪽이 다수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종교계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만연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포기와 변희수 하사의 사례가 단적인 예입니다. 이 외에 작년 8월 신촌역에 국가인권위가 설치한 성소수자 차별 반대 광고판이 총 7차례 훼손된 일도 있었습니다. 이 중에 6번은 동일인물인 20대 남성이 훼손한 것으로 드러났죠. 그는 혐의를 인정하며 성소수자들이 싫어서 광고판을 훼손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상 속 차별을 태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서도 차별금지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출처 - KBS

 

불행 중 다행으로 여론은 차별금지법에 우호적입니다. 작년 6월 인권위가 공개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88.5%가 차별 금지 법제화에 찬성했습니다. 개신교계가 공격해온 성소수자 역시 동등하게 존중받고 대우받아야 한다는 응답도 73.6%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2019년 조사 때보다 찬성 비율이 15%나 높아진 결과여서 고무적입니다.

 

출처 - 한겨레

 

코로나19라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게도 차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깊어지게 해준 셈입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확진자가 되어 주위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차별을 경험한 이들의 증언이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 국민 10명 중 9명은 자신도 언제든 혐오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지역, 종교, 인종 등의 관점에서 혐오를 당하는 쪽이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실감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72.4%는 지금 같은 수준으로는 사회적 갈등이 심해질 것이라고 답했고 81.4%는 차별이 범죄까지 유발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찬성 의견은 성별, 나이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민들의 뜻이 일치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출처 - 뉴스1

 

그래도 여전히 차별금지법을 반대하신다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계속 벌어지는 아시아계 혐오와 차별을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없는지 묻고 싶습니다. 미국과 유럽에 가면 우리는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언제든 나 자신이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요? 14년의 표류를 거친 차별금지법, 포괄적 차별금지법, 평등법 등―이름은 무엇이라도 괜찮습니다―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를 멈출 법을 우리 손으로 제정할 때가 왔습니다.

단군에서 반만년 이어진 대한민국이 단일 민족의 나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를 지나 21세기를 맞이한 대한민국에서 단일 민족의 환상이 깨진 지 오래입니다. 국제간 교류가 활발해져 외국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얼마 전에 있었습니다.


출처 – 서울대동초등학교


서울시 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대림에 있는 대동초등학교는 올해 신입생 72명이 전원이 다문화 학생이라고 합니다. 서울에서는 첫 사례라고 하는데요, 대동초등학교는 지난해 기준으로 전교생의 62.4%가 다문화 학생일 정도로 원래 다문화 학생 비율이 높긴 했지만 신입생 전원이 다문화 학생인 건 처음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입학생 중 다문화 학생이 50.7%였던 걸 보면 매우 늘어난 겁니다.


출처 – YTN 유튜브


이는 중국 교포들의 선호와 한국 학부모들의 기피가 맞물려 일어난 현상으로 풀이됩니다. 중국 교포 사이에서 대동초등학교는 명문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 교포 학생이 많은 편이어서 아이들이 적응하기 쉽고 이들을 위한 수업 환경도 다른 학교에 비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대동초등학교는 다문화 예비학교로 지정돼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한국어 특별학급이 갖춰져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다문화 학생이 많기 때문에 교포들이 안심하고 자식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고 하죠.


한편 다문화 학생이 많다 보니 지원 정책과 학사의 초점이 다문화 교육에 맞춰져 있어 상대적으로 한국 학생들이 역차별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한국 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전학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죠. 학교 현장에서도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초등학교인 만큼 우리나라 정규 교과과정으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들 때문에 교사와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더운 날씨에 웃통을 걷어붙이고 나다니면 안 된다는 등의 문화적인 차이까지 반복해서 가르쳐야 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입학식 같다며 피로감을 호소하는 교사도 많습니다.


중국 교포가 많은 영등포, 구로, 금천구의 초등학교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동초등학교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다른 학교에서 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가 많고 부담이 커 교사들이 다문화 학생이 많은 학교 근무를 꺼린다고 말합니다. 일각에서는 다문화 학생 쏠림 현상으로 이 학교들이 다문화 격리구역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죠.


출처 – YTN 유튜브


모든 선생님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누구보다 다문화를 배려하고 존중해야 할 선생님까지 편견에 빠져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베트남 출신인 전학생을 당연하다는 듯이 "야, 다문화!" 하고 부르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한국어가 서툴러 숙제를 제대로 못 한 다문화 학생을 한국인 학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선생님도 있습니다. 이는 비단 동남아시아나 중국 교포의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닙니다. 일본 전학생에게 일본놈, 쪽바리라며 모욕을 주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학부모들의 편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일부 한국인 학부모들은 이주민 가정에 대한 편견으로 자녀들에게 외국에서 온 친구랑 가까이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는가 하면, 학부모 정보 공유 단톡방에 외국인 학부모를 초대하지 않는 사례도 비일비재합니다. 

출처 - 서울신문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지만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아직도 편견에 빠져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차별을 하는 겁니다. 다문화라는 테두리 안에 사는 이주민들은 제도적인 차별보다 더 무서운 게 인식의 차별이라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출처 - 서울신문


서울시와 시교육청은 지난해 영등포, 구로, 금천구를 묶어 교육국제화특구 지정을 추진했는데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닥쳐 무산됐습니다. 다문화 학생이 많은 특징을 살려 제2외국어 교육 강화 등 교육과정 자율성 부여를 하려고 했는데 특권 교육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주장에 밀려 무산된 겁니다. 글쎄요. 학교 구성원의 특성을 무시한 채 모든 아이가 똑같은 교육만 받게 되어 있는 현재 교육체계야말로 잘못된 게 아닐까요?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것을 계기로 학생들의 특성에 맞춰 이제는 개별적이고 자유로운 교육 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단군 설화를 보면 아버지인 환웅은 하늘에서 내려왔고, 어머니인 웅녀는 마늘과 쑥만 먹은 지상의 곰이었죠. 이런 이야기가 보여주는 게 무엇입니까? 천상계와 지상계의 조화이자 신, 인간, 자연이 어우러지는 이상적인 세상의 모습 아닐까요? 바야흐로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야 하는 세상이 열렸습니다.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실천한다면 더 좋은 다문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9일 충격적인 영상이 전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항공기에서 한 남자가 거칠게 끌어내려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시카고 오헤어 공항을 이륙해 테네시 루이빌로 가려던 유나이티드 항공 기내에서 4개 좌석이 초과 예약되어 내릴 자원자를 받았으나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승무원이 무작위로 4명을 뽑아 내리도록 명령했습니다. 그중 1명인 베트남계 미국인 의사 다오 씨는 다음 날 자신을 기다리는 환자 때문에 내릴 수 없다고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러자 유나이티드 항공은 공항 경찰 3명을 동원해 다오 씨를 강제로 끌어내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오 씨는 앞니 2개를 잃었고 코뼈가 부러져 피를 흘렸으며 뇌진탕 증세까지 보였다고 하죠.


출처 - 한겨레


일명 유나이티드 오버부킹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태는 인종차별이라며 전 세계의 비난을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승객을 내리게 해야 했던 원인은 초과 예약이 아니라 자기네 승무원을 그 공항으로 보내려고 뒤늦게 비행기에 탑승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4명을 무작위로 뽑았다고 하는데 어째서 동양인만 내리게 된 걸까요? 오바마 대통령에게까지 검둥이라는 욕을 할 정도로 인종차별이 만연한 시카고 경찰이 내릴 승객이 백인 남성 의사였더라도 그렇게 폭력을 행사하며 강제로 끌어냈을까요? 초반에 다오 씨가 반항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하던 유나이티드 항공은, 인종차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쳐 주식 폭락으로 수천억이 증발하고 미국 셀럽들과 중국의 보이콧 등 전 세계적인 반발 움직임이 포착되자 다급히 사과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습니다.


출처 - 인터풋볼


이것이 21세기 미국의 현실입니다. 동양인으로서 한국인이 당하는 차별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 2월 한국계 미국인인 서다인 씨는 친구들과 빅베어 마운틴으로 여행을 갔다가 인종차별을 당했습니다. 공유 숙박의 대명사인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잡았는데 여행 당일 호스트가 일방적으로 숙박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강한 눈보라와 번개 경보까지 떨어진 상황이라 다급했는데 호스트는 서다인 씨를 동양인이라는 지극히 인종차별적인 이유로 숙박을 거부했습니다. 호스트는 당신이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한 사람이라도 방을 내주지 않겠다면서 그건 당신이 동양인이기 때문이라고 조롱까지 했다고 하죠. 이에 대해 서다인 씨가 신고하겠다고 하자 호스트는 "신고해라. 이게 우리에게 트럼프가 있는 이유다"라며 재차 조롱했다고 하죠.


유타이티드 항공 사건과 에어비앤비 사건은 미국 시민권자라도 동양인처럼 보인다는 이유 때문에 인종차별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트럼프가 집권하게 된 배후에 이처럼 만연한 미국 내 인종차별이 있음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인종차별이 트럼프가 대통령인 미국에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멀리서 찾을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선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겪게 되는 인종차별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죠. 미국은 인종의 용광로라 불릴 정도로 다인종 사회라 갈등이 심하다고 한다면, 한국은 지나친 단일민족 신화의 영향 때문에 다른 인종을 배척하거나 무시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출처 - 조선일보




콜롬비아 남편-한국인 아내로 살아가기의 힘겨움(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1473533



얼마 전 부산에서 멘도사 부부가 겪은 황당한 사건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콜롬비아인 남편 멘도사(44) 씨와 한국인 부인 신진영(36) 씨 부부가 쇼핑몰 주차장에서 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소리를 질러 구해줬는데 함께 있던 할아버지가 고마움을 표현하기는커녕 왜 남의 일에 참견하느냐며 윽박을 지르더니 급기야 멘도사 씨를 밀쳐 쓰러뜨렸습니다. 이 장면을 촬영하던 부인 신씨의 슈대폰을 빼앗은 아이 엄마는 멘도사 부부에게 욕까지 했습니다. 경찰을 불러 일단 서에 갔으나 거기서도 할아버지의 인종차별적 욕설이 계속되었고 이를 제지해달라는 멘도사 씨의 요구가 있었으나 경찰관은 적극적으로 할아버지를 만류하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멘도사 씨의 게시글이 SNS에서 한국 체류 외국인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얻은 덕분에 그나마 할아버지와 경찰서장이 사과를 했다고 하지만 이는 정말 반성했기 때문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다문화센터에 실제로 다문화는 없어 김치·한국어 전수 한국문화센터 불과"(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1454659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광주대 욤비 토나 교수도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굉장히 심하다고 꼬집습니다. 그는 콩고 2차 내전 중 정권 비리를 공개하려다 투옥되었다가 탈출한 후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가족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가 거리를 지나면 "진짜 새까매" "흑형"이란 말을 듣는 건 예삿일이고, 공장에서 일할 땐 "흑인 힘 세고 일 많이 해" 같은 소릴 들었는데, 정작 자신은 힘도 별로 안 세서 피부색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는 한국 사회가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한국의 다문화센터, 다문화학교가 실제로는 다문화가 아닌 한국문화센터라고 꼬집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말 배우고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려는데 정작 한국인들은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니 이게 무슨 다문화냐는 겁니다.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에게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피부색에 따른 편견이 문제 의식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할 정도로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얘깁니다.


출처 - 국민일보


이는 인종차별이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어제의 피해자가 오늘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반대로 오늘의 가해자가 내일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앞선 사례만 봐도 한국인인 우리가 미국에선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반대로 한국에선 외국인을 차별하는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종차별을 하지 않으려면 미처 신경쓰지 못한 편견으로 평상시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하겠지만, 제도적인 장치인 차별금지법 같은 사회적 기준을 마련하는 일도 시급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인종차별금지법안 통과 시도가 3번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되었죠. 대한민국은 유엔 인종차별 조약에 서명했으나 국내 법이 없어 인종차별 사례를 구체적으로 처벌할 법적인 근거가 없는 이상한 상태입니다. 

 

출처 - 한국일보

 

한국 법무부는 2016년 6월 30일 기준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 수가 200만 1828명을 기록해 전체 인구의 3.9퍼센트를 차지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내 외국인 수는 2007년 100만 명을 넘어선 이래 9년 만에 2배로 뛰었습니다. 2021년 국내 체류 외국인은 300만 명을 넘어 전체 인구의 5.82퍼센트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외국인 200만 시대, 차기 정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문화를 가지고 공존할 수 있도록 이 부분도 소흘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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