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부회장이자 사실상 삼성그룹의 후계자인 이재용이 지난 6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경영권 승계 관련 위법 행위 논란과 삼성 그룹 내 노조 와해 사건과 관련한 사과문이었습니다. 삼성치고는 생각보다 나아간 입장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정한 환골탈태를 약속하는 사과로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우선 삼성이 저지른 일들에 대해 스스로 나서서 한 사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재용의 대국민 사과는 지난 3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의한 것입니다.

 

출처 - 한겨레

 

2015년 삼성 그룹 경영권을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안정적으로 승계하기 위해 분식회계 등 부당한 방식으로 주식을 증여했고 이 과정에서 삼성 주주들에게도 불법적인 손해를 끼쳤죠. 이재용은 이 과정을 통과시키기 위해 박근혜와 최순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삼성이 조직적으로 노조 결성을 와해시키고 결성된 노조를 탄압해 무노조 경영을 한 것을 마치 전통인 양 얘기할 정도로 노동삼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 큰 문제였습니다.


출처 - JTBC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는 삼성에 실질적인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라고 주문했고, 준법감시위원회는 삼성 그룹의 경영권 승계, 무노조 경영, 시민사회 소통의 세 가지 문제를 이재용이 직접 답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 권고에 따른 행위가 바로 지난 6일 이재용의 대국민 사과였습니다. 삼척동자도 알다시피 재판부의 선처를 바라는 반성문 성격에 불과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재용의 사과가 진정성이 없다는 점은 그 내용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그는 아주 큰 결심이라도 한 양 자신의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책임을 지고 스스로 3세 경영에서 물러나는 것도 아니고 될지 안 될지 언제가 될지 모를 자녀의 4세 경영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 안 하겠다고 생각 중이라는 건 대체 무슨 경우일까요?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말로 자신의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 문제에 대한 언급은 회피하고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는데, 4세 경영을 하지 않겠다는 뜻은 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출처 - 민중의소리

무노조 경영을 철회하고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삼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는 말도 그렇습니다. 이재용은 큰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발표해 수많은 노동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노조 결성을 와해하고 노조의 활동을 방해하는 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불법일 뿐입니다. 삼성이 어떻게 경영하든 말든 말입니다. 이 때문에 지난 12월 삼성전자 이상훈 이사회 전 의장과 강경훈 부사장 등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공작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지난 80여 년간 노조 탄압이라는 불법을 저질러 오던 일가가 이제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법을 지키겠다고 말하는 게 칭찬받을 일이 되는 겁니까? 남들은 다 지키는 상식을 이제야 눈치챈 걸 칭찬해달라는 뜻이었을까요? 하다못해 여태 탄압당했던 삼성 그룹 노조원들에게 그동안의 불법에 대한 보상과 배상책을 얘기하면서 사과를 했다면, 일말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 역시 구체적인 방안이나 대책이 없고 오직 말뿐인 사과에 그쳤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이재용의 대국민 사과에 대해 찬사 일색이었습니다. 총수 이재용이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 선언을 했다면서 말이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재판도, 사과도, 배상도 하나도 이루어진 것이 없는데 언론은 벌써 이재용 총수에 의한 뉴삼성이 탄력을 받는다는 식으로 줄줄이 받아쓰는 중입니다. 국민의 비난과 분노라는 폭풍을 조금만 넘기면 삼성의 홍보지나 마찬가지인 언론들을 이용해 삼성은 원래대로 돌아갈 생각일 겁니다.


출처 - 연합뉴스


검찰은 다음 주쯤 분식회계 및 경영권 승계 의혹 관련으로 이재용을 불러 조사할 예정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재용과 삼성 그룹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저지른 죄에 상응하는 죗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일반인이 뇌물을 줬을 때와 같이, 다른 회사가 분식회계를 했을 때와 같이, 다른 회사가 노골적으로 노조를 탄압했을 때와 같이, 민주주의 사회에 걸맞은 '법 앞에 평등한 판결'로 말입니다. 이를 위해선 사법부의 공명정대한 판결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몇천 원이면 내려받을 수 있는 인터넷의 반성문과 같은 대국민 사과에 대해 사법부가 또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한다면, 결국 국민의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출처 - 세계일보


"피고인 최순실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였던 국정농단 사태의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내려진 1심 판결입니다. 2016년 11월 20일 재판에 넘겨진 지 450일 만인 2018년 2월 13일 서울지방법원에서 내려진 1심 선고인데요. 1심 공판 횟수만 무려 114회, 긴 기다림의 시간만큼이나 주문 낭독에만 2시간 30분이 걸리는 대장정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로 박근혜와 함께 "이게 나라냐?"라는 소리가 나오게 만든 죗값은 징역 20년과 벌금 180억 원 그리고 추징금 72억 원입니다.


출처 - 세계일보


1심 법원은 검찰이 기소한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판결했습니다. 검찰은 최순실을 재판에 넘기면서 무려 19개나 되는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핵심은 뇌물수수였지요. 최순실이 삼성에서 받은 돈 가운데 약 73억 원을 뇌물로 판단했습니다. 1심 법원은 최순실의 딸인 정유라가 탔던 말도 소유권이 삼성이 아닌 최순실에게 있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최순실이 K스포츠 재단,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통해 받은 돈은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승계 작업을 도와달라는 삼성의 청탁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죠.


출처 - 연합뉴스


그런데 이는 얼마 전에 있었던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판결과 앞뒤가 잘 맞지 않습니다. 삼성 승계 작업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그에 대한 뇌물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공통되지만 뇌물 액수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재용 2심 재판부는 뇌물 공여를 깎고 또 깎아 36억 원만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최순실의 1심 재판부가 최순실이 이재용에게 받았다고 인정한 뇌물 액수는 그 두 배인 72억 원입니다. 주는 사람은 36억을 줬는데 받은 사람은 두 배인 72억을 받았다니, 이게 무슨 무슨 오병이어의 기적도 아니고 어떻게 두 배로 뻥튀기가 됩니까?


출처 - 연합뉴스


재판부끼리의 판단이 이렇게 달랐던 지점은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에 대한 판단에서 도드라졌습니다. 이재용 2심 재판부는 안종범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지만, 최순실 1심 재판부는 그 증거능력을 인정했습니다. 그런 대화를 했다는 간접사실을 증명하는 정황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죠. 이재용 2심 재판부는 안종범 업무수첩을 간접증거로도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정유라에 대한 승마지원 약 36억 원만이 유죄로 인정되었으니 이 또한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안종범 업무수첩은 그간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1, 2심, 이화여대 입시 비리사건 1, 2심에서 증거능력이 인정됐고, 1심 진행 중인 최순실, 장시호, 차은택, 박근혜 재판부들도 증거로 채택한 바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볼 때 재판부가 나머지를 다 죽이더라도 어떻게든 삼성만큼은 구하려고 한 결사적인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삼성 공화국이란 말이 허튼소리가 아니며, 국정농단 사태의 끝판왕은 박근혜도 최순실도 아닌 삼성과 이재용을 비롯한 오너 일가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출처 - 세계일보


이번 최순실의 1심 판결로 롯데의 신동빈 회장은 구속되었습니다.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건넨 돈은 뇌물로 봤기 때문입니다. 면세점 사업을 위해 박근혜에게 부정한 청탁을 한 거로 판단했습니다. 감옥에 갇힌 신동빈은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있을까요? 글쎄요. 아마도 롯데가 삼성 정도의 취급을 받지 못한 점에 대해 칼을 갈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지난 이재용 판결과 이번 최순실 판결을 비교한다면 정의가 구현된 판결이라기보다는 롯데가 삼성만큼 부와 권력이 있었으면 또 유유히 빠져나갔으리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결국 이는 재벌 봐주기식 판결을 한 사법부의 실책입니다.


출처 - 세계일보


최순실 역시 대기업을 압박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으로 후원금을 받아낸 행위는 모두 유죄 판결이 났습니다. 이외에도 증거인멸 교사 혐의, 하나은행 직권 남용 권리 행사 방해 등등 모두 유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최순실과 박근혜의 공모관계도 인정했습니다. 이로 인해 박근혜 전 대통령도 1심에서 형량이 남았을 뿐 유죄는 확정된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출처 - 국민일보


앞으로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마지막 대법원이, 최순실은 2심이, 박근혜는 1심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국정농단 재판은 끝난 게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랬다저랬다 하는 판결로 사법부는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 이미 큰 흠을 남겼습니다. 문자 그대로 '국가를 말아먹으려고 했던 시도'에 비하자면 징역 20년도 낮습니다. 우리는 풀려난 이재용과 삼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 대법원에서 삼성과 이재용이 단죄될 때까지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최근 새로 확보된 안종범의 수첩 속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의 뇌물에 직접 관여한 정황이 들어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박근혜의 구속 기한이 연장되었고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와 최순실에게 경영권 승계 지원의 대가로 430억 원대의 뇌물을 주었는지에 대한 재판도 진행 중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뇌물은 어느 시대에서든 빼놓을 수 없는 흥미로운 관심사입니다. 시대에 따라 뇌물처럼 좋지 못한 의미로 쓰이는 돈의 별명도 각양각색입니다. 만 원짜리 색을 딴 '배춧잎', 검찰 돈봉투 만찬 사건처럼 '봉투'가 부정한 돈의 의미로 쓰이기도 했죠. 군사독재 시절에는 군인들과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일본어인 '와이로'(わいろ)가 그대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순사 포케또에 와이로 좀 찔러드렸다"는 식으로 한국어인지 일본어인지 모를 말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출처 - SBS


이보다 이전인 조선시대로 올라가면 화폐보다 현물이 뇌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산삼 같은 귀한 약초야 사극에도 자주 등장하는 대표적인 뇌물입니다만, 잡채와 김치가 뇌물로 쓰인 적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는지요? 조선의 잡채에는 오늘날과 달리 당면이나 고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김치는 오늘날과 달리 각종 채소류를 소금에 절인 음식을 뜻했다고 합니다. '침채'로 불렸죠.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땔감이 귀한 조선에선 튀김 요리보다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절임 같은 발효식품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출처 - SBS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정치가인 신흠의 문집인 《상촌집》을 보면, 김치와 잡채가 광해군의 문고리 권력인 내시들에게 얼마나 잘 통했는지가 적혀 있습니다. 잡채와 침채(김치)를 바쳐 벼슬을 얻어 잡채상서니 침채정승이니 하는 말까지 나돌았을 정도라고 합니다.


한편 임진왜란 때 왜의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패퇴하여 일본으로 도주할 당시 바닷길을 열어달라며 이순신 장군에게 총과 칼, 금은보화를 뇌물로 바쳤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왜군에게 빼앗은 총칼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금은보화는 조선 백성한테서 도적질한 것일 테니 절대로 받지 않겠다고 호통을 치며 거절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싸워서 모조리 물리치겠다며 전의를 다졌다네요.


출처 - 조선일보


일본의 총리인 아베 신조는 전범의 후손답게 최근 온갖 스캔들에 휘말려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부인인 아키에는 모리토모 학원 국유지 헐값 매입 의혹이 제기되었고, 아베 신조 본인은 친구가 이사장인 가케학원 산하 대학에 무려 52년간 불가능했던 수의학과 신설 허가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 등 우익 사학과 연루된 스캔들이 연이어 터졌습니다. 일본 국민의 과반인 65퍼센트는 아베 신조 정부의 해명을 납득할 수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박근혜, 트럼프, 아베 신조까지 한-미-일 정상들이 사이좋게 손잡고 교도소에 들어가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군요.

출처 - 한국일보


한편 이 스캔들 덕분에 일본에서는 뇌물을 뜻하는 새로운 은어가 탄생했습니다. 우익사학재단인 모리토모학원 이사장이 국유지 헐값 매입을 위해 자민당의 전 방재담당장관에게 봉투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종이에 들어있는 물건을 건네 받긴 했지만 바로 되돌려줬다며 "(봉투에 들었던 게) 돈인지 곤약인지 모르겠다"고 진술했기 때문입니다. 100만 엔 현찰의 두께가 1센티미터 정도 되는데 일본 슈퍼마켓에서 파는 곤약의 두께가 딱 그정도라고 하는군요. 실제로는 상품권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세간에선 곤약이 돈의 은어가 되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극심한 파벌정치와 사실상 일당독재에 가까운 정치 후진국 일본은 그에 걸맞게 뇌물과 관련된 은어가 많았습니다. 전후 최악의 부정부패로 불리는 1976년 록히드 사건 때는 '피넛(땅콩) 100개'란 말이 유행했는데 뇌물수령 영수증 금액을 의미하는 은어였다고 합니다. 피넛 1개가 100만 엔이니 1억 엔이 오갔다는 뜻이죠. 이로 인해 일본 정치의 풍운아라는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구속되어 실각했습니다.


이 밖에도 위스키에 빗대 돈 받은 파벌 개수를 헤아리거나 풍덩과 퐁당이란 의성어로 지난 밤에 어느 정도 수준의 접대를 받았는지를 자랑하는 은어에 이르기까지 참 표현이 다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별칭으로 부르든 결국 뇌물일 뿐이죠.

출처 - 경향신문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일본 등은 뇌물죄에 대한 형량은 높으나 실제로 처벌받은 사람이 너무 적어 꼽기가 어려울 정도였죠. 뇌물은 민주주의 사회 시스템을 왜곡하고 열심히 사는 선량한 사람들의 일상을 무력하게 만드는 사악한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최고 권력자가 얽힌 뇌물죄 사건이 일벌백계라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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