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역대 5번째 큰 지진, 원전은 과연 안전한가?

 

지난 5일 오후 8시 33분, 울산시 동구 동쪽 52킬로미터 부근 해역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후 역대 5위 규모에 해당하는 지진이라고 합니다. 역대 1위가 1980년 평안북도 의주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5.3의 지진이라고 하니 이번 울산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이 얼마나 큰 위기가 될 수도 있었는지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이번 지진으로 울산은 물론 부산, 경남, 경북, 광주, 대전과 경기 지역에서는 진동을 감지했다는 제보가 이어졌습니다. 진앙에서 가까운 울산에서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의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흔들렸습니다. 또한 화분이 깨지고 찬장에서 그릇이 쏟아졌다는 제보도 있었습니다. 음식점, 주점에서 깜짝 놀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울산의 한 영화관은 영화 상영을 중단하고 관객을 대피하게 했습니다. 부산 해운대 신도시에서는 지진에 의한 진동 때문에 창틀이 어긋났다는 신고가 접수되기도 했습니다.


출처 – KNN 뉴스


대한민국이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신화는 번번이 흔들렸습니다. 역대 5위의 지진이 울산 앞바다에서 발생한 마당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는 이곳이 세계 최고의 원전 밀집 지역이라는 사실입니다. 6제곱킬로미터 안에 무려 10개의 원전이 있습니다. 서울로 따지자면 여의도 2개 크기 안에 빌딩 숲 대신 원자력 발전소 10개가 들어 있다는 얘깁니다.


출처 - KNN뉴스


세계 최대 원전 밀집 지역에서 인구 7만 명의 정관 신도시는 불과 11킬로미터, 5만 5000명의 기장읍은 불과 12킬로미터 거리밖에 안 됩니다. 인구가 훨씬 더 많은 부산 해운대구도 21킬로미터, 부산의 중심인 부산시청까지도 불과 27킬로미터 거리밖에 안 됩니다. 울산 시청은 23킬로미터, 양산시는 24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뿐입니다.

 

미국 핵 규제 위원회의가 인구 중심지로부터 원자로 위치를 제한한 기준은 32~34킬로미터입니다. 지금도 제한 기준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가까운데, 이번 신고리 원전 5, 6호기는 제한 기준의 8분의 1 수준인 4킬로미터 거리에 인접해 있습니다. 4킬로미터는 인류 최대의 참극인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나 통용되던 거리죠.

 

말도 안 되는 기준을 적용해 원전 건설을 승인한 탓에 우리나라에선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 지역에 47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게 되었습니다. 만약 지난 5일 발생한 울산의 지진이 후쿠시마 대지진 같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뉴스를 보고 있을까요?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질 따름입니다. 설마 설마 하며 그냥 둘 일이 아닙니다.


출처 - 연합뉴스


울산에 지진이 일어나자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진앙과 가까운 월성 원전과 고리 원전은 물론 국내 모든 원전이 안전하게 정상적으로 운전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원전은 규모 6.5의 내진설계 덕분에 안전하다는 답변을 앵무새처럼 반복했죠. 경북 경주의 중,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 시설을 운영하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도 지진 피해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고리원자력본부는 지진이 나자 B급 비상발령을 내리고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고, 원자력환경공단도 재난 대응 4단계 가운데 2번째에 해당하는 주의 단계를 발령하고 비상상황실을 가동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하지만 정말로 안전한 걸까요?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손문 교수는 지질학적 데이터로 보면 한반도에 약 400년마다 규모 7 정도의 큰 지진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한수원이 주장하는 내진 설계 범위를 넘어버리는 강력한 지진입니다. 노후된 원전들도 문제지만 현재 한수원이 강행 중인 신 고리 5, 6호기조차 한반도에 예상되는 최대 지진 규모 7.5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의 내진설계를 기초로 했고 해당 지역 활성 단층대의 지진 평가도 없었습니다. 바다 단층에 대한 평가는 아예 항목에 없었죠.

 

이번 울산에서 발생한 지진보다 조금이라도 더 큰 지진이 일어난다면 밀집해 있는 원전은 모조리 위험합니다. 만에 하나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같은 사태가 벌어진다면 우리나라 인구의 10분의 1은 그 자리에서 죽는 줄도 모르고 증발하게 되고 한반도 전체가 궤멸적 타격을 입게 됩니다.

 

한수원의 주장대로 원전이 정말로 안전하고 깨끗하다면 전력 소비가 가장 큰 수도권에 설치하면 될 텐데 그러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원전 수도권 분산 설치를 요구하는 지역민들에게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이 "수도권은 인구 밀집 지역이라 대피가 어렵다"고 말해 큰 논란을 일으킨 일을 기억하시는지요? 진실은 감출 수 없고 언젠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출처 - 녹색당


녹색당은 지진이 발생한 즉시 논평을 냈습니다. 이번 지진이 의외의 일이 아니라며 "한반도는 강진이 일어난 일본 구마모토와 같은 판에 위치하고 있다. 지진 발생 빈도는 낮지만 큰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규모 7.0 지진이 일어난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에도 지진 발생 기록이 숱하다. 옛날 일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한반도에서 규모 5∼7 지진이 400년 주기로 발생한다는 학설도 있다. 과거에 지진이 일어났고 미래에도 지진 가능성이 있는 활성단층이 부산~경주~울진 일대(양산단층)와 울산~경주 일대(울산단층)에, 그러니까 핵발전소 밀집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고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또한 "핵발전소는 지진이 없더라도 근심과 공포를 초래한다. 사고의 가능성보다 사고 이후 재앙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눈앞에 닥친 지진 피해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우리의 답은 탈핵일 수밖에 없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국내 핵발전소들이 규모 6.5 지진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졌다고 밝혔지만, 규모 7.0 이상의 지진이 일어날 확률을 배제할 수 없으며, 친핵세력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 특히 한 번 터지면 회복이 불가능한 일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 불과 9명으로 구성된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것도 없다. 울산 신고리 5, 6호기 건설 승인에 찬성한 위원은 7명이다. 이제 앞으로 이들의 승인 결정은 땅보다 먼저 흔들려야 한다"면서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백지화하고 속속 핵발전소 폐쇄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잘못된 전력수급계획에 기초한 신규 원전 건설은 취소되어야 한다면서 신고리 5, 6호기 건설 승인 취소 가처분 소송을 예고한 바 있습니다. 전력소비 증가율을 실제와 다르게 높여 잡고 안전성 검사도 제대로 안 됐다는 주장을 무시하고 건설을 강행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 조처가 잘못됐다는 얘깁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이번 울산 지진 발생 상황에서 국민안전처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의 허술한 대처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지 17분이 지나서야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하면서 날짜를 잘못 기재했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한참 늦은 문자를 지진 발생 당일인 5일이 아닌 4일이라고 표기한 채 1차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한 겁니다. 6분이 지나서야 5일로 정정해 문자를 재발송했지만, 실제 재난 상황이었다면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국민의 혼란만 부채질했을 사태였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민의 20퍼센트가 쓰고 있는 3G 폰은 이런 문자조차 받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상시로 지진이 발생하는 일본의 상황과 우리나라의 현실을 그대로 비교할 순 없겠지만, 일본은 지진이 일어나기 수 초 전에 이를 예견해서 경보를 발령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후로 안전 관리는 물론 대응을 위한 문자 하나 보내는 것도 바뀐 게 없습니다.

 

지진 발생 상황에서는 대피시간이 5초만 주어져도 근거리로 피할 수 있습니다. 10초면 90퍼센트, 15초면 95퍼센트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하지요. 그런데 지진 발생 후 17분이 된 시점에서 보낸 문자가 정확한 정보조차 제공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다 죽고 난 다음일 겁니다.

 

국민안전처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보낸 이번 긴급재난문자는 지진이 일어났다는 내용뿐이었습니다. 시민들은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집이 흔들리는데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 나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국민안전처의 답변이 가관입니다. 문자 발송 시 글자수 제한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대한민국의 전력예비율은 충분합니다. 그런데도 굳이 새 원전을 강행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원전 마피아들의 잇속과 그들의 뒤를 봐주는 정권 실세들의 검은 배를 채우려는 욕망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국내 내진 설계 기준을 넘어서는 지진이 닥친다면 대한민국이 어찌 될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는 때입니다. 500만 명이 사라진 이후에는 너무 늦기 때문입니다.

 

 

시급한 에너지 전환, 우리와 미래 세대를 위한 선택이 필요하다! 

 

생각비행이 출간한 《왜 에너지가 문제일까?》의 내용을 중심으로 왜 우리가 에너지 전환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지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원전은 원자폭탄과 일란성쌍둥이입니다. 원자폭탄이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의 핵분열을 일시에 폭주하게 하여 ‘빵!’ 터뜨리는 거라면 원전은 천천히 터뜨리면서 열을 이용하는 설비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핵폭탄은 가진 자가 쏘고 싶은 데로 쏠 수 있지만, 원전은 본체 내장형 폭탄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원전 마피아는 입만 열면 원전의 안전성을 설파하지만 실상 원전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은 체르노빌 참사에 이어 세계 원전 마피아들의 행보에 다시 한 번 찬물을 끼얹었죠. 지진에 이은 쓰나미로 예비 발전기가 무용지물이 되고 외부 전력마저 차단되어 수소폭발이 일어나고 노심용융 상태까지 간 후쿠시마 원전 1·2·3호기는 히로시마 원폭보다 100배 이상 되는 방사능을 유출한 채 5년이 지나도록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전의 무서움을 인식한 세계 각국은 원전 건설 계획을 재검토하거나 단계적 폐쇄 조치를 하기에 이릅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 정부는 2010년 10월 28일 사민당―녹색당 연합 정부에 의해 2000년에 채택된 단계적 원전 폐쇄 정책을 뒤집은 바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6개월 만에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했죠. 메르켈 총리는 이튿날 즉각 원전의 수명 연장을 철회했습니다. 이후 5월 30일 독일 정부는 2011년부터 단계적으로 원전 폐쇄를 시행하여 2022년까지 가동 중인 원자로 17기를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이탈리아의 국무회의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여파로 3월 29일 원전 재건설 계획을 최소 1년간 유예한다는 안건을 통과시킵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듬해인 1987년부터 20여 년간 유지해온 원전포기 정책을 철회하고, 2020년까지 총전력 수요의 25퍼센트를 원자력발전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죠.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높아지는 반원전 기류에 저항해 2011년 6월 13일 원전건설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를 단행하지만 투표 참가자의 94퍼센트가 원전에 반대했습니다.


2011년 9월 28일에는 스위스 상원도 향후 20년 동안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법안을 승인했습니다. 스위스 정부는 사고 직후 이미 원전 신규 건설 프로그램을 동결한 바 있죠.

 

그렇다면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직접적 피해자인 일본은 어땠을까요? 일본은 유일한 원자폭탄의 희생국이면서도 원자력발전에 대해서는 열망에 가까운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라늄 농축에서부터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시설까지 핵연료 주기와 관련된 모든 시설을 갖추고 상당량의 플루토늄을 축적하기에 이르렀죠. 기술 자립을 이룬 히타치와 도시바, 미쓰비시중공업 3대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한 원전 마피아는 일본 경제에서 압도적인 발언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일본에서조차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여파로 일본 국민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사고 발생 한 달을 맞아 일본 도쿄에는 1만 5000명의 시민이 모여 거리행진을 벌이는 등 수만 명이 원전반대 집회에 참석했죠. 5월 7일에는 1만 5000명의 시민이 모여 경찰과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고, 석 달째를 맞이한 6월 11일에는 전국 150개 지역에서 원전반대 집회가 열렸습니다. 원전반대 시위는 9월 19일 ‘원전에 작별을 고하는 1000만인 행동’이 주최한 메이지공원 집회에 6만여 명이 모여 거리 행진을 하면서 최고조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2011년 8월 26일 간 나오토 총리가 사퇴하고 후임 총리로 극우파적 역사관을 가진 노다 요시히코가 선출되었습니다. 노다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전범은 범죄자가 아니다"라는 말로 유명한 우파 정치인입니다. 그는 취임 후 9월 22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일본 원전의 안전성을 높이고 수출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10월 17일에는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일부 원전에 대해 가동을 허가해줄 용의가 있다"고 언급하고, 며칠 후에는 "정기점검 이후 가동이 중단된 원전을 내년 여름까지 재가동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합니다. 당내 반대파 의원들의 비판을 받긴 했지만 일본 원전 마피아의 힘이 민주당까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었음이 드러난 결과입니다.

 

2012년 재집권에 성공한 자민당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원전 정책을 되돌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해 여름을 원전 없이 지내는 데 성공하여 탈핵파가 힘을 받기도 했지만, 아베 총리 등장 이후 슬금슬금 원전 가동이 재개되고 원전산업이 주요 성장동력 산업으로 다시 이름을 올리게 되었죠. 그러다 2015년 7월 아베 정부는 2030년 발전원 구성에서 원전의 비율을 20∼22%로 상정한 전력 계획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그해 8월 11일 센다이 원전 1호기를 시작으로 원전 재가동에 들어갔죠.


일본이 여태껏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대형 사고를 당하고도 원전을 포기하지 못하는 데는 산업계의 요구가 크기 때문입니다. 원천기술을 가진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와 제너럴모터스(GE)는 물론 프랑스의 아레바와도 연합을 맺은 일본의 원전 3사인 도시바, 히타치, 미쓰비시중공업, 이들은 일본 굴지의 기업으로 그룹 내의 매출액 비중이 매우 큰 업체들입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위기를 해외 진출 기회로 삼으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스리마일 원전사고가 기술 이전의 기회를 가져왔듯이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통해 원전 마피아계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잔뜩 기대하고서 말입니다. 한국의 이런 입장은 세계 원자력발전 시장이 계속 확대되리라는 희망적인 예상과 일본이 수출 시장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세계시장은 점점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단계적 원전 축소를 선언한 국가가 늘어났으니까요. 안전성 강화에 따라 원전 건설과 운영 비용도 상당한 폭으로 증가했죠. 또한 재생가능에너지원의 그리드 패리티(재생가능에너지 발전단가와 기존 화석에너지 발전단가가 같아지는 균형점) 실현이 가시화함에 따라 원전에 대한 기피 현상이 더욱 커지는 상황입니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 현재 에너지 체제의 주역인 화석연료 3인방입니다. 대표 선수는 석유죠! 석유 시대가 계속되리라는 믿음은 의외로 넓게 퍼져 있습니다. 바닷물이 눈에 띄게 뒤로 빠지고 있는데도 막상 닥쳐와야 ‘아∼ 이런, 이게 쓰나미구나!’ 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대부분 이쪽 파에 속합니다. 96퍼센트의 1차 에너지원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서 연간 전체 수입액의 3분의 1을 에너지 사오는 데 쓰고 있으면서도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사올 수 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실상 세계적으로 이쪽 파는 극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 외에는 미국 정도가 이에 해당할까요? 물론 미국에서조차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에너지 전환을 꾀하는 쪽이 많습니다. 특히 민주당이 강세인 주에서 말이죠. 그래도 세계 13위의 석유 매장량을 가지고 세계 최초로 석유산업을 시작한 나라로서 이쪽 업계의 입김이 여전히 연방정부를 지배하는 건 사실입니다. 10여 년 전부터 개발이 시작된 셰일가스가 붐을 일으키면서 미국의 화석연료 사랑은 당분간 기조를 유지할 듯합니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로 대표되는 화석연료는 매장 지역이 한정된 엘리트 에너지입니다. 아쉽게도 한반도는 그 혜택을 받지 못했죠. 그 결과 우리는 해마다 약 200조 원을 에너지 수입에 사용합니다. 과연 우리의 후손들은 어떤 에너지를 사용하게 될까요?

 


세계는 1970년대 초 석유파동을 겪은 이래 이에 대한 대안을 찾아왔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에너지 전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1·2차 산업혁명이 낳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사회의 바탕이 된 화석연료에너지, 1950년대 핵폭탄의 부산물로 등장한 원자력에너지, 과학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에너지원의 반열에 오른 재생가능에너지가 미래 에너지 체제의 주역 자리를 놓고 경합하고 있습니다.

 

이미 승부는 기울었습니다. 대세를 장악한 건 재생가능에너지입니다. 값싼 화석연료는 더 이상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에 따른 일시적 공급 과잉으로 도래한 현재의 저유가 상황은 매서운 겨울 추위를 앞둔 ‘인디언 서머’일 뿐입니다. 그동안 월가의 금융자본이 버텨준 셰일업체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이마저 끝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겨우살이를 준비해야 하는 이 호기마저 살리지 못했습니다.


원전파는 온실가스 배출이 적다는 이유를 들어 호객 행위를 벌입니다. 하지만 원전의 이런 편승은 경제성, 안전성, 폐기물 처리의 어려움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반면 태양에너지, 풍력, 지열, 해양에너지, 바이오에너지, 수력 등 재생가능에너지는 태양이 적색거성으로 부풀어 오르는 50억 년 후까지 고갈되지 않습니다. 에너지 생산에 따른 환경 파괴도 가장 적은 편입니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0퍼센트는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겁니다. 그러므로 기후변화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화석연료를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재생가능에너지는 한정된 지역에만 혜택이 주어지는 엘리트 에너지가 아닙니다. 5대 에너지 수입국인 우리나라에도 고르게 주어지는 자연의 혜택입니다.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이 늘어나는 만큼 우리 경제는 에너지 자립을 이루고, 해마다 수십조 원을 해외로 내보낼 필요 없이 국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쓸 수 있습니다.

현재 화석연료와 원자력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에너지 체제는 중앙집중형입니다. 대자본에 의해 대량으로 생산되고 유통, 공급이 이루어집니다. 화석연료가 동인이 된 1·2차 산업혁명은 농업사회를 산업사회로 변화시키고, 인류로 하여금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물질문명을 좇게 했습니다. 70억 명을 훌쩍 넘어선 인류는 여전히 지구를 혹사하며 자신의 터전을 황폐하게 합니다.

 

 

제레미 리프킨은 재생가능에너지와 정보통신산업이 주도하는 3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립니다. 소규모 분산성이라는 재생가능에너지의 단점이 정보통신산업에 의해 연결되어 극복되고, 에너지 대기업에 의해 독점되던 이익을 소규모 생산자에게 나누고, 집중과 관리가 아닌 분권과 협업이라는 새로운 사회의 토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에너지 체제의 전환을 고민하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오래전부터 에너지 전환을 준비해온 덴마크나 독일처럼 앞서가지는 못하더라도 더 이상 뒤처지지 않도록, 우리 후손에게 너무 버거운 짐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러분의 자리에서 작은 변화를 모색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번에 소개해드린 스코틀랜드 독립 찬반을 묻는 투표처럼 의미 있는 주민 자치 투표가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한글날인 지난 10월 9일 강원도 삼척에서 진행된 원자력 발전소 유치에 대한 찬반 투표였는데요, 어지간한 지방선거 투표율에 버금가는 68퍼센트를 기록했으며 그 결과는 85.6퍼센트의 압도적인 반대였습니다. 강원도 삼척 주민은 당장 눈에 보이는 돈보다 장기적으로 환경과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의사를 투표를 통해 드러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삼척 원전 유치 찬반 투표의 결과가 앞으로 우리나라 탈핵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 SBS



삼척 원전 주민투표 압도적 반대의 의미


박근혜 정부는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대재앙을 보고도 원전 확대 의지를 표명해왔습니다. 후쿠시마의 대재앙을 목도한 세계 최대의 원전 국가 프랑스는 75퍼센트인 원전 비중을 10년 내 50퍼센트까지 파격적으로 낮추기로 결의습니다. 독일, 벨기에, 스위스는 모든 원전을 없애기로 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런 세계적인 추세를 역행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원전 마피아들의 비리로 그간 건설된 원자력 발전소에 가짜 부품과 불량 부품이 들어가 있어도, 안전 기준에 미달이어도, 심지어 일시 가동 중단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도 원전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시각으로 일관했습니다. 정부는 노후된 고리, 월성 원전에 이어 경북 영덕과 강원 삼척을 신규 원전 건설 예정지로 지정했습니다. 정부는 2011년 강원 삼척 주민들의 96.9퍼센트가 원전 신규 유치에 찬성했다면서 원전 추진 서명부를 증거로 내세웠는데요, 이번 주민투표 결과 삼척 주민 대부분이 반대하는 마당에 대체 과거 96.9퍼센트의 찬성 의견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의구심이 드는군요.



출처 - 경향신문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로 말미암아 인구 10만 명이 채 안 되는 삼척시에 전국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주민투표는 다른 투표와 마찬가지로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공공기관이나 학교 등에 마련된 44개 투표소에서 엄정한 관리하에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개표 결과 원전 유치 반대 85.6퍼센트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삼척 주민은 원전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삼척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 결과는 이전에 신규 원전 유치에 찬성했다는 민의와는 사실상 정반대의 의견입니다. 이를 근거로 강원도와 삼척시는 정부에 원전 철회를 강력히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강원일보


하지만 이런 시민의 뜻에 반해 정부는 삼척 원전을 강행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원전 유치 반대라는 압도적인 주민투표 결과가 나오자마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투표가 법적 효력이 없다고 밝히며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주민투표의 정통성을 문제 삼은 겁니다. 삼척시는 정식으로 선거관리위원회에 원전 찬반에 대한 주민투표를 공식적으로 요구했으나 선관위는 원전이 국가사무로 주민투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공문을 보내 거부했습니다.

 

지역의 안전을 위해 그곳에 사는 주민의 뜻을 물어 따르겠다는데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요? 2012년 10월 석탄화력발전소 유치를 추진하던 경남 남해군이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사업을 백지화한 전례도 있는데 말입니다. 반핵을 기치로 이번에 당선된 김양호 삼척시장과 삼척시 의회까지 만장일치로 원전 유치 철회를 정부에 요구한 데다 주민의 뜻까지 모였는데 정부는 지방자치와 민의를 무시하고 그저 원전 건설을 강행할 생각밖에 없습니다.



삼척 원전 유치는 애초에 조작 의혹이 커


2011년 삼척 원전 유치에 결정적 근거가 되었던 삼척 원전 유치 신청 서명부.  당시 삼척시 유권자 5만 8339명 중 96.9퍼센트에 해당하는 5만 6551명의 서명이 담겨 있어 삼척 시민이 원전 유치에 열렬히 찬성한다며 삼척원전유치단체가 국회와 청와대, 산업부, 한수원 등에 제출했던 자료입니다. 하지만 예전부터 이 서명부와 관련해 조작 의혹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주민들의 동의를 받고 서명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대리, 중복, 위조 서명하여 날조된 서명부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삼척 원전 유치가 결정된 후 이 서명부가 절묘하게도 사라져서 그동안은 사실관계 확인이 불가능했습니다.



출처 - 아시아뉴스통신


행방불명되었던 삼척원전 유치 신청 서명부가 최근 정의당 김제남 의원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실체가 드러난 서명부에는 한눈에도 동일인이 일괄 서명한 것으로 보이는 대리 서명이 다수 발견되었고, 신상 정보가 빠져 서명인이 누군지 알 수 없는 허위 기재도 상당수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냥 동그라미만 친 서명부도 찬성으로 인정했다고 하니 기가 막힙니다. 원전 유치로 돈 좀 만질 것 같은 일부 세력과 원전 확대 강행을 천명한 정부의 이해가 맞물려 벌어진 더러운 수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작된 서명부에 근거를 둔 삼척 원전 유치 계획은 당연히 백지화됨이 마땅합니다. 서명부가 조작된 것임은 이번 주민 투표를 통해 정반대의 결과인 압도적 유치 반대가 나온 것으로 명명백백히 증명되었습니다.



원전 마피아부터 척결하라


2014년 국정감사가 시작된 가운데 부실한 원전 안전과 비리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수력원자력(주)의 비리를 보면 가관입니다. 소방차 기름을 훔치다 적발되거나 사택관리비를 횡령하고 부하 직원에게 향응을 제공받은 간부가 생기는 등 불법 행위가 도를 넘었습니다. 더욱이 정작 중요한 원전 안전과 비리 척결에 대한 법안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드러난 원전 공공기관과 유관 납품업체들의 유착, 이른바 원전 마피아 문제는 사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줍니다.



출처 - 세계일보


후쿠시마처럼 한 지역, 나아가 국가를 궤멸시킬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위험 앞에서 책임 기관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온갖 비리와 불법을 자행하는 한편 유착관계에 있는 업체로부터 향응과 이익을 맞바꾸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였습니다. 말도 안 되는 비리와 불법을 저지르고도 원전 마피아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태연합니다. 마치 세월호 참사 이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처럼 말입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원전 마피아의 폐해를 목소리 높여 지적하지만, 이를 척결할 법안 처리에는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원전 마피아 사건이 터진 후 규제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법안소위에 올라있을 뿐 심사조차 미뤄진 상태에 있습니다. 기적적으로 올해 통과가 되더라도 시행은 내년 6월이나 되어야 할 판입니다.



출처 - 그린피스


이번 강원 삼척의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압도적 반대로 결론이 남에 따라 삼척시 주민들은 다음 달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또한 삼척과 함께 원전 신규 건설 예정지였던 경북 영덕은 군의회가 나서 주민투표를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그 외 환경단체들은 이 두 지역뿐 아니라 고리, 월성 등 노후 원전 건설 반대 운동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많은 지역이 원전에 전기 수급을 의존하고는 있지만 그 이전에 원전은 지역주민의 생존과 직결된 중차대한 문제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는 안전을 무시할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 생생히 목도했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며, 민주주의제를 채택한 이상 투표로 결정된 민의에 따르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대에 어떻게 민주국가 운운하겠습니까. 이번 삼척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 결과를 놓고 우리는 후대에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삼척의 투쟁은 이제 지역만의 싸움이 아니라 생명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전국적인 움직임으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