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거행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SNS에 올린 성명을 통해 오월의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기원하며 오늘의 미얀마에서 어제의 광주를 본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5월 광주가 미얀마의 희망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면서요. 김부겸 국무총리는 기념사를 통해 화해와 용서는 지속적 진상 규명과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과 그리고 살아 있는 역사로서 5월 광주를 기억할 때만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내란 목적 살인죄를 저지른 핵심 책임자들이 진실을 밝히고 광주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출처 - MBC

 

아울러 올해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자는 말도 나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내용인데요, 이번에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물론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같은 뜻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전 총장이 5.18 정신을 얘기하자 바로 비난 여론에 직면했습니다. 임은정 대검찰청 감찰정책연구관은 5.18 때 항명은커녕 사표라도 던져본 검사가 있었느냐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돌려서 비판하는 한편 검찰 조직이 한심하고 개탄스럽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윤석열의 검찰은 수십 년간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왜곡하고 폄훼했던 지만원을 무혐의 처분한 적이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 와서 5.18 정신에 숟가락을 올리려는 건 염치없는 행동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출처 - 서울의소리

 

올해 5.18에는 새로운 정보가 여럿 공개되었죠.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5.18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폭력배로 둔갑시켜 삼청교육대로 보낸 정황이 담긴 문건이 나왔습니다. 일부 5.18 유공자는 삼청교육대를 거쳐 청송감호소까지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신군부 세력이 5.18 유공자들을 조직적으로 삼청교육대로 끌고 갔는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지난 2018년 12월에 대법원은 전두환 정권이 저지른 삼청교육대의 설치, 운영 근거가 됐던 계엄포고 13호가 발령 절차와 내용에 있어서 모두 위헌, 위법해 무효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출처 - 한겨레

 

한편 국정원은 지난달 5일 5.18 당시 차륜형 장갑차가 시위 현장에 투입된 사진을 포함해 당시 상황을 볼 수 있는 관련 기록을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제공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차륜형 장갑차 사진의 경우 ‘최초 발포는 광주고 앞길에서 바퀴가 고장 난 차륜형 장갑차에서 이뤄졌다. 그 장갑차를 제외하고 다른 계엄군 장갑차는 모두 궤도형이었다’는 진술과 문헌 내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로서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합니다.

 

출처 - KBS

 

한편 5.18 당시에는 외신 기자들의 역할이 컸는데요, 이번엔 계엄군과 시민군의 최후 항전 기록 사진이 최초로 일반에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계엄군이 도청 진압작전을 단행한 직후의 도청 상황이 적나라하게 담긴 사진입니다.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 서울지부 기자였던 노먼 소프가 촬영한 것으로 41년 만에 일반에 공개됐다고 하죠.

 

출처 - 노먼 소프

 

5.18 광주민주화항쟁과 관련해 올해 무엇보다 고무적인 일은 5.18 당시 계엄군에 참여했던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사격으로 사망한 희생자의 유족에게 사죄와 용서를 구한 지난 3월의 일입니다. 5.18 가해자가 직접 나서서 자신의 발포로 특정인을 숨지게 했다고 고백하며 유족에게 사죄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5.18 당시 계엄군이었던 A 씨가 5.18 조사위에 자신의 행위를 고백하고 유족에게 사과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유족들이 사과를 수용하면서 이번에 자리가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A 씨는 유족 앞에 엎드려 사죄하며 오열했습니다. 유족들은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며 용기 있게 나서주어 다행이고 고맙다고 했습니다. A씨는 조사위에 순찰 중 화순 방향으로 걸어가던 민간인 젊은 남자 2명이 공수부대원인 자신들을 보고 도망가자 무의식적으로 사격했다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이때 겁에 질려 도주하던 그들에게는 총기나 위협이 될 만한 물건이 없었다며 공수부대원들에게 저항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겁을 먹고 도망가던 상황이라고 밝혔죠. 이는 5.18 당시 계엄군의 총격이 무장한 시위대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위권 차원이었다는 신군부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아주 중요한 증언입니다. 조사위는 향후로도 계엄군이 사죄 의향을 밝힐 경우 유족과 상의하여 사과와 용서를 통한 과거사 치유에 기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JTBC

 

또 다른 뜻깊은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 2013년 보수 종편인 채널A에 출연해 5.18 광주 북한군 투입설의 근거로 이용되어 왔던 김명국 씨가 이번에 5.18 진상조사위원회를 찾아 양심선언을 했습니다. 김명국은 2013년 방송에서 북한 특수군으로서 5.18 당시 광주에 직접 침투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이 때문에 극우 진영은 그의 얘기를 토대로 5.18 당시 북한군이 남파됐다는 증거로 사용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김명국은 지금껏 광주에 가본 적이 없다고 진실을 털어놓았습니다. 남파 간첩을 키우는 대남연락소 소속 전투원이었던 김명국은 진위 파악조차 안 되는 당시 조장의 얘기를 듣고 자신도 함께 간 것으로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그러니까 군대의 '썰'을 진짜 있었던 일인 양 무용담으로 만들었던 겁니다.

 

출처 - JTBC

 

김명국은 방송 출연이나 촬영하는 줄 몰랐다고 해명하면서 이후 논란이 너무 커져 뒤늦게 말을 바꾸는 게 겁이 나서 잠적했다고 밝히면서 자신을 유혹한 세력에 대해 폭로했습니다. 북한군으로 광주에 침투했다는 거짓말만 잘해주면 수만금을 준다는 사람도 있었고 자꾸 기자회견을 해달라는 세력들도 있었다는 겁니다. 2019년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개회한 5.18 공청회에도 나와달라고 초대받았는데 거절했다고도 밝혔습니다. 그는 조만간 광주를 찾아가 사죄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5.18의 진상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지만, 김명국을 인터뷰했던 《동아일보》와 채널A 책임자들은 도망다니며 없었던 일인 양 하기 바쁩니다.

 

출처 - JTBC

 

양심선언과 새로운 자료로 5.18 당시 신군부의 거짓이 폭로되고 있지만, 핵심 세력의 뻔뻔함은 계속되고 있죠. 육군특수전사령부 전 사령관이었던 정호용은 이번에 5.18진 상위에 진정서를 제출하며 자신은 광주진압작전에서 배제됐고 노태우가 3당 합당을 성사시키기 위해 자신을 5.18 책임자로 몰아 정계에서 제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허화평, 허삼수, 허문도와 계속 불화했고 광주에 가긴 갔지만 작전 조언만 했을 뿐 실질적으로는 방관자였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회의 일원으로서 전두환 밑에서 출세가도를 달린 인물입니다. 5.18 이후에는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국회의원을 지냈죠. 그런 사람이 이제 와서 억울하다고 하니 그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심스럽지만, 5.18진 상위는 이달 안으로 정호용을 조사해 진정서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만약 신군부 세력의 균열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향후 5.18 진상 규명에 진척이 있겠지요.

 

출처 - JTBC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 참상의 악의 축인 전두환 일가는 악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000억 원에 가까운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고 있는 전두환 일가는 최근 재산을 3대 장손자인 전우석에게 세습하는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전우석이 아버지인 전재국 소유 출판사 등기이사로 참여하며 경영의 전면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출처 - 뉴스타파

 

전두환 일가는 지금까지 두 번에 걸쳐 전 재산의 국가 헌납을 공언한 바 있죠. 5공 비리가 터져 나오던 1988년 전두환 본인이, 2013년에는 아들인 전재국이 대국민 기자회견을 통해 연희동 자택을 비롯해 추징금 완납까지 환수에 응하겠다고 밝힌 겁니다. 하지만 8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입니다.

 

출처 - 뉴스타파

 

그간 감춰뒀던 전두환의 불법자금이 아들 삼 형제, 그중에서도 특히 맏아들인 전재국에게 흘러갔다는 게 정설입니다. 시간이 흘러 2019년 10월 전재국의 아들이자 전두환의 손자인 전우석은 음악세계의 등기이사가 되며 50%의 지분을 가져갑니다. 이를 기점으로 하여 전두환 그룹의 최정점이 말단 기업이었던 음악세계로 바뀝니다. 개인 회사였던 음악세계가 주식회사로 전환되고 사업 목적에 부동산 임대 및 분양, 주택 건설 등이 추가되었죠. 아무리 봐도 음악과는 거리가 먼 사업들이죠. 이런 변화 방향을 보면 전우석의 음악세계가 향후 전두환 그룹의 리딩 컴퍼니가 될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뉴스타파

 

또한 전재국은 아들이 대주주인 회사에 임대료를 몰아주는 식으로 부당 내부거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증여세 회피를 위한 편법 상속이 벌어진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상태죠. 분명한 사실은 전두환의 불법자금을 활용해 아들 전재국이 세운 사업체들로 끌어모은 재력이 이제 손자인 전우석에게 흘러 들어가 전두환 그룹의 최정점에 도달했다는 겁니다. 학살자 일가는 부의 3대 세습을 이뤄 여전히 이 사회를 돈과 영향력으로 좌지우지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출처 - 뉴스1

 

5.18 41주년 기념식이 있던 날 전두환의 패소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전두환이 5.18 당시 광주에 내려가 계엄군에 사살을 명령했다고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했으나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패소한 겁니다. 한편 전국 시민단체는 전두환과 관련된 기념비 등의 철거를 촉구했습니다. 인천에서는 정토원에 남아 있던 전두환 글씨 현판이 이미 교체되었죠. 포천시 역시 오랜 철거 요구 끝에 국도 43호선 축석고개에 세워진 전두환의 호국로 기념비를 철거하기로 했습니다. 5.18 광주를 피로 물들인 학살자 일가와 그 비호 세력에게 맞설 힘은 평범한 시민의 관심과 진실을 규명하려는 의지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가 5.18의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5.18 광주 학살범 전두환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이 당연한 1심 결과를 받기 위해 3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광주지방법원은 지난 11월 30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전두환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전두환이 자서전에 쓴 5.18 헬기 사격 목격자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것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징역 2년도 아니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판결은, 그가 저지른 5.18 학살에 대한 벌로는 새발의 피도 안 됩니다. 하지만 이번 재판이 5.18 학살 자체에 대한 재판이 아니라 사자명예훼손에 대한 재판이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사자명예훼손죄의 법정형 기준은 2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시민들의 법 감정을 생각했을 때 이번 판결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한편으론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5.18 당시 자국민을 향한 군의 헬기 사격을 인정했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애초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전두환의 거짓말로 재판이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전두환 측 변호인은 지난 10월 최후변론에서 "광주 상공에서 단 한 발의 총알도 발사된 것이 없다. 헬기 사격설은 국민을 분열시키고 역사를 왜곡하려는 한낱 허구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해 반성은커녕 여전히 사실 인정조차 하고 있지 않음을 명백히 했습니다. 1심 판결을 받으러 가는 11월 30일 아침에도 전두환은 집을 나설 때 5.18 학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향해 "말조심해 이놈아!" 하고 소리를 질렀을 정도죠.


출처 - 경향신문


파렴치한 전두환을 향해 1심 재판부는 헬기 사격 여부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쟁점이라며 '광주소요사태 분석 교훈집' 등 다수의 군 문서와 증인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피해자인 조비오 신부가 목격한 바와 같이 5.18 민주화운동 기간에 자국민을 향한 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점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결했습니다. 또한 전두환이 재판 내내 혐의를 부인하고 40년이 넘도록 광주 시민들에게 용서를 구한 적도 없고 사과도 하지 않아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면서 실효성이 적은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5.18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피고인이 고통받아온 많은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길 바란다고 밝혔지만 전두환은 이날 재판에서도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난 10월 5일 KBS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인터뷰에 응한 조영대 신부(조비오 신부의 조카)는 "역사적인 그런 재판이고 또 이 재판은 단순히 한 개인의 사자(死者) 명예훼손을 다루는 문제가 아니라 결국 광주 5.18 진상 규명을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 온 국민의 이목이 쏠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은 결코 이것을 양보할 수 없고 결코 사죄의 그런 뜻도 없고 이런 상황이어서 계속해서 온갖 완전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지금 재판을 2년 반이나 그렇게 끌어오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긴 재판 과정을 회고한 바 있습니다. 1심 재판 결과가 나오자 조영대 신부는 전두환에 대한 허탈감과 참담함을 토로하는 한편 헬기 사격 사실이 법적으로 인정된 만큼 5.18의 진실을 밝힐 다음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된 점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출처 - MBC


1심 재판 결과에 대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비로소 그날의 진실에 다가설 수 있게 됐다며 1980년 5월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밝혀진 만큼 발포 명령과 민간인 학살 등의 진상 규명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습니다. 5.18특별법 역시 하루빨리 통과시키겠다고 밝혔습니다. 경제정의실천연합 역시 이번 재판은 법원이 최초로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인정한 점에서 의의가 크다면서도 형의 집행을 명예훼손 피해자에 국한시킨 점은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2심 재판부가 전두환에 대한 실형 선고와 법정구속 판결을 내리길 기대했습니다.


출처 - KBS


실제로 전두환 측은 지난 7일 1심 재판부의 결정에 사실오인이 있다며 광주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습니다. 그에 앞서 지난 3일 광주지검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두환 사건에 대해 항소했습니다. 검찰의 항소 이유는 양형 부당과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였습니다. 전두환 측과 검찰 측이 다 '사실오인'을 말하며 항소함에 따라 이르면 내년 2월쯤 항소심 재판이 열릴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광주드림


항소심은 광주지법 합의부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로써 전두환은 광주 법정에 다시 서야 합니다. 이번 1심 판결로 그간 멈춰 있던 민사소송 항소심도 이르면 다음 달 재개될 전망입니다. 전두환 측은 민사 1심에서 자서전의 69곳을 삭제하지 않으면 출판 및 배포를 금지한다는 조치를 받았으며, 5.18 단체 4곳에 각각 1500만 원, 조영대 신부에게 1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습니다. 전두환이 이에 불복해 항소했기 때문에 이 민사 재판의 항소심이 곧 재개된다는 것입니다.


출처 - 뉴시스


2017년 4월 전두환은 회고록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이후 3년의 긴 법정 공방 끝에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큰 판결이지만, 적어도 이번 판결로 5.18 당시 군의 사격이 부득이한 자위권 발동이라는 억지 주장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됐습니다. 또한 미필적으로나마 전두환이 자국민에 대한 헬기 사격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도 인정된 셈입니다. 이런 재판 결과를 발판 삼아 5.18특별법 제정으로 진실을 밝히고 학살범 전두환을 단죄하길 바랍니다.

올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40주년을 맞이하는 중요한 해입니다. 올해 5.18 40주년 기념식은 사상 최초로 옛 전남도청 앞 5.18 민주광장에서 열렸습니다. 옛 전남도청은 1980년 5월 당시 시민군이 계엄군과 맞서 싸운 최후의 항쟁지였던 만큼 그 의미가 참 남다릅니다.


출처 - 한겨레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가 주요 인사들과 5.18 유공자,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습니다. 광주의 자식들이 전두환을 단죄하기 위해 모인다는 설정의 영화 〈26년〉, 5.18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영화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등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들이 기념식 영상으로 사용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기념식 행사의 백미는 기념식 장소이자 최후의 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 옥상 등에서 제창된 〈님을 위한 행진곡〉 헌정 공연이었습니다. 1980년 5월 그날을 재현한 듯 수십 명이 옛 전남도청 옥상에 올라 이 노래를 제창한 겁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난무하던 이명박근혜 시절과 달리 이번 5.18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을 비롯하여, 정우성, 송가인 등 유명 연예인이 자신들의 방식대로 기념했습니다.


출처 - MBC


문재인 대통령은 5.18 40주년 기념사를 통해 정부가 발포 명령자 규명과 민간인 학살 등 진상 규명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했습니다. 또한 한 방송 인터뷰를 통해 5.18 정신이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위한 실질적인 움직임도 시작되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2018년 제정 및 개정되었고 2019년 말 5.18 진상조사위 구성이 완료되었죠. 위원 구성에 대한 비판이 높았지만 5.18 40주년을 맞이해 이번에는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의지가 큽니다. 진상조사위는 5월 12일 본격적으로 조사 개시를 선언했습니다.

 

출처 - KBS


정치권도 의욕적입니다. 광주 지역 21대 국회 당선인들은 1호 법안으로 5.18역사왜곡처벌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5.18진상조사위원회의 강제조사권 강화를 골자로 한 진상규명특별법 개정 가능성도 커지고 있고요. 미래통합당마저 총선 패배를 의식했는지 납작 엎드렸습니다. 5.18 망언과 관련해 사과를 했으며 4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했죠. 참석한 주호영 원내대표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지난 과오를 볼 때 과연 진심일까 싶긴 하지만, 최소한 인간으로서 이 정도의 예의는 앞으로도 지켜주길 바랍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5.18 광주민주화 40주년을 맞이한 때입니다만, 5.18 관련 혐오 발언과 망언은 여전히 쏟아집니다. 종편은 전두환 때가 우리나라 최고의 호황이었고 헬기 사격과 관련해 전두환은 몰랐다고 변호하기 바빴습니다. 김진태 등 5.18 망언을 일삼는 정치인을 두둔하는 왜곡 보도가 지난 총선 기간에도 계속된 바 있죠.

 

출처 - 경향신문


광주의 진실을 규명의 길은 여전히 험난합니다. 광주에서 있었던 민간인 학살 및 암매장 관련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시민군 최진수 씨는 40년간 동료 주검 행방을 찾고 있고, 광주교도소에 끌려간 강길조 씨는 52명의 사망을 목격했다고 증언했습니다. 행불자가 적어도 78명인데, 그간 있었던 5차례의 암매장 조사는 성과가 없었죠. 이번에 출범한 5.18진상조사위는 실종자 규모와 암매장, 사체유기 등 진상을 규명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뉴스타파


최근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1980년 5~6월 일본외무성 문서에 미국과 일본이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의 움직임을 평가한 내용이 담긴 기록이 여럿 있다고 합니다. 이 기록에서 당시 주한 미국 대사는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이 미쳐가고 있다고 직설적인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군부의 힘을 이용해 한국 정치의 실권을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이 쥐고 있다는 것 역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신군부 쿠데타의 핵심이 이 3명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전두환은 지난 40년간 광주 학살은 물론 쿠데타의 수괴 역할을 줄곧 부정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드러난 자료에 의해 일본과 미국은 1980년 5월의 상황이 전두환의 쿠데타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이 국보위 이전에도 국사혁명위원회를 만들어 사실상 군부 정권 수립을 기도했다는 사실, 전두환이 언론사 편집장들을 모아놓고 광주진압작전 계획을 직접 설명한 사실 등을 보면 전두환이 주모자라고 보는 것이 국내외적으로 타당하다는 겁니다.


출처 - SBS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한 올해지만 전두환 일가는 범행 자체를 부인하며 호의호식하고 있습니다. 2013년 전두환의 큰아들 전재국은 전방위 수사에 압박을 느끼고 아버지인 전두환에 대한 추징금 자진 납부계획서를 제출한 바 있죠. 자신의 부동산과 북플러스라는 도서 유통업체 경영에서 손을 떼며 해당 지분을 다 내놓겠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 약속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전재국은 북플러스의 비상무이사로 재직하며 급여와 법인카드를 받아 펑펑 쓰고 다녔습니다. 그 와중에 어려워진 회사 사정은 아랑곳없이 자기 월급을 44%나 올렸습니다. 법인카드를 술집이나 국외여행 등 업무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사용한 경우는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합니다. 압박이 들어올 땐 수그리다가 지나가면 활개 치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부전자전입니다. 40년이 지났지만 우리가 여전히 5.18에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번에 출범한 5.18 진상조사위의 활동과 진실 규명, 전두환 일가의 단죄를 위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고 두 눈을 부릅떠야겠습니다.

학살자 전두환을 드디어 광주 법정에 세웠습니다. 그의 측근들 핑계대로 치매기라도 있다면 정신을 놓은 틈에 혹시 사과하는 얘기가 나오지는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역시나 전두환은 철면피였습니다.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취재하던 기자들이 "5.18 발포 명령을 부인합니까?"라고 묻자 "이거 왜 이래!"라며 역정을 내는 모습에서 그는 5.18 이후로 조금의 반성도 해본 적 없는 학살자였음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출처 - JTBC


3월 11일 오전 8시 30분,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재판에 출석해야 하는 전두환의 자택 앞에는 취재진과 극우 단체 회원 들이 운집해 어수선했습니다. 경찰 6개 중대 350여 명의 병력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으나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전두환의 광주행에는 그를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며 망언을 일삼은 부인 이순자와 변호사가 동행했습니다. 서대문 경찰서 형사들과 평소 전두환을 경호하는 경찰 경호대도 같이 이동했다고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12시 30분경 광주지법에 도착한 전두환은 승용차에서 내려 스스로 걸었습니다. 경호원의 부축은 없었습니다. 정신이 또렷하고 건강 상태도 좋아 그가 여태까지 재판을 기피했던 모든 이유가 핑계에 불과했음을 스스로 보여주었습니다. 검찰과 경찰은 전두환이 자진 출석하여 출석을 강제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 법원과 협의해 구인장을 집행하지 않았습니다. 전두환이 자기 발로 광주를 찾은 것은 1987년 이후 32년 만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재판이 시작되자 전두환은 재판장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며 헤드셋을 이리저리 고쳐 쓰고 중간에는 지루한지 꾸벅꾸벅 졸았다고 합니다. 다른 곳도 아닌 광주 법정에서 이런 행동을 보이다니 학살자 전두환의 뻔뻔함에 기가 막힙니다. 이번 재판은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전두환이 펴내 출간정지를 받은 회고록에서 저열하게 비난하여 사자명예훼손으로 불구속기소 되어 열린 공판입니다. 법정에 선 전두환은 변호사를 통해 5.18 당시 헬기 사격과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모두를 부인했습니다. 재판은 1시간 15분 만인 오후 3시 45분에 끝났습니다. 전두환은 광주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피해 자택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2019년 3월 11일 광주는 1980년 5월로 되돌아간 듯했습니다. 법원 후문과 내부 곳곳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주출정가〉 등이 울려 퍼졌고 당시 학살을 저지른 전두환과 신군부의 만행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혹시 모를 전두환의 참회를 기대하고 법원 주변에 갔다가 전두환이 역정을 내고 밥 먹으러 갔다는 소리가 들리자 분노와 불만을 토로하는 시민도 많았습니다. "전두환을 구속하라!", "5.18 망언 국회의원과 극우 인사 구속하라!"는 구호가 연이어 나왔으며 5.18 당시 가족과 친지를 잃은 희생자 유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여기저기서 들려왔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한편 법원 후문 앞 광주동산초등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 초등학생 20여 명이 창문 쪽에 서서 "5.18 진실을 밝혀라!", "학살자 전두환을 처벌하라!", "전두환은 물러가라!"며 구호와 노래를 외쳐 부르기도 했습니다. 정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광주 법정에 선 전두환을 규탄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건 학살자 전두환의 전면 부인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별다른 충돌 없이 전두환의 공판이 끝나기까지 광주 시민들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습니다. 학살자 전두환을 고소한 조비오 신부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는 법원에 출석한 전두환에게 "정말 잘못했다고 한마디라도 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출처 - 뉴스1


자국 군인들에게 학살을 명령했던 전두환에게 상처 입은 광주 시민들이 바라는 건 과오를 인정하고 잘못했다는 진심 어린 참회의 한마디였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화해의 손길을 학살자 전두환은 뿌리치고 말았습니다. 5.18에 대한 전체의 죄를 묻는 재판이 아니어서 아쉬운 감도 있지만 전두환을 광주 법정에 세우기까지 32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강산이 세 번 변할 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이 대부분 그러했듯 가해자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피해자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1997년 전두환은 선고 받은 추징금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50% 남짓 납부하는 데 그쳤습니다. 전두환은 광주의 영령들과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사과할 뜻이 전혀 없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학살자 전두환이 광주 법원으로 향하는 날 각 당에서 논평을 냈습니다. 당마다 전두환에 대한 호칭이 달랐습니다. '전두환 씨', '피고인 전두환', '전두환 전 대통령', '살인마 전두환', 이렇게 서로 다른 호칭은 각 당의 입장이 서로 다름을 상징합니다. 학살자와 5.18 광주에 대한 입장의 차이 속에 '5·18 진상조사위'는 반년째 표류하고 있습니다.

 

출처 - SBS

 

하지만 이번 광주 법정에 전두환을 세운 것은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5.18 광주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광주의 진실이 드러날수록 망언을 했던 자들의 입지는 좁아질 테지요. 지난날 과오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 않는 가해자에게 법의 단죄가 내려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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