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주모자', '국가 반역자', '독재자', '학살자' 등으로 불리며 우리나라 현대사에 짙은 어둠을 드리웠던 전두환이 지난 11월 23일 오전 집 화장실에서 쓰러져 사망했습니다. 12.12 군사 쿠데타 동지인 노태우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뒤를 따른 셈이죠.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을 앓고 있었기에 사망 원인은 지병으로 파악되는데요, 많은 이들이 전두환은 평화롭고 평범하게 죽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12.12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 전두환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암흑기의 주범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단 한 번도 국민의 직선제 투표로 당선된 적 없는 유일한 대통령이죠. 이처럼 정통성과 거리가 먼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후 1995년 반란수괴, 내란수괴, 내란목적 살인 등의 죄목으로 기소되었습니다. 애초 사형이 구형되었으나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국민 여론과 관계없이 그해 사면되고 말았죠. 수감 기간은 2년에 그쳤습니다.

 

출처 - KBS

 

그는 죽는 순간까지 5.18을 비롯한 무수한 민주화운동 피해자와 희생자들에게 참회하거나 사죄하지 않았습니다. 죽기 전 추징금을 완납한 노태우와 달리 전두환은 1000억여 원에 이르는 추징금마저 미납한 채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인면수심'이라는 말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인간입니다.

 

출처 - 뉴스1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전두환의 유가족 역시 ᄈᅠᆫ뻔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부인인 이순자는 관련 비리나 의혹이 끊이질 않았고, 그의 가족은 건국 이래 최대 금융사기였던 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에 연루된 바 있습니다. 친인척을 동원한 부동산 투기 소문 또한 끊이질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순자는 2019년 남편 전두환에 대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망언까지 하여 국민을 분노하게 했죠.

 

출처 - PD수첩

 

전두환의 자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출판사를 운영한 장남 전재국은 2013년 아버지의 추징금 완납을 위해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하더니 그 뒤로 감감무소식입니다. 최근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에 유령법인을 만들어 비자금 계좌를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을 샀습니다. 차남인 전재용은 탈세 혐의로 수사받던 중 차명계좌에서 160억가량의 뭉칫돈이 발견되었고, 이 중 70억가량이 비자금 계좌로 흘러들어 간 것으로 확인돼 검찰에 구속됐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전두환의 빈소에는 5공 정치인이나 하나회 출신 군인들,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이 조문했고 이명박, 반기문, 노태우 부인 김옥숙 등이 근조 화한을 보냈습니다. 일반 시민의 조문은 거의 없다시피 한 반면 극우 유튜버나 태극기 부대들이 빨갱이 운운하며 소란을 피웠죠. 국민의힘 대선 후보인 윤석열은 전두환 사망과 관련해 조문을 가겠다고 하더니 2시간 동안 오락가락하다 결국 안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비웃음을 샀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선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는 전두환을 명백한 내란 학살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사죄 없는 그에게 조문 계획이 없다고 하여 선을 그었습니다. 전두환의 유가족은 5.18 관련 사죄에 대해 묻는 취재진에게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며 끝내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전두환은 국립묘지에 안 가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북녘땅이 보이는 전방 고지에 백골로 남고 싶다고 했는데요,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겠죠. 그는 안 가는 게 아니고 못 가는 겁니다.

 

출처 - JTBC

 

국가보훈처는 빈소가 차려진 날 전두환 측에 "국립묘지 안장 배제 대상"이라고 명확히 통보했습니다. 청와대 역시 "끝내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었던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라고 밝히며 청와대 차원의 조화와 조문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국가장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장례에 대한 지원 역시 없다고 했죠. 노태우 사망 당시 '추모 브리핑'이라는 이름으로 발표가 있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사망 관련 브리핑'이라고 표현도 달리했습니다.

출처 - 뉴욕타임스

 

전두환에 대한 해외 언론의 평가도 비슷합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1월 23일 한국에서 가장 비난을 많이 받은 군 장성 출신 독재자가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1980년 광주에서 시민들을 살육했다(mowdown)고 상세히 소개했습니다. 한국인 사이에서 전두환이란 이름은 폭압적인 군사 독재자와 동의어라며 올림픽 등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독재 정치와 학살이라는 부정적 유산이 이를 압도한다고 평가했습니다.

 

출처 - MBC

 

대부분의 시민은 전두환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한편으론 기뻐하고 한편으론 아쉬워했습니다. 학살자가 죽은 건 기쁘지만 죗값을 치르지 않고 사과 한마디 없이 죽은 건 너무 파렴치하다는 거였죠. SNS에서는 오늘 저녁은 타코야키나 문어숙회라며 독재자의 죽음을 풍자하는 얘기가 넘쳤고, 일부 정육점과 식당은 전두환 사망 기념으로 할인 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살아남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확한 역사를 기록하고 전두환을 단죄하는 것입니다. 20년 넘도록 뭉개고 있는 추징금을 전두환 일가로부터 받아내는 것도 남은 일입니다. 전두환은 약 956억에 달하는 추징금 외에 지방세 10억여 원을 미납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8년째 서울시 고액 체납자 명당에 그이 이름이 올라 있기도 했고요.

 

출처 - CBS

 

당사자인 전두환의 사망으로 말미암아 향후 추징금 환수가 불투명해진 상황입니다. 추징금은 가족 등 타인에게 양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법 재산인 것을 알고도 취득한 제삼자로부터는 추징이 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검찰은 미납 추징금 집행에 대해 법리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6월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두환 사망 뒤에도 상속재산에 대해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전두환 재산 추징 3법을 대표 발의했으나 법사위에 계류 중입니다. 조속히 처리하여 전두환 일가의 범죄 수익금을 모조리 받아내야 할 것입니다. 전두환을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역사에 어둠을 드리웠던 독재자가 모두 죽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을 반면교사 삼아 대한민국 역사에 다시는 독재자가 등장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하고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일일 것입니다.

제41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거행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SNS에 올린 성명을 통해 오월의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기원하며 오늘의 미얀마에서 어제의 광주를 본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5월 광주가 미얀마의 희망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면서요. 김부겸 국무총리는 기념사를 통해 화해와 용서는 지속적 진상 규명과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과 그리고 살아 있는 역사로서 5월 광주를 기억할 때만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내란 목적 살인죄를 저지른 핵심 책임자들이 진실을 밝히고 광주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출처 - MBC

 

아울러 올해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자는 말도 나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내용인데요, 이번에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물론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같은 뜻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전 총장이 5.18 정신을 얘기하자 바로 비난 여론에 직면했습니다. 임은정 대검찰청 감찰정책연구관은 5.18 때 항명은커녕 사표라도 던져본 검사가 있었느냐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돌려서 비판하는 한편 검찰 조직이 한심하고 개탄스럽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윤석열의 검찰은 수십 년간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왜곡하고 폄훼했던 지만원을 무혐의 처분한 적이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 와서 5.18 정신에 숟가락을 올리려는 건 염치없는 행동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출처 - 서울의소리

 

올해 5.18에는 새로운 정보가 여럿 공개되었죠.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5.18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폭력배로 둔갑시켜 삼청교육대로 보낸 정황이 담긴 문건이 나왔습니다. 일부 5.18 유공자는 삼청교육대를 거쳐 청송감호소까지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신군부 세력이 5.18 유공자들을 조직적으로 삼청교육대로 끌고 갔는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지난 2018년 12월에 대법원은 전두환 정권이 저지른 삼청교육대의 설치, 운영 근거가 됐던 계엄포고 13호가 발령 절차와 내용에 있어서 모두 위헌, 위법해 무효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출처 - 한겨레

 

한편 국정원은 지난달 5일 5.18 당시 차륜형 장갑차가 시위 현장에 투입된 사진을 포함해 당시 상황을 볼 수 있는 관련 기록을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제공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차륜형 장갑차 사진의 경우 ‘최초 발포는 광주고 앞길에서 바퀴가 고장 난 차륜형 장갑차에서 이뤄졌다. 그 장갑차를 제외하고 다른 계엄군 장갑차는 모두 궤도형이었다’는 진술과 문헌 내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로서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합니다.

 

출처 - KBS

 

한편 5.18 당시에는 외신 기자들의 역할이 컸는데요, 이번엔 계엄군과 시민군의 최후 항전 기록 사진이 최초로 일반에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계엄군이 도청 진압작전을 단행한 직후의 도청 상황이 적나라하게 담긴 사진입니다.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 서울지부 기자였던 노먼 소프가 촬영한 것으로 41년 만에 일반에 공개됐다고 하죠.

 

출처 - 노먼 소프

 

5.18 광주민주화항쟁과 관련해 올해 무엇보다 고무적인 일은 5.18 당시 계엄군에 참여했던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사격으로 사망한 희생자의 유족에게 사죄와 용서를 구한 지난 3월의 일입니다. 5.18 가해자가 직접 나서서 자신의 발포로 특정인을 숨지게 했다고 고백하며 유족에게 사죄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5.18 당시 계엄군이었던 A 씨가 5.18 조사위에 자신의 행위를 고백하고 유족에게 사과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유족들이 사과를 수용하면서 이번에 자리가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A 씨는 유족 앞에 엎드려 사죄하며 오열했습니다. 유족들은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며 용기 있게 나서주어 다행이고 고맙다고 했습니다. A씨는 조사위에 순찰 중 화순 방향으로 걸어가던 민간인 젊은 남자 2명이 공수부대원인 자신들을 보고 도망가자 무의식적으로 사격했다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이때 겁에 질려 도주하던 그들에게는 총기나 위협이 될 만한 물건이 없었다며 공수부대원들에게 저항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겁을 먹고 도망가던 상황이라고 밝혔죠. 이는 5.18 당시 계엄군의 총격이 무장한 시위대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위권 차원이었다는 신군부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아주 중요한 증언입니다. 조사위는 향후로도 계엄군이 사죄 의향을 밝힐 경우 유족과 상의하여 사과와 용서를 통한 과거사 치유에 기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JTBC

 

또 다른 뜻깊은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 2013년 보수 종편인 채널A에 출연해 5.18 광주 북한군 투입설의 근거로 이용되어 왔던 김명국 씨가 이번에 5.18 진상조사위원회를 찾아 양심선언을 했습니다. 김명국은 2013년 방송에서 북한 특수군으로서 5.18 당시 광주에 직접 침투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이 때문에 극우 진영은 그의 얘기를 토대로 5.18 당시 북한군이 남파됐다는 증거로 사용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김명국은 지금껏 광주에 가본 적이 없다고 진실을 털어놓았습니다. 남파 간첩을 키우는 대남연락소 소속 전투원이었던 김명국은 진위 파악조차 안 되는 당시 조장의 얘기를 듣고 자신도 함께 간 것으로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그러니까 군대의 '썰'을 진짜 있었던 일인 양 무용담으로 만들었던 겁니다.

 

출처 - JTBC

 

김명국은 방송 출연이나 촬영하는 줄 몰랐다고 해명하면서 이후 논란이 너무 커져 뒤늦게 말을 바꾸는 게 겁이 나서 잠적했다고 밝히면서 자신을 유혹한 세력에 대해 폭로했습니다. 북한군으로 광주에 침투했다는 거짓말만 잘해주면 수만금을 준다는 사람도 있었고 자꾸 기자회견을 해달라는 세력들도 있었다는 겁니다. 2019년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개회한 5.18 공청회에도 나와달라고 초대받았는데 거절했다고도 밝혔습니다. 그는 조만간 광주를 찾아가 사죄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5.18의 진상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지만, 김명국을 인터뷰했던 《동아일보》와 채널A 책임자들은 도망다니며 없었던 일인 양 하기 바쁩니다.

 

출처 - JTBC

 

양심선언과 새로운 자료로 5.18 당시 신군부의 거짓이 폭로되고 있지만, 핵심 세력의 뻔뻔함은 계속되고 있죠. 육군특수전사령부 전 사령관이었던 정호용은 이번에 5.18진 상위에 진정서를 제출하며 자신은 광주진압작전에서 배제됐고 노태우가 3당 합당을 성사시키기 위해 자신을 5.18 책임자로 몰아 정계에서 제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허화평, 허삼수, 허문도와 계속 불화했고 광주에 가긴 갔지만 작전 조언만 했을 뿐 실질적으로는 방관자였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회의 일원으로서 전두환 밑에서 출세가도를 달린 인물입니다. 5.18 이후에는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국회의원을 지냈죠. 그런 사람이 이제 와서 억울하다고 하니 그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심스럽지만, 5.18진 상위는 이달 안으로 정호용을 조사해 진정서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만약 신군부 세력의 균열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향후 5.18 진상 규명에 진척이 있겠지요.

 

출처 - JTBC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 참상의 악의 축인 전두환 일가는 악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000억 원에 가까운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고 있는 전두환 일가는 최근 재산을 3대 장손자인 전우석에게 세습하는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전우석이 아버지인 전재국 소유 출판사 등기이사로 참여하며 경영의 전면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출처 - 뉴스타파

 

전두환 일가는 지금까지 두 번에 걸쳐 전 재산의 국가 헌납을 공언한 바 있죠. 5공 비리가 터져 나오던 1988년 전두환 본인이, 2013년에는 아들인 전재국이 대국민 기자회견을 통해 연희동 자택을 비롯해 추징금 완납까지 환수에 응하겠다고 밝힌 겁니다. 하지만 8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입니다.

 

출처 - 뉴스타파

 

그간 감춰뒀던 전두환의 불법자금이 아들 삼 형제, 그중에서도 특히 맏아들인 전재국에게 흘러갔다는 게 정설입니다. 시간이 흘러 2019년 10월 전재국의 아들이자 전두환의 손자인 전우석은 음악세계의 등기이사가 되며 50%의 지분을 가져갑니다. 이를 기점으로 하여 전두환 그룹의 최정점이 말단 기업이었던 음악세계로 바뀝니다. 개인 회사였던 음악세계가 주식회사로 전환되고 사업 목적에 부동산 임대 및 분양, 주택 건설 등이 추가되었죠. 아무리 봐도 음악과는 거리가 먼 사업들이죠. 이런 변화 방향을 보면 전우석의 음악세계가 향후 전두환 그룹의 리딩 컴퍼니가 될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뉴스타파

 

또한 전재국은 아들이 대주주인 회사에 임대료를 몰아주는 식으로 부당 내부거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증여세 회피를 위한 편법 상속이 벌어진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상태죠. 분명한 사실은 전두환의 불법자금을 활용해 아들 전재국이 세운 사업체들로 끌어모은 재력이 이제 손자인 전우석에게 흘러 들어가 전두환 그룹의 최정점에 도달했다는 겁니다. 학살자 일가는 부의 3대 세습을 이뤄 여전히 이 사회를 돈과 영향력으로 좌지우지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출처 - 뉴스1

 

5.18 41주년 기념식이 있던 날 전두환의 패소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전두환이 5.18 당시 광주에 내려가 계엄군에 사살을 명령했다고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했으나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패소한 겁니다. 한편 전국 시민단체는 전두환과 관련된 기념비 등의 철거를 촉구했습니다. 인천에서는 정토원에 남아 있던 전두환 글씨 현판이 이미 교체되었죠. 포천시 역시 오랜 철거 요구 끝에 국도 43호선 축석고개에 세워진 전두환의 호국로 기념비를 철거하기로 했습니다. 5.18 광주를 피로 물들인 학살자 일가와 그 비호 세력에게 맞설 힘은 평범한 시민의 관심과 진실을 규명하려는 의지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가 5.18의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올해로 36주기가 되는 5.18 민주화항쟁도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으로 시작했습니다. 상식적인 사회라면 이런 일이 논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겠죠. 박근혜 대통령은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사실상 제창하지 못하게 지침을 내렸으며 박승춘 보훈처장은 이 교시를 받들어 올해도 제창을 불허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청와대 회동에서 협치를 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또 하나의 쇼였을 뿐이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대부분이 거짓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야당은 청와대 회동 무효를 선언하며 강하게 반발했고, 심지어 새누리당 원내대표조차 청와대와 보훈처의 결정에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야당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해임촉구 결의안을 내기로 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1997년 김영삼 정부 때부터 제창된 〈임을 위한 행진곡〉은 2008년 이명박 정부 때부터 제외되기 시작했습니다. 집권당과 정권의 성격을 보면 그 의도가 너무나 명백하죠. 보훈처의 해석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음악적으로 제창과 합창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개념이지만, 보훈처의 유권해석으로는 제창은 참석자 전원이 의무적으로 불러야 하지만 합창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죠.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5.18 민주화항쟁 기념식 동영상을 보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입을 다물고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외워서 부르고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는 주먹을 움켜쥔 채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반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들고 있는 종이만 들여다볼 뿐 입을 열지 않습니다.


출처 - 유튜브


보훈처의 유권 해석대로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국가 기념식의 관행을 어긴 것이며 '의무적'으로 불러야 하는 노래를 고의로 부르지 않은 셈이 됩니다. 그렇다면 보훈처는 박근혜 대통령의 무례와 무식함을 계속 알리고 싶어 이런 방침을 자꾸 고수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다면 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를 막기 위해 다른 핑계를 대고 있는 걸까요?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보면 그 이유가 그대로 드러나긴 합니다.


출처 - 페이스북


〈임을 위한 행진곡〉은 보수단체의 주장과 달리 종북이나 김일성 찬양을 위한 노래가 아닙니다. 탈북하여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는 주성하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북한에서 허락없이 부르면 잡혀가 정치범이 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북한과 연결시키는 찌질한 짓거리" 좀 그만하라면서 말입니다. 삼척동자도 다 알 만한 노래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보면 그 수준의 저열함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한편 5.18 민주화항쟁 당시 학살의 책임자였던 전두환은 자신이 광주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4대 조건이 선결되어야 된다는 망언을 했습니다. 신변 보호와 박탈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를 갖추는 등의 조건이 선결되어야 5.18 묘역을 참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광주에서는 죄인에게 무슨 예우냐는 반응이 나오고, 5.18 관련 단체는 책임 인정과 광주에 대한 사죄 그리고 대국민사과가 선결 조건이라고 대응하기도 했죠. 

 

출처 - KBS


하지만 살인마 전두환은 지난달 27일 《신동아》 기자와 나눈 인터뷰에서 5.18 민주화항쟁 당시 시민군을 향해 총을 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동석한 전두환의 지인들도 인터뷰에 참여했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상황이 나왔습니다.

 

(5·18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광주 침투와 관련된 정보 보고를 받은 적 없다는 전 전 대통령 말에)


고명승 전 삼군사령관 "북한 특수군 600명 얘기는 연희동에서 코멘트 한 일이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 "뭐라고? 600명이 뭔데?"

정호용 전 의원 "이북에서 600명이 왔다는 거예요. 지만원 씨가 주장해요."

전두환 전 대통령 "오, 그래? 난 오늘 처음 듣는데."


일베에서 5.18 관련으로 "종북, 빨갱이" 타령할 때 흔하게 나오는 주장이 북한 특수군 얘기죠. 그런데 그 주범인 전두환이 이런 논거를 부정한 셈입니다. 광주와 북한이 관련 있다는 일베의 주장이 헛소리임을 전두환이 밝힌 셈입니다. 한편 역사적 책임감으로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전두환은 "광주에 내려가 뭘하라고요"라고 되물어 책임 인정과 사과할 마음이 전혀 없음을 드러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출처 - 스포츠동아


한국인 작가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의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얘기했죠.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출처 - 《소년이 온다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과 같이 고립되고 힘으로 짓밟히고 훼손된 사건 이면에는 광주를 수없이 되태어나게 한 국가의 원죄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아물지 못하고 해마다 후벼지는 그 상처에서는 여전히 피가 철철 나고 있습니다. 5월 광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2015년에 맞은 제35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박근혜 정부에 의한 분열 그 자체였습니다. 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여전히 거부했고, 마땅히 참석해야 할 박근혜 대통령은 기념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참석한 여야 대표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가운데 정부 대표로 온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침묵했습니다. 한편 광주를 찾은 여당 대표 김무성은 물벼락을 맞았으며 야당 대표 문재인은 야유와 비난을 받았습니다. 군부 독재에 맞서 분연히 일어선 민주 시민의 정의로운 항쟁이 정부의 조직적인 방해와 여야 정치권의 무능과 혼탁으로 자꾸 그 정신이 퇴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비행은 5.18 민중항쟁의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 여러 차례 5.18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출처 – EBSi


다시 기억해야 할 5.18 광주민주화운동, 신군부의 독재와 언론·방송의 굴종사

http://ideas0419.com/145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며 표현의 자유를 다시 돌아보다

http://ideas0419.com/354

 

군사 독재 정권의 후계자와 그 조력자들로 이루어진 현 정부의 조직적인 방해나 여당의 기회주의와 야당의 무능은 질리도록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일베를 중심으로 급격히 증가한 5.18 희화화와 모욕은 다른 의미에서 대한민국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 일베가 게시글이나 이미지 합성으로 5.18의 역사적 의미를 왜곡하고 희생자와 유족을 모욕하는 일은 이미 악명 높습니다. 하지만 일베의 주장은 명백히 사실이 아닙니다. 당시 외신만 살펴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튜브


그런데도 한 일베 회원은 5.18 희생자의 관을 '홍어 택배'에 빗대어 표현하는 반인륜적 명예훼손을 저질러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생각비행은 우리 사회에 파문을 일으킨 일베를 어떻게 봐야 할지 분석한 적도 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 일베, 어떻게 봐야 하나? : http://ideas0419.com/439

 

우리 사회에서 일베의 활동은 도가 지나쳐 점입가경입니다. 바로 어제 2015년 5월 18일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습니다. 일베가 제35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행사장에도 침투해 있었습니다. 일베의 한 회원은 자원활동가 복장을 하고 자원활동가 표찰을 든 채 이른바 일베 손동작을 인증했습니다.

 


출처 - 아시아경제



이는 독일로 치자면 종전기념일에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에서 치러지는 유대인 학살 추모 행사장에서 자원봉사 복장을 한 채 '88' 혹은 '18'을 인증한 셈입니다. 욕이냐고요? 아닙니다. 88과 18은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극우인 네오 나치의 은어입니다. 생각비행이 최근에 출간한 책, 《알고나 까자 ―독일 사회를 통해 본 대한민국》을 통해 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암호는 '88'이다. '하일 히틀러Heil Hitler'의 앞 글자인 HH에서 H가 알파벳 순서상 여덟 번째이기 때문에 88은 곧 '하일 히틀러'가 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18'도 있는데, 앞의 이유와 마찬가지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A와 H를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또 다른 유명한 암호로 '14단어(14Words)'가 있다. 이는 “We must secure the existence of our people and a future for white children(우리는 백인 민족의 존립과 백인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이라는 문장의 단어 수를 의미한다. 또 RAHOWA라고 RAcial HOly WAr(인종적 성전)의 앞 글자를 딴 단어도 있다.

 



《알고나 까자 ―독일 사회를 통해 본 대한민국》 (김동석 | 생각비행) 21쪽  05 네오나치의 암호

 

전후 청산과 사죄의 모범이 되는 나라이자 이제 유럽의 리더로 우뚝 선 독일. 하지만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네오나치. 독일과 네오나치의 사정을 통해 우리나라와 일베 등 극우의 관계를 엿보는 일은 교훈이 되지 않을까요?


《알고나 까자》의 저자는 네오나치가 눈에 띄게 폭력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한 시기를, 독일이 통일되고 경제적 불균형이 심화되기 시작한 때로 보고 있습니다.

 

이들의 지역 기반은 구동독 지역인데, 독일 통일 이후 폭력이 심화되었다는 이야기는 이들의 움직임이 통일 이후 불어닥친 경제적 불균형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동독인은 그들의 문제를 내부에서 찾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소수의 네오나치들은 현실을 직시하기보다 2차 대전 때 방식처럼 '남의 탓', 즉 외국인과 사회적 소수자 혹은 좌파 정치가들에게 화를 풀어버리는 얄팍한 방식을 택했다.

이들이 분노를 해소하는 방식은 군중 심리에 의거해 작동하는 것이 분명히 보인다. 네오나치들은 서로 모여서 자신들의 사상에 대한 복종심을 강화한다. 이때 범죄자는 자신이 매우 칭송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고 확신하는데, 그 확신은 동료들의 지지를 받을수록 더욱 자연스러워진다. 이들의 행위를 법적으로 처벌하시는 쉬우나 심리적으로는 그들의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설득하기는 굉장히 힘들다. 이 부분이 정말 어렵고도 가장 중요한 문제다.

여기에 어설픈 사상가 한둘이 가세해 자기합리화에 걸맞은 학문적 용어들을 보태주면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당위성에 더해 자부심까지 갖게 되며, 사상이 종교로 변해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순교로 받아들이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알고나 까자 ―독일 사회를 통해 본 대한민국》 (김동석 | 생각비행) 16쪽  03. 네오나치의 규모


IMF와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 붕괴와 양극화, 남의 탓을 하기 위해 찾아낸 상대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혐오, 민주화 좌파 세력에 대한 증오와 테러, 군중 심리와 또래 집단끼리의 관계에 집착하는 10대를 중심으로 한 일베가 인기를 끄는 이유를 네오나치의 성립에 기대어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여기에 극우 언론과 극우 논객들의 부추김까지, 극우파의 대두는 서로 통하는 면이 있나 봅니다.

 

출처 - 한겨레


그렇다면 독일은 이 네오나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요? 우선 독일은 정부 차원에서 강력한 규제를 합니다. 2차 대전 이후 독일은 민족주의 혹은 극우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나치 깃발인 하켄 크로이츠가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독일 국기가 집밖에 걸려 있어도 경찰이 찾아올 정도였다고 하죠. 인종차별을 처벌할 법적 근거도 있기 때문에 조치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점점 더 교묘해지는 극우세력을 억누를 수 있을까요? 정말 제목 그대로 알고나 깝시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2012년 튀링엔 지방에서 네오나치가 일으킨 테러에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는 추모식에 참석하여 "우리나라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부끄러운 줄 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부끄럽다면 이를 고치려는 노력을 하면 된다. 물론 그 노력은 힘들다. 그리고 단기간에 되는 것도 아니다.



독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구 중의 하나가 "Kein Ort Fur Neonazis(네오나치를 위한 자리는 없다)"이다. 버스에도 지하철에도 길가에도 흔하게 붙어 있다. 지역 커뮤니티 형식으로 작은 조직들이 네오나치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는 것이다. 모여서 시위를 하거나 홍보를 하기도 한다.

그 외에 네오나치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지원해주는 엑시트 도이칠란트Exit Deutschland라는 단체도 있다. 극우 그룹에서 나오려다가 신체적 위협이나 협박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주로 그런 일을 해결해준다.


《알고나 까자 ―독일 사회를 통해 본 대한민국》 28쪽  08. 극우와 작별하는 법


극우가 잘못된 것이며 이 사회에 발붙일 수 없음을 시민사회 차원에서 공고히 하고 극우 세력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사람들에겐 협력을 아끼지 않는 성숙한 의식이 독일의 대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엑시트 도이칠란트의 '오퍼레이션 트로얀 티셔츠 운동'처럼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들에게 손을 내밀기도 했습니다.

 

2011년 8월 네오나치들이 주최한 음악 축제 현장에서 엑시트 도이칠란트는 해골이 그려진 티셔츠를 네오나치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해골 프린트에는 과격한 네오나치 찬양 문구와 나치 문양이 들어가 있었다. 극우파들은 신나서 그 티셔츠를 입고 음악 축제를 즐겼다. 그리고 네오나치들은 각자 자기 집에 돌아와 그 땀에 절은 티셔츠를 빨았다. 그랬더니 티셔츠 위에 새겨져 있던 해골 프린트와 네오나치 찬양 문구들은 깨끗이 씻겨 내려가고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문구가 드러났다.


“네 티셔츠가 한 것을 너도 할 수 있어. 우리가 도와줄게 – 엑시트 도이칠란트”


《알고나 까자 ―독일 사회를 통해 본 대한민국》29~30쪽

 

결국 네오나치나 일베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대부분도 사회적 약자이기에 오히려 다른 약자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잠시나마 강자가 된 기분을 느껴보는 가련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극우 성향의 단체나 커뮤니티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독일, 미국, 세계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들이 절대 사회적 강자가 아니면서 강자의 방식을 빌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사회적 강자들이 동조해주면 정말로 히틀러가 다시 세상에 나오는 것이지만 다행히 현대 사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이들의 행동은 자신들이 현재 소수자로서 혹은 사회적 약자로서 핍박받는다는 사실을 이상한 방식으로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도 인정받고 잘하고 싶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고, 세상은 나를 알아주지 않기에 그것이 불만인 것이다. 과도한 경쟁을 불러오는 자본주의에도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알고나 까자 ― 독일 사회를 통해 본 대한민국》 30쪽  08. 극우와 작별하는 법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독일 사회와 달리, 사회적 강자들이 은근히 일베와 같은 무리를 부추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더 위태로운 상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한층 더 씁쓸하고 맥빠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었습니다. E. H. 카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로 파악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잊지 말자고 한목소리로 외쳤던 세월호 참사 1주기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빨리 잊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은 분명히 다릅니다. 과거 2차 대전 당시 많은 이들을 학살한 나치의 수뇌부를 단죄하기 위해 아직도 찾고 있는 독일과, 과거의 치부를 미화하려는 몇몇 잘못된 사람들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한국, 딱 그만큼이 두 사회의 차이점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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