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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도

싸이월드 서비스 언제까지? 디지털 추억의 갈 길은?

by 생각비행 2019. 10. 18.

지난주 불금을 기대하고 퇴근하다 가슴이 덜컥한 분들 많으실 겁니다. 갑자기 싸이월드 접속이 안 되는 건 물론 사이트가 아예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경영진에게 연락이 닿지도 않았다고 하죠. 한때 온국민의 싸이라고 불리며 대한민국 대표 SNS였던 싸이월드가 이렇게 초라하게 공지도 없이 사라지나 싶었던 분들 많으셨을 겁니다.


출처 - 연합뉴스


2000년대 초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폰 카메라의 폭발적인 보급으로 거의 국민 1인당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는 싸이월드에는 지난 시간의 추억과 사진이 켜켜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사회 변화에 발맞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다른 SNS로 대부분 관심이 돌려졌다 해도 집 한쪽 구석에 넣어둔 사진 앨범을 꺼내에 볼 때가 있죠. 가끔 뚜다다닥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펼쳐지기도 합니다. 그런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디지털 매체가 싸이월드는 아닐가 하고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땐 그게 뭐라고 '파도타기'를 해가며 목을 맨 일촌맺기, 연인들 사이는 만남부터 싸우다 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기도 했던 게시물과 사진, 지금 보면 촌스럽기 짝이 없지만 다람쥐처럼 도토리를 마구 모아 만든 미니 홈피 장식과 아바타인 '미니미'까지, 옛 추억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참 많습니다.

 

출처 - 싸이월드


지난 11일 싸이월드의 홈페이지 접속이 끊겼습니다. cyworld.com 주소 소유권 만료일도 한 달 앞으로 다가와 설마 주소 갱신할 돈도 없어서 이대로 서비스를 폐쇄하는 건가 싶은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죠. 다행히 지난 15일 싸이월드는 인터넷 주소 소유권을 1년 연장했습니다. 홈페이지와 앱을 통한 서비스 접속도 일부나마 재개됐죠. 일단 당장 싸이월드를 접는 건 아니란 의사를 내비친 셈입니다.


출처 - 뉴스1


하지만 싸이월드가 넘어야 될 산은 험준합니다. 경영난으로 서버 비용 등 최소한의 유지비 부담도 버거운 상황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 홈페이지 주소 소유권 1년 연장 비용은 몇만 원 수준에 불과한데, 이걸 체크할 직원조차 제대로 없었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전제완 싸이월드 대표는 과기부에 싸이월드 서비스를 종료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싸이월드 첫 화면 접속은 가능해졌지만 미니홈피와 클럽 등 서비스 곳곳에서 장애가 발생했습니다.


출처 - 뉴스1


수명이 다해가는 서비스를 긴급한 심폐소생술로 숨만 붙여놓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죠. 일각에서는 신규 투자를 받는다 해도 서비스 개발 및 재편이 쉽지 않아 언제든 서비스 중단이 반복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때 너무 거대한 서비스였던 탓에 20년간 누더기가 된 소스코드투성이에 개발 관련 문서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상태라 정상적인 서비스 운영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하니까요. 게다가 이미 유지에만 100억 규모의 비용을 들였는데 신규 투자처를 더 찾을 수 있을까 하는 회의론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출처 - 헤럴드경제


그런데 문제는 이용자들의 디지털 추억이 사기업의 경영에 볼모로 잡혀 있다는 겁니다. 이번 싸이월드 접속 문제를 계기로 사용자들은 백업이라도 해놓겠다는 분위기인데 아시다시피 싸이월드는 제대로 된 백업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백업 서비스를 개발해야 할 의무도 없고 백업 서비스를 개발하고 유지하는 데 또 돈이 듭니다. 전기통신사업법상 부가통신서비스사업자인 싸이월드는 서비스 폐지 30일 전에 폐쇄 안내 고지만 하면 의무를 다하게 됩니다. 설사 고지하지 않더라도 과징금이나 시정명령으로 끝입니다. 그렇다고 법안을 개정해 백업 서비스를 의무화하고 고지 강화를 하자니 국내법에서 자유로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글로벌 SNS 공룡들과의 경쟁에서 국내 스타트업들만 역차별하는 꼴이 되어 버립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싸이월드 폐쇄는 시간 문제일 뿐인 시한폭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SBS


엄청난 기술의 발달로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로 추억을 편하고 빠르게 남길 수 있게 되었지만, PC통신부터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서비스를 종료하면 그간 쌓아뒀던 숱한 데이터들이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사라지는 세상입니다. 물론 인터넷에서 잊힐 권리가 필요한 상황도 있습니다. 하지만 싸이월드에 저장된 사람들의 추억이 그 대상은 아닙니다. 과연 디지털 시대에 한 시대의 추억이 갈 길은 어디일까요?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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