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최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폄훼하는 게시물을 올려 사회적 논란을 촉발한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광고가 중단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간 일베에는 리얼클릭, 구글 애드센스, 미디어나루 등 인터넷 광고대행업체들이 광고를 게재하고 있었습니다. 광고대행사 리얼클릭은 22일 공지글을 통해 "제휴 매체 일간베스트에서 역사인식을 왜곡하는 것은 물론 유해 정보가 많이 올라오고 있어 광고주와 인터넷 유저들을 보호하기 위해 광고를 차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일간베스트저장소

보수 우파의 집결지로 불리며 파워 사이트로 떠오르고 있는 일베 커뮤니티 회원을 얼마 전 국가정보원이 안보 특강에 초청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일베 회원들이 인터넷에 공개한 국정원의 초청장에 따르면, 국정원은 일베 회원을 포함해 간첩 신고를 한 보수 누리꾼들을 뽑아 오는 24일 열리는 국정원 안보 특강에 초청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갑자기 각종 뉴스를 선점한 '일베' 현상,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요? 도현신 작가의 [어제, 오늘, 내일 2]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봅니다.   

전효성의 '민주화' 발언으로 부각된 일베 현상

얼마 전, 떠들썩한 소동이 하나 있었습니다. 2013년 5월 14일, SBS 라디오 프로그램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출연한 아이돌 그룹 시크릿의 전효성이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라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고 한 발언이 구설수에 오른 것입니다. 전효성이 “민주화”라는 단어를 쓴 맥락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남을 괴롭힌다는 나쁜 뜻으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적으로 만든다는 뜻인 민주화라는 단어가 원래의 의미와는 전혀 상관없는 나쁜 말로 쓰이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주위로부터 반발과 비판이 거세지자 전효성은 뒤늦게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실언으로 번진 파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대체 전효성은 무슨 생각에서 민주화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의미로 말했던 것일까요? 그것이 전효성 개인이 처음 한 발상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민주화를 나쁜 말로 쓰는 어법의 출처는 일간베스트저장소, 줄여서 ‘일베’라고 하는 한 인터넷 사이트입니다.

일베는 원래 다른 인터넷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 줄여서 ‘디시’에서 갈라져 나온 곳입니다. 일베의 모태가 된 디시라는 커뮤니티에 관해 잠시나마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디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회로 수많은 누리꾼의 방문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한때 한국 인터넷을 대표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로 꼽혔습니다. 초창기의 디시는 상당히 좋은 사이트였습니다. 디시 접속자들은 서로를 불교에서 도를 닦는 승려를 뜻하는 용어를 변용한 ‘햏자’라는 호칭으로 대하며 존중해주었죠.

2002년 디시에 연재된 만화, <햏자의 역습>. 이 무렵, 디시 접속자들의 매너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았고, 사이트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이런 디시는 2005년 이후부터 점차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존댓말이 사라지고 반말과 욕설이 나타났고, 특정 지역(전라도와 대구 등)을 모욕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게시물이 마구 올라왔던 것입니다. 당시 사이트 운영자들은 이런 사태를 막거나 엄히 다스리기는커녕, 오히려 악성 게시물을 올리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디시의 타락을 방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디시에는 양식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특정 지역과 여성들을 모독하는 게시물들은 윤리적으로 나쁘니 삭제하도록 요청해서 지워졌습니다. 그러자 “그냥 재미 삼아 인터넷에서 하는 말들인데 왜 지우냐?” 하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따로 일간베스트저장소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디시에서 삭제된 문제 게시물들을 다시 올렸습니다. 일베의 모태가 된 디시도 2010년 무렵에는 막말과 욕설, 비속어가 들끓는 등 그다지 좋은 사이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디시에서도 감당하지 못해 삭제된 게시물들을 모아 놓은 곳이 바로 일베였으니, 이런 유래를 본다면 일베라는 사이트 자체가 애초에 잘못된 출발을 한 곳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일베의 본질은 무엇인가? 
 
일베에 접속하는 사람들이 어떤 성향을 지녔는지, 그리고 ‘일베’라는 사이트의 본질이 대체 무엇인지를 놓고 많은 사람이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조금씩 차이는 있더라도 “일베는 인터넷의 익명성을 바탕으로 마구 날뛰는 악성 네티즌들의 집단”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지금은 안 쓰지만, 한때 ‘키보드 워리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신상 정보가 닉네임 속에 완전히 가려진 인터넷의 특성을 악용하여, 다른 누리꾼에게 욕설과 인신공격을 퍼부으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죠. 이런 악성 누리꾼들은 인터넷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피시통신이 운영되던 1990년대에도 존재했습니다. 어느 여중생이 “너는 걸레”라는 욕설을 듣고 충격에 빠져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뉴스도 있었지요.

일베도 근본적으로 이런 악성 누리꾼들이 모인 사이트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규모와 이용자 수가 다른 인터넷 공간보다 훨씬 방대하다는 것뿐이죠. 자신의 신분이 철저하게 비밀이니,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불이익이나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익명성을 근거로 평소에는 사회의 도덕적 제약 때문에 차마 하지 못하던 말들을 인터넷에 대고 마구 쏟아내는 곳이 바로 일베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베 회원들은 사이트 내에서 어떤 도덕이나 윤리적인 제약도 지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들을 “씹선비”라는 모욕적인 말로 부르며 조롱합니다. 그들의 생각에 인터넷은 어차피 가상공간이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뭐든지 마음껏 해도 되는 곳인데 무엇 때문에 현실 세계의 예의나 도덕 같은 귀찮은 제약에 얽매이느냐, 그런 자들은 착한 척하는 더러운 위선자들이다, 라는 겁니다.

일베에 온갖 패륜적인 게시물들―강아지와 수간을 하고, 6살 난 조선족 여자 아이를 집단 강간하러 모의하며, 자신들을 비판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딸을 스토킹 모의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원정녀(매춘부)라고 부르며, 한국 여성들을 김치녀로 혐오하고, 전라도 사람들을 가리켜 홍어 냄새난다면서 다 죽여야 한다는 등―이 마구 올라오는 이유도 바로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댔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을 비판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딸을 스토킹하겠다고 글을 올린 일베 회원들

그렇다면 일베 회원들이 욕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는 대상은 없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같은 한국의 독재자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에 대해 욕설을 퍼붓는 일베 회원들이지만, 아직까지 이 세 사람에 대한 비방 게시물이 올라오거나 베스트로 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전두환을 전땅크라 부르며 우상화하는 일베 회원들이 만든 그림. 그들은 전두환이 저지른 광주 학살을 알고도 오히려 잘 죽였다며 무자비한 폭력을 찬양한다.

어째서일까요? 일베 회원들이 저 세 독재자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몰라서 저러는 걸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저지른 국가적 폭력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에 대해 분노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열렬히 찬양합니다. 한 예로 일베 회원들은 전두환 일당이 저지른 광주 학살에서 수많은 시민이 계엄군에게 무참히 살해된 사진을 보고는 “전땅크, 부릉부릉, 홍어들 냄새난다”고 댓글을 달며 신군부의 살인을 찬양하고 광주 시민을 조롱합니다.

일베 회원들이 쓰는 말들, 모두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쓸 수 없는 수준이다. (출처: JTBC)

독재자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숭상한다면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정치인들(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을 일베 회원들은 어떻게 볼까요? 극렬히 증오합니다. 그중에서도 일베 회원들이 제일 미워하는 대상은 바로 민주화 진영에 속한 정치인인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일베에서는 우리나라의 모든 문제가 바로 김대중과 노무현 때문에 벌어졌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런 믿음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생각하지 않고, 오직 김대중과 노무현을 욕하는 것이 일베 회원들의 모습입니다.

일베 회원들은 김대중과 노무현을 욕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이 평생 추구해왔던 가치인 민주주의마저 부정합니다. 일베에서 ‘민주주의’ 혹은 ‘민주화’는 모든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는 말로 쓰입니다. 글의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가수 전효성이 자기들 그룹이 민주화를 시키지 않는다고 한 말은 원래는 일베에서 쓰이던 표현이었습니다.

일베 회원들이 민주주의 자체를 증오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어떤 게시물의 밑에 그것을 반대하는 버튼의 이름을 ‘민주화’라고 붙인 것입니다.

게시물 밑의 반대 버튼 이름을 민주화라고 붙여놓은 일베 사이트

이것이 일베 회원들의 핵심 정체성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같은 개발 독재자들은 찬양하면서 민주화를 추진한 김대중과 노무현 같은 정치인들은 증오하고 있는 겁니다. 국민들의 인권을 유린하며 폭력을 휘두른 독재자들을 좋아하고, 민주주의를 추구한 정치인들은 미워하는 일베 회원들.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원래 일베라는 사이트 자체가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쓸 수 없었던 반도덕적이고 패륜적인 게시물을 모아놓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니 일베를 만들고 이용하는 누리꾼들은 ‘도덕’이라는 가치관 자체를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덕적인 가치인 민주화를 추구한 정치인들을 위선자, 거짓말쟁이, 사기꾼, 나쁜 놈이라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또한 일베 회원들은 도덕적인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분출하는 행위 자체를 즐깁니다. 그러니 무자비한 학살과 폭력을 휘두른 독재자들을 솔직하고 진실하다고 보면서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다른 관점에서, 일베 회원들은 약자를 혐오하고 힘을 숭배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미워하는 대상들은 하나같이 한국 사회에서 약한 집단입니다. 전라도는 박정희 시절부터 차별을 받았고, 한국 여성은 오랫동안 남성 우월주의의 희생양이었으며, 김대중과 노무현은 한국의 주류 권력 집단과 보수 언론으로부터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약자들이었죠. 반면 일베 회원들이 찬양하는 독재자들은 모두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강자들입니다. 이승만은 4.19 혁명으로 쫓겨났지만 아직도 뉴라이트 같은 보수 단체들로부터 국부 대접을 받고 있으며, 박정희는 죽어서도 국민이 제일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인식되고 있고, 그의 딸이 2013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전두환은 권좌에서 밀려났지만 막대한 재산을 이용해 일가족이 상류층에 편입되어 떵떵거리고 있으며, 황제 경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부의 보호도 받고 있습니다. 독재자들을 추종했던 세력은 지금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핵심 집단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일베 회원들의 눈에 세 독재자가 절대 강자로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약자를 미워하고 힘을 숭상하는 집단이라니, 왠지 꺼림칙하지 않습니까? 독일의 나치가 바로 이런 자들이었습니다. 특히 나치의 우두머리인 히틀러는 이 세상에는 오직 강자만이 살아남을 권리가 있으며, 약자들은 존재할 자격도 없으니 모조리 죽여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히틀러는 집권하자마자, 독일 국민 중에서 불치병과 난치병 환자 및 장애인 같은 약자들은 국가에 부담만 주는 쓸데없는 방해물이라고 여겨 모조리 독극물로 독살해 버렸습니다. 일베 회원들은 히틀러 같은 극악무도한 파시스트 독재자가 우리나라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걸까요?

일베는 사회 실패자들의 모임이 아니다

일베가 악명을 떨치자, 이를 분석하는 사람 중에 “크게 문제 삼을 것 없다. 일베는 어차피 가난한 저학력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별 볼일 없는 집단에 불과하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베를 단순히 사회 부적응자들의 모임 정도로 보는 인식은 너무나 안이합니다. 일베는 저소득층이나 저학력자들만 가려서 받는 사이트가 아닙니다. 일베를 이용하는 사람 중에는 예전에 진중권 씨와 토론을 벌인 ‘간결’ 같이 하버드로 유학 갈 정도의 고학력자도 있으며, 국정원과 깊은 관계를 가진 정규직 종사자도 많습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예전에 운동권 출신으로 국회의원이 된 임수경 씨의 아들이 죽었다는 인터넷 뉴스 기사에 “잘 죽었다” “꼴 좋다”는 식의 악성 댓글을 단 누리꾼들은 철없는 청소년이 아니라 대기업 간부와 중소기업 사장과 같이 지극이 정상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가 말한 것처럼, ‘악의 평범성’이 드러난 사건이기도 했지요.

이러한 이유로 저는 일베 현상이 두렵습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일베 같은 사이트에 열광한다는 것은, 곧 보통 사람들 사이로 파시즘이 자연스레 스며든다는 사실을 의미하게 때문입니다.

실제로 영국의 역사가 마크 마조어가 그의 저서인 《암흑의 대륙》에서 밝힌 사실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대부분의 유럽 젊은이가 파시즘의 강렬한 매력에 자발적으로 매료되었으며, 경제대공황 등의 위기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무능하다고 여겨 혐오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그 당시 유럽과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요? 일베에 제일 많이 접속하는 계층은 10대와 20대 젊은이들인데, 이들이 독재자를 찬양하고 민주화를 부정적인 의미로 쓴다면, 자발적으로 파시즘에 환호하고 민주주의를 경멸했던 유럽 젊은이들을 흉내낸다는 지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봅니다. 일베의 하루 접속자 수는 400~500만에 이릅니다. 대략 우리나라 인구의 10퍼센트 정도가 매일 일베에 접속한다면, 이는 그저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한국의 보수 세력과 일베의 결탁 현상

지금은 잠잠하지만 작년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두고 민주당은 국정원이 전국 70여 개의 비밀 지점에서 ‘오늘의 유머’ 같은 국내의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마다 박근혜 후보를 찬양하고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는 이른바 댓글 정치 공작을 벌여왔다고 폭로했습니다.

이 때문에 국정원 여직원이 머물고 있다는 강남의 한 오피스텔을 습격해, 어서 나오라고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지요. 거의 이틀을 버틴 끝에 여직원은 나오기는 했습니다만, 대선을 이틀 앞둔 시점에서 조사를 벌인 경찰은 민주당이 문제 삼은 대선 관련 게시물을 그 여직원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적이 없다는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대선이 끝나고 나서 경찰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국정원 여직원은 이명박 정권을 옹호하고 북한과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게시물을 오늘의 유머에 무려 91건이나 올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국정원 직원과 일베 회원이 손잡고 정치 관련 게시물들을 인터넷 사이트에 계속 퍼다 날랐다는 보도. (출처: JTBC)

더욱 놀라운 사실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 ‘대북 심리 정보국’이라는 별도의 부서까지 만들어가며, ‘오늘의 유머’와 ‘보배드림’과 ‘뽐뿌닷컴’ 같은 국내의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다 국정원 여직원이 한 것과 똑같은 일을 집중적으로 벌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부 기관이 개입된 정치 공작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국정원 여직원은 일베의 회원인 이모 씨와 함께 일베의 글을 오늘의 유머에 여러 번 인용했으며, 자신이 만든 아이디를 5개나 빌려주었다고 합니다(2013년 5월 6일 JTBC 방송 내용). 이렇게 보면 일베가 단순한 유머 사이트로 머물지 않고, 국정원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보수 세력과 손잡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저 혼자만의 염려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올해 2월 28일, 국정원은 일베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극우 논객인 변희재 씨를 초청해 국정원 직원들을 상대로 종북주의자를 비판하는 내용의 강연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또한 5월 24일, 국정원은 일베 회원들을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고 상품권과 시계를 선물하는 행사까지 열었습니다.

국정원에서 초청 전화가 왔다고 말하는 일베 회원


일각에서는 일베의 서버가 디도스 트래픽이 40기가까지 초과되었는데도 이를 막아냈다는 점을 들어서 혹시 일베가 국정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서 운영되고 있는 사이트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일베가 비단 18대 대통령 선거만이 아닌, 한국 보수 세력과 알게 모르게 결탁하여 앞으로 투표권을 갖게 될 젊은 유권자들을 상대로 민주화 세력을 폄훼하고 박정희와 전두환 등 독재자로 상징되는 보수 세력을 향한 지지를 심어주려는 작업을 인터넷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죠.

대표적인 극우 논객인 조갑제 씨는 일베 회원들이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을 도운 1등 공신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일베 회원들도 자신들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자랑스러워하는 걸 보면, 일베가 정치적 사이트라는 의문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최근 5.18 광주민주화항쟁 기념일을 전후로 종편에서 보도한 5.18 광주 북한군 개입설을 확산하는 일베와 달리 조갑제닷컴에서 이를 허구라고 주장하는 글을 올린 이후 조갑제 씨를 일베 회원들이 종북좌파로 규정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일베에 대한 최종 평가

처음에는 그저 저질 유머 사이트로 출발한 일베는 어느새 하루 접속자 50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방문자 수를 자랑하는 거대 사이트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일베가 우리 사회에 끼친 악영향은 너무나 커서, 이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언론이 일베를 부정적으로 다루는 상황입니다.

2012년 5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일베 회원들이 보인 태도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들은 성추행 의혹을 일으켜 나라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피해자의 마음에 상처를 준 윤창중 전 대변인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성추행 의혹 사실을 처음 폭로한 사이트인 미시USA가 “친노종북 사이트”라는 엉뚱한 음모론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베 회원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뿐이었습니다.

스스로 일베 회원임을 입증한 논객 변희재 씨가 제기한 종북 발언에 발끈한 미시 USA 회원들.

한국사회에서 사회, 경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심리적 자존감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베 현상을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의 현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문화평론가 최영일 씨는 “일베의 유해성을 놓고 적대시해서 때려잡는다고 사라질 문제가 아니다”며 “성매매를 단속한다고 없어지지 않듯이 일종의 사회심리적인 집단현상이 있는데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현상을 덮어버리면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평가와 염려와 비난에도 일베는 존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그저 재미삼아서 일베를 하는 건데 뭐가 나쁘냐?” 하고 의문을 품는 분이 혹시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재미삼아 한 일이라고 해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재미삼아 고층 아파트에서 던진 돌에 사람이 맞아 죽고, 재미삼아 불을 질렀다가 사람이 타죽는다면 그저 재미로 한 일이라고 넘길 일은 아니니까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비방성 발언과 인격모독 등의 행위도 정도를 벗어나면 그저 넘길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인격을 현저히 폄훼하는 행위에 대한 자정능력을 잃어버리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공유했으면 합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오늘부터 한 달에 세 번, 《르네상스의 어둠》의 저자인 도현신 씨가 기고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꼭지는 우리가 잘 몰랐던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기도 하고,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을 짚어내기도 하고, 미래를 점치는 전망을 싣기도 합니다.

첫 기사로 개성공단 폐쇄를 바라보며 남북한 평화 공존 체제를 구축하자는 주장을 담은 글을 싣습니다. 개성공단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6.15공동선언을 이끌어낸 이후 2000년 8월 22일 남측의 현대아산(주)과 북측의 아태, 민경련 간에 '개성공업지구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여 시작된 남북교류협력 사업입니다. 

(출처: 통일부)

개성공단은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토지와 인력이 결합하여 마련된 역사적인 협력의 장이었습니다. 2004년 발표된 당초 계획으로는, 2011년까지 총 2000만 평의 부지 위에 800만 평의 공단과 1200만 평의 배후도시를 계획하고, 70만 명의 북한 근로자가 고용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처음 계획처럼 개발이 진전되지는 않았으나, 개성공단의 근로자 현황을 보면 북측 근로자가 2005년(6000명), 2006년(1만 1000명), 2007년(2만 2000명), 2008년(3만 8000명), 2009년(4만 2000명), 2010년(4만 6000명), 2011년(4만 9000명) 등이었고, 2012년 1월에 드디어 5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남측 근로자는 700명~80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싸늘해진 남북관계로 동북아 평화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김정은 체제하에서 도발적인 대남전략의 극단적 조치가 개성공단 폐쇄였으며, 이에 우리 정부는 인력 철수라는 강경한 대응을 고수했습니다. 개성공단 철수가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야기할까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오늘은 이 문제에 관해 살펴봅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생각비행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개성공단이 폐쇄되기까지

요즘은 다소 조용하지만, 불과 4월 말까지 남북관계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개성공단에 파견된 우리 측 근로자들이 북한에 인질로 잡히면 특전사를 동원해서 인질 구출 작전에 나서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마치 북한이 당장에라도 근로자들을 인질로 잡고 남한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위기감을 조성했습니다. 각종 언론들도 덩달아 앞장서서 가설을 마구 발표하여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결국 부랴부랴 개성공단 근로자들은 귀국했고, 그렇게 해서 2007년부터 운영되었던 개성공단은 현재 잠정 중단, 사실상 폐업한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근로자가 철수했다고 밝힌 개성공단. (출처: ytn)

물론 북한 측도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죠. 2013년 2월, 북한은 3차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했으며, 무수단 미사일을 동해에 배치해서 언제든지 어디로든 쏴버리겠다고 위협까지 했습니다. 여기에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합동 군사 훈련을 재개하고, 유엔을 통해 대북 제재를 강화하라고 미국과 중국에 호소했습니다.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을 격추시키기 위해 도쿄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했으며, 군사대국화를 외치는 아베 신조가 70퍼센트라는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교전권 금지를 명시한 일본의 평화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렇게 해 2월부터 5월초까지의 북한 관련 뉴스 보도만 보고 있으면, 당장 북한 때문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위기감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북한의 붕괴설만 믿고 안이했던 정부?

지금은 아니지만, 만에 하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누가 승자가 되든 간에, 그 피해를 고스란히 우리가 떠안아야 합니다. 북한의 장사정포와 화학무기에 의해 수도 서울이 제일 먼저 타격을 입을 것이고, 최소한 수백만 명의 사람이 죽거나 다칠 것입니다. 그리고 남한에 투자된 외국 자본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당분간은 돌아오지 않겠지요. 세상에 어느 누가 전쟁이 나서 모든 산업 기반이 파괴되고,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위험한 나라에 귀중한 돈을 투자하고 싶겠습니까? 이 땅에서 다시 전쟁이 난다면 그것은 한국의 모든 사회 전반이 1950년대, 전 세계에서 제일 가난했던 시절로 후퇴함을 우리 모두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태연하다 못해 너무나 안이합니다. 북한이 강경 발언을 하면 그에 맞서 강경 발언을 날리고, 북한이 군사 행동을 하면 그에 맞서 군사 행동을 하고, 북한이 조용하면 아무런 말이나 행동도 하지 않고 조용합니다. 이건 꼭 사이가 나쁜 유치원 아이들이 서로를 노려보며 눈싸움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먼저 나서서 북한과 대화를 해보겠다거나, 아니면 남북 간의 위기 상황을 스스로 해결해보겠다는 움직임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남북문제의 당사자가 우리인 만큼, 결국 우리가 스스로 적극 나서야 하는데, 왜 제3자인 미국이나 유엔에 매달리면서 정작 우리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각에서는 위키리크스 때문이라는 주장을 폅니다. 지난 2010년 2월 17일, 천영우 전 외교통상부 차관이 캐슬린 스티븐슨 주한 미국대사에게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 무너졌고, 김정일 사후 3년 이내에 붕괴된다. 중국도 한국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는 것을 내심 원하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이 내용이 전 세계 외교관들끼리의 대화를 담은 위키리크스에 실려 있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이죠.

정말로 한국 정부가 천영우 전 차관의 말을 그대로 믿고, 북한이 저절로 무너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김정일은 2011년 12월 17일에 죽었으니, 3년이라면 2014년인데 그때 가서 북한이 붕괴된다고 철석같이 믿는 걸까요?
 
저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보이는 무대책, 무대응, 막가파식 태도를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개성공단 폐쇄만 해도 그렇습니다. 2013년 4월 9일, 청와대는 “개성공단이 폐쇄할 경우, 어떤 대책도 없고 그런 것을 마련해 오지도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개성공단 폐쇄의 책임을 모두 북한 탓이라고 돌리면서 말이죠.

천영우 차관이 미국 대사에게 한 북한의 붕괴 임박설, (출처: 쿠키뉴스)

말하자면 한국 정부가 북한을 대하는 언행들은 조만간 북한이 붕괴한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벌인 일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얼마 안 가 곧 망할 집단(헌법상 북한도 한국의 영토로 간주되기 때문에, 한국의 보수 세력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테러 단체로 봅니다)과 무슨 대화나 협상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북한이 곧 붕괴한다는 주장은 이번에 처음 나온 이야기가 아닙니다. 1994년, 김일성이 죽으면 북한이 바로 망한다는 이야기가 거의 2~3년 동안 끊임없이 나돌았습니다. 그래서 김일성의 사망 소식이 확인되자, 일부에서 예의상 북한에 조문이라도 가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말들이 나오자 보수 여당과 언론들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면서 조문 이야기를 꺼낸 사람들을 빨갱이 취급하며 탄압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없이는 못 사는 나라다. 김일성이 죽었으니 이제 북한은 곧 망한다. 그러니 망할 나라인 북한에 뭐 하러 조문을 보내느냐?” 하는 믿음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서점가에서도 한동안 북한이 곧 망하고 남한에 흡수 통일된다는 예측과 전망을 담은 책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김일성 사후 19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북한은 붕괴하지 않고 건재합니다. 김정일이 죽은 지 이제 1년 하고도 5개월이 지났지만, 북한은 건재합니다. 대체 전문가란 사람들은 무엇을 근거로 북한이 정확히 언제 망한다고 자신만만하게 떠들었던 것일까요? 혹시 그들의 말은 그저 일방적인 소망만을 담은 망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 과연 좋은 일일까?

걸핏하면 전쟁 위협과 공갈, 핵실험을 일삼는 위험한 집단인 북한이 붕괴하면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북한이 붕괴한다면 우리에게 좋기만 한 일이 아닙니다. 북한이 무너진다면, 극소수 상류층을 제외한 2000만에 달하는 대부분의 북한 국민은 어떻게 될까요? 그나마 개미 눈물만큼이라도 식량 배급을 해주던 국가가 사라졌으니, 누구도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과연 가만히 앉아서 몽땅 굶어죽기를 기다릴까요? 아닐 겁니다. 국경선을 마주한 중국이나 남한으로 넘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식량을 구하려 들지 않을까요?
 
우리가 그들에게 지원을 해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누군가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입으로만 한민족, 통일을 외칠 뿐 정작 진심으로 그들을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1997년 5월 15일, 주간지 《한겨레 21》이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기사에 따르면 응답한 아이들의 절반이 “통일되면 거지들이 몰려오니까 싫다!” 하고 답했답니다. 요즘은 “통일이 되면 우리가 북한을 먹여 살리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싫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1997년의 상황과 다를 바 없습니다. 즉 우리보다 못 사는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리거나 통일을 하는 데 내 돈을 쓰기 싫다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 겁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탈북자는 약 3만 명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놓인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2011년 7월 15일, 《연합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탈북자 대부분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이유는 남한 주민이 탈북자들을 무능하고 게으른 사람들로 여겨 차별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이보다 앞선 2006년 7월 17일, 《월간중앙》 8월호가 국내 거주 탈북자 2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는 더욱 놀라웠습니다. 응답한 탈북자 중 무려 70퍼센트가 미국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으며, 그중 54퍼센트는 차라리 북한으로 가고 싶다는 말까지 했답니다. 공산주의 사회에 살았던 북한 주민은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극단적인 생존 경쟁이 벌어지는 남한 사회에 제대로 적응을 못 할 뿐더러,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부담을 느끼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가난에 시달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탈북자들이 인권과 임금 차별을 받는다는 보도. (출처: mbn 뉴스)

이렇게 국내에 거주하는 3만 명의 탈북자도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하면서, 그보다 훨씬 많은 2000만 명의 굶주린 북한 난민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한꺼번에 넘어온다면, 과연 우리 사회가 이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들을 먹여 살리겠다고 순순히 돈을 풀까요? 저는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탈북자들이 못 넘어오게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룰 것입니다. 그러면 북한 주민이 가만히 있을까요?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지난 60년 넘게 무기고에 쌓아 둔 무기를 꺼내들고 식량과 돈을 내놓으라고 위협할 것입니다. 이런 시나리오가 예상되기에 북한 정권이 당장 붕괴한들, 우리가 얻을 이익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북한과 대화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박근혜 대통령

사실, 북한과의 대화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정부가 그러겠다고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서슬 퍼런 독재 정권이자 당장 북한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살던 박정희 시대인 1972년 7월 4일, 남한 정부의 특사가 되어 북한으로 파견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김일성을 직접 만나 회담한 뒤 남북 간의 평화로운 통일을 약속하는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남북공동성명서를 발표하는 이후락 중정부장. (출처: 동아일보)

요즘 북한과의 대화 제의를 두고 “북한은 정신 나간 미치광이 집단인데, 뭐 하러 대화를 하느냐? 다 필요 없다!” 하며 일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을 뿔 난 악마로, 북한을 무자비한 살인마 집단으로 여기던 상황인 1972년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심복인 이후락을 보내 김일성 주석과 대화하게 했습니다. 박정희가 김일성을 좋아하고 존경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아닙니다. 김일성은 1968년 1월 21일, 김신조가 포함된 특수 부대를 보내 박정희를 죽이도록 지시한 바 있습니다. 사적으로 보면 김일성은 박정희의 철천지원수입니다.

그런데도 박정희는 4년 후에 자신의 오른팔을 보내 김일성과 대화하게 했습니다. 김일성이 지금 북한의 통치자인 김정은보다 더 이성적이고 믿을 만한 사람이어서 그랬던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박정희는 남북한의 대화라는 큰 대의를 위해서, 자신의 사소한 사적인 감정은 접어두기로 한 것입니다. 수십 년이 지난 시점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취임한 박근혜는 “북한에 신뢰를 통한 대화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취임한 지 이제 3개월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지만 여전히 북한과 대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박근혜의 지지층은 반공 정서를 기본으로 깐 보수 세력입니다. 이들은 북한을 “미치광이 살인마 집단”이라고 맹목적으로 증오하며, 그들과 어떠한 대화나 협상도 해선 안 되고 그들이 저절로 붕괴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굶주린 북한 주민을 위해 식량이나 돈을 지원하는 것도 반대할 겁니다. 만약 북한이 정말로 그들의 소망대로 붕괴한다면, 한국군 전 병력을 동원해서 휴전선을 막고, 북한 주민이 자기들 땅 안에 갇혀서 전부 굶어죽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주장할 겁니다. 북한 주민 먹이는 데 자기들 돈 쓰는 걸, 아까워하니까요.)

만약 이런 지지층을 두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진심으로 “북한과 대화에 나서겠습니다. 남북 간에 두 번 다시 전쟁이 벌어져서는 안 됩니다. 김정은 위원장, 우리 부디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평화를 위해 노력합시다.” 하고 공식 석상에서 말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아마 당장에 박근혜를 두고 “어찌 감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비굴하게 저 북한 빨갱이들한테 애걸을 할 수 있느냐?” 하고 항의하는 여론이 빗발칠 겁니다.

실제로 2013년 4월 11일 밤, 박근혜가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고 제안만 했는데도 보수층의 여론은 격분했습니다. 한국의 보수 언론을 대표하는 《조선일보》는 다음 날인 12일, 신문 사설에 “북한과의 대화는 필요 없다!”는 뉘앙스가 담긴 글을 실었고, 자타가 공인하는 보수 언론인인 조갑제도 자신의 홈페이지인 <조갑제닷컴>에 “북한과의 대화는 그들의 공갈에 굴복하는 것이다!” 하며 규탄했습니다. 이런 주변의 반발에 겁을 먹었는지,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북한과의 대화 제의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보수층의 반발 이외에도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당분간 대북 강경책을 쓸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취임 초기부터 추천한 인사 대부분이 부정부패와 공직자 비리에 연루되어 줄줄이 낙마하는 바람에 지지율이 40퍼센트 대까지 추락하는 상황을 경험한 바 있는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자신과 정권의 지지율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대북 강경책을 펴서 반공 보수 계층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했을 법도 합니다. 또 실제로 그 판단이 옳았죠. 연일 대북 강경론을 펼치자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제 60퍼센트 대까지 올라갈 정도로 안정세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정권의 보신만을 위해 무책임한 대북 강경책을 고집하는 모습이 불안해 보이는 건 저뿐일까요? 반공 보수 계층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북한과 치킨 게임을 벌이는 식으로 대북 강경책에 몰두하다가 한반도 긴장 국면이 더욱 악화되어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개성공단 철수, 필연적이었다

결국 5월 12일 현재,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노동자 전원이 귀국하고 공단 운영은 잠정 중단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성공단의 사실상 폐쇄를 두고 국민의 약 3분의 2 정도가 잘된 일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북한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좋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 면에서 시사평론가 진중권이 2013년 5월 6일 자신의 트위터에 쓴 글들을 보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상황이라면 개성공단은 존속할 가치가 없습니다. 대다수 국민이 개성공단의 운영을 원치 않고, 계속 공장들을 돌려봐야 “빨갱이들 돈 대주는데, 뭐 하러 공장을 하느냐?” 하고 차가운 눈으로 본다면 개성공단을 만든 근본 목적인 “경제협력을 통한 남북 간 갈등 완화와 신뢰 구축”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된 셈인데, 공단을 운영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겠죠.

우리는 아직도 통일의 준비가 안 되었다고 주장하는 진중권 씨 (출처: 진중권 트위터)

또 박근혜 정부의 취임사에서 밝힌 “북한과의 신뢰 구축”이라는 목표가 북한이라는 집단 자체를 “비이성적인 미치광이 집단”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부터 점검해봐야 합니다. 진중권 씨가 트위터에서 밝힌 대로, 북한을 ‘비이성적인 미치광이 집단’으로 규정하면서, 어떻게 북한을 신뢰하고 대화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미친 사람을 믿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니 북한을 정말로 대화 상대로 생각한다면, 일단 그들을 비이성적이고 미치광이 집단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북한을 정말로 비이성적이고 미치광이 집단이라고 여기고 싶다면, 그들과 아예 대화하려 하거나 신뢰하지 말아야 말의 맥락이 맞겠지요.

통일은 안 되도 좋으니, 우선 평화 공존부터 이루자 

악화될 대로 악화된 지금 상황에서 여전히 통일을 향한 꿈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현재 국면을 잘 넘기고, 다시 북한과 대화 및 협상에 나서 보자는 의견을 견지한 이들이죠. 얼마 전 미국을 방문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DMZ(비무장지대)에 평화공원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DMZ 평화공원은 북한과의 신뢰 관계가 구축되지 않는 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만에 하나 어찌어찌해서 DMZ 평화공원이 조성된다고 해도, 금강산 관광 사업이나 개성공단이 끝내 실패로 돌아간 과정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큽니다. 남북한의 강경 세력은 서로 간의 적대적인 대치 상황이 해소되기를 결코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남북한이 영원히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대치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자기들의 입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남북한의 평화통일이라는 대의에는 저도 찬성합니다. 그러나 지금 통일을 이야기하기에는 남북한은 너무나 멀리 왔습니다. 무엇보다 남한과 북한에서 모두 강경파가 집권한 현 시국에서 통일은 은하계로 가는 것만큼이나 멀고 험난해졌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차라리 통일은 안 해도 좋으니, 남한과 북한 두 나라가 서로에 대한 적대적인 대치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 공존으로만 나아가도 대단한 성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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