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수의 대기업 미쓰비시가 종전 70주년을 맞아 강제징용 노동자에게 공식 사과를 표명했습니다. 왠일이냐고요? 아쉽게도 대상이 우리나라가 아닙니다. 미국입니다. AP통신은 미국 유대인 인권단체 시몬 비젠탈 센터에 따르면 미쓰비시 머티리얼의 기무라 히카루 최고 중역을 비롯한 대표단이 이번 주말 미국에서 강제징용 피해자인 94세의 제임스 머피를 만나 공식 사과할 예정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2009년과 2010년에 미국인을 강제징용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한 바 있습니다만, 전범 기업의 공식 사과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1만 2000여 명에 달하는 미군 포로가 일본으로 이송되어 탄광, 공장 등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그중 10퍼센트 정도가 사망했습니다. 이에 미쓰비시 대표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900여 명의 미군 포로를 네 곳에서 강제노역시킨 데 대해 사과의 뜻을 표명할 예정이며, 이 공식 사과와 별도로 버지니아 서부의 웰스버그 박물관을 찾아 미군 포로를 추모하고 교육 프로그램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는 행동은 환영해야 하겠지만, 강대국인 미국에만 고개를 조아릴 뿐 다른 강제노역 피해국들을 나몰라라 하는 일본의 태도가 문제입니다. 이번 공식 사과에 나선 미쓰비시가 훨씬 더 많은 한국인을 강제노역에 동원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중국인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피해자에 대해 미쓰비시가 공식적으로 사과하거나 배상했다고 알려진 사례는 없습니다. 아무리 국제사회의 현실이 비정하다지만 노골적으로 강자 앞에 수그리고 약자 앞에 고개를 빳빳이 드는 일본은 역사를 바로잡을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군함도, '강제노역' 번역을 둘러싼 논란


이런 일본의 이중적 태도와 우리나라 정부의 무능함이 결합되어 불거진 문제가 있습니다. 메이지 산업혁명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논란이었죠. 하시마 섬이라고 불리는 무인도는 일명 군함도(군칸지마)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섬은 일본 입장에서는 메이지 시기부터 시작된 근대화 산업시설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어서 매우 유명합니다. 

 

질 좋은 석탄이 많아 일본의 근대화를 지지해온 탄광 중 하나가 이 섬에 있습니다. 또 이때 지은 집합주택의 잔존물은 다이쇼 시대부터 쇼와 시대에 이르기까지 걸쳐 있어 영화나 드라마 등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를 기념하고 지역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해왔습니다.

출처 - 문화일보

 

문제는 이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결정된 하시마 섬(군함도) 탄광과 나가사키 조선소는 조선인 수만 명이 강제노역에 시달린 대표적인 역사의 현장이라는 사실입니다. 강제노역에 동원된 미국 포로의 몇 배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조선인이 강제노역에 시달린 것이죠. 이런 역사적 사실 때문에 일본은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에 무사히 등재하기 위해 대표적인 피해국인 우리나라의 양해와 협조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우리나라는 당시 군함도를 비롯한 곳곳에서 한국인이 강제노역을 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명시하고 징용시설 정보센터를 설치할 것 등을 요구했습니다. 한편 공주, 부여, 익산의 백제시대 대표 유산 8군데를 묶은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일본의 협조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여러 차례 의견 충돌을 보이기도 했으나 우리나라가 요구한 ‘forced labour’라는 표현을 ‘forced to work’로 완화하는 데 양국이 합의하면서 협상이 타결되었습니다. 이로써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시설과 한국의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둘 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죠.

 

출처 - 문화일보



그런데 문제는 그 직후에 불거졌습니다. 일본이 이번 등재로 강제노역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며 발뺌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토 구니 주 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세계유산 위에서 일본 정부 성명을 발표하며 "… there were a large number of Koreans and others who were brought against their will and forced to work under harsh conditions in the 1940s at some of the sites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를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로 노역했다”로 해석했습니다. 'forced to work'를 강제노동, 강제노역으로 해석한 겁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 문구를 단순하게 수동형인 '働かされた(일하게 됐다)'로 물타기식 해석을 했습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강제노역이 아니라며 군색한 변명을 한 셈입니다. 더구나 아베 총리는 강제 노동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 대해 한국 정부의 이의 제기가 없었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출처 - 세계일보


역사적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한 처사에 대해 우리나라 정부의 대응이 너무 미온적이라 심히 우려됩니다.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강제노역 사실이 포함됐다며 자화자찬하던 외교부는 일본의 물타기 해석에 대해 영문이 원본이니 그것만 보면 된다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우리나라 외교부가 맞나 싶은 지점인데요, 역사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문서의 표현을 왜곡한 사례가 일본 외에도 있긴 합니다. 1946년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소 판결문 가운데 강제노동 피해 서술에 "were forced to work"가 나오며 2012년 독일/그리스 사건과 관련해 국제사법재판소 판결문에도 강제노동 피해 서술에 "he was forced to work"란 표현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를 변명으로 내세우기엔 우리 외교부의 허술함이 많이 눈에 띕니다.

 

출처 - 연합뉴스


우선 강제노역의 주체가 일본으로 되어 있지 일본 정부라고 명확히 표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일본 정부 차원의 전쟁 책임을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또 외교부는 등재문 주석에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측 대표의 발언을 주목한다”는 표현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일본의 강제노역 사실을 등재 결정문에 연계시켰다고 하지만, 이 발언을 찾기 위해서는 주석을 찾은 뒤 다시 참고문서 번호를 확인하고 그 문서를 읽어봐야 비로소 강제노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복잡하게 찾아들어가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으로 과연 일본 정부에 의한 우리나라 국민의 강제노역 사실을 국제사회에 제대로 알릴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일본이 군함도를 2009년부터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등록하면서 준비한 사실을 우리나라 정부가 뒤늦게 파악했기에 초기 대응에 실패했고 외교적으로 내내 끌려다녔다는 게 문제의 발단이었습니다.


한일 간 막판 합의를 통해 강제노역 사실을 알리는 정보센터 개설 등을 전제로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이뤄졌지만, 이것의 이행 여부는 일본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우리나라나 유네스코가 이를 강제하거나 이행 여부를 감시할 안전장치가 전혀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외교부는 위원회 등을 통해 일본에 압력을 행사하겠다는 식의 막연한 대답과 함께 후속조치 이행 여부가 일본 양심의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우리 외교부의 역사 현실 인식이 얼마나 낮은 수준인지가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유엔에서 위안부 추모의 날을 지정하려는 데 우리나라 외교부가 나서서 반대한 사실이 드러났고, 주일한국대사관 홈페이지에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다고 표기되어 있었죠. 누적된 정보를 업데이트하다가 적절치 못한 표현이 있었는데, 보완할 예정이라는 외교부 장관의 해명이 있었지만, 우리나라 대일 외교의 허술함은 그간 여기저기서 드러났습니다. 한마디로 역사 인식의 부재입니다. 외교부가 친일부라는 누리꾼들의 비판을 그냥 넘길 일이 아닐 듯합니다.

 

출처 - 세계일보


상식적인 사죄와 실제 피해자들의 보상은 안중에도 없이 한일국교 50주년, 종전 70주년을 앞두고 치적 쌓기에 몰두하는 한일 양국 정상의 속내를 들여다본 것 같아 심기가 불편합니다.



FTA 오역 사태로 비웃음 산 외교부, 일본 폭주 제대로 경계해야



출처 - 한겨레


한-EU FTA는 2009년 7월 협상 타결 후 2011년 5월 국회 비준을 거쳤습니다. 1년 10개월이나 걸린 셈입니다. 한-EU FTA 당시 외교통상부가 제출한 한-EU FTA 한글본은 아주 기초적인 용어에 대해서도 황당할 정도의 오역 사례가 넘쳐났습니다. 정부가 국회에 낸 비준 동의안을 외교부 스스로 두 차례나 철회해 결국 국회에 세 번이나 협정문 한글본을 제출한 셈입니다. 국내 구직자들한테 제일 먼저 요구하는 바가 영어 스펙인 대한민국이 아니던가요? 그런데 그 누구보다 외국어 능력이 출중해야 할 외교부의 영어 실력이 이 모양 이 꼴이니 앞으로 외교부가 번역한 내용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번 세계문화유산 번역을 둘러싼 한일 간 논란이 참으로 우려스러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출처 – 민중의 소리


일본의 아베 정권은 종전 70주년을 한 달 앞둔 지난 7월 15일, 압도적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집단자위권과 관련한 안보법안, 즉 전쟁을 가능케 하는 법안을 강행 처리했습니다. 한편 한일 간 위안부 문제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으며 현재 협상의 마지막 단계라고 얘기하던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이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가 아니라면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일본과 한국 정부가 놀라운 찰떡궁합을 선보이며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출처 - 경향신문

 

본격적으로 시작된 일본의 폭주, 무능력한 한국 정부... 이런 시국에 터져 나온 국정원의 불법 도·감청 사태를 보노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참으로 암울해보입니다. 시민이 깨어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뉴욕엔 태풍이 몰아친다... 이는 '나비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예입니다. 사소한 사건 하나가 엄청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최근 유럽발 날갯짓이 극동아시아에 태풍을 유발했습니다. 지난 6일 이탈리아의 업체 해킹팀이 해킹을 당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말이 좀 이상하지요? 간단히 말하자면 정부나 기관의 의뢰를 받아 해킹을 해주던 업체가 누군가로부터 해킹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 같았던 지구 반대편 회사의 해킹 소식이 일주일도 안 되어 대한민국의 국정원을 핵으로 한 무시무시한 태풍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해킹팀에서 유출된 내부 자료의 양은 무려 400기가 바이트에 달합니다. 여기엔 회사의 내부 문서, 소스코드, 전자우편 기록, 직원 컴퓨터의 화면 스크린샷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이 자료가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에 공개되었죠.

 

 

위키리크스의 폭로, 우리 사회의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다

 

생각비행은 위키리크스와 연관된 기사를 자주 소개했습니다. 위키리크스가 대한민국 썩은 정계의 비리를 폭로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2010년 11월 28일 위키리크스는 25만여 건에 달하는 미국 기밀 외교전문을 폭로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2007년 한국의 대선과 관련된 보고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서 우리 사회에 파문을 남겼습니다. 폭로된 외교전문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속였음이 백일하에 드러났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미국 측과 만나 쇠고기 시장을 조속히 개방하겠다고 약속했고,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은 쇠고기 수입 재개를 6월 재보선 이후로 연기해 달라는 요청까지 한 사실도 드러났지요.   

 

2011년 5월 25일 서울디지털포럼에서 <위키리크스 대 저널리즘>이라는 제목으로 인상 깊은 발표가 있었습니다. 생각비행이 직접 들은 내용을 정리해서 기사로 쓴 적도 있습니다. 이 발표에서 《슈피겔》 기자 마르셀 로젠바흐는 폭로 플랫폼이 미디어와 윈-윈 모델이 될 수 있다면서 폭로 사이트들이 기존의 미디어를 보완하거나 향상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위키리크스는 기존 언론이 알아내지 못하는 정보를 제공해왔고, 이는 기존 언론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냄으로써 '탐사 저널리즘'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은 생각비행의 예전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자료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번에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해킹팀의 자료는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위키리크스 해킹팀 자료 다운로드 : https://wikileaks.org/hackingteam/emails


해킹팀은 해킹을 당한 직후 공격자들과 대중에게 자료를 퍼뜨리지 마라, 공격자들이 우리 회사에 관해 주장하는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라며 사태 수습에 열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사태는 그들의 통제 범위를 까마득히 넘어버렸습니다. 이틀 후인 8일 해킹팀 대변인은 6일 해킹당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들의 고객인 정부와 정부기관에 판매한 기술에 접근할 통제력을 잃은 상태이며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한겨레


해킹된 해킹팀의 자료에는 이 회사에서 해킹 장비를 구매한 FBI, KNB 등등 세계 여러 정부 및 정보기관 목록과 구매 대금 영수증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5163부대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소프트웨어 구매와 유지, 보수 등으로 6차례에 걸쳐 8억 8000만 원을 지불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시피 포털 사이트 댓글부터 SNS까지 광범위하게 대선 개입을 해 유죄를 선고받은 국정원의 대외용 이름이 바로 5163부대입니다.



박정희에 충성을 맹세한 국정원의 대외용 이름 5163부대

 

출처 – 오마이뉴스


지난 2013년 《시사in》의 취재에 의하면 자주 등장한 국정원의 대외용 이름은 7452부대와 5163부대였습니다. 어느 것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이 깊습니다. 북파 공작원도 한때 중앙정보부 5163부대 소속이었는데요, 5163이란 5.16 쿠데타 때 박정희가 새벽 3시에 한강철교를 넘었다는 데서 따온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7452부대는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전 주석이 발표한 7.4 남북공동성명과 그 밑 준비를 위해 5월 2일 처음으로 판문점을 넘은 중앙정보부 이후락을 기념한 숫자라고 하죠.

 

국정원의 대외용 이름에 담긴 뜻을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독재를 꾀하다 죽은 지 30년이 넘도록 제정신이 아니었던 국정원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더구나 대선 개입을 해서라도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려 했던 국정원의 지난 행적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그들의 정신 상태를 약간은 이해할 여지가 생깁니다. 이런 국정원(5163부대)이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고도의 해킹 프로그램 RCS를 국민의 혈세 8억 8000만 원을 주고 샀습니다. 해킹 자료에는 구매 영수증까지 포함되어 있어 국정원도 이를 부인할 수 없었죠.



RCS, 당신의 모든 것을 감시한다


국정원이 대리인으로 내세운 나나테크를 통해 도입한 RCS는 원격제어시스템으로 스파이웨어 기반으로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을 감염시키고 감시하는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해킹팀이 RCS를 특정 사용자들의 암호화된 통신까지 모조리 감시할 수 있다고 광고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정말로 그렇다면 감시의 광범위함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는 MS 윈도나 구글 안드로이드는 물론 상대적으로 보안이 좋다고 알려졌던 애플의 iOS, 리눅스뿐 아니라 블랙베리, 심비안 등 거의 모든 PC와 스마트폰 운영체제 감시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글 지메일을 쓰거나 MS의 스카이프로 통화하거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를 할 때, 아무리 암호화를 해두었다고 하더라도 키보드 입력, 음성통화, 오디오, 비디오 등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 - 한겨레


유출된 해킹팀의 자료를 분석한 언론의 보도를 들여다보면 국정원이 얼마나 꼼꼼하게 감시에 공을 들였는지가 드러납니다. 5163부대가 나나테크를 통해 이탈리아 해킹팀에 카카오톡 해킹 기술을 문의했다는 문서 내용이 공개된 가운데 카카오톡에서 사이버 망명한 메신저 중 인기가 높던 바이버에 관해서도 해킹 기술을 문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바이버는 안철수, 유병언, 황교안 등이 사용했을 뿐 아니라 의원이나 비서관이 많이 쓰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했죠. 바이버가 텔레그램처럼 본사가 외국에 있고 도·감청 가능성이 작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기에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당시 이탈리아 해킹팀은 R&D팀에서 검토 결과 RCS 다음 버전부터 요청한 기능을 쓸 수 있을 거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올해 초처럼 카카오톡 사태를 우려해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을 한들 국정원이 타깃으로 지정하는 이상 감시에서 원천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이 되는 실로 무서운 이야깁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국정원은 한술 더 떠서 R&D를 위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인 삼성 갤럭시S 시리즈를 비롯, 스마트폰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직접 해킹팀에 보내 분석을 의뢰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2013년엔 갤럭시S3를 직접 보냈고, 지난달에는 매우 중요한 기능 요청이라며 신제품인 갤럭시S6를 공격할 수 있는 기능을 요구하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국정원은 전 세계에 발매된 갤럭시 S3 중에서도 굳이 국내에 발매된 모델을 보냈다고 합니다. 통신사별로 기본 탑재 어플 등이 상이하기 때문에 해킹을 위한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대상이 되는 스마트폰을 직접 분석하는 편이 좋기 때문이죠. 이는 국정원의 변명과 달리 RCS를 국내 감시용으로 썼다는 방증입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국정원과 나나테크, 그리고 이탈리아 해킹팀의 이메일 내용만 봐도 국정원이 스마트폰 하드웨어부터 백신 프로그램, 카카오톡 등 메신저 어플 같은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된 감시 기술을 끊임없이 요구해왔음이 드러난 것이죠.  


더구나 해킹팀의 해킹 공격 기술을 이용한 한국 국내 공격이 실제로 이루어진 정황도 밝혀지고 있습니다. 2013년 국정원의 요청을 받아 이탈리아 해킹팀은 공격코드를 삽입한 ‘천안함 문의(Cheonan-ham inquiry)’라는 제목의 워드 파일을 만들어 준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워드 파일을 받아 연 사용자는 해킹팀의 악성코드에 감염되어 모든 것을 감시당하게 되는 겁니다. 이는 국정원이 국내 이슈 전반에 걸쳐 무차별적인 도·감청 및 감시 활동을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국정원의 치졸한 변명, RCS는 사용했지만 감시는 하지 않았다?


지난 1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탈리아 해킹팀에서 산 스파이웨어 RCS를 실제 사용한 적이 있다고 시인했습니다. 하지만 치졸한 변명을 하기 시작합니다. 국정원은 RCS를 민간인 사찰이 아닌 대공수사용으로만 썼다고 합니다. 이는 죄 없는 시민을 간첩으로 조작하기까지 하는 국정원의 행태를 볼 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RCS는 모든 행위를 감시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에 법이 정한 압수수색의 범위를 벗어날 가능성이 큰 탓에 이런 수사방식은 설사 영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위법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큽니다. 현행 정보통신망법 48조와 49조에 의해서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감청 소프트웨어를 심고 활용하는 것은 불법이니까요.

 

출처 - 연합뉴스


국가의 안위를 위해 백신 프로그램 같은 역할을 담당해야 할 국정원이 국가의 면역체계를 망가뜨리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국민을 사찰하고 감시하며 스스로 컴퓨터의 악성코드와 똑같은 존재로 타락한 것이죠. 생각비행은 <메르스 정국에 SNS 감청법 발의한 새누리당>이란 기사에서 지난 6월 1일 새누리당 의원들이 감청 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이른바 SNS감청법을 발의한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 유출된 해킹팀 자료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미루어볼 때 새누리당의 SNS감청법 발의와 국정원의 미친 짓거리 사이에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군요.   

 

새정치민주연합 송호창 의원에 의하면 미래창조과학부가 인가한 감청 장비 현황과 기관별 보유 감청장비 사이에 70여 대의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를 신고할 의무가 없는 국정원이 이 70여 대를 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주인을 무는 개라면 마땅히 재갈을 물려야 하겠지요. 국민을 위법 감시한 국정원은 단죄함이 마땅합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삼아 도·감청에서 자유로운 국민의 사생활을 보장함과 아울러 국정원 활동을 법으로 규제할 제대로 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해킹 프로그램으로 국민을 사찰했을 가능성이 커지자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13일 당 차원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규명에 나섰습니다. 이번 사안은 야권 전체의 초당적 차원에서 협력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12년 당시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댓글 공작이 사실로 드러난 마당에 또다시 국정원이 불법사찰을 지속했음이 드러난 이상 문제의 근원이 된 국정원을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를 발본색원하고 처벌함이 마땅합니다. 국정원이 사용하는 예산이 국민을 사찰하고 감시하는 해킹 프로그램 도입에 사용된 것 자체도 문제거니와 그들이 하는 일을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어 있는 구조 자체가 참으로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번 사건을 '국정원 불법사찰 시즌2'로 규정하고 국회 차원의 대응을 시사한 것과 상반되게 새누리당은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것도 참 의아한 상황입니다. 초록은 동색이기 때문일까요?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의 선거 개입 상황이 드러난 시점에 새누리당이 이를 '국정원녀 감금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야권 전체를 싸잡아 비판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불법 도청 사건으로 하야한 닉슨을 기억하라

 

1972년 6월 발생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미국 대통령 닉슨의 재선을 위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공작반이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되어 체포된 사건이었죠.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 닉슨 정권은 의도적으로 선거를 방해했고, 부정적인 방법으로 정치 헌금을 받았으며 탈세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죠. 결국 1974년에 닉슨은 대통령직을 사임합니다.

 

미국 정보기관의 무차별적인 도·감청은 유명한 일입니다. 독일 메르켈 총리를 포함한 각국 정상의 휴대폰을 불법 도청한 사실이 드러나 전 세계적인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최근 미국은 정보기관의 무차별 도·감청을 끝낼 미국 자유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오랜 악습의 고리를 끊어낸 것입니다.

 

지난달 말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국가정보원을 비공식 방문했음이 드러났습니다. 대체 왜 그 시점에 국정원을 방문했는지 참 궁금해집니다. 6월 1일 새누리당 의원들이 SNS감청법을 발의한 이후라는 걸 시기적 우연성으로 넘겨야 할까요? 지난달 22일 다음카카오가 언론사의 기사에 정부나 기업이 해명하거나 반박할 수 있게 하는 댓글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발표하고 이를 7월에 시행하겠다고 한 것이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일이었을까요? 최근 터져 나온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구매 사건을 국민의 자유를 옥죄려는 정부의 움직임과 엮어서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모르는 어마어마한 일이 이면에서 진척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과연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참으로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앰네스티 디텍트 누리집: https://resistsurveillance.org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는 보안 전문가들과 디텍트(DETEKT)라는 보안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의 도·감청 비리를 폭로한 이후 정부가 감시 목적으로 컴퓨터에 심어 놓은 도·감청 스파이웨어를 찾아낼 목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이번 이탈리아 해킹팀의 RCS 스파이웨어가 있는지 추적하는 기능도 포함된 모양입니다. 혹시 컴퓨터가 도·감청 스파이웨어에 감염되어 있는지 걱정되는 분이 계시다면 앰네스티 디텍트 누리집에서 내려받아 점검해보시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이라면 국가기관의 불법을 용인해선 안 됩니다. 서서히 드러나는 국정원의 실체를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밝혀낼 일입니다. 국민을 감시하고 표현의 자유를 옥죄려는 이는 그 누구라도 일벌백계하여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국가 채무 상환에 실패한 그리스

 

국제통화기금(IMF)이 정한 기한인 6월 30일까지 15억 5000만 유로(약 1조 9000억 원) 채무 상환에 실패함으로써 그리스가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했습니다. 서양 문명이 일찍이 꽃피운 민주주의의 발상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한 그리스. 천혜의 자연과 문화 자원을 자랑하던 그리스가 IMF 71년 역사상 선진국 가운데 처음으로 채무를 상환하지 못한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IMF 채무 상환을 하지 않은 나라는 짐바브웨, 수단과 같은 개발도상국들이었습니다. 

 

현시점에 IMF는 그리스의 채무 상환 실패를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아닌 '체납'으로 규정하고 있긴 합니다만, 이는 기술적인 용어 선정의 문제일 뿐 사람들은 사실상 이를 디폴트로 받아들이고 있어 그리스 사태가 유로존과 전 세계 경제에 미칠 후폭풍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상황입니다.


출처 - SBS


지난 5년의 IMF 기간에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은 25퍼센트나 하락했습니다. 2010년 당시 3100억 유로였던 그리스의 부채는 2015년 현재 3170억 유로로 늘었습니다. 또한 50퍼센트에 달하는 청년실업률이 방증하듯 그리스 경제의 위험도는 해마다 심화되어 왔습니다. 이번에 부채를 상환하지 못한 그리스로서는 IMF의 추가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다른 경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가능성마저 극히 낮아 보입니다. 

 

현재 그리스에서는 영업을 중단한 은행 ATM 앞에서 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습니다. 당장 병원비를 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부터 생필품과 연료를 사재기하려는 사람들마저 속출하는 실정입니다. 각 주유소의 휘발유도 다 떨어져 고객 한 명당 20유로(약 2만 5000원)어치 이상 휘발유를 살 수 없게끔 제한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조차 국회 안 ATM에서 하루 인출 상한 금액(60유로)으로 정해진 돈을 찾으려고 줄을 서는 광경을 연출한다고 하니 정말 심각한 상황이긴 한 모양입니다.

 

출처 - 월스트리트저널

 

지난 5년간 혹독한 긴축 경제 정책에 시달려온 그리스 국민으로서는 이번 사태가 분노를 넘어 자포자기의 심정을 느끼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까닭에 향후 그리스 경제와 사회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번 사태로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은 CCC-까지 떨어졌고 그리스 4대 주요 은행의 신용등급은 CCC에서 RD(제한적 채무불이행) 상태로까지 떨어졌습니다. 현재 그리스 경제는 유럽중앙은행(ECB)의 긴급유동성지원(ELA)이라는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지경입니다. 그리스의 총부채는 2015년 7월 현재 3170억 유로(약 394조 원)으로 GDP의 2배에 달하는 규모라고 합니다. 
 

출처 - 한겨레


 

그리스 경제, 왜 이 지경이 됐나?

 

풍부한 문화유산과 선박왕이 즐비한 나라로 유명하던 그리스가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 이른 까닭은 무엇일까요? 국민이 게을러서거나 항간에 떠도는 무분별한 복지 지출 같은 이유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리스인은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한 해 평균 근로시간이 2000시간을 넘을 정도로 열심히 일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에 이어 3위에 해당하며, 독일과 비교한다면 50퍼센트 가까이 일을 더 많이 한다는 얘깁니다. 복지 지출 역시 원인이 아닙니다. 2007년 위기가 찾아오기 직전 그리스의 GDP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은 21퍼센트로, 28퍼센트에 달한 독일이나 스웨덴보다 낮았습니다.

출처 - 동아일보


그리스의 경제 위기를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은 탈세와 부패였습니다. 국민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해운업으로 부를 일군 부자들이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탈세를 일삼으니 나라 곳간이 멀쩡할 리 없겠죠. 이와 관련된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2008년 그리스 부자들이 집에 딸린 수영장에 붙는 세금인 500유로(약 60만 원)를 내지 않으려고 국가에 신고를 누락했습니다. 자기 집에 수영장이 있다고 제대로 신고한 부자는 324명에 불과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보다 부자가 많은 게 명확하기에 당시 한 세무 공무원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구글의 위성 지도 프로그램인 구글 어스를 이용하여 부자들이 사는 지역에 보이는 파란색 사각형, 즉 수영장 개수를 헤아린 것이죠. 그랬더니 무려 1만 6974개의 수영장이 발견됐습니다. 이는 부자의 98퍼센트가 수영장 세를 포탈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럼 그 이후 부자들이 세금을 제대로 냈을까요? 아닙니다. 부자들은 수영장 바닥을 땅이나 잔디와 같은 색으로 칠하거나 수영장에 덮개를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정도면 국가가 세금 포탈을 막기 위해 강제 집행이라도 해야 할 텐데 뇌물로 인한 부패가 만연한 탓에 흐지부지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언론의 호들갑도 마찬가지였고요.

 

출처 - 동아일보


정부의 부패와 부자들의 탈세로 국가 경제가 휘청거리자 그리스 정부는 가장 손쉬운 해결책을 모색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의 지갑을 터는 거였죠.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세금이 부과되어 고용주가 노동자보다 세금을 적게 내는 사례가 속출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우리나라의 연말정산 대혼란 상황을 연상하게 합니다. 서민들에게 고통을 안기는 정책에 대항해 그리스의 성난 노동자들은 납세 거부 운동을 펼치는 식으로 대응했으나 그리스의 거부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스위스 등의 조세 회피처로 옮겨놓은 지 이미 오래였습니다. 

 

5년 전 IMF로부터 수천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지원받고도 왜 그리스의 경제는 회복되지 못했을까요? 전문가들은 구제금융이 그리스 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하고 빚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합니다. 앞서 《한겨레》에서 인용한 도표에 잘 나와 있듯이, 구제금융의 약 92퍼센트가 부채 탕감과 관련하여 국내외 은행들에 지급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그리스는 빌린 돈의 절반 이상을 부채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만 썼습니다. 실질적으로 국내 경제 신장을 위해 사용할 자금의 여력이 별로 없었던 셈입니다. 이처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상황을 내버려둔 결과 그리스는 지금과 같은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의 이번 체납이 단지 그리스 일국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리스의 경제 위기는 유로존 전체 그리고 나아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출처 - SBS


오는 5일 그리스는 국제 채권단의 추가 긴축안을 수용할지에 대해 국민투표를 시행합니다. 국민의 총의가 국제 채권단과의 협상에서 무기가 될 것으로 정치권이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경제 전문가와 정부가 판단해야 할 문제를 그리스 국민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찬성이나 1번이 위로 배치되는 투표용지와 달리 반대를 맨 위로 올린 투표용지를 만들기까지 하고 있으니까요. 국민의 뜻을 물어 채권단의 제안을 거부하는 결정이 나온다면 이는 유로존을 탈퇴하겠다는 이른바 그렉시트가 현실이 됨을 의미합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스티글리츠와 크루그먼 같은 이들은 그리스에 차라리 그렉시트를 택하라며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경제주권을 상실한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보다 국민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라는 조언이겠지요. 그러나 현재 그리스 여론은 국제 채권단이 요구한 긴축안은 견딜 수 없다고 보면서도 유로존을 떠날 때 발생할 사회적 혼란을 더 걱정하는 추세입니다.

 

출처 - 뉴시스


유로존의 선도국인 독일의 입장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한다면 통화로서의 유로의 위상이 위협받게 될 것이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통합을 위해 박차를 가했던 역사에 오점을 남기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유로 가입국도 자기 편할 대로 탈퇴를 할 빌미가 생겨 결과적으로 유로 붕괴의 입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의 최대 채권국이자 유로 성립 당시 다른 회원국의 반대와 위태로운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를 유로에 끌어들인 독일로서는 유럽 내에서 정치력을 시험받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은 미국대로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반도에서 그리스가 유로를 탈퇴해 러시아와 가까워지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국의 상황이 정략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에 세계 금융 시장은 그리스의 체납 소식을 심각히 받아들이고 모든 지수가 폭락했죠.

 

IMF 구제금융 시기를 극복한 우리는?

 

1997년에 우리나라도 외환위기를 겪었습니다. 이는 동남아시아를 덮친 외환위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동남아 국가들의 채권을 상환하는 와중에 우리의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이와 맞물려 개발독재에 따른 금융기관들의 부실, 한국의 위기 상황에 편승해 알짜 기업을 헐값에 인수하려 했던 해외 투기자본의 횡포 때문에 결국 대한민국 경제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그 대신 IMF에서 요구하는 여러 조건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경제는 사실상 미국의 경제 식민지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IMF를 통해 세계 자본가들은 아주 가혹한 긴축처방을 요구했습니다. 이로써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이 개방되었죠. 노동 유연화라는 허울로 근로자의 정리해고가 쉽게 이뤄지고 비정규직이 활성화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경제는 당시 고환율과 글로벌 경기회복에 편승해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MBC


IMF 구제금융 시대를 극복한 이후 한국 경제는 과연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을까요? 이번에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한 그리스의 체납액 15억 5000만 유로(약 1조 9000억 원)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예산 22조 원의 12분의 1에 해당합니다. 이를 보면 거짓말쟁이 대통령을 뽑은 탓에 허비된 혈세가 과연 얼마나 엄청난 금액인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가계부채,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 IMF도 부정한 낙수효과를 아직도 부르짖으며 탈세에 앞장서는 대기업 등, 그리스의 현실은 남 얘기가 아닙니다. 그리스가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정부의 부패와 부자들의 탈세였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를 반면교사로 삼아 정치, 경제의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제2의 IMF 사태를 겪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출처 - 민중의소리

출처 - 경향신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