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적자 공공기관, 그들만의 '돈 잔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옛말이 무색하게 지난 추석에는 가족, 친지가 모여 짜증과 한숨이 교차하는 경험을 한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삶이 지나치게 팍팍해지고 힘들다 보니 가족에게조차 마음과 달리 인색해질 수밖에 없는 뼈아픈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손주들에게 덕담과 용돈을 듬뿍 안겨주고 싶지만 노인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손주들에게 주는 용돈조차 부담으로 느끼게 된 지 오래입니다. 

 

젊은이들은 1년에 몇 번 만나기 어려운 친척들의 괜한 오지랖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는 사례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번 추석에 취직 안 하느냐 결혼 안 하느냐는 압박 때문에 바다에 투신했다 구조된 청년이 있었죠. 또한 친척끼리 주먹다짐을 하다 칼부림까지 벌인 사람들이 뉴스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들이라고 처음부터 그러고 싶었겠습니까? 앞이 막막한 현실 때문에 벌어진 안타까운 일이겠지요.

출처 - 부산일보


일반적인 시민의 팍팍한 삶과 대조적으로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들은 만성적자에도 '돈 잔치'를 벌였습니다. 기관장은 억대연봉을 챙기고, 직원들은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방만한 경영을 한 것이죠. (《경향신문》 기사를 참고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노근 의원이 경기도에서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니 참 가관입니다. 기관 대부분이 적자 운영되는 와중에 10곳의 기관장이 억대 연봉을 받았다고 합니다. 킨텍스 대표는 1억 8900만 원, 경기연구원장은 1억 4500만 원, 경기신용보증재단 기관장은 1억 4000만 원을 챙겼습니다. 한편 최근 3년간 임직원 3328명(2014년 기준)에게 총 237억 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고 하는군요. 경기연구원은 최근 3년간 직원 75명에게 32억 3210만 원의 성과급을 줘 도내 1위를 기록했습니다. 연구원 직원 1인당 평균 4309만 원을 받은 셈이랍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최근 3년간 경기연구원이 총 78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도 말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한편 광주시 공기업 및 산하 기관장 상당수가 억대 연봉을 받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능력이나 자질을 검증하는 절차가 없어 인사청문회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기관장 후보자들이 공기업 및 산하기관의 경영비전과 개혁방안을 제시하고 능력과 검증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수적입니다. 그렇지만 현행 지방공기업 및 산하 기관 등의 대표직은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교체 시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자체장의 보은, 정실 인사가 기관의 부실을 초래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대한민국 상위 몇 퍼센트에 해당하는 이들로서는 그야말로 1년 내내 한가위 같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들만의 훈훈함은 평범한 시민의 기회와 세금을 편법으로 갈취한 것이어서 상대적 박탈감을 더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세 살배기 아기가 20억 아파트의 주인?

 

최근 결혼 시장의 트렌드가 많이 달라졌다죠? 결혼 당사자가 아닌 그 사람 아버지의 지위나 할아버지의 재력을 보는 것으로 말입니다. 사실 대한민국 상위 1퍼센트의 부자들에게도 할아버지의 재력은 핵심입니다. 최근 3년간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건너뛰고 손자에게 바로 재산을 증여하거나 상속하는 세대생략증여가 인기라고 합니다. 이렇게 증여된 재산만 2조 4500억 원, 13만 명이 이 제도를 통해 합법적으로 최소 2388억 원의 상속/증여세를 아꼈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상속세와 증여세는 사회적 부의 재분배에 대표성을 띠는 세금인데 말입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현행 세법은 조세 형평성을 이유로 세대생략증여를 할 경우 30퍼센트의 가산세를 매깁니다. 원래대로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손자에게 상속이나 증여를 한다면 세금을 두 번 내야 합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직접 상속이나 증여를 하면 세금을 한 번만 내는 겁니다. 그런데 현행 세법대로 30퍼센트의 가산세를 붙인다 한들 세금을 더 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대폭 할인된 세금을 납부하게 되는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이 국감 현장에서 드러났습니다.

 

국가가 마땅히 걷어야 할 세금을 못 걷고, 부의 재분배가 요원해지는 맹점입니다. 하지만 부자들로서는 좋은 절세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손자가 미성년일 경우 증여된 재산을 부모가 관리하기 때문에 부자들로서는 꿩 먹고 알 먹는 상황인 셈입니다. 이 때문인지 실제로 세대생략증여를 통해 30억 이상의 재산을 증여하거나 상속한 사람은 동년기보다 34퍼센트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출처 - MBC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부자 부모가 미성년자인 자녀에게 부동산을 미리 증여해놓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강남을 중심으로 이런 방식의 증여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세 살배기 아이가 서울 강남 중심부에 있는 20억대 아파트의 주인이 되는 참으로 웃지 못할 사례도 발생합니다. 주말만 되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강남대로의 한 빌딩, 매매가만 216억 원에 임대료만 월 7000만 원이 넘게 나오는 건물의 주인이 16살짜리 고등학생이랍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쾌척했기 때문이죠.

 

출처 - MBC


이 역시 세금 때문입니다. 강남의 알토란 같은 땅에 있는 부동산이라면 가격이 내려갈 리 없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가장 싼 가격일 지금 시점에 증여나 상속을 미리 해둔다면 결과적으로 미래에 낼 세금보다 파격적으로 아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7년 동안 시세가 2배 이상 오른 건물의 경우 7년 전에 자녀에게 증여했다면 지금 증여하는 것보다 세금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얘깁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아이가 대한민국에 참 많습니다. 전국적으로 3700명의 미성년자가 받은 부동산만 1조 4000억 원 규모입니다. 이러니 학자금 대출과 알르바이트 최저임금에 벌벌 떠는 흙수저들이 '헬조선'과 '죽창' 운운하는 게 그냥 나온 말이 아닌 겁니다.



손주 교육비로 1억까지 면세 혜택 주자는 새누리당


그런데 놀랍게도 부자들의 손주 사랑(?)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작년 하반기에 새누리당 류성걸 의원이 조세특례 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한 사실 알고 계신가요? 교육비가 중산층 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으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에게 교육비 1억 원을 대신 내주면 증여세를 면세해주는 건데요, 이렇게 되면 가계 소비 여력이 늘어나 경기 부양 효과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출처 - SBS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신 분이라면 대체 이게 무슨 헛소리냐는 반응부터 보이실 겁니다. 교육비를 1억이나 내줄 수 있는 조부모를 가진 가족이 어떻게 중산층이겠습니까? 발의된 법안 내용대로라면 손주가 10명일 경우 한 명당 1억씩 10억까지 완전 면세로 재산을 증여하는 방법이 열리는 겁니다. 애초에 혜택을 볼 사람이 극소수 부자들일 게 뻔한 이런 법안을 중산층을 위한다는 핑계로 발의하다니 과연 제정신인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 세상과 사람 사이


지난 24일 펀드가 아닌데도 '펀드'라는 이름을 붙인 박근혜 대통령의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꼼수, '청년희망펀드'에 기부를 독려하는 자리에서 새누리당의 차기 대선주자인 김무성 대표는 구체적인 기부 액수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농담을 던졌습니다.


"나는 여태까지 내 월급이 얼마인지 한번도 본 일이 없다."


참 어이없는 말입니다. 돈 많은 친일파 아버지 덕에 호의호식하며 살더니 현실감각이 사라졌나 봅니다. 2008년 한나라당 당대표, 최고위원 경선 주자였던 정몽준 의원이 KBS 1라디오 한나라당 당권주자 생방송 토론에서 라이벌이었던 공성진 의원의 "버스 기본요금이 얼마인지 아시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굉장히 어려운 질문을 했는데, 요즘 카드로 타면 한 번 탈 때 한 70원 하나?" 하고 답변한 망언은 지금까지 정치인의 현실감각이 없음을 조롱하는 대표적인 사례에 꼽힙니다. 청년 일자리를 고민하는 자리에서 금수저 자랑 같은 농담이나 던지는 사람이 유력한 다음 대통령 후보인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참으로 답답한 현실입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최근 국회 다수당의 대표를 청와대 참모가 정면 공격하는 정치판의 모양새를 보노라면 정당 민주화의 역풍이 참으로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을 필두로 한 청와대의 정치 개입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내쫓을 때 침묵했던 김무성 대표는 결국 화를 자초한 꼴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둘러싼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충돌 양상이 정치판의 핫이슈가 되고 있어 진보정치의 움직임은 언론과 방송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형국입니다.

 

이는 2015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을 때부터 사실상 예견된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당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이었건만, 보수진영은 헌재가 정의를 구현했다며 일제히 쾌재를 불렀고, 진보진영은 몸을 사리며 자구책 마련에 안간힘을 쏟았습니다. 심지어 진보진영의 한편에서는 차라리 이참에 도려내는 편이 더 낫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진보정치의 실패에 대한 지지자들의 원망이 적지 않은 이때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 몸담았던 네 명의 실무자가 반성과 성찰의 기록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는 진보정치 실패의 원인을 수구세력의 전례 없는 공안탄압 탓으로 돌리기보다 내부의 문제에서 찾기 위한 통렬한 자기반성에서 출발합니다. 현실정치에서 적지 않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신을 긍정적이고 진취적 사고의 담지자로 진보적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지 못한 뼈저린 후회를 바탕으로 삼아 진보정치의 한 시대가 지나가는 흐름을 담아낸 것이죠.

 

오래전부터 한국 정치의 세대교체와 세력교체를 주장하던 진보정치의 한 축이 정당해산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사라지면서 진보정치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운 때입니다. 많은 것이 모호하지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부터 정리해봐야 합니다. 진보정치의 전진과 좌절을 경험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로 달리 무엇을 더 찾을 수 있을까요?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

반성과 성찰의 기록

 

▸분야: 정치·사회  ▸지은이: 신석진, 김정엽, 이상민, 안창민  ▸판형: 신국판(152*225)

▸쪽수: 312  ▸가격: 16,000원  ▸ISBN 978-89-94502-46-5 (03320)

 

 

통합진보당에 대한 사법적 살인, 무엇을 남겼나?

 

이 책은 통합진보당의 ‘실패’를 자인한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면서 민주주의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도륙되고 있는 지금, 이들의 실패를 특정 정당이 아닌 민주주의의 실패라고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충분히 많다. 대한민국의 폐색 상황을 ‘헬조선’과 ‘죽창’이라는 유행어가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지금,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는 진보가 정작 무엇인지, 또 진보정치가 어떻게 새로 시작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이고 진솔하게 얘기해준다. 참혹하고 아름다운,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는 멋들어진 좌우명을 누군가가 독차지해야 한다면, 그것은 진정 이들의 것이다.
―장정일(작가)

 

 

진보정치, 반성과 성찰의 기록

 

한때 200만 명이 넘는 유권자가 보내준 표를 받은 정당이 공중분해 됐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사법적 살인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파문을 남겨야 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엔 진보정치 실패에 대한 지지자들의 원망이 적지 않다. 아니, 오히려 진보정치가 그 전에 이미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인지, 통합진보당의 해산이 야기한 정치적․사회적 여파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최근 몇 년에 걸친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극적인 ‘흥망성쇠’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경험한 저자들은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인 2015년 봄에 작은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6개월간 이어진 토론의 결과를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반성과 성찰의 기록》이란 책으로 엮어냈다.


많은 사람이 통합진보당의 해산에는 수구세력의 전례 없는 공안탄압이라는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진보정치의 실패를 인정하면서 우호적 여론이나 민주주의라는 대의에 입각해 통합진보당을 지원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실패한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고로 이 책은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치가 실패한 책임이 당사자들에게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해 그것이 무엇인지 밝혀보려는 치열한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저자들은 현실정치에서 적지 않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왜 스스로를 긍정적이고 진취적 사고의 담지자로 진보적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지 못했는가 하는 뼈저린 후회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이 책에 담아냈다.

 


진보정치의 한 시대가 갔다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밀어낸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누가 새로운 것이고 누가 낡은 것이냐의 문제만이 남는다. 이 책의 저자들을 비롯해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일한 사람들은, 새로운 존재가 자신들이라고 믿었다.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며 희생을 결단한 것도, 진보정치에 대한 헌신을 결심한 것도 그런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곤혹스러움은 믿음의 바탕이 흔들리는 데서 왔다. 수많은 이의 눈물과 땀이 어린 진보정치 15년 역사의 좌절은 단지 헌법재판소의 판결 때문만은 아니었다. 통합진보당은 박근혜 정부와의 대결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진정한 패배는, 그들에게 믿음의 원천이 되어주었던 ‘국민’의 냉담함에서 기인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억압을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통합진보당을 옹호해주지 않았다. 진보진영의 한편에서는 차라리 이참에 도려내는 편이 더 낫다는 말까지 나왔다.


진보는 오래전부터 한국 정치의 세대교체와 세력교체를 주장했다. 저자들은 교체의 ‘주체’가 자신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교체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도전은 때로 실패할 수 있고, 그때에도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낙관을 만들어가는 근거인 ‘새로움’에서, 자신들이 제외됐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진보정치를 위한 치열한 노력이 좌절되면서, 한 시대가 같이 마감됐다. 저자들이 떠나보낸 시대는 단지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역사만은 아니다. 혁명을 꿈꾸던 독재시대에 해오던 생각과 이론, 습성, 관성도 함께 떠밀려 가고 있다. ‘운동의 힘’으로 고난을 견뎌왔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과거의 준거가 낡은 것의 표상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완전히 밀려간 존재로 끝날지, 새로운 시대의 한자리를 다시 맡을 수 있을지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많은 것이 모호하지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부터 정리해야 한다.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는 ‘운동의 관성’과 제도 정치에 진입한 ‘대중 정당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과 모순을 일으켰던 통합진보당의 속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쓴 저자들은 진보정당 15년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의 시기를 남들과는 다소 다른 위치에서 지켜봤다. 합당과 분당, 그리고 정당 해산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에 필요한 실무를 처리한 당사자로서 치열한 현장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경험과 반성과 성찰은 진보정치의 향방을 가늠하는 지남차가 되어준다. 진보정치에 진지한 각성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면, 이들이 기록한 반성과 성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신석진
지난 7년간 이정희 대표를 가까이에서 보좌해왔다. 국회의원 보좌관, 대표 비서실장,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다. 직함은 달랐지만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학생운동과 통일운동을 했고, 이정희 대표를 만나기 전엔 인천 남동공단에서 공장 노동자로,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부위원장으로, 당 기관지 《진보정치》 편집장으로 일했다. 
 
김정엽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을 하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이정희 의원 보좌관을 했다. 금융정책과 경제정책, 재정정책 등을 다루는 국회 정무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 보좌 업무를 했다. 19대 국회에서는 이석기 의원 보좌관이었다. 덕분에 통합진보당의 문제적 인물 두 사람을 연속해서 보좌한 특이한 경력을 갖게 됐다. 이 책의 기획과 목차 구성을 맡았다. 
 
이상민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에서 일하다 18대 국회에서 이정희 의원의 정책비서관으로 일하면서 민주노동당과 인연을 맺었다. 그전까지 진보신당 당원이었다. 19대 국회에서는 김재연 의원 보좌관과 통합진보당 정책전문위원을 지냈다. 우리나라 조세제도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진보적 조세정책 개발, 재벌지배구조 문제점과 개선방안 모색이 그의 전문 분야다. 
 
안창민
유일하게 아무런 직책을 맡지 않은 평당원 출신이다. 학생 시절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에서 활동했고 이후 오래도록 직장생활과 개인사업을 했다. 그는 한 포털사이트에 1000권이 넘는 책의 서평을 올린 독서광이기도 하다. 지금도 직장생활을 하는 안창민은 부득이 가명을 썼다. 해산된 진보당 출신이 느끼는 사회적 낙인의 여파가 여전한 탓이다.

 

 

차례

 

추천사 |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
서문 | 진보정치의 한 시대가 갔다

 


1장 다수파의 원죄, 패권주의
당권파는 억울하다? | 민주주의, 진보진영도 내면화해야 한다 | 당내 이견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 참여당은 ‘개조’ 대상이었나? | 진성당원제의 딜레마 | 패권주의, 제도적 해법으로 가능한가? | 솔직해야 해법이 나온다

 

2장 진보의 멍에, 종북주의
종북공세는 ‘현재진행형’ | 북에 대한 입장 표명, 거부할 수 있나? | ‘종북’의 이념으로 정치하는 것이 가능한가? | ‘반북 진보’ vs. ‘종북 진보’ | 북한 ‘3대 쟁점’, 해명 불가능한가?

 

3장 운동의 가치, 운동의 관성
‘이념 논쟁’, 관행을 극복하자 | ‘정통’과 ‘이단’의 이분법 | 일사불란함의 전제, 자유롭고 개방적인 토론의 힘 | 전민항쟁의 향수 | 의회주의, 합법주의 비판의 두 측면 | 진보는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

 

4장 진보 혁신의 고정관념
운동과 정치의 이분법이 불편한 이유 | 성숙한 진보, 온건한 진보 | 진보의 급진성을 이제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 이제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만 남았나? | 자주는 시대착오적 담론인가? | 정말로 ‘노동중심성’이 문제일까? | 노동운동 위기 진단 10년, 뭘 했는가? | 진보정치 원조 논쟁 | 보편적 복지는 절대선인가 | 반복되는 평가, 빈약한 실행

 

5장 경제정책, 이념에서 현실로
보수와 진보의 뒤바뀐 경제철학 | 재벌 문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 | 진보도 성장을 말해야 한다 | 부유세 논쟁-성찰하면서 정책 만들기 | 증세 논쟁-디테일이 중요하다 | 기회비용 없는 정책은 없다

 

6장 2016년 총선 대응, 어떻게 할 것인가?
2016년 총선의 의미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의 막이 올랐습니다. 몇 년 새 직구족 사이에서 대목으로 알려졌던 블랙프라이데이는 원래 미국의 행사입니다.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다음 날 미국에서 연중 가장 큰 규모의 할인행사가 열리는 날이죠. 최대 90퍼센트에 이르는 파격가 때문에 손님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다치는 사람이 나올 정도로 물건을 쓸어 담으며 쇼핑을 하는 탓에 화제가 되곤 합니다. 소매업체의 경우 1년 매출의 70퍼센트가 블랙프라이데이에 일어날 정도라고 합니다. 연중 처음 흑자를 기록하는 날이란 의미에서 블랙프라이데이라고 한다죠.


출처 - 연합뉴스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는 바로 이 행사를 따라 한 것입니다. 작년까지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에 맞춰 직구를 하던 한국 소비자들의 눈을 국내로 돌리려는 방편입니다. 같은 국산 제품인데도 국내 소비자를 호구로 만드는 불합리한 가격 책정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해외에서 구매해야 했던 터라 잘만 된다면 내수도 일으키고 소비자도 합리적인 가격에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겠지요. 그러나 과연 잘될지 의문입니다.



유통업체만 생색내는 반쪽짜리 블랙프라이데이


명목상 국내 대다수 유통업체가 최대 80퍼센트까지 주요 상품을 할인 판매하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가 10월 1일부터 14일까지 2주간 열립니다. 이 할인행사에는 주요 백화점과 대형마트, 인터넷 쇼핑몰, 편의점 등 유통업체 2만 7000곳이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출처 - 머니위크


내수 진작과 소비 활성화를 위한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할인행사라고 광고하고 있습니다. 롯데, 신세계, 현대, 갤러리아, AK,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CU, GS25, 미니스톱, 세븐일레븐, 11번가, G마켓, 이케아, VIPS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통업체가 총출동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행사 내용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공식 홈페이지를 참조하세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공식 누리집(산업통상자원부) : www.koreablackfriday.org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할인행사라는 광고가 무색하게 시작 전날부터 SNS의 소비자들은 허탈한 비웃음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작 90원 깎아준 어느 마트의 블랙프라이데이 상품 사진 때문입니다.


출처 – 더 팩트


사실 이는 예상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우리나라 백화점을 비롯한 주요 마트들은 정가를 확 올렸다 세일이라며 정상가로 깎는 편법을 항시 써먹었으니까요. 어떤 경우는 할인 코너나 묶음 상품이 더 비싼, 웃기지도 않은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했죠.

출처 - YTN


더군다나 한국 블랙프라이데이에는 유통업체만 참여할 뿐 제조업체가 참여하지 않아 처음부터 반쪽짜리 행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제조업체가 직접 참여해 최신 TV나 스마트폰을 50퍼센트 넘는 할인 가격에 살 수 있는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와 달리 한국 행사에는 유통업체들만 달라붙어 할인 제품군이 한정되어 있고 가격 할인에 한계가 있습니다. 블랙프라이데이란 요란한 이름을 앞세운 백화점 세일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얘깁니다.



박근혜 정부의 주먹구구식 행사 계획

 

박근혜 정부는 내수 진작과 소비 활성화를 꾀한다는 명분으로 행사를 열흘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게다가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에 참여하지도 않는 업체를 목록에 포함하기도 해 소비자와 업계 관계자의 혼란을 부채질했습니다. 사전 준비 없이 무작정 시도했음을 자백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출처 - SBSCNBC


박근혜 정부의 주먹구구식 행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기업과 생업 일선을 혼란케 했던 광복 70주년 기념 대체휴일 논란이 불과 얼마 전의 일입니다.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는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가 1년 전부터 준비하는 중요한 행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기획 행사를 박근혜 정부는 아무런 준비도 협업도 없이 닥치고 하라고 통보하는 식입니다. 그러니 준비가 제대로 될 리가 있겠습니까?

 

유통업체의 일반적인 할인행사조차 입점 업체와 협의하고 상품을 확보하기까지 최소 3개월 정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유통업체들에 행사 진행을 지시했습니다. 독재정권 시절 '까라면 까'라는 식의 행정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런 무리한 행정은 업체를 대상으로 실무를 맡아야 하는 지방 공무원들에게 그대로 전가되어 손을 놓아버리는 사태까지 이르렀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행사를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뉴스1》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대전시는 행사를 하루 앞둔 30일까지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취지는 물론 참가하는 지역 유통업체의 참여 현황, 할인 동향 등을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행사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고 답할 정도였으니 심각한 상황입니다. 지역 시민들은 정보를 얻지 못해 답답해하기는커녕 어차피 이름만 바꾼 세일이겠거니 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박근혜 정부가 급조한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는 애초 취지인 내수 진작과 소비 활성화는커녕 소비자의 기대조차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TV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는 코리아 그랜드 세일이라는 해외 관광객, 특히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행사에서 급조된 것입니다. 코리아 그랜드 세일은 면세점, 백화점, 마트 등에서 외국인들이 상품을 구매하면서 여권을 제시하는 경우에만 할인 혜택을 줬습니다. 그런데 해당 용도가 아닌 행사를 빛 좋은 개살구처럼 급조했으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될 리 만무합니다. 오늘 《한겨레》 신문은 <'사상 최대 할인행사' 이름값 할까>(종이신문 제목)라는 기사에서 한 대형마트 직원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추석 직후는 원래 비수기다. 집집마다 냉장고에 먹을 게 쌓여 있기 때문에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오지 않는다. 이번 행사를 통해 매출에 얼마나 성과가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행사를 주관하는 산업통상자원부조차 "추석 연휴가 막 끝난 뒤라서 시점상 소비 진작에 불리한 여건인 건 맞다. 행사가 끝난 뒤에 내수시장 매출 신장 효과를 면밀하게 분석한 뒤 내년 이후 블랙프리이데이를 정례화할지 검토해볼 예정"이라고 했다지요.

 

 

출처 - 경향신문

 

지난번 급조된 대체 휴일부터 이번에 급조된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보노라면 과연 박근혜 정부가 서민 생활과 경제를 진심으로 걱정하면서 국정을 계획하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편이 낫겠다는 서민층의 비판을 달게 들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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