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사도>는 수차례 만들어진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황산벌> <왕의 남자> 등 사극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던 이준익 감독과 신들린 연기를 선보인 배우 송강호, 유아인에 힘입어 흥행은 기세가 대단합니다. '왕으로서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던 아버지'라는 역사적 실화가 주는 울림이 아무래도 영화 흥행의 가장 큰 요인이 아닌가 합니다. <사도>는 실록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자격을 갖춘 왕자'를 바랐던 왕과 '자애로운 아버지'를 바랐던 아들의 엇갈린 감정으로 여백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오늘날 세대론과 맞닿는 부분도 보이더군요.

 

출처 - 조선일보


사도세자처럼 죽고 싶지 않으면 공부하라는 엄마들


영화 <사도>가 40대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라고 합니다. 10대 학생인 아이들을 대동하고 관람하는 엄마들이 많다는 건데요, 아이들의 부족한 국사 교육을 위한 목적일까요? 아니면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조선일보》의 취재 내용에 의하면 일부 엄마들이 영화관을 찾는 이유가 좀 섬뜩하기도 합니다.

 

출처 - YTN

 

"영화에서 아버지 영조의 뜻을 어기고 공부를 게을리 한 사도세자가 왕이 되지 못한 채 결국 뒤주에 갇혀 죽는 걸 보면서 아이들이 느끼는 게 분명 있을 것"이라며 "요즘 사춘기라 그런지 부쩍 말을 안 듣는데, 이 영화가 스스로 '사도세자처럼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부는 영화 '사도' 바람 (《조선일보)


이는 달을 가리키는 이의 의도와 달리 손가락을 쳐다보는 상황에 해당합니다. 영조-사도세자 부자 사이에서 벌어진 비극을 다룬 영화를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성공한다'는 교훈을 가르치는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니까요. 영화 속에서 영조의 지나친 교육열과 권위주의는 사도세자를 망치는 데 큰 몫을 차지하는 요인입니다.


과연 영화를 본 아이들은 일부 강남 엄마들의 생각대로 죽지 않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도세자가 갇혀 죽은 뒤주를 보고 '저거 현실에도 있는 건데?'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작년에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스터디룸은 사실상 현대판 뒤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군요. 아이들이 이런 상황을 이상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영화 <사도>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엄마들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엄마는 "아이들에게 역사 공부가 될 것 같아 극장엘 갔는데, 나올 땐 오히려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며 "영조처럼 자식을 몰아붙이다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으니까요.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지나치게 과열된 교육열과 자식 사랑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장을 어지럽히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범탕'에 '총명 주사'까지 수험생을 위한 영약 천태만상


2015년 수능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금, 강남에 수능 보약 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캥거루 꼬리, 철갑상어, 산삼과 함께 캐나다산 하프물범을 달여서 만든 물범탕이 수험생에게 좋다는 소문 때문에 한 달에 50만 원을 넘게 들여 아이들에게 먹이는 부모가 많다고 합니다. 강남 엄마들 사이에선 수험생인 자식에게 물범탕을 안 먹이면 죄짓는 것이라는 얘기마저 돌고 있다는군요.

 

출처 - 조선일보


이뿐 아닙니다. 강남 성형외과는 수능 주사가 주가를 올리고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영양제와 태반 성분을 섞은 주사가 기억력 증진과 학습 능력 향상에 좋다고 하면서 '총명 주사' '집중력 주사' 등의 이름을 내걸고 수험생을 대상으로 놓아준다고 합니다. 한 번 맞는데 10만 원 정도 든다고 하니 만만치 않은 가격입니다.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총명탕과 달리 단기간에 효능을 볼 수 있다는 수능 응급약 '수능환'은 한 알에 5만 원이라고 합니다. 정력에 좋다거나 수험생에게 좋다는 건 안 팔리는 게 없다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넘길 일이 아닌 셈입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의사들은 보양식이나 환으로 집중력 혹은 기억력을 향상하거나 장기간 유지하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평소에 먹지 않던 약품을 잘못 복용하면 오히려 컨디션을 망쳐 수험생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강남 엄마들의 자식 사랑에 대한 집념은 사이비 종교에 대한 광신과도 같아서 불합리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죽는 나라는 결국 어른들이 만드는 것


사실 영화 <사도> 흥행으로 드러난 강남 엄마들의 호들갑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닙니다. 올 초에 개봉한 영화 <위플래쉬>를 자기 편할 대로 왜곡해서 해석한 강남 엄마들의 호들갑이 있었으니까요. <위플래쉬>는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 명문 음대에 입학한 주인공이, 실력은 최고지만 최악의 폭군이기도 한 플렛처 교수에게 발탁되면서 벌어지는 광기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사도>의 송강호처럼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플렛처 교수 역의 J. K. 시몬스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기도 했지요. 올해 갓 서른이 된 감독의 사실상 데뷔작인데도 저예산 독립영화로는 의외라고 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죠. 

 

출처 – 다음 영화


영화 제목인 '위플래쉬'는 채찍질을 뜻하기도 합니다. 플렛처 교수는 문자 그대로 주인공을 채찍질하듯 잡아가며 가르칩니다. 아니, 가르친다기보단 괴롭힌다는 말이 더 적합할 것 같군요. 플렛처 교수의 광기 어린 지도에 따라 점점 몰입해가는 주인공의 광기가 맞물려 그야말로 불꽃이 튀는 연주 장면을 그려내는 감독의 감각이 탁월하긴 합니다. 그런데 일부 강남 엄마들은 이 영화를 스파르타식으로 애를 잡아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자기합리화의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영화 공개 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주인공이 30대에 약물 중독으로 죽거나 자살했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어쩌면 영화의 메시지와 달리 일부 강남 엄마들은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한 채 학벌이란 도박에 자신과 아이의 인생을 판돈으로 내걸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 한겨레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11년째 자살률 1위를 지키며 자살률이 세 배나 증가하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청소년 사망의 원인 중 자살은 줄곧 1위였습니다. 그런데 올해 발표된 통계를 보면 2015년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 때문에 사고로 인한 사망이 1위로 올라서고 자살이 2위였습니다. 

 

 

출처 - 생각비행

 

경쟁 중심적인 교육 상황을 만들어놓고 영어·수학을 잘하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일류학교를 졸업하면 출세가 보장되는 전근대적인 학벌 사회를 바꾸지 않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선생님과 어른의 의견에 무비판적이고 순응적인 아이를 양산하는 교육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배가 기울고 물이 차올라도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따라 기다리다 희생된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인은 우리 기성세대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생각비행이 펴낸 책,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사랑으로 되살아나는 교육을 꿈꾸다》의 저자 김용택 선생님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건강한 사회란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행복한 사회다. 그런데 사회적인 존재여야 할 인간을 개인적인 존재로 키우고, 국영수 점수로 가치와 서열을 매기는 교육으로 다수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리 없다. 학벌로, 경제력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줄 세우고 차별하는 사회를 만들어 누가 행복하겠는가? 무한경쟁에서 학교를 구해내는 것만이 사회적 존재인 인간을 참되게 기르는 건강한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녹아내릴 것 같던 폭염이 수그러들고 8월도 마지막 주에 접어들었습니다. 작년 8월 31일에 <내 방 안의 영화제, EIDF 다시보기>라는 기사로 EBS국제다큐영화제 소식을 알려드린 적이 있습니다. 1년이란 시간이 훌쩍 흘러 올해도 EIDF가 시작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놓쳐선 안 될 진수성찬 같은 영화제입니다.

 

출처 – EIDF 2015


올해는 '세상과 통하다(Connecting with the World)'라는 주제를 내걸고 현대 사회 속 개인의 삶과 타인의 삶, 공동체의 관계를 재고함과 아울러 다양한 생각이 존중받는 세상에 대한 비전을 담아냈다고 합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오늘로 500일이 되었습니다. 불통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올해 EIDF 주제가 큰 울림으로 다가오네요.


현재 한창 진행 중인 EIDF 2015는 8월 30일(일)까지 계속될 예정입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극장, TV, 인터넷 다시보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실 수 있습니다. 따끈따끈한 다큐멘터리를 모두 볼 수 있는 상영관은 EBS스페이스, 서울역사박물관, 미로 스페이스, 아트하우스 모모 4개관입니다. 영화관을 직접 가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TV 방영과 인터넷 다시보기 D-BOX도 운영하고 있으니 참고하세요.

 

출처 – EIDF 2015 누리집

 

EIDF 2015 누리집: http://www.eidf.co.kr/2015kor/


EIDF 2015 극장 예매 시간표: http://www.eidf.co.kr/2015kor/screen/play


EIDF 2015 TV방송 편성표: http://www.eidf.co.kr/2015kor/screen/tvSchedule


EIDF 2014/2015 VOD 다시보기: http://www.eidf.co.kr/dbox



급변하는 모바일 환경을 반영해 EIDF 2015도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변화했습니다. 얼마 전 개편한 생각비행 블로그처럼 말이죠.

 


2014년 인기 다큐멘터리들을 VOD 구매로 편히 볼 수 있습니다. 반가운 소식이지요. EIDF 2015 상영작은 작년처럼 TV 방영이 끝난 후 무료 VOD 보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기간이 1주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찜해둔 다큐멘터리는 이번 일요일까지 얼른 보시기 바랍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씨입니다. 주말을 이용해 세월호 참사 500일 추모문화제에도 참석하시고 나와 타인, 세계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다큐멘터리도 보면서 뜻깊은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출처 – EIDF 2015


시티즌포(Citizenfour)http://www.eidf.co.kr/2015kor/movie/view/146


미국국가안전보장국(NSA)의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과 그 프로그램을 폭로해 전 세계적으로 화제의 인물이 된 에드워드 스노든에 관한 다큐멘터리의 대표작입니다. '시티즌포'는 2013년 당시 NSA에서 일하고 있던 스노든의 별칭이었죠. 스노든을 직접 촬영하고 인터뷰한 희소성 있는 영상은 물론 NSA의 기밀문서도 직접 볼 기회입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국정원 해킹 사건을 겪은 우리네 일상의 이면을 들여다볼 여지도 생기겠지요. 올해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해 큰 화제를 일으킨 다큐입니다. 아쉽게도 금/일 2회에 걸쳐 극장 상영만 합니다. 집중해서 관람하실 분은 어서 예매하세요.

 


출처 – EIDF 2015


월스트리트의 예언자(The Forecaster)http://www.eidf.co.kr/dbox/movie/view/163


중국발 경제 위기가 세계를 덮치고 있는 이때, '10월 1일 경제 위기가 전 세계로 번져 공황에 이를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1999년에 마틴 암스트롱은 오늘날 국가 부채 위기의 도래를 예언하며 2015년 10월 1일 이후 경제 위기가 전 세계로 번져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개발한 경제전환예측 프로그램과 이 예언 때문에 FBI에 연행되어 재판도 없이 7년간 수감되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미네르바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충격적인 사건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월스트리트의 예언자>는 극장, TV, 인터넷/스마트폰을 통해 편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 EIDF 2015


인도의 딸:그날 버스에서 있었던 일(India's Daughter)

http://www.eidf.co.kr/dbox/movie/view/132


인도 델리에서 23세 여성이 잔인하게 버스에서 강간당하고 살해된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바다 건너 우리나라에서도 천인공노한 사건이었죠.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인도 전역에서 유례없을 정도로 큰 항의 시위가 일어났고, 전 세계적으로 성폭행과 연관된 사람들의 인식에 변화를 촉발하기도 했습니다. 권력관계를 악용한 성추문, 데이트 성폭력 등이 우리나라에서도 끊이지 않고 일어납니다. '인도의 딸'을 살해한 혐의로 교수형을 선고받은 범인이 처형 직전에 한 인터뷰를 보면 성범죄와 폭력의 원인이 일그러진 사회와 그 사회의 도덕성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도의 딸> 역시 극장, TV, 인터넷/스마트폰을 통해 편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참사 500일 추모주간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오늘 저녁부터 주말 동안 이뤄지는 행사도 있으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오전 9시, 서울 대한문에서 팽목항으로 가는 '기다림과 진실의 버스'가 있습니다. 아직 바닷속에 있는 희생자를 기억합시다. 그들을 기다리는 유가족의 아픔을 기억합시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그 날까지, 가만히 있지 말고 행동합시다.

 

출처 - 4.16연대

 


감염 경로가 불확실한 환자가 속출하고 일각에서 공기 전염 가능성도 제기되는 가운데 메르스로 인한 10번째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현재 사망 10명, 확진 환자 122명, 격리자 3805명으로 메르스 사태는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입니다. 임신부와 경찰관까지 확진자가 나오고 진료했던 의사가 위독한 상태에 빠지는 등 메르스 사태는 다시 혼란스러운 국면을 향해가고 있는데요. 뉴스에서 보이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방한 취소 러시, 붐비기로 유명한 명동과 놀이 공원의 한산한 모습은 마치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 같습니다.

 

출처 – CJ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최근 인터넷에선 2013년에 개봉됐던 영화 <감기>가 재조명되기도 했습니다. 메르스 확산에 따른 공포의 영향 때문이겠지요. <감기>는 개봉 당시 스토리의 설득력과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평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메르스 확산이란 현실로 말미암아 사회적 재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영화 <감기> 속에서 처음엔 병을 우습게 보던 사람들도 형형색색의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고, 환자들이 나온 도시나 거리는 인적이 끊깁니다. 점차 사람들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와중에 병의 확산이 통제되지 않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릅니다. 요즘 메르스 정국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이지 않습니까? 혹자는 <감기>라는 영화에서 표현된 대통령의 판단력이 현재 한국의 현실과 비교하면 지극히 정상적이라 오히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 아닌 지적으로 보건당국과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메르스 초동 대처에 실패하고 컨트롤타워가 부재하며 현 상황이 되기까지 지지율만 생각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여당, 보건당국은 허구인 영화 속 현실을 까마득히 뛰어넘어버렸습니다.

 

출처 – 영화 괴물


도움이 되기는커녕 상황을 악화시키지나 않으면 다행인 정부의 무능한 모습은 우리나라의 수많은 재난 영화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입니다. 대표적인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 <괴물>입니다. 굉장히 한국적인 장면으로 꼽히는 분향소 신은 세월호 참사 이후 현실의 모습으로 재현되면서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 괴물이라는 문제 상황 앞에서 당국은 방역차로 살충제나 뿌려대고 공무원들은 뒷돈을 받으며 이권을 팔았습니다. 개인의 권리와 인권은 안중에도 없었죠. 그 와중에 언론은 끊임없이 지라시 수준의 기사를 남발합니다. 결국 영화 <괴물>에서는 사회의 최소 단위인 가족이 각자도생하며 문제에 대처하는 지극히 한국적인 모습이 펼쳐집니다.

 

출처 - KBS


지난 9일 메르스 확산 사태 속에 신음하는 대구 시민을 염려해선지 야구장에 방역차가 등장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구단이 메르스를 차단하는 조치를 요구해 지역 보건소에서 방역 활동을 한 건데요. 방역은 살충 성분 약품을 경유 혹은 석유와 섞어 가열해 연기 형태로 내뿜는 연막 방식과 살충 성분을 액체 형태로 뿌리는 분무 방식의 방역이 진행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활동은 통상 모기, 벌레 등을 죽이는 데 활용될 뿐 메르스와 같은 바이러스나 세균을 죽이는 데는 사실상 효과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그러니까 바이러스인 메르스에 효과가 없는 살충제만 뿌리는 쇼에 불과하다는 얘깁니다. 영화 <괴물>에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10년이 지난 오늘날 똑같이 재현되어 뉴스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출처 – CJ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영화 <감기>보다 한 해 앞서 개봉되어 의외의 흥행을 한 <연가시>도 있습니다. 곤충에 기생하는 연가시가 사람에게 옮아 사람을 조종하여 죽게 한다는 설정의 영화는 속도감 넘치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양상이 한국 영화에서 흔치 않은 좀비 영화와 흡사한 면이 있습니다. <감기> <괴물>과 마찬가지로 <연가시>에서도 일개 가장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정부는 오늘날의 모습처럼 무능합니다. <연가시> 영화에서 사람들은 연가시 자체보다 혼란을 통제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 때문에 죽어 나갑니다.

 

출처 – 영화 아웃 브레이크


질병으로 인한 재난을 다룬 작품 중 20년 전에 개봉한 <아웃 브레이크>라는 외화가 있습니다.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이 영화는 당시 창궐한 에볼라를 모티브로 한 것이었죠. 에볼라 바이러스의 숙주 동물이 한국 국적의 선박인 태극호에 실려 있었다는 점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죠.


출처 – 다음 영화


최근 외화 중에는 <감기>와 같은 해에 개봉한 <컨테이젼>이 가장 현실적입니다. 기네스 펠트로가 기침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전염성 바이러스가 세상에 가져올 재앙을 현실적으로 그려냅니다. 이 기침은 전 세계 각지로 퍼져 열과 호흡기 질환으로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공포에 몰린 사람들은 절도와 방화를 일삼고 막 개발된 백신을 손에 넣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영웅은 등장합니다. 바이러스에 노출되면서도 환자를 돌보는 의사, 공포로 뒤덮인 세상에서 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가장, 백신을 소년에게 양보하는 노 의사 등등 말이죠. 하지만 <컨테이젼>에서 정부와 관료들은 원인도 모르는데 시민들을 겁줄 필요가 있느냐며 예산 문제를 운운하기 바쁩니다. 언론은 이 공포를 돈벌이에 이용하기 바쁘고요.


출처 – 네이버 뉴스 댓글


요즘 세상에 현실이 허구보다 기이하다지만 박근혜 정부가 메르스를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능할 수 있는 건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아카데미 무능상이 있다면 작품상부터 주연상까지 모두 휩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출처 - 장도리

 

메르스 때문에 외출하기 찜찜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주말은 집에서 앞서 소개한 영화를 하나하나 감상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영화 감상이 현실에 대한 예습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가족의달'인 5월, 어린이날 잘 챙기셨나요? 아이들이 있는 곳에 웃음꽃이 만발했길 빕니다. 어린이날 하면 소파 방정환 선생을 떠올리는 분이 많으실 줄 압니다. '어린이'란 말을 처음 쓰기 시작하고 어린이날을 제정한 분이기도 하죠.

 

지금은 어린이날이 5월 5일이지만 원래는 5월 1일이었습니다. 1922년 5월 1일에 제1회 어린이날(소년일) 기념식이 열렸죠. 1923년에는 방정환 선생이 소년운동 활성화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색동회를 창립했습니다. 이후 노동절과 겹쳐 5월 첫째 일요일로 옮겼는데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 5일이 어린이날로 재지정되었습니다. 어린이날이 휴일로 지정된 건 1975년부터입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분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방정환 선생이지만, 그분의 면모를 단순히 어린이에 국한해서 볼 일은 아닙니다. 그는 편집자, 기획자, 시사평론가이자 문화운동가이기도 했기 때문이지요. 생각비행은 출판사로서 방정환 선생의 잘 알려지지 않은 출판 문화인으로서의 면모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



어린이는 물론 여성지부터 영화잡지까지, 미다스의 손


방정환 선생을 논하면서 어린이 관련 잡지를 빼놓을 순 없겠죠. 그가 내놓은 잡지 《어린이》는 당시 어마어마한 인기를 구가하고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소년운동에 불을 지폈고 나라 잃은 설움에 신음하는 사람들에겐 민족적 정체성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른들에게 어린이를 존중하는 마음을 심어주었습니다. 

 

한편 방정환 선생은 잡지 《어린이》를 통해 시대를 풍미한 많은 작가를 길러냈습니다. 윤석중, 마해송, 이원수, 최순애, 윤극영, 박목월, 정순철, 서덕출 등 국어책에서 한 번쯤 들어본 분이 즐비합니다. 당시 《어린이》는 지금도 베스트셀러로 통할 정도의 양인 10만 부를 발행했습니다. 그때 서울 인구가 32만 명이었다고 하니 대체 얼마나 어마어마한 인기였는지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출처 - 동심넷


출판 문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재능을 발휘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3.1 독립운동 당시 독립운동 활동을 알리는 지하신문 《독립신문》을 직접 제작해 몰래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된 적도 있습니다. 또한 그가 창간을 주도한 《신청년》은 한국 최초의 문예동인지로 알려진 《창조》와 앞뒤를 다투던 잡지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 최초의 영화잡지인 《녹성》을 창간하기도 했고, 최초의 여성잡지인 《신여성》, 그리고 《학생》 같은 잡지의 주필과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글을 기고했습니다.



계급투쟁부터 양성평등까지 아우르다

― 작가, 번역자, 시사평론가, 저널리스트로서의 방정환


소파 방정환 선생은 현진건, 염상섭 등이 소설을 기고한 것으로 유명한 잡지 《개벽》에 계급 투쟁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성격의 우화들을 연재했습니다. 1920년 《개벽》 3호에 번역 동시인 <어린이 노래: 불 켜는 이>를 발표하며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일본 유학 기간에는 <안데르센 동화> <그림 동화> <아라비안 나이트> 등의 외국 소설을 선별해 번역한 《사랑의 선물》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해당 작품의 우리말 첫 번역임과 동시에 우리말로 씌어진 첫 동화집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방정환 선생은 <왕자와 제비> <잠자는 왕녀> 등 우리에게 친숙한 동화의 번역자이기도 한 셈입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어린이 문학이 발전한 일본에 비해 누릴 것이 없었던 조선의 어린이들을 위해 동화집까지 냈으니, 그의 어린이 사랑은 참으로 깊고 넓다 하겠습니다.

출처 - 한겨레


한편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뿐 아니라 양성평등을 이야기하며 여성에 대한 기고를 많이 했습니다. 여학교 동창회의 풍경을 그림 <여학생과 결혼하면>이란 글에선 "제발 월급쟁이나 시어미 있는 데는 연애 아니라 아무거래도 가지를 말아요. 사람이 그냥 썩어요 썩어!"라고 쓰거나 "혼자 살면 혼자 살지 누가 그런데로 가!"와 같이 직설적인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대가족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조선사람의 가정은 하루종일 직무에 충실하느라고 피곤해 가지고 돌아와서 평안히 쉴 수 있는 재미있는 가정이 아니라 커다란 객주집 여관"이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면모를 보면 오늘날 남성들보다 더 진보적인 말을 거침없이 한 시사평론가이기도 한 셈입니다. 하긴 100여 년 전에 이미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써야 한다고 역설하신 분이니까요.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방정환 선생은 동요, 동화극, 동화, 번안동화, 논문, 탐사기, 수필 등 800편에 이르는 글을 신문과 잡지에 기고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글을 기고하기 위해 쓴 필명도 한두 개가 아닙니다. 잔물, 잔물결, 물망초, 몽견초, 몽견인, 삼산인, 북극성, 쌍S, 서삼득, 목성, 은파리, CWP, 길동무, 운정, 김파영, 파영, ㅈㅎ생 등이 모두 방정환 선생의 필명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모두 일본의 언론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일제에 의해 활동을 금지당할 때까지 해마다 70회 이상, 통산 1000회 이상의 동화 구연과 순회 강연을 했다고 합니다. 어린이 대상 강연회에서 <난파선>이란 이탈리아 동화를 번안해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야기하는 재주가 매우 뛰어나 어른과 아이 구분 없이 눈물 바다에 빠졌고, 심지어 감시하러 온 일본 경찰까지 눈물을 훔치느라 바빴다고 합니다. 1967년 《신동아》 기사에 따르면 일본 고등계 경찰관 미와는 방정환을 이렇게 평가했다고 합니다.

 

“방정환이라는 놈, 흉측한 놈이지만 밉지 않은 데가 있어... 그놈이 일본 사람이었더라면 나 같은 경부 나부랭이한테 불려다닐 위인은 아냐. 일본 사회라면 든든히 한 자리 잡을 만한 놈인데... 아깝지 아까워.”



출판 문화계의 큰 별, 방정환 선생

 

이처럼 작가이자 편집자, 기획자, 번역자, 저널리스트, 사회운동가, 독립운동가, 시사평론가 등등 초인적인 활동을 했던 방정환 선생은 안타깝게도 과로와 고혈압의 합병증으로 33세에 요절했습니다. 어린이를 사랑한 위인으로서뿐 아니라 출판 문화인으로서도 큰 족적을 남긴 방정환 선생의 작품과 연보는 한국방정환재단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소파 작품 연보 : http://www.korsofa.org/sub_2_2-b1.php

소파 발굴 작품(동화, 동요, 시, 수필, 교양 등) : http://www.korsofa.org/sub_3_1.php


앞으로 어린이날이 돌아오면 출판 문화인으로서 큰 족적을 남긴 방정환 선생의 업적도 되새겨보면 어떨까요? 어린이들에게 물려줄 가장 큰 유산은 곧 선생이 지키려 했던 우리의 문화일 테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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