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 19일(금) 저녁 8시 벙커1에서 '과학으로 사람 되자'라는 주제로 열린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북콘서트에 참여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추운 날씨였지만 많은 분이 오셔서 과학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셨습니다. 요즘 폭발적인 흥행세로 역대 외화 흥행 3위에 오른 영화 <인터스텔라>를 빼놓고 과학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죠?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파토 원종우 지음, 생각비행 출간)

 

원종우 작가도 북콘서트 서두를 <인터스텔라> 흥행과 영화의 과학적 배경에 관한 이야기로 열었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있었던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북콘서트 내용에 영화 <인터스텔라> 이야기를 섞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북콘서트 현장

 

영화 <인터스텔라>가 1000만 관객 동원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로써 <다크나이트 트릴로지> <인셉션> <메멘토> 등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한국 최대 흥행 영화가 되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가족영화로서 감동적인 면모에 아이맥스로 봐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웅장한 우주의 스펙터클이 흥행의 주된 성공 요인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인터스텔라>의 폭발적인 흥행세 이면에는 이 영화가 일종의 과학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을 몇몇 언론이 내놓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인터스텔라>를 만들면서 저명한 물리학자인 킵 손에게 자문하면서 영화 역사상 가장 물리학 이론에 부합하는 웜홀과 커블랙홀을 영상화했다고 자부했습니다.


출처 – 인터스텔라 누리집


영화의 이론적 배경을 자문한 물리학자 킵 손 역시 인터스텔라를 만들며 블랙홀과 웜홀에 관한 새 논문을 준비 중이라고 발표할 정도였습니다. 한술 더 떠 <인터스텔라>의 시나리오를 맡은 조너선 놀런(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동생)은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4년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공부했다고 하여 숱한 화제를 남겼습니다.

 

세계의 석학들과 유수의 대학 커리큘럼 인증을 받았다고 생각해서인지(?) 한국의 학부모님들이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를 자녀들에게 일종의 과학 교재로 활용하는 분위기가 있는 듯합니다. 얼마 전 《머니투데이》는 [저자를 만났습니다]라는 기획기사에서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원종우 작가가 말하는 '과학대중화'라는 주제로 "900만명 본 인터스텔라 공부하는 과학? 트렌드로 그치지 않게"라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일각에선 인터스텔라 광풍이 '교육열'을 자극했기 때문이란 분석을 내놨다. 영화를 통해 우주과학에 대해 알게 되면 수능 또는 학교수업을 이해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컸다는 것이다. 입시와 연결된 과학문화는 그 학생이 사회로 진출함과 동시에 의미를 상실하게 될지 모른다. 이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하지만 원 작가의 생각은 다르다.

 

"아시다시피 요즈음은 '공부가 되는 고전문학', '공부가 되는 톨스토이' 이런 식으로 입시를 깔고 들어오죠. 지금은 설령 입시를 보고 접근했다고 할지라도 이런 것들이 체화되면 나중에는 이런 문제에 대한 각성으로 이어질 거라고 믿어요. 교육열 때문에 또는 수능 때문에 온다고 해도 야단칠 필요가 없다고 봐요. 과학도 마찬가지죠. 제대로 전달만 된다면 그 문제는 스스로 해결 될 테니까요. 제대로 전달이 안 되니까 수능으로 밖에 안 가는 거죠."

 

원 작가는 과학의 대중화를 심도 깊게 생각할 시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과학은 인문학의 대중화 과정보다 더 앞으로 나아갔으면 해요. 트렌드로 그쳐선 안 되고 좀 더 내실 있고 뿌리 깊게 박힐 수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교육열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우리나라에서 <인터스텔라> 영화가 흥행하는 상황을 조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영화가 물리학적 지식을 흥미롭게 펼쳐놓았다 한들 그 기본적인 배경을 이해하기란 어렵습니다. 따라서 그 배경이 되는 지식을 공부하지 않고서 <인터스텔라>라는 영화 한 편으로 우주의 신비를 파악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 과학 토크쇼 <과학같은 소리하네>, 과학책을 자세히 분석해주는 팟캐스트 <과학책이 있는 저녁>을 통해 과학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원종우 작가의 책과 강연을 통해 <인터스텔라>의 배경이 되는 과학 지식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습니다. 생각비행이 펴낸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안에 담긴 내용과 <인터스텔라> 영화 내용을 엮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출처 – 인터스텔라 다음TV팟


* <인터스텔라>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유의하세요.



조너선 놀런이 캘텍으로 간 이유


앞서 <인터스텔라>의 시나리오를 맡은 조너선 놀런이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4년간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해서 말이지요. 그런데 왜 다른 이론이 아닌 상대성이론이었을까요? 그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거슬러 올라오면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중력이 뭔지 잘 모르고 산다. 어린 시절부터 수천 번은 더 읽고 들은 용어이긴 하지만 말이다. (...)  이처럼 중력은 미약한 힘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과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중력은 전자기력보다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배 약하다. (...) 중력이 얼마나 미미한 힘인지 이로써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중력이 전자기력, 약력, 강력 같은 힘에 비해 월등한 강점이 있다. 일단 물질의 성분에 관계없이 모아서 덩어리로 만들기만 하면 무조건 커진다. (...) 다음으로 중력은 멀리까지 전달된다. 전자기력도 중력처럼 멀리 가긴 하지만 천체의 운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힘'으로서의 역할은 중력과 비교할 수 없다. 강력이니 약력이니 하는 힘은 미시 세계에서 작용할 뿐이다. (...) 여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중력의 기묘한 특징이 드러난다. 중력은 다른 것에서 만들어낼 수 없다. (...) 다른 한편으로 중력은 막을 수 없다. 이쯤에서 우리가 중력의 신비를 제대로 파헤치려면 반드시 하나의 이론을 통과해야 한다. 바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다.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2. 중력의 실체를 찾아서 중

 

질량이 거의 무한대로 큰 블랙홀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중력을 알아야 하고, <인터스텔라> 마지막 장면에서 쿠퍼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딸 머피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우주의 모든 힘 중 가장 멀리 가고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중력의 기묘한 힘 때문이란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영화를 보는 재미가 배가됩니다. 그리고 이 중력의 신비를 파헤치려면 반드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알아야 합니다. 그 때문에 조너선 놀런이 4년간 대학에서 강의를 들으며 공부를 한 것입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4년간의 중력 수업이 <인터스텔라>의 클라이맥스부터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의 얼개를 만들어주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군요.

 

북콘서트에서 원종우 작가가 상대성이론을 주요하게 설명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에서 원종우 작가는 "1915년에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이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의 중심 개념 중 하나는 중력의 힘과 일상적인 운동에서의 가속도가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하면서 "이를 과학 용어로 중력질량과 관성질량이 같다고 하고, 바로 이것이 일반상대성이론의 기본개념인 등가원리"라고 합니다. 복잡한 것 같으니 다음 동영상을 보시죠. 난해한 상대성이론이 GPS같이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지 아시게 될 겁니다.  

 

출처 - 다음TV팟

 


담요 한 장으로 블랙홀 만들기

 

<인터스텔라>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한다면 영화 역사상 가장 물리학 이론에 충실하게 재현했다는 블랙홀의 묘사일 겁니다. 거의 무한대의 중력으로 모든 것을 끌어들여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하는 무시무시한 검은 구멍 말입니다. 하지만 일반인이 블랙홀이란 게 왜 생기는지, 그리고 블랙홀의 중력이 왜 그렇게 큰지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출처 – 인터스텔라 홈페이지


그런 블랙홀을 실생활에서 우리가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담요 귀퉁이를 당기고 있다고 하자. 이 상태에서 담요는 대체로 평평하다.

 

 

이제 그 위에 묵직한 볼링공을 하나 얹어보자. 그러면 당연히 공의 무게만큼 주변이 아래로 푹 꺼지게 된다. 이 상태에서 몇 가지 실험을 해보자. 비슷한 크기의 볼링공을 그 옆에 하나 더 얹는다면 어떻게 될까? 담요 위의 곡면이 크게 바뀌면서 두 볼링공이 대략 비슷한 거리를 움직여 쿵 하고 가운데서 부닥칠 것이다. 이번에는 볼링공 가까이에 훨씬 가벼운 당구공을 얹으면 어떨까? 볼링공은 별로 움직이지 않고 당구공이 또르르 굴러 볼링공에 부닥칠 것이다. 아주 가벼운 탁구공을 올려놓는다면? 볼링공은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탁구공이 볼링공을 향해 굴러떨어진다.

 

 

(...) 지구 중력 때문에 무거운 공 주변의 담요가 휘었고, 가벼운 공들은 그 '구부러진 면'을 따라 굴러떨어지는 것인데 마치 볼링공에 끌리는 것처럼 보인다.

 

 

(...) 이런 원리는 달이 지구를 돌고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과 본질적으로 똑같다. 담요 실험에는 마찰력 때문에 조금 돌다가 중심을 향해 떨어지지만, 우주처럼 방해물이 없는 공간에서는 사실상 무한정 회전하게 된다.

 

이번엔 엄청나게 큰 납덩어리를 가져와 담요 위에 놓는다고 하자. 우리가 담요를 놓치지만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 담요에 아주 깊고 큰 굴곡이 생기면서 볼링공, 당구공 등이 전부 납덩어리 쪽으로 굴러떨어진다.

 - 담요의 섬유가 파손되면서 아래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 결국 담요가 찢어져 커다란 구멍이 뚫린다. 이제 주변으로 무엇을 굴리든 다 구멍으로 떨어져 내린다.

 - 담요의 구멍과 그 안쪽은 이전의 법칙이 더는 통용되지 않는 다른 세상이다.


방금 우리는 2차원의 담요 우주에 블랙홀을 생성했다. 우주와 천체 사이에서 중력은 담요 실험이 보여주는 바와 아주 비슷하게 작용한다. 질량이 있는 물체는 주변 공간을 저 담요처럼 휘게 한다. 담요는 2차원 평면이고 실제 우주는 3차원 공간이기 때문에 똑같지는 않으나 원리적으로는 대략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2. 중력의 실체를 찾아서 중

 

왜 지구를 비롯한 별들이 태양 주위를 도는지, 왜 블랙홀의 질량이 무한대에 가까운지, 그리고 왜 블랙홀 주변에서는 모든 것이 왜곡되고 빨려드는지 담요 한 장의 예를 통해 간단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블랙홀 근처의 별에서 시간이 느리게 가는 이유는?



출처 – 인터스텔라 누리집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가장 헷갈리면서도 기묘한 장면은 산만 한 파도가 치는 별, 그리고 주인공인 쿠퍼보다 나이를 빨리 먹는 딸 머피와 연관된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블랙홀 주변에서는 시간적으로도 기묘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블랙홀을 향해 자유낙하를 시도한다고 하면 떨어지는 사람은 시간 간격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 채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면 블랙홀 표면에 도달하게 됩니다. 살아 있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밖에서 바라보는 관찰자 입장에서는 떨어지는 사람이 블랙홀에 접근하면 할수록 점점 떨어지는 속도가 느려지다가 블랙홀 표면에 이르면 완전히 멈춘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이는 관찰자와 시간의 흐름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데요, 따라서 <인터스텔라>처럼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아빠와 딸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죠.

 

일단 미래로의 시간여행은 가능하다. 물리학적 방법으로는 로켓 같은 비행체를 타고 아주 빠르게 움직이면 된다. 광속에 가까울수록, 긴 시간을 움직일수록 더욱 빠르게 미래로 갈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늦게 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사람 바깥의 세상, 즉 지구의 시간은 그만큼 빨리 흘러간다. 한편 비물리학적 방법으로 안전하게 할 수만 있다면 사람을 오랫동안 동면 상태로 두고 깨어나게 하면 미래로의 시간여행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식이라면 현재로 되돌아오는 건 불가능하다.

 

(...) 그럼 다른 방법은 없을까? 있다. 바로 웜홀이다. 중력을 설명하면서 잠깐 언급했듯이 입구는 블랙홀과 같은 대신 반대편에 화이트홀이라는 게 있어서 들어간 걸 토해낸다. 그렇게 나오면 다른 시공간에 있게 되는데 만약 이걸 임의로 조절할 수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과연 웜홀이 존재하는지 확실하지 않고, 존재한다 한들 블랙홀의 엄청난 중력을 버틸 물체가 있을 리 만무하다. 게다가 웜홀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하려 들 때 필요한 과학이론, 엔지니어링 기술, 에너지 등을 감안한다면 그저 막막할 뿐이다.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4. 시간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중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에서 설명하는 시간여행 방법이 모두 혼합되어 인터스텔라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빠른 로켓, 동면, 상대성이론, 웜홀과 블랙홀까지 말이죠.


출처 – 인터스텔라 유튜브

 

 

블랙홀의 초거대 중력 문제는 특수한 형태의 회전하는 블랙홀의 경우 해결될 수 있다. 이런 블랙홀을 제안자의 이름을 따 커블랙홀(Kerr Black Hole)이라고 하는데, 중력이 무한대인 특이점이 점이 아닌 링 모양이기 때문에 이걸 따라 들어가면 원심력과 상쇄되어 편안하게 진입할 수 있다고 한다. 만일 이게 웜홀로 연결된 경우라면 다른 시공간에서 등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혹은 다른 우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물리법칙이 다를 가능성이 커 살아남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중력이 수백 배 강하게 작용하는 우주로 튀어나온다고 하자. 그러면 세상의 경이를 살펴보기는커녕 1초도 안 돼 짜부라지고 만다.)

 

커블랙홀에 붙은 웜홀을 발견했다 한들 과거로 가려면 반대쪽 출구, 즉 화이트홀을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이쪽 블랙홀 입구에서 멀어지게 했다가 다시 가깝게 오도록 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작업인데, 다른 문제는 이 방법은 화이트홀 쪽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도록 만드는 것이어서 작업이 시작된 지점까지만 과거로 돌아올 수 있고 그 이전으로는 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4. 시간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중

 

인듀어런스호가 지구를 떠나 다른 은하계로 갈 때 웜홀을 통했고, 쿠퍼는 마지막에 커블랙홀로 뛰어들어 다른 시공간에서 5차원의 존재들과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실제 물리학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출처 – 인터스텔라 다음TV팟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북콘서트를 마무리하면서 원종우 작가는 "결국 희망은 과학에 있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광대한 우주 속에서 인간이란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우리가 과학의 눈을 통해 우주의 질서를 논하고 장엄한 천체의 운행을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인터스텔라>에서 인간은 광대한 우주로 눈을 돌렸으나 결국 돌아온 곳은 가족의 곁이었죠. 학창시절 골머리를 썩이던 어려운 물리학 이론을 <인터스텔라>와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로 엮어서 풀어보니 재미있지 않나요?

 

우리가 사는 동안 우주의 진실을 모두 알지는 못하더라도, 오늘보다는 내일 조금씩 가까워짐을 느낀다면 우리는 의미 없이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이치를 깨닫게 됩니다. 그 느낌은 단순한 신비감이나 경이감을 넘어 우리의 삶에 깊은 위안을 주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북콘서트에서 다 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와 <인터스텔라>의 배경이 되는 과학 지식이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에 담겨 있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저희가 출간한 책이어서가 아니라 "현대과학, 인문학, SF를 통섭하는 재미"라는 부제가 괜히 달린 것이 아님을 아시게 될 테니까요.


우주적 상상력을 과시하며 1000만 관객 동원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인터스텔라>. 인기가 어찌나 많은지 요즘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며 허니버터칩을 먹는 게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올 정도입니다. 오늘은 우주적 상상력의 즐거움을 주는 영화와 달리 노동자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애환을 그려낸 영화 <카트>입니다.

 

<카트>는 대형마트 비정규직과 정규직 직원들이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 뒤 노조를 결성해 사용자 측의 횡포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입니다. 2007년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전후로 벌어진 이랜드 리테일 소속 유통업체 계산원 노동자들의 투쟁을 극적으로 재구성했지요. 당시 상암 월드컵경기장역 근처를 지나가 본 분이라면 홈에버 앞에서 연일 벌어지던 파업 투쟁을 기억하실 겁니다. 우리 생활에 밀접한 마트 비정규직의 파업을 모티브로 하고 있기에 이 영화는 아주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출처 – 카트 누리집



영화 카트의 실화, 2007년 이랜드 홈에버 사태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영화 카트의 모티브는 2007년 이랜드 홈에버 사태였습니다. 당시 이랜드 그룹은 2년 이상 근무한 상시고용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둔 시점에, 홈에버의 계산원 등 비정규직을 포함해 계열사 근로자의 700여 명을 해고합니다. 이 중에는 계약 기간이 끝나지도 않은 근로자도 많았습니다. 이랜드 그룹은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하고 그들의 일을 외주 용역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해고된 노동자들은 사용자 측의 불합리한 조처에 반발하며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있는 홈에버를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희생 끝에 마무리되어 노동자가 계산대로 돌아가기까지 이 사태는 510일이나 이어졌습니다.


출처 - 프레시안


비정규직보호법은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로 근무하는 경우 무기 계약 근로자로 전환하도록 법으로 보증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기업이 정규직 전환을 막기 위해 이 법을 악용해 노동자를 고용한 뒤 2년이 되기 전에 해고를 일삼는 작태를 보여왔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고용 불안이 본격화된 출발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요. 생각비행이 출간한 책,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의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이 2년인 경우에, 이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계약 만료 없이 계속 근무하게 되면 입사일로부터 2년이 되는 바로 다음 날부터 더 이상 기간제 근로자가 아닙니다. 계약 기간이 끝나고 '상당 기간' 더 근무를 해야만 갱신이 인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법이 명확하게 '2년'을 정해놨기 때문입니다. 만약 2년이 넘은 며칠 후 회사에서 계약 만료를 통보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기간 만료에 따른 계약 해지'가 아니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를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105쪽

14.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 재계약 없이 계속 일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나요?


이처럼 계약 기간에서 하루만 넘어도 근로자의 신분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탐욕적인 기업들은 기를 쓰고 2년 안에 해고하려고 열을 올리는 이유가 됩니다.



억울하지 않으려면... 아는 것이 힘!


영화 <카트>에서 태영이는 수학여행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급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오히려 따귀를 맞습니다. 태영이의 여자친구가 분을 참지 못하고 편의점 유리문을 깨자 편의점 사장을 포함해 세 명이 경찰서로 끌려갑니다. 급히 경찰서를 찾은 태영이의 엄마(선희)가 아들에게 묻습니다. 왜 그랬느냐고. 그때 태영이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억울해서..."


사실 그 심정은 마트에서 파업 중이던 선희가 싸우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저 계속 일하게 해달라고,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아라고 하는 소박한 바람뿐이었는데, 이토록 냉혹한 현실과 마주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분기탱천해 편의점 사장한테서 아들의 급료를 기어이 받아낸 선희는 아들에게 돈을 건네며 힘들게 번 돈이니 네가 받아 쓸 권리가 있다고 얘기해줍니다.
 

출처 – 카트 누리집


사실 이런 상황은 영화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노동법을 잘 모르는 사회 초년생한테서 이른바 '열정페이'라며 뜯어먹는 나쁜 어른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애초에 억울할 일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게 가장 좋겠지만, 당장 현실이 바뀌지는 않기에 당하지 않으려면 역시 '아는 게 힘'입니다. 노동법을 안다면 아르바이트든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반드시 근로계약서를 쓰셔야 합니다.
 

2.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 조항

근로계약에서 정한 임금이 '최저임금'에 모자랄 수 있습니다. 주로 급여 수준이 적은 경비직, 생산직, 일용직, 아르바이트생의 경우에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합니다. 최저임금은 최저임금법에 의해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되고 고용노동부 장관 고시로 이듬해 적용됩니다. 근로계약에서 정한 임금이 그 해 최저임금보다 적으면 사용자는 그 차액을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강행법규인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82쪽

07. 근로계약서에서 무엇을 살펴봐야 하나요? 중 <근로계약서에 있더라도 효력이 없는 규정들>


근로계약서를 썼더라도 악덕 사장이 네가 서명한 계약서니 지키라고 강요하더라도 효력이 없는 규정에 관한 내용은 잠자코 넘어가지 마세요. 최저 임금보다 낮은 금액을 임금으로 지급했다면 사장의 잘못입니다. 아르바이트비와 별도로 법에 따라 처벌받게 할 수도 있으니 당당하게 나가시기 바랍니다.


출처 – 카트 누리집


이는 비정규직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 너무 만연해 있어 무심코 넘어가곤 하는데 원래 같은 일을 하는 근로자라면 정규직/비정규직에 따라 급여를 차별할 수 없습니다.


2007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일명 '비정규직 보호법')에서는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임금 등 근로조건에 정규직과 차별을 둘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비정규직 차별이 있다면 노동위원회에 차별 시정을 신청하고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이때 차별에 대한 입증 책임을 '사용자'가 지도록 해서 사용자가 차별이 없었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차별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353쪽

55. 비정규직이면 정규직과 비슷한 일을 해도 월급이 적은 건가요?


다만 이 경우 법적 표현이 미비해 현실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나 노무사 등 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빈번합니다. 따라서 비슷한 상황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을 때는 가급적 함께 행동하는 편이 좋습니다. 노동위원회에 차별신청을 할 때에는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대표자를 선정해 진행할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있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일반적으로 비정규직은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어렵고, 차별 시정의 문제에서는 정규직 노조가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시정이 됨으로써 혜택을 볼 수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충분히 논의한 후 신중하게 진행하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단독으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전문가의 조언을 구해 향후에 있을 상황을 충분히 예측하고 진행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뭉치면 강하다! 

노동조합이라는 하나의 대안


아이 급식비와 수학여행비를 버는 선희, 싱글맘 혜미, 면접만 50번 넘게 떨어진 취업 준비생 미진, 나이가 들었어도 안락한 생활을 꿈꾸기 힘든 순례... 영화 <카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뭉쳐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노동조합이 뭔지 노동법이 뭔지 몰랐던 사람들이 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점차 변화되는 모습을 포착합니다. 노조는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이자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영화 <카트>에서처럼 또는 뉴스에서 흔히 보이는 장면처럼 노사 간 충돌이 생길 때 노동자의 연대를 막는 공권력 행사가 비일비재하니까요.


출처 – 카트 누리집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해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라고 합니다. 불이익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해고, 퇴직 강요, 전보, 대기발령 등 신분적인 불이익 대우가 있고 차별적 승급, 강등, 각종 수당의 차별적 지급 등을 통한 경제적 불이익 대우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다양한 형태의 정신적 불이익이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방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를 하면 노동위원회에 권리를 침해받은 근로자나 노동조합이 구제신청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노동위원회에서 부당노동행위로 판정하면 구제명령을 내리는데 구제명령의 내용은 각 신청 취지에 따라 다릅니다.

 

노동조합이 여러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정당한' 활동이어야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정당한 쟁의행위(파업 등) 중에는 민형사상 책임이 면제되고 현행법 외에는 노동조합법 위반을 이유로 구속되지 않습니다. 정당한 쟁의행위에 참여한 것을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 취급을 할 수 없고, 파업으로 중단된 업무를 대체근로자나 파견근로자를 통해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441~443쪽

73.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 불이익이 있나요?


그렇지만 영화 <카트>가 잘 그려내듯이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이라도 현실에서 무력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정권이 정책 차원에서 노조를 핍박하는 경우 더더욱 어렵습니다. 준법투쟁조차 불법으로 낙인을 찍어 기소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영화 <카트>에서도 공권력이 투입되어 마트를 점거했던 근로자를 모조리 연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출처 – 카트 누리집



준법투쟁은 겉으로는 파업이나 시간 외 근로 거부나 연차휴가 사용 등 근로자에게 법이 보장한 정당한 권리를 집단적으로 행사하거나 작업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집단행동으로 인해 근로 제공의 양이나 질이 평소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실상 노무 정지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파업이나 태업을 하지 않고도 사업 운영에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준법투쟁으로 생긴 피해를 본 사용자들은 이것이 불법이라고 주장하면서 불법쟁의에 대한 다양한 제재 조치를 취해 노동조합의 준법투쟁을 막으려 합니다.


준법투쟁이 불법인지 아닌지는 일단 준법투쟁이 쟁의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쟁의행위는 파업, 태업 등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입니다. 준법투쟁의 불법 여부를 놓고 많은 법적 분쟁이 발생해왔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448쪽

77. 준법투쟁이 왜 불법인가요?


 

지난 12월 2일 《매일노동뉴스》가 보도한 <파업노동자 대상 손해배상 청구액 10년 새 9배 증가> 기사는 가히 충격적입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민주노총 산하 노조에 청구된 손해배상 규모가 10년 전인 2004년 51개 사업장 575억원에서 올해는 17개 사업장 1천691억6천만원으로 대폭 늘었"으며 "2004년에는 사업장당 평균 손배청구액이 평균 11억3천만원 수준이었다면, 올해는 그 규모가 사업장당 99억5천만원으로 9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파업 한 번 했다가 하나의 사업장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떠안아야 하는 배상 규모가 약 100억 원에 달한다니 기가 막힙니다.


근래 정당한 파업에도 기업들이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현실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평생토록 일해도 갚을 수 없는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는 기업의 속내가 달리 있겠습니까? 기업의 요구에 불응하는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막고 노조의 단합을 와해하려는 심보에 불과하지요. 따라서 기업 차원에서 시도하는 막대한 규모의 배상청구는 소송의 결과와 상관없이 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세력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불법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미국의 법조계는 기업의 부당한 소송을 조기 각하하거나 약식판단으로 기각하고 소송 비용을 제소자에게 부담하게 하는 법리적 판단을 발전시켰습니다. 2010년 현재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27개 주에 전략적 봉쇄소송 규제법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운 대한민국에서 <카트>의 마지막 장면(비정규 노동자의 근무 복귀)은 510일을 투쟁한 끝에 노조 지도부가 희생하는 것을 조건으로 이뤄진 사실입니다. 절반의 성공이자 절반의 실패였던 셈이죠.



'중규직'이라는 웃기고도 슬픈 현실,

연대만이 현실을 변화시킬 원동력!


2014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영화보다도 가혹합니다. 며칠 전 박근혜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중규직'을 신설하겠다고 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보호되고 있는 귀족 노조인 정규직의 권리를 빼앗아야 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이는 영화 <카트>의 모티브가 된 이랜드 홈에버 사태 때부터 예견된 일이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 정규직 대리인 동준은 양심의 가책을 받지만 대부분의 정규직은 나랑 상관없는 비정규직의 일이라며 처음에는 무시합니다. 하지만 곧 사측의 진짜 의도는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정규직까지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한 후 마트 자체를 팔아넘기려는 속셈임을 알게 되죠. 이로써 남의 일이 아니게 된 정규직들도 노조를 만들어 비정규직 노조와 힘을 합칩니다. 사측의 설득에 떠밀려 복직한 직원들과 마트 밖에서 싸우고 있던 직원들이 함께 카트를 밀며 사측과 공권력에 맞서는 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인 연대입니다.


출처 – 카트 누리집


이 영화를 보고 문재인 의원은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든 참여정부의 한 사람으로서 사과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보호와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려는 뜻에서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들었는데, 막상 법이 시행됐을 때 사용자들이 외주용역이나 사내하청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작태를 막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 말이죠.

 

비정규직 문제를 악화시키고 이제 정규직마저 망가뜨리려는 이명박근혜 정부 사람들이 과연 문재인 의원처럼 생각을 돌이킬 날이 올까요? 그날이 오게 하려면 우리는 연대해야 합니다. 비정규직도, 노동조합도, 파업도 유별나거나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의 범위를 따로 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법원은 민법 제35조(법인의 불법행위능력)를 유추 적용해 불법파업에 대한 노조의 민사적 책임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결국 파업의 정당성을 가리는 기준인 파업 주체·목적·방법(수단)·절차 중 하나라도 갖추지 못하면 불법파업이 되어 그에 따른 민사적 책임을 면하기가 어려운 구조입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노동자들의 권리행사와 노동 삼권을 억압할 목적으로 제기되는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법리를 마련해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갈 길이 멀지만 하나하나 바꿔야 합니다. 이를 위한 연대만이 현실을 바꿀 동력입니다.


일요일 저녁 <개그콘서트>가 시청자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면 요즘 금, 토 저녁은 드라마 <미생>이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케이블 드라마라는 핸디캡을 훌쩍 뛰어넘은 만듦새와 막장 요소나 사랑 타령 없는 현실감 있는 전개가 큰 장점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원작인 웹툰 <미생>부터 드라마 <미생>을 관통하는 가장 큰 장점은 직장에서 노동자가 겪는 고뇌와 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배우들임에도 캐릭터에 딱 맞는 훌륭한 연기를 선보여 드라마 <미생>을 보며 시청자가 공감하게 하는 한편 배우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될 정도입니다.

 

특히 장그래, 안영이, 장백기, 한석율 등 사회 초년생이 자신의 처지에서 겪는 직장과 일의 의미는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직장 생활을 좀 오래하신 분들이라면 이들의 실수를 보며 옛날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기도 하고 흐뭇한 미소를 보내기도 하실 겁니다. 때로는 아, 저거 진짜 위험한데... 저러면 안되는데... 싶은 부분도 있을 줄 압니다. 

 

오늘은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들이 직장에서 겪은 일들을 어떻게 하면 더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지 저희가 출간한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내용과 연관 지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출처 – TVN 드라마 미생



시말서, 장백기처럼 쓰다간 큰코다친다


자타공인의 엘리트로서 사수인 강 대리에게 인정받고 주인공인 장그래처럼 주목받으며 일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해 고민이 많은 장백기. 완벽주의적인 모습과 달리 지난 에피소드에서는 술을 마시고 지각해서 동기인 한석율에게 대출을 부탁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는 법. 장백기는 사수인 강 대리에게 걸려 혼쭐이 납니다. 지각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철강팀 상사는 장백기에게 시말서를 써오라고 불호령을 내립니다.


출처 – TVN 드라마 미생


여기서 잠깐. 드라마 <미생>뿐 아니라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심심찮게 대면하는 문서가 바로 시말서입니다. 시말서는 말 그대로 일의 시작(始)과 끝(末)을 적은 글(書)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쓰는 경위서와 같은 개념인데, 직장에선 일반적으로 반성문의 의미가 강합니다. 사실 시말서의 범위는 무척 넓습니다. 드라마 미생의 장백기처럼 지각 같은 소소한 일에 시말서를 쓰라고 하는가 하면, 규정위반 등 경고장이 나갈 수도 있는 일임에도 시말서를 쓰라고 할 수도 있고, 중징계감인 일을 봐주는 차원에서 시말서로 갈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말서 처분 자체는 쓰는 사람에게 큰 불이익이 없습니다. 주의나 경고 같은 처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말서 쓰는 일 자체를 우습게 봤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시말서가 누적되면 인사고과가 나빠집니다. 당연히 승진에도 불리합니다. 또한 시말서가 누적되면 징계수위가 높아질 가능성도 그만큼 커집니다.


시말서는 형사사건으로 치자면 일종의 자백이자 진술서에 해당합니다. 크든 작든 어떤 사실을 자신이 저질렀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행위인 것이죠. 언론 기사나 뉴스에서 보신 적이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자백 한 번 잘못했다거나 진술서 한 번 잘못 썼다가 모든 죄를 옴팡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억울한 일이 시말서 한 번 잘못 썼다가 직장생활에서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앞서 말씀드린 바처럼 시말서는 그 범위가 굉장히 넓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이유에서 시말서를 쓰는 것인지 분명히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기 잘못 이상으로 처벌받을 빌미를 남기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만약 큰 사건에 연루되어 쓰는 시말서라면 표현에 따라 법적 처벌까지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시말서를 잘 쓸 수 있을까요?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의 저자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우선 회사가 원하는 시말서는 '확실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것을 단단히 약속하는 시말서입니다. 경위가 복잡하거나 당사자가 구체적인 내용을 부인할 수도 있는 일인 경우 회사는 시말서를 사실관계에 대한 '증거'로 활용하고자 하기 때문에 되도록 자세하게 경위를 적고 구체적인 내용을 시인하는 시말서를 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원하는 대로 적었다가 나중에 큰 곤란을 겪을 수 있고, 너무 방어적으로만 썼다가 회사에 밉보이거나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더 무거운 징계 처분으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


먼저 잘못한 일에 비해 시말서 정도로 끝나는 게 다행이다 싶은 상황인 경우 그 잘못이 시말서를 썼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말서를 신중하게 아주 잘 써야 합니다. 남들이 이해해줄 만한 불가피한 사정이나 있을 수 있는 실수에 대해 강조하는 편이 좋습니다. 물론 구체적인 경위를 쓰도록 하되 명백한 사실을 중심으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는 부분은 어느 정도 자신의 입장에서 정리하는 게 좋습니다. 단, 시말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비록 이런저런 사정으로 어쩌다 보니 이런 일들이 생겼지만 결과적으로 심려를 끼쳐 드리게 되어 매우 죄송하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성실하게 역량을 발휘하는 믿음직한 직원으로 인정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같은 미사여구로 마무리해줘야 합니다. 무조건 사실을 부인하거나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좀 억울한 면이 있더라도 잘못한 게 전혀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결과적으로 죄송하다’라는 표현 정도는 넣어주는 편이 좋습니다. (…)


어떤 경우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시말서를 쓰라고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시말서 작성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이로 인해 일이 커질 수도 있기 때문에 시말서를 제출하되 ‘이런저런 사유로 이 문제는 본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점을 분명히 표현해야 합니다. 물론 무작정 잘못을 부인하는 자세보다는 자세한 사실관계를 적고 근거를 대면서 설명하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불쾌한 감정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나 강한 어조보다는 객관적인 표현과 겸손한 어조를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역시 마지막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 심려를 끼쳐 드리게 되어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는 표현으로 마무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억울한 상황에서도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고, 이런 점은 향후에 징계와 관련한 법적 분쟁이 생길 때에도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232~234쪽

36. 시말서를 쓰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중에서

 

드라마 미생의 장백기처럼 단순 지각으로 시말서를 쓰는 경우라면 간결히 반성문 성격으로 쓰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책에 나온 표현과 어조를 숙지하여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자기 잘못이 아닌 일로 나중에 억울한 상황이 벌어지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직장내 성희롱 대처,

안영이 같은 상황에선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사실을 직접 표현하라


자원팀 마 부장은 남자 직원들에게 폭언을 일삼고 여자 직원들에게는 성희롱 조의 언어폭력을 일삼아 직장에서 공공의 적으로 통합니다. 마 부장의 눈에는 여자인 주제에 우수한 안영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보고하러 오면 분내 난다, 하이힐 시끄럽다, 시집이나 가겠냐 등등 여성성을 무시하는 발언을 내뱉곤 합니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마 부장은 경쟁사인 삼정의 팀장과 안영이가 마치 사귀기라도 했던 것처럼 성희롱 조의 말을 꺼냅니다. 이때 안영이는 정색하고 “업무와 상관없는 말씀이십니다”라고 대답하고 나가죠.


출처 – TVN 드라마 <미생>



직장 내 성희롱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직접 맞닥뜨릴 경우 대처하기가 어려운 문제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성추행하는 위계에 의한 성추행이 부쩍 뉴스에 나고 있습니다. 신체 접촉과 같은 무거운 성추행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가벼운 성희롱의 경우에도 현명하게 대처하려면 어떻게 하는 편이 좋을까요?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저자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가벼운 성희롱이더라도 불쾌감이 느껴졌다면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자신의 감정만 전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웃으면서 "왜 이러세요~ 이러지 마세요~" 한다거나 정색하면서 "성희롱으로 고발할 거예요!" 하는 방식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웃으면서 대꾸하면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불쾌해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좋으면서 그런다'고 생각하며 점점 더 심한 성희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정색하며 대응할 때는 직장 안에서 이런저런 불리한 상황에 처해질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따라서 웃거나 정색하지 않고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의사를 전달하되 고발하겠다는 말을 하거나 잘못했다는 것을 직접 지적하면 가해자가 매우 불쾌하게 여기고 불이익을 주려 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이런 행동을 당하니 기분이 언짢다'라고 자신의 감정만 전달하는 편이 가장 좋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지속되는 성희롱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거나 가해자에 대한 조치 등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이라면, 기록을 남기고 회사 내 고총처리기구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습니다. 이와 함께 가해자에게는 이메일이나 내용증명을 보내는 편이 좋습니다. 사업주가 가해자이거나 회사 내에서 적정한 처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외부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일단은 법적 조치보다는 회사 내에서 원만하게 문제가 해결되는 방법을 먼저 찾는 편이 좋습니다. 법적 분쟁 형태로 넘어가게 되면 이제는 '가해자'를 상대로 하는 싸움이 아니라 '회사'가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을 문제 삼는 모양새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회사가 가해자를 보호하려 들고 오히려 피해자를 상대로 적극적인 대응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고용노동부나 인권위원회에 진정 고발을 접수하거나 민형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설명서》 249~350쪽

54. 회사에서 성희롱을 당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중에서




웹툰 미생의 뒷이야기,

회사가 산업재해 처리를 해주지 않으려고 한다면?


[특별5부작] 미생 – 사석 :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er/27410


드라마 <미생>의 시작과 함께 원작인 웹툰 <미생>도 특별 5부작이 연재되었습니다. 현재 완결된 이 에피소드는 오 차장의 대리 시절 뒷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본편에서 등장했던 검은 넥타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오 차장의 직속 상사가 과로로 사망했는데 회사는 산업재해 처리를 꺼립니다.

출처 – 다음 웹툰 미생


대표적인 과로사회인 한국이지만 그로 인한 폐해는 오롯이 개인이 지고 있습니다. 일에만 매달리다 보면 가족은커녕 자기 몸조차 돌보지 못하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산업재해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산재는 신청과 증명 모두 노동자가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노동 관련 법 개정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산재 신청은 근로자가 하는 것이고 업무상 재해 사실을 주장하고 입증하는 것도 근로자가 해야 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신청한 내용에 대해 '조사'를 하기는 하지만 보험급여를 지급하는 입장이고 예산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산재 인정이 되도록 발 벗고 나서서 조사하거나 근로자에게 도움이 되는 증거를 찾아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근로자 주장에 허위 사실은 없는지, 입증이 부족하거나 객관적이지 못한 건 아닌지를 확인하는 데 더 적극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해를 당한 근로자는 스스로 입증을 해야 하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설명서》 421~422쪽

69. 회사에서 산재 신청을 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중에서


산재를 증명하려면 정황이나 자료가 충분히 필요한데 의학적 입증뿐 아니라 실제 업무와의 연관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회사가 보유한 자료가 필요합니다. 고로 산재는 회사의 협조 없이 규명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어지간해서는 산재 신청을 해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회사 이미지가 나빠지거나 경영상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하거나 재해 근로자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등의 사유로 비협조적이거나 방해하는 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건설업 같은 경우 재해율이 공사 입찰을 받는 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산재 승인이 나지 않게끔 조장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동료에게 압력을 가해 진술서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재의 경우 처음부터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산재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입증이 불명확한 상황인 데다 회사 역시 비협조적인 상태라면 전문가를 찾아 방법을 논의하는 편이 좋습니다. 덜컥 접수부터 해버리는 것보다는 충분히 입증 자료를 준비한 후 접수하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할 때 충분한 입증을 통해 주장하지 않으면 승인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또한 최초 신청 단계에서 허술한 준비로 승인을 받지 못하면 이후 불복을 제기할 때 결과를 바꾸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산재 신청은 처음부터 충실한 준비를 거쳐 신중하게 제기해야 합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설명서》 423

69. 회사에서 산재 신청을 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중에서

 

어떻게 해야 산재로 인정되는지,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은 어떻게 되는지 등의 세부 사항은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설명서》  부록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다음 웹툰 미생


웹툰 <미생> 특별편에서 과로로 죽은 오 차장의 직속 상사는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회사는 위로금이란 명목으로 산재 보상금을 털어버렸죠. 지급하는 금액이 같더라도 회사 차원에서는 산재로 인정되는 것보다는 위로금을 주는 쪽이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제목과 마찬가지로 '미생'인 우리의 절대다수는 어딘가에서 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의 권리를 명시한 노동법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그리고 뭉치면 더 커집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이 두 가지 아닐까요?

 

 

정규직 집단해고 OECD 34개국 중 4번째로 쉽다

 

지난 12월 4일자 《한겨레》에 우리나라 정규직의 실태를 다룬 기사가 났습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서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며 고용 유연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이때에 아주 적절한 기사를 기획해서 낸 것이죠.

 

기사 내용에 따르면 법과 제도상으로 우리나라의 정규직에 대한 정리해고는 쉬운 편에 속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에 용역을 맡겨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노동시장 지표 비교연구〉 보고서(2013년)를 보면 정규직 집단해고는 34개국 중 4번째로 쉬운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 한겨레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법에서 보장된 정리해고뿐 아니라 명예퇴직, 권고사직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해고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올해 4월 케이티(KT)는 지난해 적자를 이유로 8300명을 명예퇴직시킨 바 있습니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모두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나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있으나 마나 한 조항이라는 게 노동계의 평가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 <미생>, 영화 <카트>에서 극명하게 다뤄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등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입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는 지난 2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전체회의를 열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임금·근로시간·정년연장, 파트너십 구축 등에 대한 14개 세부 과제를 확정·발표했습니다.

 

세부 과제를 살펴보면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로 △원하청,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등 동반성장 방안 △비정규 고용 규제 및 차별 시정 제도 개선 △노동이동성, 고용·임금·근무방식 등 노동시장 활성화 방안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또한 임금·근로시간·정년연장 등에 대해서는 △통상임금 제도 개선 방안 △실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법제도 정비 △정년연장 연착륙을 위한 임금제도 등 개선 방안 등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노사정 파트너십 구축과 관련해 △노사정위는 향후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비조직부문 대표성 강화 △중앙·지역·업종별 사회적 대화 활성화 등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노사정위는 이번에 확정한 세부 과제를 바탕으로 19일까지 큰 틀에서 노사정 기본 합의안을 내겠다고 했습니다. 2015년에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주요 현안들에 대해 한꺼번에 논의를 시작하자는 노사정 합의를 이루어내겠다는 의도입니다. 이에 노사정위가 1월 19일 제5차 전체회의를 열어 노동시장구조 개선을 위한 기본방향 합의 문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하니 어떤 변화가 있을지 유의해서 살펴야 하겠습니다.


8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여름휴가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사정상 올해 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하셨던 분들이나 외출이 어려운 분들, 마지막 주말을 집에서 보내는 분들을 위해 유익한 정보를 알려드릴까 합니다. 우리나라는 여름부터 늦가을까지는 영화제의 계절이지요. 깊어가는 가을에 추수하듯 명작들을 거둬내는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부터 한여름 장마 속에서도 마니아층의 발길을 끄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이르기까지 좋은 영화제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EBS에서 주최하는 EIDF는 조금 특이한 영화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주제로 한 영화제라 그렇기도 하지만 영화제 기간 내내 따끈따끈한 상영작을 영화관이 아닌 집에서도 편하게 시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EBS국제다큐영화제 누리집


EBS국제다큐영화제(EIDF, 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는 2004년 '변혁의 아시아'라는 주제로 시작되어 올해 11회를 맞이한 중견 영화제입니다. 그간 세상과 진실 그리고 희망에 대한 세계 각국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해왔습니다. 올해는 이스라엘 특별전을 마련했다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하는 사건 등으로 다수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보이콧을 선언해 개막 직전 이스라엘 특별전이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EIDF에는 흥미로운 작품이 많습니다. 올해는 '다큐, 희망을 말하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Hope Lies Within US', 즉 희망과 공존이라는 다큐멘터리의 근본정신을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되새기자는 의미의 주제 아래 EIDF 2014가 진행 중입니다.





EIDF가 여느 영화제와 다른 점은 영화제임에도 EBS를 통해 상영 작품을 TV와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화제 기간 내내 EBS 채널로 하루 평균 9시간 방송되고 방송이 끝난 후 일주일 동안 인터넷으로 다시보기를 지원합니다. 그러니 표를 사려고 전쟁을 벌이지 않아도, 시간 맞춰 TV 앞에 앉아 있지 않아도 집에서 편안히 영화제를 즐길 수 있다는 얘깁니다.



 

출처 - EBS국제다큐영화제 누리집


올해는 총 82개국에서 781편이 출품되었고, 그중 23개국 50편을 상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총 38편을 TV로 방영 후 인터넷 다시보기를 지원한다고 하는군요. 회원 가입이나 프로그램 설치를 할 필요도 없이 TV 방영이 끝났다면 다시보기 페이지에서 본편 버튼을 클릭하기만 하면 바로 고화질로 볼 수 있습니다(TV 방영 시간이 아직 지나지 않았으면 본편 다시보기를 해도 예고편만 나옵니다).



EIDF 홈페이지 : http://www.eidf.org


EIDF 극장 예매 시간표 : http://www.eidf.org/kr/schedule/screeningSc01


EIDF TV방송 편성표 : http://www.eidf.org/kr/schedule/tvSchedule


EIDF 2014 상영작 다시보기 : http://www.eidf.org/kr/archive/movieList



지난 25일부터 시작된 EIDF는 오늘까지(8월 31일) 열립니다. 영화관 관람을 원하신다면 위 극장 예매 시간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BS스페이스, 상명대학교, 서울역사박물관, 인디스페이스, KU시네마테크, 롯데시네마 누리꿈(상암)에서 의미 있는 다큐영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생각비행이 다큐멘터리 몇 편을 추천해드립니다.


 



CERN: 세상을 바꾼 60년(다시보기)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뉴스를 통해 그 이름은 들어봤을 겁니다. 신의 입자로 널리 알려진 '힉스 입자'를 발견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힉스 입자를 예견했던 피터 힉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죠. 신의 입자를 발견해 현대 우주론의 마지막 조각을 맞춘 곳이 바로 CERN입니다. 이 연구에 사용된 도구는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였습니다. 다큐멘터리는 CERN에서 일하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이 일의 의미와 보람에 대해 생생한 의견을 들려줍니다. 신의 입자를 밝혀낸 LHC의 전모를 볼 수 있다는 점도 놓칠 수 없는 관람 포인트입니다.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다시보기)


제86회 아카데미상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아 이미 유명세에 오른 음악 다큐멘터리입니다. 평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지만 노래 실력만큼은 진짜 스타 가수들 못지않은 백업 가수들을 조망한 다큐멘터리로 그들의 삶과 인생역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비록 조연으로 밀려났지만 롤링 스톤즈,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앨튼 존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세계 최고의 가수들이 즐비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팝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겁니다.




누가 애런 슈워츠를 죽였는가?(다시보기)


블로그나 SNS를 자주 쓰는 분들이라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CCL)' 'RSS' '레딧' 등의 용어가 익숙하실 텐데요, 이 모두를 만드는데 공통적으로 이름을 올린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 26살의 천재 해커 애런 슈워츠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2013년 1월 자택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이지요. 미국 정부의 정보통신 제도에 반기를 들고 인터넷 사용자의 권리 옹호에 힘썼던 그의 일대기를 그린 이 다큐멘터리는 현대 정보통신 이면에 숨겨진 통제와 권위의 구조를 파헤칩니다. 그리고 기존 체제에 저항하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린 애런 슈워츠가 제기한 문제의식을 꼼꼼히 되새기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간첩 조작, 민간인 사찰 등에서 드러났듯이, 국가기관에 의한 국민의 감시와 통제가 일상적인 현시점에 함께 보시면 좋을 다큐멘터리로 생각해 추천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