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참사를 벌써 잊었나?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국민은 진보적 성향의 교육감을 대거 선택했습니다. 경쟁 위주 교육에 반대하는 기치를 내건 진보교육감이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3곳에서 당선되었습니다. 반면 박근혜 정부의 인사는 퇴행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인사 참극이 따로 없다고 표현해야 할 지경입니다.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지낸 바 있는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아들의 편법 병역면제 및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자진 사퇴했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동영상 파문,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 줄줄이 일어났고, 세월호 참사 이후 국면 전환용으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국무총리 후보로 내세웠으나 변호사 수임료 논란으로 자신 사퇴했지요.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에 이제 인물이 없는 게 아닌가 싶을 무렵 "일본의 식민 지배와 6.25가 하나님의 뜻"이며 "위안부 문제로 일본의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은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인선되었습니다. 

이외에 박근혜 대통령은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논란을 빚은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명예교수를 임기 3년의 방송통신위원회(방통심의위) 위원장에 임명하려고 강행하고 있으며, 친일·독재에 대한 기술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은 것을 두고 '국가·국민적 수치'라며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주장했던 김명수 한국교원대 명예교수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으로 내정했습니다.

유난히 인사 참사가 끊이지 않던 박근혜 정부를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며 6.4 지방선거 이후 변화의 조짐을 기대하던 국민의 가슴에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또 한차례 비수를 꽂았습니다.

출처: 경향신문 (김용민의 그림마당)


청소년이 뽑은 교육감 vs 박근혜 정부가 뽑은 교육부장관

지난 6월 16일자 《한겨레》 지면에 <'세월호 10대'가 뽑은 교육감·시도지사는?>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1618 선거권을 위한 시민연대'가 5월 17~25일에 서울·경기·대구 지역에서 시행한 지방선거 모의 투표 결과를 분석한 기사였는데요, 가상의 투표권을 행사한 1111명의 청소년은 과연 어떤 후보를 선택했을까요?

출처: 한겨레

청소년들은 대중적인 인기나 지역주의로부터 어른들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후보 선택의 제일 중요한 기준은 ‘공약’이었다. 경기도교육감은 실제 선거에서는 7.2%의 득표율로 후보 7명 가운데 꼴찌를 했던 정종희 후보가 26.6%의 득표율로 1위를 했다. 송유현(20) 경기도차세대위원회 위원장은 “청소년들이 제일 고민하는 진로·진학 교육에 대한 정종희 후보의 공약이 호응을 얻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당선자와 접전을 벌였던 조전혁 후보는 정작 청소년 투표에서는 4.9%의 득표율로 꼴찌를 겨우 면했다.   

'세월호 10대'가 뽑은 교육감·시도지사는? (한겨레)
  


시도지사 투표 결과를 보면 청소년들은 어른들보다 더 강하게 세월호 참사를 심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새누리당 후보가 3개 지역에서 모두 야당에 1위를 내주었기 때문입니다. 모의투표에 참가한 고등학교 3학년인 유가현(18) 양은 “침몰하는 세월호를 보면서 저기에 내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조를 너무 못했고, 이후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여당은 찍지 않았다”고 의사를 밝혔습니다.
 
반면 새누리당은 6.4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습니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지방자치발전위원회도 교육감 직선제 폐지 보고서를 의결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교육감으로 진보적 인사가 대거 발탁된 데에는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작용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교육 환경의 변화가 시급하다는 국민의 열망이 분출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오늘 《한겨레》는 사설에서 "세월호의 비극을 겪고 나서, 이제는 우리 아이들을 무한경쟁의 쳇바퀴 안에서 질식시키지 않겠다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무한경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탐욕을 충족시키려는 이기적 인간을 키워냈고, 그런 사회에서는 원칙과 기본을 지키는 최소한의 공동체적 가치도 자리를 잡을 수 없다는 걸 부모들이 깨닫게 되었다"고 논합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 내정한 김명수 한국교원대 명예교수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시대적 요구에 어울리는 인물이 전혀 아닙니다. 진보교육감을 배출한 전교조를 극도로 적대시하며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당연하다고 했고, 전교조를 막기 위한 이념투쟁을 공공연하게 주장할 뿐 아니라 박 대통령의 선거공약인 선행학습금지법에 대해 개인 기본권 침해라며 반대할 정도로 보수적인 인물입니다. 무엇보다 김 내정자는 친일·독재 미화 기술로 비판받은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옹호하며 "교사와 한국 사학계, 역사교과서 검정을 담당하는 국사편찬위원회까지 이념적으로 좌편향되어 있다"며 "국정화도 검토해야 한다. 역사교육은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이념투쟁도 해야 한다"고 표명했던 사람입니다.
 

교과서를 바꾼다고 매국노가 애국자 되나?

진보교육감들은 지난달 19일 공동공약으로 "친일독재를 미화한 교학사 교과서를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뜻을 분명히했습니다. 생각비행이 펴낸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의 저자 김용택 선생님은 "교육의 중립성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교사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억압을 두고 교육의 중립성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나라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자자손손 가난과 탄압의 대상이 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가난해지는 참으로 이상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시비를 가리려 하면 좌빨이나 종북으로 매도당하고 승진과 출세를 포기해야 하는 나라. 교육과정 정상화를 입버릇처럼 말하는 교과부가 앞장서서 교육과정을 파괴하는 나라.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어느것 하나 기본적인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이런 모순의 근원이 박정희 정권에 있다면 틀린 말일까? 케이비에스(KBS)는 백선엽·이승만 다큐 등을 통해 박정희 미화에 나섰고, 보수단체가 친일·독재자의 동상을 건립하는 일이 일어나는 등, 사회 전반에서 거짓 영웅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이명박 정부부터 시작된 역사 우향우 행보에 화답이라도 하듯 교과부는 2013년부터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고 독재와 민주화 관련 주요 내용을 삭제한다고 했다가 관련 단체와 여론의 반대에 부닥쳤다. 이에 국사편찬위원회는 집필기준에는 넣지 않았지만 4·3항쟁, 4·19혁명, 5·16군사정변,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과 친일 청산 과정을 충실히 기술하라는 고육책을 내놓기도 했다. 얼마 전 뉴라이트 인사들이 이끄는 한국현대사학회가 집필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검정실의 본심사를 처음으로 통과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교과서를 바꾼들 매국노가 애국자가 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바보로 아는지 금방 탄로 날 거짓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 탓에 만인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촛불집회를 보고 반성한다던 대통령.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 자랑 삼아 자기 입으로 말한 비비케이(BBK)조차 부인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4대강 사업을 환경을 살리는 일이라고 거짓말하고,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면서도 줄곧 거짓말을 일삼았다. 정권 말기에는 변모한 사회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한미에프티에이(FTA)가 경제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만 강변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 사회에서 교사들은 지난 세월, 씻을 수 없는 상흔을 간직하고 있다. 교육의 중립성을 말하면서 반공궐기대회에 학생들을 동원하기도 하고,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제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교사이기 때문에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고 침묵을 강요당하고,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조차 행사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취급받으며 살았다.

교사는 교과서를 금과옥조로 생각하고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 교사는 자신의 전공 지식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수학이나 영어교사는 정치가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역사의식이 무엇인지 몰라도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다. 교사이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에 대한 예리한 감각과 올곧은 세계관을 갖추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중요성에 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주권의식에 대한 철학과 소신도 필요하다. 때에 따라서는 정당의 역사며 권력과 폭력을 구별하는 지혜도 일깨워줘야 한다.

경제 사정이 나빠질 때면 으레 ‘다른 건 몰라도 박정희가 경제를 살린 건 사실 아닌가?’ 하며 과거로 회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박정희 시절에 연평균 8.5퍼센트의 경제성장과 국민총생산이 4.5배로 커졌으며 1인당 국민소득이 87달러에서 791달러로 거의 10배 늘었고 수출도 400만 달러에서 210억 달러로 늘었다는 자료를 들먹인다.

그러나 박정희 시절에 연평균 물가지수가 16.5퍼센트였다는 건 알고 있을까? 18년간 수출이 연간 638억 달러에 수입 871억 달러로 무역적자가 233억 달러였다. 이것이 박정희 경제건설 신화의 실체다. 박정희 정권 시절, 농민의 50퍼센트(670만 명)가 농촌을 떠나 도시 근로자가 됐다. 도시의 산업 근로자 확보를 위해 농촌을 황폐화시킨 주범이 누구였는가? 농민이 잘살았다면 왜 농촌을 떠났겠는가? 박정희는 수출을 위해 저임금 정책이 필요했고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저곡가 정책을 펼친 게 아니던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의 토대를 박정희가 닦았다. 독재 권력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보겠다며 재벌과 불법 공생관계를 형성한 것이 정경유착이며, 통화증발과 관치금융으로 특정 기업을 지원함으로써 심각한 빈부격차를 낳았다. 경제성장 신화를 위해 일반 중소기업이 자생력을 상실하고 재벌에 종속되게 만들었으며, 도시는 비대해지고 농촌은 피폐해지는 지역 간 격차마저 양산했다.

독재 권력을 장기간 유지하기 위해 입법부 기능을 축소하고 사법부를 마비시킨 장본인이 박정희였다. 관치경제로 재벌과 권력층이 경제를 독식하는 바람에 개발독재, 부패공화국이 조성되었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반공주의로 동족을 적으로 규정하여 통일을 물 건너가게 한 것도 모자라 유신헌법을 만들어 영구집권을 꿈꾼 이가 바로 박정희 아닌가?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교사는 수능 점수 몇 점 올려주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분별하는 안목을 갖추도록 교육해야 한다.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지혜와, 불의에 분노할 줄 아는 정의감과, 현상과 본질을 분별하는 판단력도 길러줘야 한다. 불의한 세상에서 불의를 보고 침묵한다면 중립이 아니라 악의 편을 돕는 것이라고 했다.

주권이 없는 백성은 노예다. 침묵이 미덕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교사는 지식전달자일 뿐 삶을 안내하는 참스승일 수는 없다. 시행착오는 과거로 충분하다. 교육의 중립성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교사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억압을 두고 교육의 중립성을 기대할 수 없다.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모르는 교사가 어떻게 존경받기를 기대할 것인가?

_《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중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청부의 책임을 촉구하는 교사들

스승의날이었던 지난 5월 15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사무실에서 김정훈 전국교직원노조 위원장과 소속 조합원 등 1만 5853명의 교사가 실명을 내걸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는 <세월호 참극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교사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출처 - 참세상

교사들은 대통령을 향해 "형식적인 사과와 '연출된 위로'가 국민의 억장을 무너뜨렸"다며 "부실한 구난 시스템과 함께 가슴이 내려앉은 국민들은 단 한 명의 목숨도 구하지 못한 국가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 앞에 또 다시 넋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강압과 통제로 합리적 의심을 봉쇄하는 것으로 국민의 분노를 억누를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책무 불이행을 뼈저리게 고백하고 이제라도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뼈를 깎는 책임규명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이런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습니다. 대통령은 무한 권력자가 아니라 무한 책임자입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킬 의지도 능력도 없는 대통령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월호 참극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교사선언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직후 일선 학교에서는 시국선언에 참여했던 교사들에 대한 색출 작업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앞서 교육부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실명으로 글을 올려 대통령 하야를 주장했던 교사들에 대해 <위법한 교사선언 관련자에 대한 조치사항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내 "교사 선언에 참여한 교원을 확인하고 징계처분, 형사고발 등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해 달라"고 요청한 바가 있었습니다.  

출처 - News1

교육부는 지난 6일 학교에서 채택한 교과서의 재심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기준을 현재 학교운영위 '절반 동의'에서 '3분의 2 찬성'으로 높인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학교장의 목소리가 더 세지게 되어 학부모, 학생, 교원 등 교육주체의 자율성이 제한될 여지가 다분합니다.

이런 때에 6.4 지방선거의 진보 교육감 당선자 13명 중 10명이 ‘전교조의 법외노조’ 여부를 가릴 법원 판결을 앞두고 잇따라 재판부에 탄원서를 냈다고 합니다.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될 시 학교 현장에서 겪을 혼란과 교육청의 행정력 낭비를 고려해달라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13명의 진보 교육감과 역사적 퇴행을 일삼는 박근혜 정부 및 새누리당 사이에 벌어질 역사전쟁의 귀추가 주목됩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에 서시겠습니까?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오늘은 2014년 들어 출간한 세 번째 책, 《브랜드 임팩트》를 소개합니다. 이 책은 한국 최초의 브랜드인 부채표 활명수부터 메신저 혁명을 이끈 카카오톡까지 한국을 대표하고, 사회의 변화를 이끌고, 혁신을 거듭한 다양한 브랜드를 소개하는 연대기입니다. 한국 브랜드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살아 있는 역사의 한 축이기도 하지요.

브랜드는 '사랑'이다

브랜드는 소비자의 신뢰를 쌓아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합니다. 세계적인 광고대행사 사치앤사치(Saatchi & Saatchi)의 최고경영자인 케빈 로버츠(Kevin Roberts)는 '러브마크(Love Mark)'라는 개념을 이야기했습니다. 러브마크는 소비자로부터 이성을 뛰어넘는 충성도를 획득한 브랜드를 지칭합니다. 고객은 자신만의 러브마크를 가지고 있으며 러브마크와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러브마크는 고객의 기억을 넘어 가슴속에 남는 브랜드로, 친밀함과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꼬마에게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뽀로로'가, 군인 아저씨에게는 '초코파이'가, 가톨릭 신자에게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마음에 남는 러브마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현재 여러분 곁에 어떤 브랜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브랜드의 존재 목적은 '브랜드를 사랑하는 소비자'이며 '브랜드가 속한 사회'입니다. 기업이 정감 있는 브랜드 스토리를 들려준다면 소비자는 브랜드와 교감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사'를 만들 것이며, 사람들에게 그 브랜드는 한국 사회의 혁신을 이끈 '위대한 유산'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한국 브랜드 연대기”

한국 브랜드 탄생, 성장, 혁신의 역사 120년

브랜드의 역사와 시대의 흐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브랜드를 소비하는 주체가 곧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브랜드 임팩트》는 한국 근현대사의 큰 흐름 속에서 우리와 함께한 다양한 브랜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 브랜드의 이야기에는 시대의 정치․사회적 흐름은 물론 우리네 삶의 애환도 담겨 있다. 

한국 최초의 브랜드인 부채표 활명수부터 메신저 혁명을 이끈 카카오톡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고 사회의 변화를 이끌고 혁신을 거듭한 브랜드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살아 있는 역사의 한 축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브랜드는 모두 한국에서 만들어졌거나 한국인이 만든 토종 브랜드다. 

《브랜드 임팩트》는 19세기 말 이후 우리 브랜드가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선도한 각각의 브랜드가 탄생한 배경, 브랜드의 성장과 혁신, 사회적 가치와 영향력까지 더불어 기술했다. 한국 브랜드 연대기는 다음과 같은 시대 구분을 통해 다뤘다.

① 한국 브랜드의 여명: 개항기(1880년대)~일제강점기(1945년)
② 모방의 역사—미제(美製)를 훔치고 미제를 베끼고: 광복기(1945년)~한국전쟁 극복기(1960년대)
③ 한국 브랜드의 베이비붐: 경제개발 시기(1970년대)
④ 3저 호황은 브랜드 호황: 군부독재와 경제성장기(1980년대)
⑤ 브랜드, 생활의 일부가 되다: 기업의 브랜드 경영기(1990년대)
⑥ 브랜드가 빚어내는 새로운 삶의 양식: 세계화 시대의 브랜드 각축전(2000년대 이후)


한국 브랜드 역사의 특징과 미래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한 대표 브랜드의 특징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브랜드는 일제강점기에 즈음하여 태동했다. 일본의 한국 침략과 일본의 통치는 한국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에 도입된 제도와 문화는 이전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으며 이 시대를 구가한 브랜드는 결국 이러한 정치․사회적인 틀 안에서 태어나고 대중화했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사업가와 기업은 대부분 친일(親日)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나 활명수를 만든 ‘동화약품’처럼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지원한 기업이나 사업가 또한 적지 않았다.

둘째, 한국의 브랜드는 산업화와 그 궤를 같이한다. 경제개발 초창기에 우리나라 기업은 주로 기술의 국산화를 이뤄 고가의 수입품을 저렴한 국산품으로 대체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에 제일제당은 저렴한 가격으로 설탕을 대중화했고 1954년에 럭키는 치약을 국산화했다. 또한 현대자동차는 국산 자동차 모델을 개발하여 한국 산업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셋째, 한국의 브랜드에는 정치·사회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브랜드란 사회 속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1920년대에 일제에 대항하는 ‘물산장려운동’은 해방 이후 ‘국산품 애용 운동’으로, 1998년 IMF 외환위기 직후에는 부도 위기에 직면한 토종 기업과 브랜드를 살리려는 ‘애국심 마케팅’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브랜드는 순수한 소비자의 선택만이 아닌 정치적인 입김에 의해 그 ‘생존’이 좌우되기도 했다.

넷째, 한국 브랜드는 세계화의 물결을 탔다. 1970년대 이후 한국 경제사는 개방의 역사였다. 각 분야에서 문호를 열 때마다 “개방하면 망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드높았지만, 우리 브랜드는 외국산 제품들과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글로벌 시장까지 나아가는 저력을 발휘했다. 한국 브랜드 세계화의 첨병 역할은 주로 대기업이 감당했다. 특히 삼성과 대우는 한국 브랜드 세계화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삼성이 세계 초일류 기업의 반열에 오른 반면 ‘세계경영’와 ‘탱크주의’를 주창했던 대우는 IMF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해체되기에 이른다.

다섯째, 전자·정보 혁명으로 한국 브랜드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는 국내 최초로 라디오, 선풍기, 텔레비전, 에어컨 등을 생산하며 이른바 가전 혁명을 이끌었다. 토종 기업이 만든 각종 전자제품은 일상생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었고, 소비문화 형태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PC통신 천리안의 시작(1986)은 초보적인 사이버커뮤니티의 시작이었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후로 온라인 쇼핑몰 인터파크, 한메일의 무료 이메일 서비스, 싸이월드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 열풍, 네이버 지식인 검색 서비스,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에 이르는 다양한 브랜드가 성장했다.

여섯째, 한국 브랜드는 혁신의 길을 걸어왔다. 혁신은 시장에서 새로운 고객가치를 창조하고 전달하는 프로세스를 말한다. 기업은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 개발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한국의 대표 브랜드는 소비자의 만족을 위해 더 실용적이고 편리한 상품 개발을 멈추지 않는다.

일곱째, 한국의 소비자는 민감하다. 어떤 상품이 선택되고 어떤 상품은 외면당하는가는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가치제안에 달려 있다. 고객의 심리를 알고 이에 맞는 마케팅을 전개할 때 사업도 성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기업은 고객에게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해당하는 가치를 브랜드에 담는다.

과거 한국의 브랜드는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왔다. 기술의 국산화로 가격을 낮추되 품질을 높여 수입제품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각종 신기술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소비자도 변했다. 품질도 중요하지만 품격 있는 소비를 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가 늘어났다. 앞으로 우리 기업과 브랜드는 더 큰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윤 창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제 기업과 브랜드는 책임 있는 자세와 과학적 합리성 그리고 나름의 예술적 감각을 기초로 하여 현실성 있는 답을 제시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러한 때에 한국 브랜드 120년 역사를 담아 출간된 이 책은 한국과 세계를 선도할 새로운 브랜드 스토리의 시작이자 새로운 브랜드 임팩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전병길
사회와 경제 문제에 대한 탐구 정신, 사람에 대한 사랑을 마음에 품고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혁신가의 삶을 살고 있다.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미시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며 우리 경제와 기업의 역사 속에 어려 있는 한(恨)과 매력을 미래지향적인 가치로 풀어내고 싶어 한다. 삶의 현장에서 브랜드를 배우며 미학(美學)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마케팅을 체득하며 시장(市場)과 소비자의 오묘함을 보았다. 마케팅과 사회혁신, 통일문제를 넘나드는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동안 다수의 기업, 공공단체, 비정부기구(NGO), 대학 등을 대상으로 강연과 컨설팅을 해왔다.
정주영의 기업가정신, 앤디 워홀의 상상력, 무하마드 유누스의 실천력을 본받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 한다. 이러한 그를 가리켜 《조선일보》는 ‘새 통일운동의 불씨’로 《국민일보》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설파하는 이’로 표현하기도 했다.
현재 예스이노베이션 경영컨설팅 대표로 있으며, 연세대학교 경영학 박사과정에 있다. 저서로 《새로운 자본주의에 도전하라》(2009, 네이버 오늘의 책), 《코즈마케팅》(2010,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사회혁신 비즈니스》(2013) 등이 있다.


본문 중에서

우리 브랜드의 역사는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정책과 함께 한반도 주변에 이양선이 수시로 출몰하고 중국 청나라로부터 부분적으로나마 서양 문물이 유입되어 조선에 없던 상품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에 대해 학습하게 되었다. 이후 일제강점, 해방과 한국전쟁, 경제발전, 민주화, 세계화 과정을 거치며 한국의 브랜드는 성장과 발전, 변화와 혁신을 거듭했다. ―16~17쪽

조선인의 독특한 식습관으로 말미암아 자주 생기는 소화불량에 대처하기 위해 전통 궁중비법과 서양식 제약 기술을 융합하여 탄생한 ‘부채표 활명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등록 브랜드다. 부채표 활명수는 서양의 브랜드가 활개 치던 개화기라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한국 브랜드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41쪽

2014년 4월 16일,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한 세월호 침몰 사건 당시 배에 타고 있던 승객의 상당수가 카카오톡을 통해 마지막 메시지와 사진을 세상에 남겼다. 그 내용은 사고 당시의 정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했다.
단원고등학교 한 학생이 사고 당일 오전 10시 17분에 부모에게 보낸 “배가 기울고 있어. 엄마 아빠 보고싶어. 배가 또 기울고 있어”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는 수많은 국민의 마음을 비통하게 했다. 이후 세월호 실종자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카카오톡 프로필을 노란리본 사진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대한민국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은 이렇게 산 자와 희생자와 실종자를 연결해주는 통합의 기능을 제공했다. ―383~384쪽

 
차례


• 머리말

1 브랜드의 기원

낙인(烙印) 
‘철도’의 등장과 브랜드의 확산
우리 ‘브랜드의 뿌리’ 연구
한국 브랜드 역사의 7가지 특징
한국 브랜드 연대기

2 한국 브랜드의 여명: 개항기(1880년대)~일제강점기(1945년)


우리나라 최초의 브랜드 생명을 살리는 물 부채표 활명수
‘맛’의 혁명을 일으킨 일제강점기 대표 브랜드 아지노모도(味の素)
선진화된 유통 시스템을 도입한 현대식 소비문화의 집약체 화신백화점
신뢰의 상징이 된 버들표 유한양행
격동의 세기를 함께한 언론계의 쌍두마차 《조선일보》《동아일보》

3 모방의 역사—미제(美製)를 훔치고 미제를 베끼고: 
  광복기(1945년)~한국전쟁 극복기(1960년대)


미제와 똑같은 국산 브랜드의 품질 럭키치약
범접할 수 없는 맑고 깨끗한 맛 칠성사이다
대한민국 화장품의 품질과 유통의 혁명을 이끈 아모레퍼시픽 
아련한 추억 그때 그 맛 백설표
한국 전자산업의 살아 있는 역사 금성사(LG전자)
서민의 배고픔을 달래주던 일등공신 삼양라면, 농심라면
한국인의 피로회복제 박카스
삼천리 구석구석 퍼진 동그라미의 물결 삼천리자전거

4 한국 브랜드의 베이비붐: 경제개발 시기(1970년대)


세계로 비상하는 한국인의 날개 대한항공
두꺼비 한 마리가 이룩한 주류계의 성공신화 진로(참이슬)소주
자꾸만 손이 가는 국민과자의 탄생 새우깡
정(情)이 담긴 한국인의 영양간식 초코파이
주부의 마음을 읽는 생활용품 제국 애경
세계를 달리는 우리 기술 현대자동차
한국형 아파트 건설의 교과서 현대아파트

5 3저 호황은 브랜드 호황: 군부독재와 경제성장기(1980년대)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패스트푸드 롯데리아
색다른 개성으로 중저가 패션 시장을 이끈 이랜드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브랜드 프로스펙스
바른 먹거리를 고민하는 신선식품의 선구자 풀무원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 통조림 동원참치
전설의 스타 군단 해태
문구류 시장에 피어난 아침의 영광 모닝글로리

6 브랜드, 생활의 일부가 되다: 기업의 브랜드 경영기(1990년대)


대한민국 워드프로세서의 자존심 한글
온가족이 함께 즐기는 도심형 테마파크 롯데월드
월마트를 물리친 한국형 마트의 개척자 이마트
깨끗하고 신선한 이미지로 대한민국 맥주 시장의 판도를 바꾼 하이트(HITE)
김치냉장고의 블루오션을 개척한 딤채
‘애니콜’에서 ‘갤럭시’까지 정보통신 시장을 주도한 삼성 모바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SK텔레콤

7 브랜드가 빚어내는 새로운 삶의 양식:
   세계화 시대의 브랜드 각축전(2000년대 이후)


인터넷 포털의 절대 강자 네이버
사교육 산업화를 이끈 인터넷 강의 신화 메가스터디
새로운 소비문화의 상징 온라인 쇼핑몰 인터파크
문화 콘텐츠 복합체 한국형 멀티플렉스의 신화 CGV
브랜드 라이선싱의 가치를 입증한 어린이들의 대통령 뽀로로
새로운 브랜드 전략 카드는 삶의 디자인이다 현대카드
소외된 이들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아름다운가게
인간관계를 확장하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

8 아리랑 임팩트

제품은 사라져도 브랜드는 남는다
한국 브랜드 속 아리랑 DNA
‘명성(Reputation)’을 관리하라
국가 브랜드가 너희를 보증하리라
앞으로 쓸 브랜드 스토리

• 출처


《브랜드 임팩트》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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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세계인의 축구 대축제 2014 월드컵이 드디어 개막했습니다. 특히 이번 월드컵은 영원한 우승 후보인 브라질에서 열려 관심이 더욱 뜨거운데요, 안타까운 평가전 성적을 거둔 대한민국 선수단이 과연 어떤 경기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스포츠 축제인 월드컵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이는 축구를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만은 아닙니다. 정재계 관계자들도 월드컵 시즌이 되면 큰 관심을 보입니다. 브랜드 가치 상승과 그에 따른 경제 효과 때문인데요. 과연 브랜드 가치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출처 - 매일경제


월드컵, 올림픽의 브랜드 가치와 경제효과

KDI(한국개발연구원)은 2001년 5월 <2002 한일월드컵 경제파급 효과>라는 보고서를 낸 바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월드컵의 직접효과로 총 3조 4707억 원의 지출을 통하여 부가가치 5조 3357억 원, 생산유발효과 11조 4797억 원, 고용 35만여 명이 창출되는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또한 월드컵의 국가홍보효과는 올림픽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 국가 이미지 제고 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수출증대, 관광 및 스포츠마케팅산업 진흥, 지역경제 활성화 등 무형의 간접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한편 영국의 앳킨슨 연구팀은 영국 국민을 대상으로 2012년 런던 올림픽의 무형적 가치(intangible value)를 조사한 바 있습니다. 특히 국제 스포츠 대회가 사회 부문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했는데요, 영국 국민은 올림픽을 통해 청소년이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는 동기 부여의 계기가 된다는 점을 가장 큰 효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으로 국민통합, 영국 국민으로 자부심 고취, 올림픽 대회 시설 유산, 장애인 올림픽을 통한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대회 준비과정에서 환경의 질 개선, 건강한 생활 촉진, 올림픽 기간의 다양한 사회문화 이벤트 순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브라질 월드컵은 어느 정도의 경제효과를 가져올까요? 《비즈니스워치》의 분석에 따르면 브라질이 월드컵을 통해 누리게 될 경제부양 효과는 국내총생산(GDP)의 1.5퍼센트에 해당하는 240억 달러(2조 50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25만 명의 고용창출 효과도 전망되었습니다. 브라질을 방문할 관광객 수도 2014년 이후 평년보다 70퍼센트 가량 늘어나 6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었고, 이런 기대감은 곧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브라질이 월드컵 개최국으로 선정된 2007년 한 해 동안 브라질 주가는 44퍼센트나 치솟았죠. 월드컵과 증시는 꽤 높은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월드컵 개최국 증시는 월드컵을 치른 후 약 한 달간 다른 증시보다 우월한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참고 기사: [월드컵 이펙트]①`지상최대 이벤트` 경제효과는 (비즈니스워치))

출처 - 한국일보

월드컵에서 우승한다면 증시는 더욱 오르겠지요. 2002년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1974년 이후 우승한 국가의 증시는 한 달간 시장수익률을 웃돌았다고 하니까요. 이렇듯 오늘날 월드컵과 올림픽 같은 세계적 규모의 스포츠 마케팅 시장의 힘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마찬가지여서 국가, 기업 간 경쟁도 날로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브랜드 이미지 상승에 따른 브랜드 가치의 제고는 기업과 국가에 투자 대비 어마어마한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출처 - 매일경제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KT는 100배 이익 효과

이번에는 한 기업의 수준에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지난 2002 한일월드컵 공식파트너였던 KT는 400억 원 정도를 투자해 100배가 넘는 5조 원 이상의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2010 남아공월드컵의 경우 FIFA의 공식 파트너 6개사와 스폰서 8개사가 제휴해 쏟아부은 마케팅 비용은 20조 원에 달했죠. 공식 후원사가 아닌 다국적기업도 스포츠 마케팅으로 80조 원가량의 비용을 썼다고합니다. 마케팅 부문의 월드컵 시장 규모만 어림잡아도 무려 100조 원을 넘어서는 셈입니다. (참고 기사: 기업 월드컵 마케팅 열기 '후끈'(메트로))

출처 - 주간한국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현대자동차는 브랜드 인지도가 10퍼센트 상승해 65억 달러(6조 2200여억 원)의 경제효과를 거뒀고, 독일 월드컵에서는 96억 달러의 경제효과를 누렸다고 합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공식 파트너로 선정된 현대/기아 자동차는 벌써부터 이번 월드컵의 최대 수혜자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기업부터 국가, 이제는 개인에 이르기까지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는 브랜드. 그렇다면 과연 브랜드는 어디에서 유래했을까요?


브랜드, 차별에서 구별로 발전하다


낙인제도는 고대 로마에도 있었다. 로마제국은 수많은 민족을 식민지로 거느렸다. 하지만 정부의 감독이 조금만 느슨해지면 어디선가 폭동이나 반란이 일어났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로마의 형벌은 잔혹하고 무서웠다. 벌을 받은 뒤에도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평생 감출 수 없도록 얼굴에 인두로 죄명을 지져 새겼다. 한편 유럽에서는 가축한테 낙인을 찍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거론하는 브랜드(brand)라는 용어가 노르웨이의 옛말인 ‘brandr’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달구어 지진다’는 뜻으로, 이웃 목장의 가축과 내 집의 가축을 구별하기 위해 가축의 등이나 엉덩이를 불에 달군 인두로 지져 표시했던 데에서 나왔다.


이처럼 브랜드는 애초에 '차별'의 의미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구별'의 뜻으로 발전합니다. 제품을 생산한 장인의 이름을 새겨넣거나 만든 길드의 이름을 적어넣는 것에서 품질과 서비스를 보증한다는 초기 브랜드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죠.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을 거쳐 미국의 동서를 연결하는 대륙 횡단 철도가 등장하면서 브랜드는 폭발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현대로 접어들어 기업의 이미지를 대변하던 브랜드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국가와 개인 차원의 이미지까지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가장 치열한 브랜드 각축장 중 하나가 바로 월드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가 너희를 보증하리라

2003년 문화관광부 국가브랜드 경영연구소에서 나온 <문화를 통한 국가브랜드가치 제고전략 보고서>는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견인한 국가 브랜드 가치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출처 - 문화를 통한 국가브랜드가치 제고전략 보고서
 

1990년대까지 한국의 국가이미지는 대체로 한국전쟁, 분단국가, 군부독재, 시위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경제발전, 친절한 국민성, 서울올림픽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보다 우세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제경영전략연구원의 조사결과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로 분쟁지역(24.7%), 군부독재, 시위(2.0%)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경제발전(9.3%), 근면, 친절한 국민성(9.1%), 서울올림픽 및 2002년 월드컵대회 개최지(7.7%) 등의 긍정적 이미지를 압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2002년 월드컵대회를 전후로 한국은 부정적인 국가이미지를 벗어나 역동적인 국민성, 우수한 기술력, 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를 보유한 국가라는 긍정적 이미지가 확산되고 있다. 해외홍보원이 2001년 8월부터 9월까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 5개국 4,259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국가이미지 조사결과에 의하면, 응답자들은 한국의 전반적인 성장, 경제발전, 민주화 및 기술수준 등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해외홍보원, 2001). 이 같은 조사결과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월드컵대회를 계기로 한국의 해외 인지도와 긍정적 이미지는 많이 높아졌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일제 식민지 지배, 전쟁의 상흔과 폐허, 극단적 가난이라는 대한민국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크게 전환한 계기가 되었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뿐 아니라 각국 정부는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을 위해 점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국제관계연구소의 피테르 반함은 2001년 가을《포린 어페어(Foreign Affairs)》에 기고한〈브랜드 국가의 번영(The Rise of the Brand State)〉이라는 글에서 현대에 들어와 국가도 브랜드화되었으며 과거 외교, 경제적 계산에 입각한 전통적인 국가 경영보다 국가 브랜드 구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적하며 자국의 브랜드 관리가 각국 정치인의 주된 임무로 떠오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상품을 파는 기업만큼이나 국가도 외교적인 목적 달성, 외국인 투자 유치, 자국 기업을 국가 이미지로 지원하기 위해 국가 브랜드 구축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출처 - 국민일보

브랜드 구축과 브랜드 가치 상승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의 브랜드는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왔습니다. 기술의 국산화로 가격은 낮추되 품질을 높여 수입제품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각종 신기술 개발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소비자는 과거의 소비자와는 다릅니다. 품질도 중요하지만 품격 있는 소비를 하고 싶어하는 소비자가 늘어났습니다.

시장 상황이 변화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브랜드 역사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브랜드는 어떤 역사를 거쳐 오늘에 이른 걸까요? 생각비행의 신간 《브랜드 임팩트―부채표 활명수부터 카카오톡까지, 대한민국 브랜드 역사 120년》이 펼쳐낼 이야기입니다. 월드컵 시즌에 우리 토종 브랜드의 탄생, 성장, 혁신의 역사, 브랜드 가치와 사회적 영향력을 소개하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총리 후보의 망언, 그 끝은 어디인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다. 일본 극우 세력의 망언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이 총리 후보로 내세운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의 망언입니다. 문 후보자가 지난 2011~2012년 사이 서울 지역의 여러 교회와 단체에서 행한 강연 내용이죠.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문 후보자는 "(하나님이) 남북 분단을 만들어 주셨어.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라는 말도 했더군요.

출처 - KBS

이뿐이 아닙니다. 문 후보자가 2011년 6월 강연에서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거, 이게 우리 민족의 디엔에이(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라며 우리 민족성을 거론한 내용은 일본 극우파의 논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할 총리라는 공직에 내세울 인사가 이런 친일파밖에 없다니!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참사는 정권 시작 때부터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변한 것이 하나 없습니다. 초록은 동색이요, 가재는 게 편인 법이지요.

그런데 시민의 분노를 자아내는 문 후보자의 망언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는 초빙교수로 있던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의 마지막 강연에서 얼마 전에 있었던 퀴어문화축제와 관련하여 "무슨 게이퍼레이드를 한다고 신촌 도로를 왔다 갔다 하고... 이 나라가 망하려고 하는 거다"라며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했습니다. 성소수자를 폄훼하는 발언을 학생들 앞에서 서슴지 않는 이가 어떻게 교수가 될 수 있고, 어떻게 총리 후보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이는 문창극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 특히 성소수자를 대하는 극도의 혐오감과 배타성이 위험한 수준에 달해 있기 때문입니다.


퀴어문화축제를 막아선 보수단체와 극우 기독교단체

출처 - 퀴어문화축제

올해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Love Conquers Hate)"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열린 퀴어문화축제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를 위한 축제로 지난 2000년부터 매년 6월에 열립니다. 퀴어문화축제는 크게 퀴어 퍼레이드, 퀴어 영화제, 퀴어 파티 등으로 진행됩니다. 이 밖에도 토론회, 전시회, 사진전 등이 열려 성소수자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거나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관심을 유도합니다.

출처 - 레디앙

한국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가시화된 지 20주년이 되는 2014년은 성소수자들에게 의미 있는 해입니다. 그 때문에 지난 주말인 6월 7일 신촌에서 열린 제15회 퀴어문화축제는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되어 가장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성소수자를 핍박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본격화되었습니다. 동성애는 죄, 동성애는 질병, 동성애는 에이즈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보수단체와 극우 기독교계, 성소수자 혐오자들이 몰려나와 퀴어 퍼레이드를 막으며 드러누워 버린 겁니다.

출처 - 웰페어뉴스

성소수자들의 축제에 와서 몰이해를 바탕으로 혐오를 드러내며 분탕질을 한 것 자체도 문제지만 경찰의 대응도 큰 문제였습니다. 보수단체와 극우 기독교 단체 등 성소수자 혐오자들이 퀴어 퍼레이드 진행을 막아서자 경찰은 둘 사이에 서서 시간만 보냈습니다. 무려 10여 차례에 걸쳐 해산 권고 방송을 하며 4시간 동안을 그냥 지켜만 본 겁니다.

출처 – 민중의소리

경찰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퀴어 퍼레이드는 신고까지 마친 합법 행진이나 그 앞을 가로막은 성소수자 혐오자들의 행위는 불법 집회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세월호 참사에 항의하는 1인 시위와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 때는 미란다 원칙조차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할머니와 수녀를 짓밟고 끌어내는 경찰이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를 드러내며 불법 시위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왜 그토록 관대했던 걸까요? 평소에 경찰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도로 불법 점유까지 했는데 말입니다. 법 집행의 형평성이 어긋나도 보통 어긋난 게 아닙니다.

결국 4시간이 지난 후 퀴어문화축제 측은 경로를 바꿔 퍼레이드를 마무리했습니다. 유럽과 영미권에서는 상식에 속하는 차별금지법조차 제정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입니다.


여고에서 동성애자 색출 설문까지 일삼아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한 여고에서 시행한 것으로 알려진 동성애 조사 설문지가 논란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이 설문지의 문항들이 동성애자 보호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사실상 동성애자 색출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동성애 조사 설문은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시행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1년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측에서 발행한 성적소수자 학교 내 차별 사례 모음집에 실린 것이라고 합니다. 설문지의 문항은 동성애 학생에 대해 학교가 취해야 할 조치로 학교 내 봉사 활동과 무기정학, 퇴학까지 거론하고 있습니다. 동성애를 벌 받아야 할 잘못으로 몰아가고 있는 건데요. 마지막 항목은 한술 더 떠서 동성애를 하는 친구를 고자질하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 설문지 때문에 피해를 본 학생들은 실제 동성애자이건 아니건 교무실로 불려가 진술서를 쓰거나 엎드려뻗쳐 등의 얼차려를 받았으며, 정학을 당하거나 학부모에게 생활기록부를 들먹였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학교가 학생들에게 하는 행태와 나치가 유대인에게 저지른 만행이 대체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시기의 학생들에게 섬세한 대화를 시도하지는 못할망정 은밀히 들춰내고 벌을 주다니요.

작년 말 서울학생인권조례에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성소수자 등의 표현이 삭제되는 개악이 있었는데요. 학생들, 그중에서도 특히 소수자들의 인권은 표현에서부터 실상까지 급속히 퇴행하고 있습니다.


사전적 정의를 뒤흔든 국립국어원의 퇴행

소수자들에 대한 인권 퇴행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랑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뒤바뀐 것입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사랑「명사」
「1」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4」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국립국어원은 지난 1월 말 사랑의 뜻풀이를 한 차례 더 변경했다. 2012년 11월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정의했던 것을 2년도 안 돼 다시 바꾼 것. 가장 큰 변화는 '남녀'라는 단어의 복귀다. 사전적 정의에서 사라졌던 '남녀'가 다시 돌아왔다. 앰네스티 대학생 네트워크는 2012년 '이성애 중심 표준어 정의 개정 캠페인'을 벌여 '사랑'과 '연애', '애정' 등 단어를 정의할 때 '남녀'가 아닌 '모든' 사람을 포괄할 수 있도록 개정하자는 운동을 벌였다. 당시 국립국어원은 '남녀'를 '두 사람'이라고 고쳐, 보다 중립적이고 포괄적으로 바꿨다. 오래가지 못했다. 2년도 안 돼 사랑의 정의는 다시 '남녀'로 한정됐다. '연애'나 '애정' 등 단어도 행위주체가 '사람'에서 '남녀'로 되돌아갔다.


앰네스티 대학생 네트워크의 캠페인 덕분에 사랑의 정의가 이성애 중심의 ‘남녀’에서 동성애까지 포괄할 수 있는 ‘어떤 상대’로 개정되었으나, 2년이 채 못 되어 반대 단체들의 압력으로 다시 ‘남녀’로 돌아갔다는 얘깁니다.

국립국어원 측은 이에 대해 뜻풀이가 지나치게 포괄적이었다며, 국립국어원은 언어전문기관으로서 언어 관련 부분만 논할 뿐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민현식 국립국어원장은 동성애차별금지법 입법 시 기독교 측 인사로 반대 서명을 한 전력이 있으며,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과연 국립국어원은 정말로 가치판단을 하지 않은 걸까요?

출처 – 네이버 웹툰

여성 동성애자, 레즈비언으로서 사는 삶을 만화로 그려내고 있는 완자 작가는 국립국어원의 이상한 퇴행 움직임에 반대하며 자신의 웹툰 <모두에게 완자가> 181화 '감정에 대한 정의'라는 에피소드로 안타까움을 토로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고 좋아하는데 국립국어원은 어째서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 걸까요?


국가인권위원회의 국제 위상 추락, ICC 등급 보류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인권 퇴행을 겪은 우리나라는 최근 부끄러운 통보를 받았습니다. 세계 120여 개국의 인권기구 연합체인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가 정기 등급 심사에서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에 등급 보류 판정을 내린 것이죠. 이는 2004년 ICC 가입 이후 처음 있는 사태입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우리나라 인권위 규정에 인권 위원 임명 절차의 투명성과 시민단체 등의 참여가 보장되어 있지 않고, 인권위원과 직원 구성의 다양성 보장이 미비하며, 인권위원과 직원 활동에 대한 면책 조항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ICC는 6월 30일까지 이 지적 사항에 대한 답변을 요청했으며 이를 적절히 답하지 못해 등급이 강등되면 ICC 내 각종 투표권을 상실하게 된다고 합니다.

출처 - 여성신문

가입 이후 한때 ICC 내에서 독보적 위상을 자랑했던 우리나라 인권위가 이명박 정부 시절 낙하산으로 꽂아넣은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때부터 망가지기 시작하더니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 정기 등급 심사에서 등급 강등이라는 초유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부끄러운 우리나라 인권의 현주소입니다.

2001년 인권위 출범에 맞춰 제정된 현행 인권위법은 대통령(4명 지명), 국회(4명 지명), 대법원장(3명 지명)이 인권위원을 사실상 지명하는 방식으로 돼 있다. 이런 구성 방식이 출범 초기부터 문제로 지적되긴 했으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인선 과정에서 이를 보완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 관련 경력이 전무한 이들이 위원에 임명되면서 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현재로서는 지난해 11월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발의한 '인권위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가 국제조정위의 권고사항을 충족할 수 있는 신속한 대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안은 정당, 어린이 및 청소년 단체, 장애인단체, 인권단체 등이 추천한 20명으로 '인권위원 후보추천위'를 구성해 2배수를 추천하는 절차를 만들어 위원 선정 과정의 다원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했다.


이를 막기 위해선 인권위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역시나 낙하산답게 현 인권위원장의 법 개정 의지나 역량이 의문시되고 있습니다. 개정안이 발의된 후 간담회 제안조차 없었다고 하니까요.

학교에선 교칙으로 벌주고, 국립국어원은 단어의 정의로 차별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낙하산 인사에 위상은 떨어지고, 경찰은 불공평한 법 집행을 일삼고, 총리 후보자는 과거의 망언으로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고, 현직 대통령은 그림자일 뿐 실체가 없어 보이니,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소수자 인권은 동네북이고 총체적 난국입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는 아직도 멀기만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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