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5일 이재용 회장은 삼성그룹 불법승계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밝히며 이재용 회장과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과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에게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에 이르게 했던 '국정농단 사건'과 얽혀 앞서 그룹 지배권 승계 작업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과 판이한 결과입니다. 생각비행은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다룬 바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삼성으로 인한 국민연금 3000억 손실, 누가 책임지나? : https://ideas0419.com/569 

이재용 집행유예 - 재벌의 3.5 법칙은 아직도 통하는가 : 
https://ideas0419.com/801 

진정성 없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 대국민 사과, 앞으로 삼성은? : 
https://ideas0419.com/1058 

다시 삼성공화국으로, 이재용 부회장 가석방 : 
https://ideas0419.com/1209 

삼성 미래전략실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최소 비용으로 삼성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거짓 정보 유포와 중요 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주요 주주 매수,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 시세 조종 등을 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이재용 회장은 이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아 검찰에 기소됐습니다. 기소된 19개 혐의에 대해 결과적으로 죄다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출처 - MBC

 

검찰은 이재용 회장과 삼성 미래전략실 등이 그룹 승계 계획안 '프로젝트 G'에 따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했고 이 과정에서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봤습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각각 0.32주와 1주로 합병 비율을 결의했습니다. 당시 이재용 회장은 제일모직 지분만 약 23% 보유하고 있었는데요. 제일모직이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삼성생명이 삼성전사의 대주주인 구조였기에 제일모직 주식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면 이재용 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그만큼 커져 경영권 승계에 유리한 상황이었죠.

출처 - 참여연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삼성물산 주주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 등 많은 이해관계자가 합병에 반대할 만했습니다. 삼성물산 매출액이 제일모직보다 5.6배 많고 자산총계는 3.1배나 더 큰데도 제일모직의 가치가 너무 크게 책정됐으니까요. 국민연금도 반대할 명분이 충분했는데 당시 이재용 회장에게 뇌물을 받은 박근혜 정부가 국민연금에 외압을 가해 합병에 찬성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국정농단 특검 수사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이 사건에 연루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죠.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한 결과로 최대 1658억 원의 손해를 봤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출처 - 동아일보

 

결국 이 합병은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절차(ISDS)까지 초래했습니다. 합병 당시 옛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 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 상설중재재판소에 ISDS를 제기했고 일부 승소했습니다. 2023년 6월 20일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엘리엇 매니지먼트 측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1조 원의 배상을 요구한 데 대해 청구액의 7%인 69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핵심 쟁점이었던 정부의 부당 개입이 인정됐다는 점에서 사실상 정부가 패소한 셈이죠. 우리 정부는 5년간 법률비용과 이자를 포함해 1300억 원가량을 지급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출처 - 뉴시스

 

이쯤에서 지난 2월 5일 삼성그룹 불법승계 1심 재판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재판부는 국정농단 사건 판결에서 대법원이 판시한 승계작업과 청탁은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라며 그 승계작업과 청탁의 결과물이 구체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정농단 사건을 판결한) 대법원은 '승계작업'을 '최소 비용의 지배권 강화'로 정의하면서 그러한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러한 승계작업은 그에 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무행위와 제공되는 이익 사이에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특정되었고 부정한 청탁의 내용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을 뿐이다. 즉 대법원 및 그 하급심에서는 이 사건 합병에 대한 청탁의 대가를 인정하지 않고, 단지 포괄뇌물죄에서 포괄적 직무관련성에 대응하는 수준의 가변적이고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승계 작업이 인정되었을 뿐이다"라고 명시했습니다.

 

출처 - 참여연대

 

또 재판부는 대통령의 부당 개입으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이 왜곡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그 근거로 한국 정부가 엘리엇과의 ISDS 소송에서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위원들은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여 자신의 독립적인 판단에 따라 표결하였다는 입장을 밝힌 점, 2022년 11월 삼성물산 주주 7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패소한 1심 판결에서 법원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의 행위가 국민연금 투자위원회의 의결권 행사를 좌우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점'을 들었습니다. 법조계라는 같은 업계 종사자가 판결에 사용한 용어 정의를 다시 해가면서 앞선 판결을 뒤집은 건 차치하고 국민연금 의사결정이 왜곡된 게 아니라면 당시 유죄받은 사람들은 재심이라도 받아야 하는 걸까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엘리엇이 제기한 ISDS 소송을 법무부에서 진행했는데요, 1심 재판부가 무죄 판결의 근거로 든 '국민연금의 합당한 판단'이 ISDS 소송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그런데 이재용 회장의 '불법 합병' 판결에서는 무죄의 근거로 활용됐으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출처 - SBS

 

결국 검찰은 삼성그룹 불법승계 1심 재판 결과에 대해 항소했습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의한 그룹 지배권 승계 목적과 경위, 회계부정과 부정거래행위에 대한 증거판단, 사실인정 및 법리 판단에 관해 1심 판결과 견해차가 크다며 사실인정 및 법령 해석을 통일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항소한다고요.

 

출처 - 경향신문

 

참여연대는 "제1심의 무죄 판결은 재벌들이 지배력을 승계하기 위해 함부로 그룹회사를 합병해도 된다는 괴이한 선례를 남김으로써, 재벌 봐주기의 대명사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며 "사회정의와 법치주의에 반하는 이번 법원의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고 규탄했습니다. 남은 2심, 3심이 어떻게 진행될지 국민이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만 극우 문제가 심각한 게 아닙니다. 미국 대선도 혼돈 그 자체입니다. 지난 1월 미국 콜로라도주와 메인주 대법원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공화당 대선 예비경선에 출마할 자격이 없다고 판결했기 때문이죠. 2021년 1월 6일 트럼프를 지지하는 극우파들이 자행한 국회의사당 폭동과 관련해 내란선동 혐의 등으로 기소된 트럼프는 상당한 책임이 인정되기 때문에 적어도 콜로라도주에서는 공화당 대선 후보로 입후보할 자격이 없다는 판결이었죠. 모반이나 반란에 가담할 경우 다시는 공직을 맡지 못한다는 수정헌법 제14조 3항이 근거였습니다.

 

출처 - YTN

 

그런데 이 판결은 법리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적으로 트럼프에게 힘을 더해줬다는 것이 현실적인 평가입니다. 트럼프의 상고로 콜로라도 법원의 판결은 연방대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놓을 때까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출마 가부에 대한 최종 칼자루를 쥐게 되었는데요, 콜로라도주 공화당 경선이 3월 5일로 예정돼 있기 때문에 이 판결이 현실적인 의미가 있으려면 그전에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상고를 기각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하지만 현재 연방대법원은 트럼프가 임명해놓은 대법관들의 보수 우위가 명확한 상황입니다. 아울러 대선 후보의 출마 가부라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 판단을 내릴 경우 유권자의 선택 범위를 크게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꺼릴 것이라는 판단이 지배적입니다. 미국 전체의 대통령 후보 자격을 주 한 곳의 판결로 결정하게 할 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연방대법원이 상고를 받아들이게 되면 사실상 트럼프의 대선 출마 자격을 인정한 셈이 되므로 현재 진행 중인 그의 무수한 다른 혐의에 대한 재판 역시 정치적으로 무력화될 수 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이런 상황은 한 달 뒤인 지난 2월 16일 트럼프의 사기 대출 의혹 재판에서 4700억 원이 넘는 벌금을 선고받자 더 선명해졌습니다. 지난 2022년 9월 뉴욕주 검찰총장은 트럼프와 트럼프그룹이 은행과 보험사로부터 유리한 거래 조건을 얻기 위해 보유 자산가치를 허위로 부풀려 신고했다며 뉴욕시 맨해튼 지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한 바 있는데요, 이 소송에 대해 맨해튼 지방법원은 트럼프 측이 자산 가치를 허위로 부풀려 부당이득을 얻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총 3억 5000만 달러, 그러니까 약 4800억 원을 뱉어내라고 판결했습니다.

 

출처 - KBS

 

의사당 폭동까지 일으켰던 극우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런 판결 결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결집하는 모습입니다. 트럼프 역시 자신의 SNS에 법원의 판결을 자신에 대한 정치적 박해로 규정하며 즉시 반격에 나섰습니다. 바이든과 법무부가 가짜뉴스를 근거로 정치적 기소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트럼프는 현재 공화당 내에서도 60%의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사기 대출 판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트럼프가 대출을 받기 위해 부동산 규모를 부풀려 부당하게 이익을 올린 사실이 명박한데도 극우 트럼프 지지자들은 요지부동입니다. 오히려 4800억 원의 벌금을 대신 내주자면서 크라우드 펀딩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인 부동산 사업가와 그 부인은 미국 온라인 모금 사이트 고펀드미에 트럼프 벌금 대납 페이지를 개설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갑부였던 데다 미국 대통령까지 지낸 트럼프의 벌금을 대신 내줄 머저리가 과연 있겠나 싶겠지만, 이 펀딩 페이지가 개설된 지 24시간 만에 1억 원이 넘는 돈이 모금됐습니다. 마치 박근혜를 위해 모금하던 태극기 부대를 보는 것 같네요.

 

출처 - AFP연합뉴스

 

트럼프는 자신의 SNS에 맨해튼 법원의 판결 역시 선거 개입이자 마녀사냥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면서 판결이 나온 다음 날 트럼프 스니커즈 같은 비싼 굿즈들을 내놨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필라델피아 스니커즈 박람회에서 '절대 굴복하지 않는(Never Surrender) 하이톱 스티커즈'를 소개했습니다. 그날 밤께 전용 판매 웹사이트인 '트럼프 스니커즈 닷컴'에서 1000켤레 한정 제품이 완전히 동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악명도 명성이라고 돈 벌 기회를 놓치지 않는 수완을 발휘한 셈입니다. 이처럼 트럼프는 정치적 생명이 끊길 수도 있는 연이은 악재를 지지자의 결집을 부르는 호재로 바꿔놓았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 정치계는 공화당과 민주당 양쪽 모두 당황하고 있죠. 

 

출처 - KBS

 

세상이 혼탁해지고 사람들이 불안해하니 자격없는 자들이 여기저기서 설치기 시작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이들을 걸러내고 심판할 방법은 선거밖에 없는데, 그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과연 우리나라 총선과 미국 대선은 어떤 결과를 내게 될까요? 현명한 국민의 판단만이 밝은 미래를 보장합니다. 눈과 귀를 열고 정세를 잘 살펴 올바르게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오는 4월 10일 있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출마가 예상되는 전·현직 검사가 최소 45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선 최소 31명의 전·현직 검사가,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선 최소 14명의 전·현직 검사가 출마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하죠. 그들은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거나 아니면 윤석열이 검찰 독재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출마에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공직선거법 제53조 제1항은 '국가공무원으로서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은 선거일 전 90일까지 그 직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같은 조 제4항에는 '그 소속기관의 장 또는 소속위원회에 사직원이 접수된 때에 그 직을 그만둔 것으로 본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사표 내면 그 순간 그만둔 것이니 출마해도 돼'라고 해석할 수 있죠. 전직 검사는 당연히 출마해도 괜찮습니다. 선거 90일 전까지 사직했다면 현직 검사의 출마도 문제는 되지 않겠죠. 문제는 현직 검사들이 사표 수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총선 출마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검사로 월급을 받으면서 가욋일 즉, 선거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공무원에게 선거일 전 90일까지 공직을 사퇴하도록 한 것은 공무원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개입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도입니다. 검사들이 이런 법 취지를 모르지 않을 텐데 믿는 구석이 있어서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사람이 많습니다.

 

출처 - KBS

 

이는 '황운하 판례' 때문입니다. 공직자가 공선거법상 출마 시한인 선거일 90일 전까지 사표를 냈다면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더라도 출마가 가능하다고 본 대법원 판례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사표를 내도 수리가 불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기관장이 사표 수리를 거부하거나 지연한 게 아니라 불가능한 경우 말입니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 비위와 관련해 형사 사건으로 기소된 경우나 내부 감사가 진행 중인 경우 퇴직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표가 수리되지 않는 겁니다. 공무원이 비위를 저지르고는 퇴직 수당 삭감 등의 징계 안 받겠다고 그만둬버리면 안 되잖습니까?

 

출처 - 국회방송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서울 중앙지검 김상민 부장검사가 추석 명절을 앞두고 고향 사람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가 공개돼 비판받은 일이 있습니다. 공개된 문자 메시지에는 "저는 뼛속까지 창원 사람이다", "창원은 이제 지방이 아니라 또 하나의 큰 중심이 되어야 한다", "지역 사회에 큰 희망과 목표를 드리겠다"는 등의 내용이어서 현직 검사가 정치 활동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했죠.

 

출처 - KBS

 

신성식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은 서울중앙지검 차장이던 2020년 당시 한동훈(현 국민의힘비상대책위원장)과 이동재 채널A 기자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신라젠 주가조작 연루 의혹 을 제기하자고 공모했다며 KBS에 허위 사실을 제보해 한 위원장의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 연구위원은 지난해 12월 사직서를 낸 이후 전남 순천 선거구 더불어민주당 예비 후보로 등록했습니다. 법무부는 검사징계위원회를 열어 총선에 출마하는 현직 검사들에게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김상민 부장 검사는 정직 3개월, 신성식 연구위원은 해임 처분을 받았습니다.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 훼손을 크게 문제 삼은 결정이었죠.

 

출처 - MBC

 

며칠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현직 검사로 지난해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윤석열 정부는 전두환 하나회"라는 발언을 해 법무부로부터 '정치적 공정성 훼손'을 이유로 징계위에 회부됐습니다. 그런데 14일 자신의 징계 사건을 심의하는 검사징계위가 열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건물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근무지만 서초동에서 용산으로 옮긴 듯 윤석열 전 검사는 정치를 수사하듯이 하고 있다"며 "(국회로 가) 김건희 종합 특검법을 관철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어 "(총선일인) 4월 10일은 민주주의 퇴행과 검찰 정권을 끝내는 시작이 되어야 한다"며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아는 제가 윤석열 사이비 정권을 끝장내고 윤석열 사단을 청산하는 데 최선봉에 서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현직 검사가 총선 출마를 시사한 것입니다.

 

출처 - MBC

 

공직자, 특히 검사는 특정 사안을 다룰 때 정치적 편향성이 반영됐다는 의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현직 신분으로 출마를 선언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사기업조차 겸직금지 조항이 있죠. 이는 직무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업무 수행 중 취득한 정보를 외부에 유출하는 식의 비위를 저지를 요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주 목적입니다. 

출처 - 데일리안

 

현직 검사의 정치 출마는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법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긴 했습니다. 황운하 의원 논란(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당시 국민의힘에서 공무원 신분으로 출마를 막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폐기될 상황입니다. 야당에서는 최강욱 전 의원이 '검사 출마 제한법'을 발의했으나 당시 검찰 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란 말이 나와 한동훈 장관 시절 법무부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대 의견을 표명한 바 있죠.

 

출처 - 동아일보

 

이러는 와중에 현직 검사의 정계 진출 시도는 사실상 꽤 늘었습니다. 검사와 같은 사법기관 공직자가 현직인 상태로 정계에 진출하는 것은 사법기관의 신뢰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주요한 문제인 만큼 제도적 보완이 시급합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공무원 출마를 제한하는 공직선거법의 취지와 대법원 판례가 맞지 않는 만큼, 사표가 수리되지 않으면 출마를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지난 15일 현직 검사들의 총선 출마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자 박성재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안타깝지만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입법적 조치가 미흡해서, 밖에서 보는 제 입장에서도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이제 시민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출처 - 2014 총선시민네트워크

 

전국 19개 의제별 연대기구와 80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구성된 '2024 총선시민네트워크'(약칭 2024 총선넷)는 지난 19일 21대 국회 현역의원을 중심으로 35명의 1차 공천반대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2024 총선넷은 35명의 공천반대 명단을 유권자들에게 널리 알려 투표과정에서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각 정당의 공천 심사 과정에서 반영되도록 촉구하여 반개혁적이거나 정부 실정에 책임이 있는 인물들이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않도록 활동할 계획이라고 하죠. 이에 더해 검사의 정치 출마를 막을 실효성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앞으로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요?

문학 장르 중 SF는 'Science Fiction'의 약자로 과학적 사실이나 가설을 바탕으로 작가가 상상력을 가미해 쓰는 작품을 의미합니다. 과학소설 또는 SF소설이라고도 합니다. 나아가 이런 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창작된 영화, 게임을 이르기도 하고, 원작 자체가 영화나 게임인 SF도 존재합니다. SF는 과학에 기반을 두는 만큼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세계와 미래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런 상상력을 통해 인간성을 성찰하거나 현재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은 편입니다.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작품들처럼 말이죠. SF의 장르적 특성 때문에 현대 과학이 대중의 지지를 받으면서 SF의 문학사적 위상은 점점 드높아졌습니다. 상업적으로 SF영화 혹은 게임의 인기가 더 높을지 몰라도 원작인 문학 작품들이 없다면 이쪽 분야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출처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휴고상과 네뷸러상은 SF소설 중 그해의 최고 작품을 뽑아 시상하는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 휴고상은 1955년 미국 SF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휴고 건즈백을 기념하며 만들어진 상입니다. 70여 년에 이르는 전통을 자랑하는데요, 우리가 잘 아는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 커트 보니것, 아서 C. 클라크, 어슐러 르 귄, 윌리엄 깁슨, 닐 게이먼 등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이 상의 수상자입니다. AI, 사이버펑크, 사이버스페이스 같은 개념이 이런 SF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각인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조만간 개봉할 대작 SF영화 <듄> 역시 프랭크 허버트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데요,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 수상한 작품입니다. 영화로 치자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받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2024년 연초에 휴고상의 권위와 명예가 완전히 실추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작품 심사와 수상 작품 선정 과정에서 검열과 블랙리스트가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됐기 때문입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2월 15일 휴고상을 시상하는 세계SF대회(월드콘)의 운영위원회 측이 지난달 발표한 2023년 시상식 관련 데이터를 근거로 이와 같이 보도했습니다.

 

 

2023년 휴고상 시상식은 10월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개최됐습니다. 중국 작가가 상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휴고상 시상식이 중국에서 열린 건 처음이었죠. 그런데 심사 과정을 두고 여러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2023 휴고상 검열 리포트(FILE770.com) : https://file770.com/the-2023-hugo-awards-a-report-on-censorship-and-exclusion/ (영문)

우선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 중인 작가 RF 쾅이 특별한 이유 없이 최종 후보 명단에서 제외된 데 대해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운영위 측이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입니다. 이 의혹은 2023년 휴고상 심사위원단의 메일이 유출되면서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출처 - documentcloud.org

 

휴고상 심사위원장이었던 데이브 맥카티는 지난해 6월 중국에서 시상식이 열리기 전 심사위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후보 작품이 중국, 대만, 티베트 또는 중국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추천해도 안전할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압박했습니다.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심사위원이었던 다이앤 레이시는 다른 심사위원들에 보낸 성명에서 "우리는 중국, 대만, 티베트 문제 등 중국이 민감해하는 이슈를 다룬 작품을 면밀히 심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부끄럽게도 그렇게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로써 휴고상 심사위원들이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스스로 검열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검열 과정은 실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실상 휴고상 운영위 측은 블랙리스트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꼼꼼하게 작가들을 걸러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상식이 중국에서 거행되기 때문인지 중국 정부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거스를 만한 여지가 있다면 죄다 후보에서 제외해버렸습니다.

 

출처 - 넷플릭스

 

<멋진 징조들>, <샌드맨> 등 넷플릭스에서 큰 인기를 끈 작품의 원작자인 닐 게이먼은 <샌드맨> 여섯 번째 에피소드로 후보가 되고도 남을 정도로 추천을 받았지만 최우수 드라마틱 프레젠테이션 후보에서 제외됐습니다. 닐 게이먼이 평소 중국 정부가 작가들을 구금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수상 작품 선정 과정에서 의혹의 발단이 됐던 RF 쾅의 경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였던 <양귀비 전쟁> 3부작의 주인공이 마오쩌둥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레딧

 

중국계 캐나다인인 시란 제이 자오 역시 부당하게 후보에서 제외됐습니다. 그의 작품 <IRON WIDOW>가 측천무후 이야기를 SF로 재해석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모조리 탈락시킨 겁이 현실입니다. 알래스데어 스튜어트 작가의 경우 대만에 있는 배트맨 테마 호텔에 가고 싶다고 언급했다는 이유로 휴고상 후보에서 제외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출처 - 트위터

 

세 번이나 휴고상 후보에 올라 자격이 차고도 넘치는 폴 와이머는 티베트에 간 적이 있다는 이유로 후보에서 제외됐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폴 와이머는 티베트에 다녀온 적이 없다고 하죠. 그는 자신이 다녀온 곳은 티베트가 아니라 네팔이라며 SNS ID를 '네팔은 티베트가 아니다'로 바꿔 항의의 뜻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휴고상의 권위가 실추된 사건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과거에 정권의 눈치를 보며 국방부가 불온도서를 선정한 적이 있으니까요. 그러자 정부가 인증한 불온도서라며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품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이런 일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2023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9월 14일 부천국제만화축제 기간에 맞춰 개막할 예정이었던 제24회 전국 학생만화공모전 수상작 전시회를 열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카툰 부문 금상 수상작인 <윤석열차>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풍자했다는 이유로 잡음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지자 아예 전시회를 취소했기 때문이었죠. 불통의 정치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출처 - 에스콰이어

 

휴고상 심사 사건으로 올해 수상작을 심사해야 할 2024년 월드콘 위원회 위원 일부는 사임했다고 하죠.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사회의 불합리한 시스템을 비판하고,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해오던 SF 장르의 권위 있는 상의 권위와 명예가 바로 회복되는 건 아니죠. 표현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의 전통 있는 시상식이 중국 자본에 굴복했다는 사실이 씁쓸함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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