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곧 광복절을 맞이합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대한민국은 독립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죠.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에서 벗어난 날과 독립국으로 정부가 수립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매년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 하고 국경일로 지정했습니다. 

광복절의 '광복(光復)'은 '빛을 되찾다'는 뜻으로 잃었던 국권의 회복을 뜻합니다. 1930년 3월 1일을 기념하여 소설가로 알려진 심훈이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를 썼는데요, 조국의 광복을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散散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처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오이다.

출처: 《한국대표시선》, 참한문화사, 1983년/ (원서:《그날이 오면》,漢城圖書株式會社, 1949년)

1901년에 태어난 심훈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중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투옥되어 퇴학당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그날이 오면> “종로鐘路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散散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이라는 구절에서 민족의 해방을 갈망하는 심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그날’은 그가 죽은 지 9년 후에 도래합니다. 

하지만 그토록 염원하던 해방을 온전히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내지 못했기에 뼈아픈 역사의 길로 이어지고 맙니다. 해방 후 좌우의 사상대립, 동족끼리 총칼을 겨눠야 했던 한국전쟁,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성취하기까지 흘린 국민의 피... 이 모든 것이 따지고 보면 친일인사를 확실하게 처리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하면 역사는 그대로 반복된다고 하지요. 해방 이후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한 채 1965년 6월 22일 도쿄에서 맺은 ‘한일기본조약’은 지금까지 일본의 침략 사실 인정과 가해 사실에 대한 진정한 사죄, 청구권문제, 어업문제, 문화재반환문제 등을 가로막는 지나치게 친일적이고 굴욕적인 조약이었습니다. 

문학계도 친일논란에서 비켜갈 수 없습니다. 일제 때 학도병 자원을 독려하는 내용의 시를 썼던 모윤숙은 이승만 정권에서는 외교관으로, 박정희 정권에서는 공화당 국회의원으로 살았습니다. 대표적인 친일 시인으로 알려진 서정주는 훗날 전두환을 찬양하는 시를 썼습니다. 이처럼 친일 인사는 사회 기득권과 연결되어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대를 이어 권세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친일 문학인 31명의 작품은 여전히 교과서에 실려 있기도 합니다. 글만 잘 쓰면 반민족 행위인 친일을 했더라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어이없는 선례로 남아 대한민국의 역사의식을 흐리고 있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 중 친일문학인 31명>

김기진(金基鎭) 김동인(金東仁) 김동환(金東煥) 김문집(金文輯) 김억(金億) 김용제(金龍濟) 김종한(金鍾漢) 노천명(盧天命) 모윤숙(毛允淑) 박영희(朴英熙) 백세철(白世哲) 서정주(徐廷柱) 유진오(兪鎭午) 윤두헌(尹斗憲) 이광수(李光洙) 이무영(李無影) 이석훈(李錫(水+熏)) 이찬(李燦) 임학수(林學洙) 장덕조(張德祚) 장은중(張恩重) 정비석(鄭飛石) 정인섭(鄭寅燮) 정인택(鄭人澤) 조용만(趙容萬) 조우식(趙宇植) 주영섭(朱永燮) 주요한(朱耀翰) 채만식(蔡萬植) 최재서(崔載瑞) 최정희(崔貞熙)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우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야 합니다. 작가 심훈은 그런 점에서 삶 가운데 온 힘을 다한 예술인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소설에서, 시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친일의 도구로 사용했던 여느 예술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태도였습니다. 특히 그가 쓴 대표적인 장편소설인 <상록수>는 1935년 동아일보사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되어 그해 9월 10일~1936년 2월 15일까지 신문에 연재되었습니다. 그는 《동아일보》에서 받은 상금으로 상록학원을 설립했으며 <상록수>를 영화화하려고 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심훈의 <상록수>는 농촌계몽운동에 투신한 젊은이들의 강한 저항의식과 휴머니즘이 그 기저에 깔려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농촌계몽운동은 러시아의 브나로드운동에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민중 속으로’라는 뜻의 ‘브나로드’는 말기 러시아 지식인들이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면 민중을 깨우쳐야 한다는 취지로 만든 구호입니다. 1874년에 많은 러시아 학생이 농촌으로 가서 계몽운동을 벌였는데, 이 계몽운동을 브나로드운동이라고 합니다. 이 운동은 국내에서 농촌계몽운동으로 발전해 1920년대 초 서울의 학생과 문화단체, 일본 유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담은 작품 <상록수>는 리얼리즘 농촌문학을 여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일제의 억압으로 신음하는 민중을 깨우치는 역할을 잘 담고 있습니다. 심훈은 충청남도 당진으로 내려가 살면서 <상록수>를 집필했는데요, 이런 농촌의 경험이 작품 활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를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았던 심훈이 그토록 원하던 해방의 ‘그날’은 67년 전에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67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이 온전히 완성되지는 않은 듯합니다. 분단된 조국을 통일하고 친일, 반민족주의자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그날은 오지 않을까요? 많은 국민의 바람인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완성되는 ‘그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심훈

본명은 심대섭이며 190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영화인으로 활동했다. 191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지만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투옥당하고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해 1921년 항저우(杭州) 치장대학(之江大學)에 입학했다. 1923년 귀국하여 연극, 영화, 소설 등에 몰두했다. 처음에는 영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917년 결혼한 왕족 이해영(李海暎)과 1924년 이혼했다. 1925년 번안한 소설 <장한몽(長恨夢)>이 영화화될 때 이수일(李守一)역으로 출연했고, 1926년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했다. 일본에서 본격적인 영화수업을 받은 뒤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원작, 각색, 감독하여 제작했으며 단성사에서 개봉하여 성공했다. 식민지 현실을 다루었던 이 영화는 <어둠에서 어둠으로>라는 제목이 말썽을 빚자 개작한 작품으로 영화제작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1932년 고향인 충청남도 당진으로 낙향하여 집필에 전념하다가 1936년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영화 <먼동이 틀 때>가 성공한 이후 그는 소설에 관심을 기울였다. 1930년 《조선일보》에 장편 <동방(東方)의 애인(愛人)>을 연재하다가 검열에 걸려 중단당했고, 이어 같은 신문에 <불사조(不死鳥)>를 연재하다가 다시 중단당했다. 같은 해 시 <그날이 오면>을 발표했는데 1932년 향리에서 시집 《그날이 오면》을 출간하려다 검열로 무산되고, 1949년 유고집으로 출간되었다. 두 번에 걸쳐 연재가 중단된 소설 <동방의 애인><불사조>와 애국 시 <그날이 오면>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에는 강한 민족의식이 담겨 있다. <영원의 미소>는 가난한 인텔리 계급적 저항의식, 식민지 사회의 부조리, 귀농 의지가 잘 그려져 있다. 대표작인 <상록수>는 젊은이들의 희생적인 농촌사업을 통해 강한 휴머니즘과 저항의식을 담고 있다. 행동적이고 저항적인 지성인이 등장하는 그의 작품들에는 민족주의와 계급적 저항의식, 휴머니즘이 기본적으로 흐른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책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주제를 자세히 다뤄볼까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친기업적인 정책을 펼쳐 기업이 부강해지면 그 부가 넘쳐서 서민에게 돌아간다는 '낙수효과'를 내세웠습니다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많은 기업이 부를 축적하여 대물림하고 있으며, 소규모 상공인이나 중소기업이 꾸려가는 분야에까지 침투해 배를 불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기업 친화적인 이명박 정부와 기업에 대한 국민의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비정규직 문제, 비합법적인 노동자 해고 등으로 불거진 노동계의 상황으로 말미암아 한국사회는 용광로처럼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주목하는 이유

과거 개발독재 시절, 권력층은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선량한 시민은 국가발전이라는 황금빛 이데올로기 앞에서 개인의 자유를 포기해야 했고,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감내하여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피와 땀으로 일군 성장의 몫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어찌 된 영문인지 국민은 배제되어 버렸으니까요. 그리고 1998년 IMF 구제금융체제로 돌입하면서 노동계는 무한경쟁 상황에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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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남발로 고용 불안은 날로 심해졌고, 실질적인 빈부의 격차도 점차 커졌습니다. 그럼에도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일념하에 대한민국 국민은 큰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최악의 양극화 현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전셋값, 교육비, 기름값이 치솟는 가운데 물가도 동반상승하고 고용은 더 불안정해져 수많은 국민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노동 조건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고, 이유 없이 직장에서 퇴출당하는 부당함에 대한 항거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에게서 거둬들인 이익을 사회로 환원하지 않는 기업, 상속을 위해 불법을 불사하면서도 솜방망이 처벌로 빠져나가는 기업을 보면서 사람들의 실망은 날로 커졌습니다. 

이러한 경제 상황에서 하나의 대안처럼 등장한 논리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입니다. 생각비행은 기업문화의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경제 상황의 변화도 없다는 생각으로 '사회적기업가' 정신을 알리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이런 취지의 연장선상에 있는 《지역과 상생하는 기업핵심전략》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야 함은 물론 지역의 발전을 위해 임직원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참여(Corporate Community Involvement, CCI)해야 함을 화두로 제시합니다.
 
최근 경제계의 큰 화두로 떠오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여러분께 상세히 설명한 뒤, 한국 사회에서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명해보겠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과연 무엇인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란 영업 이익에만 집착하지 않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자각하여 이를 실천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전통적인 기업 경영에서는 경제적 이윤이 최대의 화두였지만, 최근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경제적 수익성 이외에 환경적 건전성이나 사회적 건전성까지 고려하게 된 것이지요.

Daum이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시작한 인터넷 기부 서비스 '희망해'

구미에선 오래전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는 서양에서는 기업의 CEO들이 앞다투어 기부 활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비단 개인뿐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도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제표준화기구는 사회책임경영 표준(ISO 26000)을 채택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 지속가능경영지수(FTSE4GOOD),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도미니사회지수400(Domini Social 400), 요하네스버그 증권거래소 SRI지수(JSE SRI Index)와 같은 유수한 사회책임투자지수가 마련된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중요성이 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처럼 전 세계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주목하는 가운데 한국에선 이와 관련하여 어떤 담론이 오고가고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린데로 한국은 과거 개발독재 시절,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했고 국가경제 발전을 염원한 국민은 그 요구에 순응했습니다. 1998년에 시작된 IMF 구제금융 체제에 돌업하던 시기에도 많은 국민은 구제금융 체제를 벗어나기 위해 '비정규직'을 받아들였고, '금 모으기 운동'이라는 세계에서 그 사례를 찾기 어려운 연대로 경제적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과거 개발독재시절 국민들은 산업의 역군이라는 미명하에 희생을 강요당했다. IMF 구제금융시기에도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이유로 국민들은 금모으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노동 유연화를 강조하는 시장 논리를 기반으로 이명박 정부는 낙수효과를 강조하며 기업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조성한 환경은 일부 재벌의 배만 불릴 뿐이었습니다.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의 영역을 일부 재벌이 기업형 슈퍼마켓(SSM)과 같은 방법으로 침범하면서 국민의 분노를 사기 시작했습니다. 국가와 국민에게서 받은 이익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임에도, 그간 기업은 '자본주의'라는 미명하에 그러한 책임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우리 사회에서 점점 커지자, 2011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언급했습니다. 이에 발맞춰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해 현대 일가는 사재를 출연해 장학재단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엇갈리지만, 국민의 원성이 높아지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챙기는 사회적 이슈에 부응이라도 하듯 이벤트성으로 기부하는 듯한 모습에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재벌은 여론이 좋지 않을 때마다 일회성 대응으로 위기를 넘기기 급급한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그때마다 국민의 실망은 컸고 이젠 홍보성 이벤트에 속지 않을 정도로 시민의식도 성숙해졌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이유

과거 기업의 주된 목적은 이윤 추구라는 것을 정설로 받아들였습니다. 지금도 이윤을 내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회적 책임만을 강조하다간 기업에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경제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한때 세계는 값싼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습니다. 그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우리 손으로 오는지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죠. 그저 값이 싸고 품질까지 좋다면 응당 최고의 제품으로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오늘날 전 세계의 인식은 달라졌습니다. '공정무역'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국은 커피공화국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엄청난 수의 커피 전문점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면 어디든 커피 전문점이 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커피 원두가 어떤 과정으로 수입되는지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커피 농가의 고된 노동과 저임금에 대한 상황이 널리 알려져 공정무역을 통한 커피를 소비하겠다는 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공정무역'은 기업의 이윤 추구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무조건 싼값으로 상품을 거래하여 수익만 올리면 그만이 시대는 끝났습니다. 21세기에 사람들은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으니까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자발적 참여가 중요하다

이렇듯 인간다움을 강조하는 세계 풍조의 변화에 발맞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날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서 좋은 이미지를 홍보하는 일이 기업의 이윤추구과 관계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분명히 필요하지만, 이것을 무조건 강요할 때 발생하는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좋은 변화라도 강요로 진행되는 일은 타성에 젖기 마련이고, 위기의 순간을 면피하는 순간적인 대책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마찬가지죠. 어떤 이슈가 터졌을 때 그저 면피용으로 큰돈을 기부하고, 형식적인 재단을 설립해서 '나 이렇게 했소!' 하고 선전하는 것을 두고 진정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ISO 26000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표준일 뿐이지만, 많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이 표준을 수용하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은 중요하다.

강요하지 않되 지속적으로 기업의 변화를 촉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고자 한다면, 응당 이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고민 끝에 기업의 핵심전략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이런 시각에서 전 세계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적 표준 'ISO 26000'을 앞으로 많이 이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표준에 근거하여 기업은 사회적 책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많은 기업이 참여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어 어느 정도의 힘을 갖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다고 해서 모든 사회문제의 책임을 기업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IMF 구제금융 시기부터 지금까지 문제가 되는 비정규직 문제는 기업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노동자와 회사의 관계가 일단 중요하지만 한국 사회 전체의 변화가 뒤따를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인권과 복지가 사회의 핵심이슈로 떠오르면서 많은 고민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그저 뜬 구름 잡는 정도로만 막연하게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본주의 경제를 실험한 미국이나 유럽은 이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넘어, 《지역과 상생하는 기업핵심전략》이 전하는 '기업사회참여(Corporate Community Involvement CCI)'를 강조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저 말만 번지르르하게 책임 운운하는 수준을 넘어 '기업시민'으로서 기업이 한 지역에 뛰어들어 지역주민과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비전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다음 기사에서는 '기업사회참여'에 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다루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출판사 생각비행입니다.

경술국치 100년을 딛고 제65주년 광복절을 맞이한 2010년 8월 15일, 생각비행이 첫 책 사랑의 승자 함께 비행을 시작합니다.


책으로 꿈꾸는 생각의 혁명
책은 생각의 집합체입니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생각이 모이면 한 권의 책이 됩니다. 그 책은 다시 사람들의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냅니다. 이런 생각의 선순환이 잘 이뤄진다면 세상은 좀 더 자유롭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생각의 혁명이 곧 생각비행의 목적지입니다. 


생각비행 블로그 : http://ideas0419.com
생각비행 E-Mail : ideas0419@hanmail.net
생각비행 전화 : 02) 3141-0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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