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인수위원회가 지난 4월 28일 '에너지 정책 정상화'라는 제목으로 5대 중점 과제를 발표했습니다. 다른 공약과 마찬가지로 모든 걸 다 쌍팔년도로 되돌리겠다는 다짐을 참 거창하게도 포장했습니다. 어이없는 중점 과제 하나를 짚어볼까요? 윤석열 인수위는 국제적으로 약속한 탄소중립 목표는 존중하되 실행 방안은 원전 활용 등으로 보완하겠다고 합니다. 이건 뭐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같은 소리 아닌가요?

 

출처 – 이데일리

 

그런데 5대 중점 과제 중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발표에서 사실상 전기 민영화의 밑밥을 까는 발언이 나왔다는 점이죠. SNS나 커뮤니티에서 이를 풍자하는 글이 넘쳐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만, 오만가지 표현으로 포장하더라도 전기 민영화는 결국 민영화일 뿐입니다. 민소희가 얼굴 어디에 점을 찍어도 민소희이듯 말입니다.

 

 

시장개방: 해쳐먹고 싶다

지분매각: 팔아넘기고 싶다

경영선진화: 한자리 해먹고 싶다


경쟁체제도입: 공기업만 병신으로 만드는 경쟁을 도입하겠다


이익공유: 물론 비용은 너희가 공유하는


영리 허용: 한번 꽂으면 평생 돈 들어오는 빨대


독점 해소: 민간업체끼리 담합할 건데 어쨌든 독점은 아니니까


경쟁력 향상: 너희를 털어먹는 경쟁력이

 

윤석열 인수위는 '경쟁'과 '시장' 원칙에 기반한 에너지 시장 구조 확립에 나선다며 전력구매계약 허용 범위 확대 등으로 한국전력의 '독점' 판매 구조를 점차 허물고 다양한 수요 관리 서비스 기업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제도가 바뀌면 한전이 전력거래소를 통해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구매한 뒤 독립적으로 판매하던 구조에서 민간 발전사업자가 직접 수요자와 계약을 맺고 직접 공급할 수 있게 됩니다. 인수위는 전기요금의 원가주의 요금 원칙을 확립한다면서 전기 생산에 필요한 연료비 변동분을 요금에 반영하는 원칙을 강화하겠다고 합니다. 말이 좋아 원칙이지 민간 개방이 되고 전기요금을 연료비 변동분에 연동하게 한다면 기름값이 오를 때는 가파르게 전기요금을 올리고 기름값이 내릴 때는 온갖 이유를 붙어 전기요금을 유지하려 할 게 뻔합니다. 수익을 내야 하는 민간 에너지 기업들이 한전처럼 적자를 내며 낮은 전기료를 유지하며 사업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기를 민영화하면 전기요금은 필연적으로 오르게 됩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윤석열 인수위는 경쟁, 시장, 원칙을 떠들며 독점을 타파하겠다고 하지만 위의 풍자에서 드러나듯이 민영화의 다른 말일 뿐입니다. 스마트폰 없는 현대 생활을 생각하기 어려운 것처럼 전기는 필수재입니다. 그렇기에 국가가 모든 국민이 사용 가능하도록 최대한 통제하고 적자를 보더라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출처 - MBC

 

전기를 민영화한 결과 어두운 미래가 현실이 된 사례는 많습니다. 내로라는 선진국인 미국와 일본의 사례만 봐도 답이 보이지 않습니까? 2002년부터 전기 민영화가 시작된 미국의 텍사스주에서는 70% 이상이 민영화된 전기를 씁니다. 항상 무더울 것 같던 텍사스에 기후위기로 인한 2021년 한파로 중대 재난 지역이 선포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죠. 이때 '변동 요금제'가 적용되는 민간 업체에서 시간당 전기요금을 1MW당 50달러에서 9000달러로 올리면서 주민들은 졸지에 1000만 원이 넘는 전기요금을 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습니다. 저택이 아닌 방 세 개짜리 가정집에서 말이죠.

우리나라는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지만 공기업인 한전이 공급하는 전기의 단가가 '상수'로 고정돼 있기 때문에 재난 상황이 닥쳐도 전기요금이 요동치지는 않습니다. 위기 상황일지라도 전력망이 끊어지지 않는 한 적어도 돈 때문에 전기를 못 쓰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전기요금 역시 정부의 심의를 거쳐야 하므로 한전이 마음대로 인상할 수도 없습니다.

출처 - 매일경제

 

전기 민영화의 폐해는 이례적인 한파로 인한 재난 상황에서 빚어지는 전력 불균형으로 일어나는 일만도 아닙니다. 일상적으로 전기 공급에 차질을 빚지 않더라도 민영화되면 전기요금이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2016년 일본은 전기 소매 판매를 민간에 개방했습니다. 첫해 400개나 되는 기업이 전기 공급사업자로 등록했습니다. 300만 가구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런 민간 전력 회사로 갈아탔죠. 그런데 기후위기와 전쟁 같은 요인으로 국제 유가가 오르기 시작하자 전기요금이 급등해 결국 민영화되기 이전에 비해 전기요금이 4배 이상 올랐습니다. 너무 오른 전기요금을 견딜 수 없어 해지하고 기존 전력 회사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민간 전력 회사가 약관에 의해 막대한 위약금을 요구하는 바람에 서민들은 그대로 쓸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400개나 되는 민간 전력 회사가 난립했지만 경쟁으로 전기요금 득을 보기는커녕 담합으로 요금 인상만 계속되고 시설 투자는 뒷전으로 밀려 폐해가 정말 심각합니다. 산업화 시대에 오염된 단어가 많습니다. '적자'가 마치 국가와 서민을 해치는 말처럼 쓰이고 있지만 국가 공공 서비스 기관의 '적자'는 나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 공공 서비스에서 사업성보다 안정성과 지속성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물론 지금 한전처럼 적자가 계속되는데도 성과급 대잔치를 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그렇다고 전기를 민영화하자는 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입니다.

 

 

국민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인수위 대변인실 관계자는 자신의 SNS에 변명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한전의 민영화 여부를 논의한 적이 없다면서 말이죠. 하지만 이조차 민영화에 대한 치장에 지나지 않자 이 게시물마저 다시 삭제한 상황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저열한 인식이 너무나도 투명하게 보이는 순간입니다. 향후 5년간 수많은 역경이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2번을 찍었던 분들이라도 전기, 가스, 수도, 교통, 의료 등 우리 서민의 생존과 생활에 절대 기반이 되는 공공 서비스에 대한 민영화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민영화는 한번 물꼬를 터주면 되돌리기가 너무나도 힘들고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중차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9일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즉 김용균 특조위가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용균 씨가 운송설비 점검을 하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지는 비극이 있었죠. 2016년 서울 구의역 안전문 사고에 이어 2018년에도 이런 사고가 일어나자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비롯해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이른바 김용균법이 국회에서 통과하게 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합니다.


출처 - SBS


이날 특조위 조사결과 발표에 의하면 고 김용균 씨 사고의 핵심은 발전 5사의 발전정비 사업 외주화와 민영화에 따른 원·하청의 책임 회피와 하청 노동자에게 위험이 집중된 구조였습니다. 특조위는 원청 및 하청은 모두 안전 비용 지출이나 안전 시스템 구축에는 무관심했다며, 김용균 씨 사망사고가 발생하기 전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설비 개선이 논의됐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이처럼 설비 개선이 무시된 건 원·하청의 책임 회피 구조 때문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실제로 특조위 조사에 의하면 원청인 서부발전은 김용균 씨 등 하청 노동자의 작업에 대해 실질적인 지휘 및 감독을 하면서도 하청 소속이라는 이유로 안전에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된 컨베이어에 대해 사고 11개월 전 원청인 서부발전에 설비개선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죠. 김용균 씨가 소속됐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도 사고가 날 위험이 있던 컨베이어 설비에 대해 자사의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치했고요.


출처 - 오마이뉴스


사고 이후 원·하청 회사들은 김용균 씨가 근무수칙을 위반했기에 사고가 일어났던 것처럼 얘기했지만, 이번 조사 결과 김용균 씨는 작업지침을 충실하게 지켰기 때문에 숨졌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는 이제야 아들이 누명을 벗었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출처 - MBC


가장 어이가 없었던 부분은 원청인 서부발전이 부서별 평가를 위해 만든 문서에서 드러났습니다. 산업재해로 사람이 숨졌을 때 발전사 직원은 –1.5점, 하청 직원은 –1점, 발전시설 건설 노동자가 숨지면 –0.2점이라며 사람 목숨을 3단계로 구분한 지표를 작성해놓은 것이었습니다. 이 지표는 발전소에 널리 퍼져 있었는데 보령화력 발전소는 더 노골적으로 지표 제목부터 ‘신분별’ 감점계수입니다. 본사 직원이 숨지면 12점, 하청 직원이 사망하면 4점을 감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청직원 3명 목숨을 정직원 1명의 목숨으로 친다는 건데 대체 이걸 작성한 자들은 인간이기는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정규직 목숨값이 비정규직의 3배라니 현대판 신분제이자 노예제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겠습니까? 김용균법이 시행되고 나서도 발전사에서는 12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했지만 이 중 6건은 은폐됐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이 밖에도 특조위는 김용균 씨의 작업이라면 월급이 원래 446만 원이 돼야 하는데 절반인 212만 원을 받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청업체가 노무비의 절반을 가져갔기 때문인데 이를 통해 하청은 부당한 이익을 늘렸고 원청인 서부발전은 감독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며 전력산업의 공공성을 훼손했습니다. 결국 외주화와 민영화가 작업 현장의 위험을 증폭시킨 셈입니다. 더군다나 특조위 조사 과정에서 직원들 사이에 회사 측에 유리한 모범답안이 도는 등 특조위 조사를 원·하청이 집요하게 방해했음도 공표했습니다. 이에 특조위는 산업부와 고용부에 강력한 감사를 요구한 것도 밝혔습니다. 특조위는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발전산업의 외주화와 민영화의 철회가 필요하다고 정부에 권고했습니다.


출처 - 뉴시스


지난 16일 대구의 대표 놀이공원인 이월드에서는 한 아르바이트생이 근무 중 롤러코스터에 다리가 끼어 한쪽 다리를 잃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대구 달서구청은 사람 다리가 잘린 사건에도 안전검사자료 공개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이월드와 법리적 다툼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겁니다. 정보 공개 청구도 이월드의 의견청취를 받아야 가능한지 살필 수 있다며 답변을 피했는데요. 시민단체들은 공익 앞에서 지자체가 업체 눈치를 보며 자료 공개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사고를 은폐하려 드는 것이라며 일제히 비난했습니다. 달서구청이 이월드에 대한 관리, 감독 부실 혹은 유착을 숨기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는 이유입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김용균법이 시행되었다지만 하청, 아르바이트의 처우는 현실적으로 변한 게 없습니다. 빈익빈 부익부는 돈뿐만이 아니라 안전에서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돈과 안전으로 나뉜 대한민국은 점점 계급제가 공고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출처 -경향신문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기 전에 죽음의 외주화를 멈춰야 합니다. 이대로 둔다면 그 죽음이 결국은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파가 절정이었던 지난 주말 뉴스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지난 8일 이른 아침 서울로 향하던 KTX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났기 때문이지요. 지난 12일 공개된 관제 녹취록을 보면 기장이 교신을 통해 사고사실을 알렸는데 강릉역 관제사가 믿기지 않는 듯 여러 차례 되묻는 등 상당히 긴박했던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열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천만다행으로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승객 15명과 역무원 1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열차는 45시간 동안 운행이 중지되었습니다. 고속철도 탈선사고 하면 1998년 독일 에세데 참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망자가 103명이나 되는 대형 사고였죠. 또한 2013년 스페인 열차 참사로 2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일도 있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이번 KTX 탈선사고에서 사망자가 1명도 없었다는 것은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사고를 조사한 뒤 국토부는 선로의 방향을 결정하는 선로전환기 2대의 케이블이 잘못 연결돼 있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서울로 향하던 열차가 정상 진행하기 위해선 선로전환기가 선로 왼쪽에 확실히 붙어야 하는데 사고 당시 틈이 벌어진 채 어중간하게 놓여 있었기 때문에 KTX가 탈선한 것으로 원인이 파악되었죠. 그런데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듯이 코레일은 이 선로전환기가 고장 났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으나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장치와 상황실을 연결하는 회선이 거꾸로 연결돼 있었던 탓에 엉뚱한 옆 선로만 점검했기 때문입니다. 코레일 상황실에는 고장 난 선로가 정상으로, 정상인 선로가 고장으로 표시되었고 문제 상황이 발생하자 현실과 정반대로 탈선한 선로가 정상이니 일단 그쪽으로 열차를 통과시키자는 판단을 한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황당한 점은 회선이 작년 강릉선이 개통되기 전부터 잘못 연결된 상태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선로전환기가 오작동하지 않았을 뿐이었죠. 그러니까 여태껏 사고가 나지 않은 게 신기한 상황일 따름입니다.


출처 - KBS


열차 탈선사고로 문제가 불거지자 KTX 강릉선 개통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일정에 맞추려고 졸속으로 진행했기 때문이 아내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2년 전 강릉선 건설 중 30미터 높이로 짓고 있던 교량이 추운 날씨 탓에 철강 자재가 수축하며 지상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뿐이 아닙니다. 강릉선 공사는 부실시공과 비리로 얼룩졌죠. 당시 철도시설공단 임원들이 하청업체의 뇌물을 챙기다 징역형을 받았고 사정 당국에 발견된 부실시공과 납품 불량만도 수십 건이 넘었습니다. 이번 선로전환기도 해당 업체가 설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질 때부터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된 이권 사업이 최순실의 잇속을 채워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많았죠.


출처 - MBC


최근 들어 계속 발생하는 KTX 관련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공기업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진행된 대규모 인력 감축과 민영화입니다. 철도는 공공성을 띠어야 하는 대표적인 교통수단이지만 기술 인력과 운영 인력을 감축하고 외주로 돌리기 바빴습니다. 일반인도 집에서 리모컨 건전지를 바꿀 때는 플러스, 마이너스 극을 확인합니다. 그러니 안전과 직결되는 선로전환기의 설계, 시공, 점검 이 모든 과정이 엉망으로 진행되는 황당한 일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현장 인력과 운영 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었다면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는지도 모릅니다.


출처 - 한겨레


이번 KTX 탈선 사고로 드러난 열차 운행의 다른 문제점은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의 업무 이원화입니다. 열차 운행과 선로 유지·보수는 코레일이, 선로 시공과 소유권은 철도시설공단이 맡고 있죠. 이 때문에 탈선 사고의 책임 소재를 놓고 두 기관이 서로 떠넘기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원래 하나였던 철도공사가 둘로 쪼개진 것도 궁극적으로 철도 민영화를 위한 밑작업이었죠. 철도 사업에 민영 회사가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시설과 운영을 분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작업의 시작은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KTX 승무원 대량해고 및 비정규직화였습니다.


출처 - 뉴스1


이번 탈선사고 당시 200여 명에 달하는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승무원은 딱 1명이었습니다. KTX가 개통되던 해 코레일이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승무원을 무더기로 해고하고 비정규직으로 돌린 결과가 바로 이것입니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그나마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조차 턱없이 모자라는 실정인 겁니다. 철도의 수익성 향상은 역세권 개발이나 복합환승센터, 돈 낼 가치가 있는 운행 상품 개발 등 경영의 묘를 발휘해 타개할 일이지, 안전을 외주화하여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번 사고의 책임을 지고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사퇴했습니다. KTX 해직 승무원 문제 같은 노사문제와 SR 통폐합 등에서 성과를 냈지만 기본 중의 기본인 안전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도권 시민들이 KT 화재로 디지털 난민이 되어 눈이 멀고 귀가 막히는 경험을 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상황인데, 이번에는 시민의 발이어야 할 열차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날 뻔했으니, 참 많은 고민이 듭니다. 

 

출처 - JTBC

 

촛불시민은 문재인 정부에 양극화 해소,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을 국정 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요구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국민의 염원을 받들어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를 약속하고 출범했습니다. 노동소득 분배를 통한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노동 시간을 줄이는 주 52시간 근무제 등을 약속한 것도 그 때문이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 정부가 가운데 가장 비판을 많이 받는 부분이 바로 노동정책입니다.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이야기하는 것이나 양대 노총의 반발을 무릅쓰고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려는 움직임 등을 보면 문재인 정부가 초심을 유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난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고 현장에는 '풀코드'라고 하는 비상시 기계를 멈추는 장치가 있었습니다. 풀코드를 작동시킬 한 명만 더 있었더라도 김용균 씨는 죽지 않았을 겁니다. 서로의 안전을 지킬 '2인 1조 근무'는 강제 조항이 아니었습니다. 노동조합은 줄곧 2인 1조 근무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단순 업무라며 이를 무시했습니다. 생각비행은 <풍등으로 인한 저유소 화재, 문제는 안전불감증이야!>라는 기사에서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번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다양한 징조가 있었습니다. 현장 노동자들은 컨베이어벨트 작동 상태를 살피고 정비 부서에 이상 여부를 알리는 작업이 위험하다고 계속 주장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노동자의 요구를 회사가 무시한 탓에 결국 안타까운 사고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돌아보게 하는 사건, 사고가 연이어 터지고 있습니다. 이를 무시한다면 대형 참사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출처 - 《갑의 횡포, 을의 일터

 

생각비행이 출간한 책 《갑의 횡포, 을의 일터》의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하청사회의 문제 혹은 하청사회라는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하청사회가 작동하는데 필요한 거시적 구조화와 미시적 개인화라는 문제를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갑과 을의 위계를 재생산하는 보이지 않는 구조와 제도, 갑과 을이라는 지위를 재생산하는 주체의 태도와 문화에 대한 고찰이 필요합니다. 외주를 받는 하청업체는 대개 영세합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관점에서 보면 실무에 가장 능한 업체이며, 그 구성원이야말로 그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그런 그들을 우리 사회는 일거리를 받는 '을'이라고 부르며 홀대하고 있습니다. 갑이 을에게 주는 외주를 맡기는 업무는 위험이 크고 사회적으로 그리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일거리가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전문가다운 대접을 받지도 못한 채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책임을 뒤집어쓰고 맙니다.

출처 - 《공자, 이게 인(仁)이다!

 

우리는 분절화되고 개인화된 관계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를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갑과 을, 원청과 하청 사이에 책임 있는 관계와 연대의 끈을 다시 형성해야 합니다. 갑과 을의 불평등이 가속화되는 하청사회는 결코 지속될 수 없으며 또 지속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를 위해 현실에 눈감기보다 현실을 똑바로 보기 위해 눈을 부릅떠야 합니다. 을들이 하청사회를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힘, 특히 갑의 지대추구행위와 외주화를 모든 시민이 알아채고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면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지난 14일 박근혜 대통령은 서울 정부청사에서 열린 공공기관장 워크숍에 참석해 에너지 산업, 민간이 잘하는 부분은 민간에 이양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126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에너지.환경.교육분야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을 의결하고 이를 발표했죠. 예를 들어 한국전력이 독점하고 있는 전력 소매 분야를 단계적으로 민간개방하고 한국가스공사가 독점하고 있는 가스 도입, 도매 시장도 2025년부터 민간직수입제도를 통해 개방하는 등 공공기관과 공기업이 담당하는 분야를 민간에 대폭 개방하겠다는 겁니다.


출처 – SBS

출처 - 경향신문


명목상 수명을 다하여 자본 잠식에 들어간 석탄공사 같은 경우가 있긴 합니다. 이번 발표로 석탄공사와 광물자원공사의 기능은 단계적으로 축소돼 사실상 폐지 수순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전기와 가스 등 국민의 기본공공재는 얘기가 전혀 다릅니다. 박근혜 정부는 경영투명성을 높인다는 핑계로 한국수력원자력과 남동발전 등 발전 5개사와 한전 KDN, 가스기술공사 등 공공기관 8곳을 내년 상반기부터 주식시장에 상장할 방침이라고 밝혔죠.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이런 기관이 주식시장에 상장되면 주주들의 이익이 최우선이 되고 그들의 배당금을 높여주려 할 테니 당연히 가스비와 전기요금이 오르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출처 - 브릿지경제

 

전기 민영화로 서민이 피해를 본 사례는 세계적으로 목격되었습니다. 최근 국민투표 결과 EU에서 탈퇴하기로 한 영국 사회를 한번 살펴볼까요? 1990년부터 2003년까지 13년 동안 소비자 전기요금은 12.7퍼센트 올랐지만, 요금 규제를 폐지한 2004년 이래 전기요금은 2년 만에 무려 51.7퍼센트가 올랐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1998년 미국 최초로 전기를 완전 민영화했죠. 그 결과 화력발전소를 산 에너지 회사들의 담합으로 전기요금이 무려 70배나 올랐습니다. 게다가 전기 발전소 수리를 핑계로 수많은 화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함으로써 2000년과 2005년에 정전 사태를 자초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스포츠경향


전기, 가스 등 에너지 사업 부문의 민영화를 추진하면 소비자 편익이 증가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소비자란 일반 시민이 아닌 해외에서 에너지를 수입하는 민간업자들을 말합니다. SK E&S, GS에너지, 포스코, 중부발전 같은 에너지 직수입 민간업자들이죠. 에너지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로서는 해외에서 전량 사와야 하니 사오는 그들도 소비자라면 소비자라는 식의, 참 말도 안 되는 논리입니다. 

 

국내 전기요금은 현재도 원가 이하여서 시장을 민간에 개방하더라도 요금을 더 낮추기는 어렵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전력 공급이 중단되어 전기요금이 급상승했던 일본과 우리는 상황이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가스공사는 단일 기업으로는 세계 최대의 구매력을 갖추고 있어 만일 민영화 추진으로 구매력이 분산된다면 국내 기업 간의 경쟁으로 되레 가스 도입 단가가 높아질 우려가 큽니다.

 

하지만 민영화로 편익을 누리려는 에너지 수입업자들은 국내 일반 소비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전기, 가스 요금을 인상함으로써 수익을 보전하려 할 테니 결국 진짜 소비자인 서민들의 에너지 지출은 점점 더 늘어날 뿐입니다. 지금도 공공요금이 부담스러운데 말이죠.


출처 - 디지털타임스


공공기관의 기능조정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은 이명박근혜 정권의 무능한 낙하산 기관장들이었습니다. 보은인사로 곳곳에 꽂아넣은 전문성 없는 기관장들이 탐관오리처럼 방만한 경영을 한 잘못은 그대로 두면서 공공기관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민영화를 꾀하겠다는 건 그야말로 맛있는 살을 다 발라먹은 것도 모자라 뼈마저 우려먹겠다는 심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기관과 공기업을 필두로 4대강 사업, 해외 자원개발 등 국가 예산을 탕진하고 자기네 배만 불린 일이 어디 한두 가지입니까?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전 "국민의 뜻에 반하는 민영화를 절대 추진하지 않을 것"이며 "국가 기간망인 철도는 가스, 공항, 항만 등과 함께 민영화 추진 대상이 아니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출처 – 박근혜 공식 트위터


출처 - 프레시안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민영화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공공이 51퍼센트 이상의 지분을 가지는 형태의 상장이라며 상장과 민영화는 다르다는 논리를 펼쳤죠. 산업은행 등이 조선업 부실 기업들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조 원을 퍼준 마당에 공공이 51퍼센트 이상의 지분을 가진다고 해서 공공의 안녕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을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우리 국민은 이명박근혜 정권에 너무 많이 속았습니다.


출처 - SBS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시장개방과 경쟁에 따른 인하 효과 역시 교언영색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장개방은 특정 대기업의 서비스를 장악으로 이어져 오히려 경쟁이 제한되고 서민들은 각종 요금폭탄의 부작용의 희생양이 될 우려가 큽니다. 이동통신 3사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요? 결합상품으로 요금 인하 효과를 가져온다고 했던 주장과 달리 애초부터 높은 기본요금 탓에 약간 싸졌다는 착시효과를 유발했을 뿐입니다. 전기와 가스 부문도 이런 착시효과를 유발해 국민을 속일 뿐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역사학자 전우용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박근혜 정부의 민영화 추진 방침에 대해 "눈 뒤집힌 도박꾼이 마지막에 들고 나가는 게 집문서고, 부패한 권력이 마지막에 팔아넘기는 게 나라 재산"이라고 지적한 뒤, "눈 뒤집힌 도박꾼은 자식까지 망치고, 부패한 권력은 후손에게까지 고통을 떠넘긴다"고 비판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낙하산 인사, 에너지 공기업의 방만 경영 등으로 대한민국을 빚더미에 올려놓은 건 다름 아닌 이명박근혜 정권입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환율 조작과 법인세 인하, 부동산 투기 정책 등을 통해 99퍼센트의 부를 단 1퍼센트의 재벌들이 빨아먹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마당에 박근혜 정부가 한전산하 발전회사들과 가스공사의 민영화 방침을 발표한 것은 각종 재벌로 하여금 에너지 공기업을 인수할 수 있도록 또 한 번 장을 마련해주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상 '공기업의 민영화'라는 말 자체가 잘못된 표현이죠. '국민 재산의 사유화'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따라서 공공기관, 공기업 정상화는 이 지경을 초래한 책임자들과 단물을 빨아먹은 자들을 발본색원하는 것으로부터 방향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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