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최근 정부가 인천공항 지분 매각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혀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인천공항 지분 매각은 이명박 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추진했으나 번번이 무산되었죠. 지난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정부가 인천공항 지분 매각을 전제로 잡아놓은 세입 4000여억 원을 삭감하면서 이 일은 완전히 무산된 일로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공공기관 선진화 자료에서 전문공항운영사와 전략적인 제휴 등을 포함해 정부 지분 49퍼센트를 매각한다는 계획을 세워 법 개정안을 국회에 내겠다고 했습니다. 임기를 고작 6개월 남긴 정부가 정권 말기에 알짜배기 국제공항의 지분을 매각하려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오늘은 인천국제공항을 둘러싼 그동안의 여러 정황을 살펴보고 도둑적으로 완벽한 이명박 정권의 속내를 살펴보려 합니다.

인천국제공항 매각이 어처구니없는 이유

2009년 8월 공공기관 9곳이 연내 매각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기획재정부는 2008년 확정된 24개 공공기관 민영화 계획 가운데 9개 기관을 2009년에 매각하고 8개 기관은 2010년 이후에 매각한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2010년 매각 계획에 포함된 공기업 가운데 인천국제공항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공기업 운영을 위하여 매년 20조 원의 국민 세금이 지원"되고 있다며 공기업의 국가재정 부담을 강조하며 공기업 민영화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과연 인천국제공항이 시민의 혈세를 낭비할 정도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공항이어서 매각을 하려 했던 것일까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아래 도표를 보시죠. 

출처: 인천국제공항 민영화 반대투쟁 사이트

2004년부터 인천공항의 매출액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2005, 2008년에 조금 주춤하긴 했지만 증가세는 꾸준했습니다. 아래에 있는 차입금 및 부채비율을 보면 꾸준히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도표는 인천국제공항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게다가 인천국제공항은 공항서비스 5년 연속 세계 1위, 국제화물처리 세계 2위, 국제 여객운송 세계 10위 등의 평가에서 드러나듯이 세계가 인정하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공항입니다. 이러한 공항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니 어불성설이지요. 

그런데 2008년 기획재정부의 공기업 경영평가 결과를 보면 "2007년 공기업 경영평가 결과 책임경영과 경영관리 비효율 측면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전년도 보다 평균점수가 하락"했다고 합니다. 기획재정부는 이러한 이유를 근거로 인천국제공항의 민영화를 추진한 것인데요, 과연 인천국제공항이 여느 공기업과 같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었을까요?

주요공항 효율성 종합비교(출처: 인천국제공항 민영화 반대투쟁 사이트)

인천국제공항 민영화 반대투쟁 사이트 자료를 보면 인천국제공항은 설립 당시부터 정부 정책에 발맞춰 사업 대부분을 민간에 위탁하여 효율성을 높였다고 합니다. 비행기 급유시설 운영은 민간사업자를 선정하여 운영하고, 화물터미널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의 민간사업자를 선정해 운영했다고 합니다. 또한 공항운영 인력의 약 13퍼센트만 공사 직원일 뿐, 운영 인력의 대부분(87%)은 아웃소싱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인천국제공항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공항으로 평가받았으며, 위 도표는 민영화된 대표적인 공항인 영국 히드로공항, 덴마크 코펜하겐공항 등과 비교해도 인천국제공항이 가장 높은 효율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런 뛰어난 평가를 무시한 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공항의 민영화 필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2008년 이수원 기획재정부 재정업무관리관은 "(국제공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일부 지분을 매각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며 "인천공항이 서비스 평가 1위라고 하지만 아직 경영 효율화 등을 통한 발전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공항 민영화를 추진한 외국에서 서비스나 효율성 등이 확실히 개선된 예를 찾을 수 있을까요? 대표적인 민영공항인 영국 히드로공항의 경우, 영국 당국은 BBA라는 회사에서 소유하고 있는 런던 3개 공항 서비스 수준이 불량하다고 판단하고 개선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합니다(영국 《헤럴드 트리뷴》). 또한 영국 공항대란의 원인이 성급한 공항 민영화에 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조셉 스티글리츠 미 콜롬비아대 교수).

호주 시드니공항의 상황은 어떨까요? 맥쿼리라는 회사에서 인수한 시드니 공항의 주차료는 미국 뉴욕 J.F.K 공항의 두 배이고, 런던 히드로공항보다도 비쌉니다. 예전에 무료로 서비스하던 셔틀버스 운행을 중단시켜 연간 200만 호주달러를 절약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지요(호주 《데일리 텔레그래프》). 공항을 이용하는 시민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죠. 그리스의 아테네공항의 상황도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테네공항은 민영화 이후 시설 사용료를 자그마치 500퍼센트나 인상해 항공사와 이용객들의 부담이 급증하면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제프 풀 IATA 비용담당 이사).

이런 사례를 볼 때 공항 민영화가 이룬 비용절감과 수익상승 이면에는 시민과 항공사의 엄청난 부담과 불편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천국제공항을 민영화하려는 이유는?

인천국제공항의 매각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 사이에 경영효율과 국부유출을 두고 많은 논란이 일었습니다. 인천국제공항 매각과 관련하여 벌인 설문조사에서 반대의견 65.6퍼센트(2011년 8월 13~14일, 한길리서치)로 많은 국민이 인천국제공항 매각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천국제공항 매각과 연관하여 국민적 여론이 분열되고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자 정부와 한나라당은 다른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2011년 8월 1일 한나라당 홍준표 전 대표는 "인천공항공사를 국민주 공모 방식으로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인천공항공사를 국민주 방식으로 매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서민 정책인데다 특혜 매각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고 국부 유출도 방지할 수 있다"며 "지분의 49%를 포항제철과 같이 블록세일(대량매매)을 통해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시도에 대해 많은 국민이 '민영화를 추진하는 꼼수'라며 비판했습니다. 민주당 김진애 의원에 따르면 1988~1989년 국민주를 공모했던 포스코의 경우, 5년이 지나자 원지분자인 사람은 11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포스코 지분의 49퍼센트가 외국인 지분으로 되어 있다고 하니 국민주 방식의 허구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셈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뻔히 아는 '꼼수'를 쓰면서까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인천국제공항을 매각하려고 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인천국제공항 민영화 군단(출처: 경향신문)

자유선진당 이재선 의원에 따르면 "당초 1차 선진화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지난 (2008년) 8월 11일 이명박 대통령과 케빈 러드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던 날 전격적으로 대상에 포함됐다"며 "이명박 정부, 맥쿼리펀드, 타당성 분석 전문가, 공공투자 분석전문가 등으로 형성된 'SOC(사회기반시설) 마피아'는 맥쿼리의 인천국제공항 인수 추진위를 연상케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이재선 의원에 따르면 송경순 국제개발협력위원회 위원은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의 감독이사이고, 새로 부임한 이채웅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의 사위 진동희 씨는 2년 전까지 맥쿼리 은행에 근무했다고 합니다. 송경순 위원은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단' 단장인 현오석 고려대 겸임교수와 함께 국제개발협력위원회 위원으로 같이 활동했습니다. 현오석 교수는 맥쿼리가 적극 투자하고 있는 인천경제자유구역을 관할하는 '경제자유구역위원회'의 위원이며 맥쿼리인프라 펀드의 감독이사로 있는 조대연 씨와 고교 동창으로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관계를 보면 앞서 언급한 'SOC 마피아'를 연상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러한 커넥션이 있는 가운데 정부는 인천국제공항의 매각을 들면서 '외국 전문공항운영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 2008년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은 '호주 맥쿼리공항'을 직접 언급하여 인천국제공항의 지분을 맥쿼리에 팔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었죠.

국민의 혈세 빨아먹는 맥쿼리

맥쿼리라는 회사가 이렇게 도마 위에 오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맥쿼리는 1969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설립된 회사로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다국적 금융그룹입니다. 2000년 한국에 진출한 맥쿼리는 10년 만에 증권, 자산운용, 금융자문, 선물, 부동산 등 13개 분야의 사업을 운영할 정도로 급성장합니다. 

맥쿼리코리아의 매출은 맥쿼리그룹 아시아 지역 총매출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맥쿼리는 특히 '인프라 투자'의 귀재로 알려졌는데요, SOC 분야에 이른바 선진 금융기법을 도입해 투자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전 세계 25개국에 110개 이상의 인프라 자산을 운영하고 있는 맥쿼리가 미국 다음으로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사실에서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맥쿼리는 고속도로, 터널, 항만, 대교를 비롯해 전력, 도시가스, 방송 등 전국 17곳에 투자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수익을 낼까요? 맥쿼리는 한국의 '민자사업'의 허점, 즉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MRG, Minimum Revenue Guarantee)'를 이용해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사업 유치를 위하여 실시협약에 따라 미리 정해놓은 운영수입을 만족하지 못할 경우 정부 또는 주무관청에서 수익의 일정 부분을 보전해주는 방식입니다.

1997년 우리 사회에 외환위기가 닥치자 민간투자사업 추진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프라 건설을 위한 투자자 유치를 목적으로 정부 또는 주무관청은 사업추진 위험의 일정 부분을 분담하기로 하여 1998년 민간투자법 개정에 따라 명문화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민간사업자는 교통량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거나 일부러 예상 이용객 수를 부풀리는 편법을 행하기도 합니다. 통행료가 비싸게 책정될수록 정부가 보장해주어야 하는 금액은 늘어납니다. 즉 통행료가 비싸고 차가 적게 다닐수록 수입은 확실히 보장되는 반면 관리비는 싸게 먹혀 투자자로서는 큰 수익이 발생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왼쪽 도표는 주요 민자고속도로에 얼마나 많은 혈세가 들어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잔여 MRG 기간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민간자본이 그야말로 눈먼 돈을 먹고 있는 셈이네요.

이런 여러 정황을 볼 때 맥쿼리는 정부 고위 관료들과 커넥션을 갖고 있고, 이를 통해 황금알을 낳은 거위 격인 인천국제공항을 인수하려 한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맥쿼리가 인천국제공항을 인수한다면 호주 맥쿼리공항과 비슷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죠.

지난 4월 15일 메트로 9호선은 기본요금을 50퍼센트 올리겠다는 공고를 내걸었습니다. 이에 깜짝 놀란 서울시는 공개 사과 요구와 함께 과태료 1000만 원을 부과했지만, 메트로9호선은 예정대로 6월 16일부터 인상된 요금을 받겠다고 맞받아쳤습니다.

메트로 9호선은 공공성이 매우 강한 지하철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소운영수입보장 규정에 따라 개통 이후 469억 원 규모의 정부 보조금을 받아왔습니다. 당연히 지자체인 서울시 측은 메드로 9호선을 감독 대상으로 간주했으며 서울 시민 또한 9호선을 공기업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소유 구조상 메트로 9호선은 민간기업으로 정부 지분은 단 한 푼도 들어가 있지 않다고 하는군요. 

메트로 9호선을 둘러싼 수수께끼의 이면에는 채권자인 맥쿼리인프라, 신한은행과 같은 금융계 주주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간 주주들은 엄청난 이자수익을 챙겨왔던 것이죠. 후순위 대출이라는 최첨단 금융기법까지 동원하여 메트로 9호선을 황금알을 낳는 기업으로 만든 곳도 바로 맥쿼리였습니다.

민영화에 반대하는 시민(출처: 오마이뉴스)


인천국제공항 민영화, 과연 필요한가?

서두에 밝힌 것처럼 인천국제공항의 지분을 매각하기 위해 편성한 2012년 세입예산 4,314억원을 지난해 11월 8일에 열린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예산심의에서 여야 합의로 삭감 처리함으로써 인천국제공항 지분 매각 움직임은 거센 역풍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며칠 후에 말을 바꿨습니다. 민영화 예산 삭감이 자신의 지역구 예산에 영향을 미치자 생각을 바꾼 것이죠. 

정부 또한 인천국제공항 매각과 관련해 고삐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산이 삭감된 것이지 민영화 법안이 폐기된 것이 아니"라며 민영화법이 폐기되기 전까지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논의선상에 오르지 않았을 뿐, 인천국제공항 민영화 문제는 진행형인 문제였던 것이죠.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천국제공항 지분을 매각하여 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서 공기업의 민영화가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듭니다. 미국의 유명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공항 톱 10 리스트에 오른 인천국제공항을 민영화하는 일이 과연 옳은 걸까요? 세계 상위 10개 공항 중 5곳이 정부가 100퍼센트 지분을 소유한 공항이라는 사실을 본다면 이런 의구심은 더욱 증폭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반대하신다면 인천국제공항 민영화 반대 서명운동에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저희는 2011년 한 해 동안 기업의 변화를 촉구하는 도서를 출간해왔습니다. 《사회적기업 창업 교과서》《지역과 상생하는 기업 핵심전략》《아이디어 하나가 지역경제를 살린다》가 그런 관심의 결과물입니다. 사회적기업과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사회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궤를 같이합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 사회적기업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고, 수많은 사회적기업이 생겼습니다. 정부 주도로 사회적기업을 육성했기 때문인데요, 먼저 우리 사회에 사회적기업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정부 주도로 사회적 기업을 육성한 배경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급속히 증가하는 실업률과 심화된 양극화 문제는 사회에 큰 시름을 안겼습니다. 정부는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였습니다. 또한 방만한 기업경영으로 수많은 실직자가 생긴 탓에 그 어느 때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졌습니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예전에 많은 기업에서 시행했던 이벤트성의 기부·후원 문화를 제고하게 했을 뿐 아니라 사회서비스 부문의 고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는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 해결문제와 사회서비스 수요에 대한 공급 확대책의 일환으로 사회적기업을 육성하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 7월에 시행한 사회적기업육성법에 의해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정을 받은 사회적기업의 수는 해마다 늘었습니다.

출처: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언뜻 보면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흐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근 언론은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온 사회적기업이 존폐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고 심각한 상황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사회적기업은 사회문제의 해결이 일차적 목표여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적에 따라 육성된 사회적기업은 자립을 최우선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는 문제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작년 말부터 정부의 지원이 단계적으로 끊어짐에 따라 영업 적자에 허덕이던 많은 사회적기업이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정부의 재정 지원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어쩌면 이는 예견된 일이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기업의 목적은 사회문제 해결에 있다. (출처: 사회적기업 창업 교과서)

정부는 2012년까지 1000개의 사회적기업을 육성하여 5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그동안 실적 올리기에 급급했습니다. 지자체가 앞장서고, 중앙정부가 밀어주는 방식으로 사회적기업을 육성하는 추진체계를 도입한 결과 2007년 50곳이었던 사회적기업이 2011년 7월 통계를 보면 555곳으로 11배가 넘게 늘었고, 정부의 인증 절차를 밟고 있는 예비 사회적기업을 포함하면 1500여 곳에 이릅니다. 하지만 2011년 12월 19일자 《경향신문》 기사를 보니 2009년 사회적기업 297곳 가운데 영업이익을 낸 곳은 72개 기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2010년 사회적기업 491곳 가운데 영업이익을 낸 곳은 71곳으로 전체의 14.4%"라고 말했습니다. 2011년 12월 19일 현재 30여 개 사회적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중단되었고, 연말까지 60여 개 사회적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이 끊겨 사회적기업의 지속적인 활동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보조금에 의존하는 사회적기업이 문제다

일반 기업이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진출하지 못하는 분야에서 사회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기업을 사회적기업이라고 부릅니다. 2011년을 지나는 사이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기업은 그 존재 이유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정작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토대를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 주도의 사회적기업 육성책은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사용되었을 뿐, 정부 지원, 민간 투자, 자생적 기술이나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자생력을 기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 보조금이 취약계층의 인건비로 지출될 뿐 정작 사회적기업의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유럽에서는 1970년대 후반 복지국가 위기에 따른 복지제도 개혁과정에서 공공서비스의 민영화와 제3섹터의 중요성이 두드러지면서 사회적기업이라는 개념이 출현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높은 실업률과 사회적 약자층 증가 같은 사회문제의 해결과 사회통합을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사회적기업을 제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는 1980년 레이거노믹스 등장과 함께 연방정부의 사회복지예산 감축, 비영리기관의 재정자립도 향상 요구와 같은 시대적 흐름을 따라 비영리 공익활동의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수익사업을 일반화하려는 움직임이 생겼습니다. 빌 드레이튼은 최초로 '사회적기업'이라는 용어를 도입했습니다. 이후 1990년대 노동시장 부적응 빈곤층을 위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모델로 사회적기업을 주목했고, IT산업의 성공과 함께 벤처 자선가가 대폭 증가하여 사회적기업가정신이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유럽과 미국의 상황을 비교하면 우리나라에서 사회적기업이 시작된 사회적 배경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프랑스·이탈리아 같은 유럽과 한국에서 시행되는 사회적기업 정책을 비교하면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표를 참고하세요.

자료: 한겨레

조상미 이화여대 교수는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의 문제점을 유럽권 정책과 비교하여 정리했습니다. 먼저 한국의 사회적기업은 양적으로는 급성장하고 있으나 사회경제적 주체로 인식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유럽 3개국이 일자리 창출과 사회서비스 제공이라는 사회적기업 본연의 목적을 균형 있게 적용하는 반면에, 한국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일자리 창출에 치중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유럽권의 사회적기업 정책을 참고하여 한국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사회적기업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고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협소한 인식에서 벗어나 사회적기업의 내용을 다양화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 표에서 드러나듯이 유럽권은 사업지원 방법이 무척 다양합니다. 우리나라가 사회적기업 '발굴'과 '인증'에 중점을 두고 있는 반면 영국·프랑스·이탈리아는 실질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지속적으로 사회적기업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인건비 지원이나 세금 면제 같은 직접적인 정부 지원으로는 사회적기업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토대를 마련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대출이나 투자와 같은 자본조달 인프라를 구축하여 민간과 정부가 공동으로 사회적기업을 폭넓게 지원하고, 사회적기업 기금을 마련한 뒤 사회적기업 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노동연계 복지정책과 결합된 지속적인 후원 정책을 제시하는 방법 등을 마련해야 합니다.

2012년 사회적기업, 어디로 가야 하나

2011년 세계경제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위기와 혼돈'이었습니다. '불확실성' '위기의 확산성' '불투명성' '혼란' 등을 언급하며 경제 전문가들은 향휴 경제의 불확실한 미래를 전망했습니다. 유로존 위기, 반복되는 글로벌 수준의 경제위기, 국제경제 침체, 동아시아 위기의 부상 등을 거론하며 대안 모색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럼에도 '지속가능발전' '균형발전' '생태적 관점에서의 지속가능성' '지속가능한 성장' 등은 세계 변화의 열쇳말이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협력, 성찰, 책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구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협력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더 커지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적 경제 성장과 탐욕스런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 결과 2011년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습니다. 경제·환경·자원 위기라는 복합적인 시대적 과제 앞에서 우리 사회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 패러다임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아래 표는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출처: 한겨레

2011 아시아미래포럼에 참여한 300여 명을 대상으로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조사한 결과입니다. 55명의 응답자의 답변을 통계로 정리한 것인데요, 향후 10년간 한국경제가 가장 역점을 둬야 할 것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확대'라는 의미 있는 대답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향후 10년간 한국경제가 도약할 기회에 관한 질문에 '사회책임경영, 사회적기업 등 사회적경제 활성화'라고 답한 이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자, 다시 사회적기업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봅시다. 고용노동부는 "취약계층에게 일자리 또는 사회서비스를 규정하거나 지역사회에 공헌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을 뜻한다고 밝혔습니다. 의미가 너무 협소합니다. 이런 사회적기업이 향후 10년간 한국경제를 도약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2011년 초에 저희가 출간한 책 《사회적기업 창업 교과서》는 '사람을 도와 일을 창출하는 소셜 비즈니스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일본에서 '소셜 비즈니스'는 사회적기업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이 책의 저자 야마모토 시게루는 30대 초반에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회적기업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생각을 한번 들어보시죠.

여러분은 ‘소셜 비즈니스’, 일명 ‘사회적기업’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사회적기업이라는 말 자체에서 ‘사회 공헌적인 성격이 강한 비즈니스’라는 이미지가 떠오를지 모른다. 그런 생각이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조금은 다르다.
소셜 비즈니스란 어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 행하는 비즈니스를 말한다. 약간 뉘앙스가 다르다는 점이 느껴지는가? 즉 소셜 비즈니스란 ‘사회공헌’이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비즈니스를 뜻한다. 내 모교인 NEC사회기업학원을 운영하는 NPO법인 ‘ETIC’에서는 소셜 비즈니스를 ‘사회를 바꾸는 일을 과제로 삼는 사업’으로 표현한다. 또한 ‘사업을 통해서 사회를 변혁한다’ ‘사회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고도 표현하고 있다. 이제 어렴풋하게나마 소셜 비즈니스의 정의를 이해했으리라고 본다.
_《사회적기업 창업 교과서》 분문 중에서

김홍일 사회투자지원재단 이사는 "사회적기업가는 지역사회와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를 바라볼 때 '그 일이 될까, 안 될까?'를 묻지 않고, '어떻게 가능할까?'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잠재된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며 공동체를 일구고 지역을 변화시켜 가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니 어떤 사회적 기업가를 발굴하고 양성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중요합니다.

앞서 우리나라가 사회적기업의 양적 증가라는 면에서 일정한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사실상 질적인 측면에서 보완해야 할 측면이 더 많다는 사실을 살펴봤습니다. '사회적기업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다시금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새로운 경제는 성공을 '부'와 '풍요로움'의 획득으로 인식하는 관점을 넘어 '꿈'과 '비전'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기를 요구합니다. 경쟁과 배제의 문화를 거스르고 협력과 책임이라는 가치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사회적기업가를 많이 배출한다면 분명히 사회는 달라지겠지요. 결국 사회적기업의 '사람'의 문제인 겁니다.

사람을 도와 일을 창출하는 사회적기업이 대안이다  

사회적기업은 시장성이 없더라도 뭔가 특수한 목적에 의해 영리기업이 거들떠보지 않았던 사회의 수요에 대응하여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적기업을 지속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사업이란 지속해야만 일과 더불어 사람이 성장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되어 조직이 성장하고, 상품이나 서비스의 질이 좋아지고, 조직의 운영체계가 강화되고 효율적으로 작동합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사람을 도와 일을 창출하는 사회적기업을 만들 수 있을까요? 야마모토 시게루가 젊은 나이에 사회적기업을 시작하여 좌충우돌하며 느낀 경험담이 여러분께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창업에 실패하는 세 가지 유형>이라는 글입니다.

소셜 비즈니스는 어렵다. 나도 여러 차례 실패했고, 주위에서 실패하는 사례를 몇 번이나 봐왔다. 그러나 실패하는 유형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미리 알아둔다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창업에 실패하는 유형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밖에 없다.
첫째, ‘대책이 대책일 수 없는 경우’다. 대책이라고 세웠으나 실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아무리 사업화에 성공하더라도 사회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으니 사회적기업으로서 의미가 없다. 이러한 실패는 주로 조사나 분석이 부족해서 생긴다.앞에서 ‘대책입안’에 충분히 시간을 할애하면 좋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NPO나 정부조직일수록 과거 경험에 사로잡혀 틀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생각하지 않고 ‘하던 대로’ 쉽게 결론내기 쉽다. 처음으로 돌아가 바닥부터 생각해서 ‘진실’을 찾아야 한다. 이 단계에서 잘못하면 그 이후의 노력이 완전히 물거품이 되므로 심사숙고해야 한다.
둘째, ‘사업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다. 시작은 했지만 사업으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이다. 예상 밖으로 원가가 많이 들어간다거나, 금방이라도 상품·서비스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꿈같은 상상을 했는데 실제 인지도는 높아지지 않아 판촉비용이 예상보다 많이 들었다는 등의 사례가 있다. 이러한 실패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업을 ‘너무 쉽게 봤다’는 것. 하지만 충실하게 사전조사를 해둔다면 이 문제도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다.
셋째, ‘실력부족이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다. 대책도 훌륭하고, 비즈니스 모델도 잘 만들었으니 누가 봐도 잘되리라고 생각했는데 실패했다는 사례를 보면, 주로 기업가의 실력부족이 원인이다.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매일매일 불규칙적으로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난다. 더구나 직원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운영이 힘들어진다. 사람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각자 마음이 있고 독립된 존재이며, 때때로 감기에도 걸린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투성이 속에서 사업과 동시에 조직을 원활하게 이끌어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컨설턴트 출신인 사회적기업가가 “경영이란 것, 참 힘드네…….” 하고 푸념하는 모습도 보았다. 경영은 머리로 생각하기보다 실천하며 쌓고 또 쌓는 수밖에 없다. 종이 위에 그린 그림대로 실현되는 일이란 드물다.
_《사회적기업 창업 교과서》 분문 중에서 

지금까지 논의한 바를 정리해서 이제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해보겠습니다. 작년 말 <HERI Review>에 류시문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과 서형수 사회적기업가학교장이 나눈 대담을 정리하고 저희의 생각을 더했습니다.

먼저 사단법인, 재단법인, 비영리단체, 주식회사 등으로 쪼개져 사회적기업의 조직과 법적 형태가 통일되어 있지 못한 현실을 바꿔야 합니다. 앞으로 협동조합 형태로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열리고 있습니다.  기존의 협동조합이 사회적기업으로 전환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장기적으로 지원과 육성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중앙정부의 지원정책은 직접지원에서 벗어나 민간 주도로 활성화해야 하며 경영컨설팅 제공, 상품 및 서비스 판로개척 지원, 공공기관 우선구매 활성화 지원, 교육프로그램 제공, 네트워크 구축 지원 등 간접적이고 장기적인 지원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유럽과 미국 등 선진적인 프로그램을 조사하고 우리의 현실에 맞춰 조정해 적용하는 방안을 세워야 합니다.

근래 청년 실업자 못지않게 퇴직자나 자영업에서 밀려난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도 반영해야 합니다. 이들의 경험과 지식,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기업 창업을 촉진해야 할 뿐 아니라 공무원의 실무역량을 강화하여 그간 형식적인 인증과 육성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마을기업이나 사회적협동조합을 사회적기업으로 간주하고 지원하고 육성하려면 관계 법령과 제도의 정비도 선행되어야 합니다. 중앙부처와 지차체 단위에서 사회적기업 창업 및 지원을 위한 창구를 일원화할 필요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넓은 의미의 사회적기업 부문을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정부의 인증을 받지 않았더라도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조직, 기관, 단체를 발굴하여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네트워크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회적기업육성법 때문에 사회적기업이라는 명칭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비행은 앞으로도 사회적기업 관련 내용을 지속적으로 기사화할 생각입니다. 또한 관련 서적을 꾸준히 펴내어 여러분을 돕겠습니다. 2012년엔 많은 사회적기업가, 예비 사회적기업가와 동반 성장하는 한 해가 되기를 꿈꾸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기대합니다.


일본 대지진으로 말미암아 일본 관동지방이 시끄럽습니다. 지진해일 탓에 많은 사람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 원자력 발전소 손상으로 방사능이 유출되어 공포는 더욱 확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언론에서 간간이 다루고 있듯이 이번 일본 원자력 발전소 사태를 보노라면 뭔가 확연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 사이에서 드러나는 뭔지 모를 불협화음입니다. 지진해일이 발생한 이후 일본 정부가 발표한 정보는 시시각각 달랐습니다.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이에 최근 도쿄에서 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습니다. 과연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둘째, 전력 공급 문제입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계획 정전을 시행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엄청나게 큽니다. 그러니 관동지방의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해도 타지방의 전력을 끌어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소에 전력을 공급하기까지 일본 시민은 물론 이번 사태를 주시하는 전 세계인이 의문을 품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렸죠.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정계와 제계의 유착에서 비롯한 사고 은폐, 결국 방사능 유출이라는 큰 사고로 이어져

도쿄전력은 일본 도쿄 지역과 그 주변 지역에 전기와 가스를 공급하는 민영회사입니다. 1951년에 설립된 도쿄전력은 일본 내 11개 전력회사 주식 가치 총액 가운데 3분의 1을 차지하는 큰 회사죠. 게다가 일본에 있는 52기 원자력 발전소 가운데 가장 많은 17기를 운영하는 기업이기도 합니다.

후쿠시마 원전(출처 : 연합뉴스)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17기 원자력 발전소 가운데 이번에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은 1971년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의 기술로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는 1976년부터 이번 지진해일로 피해를 보기 전까지 크고 작은 사고가 잦았다고 하는군요. 특히 2007년 내부 비밀 문건이 공개되면서 알려진 '임계사고'는 일본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임계사고란 핵연료의 연쇄 반응이 커져 시설 손상과 작업자에게 방사선 피해가 생기는 큰 사고입니다. 하지만 이런 큰 문제를 도쿄전력은 29년간 은폐해왔습니다. 이런 큰 사건을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은폐할 수 있었던 걸까요?

이에 대해 도쿄전력과 일본 정계의 오랜 유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장정욱 마쓰야마 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민중의 소리》와 나눈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도쿄전력이 도요타와 함께 엄청난 정치적 힘, 막강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며 “나머지 전력업체를 모두 합쳐도 도쿄전력에 대항하지 못할 정도의 파워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국회의원 가운데 <원자력 마피아> <원자력족> <전력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심지어 민주당 에너지 담당 관료 가운데 전력회사 출신이 여럿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도쿄전력의 잦은 사고는 정계와 재계의 유착으로 말미암아 은폐되거나 별다른 처벌 없이 지나가기 일쑤였습니다. 이번 지진해일 피해에서도 그런 모습이 그대로 반복되었습니다. 도쿄전력은 원전 피해 상황을 축소, 은폐하면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만, 초기 대응에 실패한 탓에 큰 화를 자초했습니다. 도쿄 전력은 사태를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직원을 철수하려 했다고 하는데요, 이 사실을 알게된 간 나오토 총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하는군요.

撤退などはあり得ない。 覚悟を決めてください。撤退したときは東電は100%潰れます。
- (직원들이) 철수한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각오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직원들이 발전소에서 ) 철수하면 도쿄전력은 100퍼센트 도산합니다.

민영회사를 총리가 도산시킨다는 말은 큰 논란을 빚을 수 있습니다. 공권력 남용의 문제로 비화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정도의 극단적인 발언이 나올만큼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도쿄전력 측의 무모한 행동에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정경유착에 찌들어 시민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는 기업에게 묻는 책임 말입니다.


주파수 문제로 전력을 공급 받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 민영화의 병폐가 드러나다

일본은 지진 피해로 말미암아 계획 정전을 시행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라고 하니 이번 지진 피해로 전력 공급이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계획 정전을 알리는 도쿄 전력 홈페이지 공지사항


여기서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이번에 피해를 본 곳은 관동지역입니다. 관서지역이나 중부지역은 피해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의 여유 전력을 일시적으로 공급받았다면 계획 정전과 같은 사태로 번지지는 않았을 텐데요, 왜 전력을 공급받지 못했을까요?

문제는 도쿄전력에 있었습니다. 간사이 전력을 비롯한 다른 곳의 전력 주파수와 도쿄 전력의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에 공급받기 어렵다고 합니다. 전압이나 전류라는 용어는 알아도 전력 주파수라는 개념은 조금 생소하실 텐데요, 전력 주파수는 전력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발전소에서 만드는 전기의 주파수는 60Hz/s입니다. 그러니 공장이나 가전제품 모두 60Hz/s에 맞게 제작해야 한다고 합니다. 만약 주파수의 편차가 크면 과열 같은 문제가 생겨 가전제품이 쉽게 고장난다는군요.

한국전력이 기준으로 삼은 양질의 전기는 '일정한 전압, 일정한 주파수, 무정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와 다릅니다. 관동지역은 50Hz/s를, 관서지역은 한국과 같은 60Hz/s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정으로 관동지역 후쿠시마에 전력을 공급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군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변전소 설비를 갖추고 있긴 하나, 그 용량이 적어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국가에서 전력 관리를 총괄하지 않고 민영회사에 맡겼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봅니다. 일본은 그동안 동, 서를 구분하여 관리해왔습니다(일본 철도 JR도 동과 서로 나뉘어 있음). 이런 관례가 전력 표준화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았다 싶습니다. 일본 원전 사태는 국가 기간 산업을 민영화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는지를 극단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최근 한국도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많은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의 원전 사태로 민영화 문제를 타산지석으로 삼야야 할 듯합니다.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일본은 이번 대지진으로 엄청난 일을 겪었습니다. 지진해일이라는 자연재해는 막기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원전 사고는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민영화된 전력 공급회사는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기 급급했으며, 문제가 터졌을 때 책임을 지기는커녕 어처구니 없는 행동으로 국가의 운명까지 좌지우지하게 되는 인재로 발전되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정부는 경쟁력 강화와 효율성이라는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많은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진의 안전지대는 아닙니다. 일본 국민은 대재앙의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매뉴얼 강국이라는 일본도 피하지 못한 대자연의 힘을 한국이라고 피할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습니까. 이명박 정부의 국가적 위기 관리 능력은 천안함 사태, 연평도 사태, 구제역 파동 등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음을 만천하게 드러냈습니다. 
이제 우리가 풀 숙제가 남았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의 후손을 위해 우리는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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