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4주기를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잃어버린 7시간에 대한 봉인이 풀리고 있습니다. 지난 28일 청와대 캐비닛 문건 의혹 등에 대한 검찰의 수사 발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간 잃어버린 7시간에 대한 숱한 루머가 있었죠. 정윤회와의 밀회설, 종교의식 참석설, 프로포폴 투약설, 미용 시술설 등 온갖 추측과 보도가 난무했습니다. 하지만 검찰 수사 발표로 드러낸 진실의 일부를 보면 어떤 의미에서 루머보다 더 황당합니다. 박근혜는 최순실이 데리러 올 때까지 그냥 멍하니 있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다녀온 일정 외에는 종일 관저에 머물렀고, 최순실과 미용사 등을 제외한 외부인은 출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동시에 당시 박근혜의 청와대와 김장수, 김기춘, 김관진 등 연루자들이 입을 맞추고 문서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검찰은 대통령 보고 및 지시 시간을 임의로 바꾸고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을 무단 수정한 김장수, 김기춘, 김관진 등을 재판에 넘기고 그 밖에 해외로 도주한 부역자들도 적색수배 등을 내렸습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무엇보다 박근혜가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에게 구조를 전화로 지시한 시각은 오전 10시 15분이 아니라 골든 타임이 지난 10시 22분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첫 서면 보고도 10시 19~20분으로 드러났고요. 탄핵 이전 10시에 첫 서면 보고가 들어갔다는 주장과 10시 15분에 첫 전화 지시가 있었다는 당시 박근혜 청와대의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세월호 탑승객이 외부로 마지막 문자 메시지를 보낸 시각이 10시 17분이었으니 이미 배가 전복되어 구조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을 때에야 비로소 박근혜와 청와대는 꿈지럭거리기 시작했던 겁니다.

 

더 참담한 건 김장수 전 실장이 박근혜에게 전화를 2번 했으나 받지 않아서 안봉근 전 비서관이 차를 타고 관저로 가서 직접 침실 문을 두드리자 그제야 박근혜가 밖으로 나왔다는 겁니다. 박근혜는 정말로 무슨 생각으로 대통령이 되고 청와대에 있었던 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진실은 이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관련 첫 보고와 지시 모두 세월호 구조의 골든타임이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또한 실시간으로 11회 서면보고했다는 것도 거짓입니다. 늦은 오후와 저녁에 2회에 걸쳐 출력 보고한 게 다였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사고 당일 오후 2시 15분 최순실이 청와대 관저에 들어와 박근혜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 등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와 최순실 그리고 문고리 3인방의 5인 회의가 개최되어 박근혜가 중대본부를 한 번 방문하도록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죠. 이때 나온 작품이 박근혜의 올림머리입니다. 그리고 중대본을 방문한 박근혜는 "구명조끼 입었는데 그렇게 발견이 힘듭니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출처 - 부끄러운 이명박근혜 9년

 

탄핵심판 과정에서 박근혜는 세월호 7시간 의혹과 관련해 당일 간호장교와 미용사를 제외하고 어떤 외부인도 관저에 들어온 사실이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까지 최순실과 국정농단의 실체를 숨기려 든 겁니다.


출처 - 한겨레

검찰의 수사 발표를 접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반응은 분노 속에서도 황당하다는 반응과 함께 그럴 줄 알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검찰의 수사 발표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청와대와 박근혜에게 세월호 참사는 중요하게 다뤄지는 일이 아니었고, 박근혜 개인의 일탈을 숨기기 위해 국가기관이 나서서 공문서와 여론을 조작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검찰 수사 결과 외에 참사 원인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의 지휘 체계가 어떻게 개입했는지 수사가 더 진전되어야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세월호 변호사로 국회의원이 된 박주민 의원은 박근혜의 7시간 중 4시간의 행적은 의혹이 남는다고 했습니다. 2014년 4월 들어 박근혜는 수요일엔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했다는데 공교롭게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도 수요일이었습니다. 쉬느라 늦게 일어났더라도 어쨌든 안봉근 비서관이 침실에서 불러낸 10시 남짓부터 오후 2시 최순실이 올 때까지의 4시간의 행적은 이번 발표로도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노컷뉴스

다음 달이면 세월호 참사 4주기가 됩니다. 그날의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지만 정확한 실체가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억울함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미진한 박근혜 4시간의 행적과 공문서 조작 등과 관련한 여죄를 검찰이 명명백백하게 풀어내야 할 것입니다.

박근혜는 탄핵당했지만 정부의 무능함과 그 무능함을 덮기 위한 사악한 면모가 이제야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청와대는 2014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당시 박근혜 정부가 상황 보고일지 및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을 각각 사후에 조작 및 불법 변경한 정황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뉴스1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2일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열어 지난달 27일 국가위기관리센터 내 캐비닛에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을 불법 변경한 자료를 발견했고, 11일에는 안보실 공유 폴더 전산 파일에서 세월호 사고 당일 세월호 상황보고 일지를 사후 조작한 정황이 담긴 파일 자료를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뉴시스


이로 인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최초 보고를 받은 시점이 당시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밝힌 4월 16일 오전 10시가 아니라 30분 이른 시간인 오전 9시 30분으로 드러났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 같은 사후 조작은 탄핵 정국에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변명처럼 밝힌 오전 10시 최초 보고 10시 15분 첫 지시의 앞뒤를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사실대로 9시 30분에 첫 보고를 받았다면 1분 1초가 급한 상황에서 박근혜는 45분이나 아무런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는 게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국가적 참사를 앞에 두고 당시 청와대가 사후에 임의로 박근혜에게 보고한 시간을 늦추도록 조작한 셈입니다. 이에 따라 박근혜 구속 연장에 대한 논란을 앞두고 탄핵의 촉발제 중 하나였던 '박근혜의 잃어버린 7시간'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SBS


또한 세월호 사고 당시 시행 중이던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에 '청와대 국가안보시장이 국가위기상황의 종합관리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한다'고 명시돼 있던 것을 3개월 후인 7월 말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불법적으로 변경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정부의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재난 관련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가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로 그 대목입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청와대가 국가위기 상황 컨트롤 타워라는 기본지침 항목을 삭제해버리고 국가위기 관련, 대통령의 안정적 국정수행을 보좌한다는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임의 수정했습니다.

 

또한 이 위기 상황의 관리현황을 국가안보실에 제공한다고 되어 있는 기본지침도 안보 분야일 경우에만 국가안보실로, 재난 분야는 안전행정부에 제공한다고 멋대로 수정해버렸습니다. 당시 김기춘이 세월호 국정조사에 출석해 법적으로 재난 종류에 따라 지휘 통제하는 곳이 다른데 청와대는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작으로 보이는 대목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능으로 빚어진 참사를 감추기 위해 불법으로 법을 고쳐버리는 말도 안 되는 비행을 저질렀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굳이 최순실이 아니더라도 차고 넘칠 정도로 국정을 농단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지난 5월, 세월호 미수습자 9명 중 3년 만에 유해를 찾은 이영숙 씨의 영결식이 오늘(13일) 전남 목포신항에서 치러집니다. 이영숙 씨는 당시 제주도에 직장을 잡은 아들과 수년 만에 함께 살기 위해 짐을 싣고 세월호에 올랐다가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영면한 이영숙 씨뿐 아니라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아들 앞에서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은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제는 역사 앞에서 진실을 밝힐 때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해결되어야 국정농단의 끝이 보일 것입니다.

 

출처 - 내일신문


세월호 참사 3주기인 지난 4월 16일, 이전과 다른 애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정부 합동 분향소와 인천가족공원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등지가 노란 리본을 달고 노란 조화를 든 시민 2만여 명으로 붐볐기 때문입니다. 국가적 참사를 추모하는 물결이 당연한 것 아니냐 싶으시겠지만, 사실 그동안은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죠.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지우기에 열을 내던 1년 전 2주기 추모 행사에는 2500명이 참석했을 뿐이었으니까요. 그때와 비교하면 3주기 행사 참석 인원은 족히 10배 규모로 늘었습니다.


출처 - MBN


국내 추모 물결만큼이나 해외에서도 세월호 희생자를 애도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일본 피겨 스케이팅 대표 선수였던 안도 미키는 자신의 SNS에 "같은 하늘 아래서 2014~2017년 4월 16일을 기억한다. 유족들이 미소를 찾길 바란다. 일본에서 기도를"이라는 글과 함께 노란 리본을 올렸습니다. 안도 미키는 세월호 참사 당시 피해자들을 위해 1000달러를 기부한 바 있고 매년 4월 16일에 꼬박꼬박 추모해왔다고 합니다.


출처 - 국민일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밴드 중 하나인 콜드플레이도 지난 16일 내한 공연 중에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했습니다. 10만여 관객 앞에 노란 리본을 착용하고 무대에 오른 콜드플레이는 공연 두 번째 곡으로 자신들의 1집 수록곡 〈Yellow〉를 불렀습니다. 세월호의 노란 리본을 염두에 둔 선곡이었죠. 관객의 야광 팔찌가 노란색으로 빛나고 전광판에 노란 리본이 띄워져 자연스레 추모 분위기가 연출되었습니다. 콜드플레이 멤버들과 관객들은 10초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했습니다.


출처 - 뉴시스


이후 콜드플레이는 한국인을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 부르겠다며 〈Fix You〉를 불러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겨울 박근혜 탄핵을 부르짖는 현장에서 즐겨 불리던 히트곡 〈Viva La Vida〉가 흘러나오자 관객들은 한국 특유의 떼창으로 화답했습니다. 이 노래는 프랑스 대혁명으로 단두대 앞에 선 루이 16세의 시점을 가사로 쓴 혁명 찬가이기에 뜻깊은 점이 있죠.


출처 - 뉴스핌


이렇게 국내외에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가운데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과거 속에 사는 구시대 인물들도 없진 않았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덮으려 했던 박근혜의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홍준표는 유일하게 세월호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는 다른 대선 후보들이 세월호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진실 규명을 약속할 때 3년이나 우려 먹었으면 많이 했다는 망언으로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후벼팠습니다.  말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출처 – 뉴스1


한편 지난 16일 세월호 참사 유족인 김영오 씨의 SNS에 한 누리꾼은 어묵으로 리본 형태를 만들어 보내며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한 짓" "4·16 오뎅데이 오늘은 오뎅 먹는 날" "애 살아 있을 때 교육비 한 푼 안주다 죽으니 찾아와 애비 행세" 같은 메시지를 보내 국민의 공분을 샀습니다. 지난 3년간 세월호 유족을 모욕하고 괴롭힌 일베 등 극우 커뮤니티 회원의 소행이 아닌가 싶은데요, 자신들의 악행을 깨닫지 못하고 구시대의 미몽에 빠져 사는 모습이 한심스럽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3주기에 앞서 세월호 인양이 완료되었습니다. 육상 거치도 무사히 끝나 참사 1098일 만에 세월호 선내 수색이 시작되었죠. 수색 첫날 신발, 가방, 의류, 구명조끼 등 총 18점이 나왔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 이제 시작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안전사회를 위한 시설 조성은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구속된 박근혜는 세월호 7시간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 중이고 그 후임이 되겠다며 나온 대선 후보라는 사람은 망언을 일삼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대통령이 선출되어 세월호 4주기에는 모든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고 우리 사회의 안전 의식도 더 높아지길 빕니다. 그때야말로 세월호 희생자들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을까요?

 

"박근혜는 내려가고 세월호는 올라오라!"

 

추운 겨울 광장에서 외치던 이 한마디가 드디어 실현되고 있습니다. 2017년 3월 23일 1073일 동안 바닷속에 가만히 잠들어 있던 세월호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1000일이 넘는 시간을 차가운 바닷속에서 보낸 세월호를 꺼내는 데에는 만 이틀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인양 결정은 박근혜 탄핵 5시간 만에 결정됐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세월호 선체는 바지선의 유압 장비로 시간당 3미터씩 끌어올렸습니다. 2.4미터 높이까지 끌어올린 뒤에는 세월호를 바지선에 고정하는 작업이 진행됐죠. 목표했던 13미터까지 끌어올려야 반잠수식 선박에 세월호를 옮겨싣는 2단계 작업에 들어가게 되지만, 인양 과정에서 세월호 선체가 흔들린 데다 바지선 두 척 사이가 좁아져 세월호 환풍구와 바지선 도르래가 부딪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방금 속보를 보니 2시께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대기 중인 반잠수식 선박으로 세월호가 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2척의 잭킹바지선이 와이어로 세월호를 묶어 한 덩어리가 돼 5대의 예인선에 이끌려 반잠수식 선박 쪽으로 이동 중이라고 하는군요. 천만다행입니다.

출처 - 뉴스토마토


고은, 조정래 등 문인들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이렇게 짧은 시간에 끌어올릴 수 있는 세월호가 1000일이 넘도록 바다 밑에 가만히 있어야 했던 이유가 대체 뭐냐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사실 세월호 인양은 업체 선정 당시부터 잡음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시도한 세월호 인양 방식은 상하이 샐비지가 제안했던 방식이 아닙니다. 상하이 샐비지가 제안했던 방식이 실패로 끝나 다른 회사들이 제안했던 방식으로 선회하면서 시간과 돈을 허비했죠. 당시 입찰에 실패한 업체는 기술평가도면에서 1위였고, 이번에 이뤄진 인양 방식으로 세월호를 인양하겠다고 제안했는데도 최종 낙찰은 해수부가 고집한 상하이 샐비지로 선정되어 의구심을 자아냈습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인양이 미뤄진 이유로 정부의 부실한 사전조사와 판단착오를 꼽습니다.


출처 – 추적 60분


사실 지난해 9월 30일 기한 만료를 주장하는 정부에 의해 강제로 해산된 세월호 특조위, 그에 대한 보수단체의 비난과 방해공작 뒤에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통해 이런 사실을 잘 알 수 있었죠.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의 행적을 감추기에도 바빴지만, 유가족에게 약속한 인양에도 무능과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 겁니다. 아니, 사실은 인양을 막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 것이죠.  


출처 - 노컷뉴스


일부 보수언론은 세월호 인양에 든 예산 1000억이란 돈에 집착하며 박근혜가 탄핵당한 지금에도 마치 유가족들 때문에 나랏돈 1000억이 샌다는 식의 프레임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박근혜와 똑같은, 인면수심의 종자들입니다. 나랏돈 낭비가 걱정이라면 박근혜가 탄핵당한 마당에 박정희 기념사업이나 폐기하라고 주문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구미시를 중심으로 짜인 전국의 각종 박정희 기념사업 예산이 1873억 원입니다. 탄신제, 추모제 같은 굿판들에 쓰인 예산이 세월호 인양 비용의 거의 2배에 달합니다. 보수언론이나 일베의 프레임대로라면 나랏돈을 좀 먹는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이 아니라 박정희의 유가족인 박근혜와 그 일당들인 셈입니다.


출처 - JTBC


박근혜 탄핵 후 구속과 진실 규명을 위한 수사가 진짜 싸움인 것처럼,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도 인양 이후부터가 진짜 싸움입니다. 4월 초 인양은 예고돼 왔지만 참사 원인과 진실을 어떻게 규명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합의나 계획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작성한 인양 관련 기본 방침에 선박 자체는 아무 의미 없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침몰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는 애초부터 관심 밖이었죠. 대법원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조사 결과인 '조타 미숙'을 인정하지 않기도 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여전히 미궁 속입니다. 자로의 <세월X> 다큐의 경우 정부의 침몰 원인 전체를 부정했죠. 과적이나 조타 미숙 급변침 등의 원인이 아니라 '외력'이 작용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세월호 선체의 정밀한 조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해수부는 제대로 된 선체 조사 계획은 마련치 않고 대형 선박 참사에 대한 조사 경험도 없는 산하 기관에 선체 조사를 맡기겠다는 한마디뿐이었습니다.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국회가 나서자 21일에서야 선체 조사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죠.


출처 - 경인일보


아직 9명의 미수습자가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과 이를 밝히기 위한 싸움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지난 22일 오후 6시 38분께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단구사거리에서 세월호 리본 모양의 구름이 촬영됐습니다. 자연적인 구름인지 비행 항적에 의한 것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의 순간을 보며 하늘나라에 있는 아이들이 화답한 것이 아닌가 싶어 반가운 마음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그 날까지 함께 힘을 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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