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궐선거의 여파로 다시 한번 여성 징집과 연관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 청원은 이미 1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국방부는 사회적 합의가 먼저라고 선을 그었습니다만, 이 논란은 다른 청원으로 이어졌습니다. '여성징병 대신에 소년병 징집을 검토해 주십시오'라는 청원입니다. 한국전쟁 때도 학도병이 있었던 걸 감안해 병력 자원이 부족하다면 중고등학생도 징집하라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이 청원을 올린 이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정신이 온전한 상태가 아닌 건 분명합니다. 지구 어딘가에서 갈등과 내전 등의 상황에 내몰려 죽어가고 있을 소년병 문제를 생각한다면, 국내의 젠더 이슈와 관련하여 자극적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청원에 대해 동의를 주도하는 남초 커뮤니티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페미가 역풍을 맞게 하려는 것이죠.

 

출처 - 부산일보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한국에 살면서 병역 의무와 관련하여 억울함을 느끼는 남성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군복무를 마친 분들이라면 국방부와 군대가 사람을 어떻게 굴리는지 경험하셨을 테니 긴말이 필요 없겠지요. "군대 갈 땐 국가의 아들, 사고 날 땐 당신의 아들"이라는 분노 섞인 표현이 괜히 나온 건 아니겠죠. 또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 가운데에는 일본군과 군부독재를 거치며 군대에서 유래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전히 군대에서 학습되는 것들도 많고요. 하지만 군대 내에서는 국가를 위한 다는 명분으로, 제대한 뒤에는 조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치장되곤 합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군대를 정상화하자거나 입대를 보이콧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국가와 국방부를 상대로 싸워야 할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소년병 징집 청원을 들먹이며 여성도 군대 가라는 식으로 싸움의 방향을 잘못 잡으니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죠.

 

 

리로이 존스의 지적대로 노예 생활이 길어지면 노예들끼리는 쇠사슬을 자랑거리로 삼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자신을 구속하는 압제자를 상대로 사슬을 끊어내려고 싸우는 게 정상인데도 말이죠. 이처럼 '내가 군복무를 하니 너도 군복무를 해야 한다는 식의 병역 의무 논란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누구나 흔들리며 페미니스트가 된다》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성들이 성평등을 외칠 때마다 남성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얘기가 바로 '군대' 문제이다. 군복무는 기간이 정해져 있는 반면 성차별을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문제인데, 이둘을 과연 대등한 문제로 볼 수 있을까? 과연 여성이 군대에 의무적으로 가게 된다고 한들 성차별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까? 나는 아닐 거라고 본다. (중략) 평등해지기 위해서는 여성이 남성과 똑같아져야 하는 것도, 특별한 배려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남성이 기준이 되는 시스템을 다른 측면에서 바로보고 이를 해체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 위에서 남성들이 억울함을 주장하는 편이 옳다고 봅니다. 이는 남성이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핵심은 우리 사회가 지극히 남성을 '기본값'으로 놓고 있는 남성 중심주의 사회이며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비단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지금의 세계가 여성 착취의 기반 위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출처 - MBC

 

현실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지난 4월 초 하나은행에서 벌어진 말도 안 되는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하나은행 지점장이 대출 상담을 한 여성 고객을 식당으로 불러 술을 따르라고 강요했던 사건 말입니다. 상담을 해주겠다는 얘기에 여성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 혹시라도 대출 승인이 될까 싶어 기뻐하며 나갔다고 하죠. 그런데 지점장은 횟집에서 고객에게 반말로 술을 따르고 마시라고 강요했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지점장은 여성 고객을 접대부로 쓰려고 했던 겁니다. 여러 정황상 그 지점장은 대출을 미끼로 한두 번 여성 고객을 농락했던 게 아닐 겁니다. 일이 커지자 지점장은 자기 부인까지 앞세워 용서를 빌게 했습니다. 비겁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죠.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운 상황에서 생계를 위해 대출에 기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한둘이 아니겠지요. 그런데 같은 고객인데 접대부 취급을 받는 일은 거의 여성에게만 일어납니다. 이런 사회가 과연 정상적일까요?

 

출처 - KBS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장경훈 하나카드 사장이 공식 회의 자리에서 "카드는 룸살롱 여자가 아닌 같이 살 아내를 고르는 일"이라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일자 결국 물러난 일 말입니다. 하나은행과 하나카드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낮은 성인지 감수성과 미흡한 인권 의식을 가진 남성들이 권력과 위계를 이용하여 여성을 희롱하고 농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건만 우리 사회는 이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남성 중심주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출처 - JTBC

 

지난 3월 논란이 불거진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은 또 어떻습니까? 동아제약은 면접 자리에서 여성 지원자에게 여자는 군대 안 갔다 왔으니 남자들보다 월급을 적게 받아야 한다고 운운했습니다. 이 질문은 공통 질문도 아니었고 직무와도 관계가 없었는데 왜 이 질문을 굳이 여성 면접자만 받아야 했을까요? 이로 인해 불매 운동이 불거지자 동아제약은 인사팀장을 보직 해임하고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렸다고 하죠. 그저 면접관 개인의 일탈로 꼬리를 자른 겁니다.

 

출처 - 뉴스1

 

반면 성추행 가해자들과 2차 가해자들은 잘 먹고 잘 삽니다. 안희정 전 지사에게 성폭행 피해를 당한 김지은 씨를 모욕하는 댓글로 벌금형이 확정된 안희정 전 지사의 측근은 서울 송파구 정무직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죠. 올해 1월부터 송파구 정책연구단 팀장, 6급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판결까지 나온 성폭행범을 비호하고 본인 또한 2차 가해로 벌금형으로 유죄를 받았는데 민간 기업도 아닌 공무원으로 다시 일할 수 있다니 기가 막힙니다. 상황이 이러니 아무리 선량한 남성이 많다고 한들 여성들이 이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방어운전을 잘하는 운전자가 도로에 많다 해도 몇몇 난폭 운전자들 때문에 움츠러드는 경험은 다들 해보셨을 줄 압니다. 그러니 대부분의 남성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쉬쉬하며 넘길 일이 아니라 구조적인 진단과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이 아닐까요? 

 

출처 - MBC

 

여성 혐오 반달리즘의 한 형태는 지난 3월 세종대 철학과 온라인 수업에 난입한 외부 남성들의 분탕질에서도 드러났습니다. 보겸의 '보이루'가 여성혐오 표현이라는 논문을 쓴 윤지선 교수의 강의였습니다. 신 남성연대라는 유튜브를 비롯해 일베 등 여성 혐오에 사로잡힌 남성들이 온라인 수업에 침입해 온갖 욕설과 여성 혐오 용어를 쏟아내며 수업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습니다. 경찰은 모욕, 업무방해,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온라인 수업을 이용한 여성 혐오적인 반달리즘이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던 터라 걱정이 더 커집니다.

 

출처 – 노컷뉴스

 

여기에 더해 '허버허버, 오조오억개' 등 SNS에서 쓰이던 용어들을 갑자기 '남혐 용어'로 규정하며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 대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건지 눈앞이 막막해집니다. '김치녀, 된장녀' 등은 명확하게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기 위해 일베에서 생겨난 용어이지만, '허버허버'는 2019년부터 쓰인 신조어로 당시 중앙일보 네이버 블로그 포스트에서는 해당 단어가 '급히'라는 뜻의 영단어 'Hubba-hubba'에서 유래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오조오억개' 역시 한 팬이 아이돌 멤버를 찬양하는 댓글에서 발전한 것이고요.

 

출처 - JTBC

 

전문가들은 극단적인 혐오에 기반한 젠더 갈등이 청년 세대의 잘못된 공정성 문제와 연결돼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공정성은 사회의 모든 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능력 지상주의를 추구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애초 남성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등하게 돌려놓자는 움직임은 남성들로서는 당연히 누려왔던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당연해지지 않는 세상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노예제도가 사라지자 자신들의 재산을 국가가 강탈해갔다고 분노하던 노예 주인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울어진 운동장 시절의 잣대로 공정성을 주장하면서 군복무 문제를 젠더 갈등으로 비화시키는 측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잘못된 공정성 문제로 인한 갈등은 여성을 넘어 성소수자, 장애인, 저학력자,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해 점점 더 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론을 비롯한 정치권은 이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논란을 부추기는 실정입니다. 돈과 권력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없는 자인 우리는 각자의 사슬 자랑은 그만하고 '사슬을 끊기 위한 연대'를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여성 혐오와 젠더 갈등을 넘어 '약자를 위한 연대'로 말입니다.

서울 강남에서 여성 혐오로 인한 살인 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저녁부터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는 살해된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포스트잇과 헌화 그리고 추모의 행렬이 줄을 이었습니다. 하루가 지난 19일부터는 강남역뿐 아니라 고려대 등 대학가에도 '#살아남았다'는 해시태그가 붙은 대자보와 포스트잇이 번지고 있습니다. 대구, 부산 등 지방 번화가에서도 포스트잇을 이용한 추모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일반인뿐 아니라 문재인 전 더민주당 대표 등의 인사가 추모를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를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국민의당, 정의당은 이번 범죄가 여성 혐오에 의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편 박원순 서울 시장은 이 추모의 현장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유튜브


 

이례적인 추모 열기의 이유

 

온·오프라인을 넘어 살해된 피해자를 추모하는 열기가 전국적으로 번진 일은 우리 사회에서 다소 이례적인 일입니다. 지금까지 여성을 표적으로 한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종종 보도되었습니다. 지난 2일에는 대전의 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냥 화가 나서 20대 여성의 머리를 벽돌로 내리친 16세 소년이 검거되었습니다. 지난달 17일 광주에서는 여성 이 모 씨가 등산 중 한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의해 숨진 사건도 있었죠. 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표적으로 한 강력범죄가 지속적으로 일어났지만 이번처럼 추모 열기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출처 - SBS


그렇다면 지난 17일 강남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은 어떤 차별점이 있는 걸까요? 이번 추모 열기의 배경에는 강남역 살인 사건이 단순한 묻지마 범죄가 아니라 '여성 살인'이라는 명확한 의미가 전달되어 여성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던 사건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이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하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한국 문화에서 지속되던 여성 혐오가 온라인 공간 일베 등을 통해 비정상적으로 범람하고 실제 살인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나자 '여성 혐오' 분위기가 바로 나에 대한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음을 인식한 여성들의 마음이 사회적 행동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출처 - 한겨레


강남역 10번 출구는 한국에서 가장 번화하고 가장 많은 사람이 움직이는 곳 중 하나입니다. 이런 장소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는 건, 여성의 입장에서는 내가 이런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합니다. 피해자를 추모하는 한 여성의 말마따나 '남자들은 조심해라 조심해라 말만 하는데 대체 뭘 더 어떻게 조심해야 살 수 있는 거냐'는 두려움을 느낄 법하고요. 내가 단지 운이 좋아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라고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는 게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일입니까?

 

 

'여성 혐오' 문제를 단순히 보면 안 되는 이유

 

이번 사건을 저지른 범인은 "평소 여자들한테 무시를 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끔찍한 것은 1시간이 넘게 남자는 그냥 보내고 반항하지 못할 것 같은 여성 1명이 화장실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여성 가운데서도 범죄 대상을 신중히 골랐다는 얘깁니다. 이번 살인 사건을 지금까지 빈번하게 일어난 묻지마 살인으로 볼 수 없는 지점입니다. 범인은 현장을 지나가는 수많은 여성 중에 대상을 고르고 또 골라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잠깐 생각해봅시다. 평소 여자들에게 무시를 당했다면 남자들한테서는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왜 범인은 남자를 대상으로 삼지 않았을까요? 시쳇말로 '분노조절장애도 상대를 가려가며 터지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범행 대상으로 버거운 남자보단 만만해 보이는 여자로 말입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그동안 범인의 자백을 그대로 받아적거나, 범인이 게임, 영화, 만화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런 영향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손쉽게 원인을 규정짓던 경찰이, 이번 사건에서는 여자 때문에 저질렀다는 범인의 자백을 두고도 '정신병력'으로 원인을 몰고 가는 것은 좀 이상합니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 아니냐, 남녀 대결 구도로 몰고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우리 사회에 팽배한 '여성 혐오' 문제를 왜곡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남북전쟁 당시 미국 사회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전 인구의 절반인 북부에서는 노예가 된 당사자인 흑인은 물론 백인들도 힘을 합해 흑인 노예 해방을 위해 피를 흘리고 싸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흑인들이 아무 백인에게나 호감을 느끼고 안전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나라의 절반 이상이 자기들을 위해 싸워주고 있더라도 백인 농장주의 채찍질을 감내해야 하는 흑인들의 사례가 있는 한 어떤 흑인이라 할지라도 백인 대다수를 일단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백인에 대한 인식이 논리적으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라도 살기 위해선 오히려 그 오류가 흑인들에겐 당연한 겁니다. 비뚤어진 사회구조 속에서 흑인들에게 '백인이 나쁜 게 아니야. 그러니 함부로 매도하지 마'라고 쉽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일제강점기의 우리 사회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독립투사들을 변호해준 양심 있는 일본인 변호사의 사례처럼 식민지 상황에 처한 한국인을 차별하지 않고 잘 대해준 일본인도 일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인이 당시 일본인에게 살가운 감정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지금도 많은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데요.


출처 - 한겨레


그러므로 현재 우리 사회에 팽배한 '여성 혐오' 문제를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 통계만 봐도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 피해자의 여성 비중이 1995년 72.5퍼센트에서 2014년 88.7퍼센트로 대폭 증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범죄 피해자 가운데 여성의 비중이 높은 편이지만, 강력범죄 피해자의 약 90퍼센트 그러니까 절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상황이 상당히 비정상적임을 방증하는 지표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강력범죄가 일어나면 90퍼센트의 확률로 여성이 죽는다는 얘긴데, 불안해하지 않을 여성이 어디 있겠습니까?


출처 - 경향신문


여성을 침묵시키려는 힘을 고찰한 9편의 산문을 묶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라는 책을 낸 레베카 솔닛의 말대로 "모든 남자가 다 여성 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며 살아간다는 점이다"라는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제정신인 남성이라면 이번 살인 사건에 대해서 '남녀 대결로 몰고 간다'라거나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지 마라'는 얘기를 하기 이전에 불안해하는 여성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야 합니다.


간디는 한 나라의 위대성과 그 도덕성은 동물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동물이 안전하다면 사람이야 더 말할 게 뭐가 있겠느냐는 뜻을 담았을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의 안전이 보장된 사회라면 남성의 경우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번 살인 사건이 남긴 사회적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연일 이어지는 추모 열기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되는 상징적인 일이 되겠지요. 이제 우리에게 여성 혐오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숙제가 남았습니다. 이번 살인 사건을 포함하여 우리 사회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숱한 여성 피해자분의 명복을 빕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