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이순덕 할머니께서 지난 4월 4일 오전 7시 30분께 노환으로 별세하셨습니다. 향년 100세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중 최고령이었던 분이시죠. 이순덕 할머니는 16살 때인 1934년에 좋은 옷과 쌀밥을 준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에 의해 만주로 끌려가 고초를 당하다 해방 후 사람들에 섞여 귀국하셨다고 합니다.


출처 - 중앙일보


고 이순덕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역사에서 의미가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 1심에서 승소를 이끌어낸 이른바 관부 재판의 마지막 원고였다는 점입니다. 관부 재판은 1992년 12월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야마구치 지방재판소에 위안부 피해자 3명과 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이 원고가 되어 약 9년에 걸쳐 진행된 재판을 말합니다. 일본 법원 소재지였던 시모노세키의 한문 표기에서 '관' 자를 따고 피해자들이 거주하던 부산에서 '부'를 따서 '관부' 재판이라고 부른 겁니다. 이 재판을 위해 한국은 물론 진실을 규명하려는 일본 시민단체들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그 결과 1998년 4월 사상 최초로 일본 사법부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물어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불할 것을 판결했습니다. 정확히는 행위 자체보다 입법부작위에 따른 국가배상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것인데요. 일본국 헌법 해석상 국회에 침략전쟁 피해자에 대한 전후보상 입법 제정의무가 있는데 이를 태만히 하여 원고인 위안부 및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심각한 고통을 받도록 방치했다는 것입니다. 야마구치 지방법원은 이는 여성차별, 민족차별 및 헌정질서에서 허락지 않는 방치상황이기 때문에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간접적이나마 일본 사법부가 처음으로 일본 정부의 전쟁범죄 책임과 그에 대한 입법 및 사법 조치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판결이어서 의미가 깊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1심 판결은 3년 후인 2001년 3월 일본 정부의 항소로 진행된 2심 재판에서 뒤집힙니다. 일본 정부의 작심한 항소와 압력으로 히로시마 고등법원이 1심 판결을 파기한 것이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든 역사에서 지우려는 일본 정부의 작태가 이 재판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출처 – 미디어몽구 트위터


이후 아베 정부의 극우 일변도 행보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박근혜 정부가 매국적이고 치욕적인 위안부 합의에 동조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회복은 더 힘들어지게 되었죠. 이런 마당에 외교부 윤병세 장관은 이순덕 할머니의 빈소를 찾지도 않았으면서 직원(정병원 외교부 동북아 국장)으로 하여금 대리로 조객록에 이름을 남기게 해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상황에 따라 윤 장관 대신 국장이 조문한다"며 "이번 경우도 정 국장이 장관 보고를 거친 뒤 대신 조의금을 전달했으며 이 할머니의 유족에게도 미리 알린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직접 장례식장에 갈 수 없는 상황일 때 지인에게 조의금을 전달하여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상주와 유가족을 위문하는 것은 관례이긴 합니다. 하지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역사의 오점인 위안부 합의를 한 외교부의 수장이 아닙니까? 굴욕적인 합의의 내용을 왜곡해 발표하기까지 했습니다. 외교부는 역사적인 합의를 이뤄낸 것처럼 호도했지만, 실상은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출연하기만 하면 위안부 문제가 최종 해결되는 것으로 명시돼 있었습니다. 애초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반성을 요구할 생각 자체가 없었음이 명백히 드러난 겁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비롯한 외교부 인사들은 이런 황당한 합의로 일본의 사과를 받아냈다고 주장하니, 이들이 과연 제정신인 인간들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병세 장관이 진심으로 이순덕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할 마음이 있다면 장례식장에 와서 잘못된 합의를 한 과오를 뉘우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더 늦지 않게 합의를 파기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럴 마음도 없는 사람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장례식에 대리 조문으로 마음을 쓴 것처럼 이름을 올리니 사람들이 곱게 보지 않는 겁니다. 인두겁을 쓰고 이따위 작태를 보이는 이가 외교부 장관이라니 박근혜 정부의 인사에 다시 한번 혀를 내두르게 되는군요.


출처 – 정대협 윤미향 상임대표 페이스북


이순덕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날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한국으로 복귀했습니다. 《교도통신》은 주한 일본대사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 소녀상 문제 해결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지난 3일 기자들에게 "앞으로도 소녀상 문제(이전)와 위안부 합의를 착실히 이행하도록 요구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정권 이행기를 맞아 정보수집에 더욱 힘쏟고 차기 정권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치욕적인 위안부 합의 이후 1년이 조금 더 흐른 사이에 벌써 9분의 피해자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분 중 남은 생존자는 38분뿐입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날로 뻔뻔해지는 일본의 대응에 맞서 차기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무효화하고 피해자분들이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으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청산하는 첫걸음이라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출처 - 아시아투데이


1904년 2월 23일은 한일의정서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날이었습니다. 러일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중립을 주장하는 대한제국을 점령하기 위해 일본은 대한제국 황성을 공격해 점령한 뒤 대한제국 외부대신 서리 이지용과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의 명의로 조약을 체결하게 합니다. 

 

이지용은 후에 을사늑약을 체결한 을사오적 중 한 명이죠. 그는 외교를 담당하는 자의 소임을 뒤로 한 채 하야시 곤스케로부터 한일의정서 체결의 대가로 1만 엔을 받고 나라를 팔아버렸습니다. 총 6개 조항인 한일의정서는 한마디로 앞으로 일본 말만 잘 들으라는 강요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았고, 1910년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은 주권마저 빼앗겨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맙니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이를 묵과하지 않았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대한의 독립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니까요.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이어진 독립운동과 변화하는 국제정세가 맞물려 우리나라는 1950년에 광복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친일 잔재 청산에는 실패하고 말았죠.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1965년 박정희 정권은 민심을 무시한 채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합니다. 한일기본조약으로 한일의정서를 포함해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무효임이 확인되었으나, 경제 협력 협정과 문화재 협정으로 일본군 위안부 배상 문제와 일본이 약탈한 문화재 반환에 어려움을 자초했습니다. 이는 박정희 정권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경제성장을 위한 차관을 약속받고 일본이 저지른 이전 과오를 고스란히 용인해버린 셈이죠

 

출처 - SBS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위안부 합의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인 윤병세와 일본 외무상인 기시다 후미오는 위안부 문제 당사자들을 비롯해 국민의 반대와 비난을 무시하고 졸속으로 합의 사항을 발표했습니다. 사실 국가 간의 합의라고도 할 수도 없는 기자 회견문에 불과했죠.

 

국민 정서에 반하는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한 아버지 박정희, 한국사 국정교과서로 이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려던 딸 박근혜. 대를 잇는 친일의 피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얼마나 진흙탕으로 내몰았는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박정희의 죽음으로 알 수 있듯이 국민을 배신하는 지도자의 말로는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합의는 100년 전에도, 100년 후에도 무효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불가역적 진실임을 탄핵 심판대에 오른 박근혜가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생각비행이 출간한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시리즈 도서를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현재 러일전쟁~태평양전쟁까지의 기간을 다룬 책이 3권으로 나와 있습니다. 시리즈 도서는 이후로도 계속 출간됩니다. 송인서적 부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희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니 주변 분들께도 권해주세요. 독자 여러분의 사랑에 힘입어 역사의 진실과 일상의 소중함을 전하는 책을 꾸준히 펴내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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