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첫째 아들이자 현재 북한의 지배자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피살되었습니다. 김정남은 유럽을 비롯해 중국, 마카오, 싱가포르 등 해외를 전전하며 생활한 엘리트 계층이지만 북한 내에 적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간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그의 기이한 행동은 양녕대군처럼 권력승계에서 밀려난 존재로서 살아남기 위한 계획된 행동이었다는 분석도 있었죠.


출처 - 중앙일보


지난 2010년 민주평통 이기택 수석부의장이 전해들었다는 내용에 의하면, 김정일이 죽기 직전 와병 중일 때 김정남에게 부친이 아픈데 왜 평양에 가지 않느냐 바통터치하러 가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정남은 "내가 왜 갑니까. 바통터치도 하기 싫습니다. 북한이 망해가는데요. 오래 가겠습니까?" 하고 답했다고 합니다. 북한 붕괴를 예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고 권력 승계에 대한 욕망은 없는 것으로 보이는 김정남을 굳이 암살한 것은 김정은의 편집증적인 성격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김정남은 김정은에게 정치적 위협이 될 존재가 아닌데도 2012년 이후 계속 암살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죠.


출처 - 연합뉴스


처음에는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두 여자에게 둘러싸인 김정남이 독침을 맞고 암살당했다고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경향신문》의 단독 기사가 나온 직후 암살 소식이 전해져 SNS를 중심으로 박근혜와의 연관이 밝혀지기 전에 국정원에 의해 암살당한 게 아니냐는 음모론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유엔 대사를 미행하다 걸리고 댓글부대를 운용한 게 들통나는 국정원이 마티즈를 운용할 수도 없는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암살에 성공할 만큼 유능할 리 없다는 누리꾼들의 결론이 나오기도 했죠.


출처 - 경향신문


[단독]박근혜 유럽코리아재단 대북 비선은 김정남이었다(경향)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2111459001&code=910303


현재로는 북한 김정은의 사주를 받은 자들에 의해 김정남이 암살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이 중세도 아닌데 무슨 독침으로 암살을 하느냐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말레이시아 경찰의 CCTV 판독에 의하면 독침이 아니라 독성이 든 스프레이일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고 하는군요. 작년 터키에서 세계로 실시간 중계된 러시아 대사 암살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독은 여전히 강력한 암살 수단입니다.


출처 - 시사IN


지난 1998년 푸틴의 반정부 인사 암살계획을 폭로하고 영국으로 망명한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도 2006년 독에 의해 암살당했습니다. 망명 후 러시아 반정부 활동을 하고 있던 그는 2006년 FSB 동료와 옛 KGB 요원을 만났는데, 이후 복통을 느끼고 입원한 지 2주 만에 숨진 겁니다. 그가 마친 차에서 폴로늄 210이라는 방사성물질이 검출되었는데, 이는 청산가리 독성의 1조 배에 달하는 치명적인 물질입니다.


출처 - 중앙일보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알려진 1914년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방아쇠를 당긴 계기로 익히 알려져 있는데요, 사실 그 암살 과정은 조잡한 한편의 희극 같았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지배하에 있던 세르비아를 독립시키려던 민족주의 암살단인 흑수단이 대공의 목숨을 노렸습니다. 암살을 위해 요원을 여러 차례 배치했지만 어이없는 실수로 암살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죠. 대공의 차를 처음으로 마주친 요원은 겁이 나서 그냥 지나쳤고, 두 번째 요원은 폭탄을 던졌지만 잘못 던져 대공의 뒷차 앞에서 폭발해 애먼 사람들만 다쳤습니다.

 

번번이 실패하던 암살이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예정에 없던 대공의 돌출행동과 운전사의 실수가 겹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때문에 다친 사람들을 위문하겠다며 갑자기 병원으로 행선지를 바꾼 대공의 의향을 따라 운전사가 차를 돌렸습니다. 가는 길을 잘못 통보받아 헤매던 운전사가 길을 찾기 위해 어느 매점 앞에 잠시 차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매점에 흑수단 암살자가 밥을 먹으러 와 있었죠. 대공을 알아본 그는 차 안으로 총을 쏘았습니다. 폭탄으로도 죽이지 못했던 대공과 그의 부인은 이렇게 암살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빌미로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의 삼국동맹이 형성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죠. 조잡한 희극 같았던 암살이 세계의 참극으로 이어진 겁니다.


출처 - 연합뉴스


김정남 암살 사건을 우리가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조잡하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피살 사건이지만, 이 일로 세계의 정세가 어떻게 뒤바뀔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합니다. 트럼프가 러시아와 결탁했을지 모른다는 의혹 속에서 취임하자마자 탄핵론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보호를 받는 김정남 암살이 김정은의 지시로 이뤄진 일이라면, 이번 사건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넘길 일은 아닌 셈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우리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하루하루 요동을 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탄핵정국입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주도권 다툼과 세력 간 충돌만이 난무하는 형국입니다. 우주의 기운 운운하던 박근혜는 탄핵되어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했고, 그 빈자리를 메울 황교안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은 해야 할 일은 제쳐두고 의전에만 집착합니다. 대한민국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헌재는 하루빨리 탄핵을 인용하길 바랍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일할 지도자를 뽑아 이 난세를 헤쳐나가야 합니다. 지난 정월대보름을 밝힌 전국 80만 촛불이 의미하는 바를 사법부와 정치권이 분명하게 인식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미국인들 성미가 우리보다 급한가 봅니다. 박근혜가 대한민국을 망쳐놓는 데 3년이 걸렸지만 트럼프는 불과 열흘 만에 미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27일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의해 난민 수용을 120일 동안 중단하고, 이란, 이라크, 수단, 소말리아 등 7개 나라 국적자의 미국 입국이 90일 동안 금지되었죠. 이슬람교도 퇴출을 위한 초강경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조처에 항의하기 위해 JFK 공항을 비롯해 억류된 난민과 7개국 국민의 입국과 이민을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노골적으로 인종주의와 종교 차별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죠.


출처 - 뉴스천지


한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공약 중 하나였던 멕시코 장벽을 진짜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히스패닉 불법 이민자들의 유입 차단이 목적인데, 이를 멕시코의 부담으로 지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해 멕시코 대통령이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하기에 이르렀죠. 장벽 건설 비용은 무려 100억 달러에 달합니다. 하지만 이미 4대강이라는 국가적 삽질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그리 놀랄 액수는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멕시코 장벽 건설비도 4대강 사업 공사비 22조 원의 절반밖에 안 된다니 이명박이 나라를 얼마나 망쳐놨는지 새삼 실감하게 되는군요.


출처 - 동아일보


미국 사회의 반발이 심상치 않습니다. 퇴임한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트럼프의 행정명령들이 잘못됐다고 반발하면서 미국은 사실상 정치적 내전 상태에 돌입한 형국입니다. 뉴욕주 연방판사는 트럼프의 반 이민 행정명령으로 구금된 무슬림들의 송환을 금지하는 긴급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법원이 긴급정지시킨 셈인데요, 뉴욕주 법무장관은 이 행정명령에 대해 "헌법에 위배되고 초법적이며 반미국적 조치"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뿐 아니라 워싱턴, 버지니아, 매사추세츠 등 각 주 또한 해당 행정명령에 위헌 심판을 내며 트럼프의 정책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출처 - 뉴시스


트럼프 또한 초강경책으로 이를 맞받아쳤습니다. 자신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발한 법무장관 대행을 전격 해임해버린 겁니다. 그러면서 취업 비자까지 손대려고 하고 있습니다. 외국 전문인력 대상 취업비자의 전면 재검토 행정명령을 내릴 것이라는 건데요.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이 미국 경제를 견인하며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이 취업비자로 세계의 인재들을 뽑아 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 기업의 성장 동력을 대통령이 나서서 잘라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할리우드 등 문화·예술 기업들까지 이민자들의 안정적인 업무 계속을 위해 경제적, 법률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천명하며 트럼프와 각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출처 - 경향신문

 

열흘 만에 지각 변동을 일으킨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밑에서 4년씩이나 기다릴 수 없다며 벌써 탄핵론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조지타운 대학교 법학 교수인 로자 브룩스는 <2020년 전에 트럼프 대통령을 몰아낼 3가지 방법>이란 기고문을 발표했습니다. 미국 공공정책조사기관이 수행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탄핵에 찬성하는 응답자가 35퍼센트를 넘어섰습니다. 아직은 반대 50퍼센트의 여론이 있긴 하지만 트럼프가 취임한 지 열흘밖에 안 된 시점임을 고려한다면 탄핵 찬성 여론이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당인 공화당 내에서조차 트럼프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으니 설마가 현실이 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출처 - 자주시보

출처 - 경향신문

 

트럼프 취임 열흘 만에 벌어진 미국 사회의 대혼란. 어떻게 보면 지난 3년간 대한민국의 현실을 빨리감기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한국이 미국에 앞선 정치 경험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신기한 기분입니다. 실제로 그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3월 전에 박근혜 대통령을 몰아내고 퇴행하는 역사의 시곗바늘을 정상으로 되돌려야 하겠죠. 대한민국의 미래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2016년을 마무리하며 크리에이티브 시각디자인 집단인 버틀러 잉크(Beutler Ink)에서 한 해 동안 벌어진 전 세계 사건, 사고를 한 장의 그림에 담았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보신 분들도 계실 텐데요, 이 그림은 16세기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명화인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을 패러디하여 제작된 것입니다. 그림 안에는 탐욕스러운 트럼프 당선부터 카스트로, 데이비드 보위, 프린스 등 우리 곁을 떠난 명사들에 대한 추모도 담겨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과연 어떻게 표현되었을까요? 삼성 갤럭시노트7 폭발 사건이 조그맣게 실려 있을 뿐입니다. (그림에 노란색 상자로 표시해두었으니 그림을 클릭해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림 그리는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면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출처 - Beutler Ink.com


2016년은 우리나라나 전 세계적으로 정말 '격동의 해'라는 말이 어울리는 해였습니다. 훗날 역사가들에겐 흥미진진할 장면일지 모르겠으나 '지금'을 사는 우리에겐 더없이 고된 한 해였죠. 굵직한 사건만 훑어봐도 이렇습니다.

 

 1월 북한 4차 핵실험

 2월 개성공단 폐쇄

 3월 이세돌 vs 알파고 대국

 4월 총선으로 16년 만에 여소야대 및 3당 체제 형성

 5월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

 6월 브렉시트

 7월 영남권 진도 5 규모 지진

 8월 브라질 대통령 탄핵 및 갤럭시노트7 폭발 사건

 9월 이화여대 정유라 특혜 의혹

10월 최순실 국정농단 / JTBC 태블릿 PC 특종

11월 카스트로 사망 /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12월 박근혜 대통령 퇴진 100만 촛불집회 / 탄핵 가결 / 송박영신


이미 일어난 일들이긴 합니다만 정치, 사회, 경제적인 이슈부터 자연재해와 세계적인 사건에 이르기까지 이 많은 일이 대체 어떻게 한 해 동안 다 일어날 수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훗날 2016년 역사를 공부해야 할 아이들이 이 시기를 과연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집니다.


출처 - 유튜브

 


이 많은 사건, 사고 속에서 우리가 이뤄낸 것 역시 작지 않습니다. 국민의 힘으로 국회를 움직여 대통령 탄핵 가결을 이끌어낸 일은 하나의 쾌거이자 세계인에게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영국 BBC는 100만 명 이상이 모인 대규모 시위를 평화롭게 진행한 대한민국 시민의 힘에 놀라워했습니다. 폭력으로 권력을 뒤집어엎는 피의 혁명이 아니라 평화와 비폭력의 방법으로 국민이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그 대리자인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뜻을 받들게 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교과서와도 같은 모습을 거시적으로 실현해냈기 때문입니다.


출처 - JTBC


이 때문일까요? 2016년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였습니다. 《교수신문》은 전국의 교수 611명을 대상으로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이메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2016년 한 해를 규정할 사자성어를 뽑았다고 밝혔는데요, '군주민수'란 《순자》의 왕제 편에 나오는 말로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 君以此思危 則危將焉而不至矣)."는 뜻입니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 교수는 좀 더 전복적인 추천 사유를 덧붙였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군주가 배고 백성은 물이란 비유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개념이라는 거죠. 유가사상에 입각한 전국시대의 지식인인 순자가 지배자에게 민본주의를 훈수하는 제왕학에서 파생됐기 때문입니다. 민주공화국에서는 더 이상 무조건 존경받아야 하는 군주도 없고 그 자리에 그냥 가만히 있는 착하고 어린 백성도 없으니 이 사자성어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번역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민주공화국에서 권력자는 국민의 힘을 대리하는 선출직 공무원일 뿐임을 잊어선 안 될 이유입니다.



이 밖에도 '역천자망(逆天者亡)' '노적성해(露積成海)' '빙공영사(憑公營私)' '인중승천(人衆勝天)' 등 민주주의 원칙과 재권주민의 의미를 밝히고 공적인 일을 빙자해 사익을 챙긴 이들에 대한 비판이 어린 사자성어가 후보에 올랐다고 합니다.

 

출처 - 뉴시스

 

2016년 12월 31일 서울 광화문을 비롯한 도심에 시민 110만 명이 운집해 '송박영신' 촛불집회를 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 박근혜 정권이 물러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길 바란다는 염원이 10차 촛불집회까지 누적인원 1000만 명의 시민이 촛불을 든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출처 - YTN

 

201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7년은 최순실-박근혜, 그리고 그 부역자들을 엄벌에 처하고 세월호를 비롯한 숱한 의혹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생각비행 독자 여러분의 행복을 빕니다. 저희도 사회에 필요한 책을 펴내면서 힘차게 날아오르겠습니다.

 

2016년은 여론조사 예측과 결과가 어긋난 한 해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유럽에선 설마 통과될 리 있겠나 싶었던 브렉시트가 현실화되었고 우리나라 여론조사도 지난 4.13 총선 결과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죠. 그리고 설마 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결과까지 나왔습니다.



미 대선을 지켜보며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도덕성이 결여되고 머리가 텅텅 비었음이 분명한 트럼프의 토론회를 볼 당시만 해도 미 대선 결과는 너무나 분명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당시 대선과 평행이론을 떠올릴 정도로 미 대선에서 익숙한 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전과 14범의 이명박 후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박근혜 후보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것처럼, TV 토론회를 압도하던 힐러리 후보를 물리치고 보수를 대표하는 트럼프 후보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니까요. 더구나 우리나라 국정원이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위해 대선에 불법 개입한 것처럼 미국의 FBI는 대선 투표 전날 무혐의 처리를 할 거면서 트럼프와 힐러리의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는 시점에 힐러리의 이메일 사건 재수사를 들먹였습니다.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긴 합니다.




하지만 미국 대선은 별문제 없이 끝났고 미국과 동맹관계인 우리가 그 결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위기감이 드는 지점은 막말과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내세우던 트럼프의 대선 행보에 미국의 백인층이 크게 호응했다는 사실입니다. 8년 전 오바마를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택한 국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번 미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인종차별 이슈가 두드러졌죠.

 

백인 여성들은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힐러리를 지지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과반이 성폭행 혐의와 여성 혐오를 일삼은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죠. 특히 백인 남성들은 교육 수준에 상관없이 트럼프를 대거 지지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무서운 지점입니다. 브렉시트 직후의 영국처럼 고삐 풀린 미국 사회에선 대선 투표 하루 만에 인종차별적 언행을 일삼는 자들이 대폭 늘어났다는 소식이 SNS에 넘치고 있습니다

출처 - 헤럴드경제


부시 대통령이 재선했을 때처럼 세계 언론들은 트럼프 당선에 충격을 받은 심정을 1면에 쏟아내기 바빴습니다. 영국의 《데일리 미러》는 '대체 그들이 무슨 짓을 한 건가?'라며 자유의 여신상이 비탄에 빠진 표정을 1면으로 선정했습니다. 프랑스 《리베라시옹》은 트럼프의 실루엣에 연쇄 살인마 영화 제목이기도 한 '아메리칸 싸이코'를 덧붙였습니다.

출처 - 헤럴드경제


영국의 《더 선》은 유명 TV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에피소드를 방영했던 것에 착안해 표지를 꾸몄습니다. 만화 같은 현실이란 건데, 〈심슨 가족〉 제작진은 인터뷰를 통해 2000년도 방영 당시 작품 속에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한 이유는 자신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는데, 현실이 상상을 능가하는 상황이 도래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KKK단 등 미국 내 극우단체들은 물론 해외의 극우파들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 소식에 샴페인을 터뜨렸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신속히 트럼프의 당선을 축하했으며 프랑스의 극우정당 대표인 마리 르펜을 필두로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의 극우정당과 독재자가 일제히 트럼프 대통령을 환영하는 메시지를 타전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출처 - 경향신문

출처 - 한겨레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공약을 보면 아시겠지만 극우정당과 독재자들이 환영할 만합니다. 미국과 세계가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위기 속으로 빠져들 위험이 있습니다.

 

1. 이민정책 : "불법 이민자는 대거 추방한다"

 

● 미등록 이주자 200만명 추방 실시. 

● 안전하게 이민 심사할 수 없는 국가는 이민자 받지 않는다

● 미국과 멕시코 사이 장벽 세우겠다 

● 무슬림은 미국 입국 금지 (보류)



2. 경제정책 : "법인세, 세금 최대 폭으로 낮춘다"

 

● 법인세(35%→15%) 낮추어서 기업들이 돈 벌 수 있는 환경 만든다

● 세금 낮추어서 고소득층이 사회에 더 투자하도록 하겠다

● 불필요한 규제 대폭 폐지 

● 금융개혁법 '도드-프랭크법(금융기관 부실 막기 위한 개혁법)' 폐지 


3. 의료정책 : "오바마케어 없애겠다"

 

● 국가건강보험 '오바마케어' 철폐한다

● 건강보험을 자율시장경쟁 체제로 회귀



4. 무역정책 : "미국 이익이 우선이다"

 

● 북아메리카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 환태평양동반자협정 철회

● 멕시코와 중국에 관세 요구 

● 중국 견제(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부당한 이득 가져가는 것 방지)



5. 환경정책 : "파리기후협약? 철회한다"

 

● 파리기후협약(세계 각국 탄소 배출량 규제 규범) 철회 → 화석에너지 산업 부흥

● 미국 내 석유 시추 작업 허용



6. 대북정책 : "김정은과 햄버거 먹으며 핵 협상하겠다"

 

●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추가 제재를 가한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강한 압박을 가한다



7. 한국 외교 : "한국, 무임승차 안보 그만해라"

 

● 한국을 포함해 '안보 무임승차' 지양

● 우리 정부에 주한 미군 유지비용 분담금 더 요구



8. 그 외 외교 전반 : "미국 안전이 우선"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 혹은 무력화 

● 러시아와 친선 외교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는 '중립' 유지 


트럼프는 당선되고 난 뒤 자신의 공약에서 멕시코 이민자 입국 금지 같은 막말들을 슬그머니 지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미국 사회에서 문제가 될 겁니다. 애초 그의 공약이 진실이 아니었다는 얘기가 되며, 이는 신뢰할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사람으로 비쳐 그에게 4년간 대통령직을 맡겨둘 수 있겠느냐는 반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미국도 그간 일자리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제조업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은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릅니다. 이들은 원래 민주당의 지지자들이었죠. 클린턴은 노동계급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반면 트럼프는 중국과 멕시코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것을 공공연하게 얘기했습니다. '미국 이익 최우선'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미국 내 노동자에게 통했다고 보면 되겠죠. 사실 노동문제는 민주당 내에서 클린턴보다 버니 샌더스가 강점이 있었죠. 그 때문에 샌더스가 트럼프와 대결했다면 분명히 이겼을 것이라는 뒤늦은 분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무튼 트럼프 자신은 어떤 의미에서 욕망에 충실했고, 동시대 사람들의 밑바닥에 숨겨진 욕망을 충실히 대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틀린 건 알지만 그래도 차별하고 싶다. 미국은 백인의 나라다.” 전문가 그룹과 언론은 어쩌면 너무나도 천박해서 이 사실을 무의식 중에 외면했고, 그 결과 이런 파국이 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들은 더러운 진흙탕이더라도 현실의 욕망을 더 냉철하게 파악했어야만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보자.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에게 고작 3퍼센트 정도 뒤처진 그의 지지도를 그의 존재 혹은 능력만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온갖 자극적이고 강경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쏟아내는(심지어 트럼프는 강간 혐의로 무려 세 번이나 기소된 적이 있다) 그를 향한 지지는 미국은 물론 유럽, 아시아에서 등장하고 있는 극우를 향한 환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자국 우선주의’라는 플래카드가 가득 펼쳐진 열렬한 환영 말이다. 그런데도 시대는 트럼프를 어쩌다 등장한 또라이 대통령 후보쯤으로 치부한다. 2016년 10월 3일 현재 《뉴욕타임스》를 통해 탈세 혐의가 폭로되면서 트럼프는 가장 심각한 곤경에 처했다. 모든 언론이 탈곡기가 되어 트럼프를 파렴치한 탈세범으로 낙인찍고 탈탈 털어대고 있다.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탈세가 가능한 우리 시대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묵인한 채 말이다. 장담한다. 어디선가 트럼프와 같은, 아니 더 정교하고 악랄한 방식으로 탈세하고 있는 수많은 탈세왕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모든 왕들》(김진, 생각비행) 서문 중에서


생각비행이 펴낸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모든 왕들》이란 책에서 저자는 시대의 욕망을 등에 업은 트럼프를 단순히 '또라이'로 취급하는 것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고 경고했습니다. 개인의 능력은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공존합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세상의 왕들의 뒤에 시대적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점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실제로 과거 오바마를 찍었던 민주당 텃밭에서 백인 상당수가 트럼프를 찍었고, 저학력 백인들은 트럼프 지지층으로 대거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멕시코 이민자들을 노골적으로 모욕했음에도 라틴계 이민자들은 2012년 동향의 밋 롬니에게 줬던 표보다도 더 높은 비율로 트럼프를 지지했죠. 유색인종과 여성 중 많은 수가 힐러리를 외면한 반면 백인 표가 트럼프에 집중된 것이 무엇보다 대선 향방을 갈랐습니다. 논리와 합리가 실종되고 뿌리 깊은 인종 갈등에 기반을 둔 부정적 감정이 들끓었던 것이 이번 미국 대선의 실상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문제를 미국이 어떻게 풀어낼지 잘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번 미 대선으로 간선제인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2000년 부시-앨 고어 대선의 재래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승자독식 간선제이기 때문에 득표수보다 선거인단 확보를 많이 하는 것으로 승패가 결정됩니다. 

 

2000년 득표수에서 앨 고어는 부시를 앞섰으나 선거인단 확보를 더 많이 한 부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논란이 일었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득표수는 힐러리 클린턴이 조금 더 앞섰는데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니까요. 이 때문에 미국의 대통령 선거제도는 민의를 왜곡하기 때문에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의 의미가 이번에 재확인된 셈입니다. 이로 인해 각 지역에서 대선에 불복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브렉시트 후 독립을 재주장하는 스코틀랜드처럼, 캘리포니아 주도 미국 연방 탈퇴인 캘렉시트를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미국을 만들까요? 블룸버그 통신은 그의 공약인 해외 보복 관세, 인프라 확충, 이민자 추방 등을 실행할 경우 물가를 상승시키는 인플레이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대통령과 상하원 과반을 차지한 공화당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처지입니다. 이번 대선 승리는 트럼프 개인의 인기 덕분이며 사실 많은 부분의 대선 공약이 공화당 입장과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설마 2016년이 끝나갈 무렵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던 이 지옥의 6자회담 이미지가 현실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년으로 바짝 다가온 우리나라 대선에서 이번에는 제대로 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겠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일단 우리 내부의 문제부터 풀어야 합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활짝 연 지옥문을 닫아야 합니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 야권은 뜻을 모으지 못하고 당의 이익만을 계산하고 있습니다. 민심을 읽지 못하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민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 자격을 잃었습니다.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나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비선실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을 흔들고 대한민국을 농단한 이들을 좌시해선 안 될 일입니다. 그간 권력의 앞잡이로 일해왔던 검찰이 '견검' '섹검'이나 '겁찰'의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제대로 된 수사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일 대한민국 국민은 민중총궐기를 통해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천명해야 합니다. 이제는 행동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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