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회사원이 탄핵을 공부한 이유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끝내 탄핵심판 최후진술마저 대리낭독하게 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진술서를 통해 이미 여러 사람이 자백한 사실조차 부인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한 평범한 회사원이 탄핵을 공부해 책을 펴냈습니다. 《평범한 주권자의 탄핵 공부》의 저자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20년 이상 평범한 회사원으로 생활한 분입니다.

 

 

'가족이 있는 삶'을 지향하며 주말저녁 식사를 직접 준비한 지도 15년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간 선거를 통해 정치적 의견을 표현할 뿐, 일체의 공사 모임에서 정치적 의견 표명을 자제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런 그가 왜 탄핵을 공부해야 했을까요? 

 

2016년 겨울 대학생 딸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가한 저자는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고 합니다. 광장에 울려 퍼지던 사람들의 외침이 마음속에서 계속 울렸기 때문입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차치하고라도,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2015년 5월 메르스 사태, 2016년 11월 이후 조류 인플루엔자 대란 등에서 과연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가? 드러나는 숱한 진실 앞에 선 대통령이 여전히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자격이 있는 걸까?" 이런 의문이 계속 들었습니다.

 

평범한 주권자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가는데, 이 땅의 법률가와 정치인들, 학자와 엘리트들 가운데 그 누구도 민주주의와 공화국과 대통령과 탄핵에 대해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는 갑갑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광장의 주권자들과 마음의 울림에 응답하기 위해 2016년 12월부터 2달간 퇴근 후 공립도서관과 집을 전전하면서 새벽 3~4시까지 숱한 문헌을 뒤적이며 탄핵을 공부했습니다. 그 투박한 공부의 결과를 숭고하고 의연한 광장의 주권자들에게 바친다고 밝혔습니다.

 

 

평범한 주권자의 외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통령을 탄핵하라며 수많은 주권자가 광장으로 나왔다. 그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소리쳤다. 이는 과연 무슨 의미인가?

 

국왕은 탄핵되지 않는다. 군주정체(君主政體) 하에서는 국왕이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국왕이 존재하는 한 그가 보유한 주권이 실질적이건 명목적이건 마찬가지다. 주권은 국가권력의 통일성으로서, 국가 내에서 최고의 정치적 결정권을 의미한다. 이념적으로 최고성, 독립성, 시원성을 본질적 속성으로 하는 주권은 현실적 국가권력인 통치권의 원천이 된다. 모든 통치권은 주권으로부터 파생되기 때문에 부수적 권력인 통치권은 본원적 권력인 주권을 경질할 수 없다. 국왕은 처형될 수 있을 뿐 탄핵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통령을 탄핵하라”던 광장의 외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민주정체(民主政體) 하에서는 국민이 주권자이며, 국민이 주권자인 사회에서 대통령은 국민의 대리인 또는 대표자일 뿐이다. 파생된 권력에 불과한 통치권이 주권을 배신하는 경우 이에 대한 정치적,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탄핵이다. 하지만 복수인격의 집합체인 국민은 현실적으로 국가권력을 행사하기 곤란하다. 따라서 주권자의 또 다른 대리인인 의회가 대통령의 배신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된다.

 

대통령은 탄핵되고, 기소되고, 처벌될 수 있다. 주권자의 명령에 따라 온전한 대리인이 배임적 대리인을 쫓아내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대통령, 비선실세에 둘러싸여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 직권을 남용하여 기업들을 갈취한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주권자들의 외침은 너무나 정당하다. 하지만 탄핵 심판대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에 수많은 국민이 아연실색했다.

 

탄핵심판 절차 내내 형사소송법 적용을 줄기차게 외쳐온 대통령의 변호인들이 말을 바꿔 대통령 심문기일에는 형사소송법을 준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 검사의 피의자 심문 시 변호인의 대리답변이 금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박근혜의 경우 소추위원 심문 시 변호인이 대리답변하겠다고 한다. 이런 대통령의 국가가 법치국가라면, 우리의 국가는 과연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시국이다.

 

진보인가 퇴보인가, 갈림길에 놓인 대한민국

 

평범한 회사원이자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저자는 탄핵제도의 연원과 근거,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본질을 깊이 공부했다.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의 탄핵제도와 우리나라의 탄핵제도는 어떤 점이 비슷하고 어떤 점이 다른지도 밤을 새며 공부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헌법에 의거해 뇌물, 직권남용 등과 같은 형사법적 쟁점과 맞물린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탄핵의 정당성을 규명한다. 아울러 다음과 같은 헌법적 쟁점에 대한 답을 찾는다.

 

① 대통령이 공적기구가 아닌 사적조직에 의존하여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 ② 국가적 변란 중의 대통령의 행적이 사생활의 자유의 보호대상이 되는가? ③ 탄핵절차 개시 이후 대통령의 임의적 사퇴가 가능한가? ④ 탄핵심판절차에 형사소송절차가 엄격히 적용되어야 하는가? ⑤ 직무정지 기간 중 대통령의 기자간담회 개최가 정지된 직무범위에 포함되는가? ⑥ 피소추자 신분인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출석을 거부하고 직접 언론과 국민을 상대로 자신의 행위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행위가 변론권의 범위 내에 속하는가? ⑦ 대통령 직무정지 기간 중 국무총리의 권한대행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평범한 주권자인 우리는 이런 쟁점에 대답할 만큼 헌법을 이해하고 있는가?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탄핵과정에서 제기된 헌법적 쟁점이 주로 탄핵심판절차의 적법요건 및 본안판단과 관련된 절차적 문제였다면,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탄핵과정에서 제기된 헌법적 쟁점은 주로 ‘통치권행사의 절차적 정당성’ ‘기본권의 내용과 한계’ ‘탄핵재판의 본질’ ‘공직자의 헌법상 의무’ ‘통치기구 구성원리로서의 민주적 정당성’ 등과 같은 본질적이고 실체적 문제들이다.

 

탄핵심판은 진영 논리에 의해 휘둘려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헌법에 근거해야 한다. 평범한 회사원이자 주권자로서 탄핵을 공부한 저자가 더 많은 주권자들과 더불어 이 사안을 공부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는 어떤 답을 내렸는지 같이 들여다보자.

 

지은이

 

신상준
연세대 법학학사·법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박사(과정). 한국은행 법규실, 조사국, 금융안정분석국 근무.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 Basel Comittee on Banking Supervision), 바젤III 개정을 위한 자본정의 그룹(Capital Group) 참여.
평범한 회사원으로서 ‘가족이 있는 삶’을 지향하며 주말저녁 식사를 직접 마련한 지 15년이 넘었다. 2016년 11월, 대학생 딸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난 뒤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광장에 울려 퍼지던 평범한 주권자들의 외침이 마음속에서 계속 울려오는 것이다.
길거리 분식점에서 커피 자판기 앞에서 평범한 주권자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가는데, 이 땅의 수많은 법률가와 정치인들, 학자와 엘리트들 가운데 그 누구도 민주주의와 공화국과 대통령과 탄핵에 대해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는 갑갑함을 느꼈다.
이 글은 숭고한 광장의 주권자들과 내 마음 속의 울림(Dimonion)에 응답하기 위해 지난 2달간 새벽 3∼4시까지 숱한 문헌을 뒤적이며 정리한 투박한 공부의 결과다.

 

차례

 

들어가며

 

1. 탄핵제도의 연원

 

2. 탄핵제도의 근거
   -국민주권주의
   -민주주의 원리
   -공화제 원리

 

3. 탄핵제도의 본질

 

4. 주요국의 탄핵제도
   -영국의 탄핵제도
   -미국의 탄핵제도
   -독일의 탄핵제도
   -프랑스의 탄핵제도

 

5. 우리나라의 탄핵제도
   -우리나라의 통치구조
   -우리나라의 탄핵제도

 

6. 쟁점적 현안에 대한 검토

 

나가며

 


참고 문헌

 

JTBC, TV조선 등 뉴스에서 폭로되는 최순실 게이트가 점입가경입니다. 새누리당이 나서서 특검을 수용함에 따라 12번째 특검은 최순실 게이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될 줄도 모르고 박근혜 대통령은 그간의 의혹을 잠재우고 정치인들의 이목을 끌 블랙홀로 '개헌 카드'를 들이민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 만에 터진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사실상 묻혀버렸지만, 이 역시 '박적박', 즉 박근혜의 적은 박근혜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무당 놀음에 놀아난 것으로 밝혀진 헬조선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6개월 만에 경제가 살아났다고 확신했나 봅니다. 아니면 머리가 나빠서 6개월 전 자기가 한 말을 기억하지 못했던 걸까요? 

출처 – 시사오늘


애초 개헌에 부정적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국면 전환용으로 개헌 카드를 다급히 들이밀었기 때문에 국민과 전문가들의 반응은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박근혜는 '최순실 방패용 개헌'으로 헌법을 능멸하려고 한다"며 돌직구를 날렸죠.

출처 - 페이스북


아버지인 박정희는 유신헌법으로 헌법을 압살했다면 박근혜는 최순실 방패용 개헌으로 헌법을 능멸하고 있으니 권력에 취한 가문의 몰락을 볼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박 대통령의 개헌 논의는 불발로 끝나겠지만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지난 25일 "개헌 논의를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여야와 행정부,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범국민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긴급 제안"한 바 있고, 김종인·손학규 등 제3지대에서 정계개편을 하고 이를 위한 수단으로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죠. 개헌은 줄곧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였고 이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이용하려는 이도 많은 편이라 결국 개헌 논의가 재점화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헌법은 민주공화국의 토대입니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헌법이 바뀌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기초가 되는 헌법만 해도 9차 개헌된 헌법이니까요. 아래 표를 보시면 어떤 때, 어떻게 개헌을 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출처 - the300


1948년 제헌절에 제정된 제헌 헌법은 대통령제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저지른 죄에 대한 소급입법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우리나라는 해방된 지 3년밖에 안 됐기에 친일파를 처단할 필요성이 있었는데 헌법이 그 시점에 그냥 선포되면 친일파를 처벌할 길이 막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제헌 헌법 부칙에 광복절 이전의 악질적 반민족 행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문구를 삽입했습니다. 이에 의한 것이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반민특위)'였죠.


안타깝게도 1차 개헌은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의 연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피난 간 부산 국회의사당에서 군인과 경찰에 포위된 채로 이뤄졌죠. 개헌 과정 자체가 위헌이었습니다. 2차 개헌은 그 유명한 사사오입 개헌으로 4.19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죠.


3차 개헌은 4.19 혁명의 결과로 헌정사상 최초로 합법적인 절차에 의한 개헌이었습니다. 의원내각제로 전환되었고, 자유권을 제한할 수 있는 유보조항이 삭제되는 등 국민 기본권이 강화되었죠. 헌법재판소와 지방자치제 등 오늘날과 같은 정치의 토대가 3차 개헌에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출처 - 중도일보


하지만 박정희와 전두환이라는 두 독재자 치하에서 이뤄진 5차~8차 개헌은 헌법을 누더기로 만들었습니다. 5차 개헌으로 헌법재판소가 폐지되었고,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한다며 5.16 군사쿠데타를 정당화하는 내용을 들이밀어 헌법을 더럽혔죠.

 

6차 개헌은 박정희의 3선을 위한 방책이었고, 7차 개헌이 그 유명한 유신헌법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죠. 8차 개헌은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쿠데타로 들어선 전두환에 의해 이뤄졌는데요, 유신 독재 때와 비교한다면 국민 기본권이 약간 회복되었으나 여전히 대통령 간선제였고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이 있었죠.


출처 - 프레시안


그러나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 법. 1987년 6월 항쟁으로 인해 9차 개헌이 이뤄집니다.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는 헌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헌법 전문에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했으며 대통령의 국회해산권도 사라졌습니다. 또한 국회의 국정감사권과 헌법재판소가 부활했으며 대통령 직선제를 이뤄냈습니다. 국민 기본권도 폭넓게 보장되었죠.

 

어떻습니까?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를 살펴보면 명약관화한 사실이 있습니다. 정권의 치부를 가리고 안위에 집착한 개헌은 언제나 헌법을 망가뜨리고 국민의 권익을 짓밟았습니다. 하지만 국민이 힘을 결집해 개헌을 이뤄냈을 때 헌법은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민주공화국에 걸맞은 법질서를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금 정치권이 들먹이는 10차 개헌은 이런 조건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하물며 무당 손아귀에 놀아난 대통령과 그 세력이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기 위한 빌미로 개헌을 입에 올린다는 건 천부당만부당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출처 - 한겨레

출처 - 민중의 소리

 

민중이 다시 궐기하려 합니다.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 민주노총에서 전국 55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발족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투쟁본부는 "국민의 힘으로 불통정권을 끝장내고 민중의 희망을 열자"고 촉구했습니다.

 

 

2014년부터 이어진 세월호 투쟁을 비롯해 사회 곳곳에서 이어진 장기 투쟁, 2015년에 비롯된 민중총궐기 투쟁이 도화선이 되어 4.13 총선을 통해 대한민국 국회가 달라졌습니다. 고 백남기 농민은 국민을 개·돼지로 생각하는 박근혜 정권이 자행한 공권력 폭력의 실상을 자신의 죽음으로 낱낱이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2017년 대선을 목전에 두고 정치권은 개헌이니 뭐니 하며 권력을 잡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가만있으면 안 됩니다. 2016년 11월 12일 민중총궐기를 통해 대한민국 정치가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 다시 한 번 보여줘야 합니다. 힘을 모읍시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최근 국회 다수당의 대표를 청와대 참모가 정면 공격하는 정치판의 모양새를 보노라면 정당 민주화의 역풍이 참으로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을 필두로 한 청와대의 정치 개입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내쫓을 때 침묵했던 김무성 대표는 결국 화를 자초한 꼴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둘러싼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충돌 양상이 정치판의 핫이슈가 되고 있어 진보정치의 움직임은 언론과 방송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형국입니다.

 

이는 2015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을 때부터 사실상 예견된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당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이었건만, 보수진영은 헌재가 정의를 구현했다며 일제히 쾌재를 불렀고, 진보진영은 몸을 사리며 자구책 마련에 안간힘을 쏟았습니다. 심지어 진보진영의 한편에서는 차라리 이참에 도려내는 편이 더 낫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진보정치의 실패에 대한 지지자들의 원망이 적지 않은 이때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 몸담았던 네 명의 실무자가 반성과 성찰의 기록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는 진보정치 실패의 원인을 수구세력의 전례 없는 공안탄압 탓으로 돌리기보다 내부의 문제에서 찾기 위한 통렬한 자기반성에서 출발합니다. 현실정치에서 적지 않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신을 긍정적이고 진취적 사고의 담지자로 진보적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지 못한 뼈저린 후회를 바탕으로 삼아 진보정치의 한 시대가 지나가는 흐름을 담아낸 것이죠.

 

오래전부터 한국 정치의 세대교체와 세력교체를 주장하던 진보정치의 한 축이 정당해산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사라지면서 진보정치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운 때입니다. 많은 것이 모호하지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부터 정리해봐야 합니다. 진보정치의 전진과 좌절을 경험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로 달리 무엇을 더 찾을 수 있을까요?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

반성과 성찰의 기록

 

▸분야: 정치·사회  ▸지은이: 신석진, 김정엽, 이상민, 안창민  ▸판형: 신국판(152*225)

▸쪽수: 312  ▸가격: 16,000원  ▸ISBN 978-89-94502-46-5 (03320)

 

 

통합진보당에 대한 사법적 살인, 무엇을 남겼나?

 

이 책은 통합진보당의 ‘실패’를 자인한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면서 민주주의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도륙되고 있는 지금, 이들의 실패를 특정 정당이 아닌 민주주의의 실패라고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충분히 많다. 대한민국의 폐색 상황을 ‘헬조선’과 ‘죽창’이라는 유행어가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지금,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는 진보가 정작 무엇인지, 또 진보정치가 어떻게 새로 시작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이고 진솔하게 얘기해준다. 참혹하고 아름다운,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는 멋들어진 좌우명을 누군가가 독차지해야 한다면, 그것은 진정 이들의 것이다.
―장정일(작가)

 

 

진보정치, 반성과 성찰의 기록

 

한때 200만 명이 넘는 유권자가 보내준 표를 받은 정당이 공중분해 됐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사법적 살인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파문을 남겨야 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엔 진보정치 실패에 대한 지지자들의 원망이 적지 않다. 아니, 오히려 진보정치가 그 전에 이미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인지, 통합진보당의 해산이 야기한 정치적․사회적 여파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최근 몇 년에 걸친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극적인 ‘흥망성쇠’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경험한 저자들은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인 2015년 봄에 작은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6개월간 이어진 토론의 결과를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반성과 성찰의 기록》이란 책으로 엮어냈다.


많은 사람이 통합진보당의 해산에는 수구세력의 전례 없는 공안탄압이라는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진보정치의 실패를 인정하면서 우호적 여론이나 민주주의라는 대의에 입각해 통합진보당을 지원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실패한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고로 이 책은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치가 실패한 책임이 당사자들에게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해 그것이 무엇인지 밝혀보려는 치열한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저자들은 현실정치에서 적지 않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왜 스스로를 긍정적이고 진취적 사고의 담지자로 진보적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지 못했는가 하는 뼈저린 후회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이 책에 담아냈다.

 


진보정치의 한 시대가 갔다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밀어낸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누가 새로운 것이고 누가 낡은 것이냐의 문제만이 남는다. 이 책의 저자들을 비롯해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일한 사람들은, 새로운 존재가 자신들이라고 믿었다.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며 희생을 결단한 것도, 진보정치에 대한 헌신을 결심한 것도 그런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곤혹스러움은 믿음의 바탕이 흔들리는 데서 왔다. 수많은 이의 눈물과 땀이 어린 진보정치 15년 역사의 좌절은 단지 헌법재판소의 판결 때문만은 아니었다. 통합진보당은 박근혜 정부와의 대결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진정한 패배는, 그들에게 믿음의 원천이 되어주었던 ‘국민’의 냉담함에서 기인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억압을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통합진보당을 옹호해주지 않았다. 진보진영의 한편에서는 차라리 이참에 도려내는 편이 더 낫다는 말까지 나왔다.


진보는 오래전부터 한국 정치의 세대교체와 세력교체를 주장했다. 저자들은 교체의 ‘주체’가 자신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교체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도전은 때로 실패할 수 있고, 그때에도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낙관을 만들어가는 근거인 ‘새로움’에서, 자신들이 제외됐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진보정치를 위한 치열한 노력이 좌절되면서, 한 시대가 같이 마감됐다. 저자들이 떠나보낸 시대는 단지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역사만은 아니다. 혁명을 꿈꾸던 독재시대에 해오던 생각과 이론, 습성, 관성도 함께 떠밀려 가고 있다. ‘운동의 힘’으로 고난을 견뎌왔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과거의 준거가 낡은 것의 표상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완전히 밀려간 존재로 끝날지, 새로운 시대의 한자리를 다시 맡을 수 있을지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많은 것이 모호하지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부터 정리해야 한다.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는 ‘운동의 관성’과 제도 정치에 진입한 ‘대중 정당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과 모순을 일으켰던 통합진보당의 속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쓴 저자들은 진보정당 15년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의 시기를 남들과는 다소 다른 위치에서 지켜봤다. 합당과 분당, 그리고 정당 해산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에 필요한 실무를 처리한 당사자로서 치열한 현장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경험과 반성과 성찰은 진보정치의 향방을 가늠하는 지남차가 되어준다. 진보정치에 진지한 각성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면, 이들이 기록한 반성과 성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신석진
지난 7년간 이정희 대표를 가까이에서 보좌해왔다. 국회의원 보좌관, 대표 비서실장,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다. 직함은 달랐지만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학생운동과 통일운동을 했고, 이정희 대표를 만나기 전엔 인천 남동공단에서 공장 노동자로,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부위원장으로, 당 기관지 《진보정치》 편집장으로 일했다. 
 
김정엽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을 하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이정희 의원 보좌관을 했다. 금융정책과 경제정책, 재정정책 등을 다루는 국회 정무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 보좌 업무를 했다. 19대 국회에서는 이석기 의원 보좌관이었다. 덕분에 통합진보당의 문제적 인물 두 사람을 연속해서 보좌한 특이한 경력을 갖게 됐다. 이 책의 기획과 목차 구성을 맡았다. 
 
이상민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에서 일하다 18대 국회에서 이정희 의원의 정책비서관으로 일하면서 민주노동당과 인연을 맺었다. 그전까지 진보신당 당원이었다. 19대 국회에서는 김재연 의원 보좌관과 통합진보당 정책전문위원을 지냈다. 우리나라 조세제도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진보적 조세정책 개발, 재벌지배구조 문제점과 개선방안 모색이 그의 전문 분야다. 
 
안창민
유일하게 아무런 직책을 맡지 않은 평당원 출신이다. 학생 시절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에서 활동했고 이후 오래도록 직장생활과 개인사업을 했다. 그는 한 포털사이트에 1000권이 넘는 책의 서평을 올린 독서광이기도 하다. 지금도 직장생활을 하는 안창민은 부득이 가명을 썼다. 해산된 진보당 출신이 느끼는 사회적 낙인의 여파가 여전한 탓이다.

 

 

차례

 

추천사 |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
서문 | 진보정치의 한 시대가 갔다

 


1장 다수파의 원죄, 패권주의
당권파는 억울하다? | 민주주의, 진보진영도 내면화해야 한다 | 당내 이견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 참여당은 ‘개조’ 대상이었나? | 진성당원제의 딜레마 | 패권주의, 제도적 해법으로 가능한가? | 솔직해야 해법이 나온다

 

2장 진보의 멍에, 종북주의
종북공세는 ‘현재진행형’ | 북에 대한 입장 표명, 거부할 수 있나? | ‘종북’의 이념으로 정치하는 것이 가능한가? | ‘반북 진보’ vs. ‘종북 진보’ | 북한 ‘3대 쟁점’, 해명 불가능한가?

 

3장 운동의 가치, 운동의 관성
‘이념 논쟁’, 관행을 극복하자 | ‘정통’과 ‘이단’의 이분법 | 일사불란함의 전제, 자유롭고 개방적인 토론의 힘 | 전민항쟁의 향수 | 의회주의, 합법주의 비판의 두 측면 | 진보는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

 

4장 진보 혁신의 고정관념
운동과 정치의 이분법이 불편한 이유 | 성숙한 진보, 온건한 진보 | 진보의 급진성을 이제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 이제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만 남았나? | 자주는 시대착오적 담론인가? | 정말로 ‘노동중심성’이 문제일까? | 노동운동 위기 진단 10년, 뭘 했는가? | 진보정치 원조 논쟁 | 보편적 복지는 절대선인가 | 반복되는 평가, 빈약한 실행

 

5장 경제정책, 이념에서 현실로
보수와 진보의 뒤바뀐 경제철학 | 재벌 문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 | 진보도 성장을 말해야 한다 | 부유세 논쟁-성찰하면서 정책 만들기 | 증세 논쟁-디테일이 중요하다 | 기회비용 없는 정책은 없다

 

6장 2016년 총선 대응, 어떻게 할 것인가?
2016년 총선의 의미

 

헌정 사상 최초로 헌법재판소(헌재)에 의해 정당이 해산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19일 헌재의 결정으로 통합진보당(통진당)이 해산되었는데요, 다소 놀라웠던 점은 재판관 사이에 갑론을박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8 대 1의 압도적인 의견으로 해산 결정이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보수 진영은 헌재가 정의를 구현했다며 일제히 쾌재를 불렀고, 일부 진보 진영과 법률가들은 일단 헌재의 판단을 존중하긴 하지만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문은 법률에 대한 지나친 과대 해석과 사실관계 왜곡으로 정당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었다며 저항하는 모양새입니다.


출처 - 기자협회보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주목하라


헌재는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며 대한민국 정부(법무부 장관)가 청구한 통진당 해산 청구에 대해 재판관 8 대 1의 의견으로 해산 및 소속 국회의원 5인의 의원직 상실 결정을 내렸습니다. 공안 검사 출신 두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나 이처럼 압도적인 의견차는 가히 충격적입니다.


출처 - 서울경제


헌재의 다수는 통진당의 주도 세력이 이념 활동을 해왔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당이며 폭력에 의한 이념 실현을 위한 활동을 해왔다며, 이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했습니다. 현재 내란음모 및 내란선동죄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이석기 전 의원 등 이른바 RO조직과 활동이 통진당의 주도 세력이며 의지인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심대한 위협을 끼치는 종북정당으로서 폭력에 의한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 정당이니 이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 해산 결정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논리입니다.

출처 - 한국일보


이에 반해 유일하게 소수 의견(마이너리티 리포트)을 낸 김이수 재판관은 이석기 등의 일부 세력의 활동을 통진당이라는 정당 전체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라며 기각 의견을 냈습니다. 생각비행은 일전에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사회 변화의 씨앗 있다>라는 기사를 통해 법리적 판단이 상식적이지 않을 때 다수의 의견이 옳은 것만은 아니며 소수의 의견이 옳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김이수 재판관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보고자 합니다.


 

김이수 재판관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 그리고 그 의미는 가능한 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수용 가능한 해석 방법론에 의해 확정돼야 하고 또 정당 해산의 요건을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서는 어떤 논리적 오류나 비약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통진당에 은폐된 목적이 있다고 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말도 엄격하게 증명되어야 할 사항인데, 통진당 해산을 청구한 정부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통진당은 당비를 내는 진성 당원만 3만 명이 넘는 탄탄한 정당인데 문제를 일으킨 몇몇의 행동을 통진당이라고 하는 3만 명 전체의 의지라고 생각하는 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논리입니다. 또한 단순히 기존 체제에 도전한다는 것을 민주주의를 향한 전복적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체제에 대한 비판은 민주국가 어느 곳에서나 세대별, 계층별로 늘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통진당 해산 헌재 결정의 후폭풍


출처 - SBS


많은 이가 비판한 내용처럼 법률을 논리적 비약 없이 엄정하고 합리적으로 적용한 판단은 소수 의견에 가까웠습니다. 다수 의견의 논리 비약과 끼워 맞추기식 해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재화 변호사는 최종 변론 이후 한 달도 안 돼 정당 해산 결정이 났다는 건 재판관들이 17만 쪽 분량의 증거 자료를 안 봤다는 이야기라고 비판했습니다. 민사든 형사든 재판이라면 응당 판사가 선고하기 전에 증거 자료를 보고 어느 주장이 옳은지 판단해야 하는데, 이런 기초적인 과정을 생략하거나 무시했다는 얘기입니다. 1950년대에 있었던 독일 공산당 해산도 심리 기간이 4년 7개월이나 되었습니다.


출처 - 국민TV


미심쩍은 면은 한둘이 아닙니다. 헌재 결정문에 쓰인 A씨는 형사소송에서 검찰과 국가정보원이 회합 참석자로 한 번도 거론하지 않은 사람이고 현재 당원도 아닙니다. RO모임 참석자로 언급한 B씨도 형사소송에서 거론되지도 않았고 실제로도 회합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결정문에 등장합니다. 헌재는 이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며 사실상 오류를 시인했습니다. 이쯤 되면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은 애초에 무리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 국민TV


사안에 비해 지나치게 짧은 결정기일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 당선 2주년 선물로 일정을 짜 맞춘 게 아니었느냐는 추측마저 나돌았습니다. 일각에서는 인혁당 사건에 이은 사법살인에 가깝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통진당 해산 결정의 후폭풍이 크고 다양합니다. 일단 일반적인 해석은 이번 결정이 오히려 민주주의에 심대한 타격을 안길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소수 의견인 김이수 재판관은 해산 결정은 비례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해산 결정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사회적 이익이 크지 않은 반면 해산 결정으로 초래될 사회적 불이익은 민주 사회의 순기능에 장애를 줄 만큼 크다고 했습니다. 정당 해산 결정이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보호해야 할 사상의 다양성, 특히 소수자의 정치적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훼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수자의 정치적 자유를 위협하는 일은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통진당 해산 결정이 나자마자 고영주 변호사 등은 통진당 당원 전원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고영주 변호사는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의 주요 사건으로 등장한 부림사건을 담당한 검사였습니다. 누구든 빨갱이로 몰아 때려잡던 검사 출신 변호사인 것이죠. 지난 9월 부림사건이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자 사과나 반성도 없이 좌경화된 사법부가 자기 부정을 했다며 비난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없는 간첩도 만들어서 족치던 군부독재 시절을 생각할 때 신유신 정국의 박근혜 정부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앞이 캄캄합니다.


검찰은 한술 더 떠 통진당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등에 대해 일반 당원들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총 13만 명입니다. 통진당 거리 집회를 모두 촬영해 검토 후 수사에 착수한다고 합니다. 일사천리로 '모조리 꼼짝하지 마'라는 위협이자 경고가 아니겠습니까? 



지나친 헌재 의존도 문제, 정치는 정치로 풀어야


사실 통진당 해산 문제는 헌재가 해결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민주적으로 해결할 문제였지요. 만약 정말로 통진당이 사회에 타격을 입히는 정당이고 민심이 돌아섰다면 다음 총선에서 국민의 손으로 정당의 존재 유무가 판가름 날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사회에서 무슨 문제만 벌어지면 정부와 정치에 대한 불신이 사법부, 특히 헌재에 대한 의존을 키워왔습니다. 그러다 결국 정당 해산 결정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삼권분립이 명확해야 하는데 행정부나 입법부의 문제마저 사법부가 판단하다 보니 헌재가 필요 이상의 정치적 권력을 갖게 된 꼴입니다.

 

출처 - 문화일보

 

국민의 지지가 없는 정당이라면 어떤 활동 근거가 있겠습니까? 그런 정당이라면 자연스럽게 해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석기 내란 음모와 폭력 사태, 투표 조작 등 갖가지 의혹으로 누가 봐도 국민의 마음이 통진당에서 다소 멀어졌다고 볼 수 있는 때였습니다. 통진당 스스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을 때 정부가 청구하고 헌재가 결정한 강제 해산으로 통진당은 탄압받는 피해자의 지위를 재차 획득했습니다. 이런 복잡하고 미묘한 정치적 엇갈림이 앞으로 대한민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이러한 때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일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을 두고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했다지요. 박근혜 정권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란 대한민국 헌법과 민주주의의 근간과 참 멀어 보입니다.

 

정치판의 혼돈 상황이 극에 다다른 지점에서 '새로운 진보 정당'을 창당하려는 진보 진영 일각의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와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명진 스님 등 진보 성향의 학계·종교계·문화계 인사가 주축이 된 '새로운 정치세력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국민모임)'은 지난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보적 대중정치' 복원과 '평화생태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새로운 정치세력 건설을 촉구했습니다. 통진당 해산이라는 정치권의 큰 문제와 맞물려 신당 창당 움직임이 어떤 효과를 자아낼지 궁금해지는군요.

 

이번 통진당 해산 결정이 알려진 이후 《뉴욕타임스》와 BBC 등 외신은 박근혜 정부가 정치인을 종북으로 몰고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며 비판했습니다. 이 가운데 세계 헌법재판기관 회의체인 베니스위원회는 헌재 해산 결정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1999년에 베니스위원회는 정당 해산의 근거를 폭력의 행사 등으로 엄격하게 하고 당원 개별 행위에 대해서 정당에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는 등의 규정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과연 베니스 위원회는 이번 통진당 해산 결정문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요? 정부와 기업에 이어 이젠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마저 국제적 망신거리가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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