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은 원자력과 핵의 무서움을 세계에 알린 체르노빌 사고 30주기이자 후쿠시마 사고 5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지난 3월 11일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누출 사고의 원인이 된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정확히 5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일본 관측 역사상 최대 규모 지진이었던 동일본 대지진은 진원지에서 360킬로미터 떨어진 도쿄에서조차 성인이 서 있기 힘들 정도로 강했습니다.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는 최대 높이가 40미터에 달했습니다. 쓰나미가 덮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는 원자로 냉각에 필요한 전원을 상실해 긴급사태가 선포되었고 수소폭발로 대규모 방사능이 누출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일본 경찰청 집계에 의하면 1만 5894명이 사망했고 2561명이 행방불명되었으며 40만 채 이상의 건물이 파손되었다고 합니다. 직접적 피해 규모는 25조 엔에 달하고 이후 5년간 재해로 인해 건강 악화나 자살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또 3400명을 넘는다고 합니다. 이로써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는 '원자력 안전 신화'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EBS



싸고 안전하다? 원자력 발전 신화의 붕괴


3.11 동일본 대지진이 낳은 가장 극적인 변화는 원자력 발전이 비교적 싸고 통제 가능한 안전한 기술이라는 통념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지난 5년 동안 후쿠시마 원자로에서 녹아내리는 핵연료를 냉각하기 위해 하루 300톤의 물을 사용했지만, 이를 모아놓은 저농도 오염수 탱크를 보관할 여유 공안이 이젠 없습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방사성 오염수 생성을 줄이기 위해 일본 정부는 3000억 원 이상을 들여 동토차수벽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나 이마저 안전한 운용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대책 없이 17만 4000명의 주민이 고향 후쿠시마로 돌아가지 못하고 가설 주택에서 피난 생활을 하는 중입니다.

 

출처 - 국민일보


녹아내리고 있는 후쿠시마 원자로 해체를 위해 미국, 프랑스와 협력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발표 내용도 믿을 수 없습니다. 과연 안전하게 원자로를 해체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난 참사로 사람들이 깨닫게 된 것은 원자력은 안전하지 않으며, 인류가 확보한 현재 기술로는 원자력을 온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원자력 발전이 싸서 경제성이 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단 한 차례 사고로 대한민국의 국가 예산 정도의 돈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리는 참상을 이웃나라에서 목격했는데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세계 각국에서 진행 중인 탈핵 움직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는 앞다투어 원자력 발전과 연관된 후속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도 후쿠시마를 반면교사로 삼아 해일 방벽을 높이고 발전소 침수에 대비해 방수형 배수펌프와 이동형 발전차를 확보했다고 하죠. 한편 아예 탈핵을 선언한 나라도 있습니다. 독일은 2022년까지 원자력 발전소 운영을 완전히 정지시킬 계획입니다. 미국도 풍력 발전량을 지난 6년간 세 배로 늘리는 등 재생에너지 사업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탈핵 움직임에 어려움도 뒤따르고 있습니다. 탈핵을 선언하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인 독일은 에너지 생산 비용 증가와 원전기업들이 독일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거액 소송에 따른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그나마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독일 정도니 탈핵이 가능하지 그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에서 쉽사리 탈핵 움직임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출처 - 서울신문


한편 탈핵 움직임에 아랑곳없이 원자력 발전을 확대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원전 사고로 인한 대재해를 겪은 일본이 원전 재가동을 진행 중인 대표 주자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당시 총리였던 간 나오토는 원전 제로 정책을 선언하고 가동 중이던 원전을 모두 정지시켰습니다. 일본 국민 사이에서도 반원전, 탈원전의 목소리가 점점 거세졌죠.


그런데 이후 총리가 된 아베 신조는 원전에 비판적인 국민 여론을 무시한 채 원전 재가동을 강행합니다. 2015년 8월에는 가고시마 현에 있는 센다이 원전을, 올해 들어서는 후쿠이 현의 다카하마 원전 1, 2호기를 재가동했습니다. 나아가 지난 1월에는 영국에 원자력 기술을 수출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아베 정권은 2030년까지 원전 비율을 20~22퍼센트까지 늘리기로 했죠.


물론 일본 국민이 가만있지는 않았습니다. 재가동된 다카하마 원전에 인접한 시가 현 주민들이 법원에 원전 가동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지난 9일 법원은 주민들의 요구대로 원전 가동을 중지하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끔찍한 참사를 겪은 일본에서조차 탈핵의 길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한국의 상황, 새누리당만 탈핵 반대해


대재앙에도 아랑곳없이 원전 마피아의 이익을 위해 정부 여당이 국민을 희생시키는 건 일본이나 한국이나 똑같은 형국입니다. 한국YWCA연합회가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과 함께 탈핵에 대해 우리나라 주요 정당에 입장을 묻는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국민의당 등 대부분의 당은 신규원전 중단, 노후 원전 수명연장 금지 등에 동의했지만, 유일하게 새누리당만 원전 필요성을 역설하며 노후원전 수명연장에 대한 주민투표마저 반대했습니다.

출처 – 환경일보


토론회 참석조차 거부한 새누리당은 서면을 통해 원전을 대체할 수 없으며 현 비중 유지는 불가피하다고 밝혔으며, 영덕 삼척 주민의 투표에 따른 지정 취소 요구 등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노후원전 운전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거나 주민투표를 의무화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서요. 신재생에너지 관련해서는 발전차액제 도입에 반대하고 재생에너지 녹색가격에도 부정적이며 초고압송전로 재검토 또한 불가하다고 밝혔습니다. 새누리당은 원전 홍보 예산 삭감이 불가하다는 입장도 밝혔습니다. 탈핵이 시대적 요구임에도 새누리당은 시대를 거꾸로 가는 당의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처 – 민중의 소리


후쿠시마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손꼽히는 게 폐쇄적인 시스템 문제라고 하죠. 사고 이후 원전 마피아인 도쿄전력의 무능함에 대한 성토가 일본 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컸습니다. 이를 교훈 삼아 우리나라에서도 투명하고 독립적 감시체제가 필요하지만, 원전 안전관리 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5년 전 사고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도 바뀐 것이 거의 없는 셈입니다.  

출처 - 녹색당

 

4.13 총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 정책이 국민의 선택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지난번에 소개해드린 스코틀랜드 독립 찬반을 묻는 투표처럼 의미 있는 주민 자치 투표가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한글날인 지난 10월 9일 강원도 삼척에서 진행된 원자력 발전소 유치에 대한 찬반 투표였는데요, 어지간한 지방선거 투표율에 버금가는 68퍼센트를 기록했으며 그 결과는 85.6퍼센트의 압도적인 반대였습니다. 강원도 삼척 주민은 당장 눈에 보이는 돈보다 장기적으로 환경과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의사를 투표를 통해 드러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삼척 원전 유치 찬반 투표의 결과가 앞으로 우리나라 탈핵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 SBS



삼척 원전 주민투표 압도적 반대의 의미


박근혜 정부는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대재앙을 보고도 원전 확대 의지를 표명해왔습니다. 후쿠시마의 대재앙을 목도한 세계 최대의 원전 국가 프랑스는 75퍼센트인 원전 비중을 10년 내 50퍼센트까지 파격적으로 낮추기로 결의습니다. 독일, 벨기에, 스위스는 모든 원전을 없애기로 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런 세계적인 추세를 역행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원전 마피아들의 비리로 그간 건설된 원자력 발전소에 가짜 부품과 불량 부품이 들어가 있어도, 안전 기준에 미달이어도, 심지어 일시 가동 중단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도 원전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시각으로 일관했습니다. 정부는 노후된 고리, 월성 원전에 이어 경북 영덕과 강원 삼척을 신규 원전 건설 예정지로 지정했습니다. 정부는 2011년 강원 삼척 주민들의 96.9퍼센트가 원전 신규 유치에 찬성했다면서 원전 추진 서명부를 증거로 내세웠는데요, 이번 주민투표 결과 삼척 주민 대부분이 반대하는 마당에 대체 과거 96.9퍼센트의 찬성 의견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의구심이 드는군요.



출처 - 경향신문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로 말미암아 인구 10만 명이 채 안 되는 삼척시에 전국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주민투표는 다른 투표와 마찬가지로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공공기관이나 학교 등에 마련된 44개 투표소에서 엄정한 관리하에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개표 결과 원전 유치 반대 85.6퍼센트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삼척 주민은 원전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삼척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 결과는 이전에 신규 원전 유치에 찬성했다는 민의와는 사실상 정반대의 의견입니다. 이를 근거로 강원도와 삼척시는 정부에 원전 철회를 강력히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강원일보


하지만 이런 시민의 뜻에 반해 정부는 삼척 원전을 강행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원전 유치 반대라는 압도적인 주민투표 결과가 나오자마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투표가 법적 효력이 없다고 밝히며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주민투표의 정통성을 문제 삼은 겁니다. 삼척시는 정식으로 선거관리위원회에 원전 찬반에 대한 주민투표를 공식적으로 요구했으나 선관위는 원전이 국가사무로 주민투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공문을 보내 거부했습니다.

 

지역의 안전을 위해 그곳에 사는 주민의 뜻을 물어 따르겠다는데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요? 2012년 10월 석탄화력발전소 유치를 추진하던 경남 남해군이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사업을 백지화한 전례도 있는데 말입니다. 반핵을 기치로 이번에 당선된 김양호 삼척시장과 삼척시 의회까지 만장일치로 원전 유치 철회를 정부에 요구한 데다 주민의 뜻까지 모였는데 정부는 지방자치와 민의를 무시하고 그저 원전 건설을 강행할 생각밖에 없습니다.



삼척 원전 유치는 애초에 조작 의혹이 커


2011년 삼척 원전 유치에 결정적 근거가 되었던 삼척 원전 유치 신청 서명부.  당시 삼척시 유권자 5만 8339명 중 96.9퍼센트에 해당하는 5만 6551명의 서명이 담겨 있어 삼척 시민이 원전 유치에 열렬히 찬성한다며 삼척원전유치단체가 국회와 청와대, 산업부, 한수원 등에 제출했던 자료입니다. 하지만 예전부터 이 서명부와 관련해 조작 의혹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주민들의 동의를 받고 서명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대리, 중복, 위조 서명하여 날조된 서명부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삼척 원전 유치가 결정된 후 이 서명부가 절묘하게도 사라져서 그동안은 사실관계 확인이 불가능했습니다.



출처 - 아시아뉴스통신


행방불명되었던 삼척원전 유치 신청 서명부가 최근 정의당 김제남 의원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실체가 드러난 서명부에는 한눈에도 동일인이 일괄 서명한 것으로 보이는 대리 서명이 다수 발견되었고, 신상 정보가 빠져 서명인이 누군지 알 수 없는 허위 기재도 상당수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냥 동그라미만 친 서명부도 찬성으로 인정했다고 하니 기가 막힙니다. 원전 유치로 돈 좀 만질 것 같은 일부 세력과 원전 확대 강행을 천명한 정부의 이해가 맞물려 벌어진 더러운 수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작된 서명부에 근거를 둔 삼척 원전 유치 계획은 당연히 백지화됨이 마땅합니다. 서명부가 조작된 것임은 이번 주민 투표를 통해 정반대의 결과인 압도적 유치 반대가 나온 것으로 명명백백히 증명되었습니다.



원전 마피아부터 척결하라


2014년 국정감사가 시작된 가운데 부실한 원전 안전과 비리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수력원자력(주)의 비리를 보면 가관입니다. 소방차 기름을 훔치다 적발되거나 사택관리비를 횡령하고 부하 직원에게 향응을 제공받은 간부가 생기는 등 불법 행위가 도를 넘었습니다. 더욱이 정작 중요한 원전 안전과 비리 척결에 대한 법안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드러난 원전 공공기관과 유관 납품업체들의 유착, 이른바 원전 마피아 문제는 사태의 심각성을 잘 보여줍니다.



출처 - 세계일보


후쿠시마처럼 한 지역, 나아가 국가를 궤멸시킬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위험 앞에서 책임 기관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온갖 비리와 불법을 자행하는 한편 유착관계에 있는 업체로부터 향응과 이익을 맞바꾸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였습니다. 말도 안 되는 비리와 불법을 저지르고도 원전 마피아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태연합니다. 마치 세월호 참사 이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처럼 말입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원전 마피아의 폐해를 목소리 높여 지적하지만, 이를 척결할 법안 처리에는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원전 마피아 사건이 터진 후 규제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법안소위에 올라있을 뿐 심사조차 미뤄진 상태에 있습니다. 기적적으로 올해 통과가 되더라도 시행은 내년 6월이나 되어야 할 판입니다.



출처 - 그린피스


이번 강원 삼척의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압도적 반대로 결론이 남에 따라 삼척시 주민들은 다음 달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또한 삼척과 함께 원전 신규 건설 예정지였던 경북 영덕은 군의회가 나서 주민투표를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그 외 환경단체들은 이 두 지역뿐 아니라 고리, 월성 등 노후 원전 건설 반대 운동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많은 지역이 원전에 전기 수급을 의존하고는 있지만 그 이전에 원전은 지역주민의 생존과 직결된 중차대한 문제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는 안전을 무시할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 생생히 목도했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며, 민주주의제를 채택한 이상 투표로 결정된 민의에 따르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대에 어떻게 민주국가 운운하겠습니까. 이번 삼척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 결과를 놓고 우리는 후대에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삼척의 투쟁은 이제 지역만의 싸움이 아니라 생명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전국적인 움직임으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대지진으로 말미암아 일본 관동지방이 시끄럽습니다. 지진해일 탓에 많은 사람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 원자력 발전소 손상으로 방사능이 유출되어 공포는 더욱 확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언론에서 간간이 다루고 있듯이 이번 일본 원자력 발전소 사태를 보노라면 뭔가 확연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 사이에서 드러나는 뭔지 모를 불협화음입니다. 지진해일이 발생한 이후 일본 정부가 발표한 정보는 시시각각 달랐습니다.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이에 최근 도쿄에서 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습니다. 과연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둘째, 전력 공급 문제입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계획 정전을 시행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엄청나게 큽니다. 그러니 관동지방의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해도 타지방의 전력을 끌어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소에 전력을 공급하기까지 일본 시민은 물론 이번 사태를 주시하는 전 세계인이 의문을 품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렸죠.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정계와 제계의 유착에서 비롯한 사고 은폐, 결국 방사능 유출이라는 큰 사고로 이어져

도쿄전력은 일본 도쿄 지역과 그 주변 지역에 전기와 가스를 공급하는 민영회사입니다. 1951년에 설립된 도쿄전력은 일본 내 11개 전력회사 주식 가치 총액 가운데 3분의 1을 차지하는 큰 회사죠. 게다가 일본에 있는 52기 원자력 발전소 가운데 가장 많은 17기를 운영하는 기업이기도 합니다.

후쿠시마 원전(출처 : 연합뉴스)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17기 원자력 발전소 가운데 이번에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은 1971년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의 기술로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는 1976년부터 이번 지진해일로 피해를 보기 전까지 크고 작은 사고가 잦았다고 하는군요. 특히 2007년 내부 비밀 문건이 공개되면서 알려진 '임계사고'는 일본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임계사고란 핵연료의 연쇄 반응이 커져 시설 손상과 작업자에게 방사선 피해가 생기는 큰 사고입니다. 하지만 이런 큰 문제를 도쿄전력은 29년간 은폐해왔습니다. 이런 큰 사건을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은폐할 수 있었던 걸까요?

이에 대해 도쿄전력과 일본 정계의 오랜 유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장정욱 마쓰야마 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민중의 소리》와 나눈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도쿄전력이 도요타와 함께 엄청난 정치적 힘, 막강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며 “나머지 전력업체를 모두 합쳐도 도쿄전력에 대항하지 못할 정도의 파워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국회의원 가운데 <원자력 마피아> <원자력족> <전력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심지어 민주당 에너지 담당 관료 가운데 전력회사 출신이 여럿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도쿄전력의 잦은 사고는 정계와 재계의 유착으로 말미암아 은폐되거나 별다른 처벌 없이 지나가기 일쑤였습니다. 이번 지진해일 피해에서도 그런 모습이 그대로 반복되었습니다. 도쿄전력은 원전 피해 상황을 축소, 은폐하면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만, 초기 대응에 실패한 탓에 큰 화를 자초했습니다. 도쿄 전력은 사태를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직원을 철수하려 했다고 하는데요, 이 사실을 알게된 간 나오토 총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하는군요.

撤退などはあり得ない。 覚悟を決めてください。撤退したときは東電は100%潰れます。
- (직원들이) 철수한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각오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직원들이 발전소에서 ) 철수하면 도쿄전력은 100퍼센트 도산합니다.

민영회사를 총리가 도산시킨다는 말은 큰 논란을 빚을 수 있습니다. 공권력 남용의 문제로 비화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정도의 극단적인 발언이 나올만큼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도쿄전력 측의 무모한 행동에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정경유착에 찌들어 시민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는 기업에게 묻는 책임 말입니다.


주파수 문제로 전력을 공급 받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 민영화의 병폐가 드러나다

일본은 지진 피해로 말미암아 계획 정전을 시행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라고 하니 이번 지진 피해로 전력 공급이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계획 정전을 알리는 도쿄 전력 홈페이지 공지사항


여기서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이번에 피해를 본 곳은 관동지역입니다. 관서지역이나 중부지역은 피해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의 여유 전력을 일시적으로 공급받았다면 계획 정전과 같은 사태로 번지지는 않았을 텐데요, 왜 전력을 공급받지 못했을까요?

문제는 도쿄전력에 있었습니다. 간사이 전력을 비롯한 다른 곳의 전력 주파수와 도쿄 전력의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에 공급받기 어렵다고 합니다. 전압이나 전류라는 용어는 알아도 전력 주파수라는 개념은 조금 생소하실 텐데요, 전력 주파수는 전력만큼이나 중요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발전소에서 만드는 전기의 주파수는 60Hz/s입니다. 그러니 공장이나 가전제품 모두 60Hz/s에 맞게 제작해야 한다고 합니다. 만약 주파수의 편차가 크면 과열 같은 문제가 생겨 가전제품이 쉽게 고장난다는군요.

한국전력이 기준으로 삼은 양질의 전기는 '일정한 전압, 일정한 주파수, 무정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와 다릅니다. 관동지역은 50Hz/s를, 관서지역은 한국과 같은 60Hz/s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정으로 관동지역 후쿠시마에 전력을 공급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군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변전소 설비를 갖추고 있긴 하나, 그 용량이 적어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국가에서 전력 관리를 총괄하지 않고 민영회사에 맡겼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봅니다. 일본은 그동안 동, 서를 구분하여 관리해왔습니다(일본 철도 JR도 동과 서로 나뉘어 있음). 이런 관례가 전력 표준화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았다 싶습니다. 일본 원전 사태는 국가 기간 산업을 민영화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는지를 극단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최근 한국도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많은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의 원전 사태로 민영화 문제를 타산지석으로 삼야야 할 듯합니다.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일본은 이번 대지진으로 엄청난 일을 겪었습니다. 지진해일이라는 자연재해는 막기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원전 사고는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민영화된 전력 공급회사는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기 급급했으며, 문제가 터졌을 때 책임을 지기는커녕 어처구니 없는 행동으로 국가의 운명까지 좌지우지하게 되는 인재로 발전되었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정부는 경쟁력 강화와 효율성이라는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많은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진의 안전지대는 아닙니다. 일본 국민은 대재앙의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매뉴얼 강국이라는 일본도 피하지 못한 대자연의 힘을 한국이라고 피할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습니까. 이명박 정부의 국가적 위기 관리 능력은 천안함 사태, 연평도 사태, 구제역 파동 등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음을 만천하게 드러냈습니다. 
이제 우리가 풀 숙제가 남았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의 후손을 위해 우리는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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