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올라온 한 유튜브 영상이 화제입니다. 우리 일상에서 희미해지던 어버이를 '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방송작가 유병재가 만든 〈고마워요 어버이〉는 전경련과 국정원, 그리고 청와대가 얽혀 있는 어버이연합 게이트를 풍자하는 내용을 담은 동영상입니다. 그런데 이 영상에 국민의 관심이 쏠리자 소식을 끊고 잠적했던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이 등장했습니다. 〈고마워요 어버이〉 동영상이 어버이연합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에 고소장을 내기 위해 등장한 겁니다. 그동안 해외로 잠적했다는 소문부터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까닭에 국정원이 '마티즈 태웠다'는 자살설마저 돌기도 했는데, 풍자 동영상 하나가 추선희 사무총장의 행방에 대한 논란을 잠재운 셈이죠.


출처 - 유튜브


어버이연합에 위안부 관련 합의 지지 집회를 지시했다는 《시사저널》 보도에 대해 허현준 청와대 행정관이 제기한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은 기각한 바 있습니다. 재판부는 "청와대 행정관으로서 상당히 공적인 지위에 있으며, 《시사저널》이 사건 기사와 같은 내용의 의혹을 품을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 보인다"며 "보도 내용이 객관적 자료에 의해 최종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현 단계에서 허 행정관의 인격권이 언론의 자유보다 우선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습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유병재를 고소한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의 고소장도 기각될 가능성이 큽니다.

 

 

보수 단체의 배후, 국정원

 

허현준 청와대 행정관은 '시대정신'이라는 단체 출신인데 원래 이름은 '뉴라이트 연합'이었습니다. 종북척결을 주장하던 극우단체로, 미군 장갑차에 치여서 숨진 미선이 효순이 사건과 이명박 정부 당시 광우병 사태가 종북 빨갱이들의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던 곳이죠. 이 단체에 7년간 21억이 넘는 후원금이 들어왔으나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후원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쓰였는지는 불투명합니다. 

 

21억의 후원금은 이 단체 전체 수입의 90퍼센트가 넘는 금액으로 사실상 존립의 근거가 된 자금이었습니다. 이 돈 역시 전경련과 당시 정권에서 흘러들어온 돈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사고 있죠.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정점에는 국정원이 있습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뉴라이트 연합이던 시대정신과 재벌들의 집단인 전경련, 그리고 보수 정권이 잡은 청와대와 국정원의 4각 관계가 이번 어버이연합 게이트에 의해 사실상 드러났고, 점차 그 실상이 밝혀지고 있는 중입니다.


출처 - 시사저널


《시사저널》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보수단체 대표 등과 회동하고 이들에게 창구 단일화를 요구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회동 시기는 이병기 비서실장이 국정원장으로 재직할 때로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는 보수 주요 단체인 애국단체총협의회, 재향군인회, 고엽제 전우회, 재향 경우회 등이 창구를 단일화해달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돈을 지원할 창구를 하나로 해야 쉽게 돈을 넣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창구로 사실상 애국단체총협의회를 지목했다고 하는데, 이 단체는 이명박 정권 때부터 본격 활동한 단체로 재향군인회장 출신의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이 상임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봐도 국정원의 사주에 의해 보수 단체들이 국민의 혈세를 축내면서 정부 비판 시위를 막고 친정부 성향의 여론몰이에 동원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군부 독재의 잔재가 21세기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었던 겁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유튜브


이번 어버이연합 게이트만이 아니라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당시에도 문제의 근원은 국정원으로 지목되었습니다. 당시 국정원 3차장으로 있던 이종명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종북 좌파들이 다시 정권을 잡으려고 하니 국정원에서 확실하게 대응을 해야 된다"는 지시를 받습니다. 2012년 2월 17일의 일인데, 정확하게 같은 달에 전경련 자금이 최초로 어버이연합 차명계좌에 입금되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드러난 정황만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꼭두각시일 뿐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흑막은 국정원이라는 음모론이 그럴싸해 보입니다. 이번에 흑막이 공개된 어버이연합 게이트는 재벌과 보수단체를 거느린 국정원의 대표적인 국기 문란 사건이었습니다. 군사독재 시절의 장성들이 소속된 단체가 다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전두환과 같은 제2의 내란을 꿈꾸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정보 조작, 여론 날조가 국정원의 주 업무가 된 현실


국정원은 최소한 북한 관련 업무라도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국정원의 대북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난 2월 국정원이 숙청되어 처형됐다고 보고되었던 리영길 총참모장이 3개월 만에 공식 석상에 나타난 일이 있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이로써 리영길 총참모장에 대한 처형 소식은 개성공단 폐쇄를 결정하며 국정원이 뿌린 헛소리에 불과했음이 드러났습니다. 애초에 통일부가 리영길 처형설을 공개한 일 자체가 이례적이었습니다. 통일부는 북한 관련 정보를 생산하는 곳이 아니며 국정원에서 받은 정보를 통일부가 언론에 문건 형식으로 공개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리영길 처형설은 이례적으로 통일부가 언론에 노출했습니다.

 

국정원이 죽었다던 북한 인사가 버젓이 살아나는 일을 우리 국민이 한두 번 겪은 게 아닙니다. 2013년 8월 29일 《조선일보》는 북한의 은하수관현악단 소속 예술인 10여 명이 부적절한 영상을 찍어 총살되었다는 기사를 단독 보도했습니다. 2013년 10월 8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국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까지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죽었다던 보천보전자악단 소속 가수 현송월이 2014년 5월 16일 모란봉악단 단장 자격으로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에 참석하여 첫 번째 토론자로 나왔습니다. 〈조선중앙방송〉이 이를 보도한 겁니다. 한편 지난해 국정원이 국회에서 해임된 것으로 보인다던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겸 화력지휘국장도 사실은 건재했죠. 

 

이처럼 국정원은 본연의 임무라 할 북한 관련 정보 수집 및 분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국가기관입니다. 그런 주제에 국민을 사찰하고 간첩을 만들고 여론을 조작하는 데에는 엄청난 혈세를 썼습니다. 심지어 대통령선거에 개입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죠. 국기 문란의 원흉인 국정원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해체의 대상일 뿐입니다.

출처 - 한겨레

 

국정원이 연루된 사건, 사고가 하도 잦아 머리가 아플 지경이지만,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쳐 만천하에 공개해야 합니다.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검찰이 제대로 된 역할을 못 한다면 특검과 청문회를 통해서라도 사실을 밝혀내야 합니다. 그것이 20대 국회에 보내는 국민의 뜻임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지난 4일 휴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군이 매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목함지뢰가 폭발해 두 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목함지뢰는 나무상자에 TNT 화약과 신관을 넣은 지뢰의 한 형태입니다. 지난 2010년 민통선 내 임진강 부근에서 나무상자를 주운 한 모 씨가 무심코 뚜껑을 열다 폭발해 사망한 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졌지요. 지난 4일 발생한 목함지뢰 폭발사고로 김 하사는 오른쪽 발목을 잃었고, 하 하사는 양쪽 무릎 아래로 두 다리를 모두 잃었습니다. 20대 초반으로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평생토록 안고 가야 할 상처를 입은 셈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번 사건과 관련한 국방부의 긴급 현안보고를 위해 12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의 내용을 보면 지난 4일 북한 도발 가능성이 확인됐고 우리 군 하사 2명이 지뢰 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통일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다음 날인 5일 아무 생각도 없이 북한에 남북 고위급 회담을 제안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에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조차 정신 나간 짓이라고 돌직구를 날리며 정부 부처 간 엇박자를 질타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지뢰 사건이 터진 나흘 뒤인 8일에서야 열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늑장 대처는 세월호 사고 때나 메르스 사태 때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의 백군기 의원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사건 당일인 4일 밤에라도 열려야 했는데 4일이나 지나 열렸다니 이게 국가인가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메르스 때는 재난 관리의 컨트롤 타워는 청와대가 아니라며 발뺌하더니 이제는 국가안보의 컨트롤 타워조차 아니라고 발뺌하려나 봅니다. 이쯤 되면 대체 청와대의 존재 이유가 뭔지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출처 - 경향신문

 

황당한 일은 또 있습니다. 최전방의 지뢰폭발 사고는 군 관련 사건임에도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를 하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국방부 장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보고받은 것으로 안다고 했지만, 정확하게 언제 어떻게 보고를 받았는지에 관해서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간 많은 참사를 겪고도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 부재는 바뀐 게 없다는 사실만을 재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국정원 해킹 사건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지뢰 사건이 터진 다음 날인 지난 5일 경원선 남측구간 철도복원 기공식에 참석해 "북한은 우리의 진정성을 믿고 용기 있게 남북 화합의 길에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축사했습니다. 지뢰 사고에 대한 초동 대처가 재빨랐다면 대통령에게 관련 사실이 제때 보고되었을 것이고, 경원선 기공식에서 대통령이 이런 축사를 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정부 부처 간 불통 외 그 이면에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할 뿐입니다.

 

출처 - 뉴시스

 

아무튼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목함지뢰 사건의 희생자들만 불쌍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지고 가야 할 상처를 입었지만, 군인 신분인 김 하사와 하 하사는 군 당국의 불법이나 과실이 드러나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공무원은 당국의 불법이나 과실이 드러날 경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지만, 군인과 경찰은 불가능합니다. 헌법 29조 2항과 국가배상법 2조 1항인 이중배상금지 규정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군인과 경찰의 기본권, 평등권을 침해하는 이 법률을 헌법에까지 박아넣은 사람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이중배상금지는 군인이나 경찰이 전사하거나 순직, 부상했을 때 정해진 재해보상금, 유족연금, 상이연금 등만 받을 수 있을 뿐, 국가의 불법이나 과실이 밝혀져도 이에 따른 손해배상은 청구할 수 없도록 규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달러벌이 목적으로 베트남에 파병하면서 생겼습니다. 베트남전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우리나라 젊은이가 죽거나 다쳤습니다. 전쟁 상황에선 상관의 부당한 명령이나 다른 군인의 직무상 불법행위, 과실 등으로 숨지거나 다칠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정상적이라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청구해 국가 배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하지만, 박정희 정부는 이를 사전에 봉쇄하고자 국가배상법 2조를 공표한 것이죠.


1971년 대법원은 이 조항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군인과 경찰을 차별하는 조항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반기를 든 데 격노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위헌 결정을 내린 대법관들의 연임을 막고 1972년 유신헌법을 제정하여 이중배상금지를 아예 헌법에 박아넣은 겁니다. 헌법 29조에 유신헌법의 잔재가 지금도 남아 있는 셈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도 베트남전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박정희와 박근혜 부녀를 위해 각종 맞불 시위에 동원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이중배상금지 규정으로 군인과 경찰은 국가로부터 부당한 취급을 받거나 불법에 노출되어도 법에 호소할 길이 없어졌습니다. 이번 목함지뢰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군이 지뢰를 매설했다는 국방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는다면 무장한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우리 군이 경계 임무에 실패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죠. 작전에 실패해온 우리 군의 무능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2014년 6월 강원도 22사단 55연대 GOP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을 기억하시는지요? 국방부가 운용한 관심병사 제도의 유명무실함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뿐 아니라 최전방의 살인적인 GOP 경계근무의 문제점이 드러난 사건이었죠. 임 병장의 총기 난사 및 무장탈영 사건에서도 군의 초동 대처는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물론 군의 DMZ 감시체계의 허점이 노출된 사건은 그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2012년에 발생한 이른바 노크 귀순 사건이었죠. 북한군 병사가 철책을 넘어 우리 군의 생활관 문을 노크해서 귀순 의사를 밝힌 참으로 어이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전방 경계의 허술함과 군 기강 해이의 문제점이 드러난 사건으로 국가 안보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천안함 사건이 있습니다. 침몰한 천안함을 둘러싼 의혹은 지금도 법정 공방 중입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의 원인은 아직도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무능한 이명박 정부와 군은 북한을 원흉으로 몰아 면피하려 했을 뿐, 무고한 병사들의 죽음을 책임지는 지휘관은 없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난 4일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의 원인을 규명해 군 지휘부의 실책이나 과실이 있었다면, 그리고 이에 대해 혹시 불법적인 입막음이 있었다면, 김 하사와 하 하사는 국가에 배상을 청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여야 합니다. 이번 목함지뢰 사건에 대해 새누리당 의원인 주호영 의원조차 군의 경계 실패라는 지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요즘은 정부와 국가기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만, 지뢰 사고와 관련된 국방부의 발표가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면 정전협정을 어긴 북한의 도를 넘은 행위에 대해서는 군사정전위를 통해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울러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억울하게 희생되는 병사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이중배상금지라는 독소 조항을 철폐하는 데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무장지대(DMZ)를 '드리밍 메이킹 존(Dreaming Making Zone)'으로 만들겠다는 한심한 소릴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Dreaming Making Zone이 아니라 Dakaki Masao Zone"이겠지 하며 비웃겠습니까?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이중배상금지가 들어간 유신헌법 제정에 투표한 사람이라 썩 믿음이 가진 않지만, 아버지의 잘못을 이제라도 바로잡기 바랍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젊은이를 돌보지 않는 국가가 어떻게 애국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출처 - 경향신문

출처 - 노컷뉴스


지난 4월 7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매주 열리는 수요집회(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뜻깊은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베트남에서 오신 응우옌티탄 씨입니다. 응우옌티탄 씨는 수요집회에 참석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와 꽃다발을 나누며 서로 응원했습니다. "같은 전쟁의 피해자로서 두 할머니의 행동은 정말 옳은 일이라 응원합니다. 그리고 건강하셔야 합니다"라고요. 수요집회를 응원차 방문한 응우옌티탄 씨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지 궁금해하는 분도 계실 텐데요. 아닙니다. 이분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로 가족을 잃었고, 본인도 부상 끝에 살아남았습니다.

 

출처 - 한겨레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직시해야 한다


1956년부터 1975년까지 20여 년간 지속된 베트남전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주축으로 한 냉전 체제의 대리전이었다는 양상에서 한국전쟁과 연관 지어 생각할 지점이 많습니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국이 참전했으나 승리하지 못했고, 병력파견이 점점 늘어나고 전투가 격렬해짐에 따라 반전운동이 치열해지고 전쟁 자체에 대한 의문도 날로 커졌습니다. 고엽작전과 양민학살 등의 만행이 드러나면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집회와 데모가 그치지 않았죠.

 

출처 - 국방일보


반공을 국시로 내건 박정희는 베트남 파병을 미국에 먼저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하자 베트남 정부와 미국에서 정식으로 파병을 요청합니다. 이에 대한민국의 청룡부대, 맹호부대, 백마부대 등 정예 부대가 대거 투입되었습니다. 파병 병력은 32만 명, 파병이 최고조에 달한 1968년에는 베트남 주둔 한국군만 무려 5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미국을 뒤이어 가장 많은 병력을 보낸 국가라고 할 수 있죠. 꼭 돈만이 목적은 아니었겠지만, 월남 파병이 달러벌이의 일환이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운 현실입니다. 한국군은 당시 4만 1000명의 베트남군을 사살하고 미국으로부터 2억 350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이런 핏값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을 이뤘습니다. 베트남 파병 이후 우리나라의 GNP는 5배가량 성장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21


문제는 한국군의 참전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전쟁 상황은 어느 쪽을 구분할 것 없이 사람을 미치게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사달이 안 날 수가 없죠. 미국에 의한 대표적인 만행인 미라이 학살뿐 아니라 대한민국 해병대인 청룡부대에 의해 자행된 퐁니, 퐁넛 양민 학살은 베트남 국민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 사건은 2000년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실위원회가 진상조사를 벌이면서 그 전말이 밝혀졌습니다. 한국군에 의해 학살된 양민이 7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중대한 전쟁범죄였습니다. 

 

이밖에도 비무장 민간인 135명을 학살하고 가매장한 사건인 하미 마을 학살 사건, 430명의 마을 주민을 죽인 빈호아 학살 등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베트남 내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미군 역시 진상 조사와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군과 국방부는 학살이 없었다며 실체 자체를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달리 양심 있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베트남 참전 당시 우리 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며 희생자를 위한 위령비를 세우고 마을을 위해 기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우익 단체 방해로 파행 겪던 베트남전 학살 사진전 개막


이런 상황에서 고엽제전우회 등 우익 단체의 방해로 파행을 겪던 사진전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이 지난 8일 개막했습니다. 광복 70주년, 베트남전 종전 40년을 맞아 사진전을 기획한 평화박물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학살 피해자 응우옌떤런 씨와 응우옌티탄 씨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갤러리 스페이스99를 방문해 오픈행사에 참석하고 작품을 관람했습니다. 이번 사진전엔 베트남전 당시 학살을 당한 피해자를 기리는 위령비와 베트남 마을 사람들의 사진이 전시되었고, 다른 한편에는 한국의 베트남참전기념비를 담은 영상이 상영되었습니다.

 

출처 - 국제신문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베트남 지역 한국군 주둔지를 중심으로 사진을 찍으며 그들의 삶을 기록한 이재갑 작가는 하나의 전쟁인 베트남전을 기억하는 한국과 베트남의 방식이 너무나 다르다며 왜곡된 진실과 감춰진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출처 - 한겨레


약자들의 시위 현장마다 빠지지 않고 나타나 훼방을 놓는 고엽제전우회는 이번에도 1000여 명(경찰 추산 700여 명)을 동원해 베트남 피해자 초청 행사가 열린 식당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월남참전 고엽제 환자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베트콩을 민간인 희생자로 둔갑시켜 참전자들의 희생과 명예를 실추시겼다"며 전시 중단을 촉구했습니다. 고엽제는 미국에서 뿌린 것인데 왜 고엽제전우회는 그 책임을 베트남에 전가하는 걸까요? 정말로 고엽제로 고통을 당하고 계신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을 욕되게 하는 건 바로 이분들이 아닌가 합니다.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재갑 작가는 참전용사들 역시 전쟁의 피해자로 생각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두 개의 기억'이란 사진전 제목도 베트남전을 '학살'로 기억하는 베트남인과 '참전'으로 기억하는 한국 참전용사들의 처지를 두루 고려한 것이라고 합니다.

 

출처 - 프레시안


베트남전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라면 우리나라가 갑작스레 가해자로 취급받는 상황에 당황스러우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수요일마다 일본군 위안부 진상 규명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우리가 떳떳하려면, 우리의 과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일본이 발뺌하고 역사를 왜곡할 때마다 우리가 분노하는 것처럼, 우리가 발뺌하고 역사를 왜곡할 때마다 베트남 국민도 분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진전이 한국과 베트남이 평화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식민지배의 역사를 안고 분단과 냉전의 희생양이 된 전쟁으로 국토가 유린당하고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는 닮은꼴입니다. 1992년 수교 이래 경제적 교류는 늘어나고 있지만, 양민 학살이라는 사회적 문제에 있어서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국민이 베트남전 당시 우리 군이 자행한 양민 학살의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 서독 총리인 빌리 브란트는 "역사에 눈 감는 자는 미래를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베트남의 아픔을 외면하고서 일본의 역사 왜곡만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사진전이 폭넓은 역사 인식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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