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18분과 5시간 32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에 의해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해 야당 의원들이 시작한 필리버스터의 기록입니다. 1973년 폐지되었던 필리버스터는 2012년 국회선진화법으로 다시 도입된 것으로 국회법에 의거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방법입니다. 국회의원 3분의 1의 동의를 받으면 해당 법안에 관해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무제한 토론으로 시간을 끌어 국회 회기를 넘기면 법안이 자동 폐기되는 점을 노린 방법입니다. 미 대선에서 태풍의 눈으로 급부상한 버니 샌더스도 8시간 넘게 부자 감세에 관한 필리버스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필리버스터는 세력이 작은 야당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 같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는 새누리당 의원들은 야당 의원의 발언 도중에 삿대질을 하며 공천 타령을 하거나 네이버에 '필리버스터 저지하는 방법'을 검색하는 모습이 포착되는 한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새누리당이 자신들의 무능과 무식을 증명하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입니다.

출처 - 한국인터넷언론협동조합


국민을 억압하는 테러방지법을 책상을 두드려 가며 추진하는 박근혜 대통령. 사실 그가 의원 시절에 발의한 국회선진화법 덕택에 대한민국 정치사에 새로운 장이 쓰이게 된 셈인데요, 정작 본인은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한편 필리버스터가 올림픽 종목도 아닌데 '기록 경신'에 주목해서 트래픽 끌기에 바쁜 언론도 한심한 수준입니다. 그보다는 이런 일이 왜 발생했는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등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주는 것이 언론과 방송의 역할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생각비행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테러방지법? 국민 때려잡는 중정부활법이 그 정체!


박근혜 정부 3년,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대한민국을 휩쓸 정도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하였으나 박근혜 정부는 특정 기업과 특정 계층을 위한 '성장 제일주의'에 몰두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어제 《한겨레》가 박근혜 정부 3년을 빅데이터로 분석한 기사를 보니, 박 대통령의 신년사에 경제성장과 관련된 핵심 키워드가 20개로 가장 많았습니다. 박 대통령이 지난 3년간 한 공개발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국민' '대한민국' '경제'였습니다. 단어가 합쳐진 결합 키워드로는 '창조경제' '경제활성화' '경제혁신' 등을 가장 많이 언급했습니다. 평화통일의 연관어는 2013년 '한반도' '신뢰'에서 2014년 '통일준비위원회' '대박'으로 변하다가 2015년 들어서 '이산가족'으로, 2016년에는 '도발' '제재' 등으로 변화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최근 언론과 방송 기사는 북한 관련 소식이 주를 이룹니다. 2016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남북 긴장 관계를 극단적으로 조장하는 한편 '안보 위기 프레임'으로 자신의 국정 운영의 미숙함을 타개하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읽을 수 있는 지점입니다. 지난해 목함 지뢰 사건 당시 남북 간 전쟁 위기 상황을 타개하여 단기간에 국민의 지지율을 끌어올렸던 행보와는 너무나 상반된 것이어서 과거의 행보가 과장된 연출이었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세계적인 테러와 북한의 핵 도발 등 '안보 이슈'와 관련된 기사가 판을 치니 당연히 테러방지법을 도입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쉽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런데 알고 계십니까? IS가 생기기 전부터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의 숙원사업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은 지난 15년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되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국정원의 과도한 권한에 의한 인권 침해 등의 우려가 너무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 중인 테러방지법은 대테러 활동에서 국정원 정보수집 권한을 대폭 확대하고 범정부 차원의 테러 대응기구를 설치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핵심은 이 정보수집권을 어느 기관에 부여하느냐겠죠. 야당은 국민안전처를 주장했지만 새누리당은 국정원을 고수했습니다. 당연합니다. 국정원의 댓글 공작과 대선 개입 같은 파렴치한 행위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국정원이 권력을 더 많이 얻을수록 자신에게 유리한 지점이 한둘이 아닐 테니까요.


테러방지법에 독소 조항이 너무 많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선 이번 테러방지법은 테러범으로 의심되는 외국인에 한정되어 있던 활동을 국민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은 원칙적으로 국내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국외의 정보활동을 통해 안보를 지키는 것이 정보기관인데, 테러를 내국인도 저지를 수 있는 행위로 규정한다면 테러방지법의 칼끝이 대한민국 국민을 향하리라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지요.

 

현재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 17조를 보면 테러단체의 수괴에게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테러방지법이 규정하는 테러의 정의조차 모호한 상황입니다. 세월호, 메르스 사태 당시 국민이 적법하고 상식적으로 진행한 시위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박근혜 정부라면 테러방지법이 통과될 경우 시위단체와 시위주동자를 테러단체와 테러범으로 몰아 극형에 처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유신시대처럼 국민을 공포로 통치할 수 있게 되는 길이 열리는 셈입니다. 이를 볼 때 테러방지법은 유신시대 중앙정보부, 안기부의 부활을 노리는 법과 다름없습니다.

 

애초에 우리나라는 테러방지법을 새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형법이 있음에도 국가보안법으로 이중처벌을 하는 것처럼 테러방지법이 생길 경우 이중, 삼중의 처벌이 줄을 이을 테니까요. 더구나 필리버스터로 기록을 세운 더불어민주당의 김광진 의원의 질문으로 굴욕을 당한 황교안 총리의 사례를 보면 왜 테러방지법이 필요 없는지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82년부터 국가테러대책회의라는 기구가 있었습니다. 국정원과 경찰을 포함한 11개 부처가 반기에 한 번씩 정기회의를 하게 되어 있으며 의장은 다름 아닌 국무총리입니다. 그런데 황교안 총리는 그런 기구가 있는지조차 몰랐으니 자신이 그 기구의 의장인 줄은 꿈에도 몰랐겠죠. 이미 있는 기구를 쓰지도 않으면서, 자기가 그런 조직의 장인지조차 모르는 무능한 사람이 모인 조직이 테러방지법이 생긴다고 갑자기 유능해지고 대테러 활용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테러방지법은 국민감시법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또한 테러방지법에 끼워 통과시키려는 감청설비의무화법은 전 국민의 카카오톡과 문자, 통화를 도청, 감청하겠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런 법을 시도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합니다. 정치 수준이 참으로 저열합니다. 테러방지법과 감청설비의무화법이 통과되면 전 국민은 국가의 감시 속에 사는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누가 엿들을까 봐 조심해야 하는 유신시대로 회귀하는 겁니다. 이는 심각한 헌법 위반이며 인권 침해입니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35년 전부터 국가테러대책회의가 존재해왔는데 왜 테러방지법을 통해 국정원 단독의 테러대책기구를 두어야 하는가?


-합법적인 영장 집행 절차를 통해 정보 수집을 할 수 있는데 왜 테러방지법을 통해 국정원의 독단적인 판단의 정보 수집을 허가해야 하는가?


-정보통신법에 따라 합법적인 게시물 삭제가 가능한데 왜 테러방지법을 통해 국정원 독단적 판단에 의한 긴급삭제권을 주어야 하는가?


-박근혜 정부는 무슨 저의로 이미 있는 법과 기구들까지 무시해가며 국정원에 무제한적인 권력을 주려고 하는가?

 

 

필리버스터에 대한 관심을 테러방지법 무산으로 연결하자


최근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버너디노 테러범의 아이폰을 FBI가 잠금해제 해달라고 애플에 요구한 사건입니다. FBI는 총기 테러를 벌인 뒤 사살된 사예드 파룩이 쓰던 아이폰 5c의 보안 기능을 해제할 수 있는 특별한 백도어를 제공할 것을 요구했으나 애플은 거부했습니다. 사생활 보호가 안보에 우선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때 구글, 페이스북을 비롯한 미국 IT업체들과 인권단체는 일제히 FBI를 비난하며 애플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대상이 테러범일지라도 국가 정보기관을 위해 특별한 백도어를 제공할 경우 선량한 국민의 아이폰도 FBI가 사찰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애플은 누리집에 세계 각국의 언어로 "우리는 국가 안보를 위해 개인의 사생활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라는 장문의 공지를 올렸습니다. 애플 코리아 누리집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애플 코리아 누리집

 


국가기관에 의한 개인의 인권 침해는 어느 시대에나 어느 나라에나 있던 일입니다. 하지만 이를 막아내느냐 막아내지 못하느냐는 국민의 지속적인 노력과 권리 행사의 결과로 귀결됩니다. 국민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권리 행사는 투표입니다. 올해 4월 13일 총선에서 올바른 선택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국민을 사찰하는 당에 표를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당에 표를 주시겠습니까?

 


테러방지법에 반대하지만 필리버스터를 할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한 진보 진영의 당도 있습니다. 시민은 권리와 책임이 있는 주체입니다.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떳떳하게 누리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가꿀 책임 있는 존재들입니다. '할 수 없다' '될 수 없다'는 패배감을 극복해야 합니다. 거대 정당 중심으로 짜인 선거판을 뒤집고 국민의 뜻을 받드는 진보 정당에 힘을 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총선이 그 첫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출처 - 녹색당

 

출처 - 노동당

 

대한민국 소방공무원의 현실

 

지난 21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박남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시·도 소방본부와 소방학교 24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소방공무원 7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소방공무원 근무여건 개선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근무하면서 한 번 이상 부상당한 사람은 124명으로 18퍼센트에 달했습니다. 그중에 '본인이 치료비를 부담했다'고 응답한 소방관이 약 80퍼센트(99명)에 달했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화재 현장의 최일선에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는 소방공무원들이 치료비를 본인 부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복잡한 신청 절차'가 27퍼센트로 가장 많았고, '공상처리 기준부재'가 26퍼센트로 뒤를 이었습니다. 그리고 '행정평가상 불이익'(17%), '부족한 보상'(10%) 등도 주요한 이유였습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 작전에 필요한 안전장비까지 본인 부담으로 구매해서 쓰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이 무기를 직접 사서 쓰는 것과 다름없는 현실인데요, 왜 소방관들이 안전장비를 직접 사서 써야 했을까요? 통계 자료를 보면 현장활동 중에 위험을 유발하는 장비 관련 요인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안전장비의 노후화입니다. 무려 45퍼센트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다음으로 안전장비의 수량부족이 30퍼센트로 뒤를 이었습니다. 실제로 조사에 참여한 소방공무원 가운데 무려 37퍼센트가 자비로 안전장비를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하니 대한민국 소방공무원의 현실이 암담합니다.

 

 

최근 5년간 순직한 소방관보다 자살한 소방관이 더 많아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순직한 소방관이 33명, 자살한 소방관은 35명으로 자살한 소방관이 순직 소방관의 수보다 많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자살자 35건 중 과반이 넘는 19건(54%)이 우울증 등 신변비관으로 숨졌으며, 가정불화가 10건(29%) 등이었습니다. 이는 위험하고 불규칙한 근무환경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지난 9월 17일 경기방송 <유연채의 시사999>라는 프로그램에서 박남춘 의원이 이 문제를 잘 다뤘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경기방송

 

소방관의 업무 특성상 위험 직군으로 분류돼 보험료 할증을 요구받거나 아예 보험가입을 거부당하는 사례도 빈번합니다. 시간외수당, 안전장구, 부상 치료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서 어떻게 일선에 있는 소방관들에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소방공무원을 위한 정책적 보험과 세밀한 공상처리 기준을 마련하는 작업이 시급합니다. 또한 우울증, 불면증, 스트레스로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는 소방공무원들을 위해 소방전문병원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치유센터 설립 등도 검토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국민안전처가 나서기 바랍니다.

 

 

한국전쟁 때 쓰던 수통 그대로 사용하는 한국 군의 현실

 

소방공무원의 현실도 기가 막히지만, 대한민국 군대의 현실을 보면 할 말을 잃게 됩니다. 군대 다녀오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한국전쟁 때 쓰던 수통과 베트남전쟁 때 쓰던 군장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온 젊은이에게 1~2년 전 것이 아닌 반세기 전 보급품을 지급하는 대한민국 군대의 현실,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요? 복잡한 심경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면전에서 "수통이 빵꾸나지 않고 사용만 제대로 할 수 있으면 50년이 됐든 100년이 됐든 무슨 상관이냐?"며 타박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이번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이 한 발언인데요, 한 의원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에 육군 장성으로 예편한 국회의원입니다.

출처 - JTBC


한 의원의 발언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오래되고 비위생적인 수통을 사용하는 장병들을 위한 예산이 편성되어 노후 수통을 전량 교체할 수 있도록 했는데도 여전히 반세기 전의 헌 수통을 쓰는 현실을 지적하는 상황에서 변명처럼 나온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비웃음을 사더라도 국방부 장관의 변명을 대신 해주고 싶었나 봅니다.


이미 예산이 편성되어 새 수통을 사기까지 했는데도 변하지 않은 군대의 현실을 보면 비리와 부정 외엔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성인 남성이 태반인 우리나라에서 군대가 비리의 온상임은 공공연한 비밀이죠. 이번 국정감사 기간에 터진 사례만 해도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상수도 보급률 50퍼센트에도 못 미쳐


세계 7대 군사강국. 다음 달 1일로 창군 67주년을 맞는 한국 군의 위상입니다. 세계 10대 무기 생산국이자 병력 규모 등 외형이나 신무기 투자 규모로 봐도 세계 10위 수준이라는 대한민국 군대. 하지만 그 기본이 되는 장병에 대한 처우는 바닥을 기고 있습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한국 군의 실태는 참으로 가관입니다. 반세기가 다 된 모포, 수통을 아직도 사용하고 육군과 해병대, 상수도 보급률은 5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지요. 지하수나 우물을 쓰고 빗물을 받아 사용하는 곳이 수두룩하다는 얘깁니다. 화장실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재래식 화장실이 1400여 개에 달하며, 군납 식품에선 머리카락, 벌레, 쇳가루 등 불순물이 나오기 일쑵니다.

 

출처 - JTBC


대한민국에서 해킹 사건이 일어나기만 하면 항상 배후로 북한이 지목되는 데 반해 우리 군은 아날로그 방식투성이입니다. 예하 사단 상황장교들은 아직도 무선 통신 내용을 받아 적습니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함장이 휴대폰으로 보고했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겁니다. 군대 내부에서도 간부들은 급한 연락은 휴대폰으로 하기 일쑤입니다. 각종 통신장비가 낡았기 때문입니다. 소대장들이 대놓고 중대장에게 휴대폰으로 보고할 정도니 말 다했죠. 방송에서 <진짜사나이> 같은 프로그램으로 아무리 군대의 기강을 보여주고, 열심히 훈련하는 모습을 보여주어도 대한민국 군의 현실은 동물의 왕국 혹은 정글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병사의 주적은 간부, 병사-지휘관 간 차별 여전해


군 복무를 하신 분이라면 "사병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간부"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사례만 봐도 사병과 지휘관 사이의 차별이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출처 – 계간 고대문화

 

장병들이 탑승하는 주력 전차와 장갑차에는 냉방장치가 없어 여름철 내부 최고 온도가 무려 56도까지 치솟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장교들이 타는 지휘관용 장갑차량에는 1000만 원짜리 냉방장치가 빠짐없이 장착되어 있었죠. K1A2 전차 성능 개선 사업에서 합참은 전차에 냉방장치를 장착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했지만, 사업 추진 중 갑자기 백지화합니다. 비용 대비 효과와 전술적 운용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를 들먹이면서요. 그렇다면 지휘관용 전차의 냉방장치도 제거함이 마땅할 텐데, 지휘관용은 또 그렇지 않답니다.

 

출처 - 일요서울


장병들은 제대 후 예비군에 편성됩니다. 생업을 두고 길게는 3일간 다시 입소해 훈련을 받아야 하니 사회적으로 이만저만한 낭비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훈련을 빠져선 안 됩니다. 그것도 자비 부담으로 말입니다. 훈련소가 대부분 도심에서 동떨어진 곳에 있다 보니 오가는 교통비만 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예비군 훈련 참가비 평균 비용은 2만 2190원인데 반해 보상비는 겨우 1만 2000원입니다. 그러니까 예비군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1인당 1만 원을 자비 부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뿐입니까? 자영업 등 생업 전선에서 뛰고 있는 사람이라면 예비군 훈련 기간은 고스란히 손실로 돌아옵니다. 이 때문에 미군은 예비군 훈련 시 계급별로 하루 최고 22만 원에 이르는 보상비를 지급하고 있으며 이스라엘도 10여만 원을 국가가 지급합니다. 대한민국은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는 상태에서 국방의 의무만을 이토록 손쉽게 요구해도 되는 걸까요? 사회에선 '열정페이' 군대에선 '애국페이', 이를 당연시하는 현실. 이대로 두면 안 됩니다.

 

출처 - 아시아경제


대한민국 군의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만 하면 군은 항상 예산 타령을 합니다. 하지만 사실 군대, 돈 잘 법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육군 일선 부대들이 민간인들을 상대로 숙박, 요식업소 등을 운영하면서 일반 전투병들을 무보수 종업원으로 불법 파견해 100억 원대의 순익을 내고 이를 해당 부대 지휘관 업무추진비로 전용해온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부대 근처의 복지회관 등이 대표적이죠.

 

군 병원 역시 입원한 환자인 장병을 청소나 배식 등에 부려 먹습니다. 군대에서는 이렇게 아파도 손해를 봅니다. 더구나 군 복지회관 부근 소상공인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봤습니다. 무보수로 일할 인력이 끊임없이 공급되는 군 복지회관을 상대로 소상공인이 어떻게 경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불의로 얻은 이익을 장병들에게 돌리기는커녕 높으신 분들끼리 나눠 먹으니 그야말로 '헬조선'의 축소판이랄 수밖에요.



군사기밀 유출, 영관 장교가 최다

 

상황이 이러한데 군사기밀 유출은 병사보다 장교들이 더 많이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최근 5년여간 현역 군인에 의한 군사기밀 유출 사건은 모두 44건 발생했는데, 이 중 영관 장교가 가장 많았습니다.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8월에는 '일베'를 하는 현역 장교가 군 전술망 화면을 유출해 파문이 일기도 했죠. 이 때문에 스카파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이 직접 보안조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출처 - KBS


이뿐입니까? 지난 11일 신병 훈련 중 느닷없이 폭발한 수류탄으로 교관인 김 중사가 숨지고, 손 훈련병과 박 중사가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 수류탄은 이미 1년 전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박 훈련병의 목숨을 앗아간 불량 수류탄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난해 기능시험에서 치명적 결함 판정을 받은 수류탄을 계속 훈련에 사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30발 중 6발이 손에 들고 있는 상태에서 터져버리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오폭률이 2퍼센트가 아니라 20퍼센트라니 러시안룰렛을 한다 해도 이것보단 살 확률이 높겠습니다. 문제의 수류탄은 현재 군에 25만 발이나 남아 있으나 군은 여전히 이를 내버려두고 있는 실정입니다.



'노동개악' 하지 말고 대한미국 군을 개혁하라

 

단 한 번의 국정감사로 온갖 비리로 점철된 군의 모습이 드러났지만, 대한민국 군은 뻔뻔하기 그지 없습니다. 인사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조남풍 재향군인회장은 비리로 채용한 임직원 25명을 취소하라는 보훈처의 명령을 어기고 임용을 강행했으며, 국정감사 출석을 앞두고 해외 출장을 떠나버렸습니다. 육군 대장으로 예편한 조 회장은 보훈처 감사 결과 과거 재향군인회에 790억 원의 손래를 입힌 핵심 인물입니다. 군에 있을 때처럼 자기가 아직도 왕인 줄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출처 - YTN


저희는 <박근혜 정부 방산비리 척결, 말뿐인 추악함>이라는 기사에서 방위산업과 연관된 숱한 비리 의혹의 실태를 다뤘습니다. 또한 부패 척결의 의지가 없는 박근혜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천안함 사건 5주기에 돌아보는 국가 안보>라는 기사를 통해서는 군사력 증강에 투입되는 막대한 예산이 정말로 우리의 안보를 책임질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때 납품비리로 통영함에 어군탐지기보다 못한 장비가 달려 있었다는 사실을 말씀드린 바 있는데요, 장비 납품비리 혐의로 기소된 전직 해군 간부들에 대해 검찰이 징역 3년 6월에서 징역 12년 등 중형을 구형했다는 보도가 오늘 나왔습니다.

 

군납 비리를 처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행방이 묘연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때문에 세월호 사고의 진상조차 규명하지 못하는 정권이 과연 방산비리를 제대로 밝힐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에 방산비리 척결을 강조한 이후 합수단은 검사 18명과 군검찰관 9명을 포함해 총 117명의 규모로 운영됐습니다. 군 창설 이후 최대의 방산비리 수사 규모를 자랑했는데요, 방산비리에 연루된 국방 관련 사업 규모가 총 9809억으로 드러난 것으로 보도된 바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에 쏟아부은 혈세가 24조 원에 달합니다. 자원외교로 날린 돈이 40조 원이 넘습니다. 이와 비교하면 합수단의 조사 결과 방산비리로 날린 혈세는 1조 원도 채 안 되니 대한민국 군이 그간 참 깨끗하게(?) 운영되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방산비리 수사가 변죽을 울리는 제대로 된 조사가 아니었다고 보는 편이 맞지 않겠습니까?

 

얼마 전 목함지뢰 두세 발이 남북 간 전쟁 위기 상황을 야기한 상황을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대한민국 군의 설명을 그대로 따른다면 막대한 국방예산을 쏟아부어도 GP 내 북한군의 동향을 파악하기 어렵고, 목함지뢰를 매설하러 내려오는 북한군에 대해 적절한 대응조차 못하는 꼴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목함지뢰 사건은 대한민국의 국익에 필요한 것은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는 무기가 아니라 평화를 지향하는 의지라는 사실을 천명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생각비행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23] 우리 세금을 무기 대신 복지에>라는 기사에서 "평화는 안보/평화 같은 이분법적 도식으로 풀 문제가 아닙니다. 평화와 안보는 상호보완적이고 병행적인 관계입니다. 우리 사회 도처에서 평화를 증진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군축입니다. 모두가 바라는 평화를 어떻게 이뤄나갈지 앞으로 시민사회와 한국사회가 답을 낼 차례입니다"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앞서 다룬 소방공무원과 대한민국 군의 현실을 통해 국민의 '안전'과 '안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우리의 세금을 어디에 써야 할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남북 화해 분위기 가운데 통일을 지향하는 지도자를 뽑고,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국방예산을 국민의 복지와 안전을 증진하는 비용으로 환원한다면 우리의 삶은 현저히 나아질 수 있습니다. '노동개악'을 하지 않아도 관련된 일자리가 늘어나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후대에게 과연 어떤 세상을 물려주어야 하겠습니까?


무박 4일, 49시간의 마라톤협상을 끝으로 백척간두의 전쟁 위협 상황이 해소되었다는 뉴스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신 분이 많으실 줄 압니다. 목함지뢰 사건이 터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20일에는 포격이, 그 후에는 50척의 잠수함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듣다 보면 '안보'에 어지간히 무관심한 국민이라도 '이러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서부전선 포격 도발에 전역을 앞둔 몇몇 장병이 전역을 미루는가 하면, 페이스북에는 예비군복을 입고 참전의 의지를 불태우는 이들의 인증사진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SK 등 일부 기업은 전역을 미룬 장병들을 특채 형식으로 입사시킨다 하여 '어떤 의미'에선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YTN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희생하려는 뜻은 고귀한 것이겠지요. 복잡한 국제관계에서 안보를 위한 '무력'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간 급격한 남북 관계 경색으로 사회 분위기는 너무나 위험했습니다. 핀다로스의 어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겪어보지 못한 자에게 전쟁은 달콤한 것이다. – 핀다로스



하루 만에 240만 명 사상, 한반도 전쟁 나면 민족 공멸


보수 진영의 호전론자들과 그 추종자들은 북한과의 전쟁을 너무 가볍게 입에 담습니다. "언제든 올 테면 와라! 모조리 물리쳐 주마!"라면서요.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남북한 사이의 상식적인 전력차를 생각할 때, 십중팔구 한미 연합군이 승리하겠지요. 하지만 전쟁에 승리하는 게 관건이 아닙니다. 전쟁이 나면 사람이 죽습니다.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는다는 간명한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출처 - 허핑턴포스트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 해봤더니…하루만에 240만명 사상(시사in)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7482

 

지난 2010년 천안함 사태로 남북 간 전쟁 위기감이 확산할 때 주간지 《시사in》이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 결과를 분석하여 기사를 낸 적이 있습니다. 1994년 1차 북한 핵위기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만든 한반도 전쟁 시뮬레이션 결과도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남북한 사이에 전면전이 발생할 경우, 막강한 화력을 지닌 한미 연합군이 승리한다는 결과를 높은 확률로 점쳤습니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맛볼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는 허울뿐인 승리입니다.

 

전쟁을 선포하는 건 늙은이들이지만, 싸워야 하고 죽어야 하는 건 젊은이들이다. – 허버트 후버

 

시뮬레이션은 개전 24시간 안에 군인 20만 명을 포함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150만 명이 사상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24일이 아니라 24시간입니다. 개전 1주 이내에 군인만 100만 명이 사망할 것이고, 같은 기간에 남한에서만 500만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모든 것이 집약된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 인구의 10퍼센트가 1주 만에 문자 그대로 사라진다는 얘깁니다. 

 

또한 100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 3000억 달러의 피해 복구 비용이 든다는 예측이 나왔습니다. 이 땅에서 전쟁이 발생하는 순간 120조 원의 경제적 손실이 생기고, 360조 원의 복구 비용이 든다는 얘깁니다. 이러한 추정치도 20년 전인 1994년 기준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와 인구의 수도권 집중을 생각하면 인명 피해는 물론 경제적 피해 역시 과거의 추산을 훨씬 웃도는 천문학적인 단위로 뛰겠지요.

 

부자들이 전쟁을 일으키면, 죽는 건 가난한 이들이다. – 장 폴 사르트르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누군가는 이기겠지요. 하지만 그 승리를 남한이나 북한이 고스란히 챙길 수는 없습니다. 반사적 이익을 미국, 일본, 중국 등이 누리겠죠. 전쟁 규모에 따라 다르긴 하겠으나, 이 글을 쓴 저희나 보고 계신 여러분이 살아 있지 못할 가능성도 큽니다.

 

현대 전쟁에서 더 이상 아름답거나 조화로운 죽음은 없다.

당신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개처럼 죽을 것이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전쟁은 실로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쟁을 대체 왜 그렇게 목청 높여 부르짖는 걸까요? 전쟁이란 순간적인 감정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순간,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존재가 사라지는 끔찍한 일이 일어납니다. 아무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요. 전쟁은 그런 것입니다.

 

스필버그 감독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를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지요.

 



극단으로 치닫는 안보 상업화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전역을 연기하며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나라를 수호하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들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거나 의심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언론과 정부가 이들을 다루는 방식은 비정상적이며 극단적으로 위험했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육군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전역을 연기한 육군 병사의 사례를 소개하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연합뉴스》는 이런 소식이 훈훈한 감동을 준다며 소개했습니다. YTN은 2030 세대의 군복 인증 물결이 지뢰 도발에 이어 포격 도발로 긴장이 높아진 가운데 우리 군에 힘을 보태고 있다며 미담으로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2030 세대의 안보 의식이 40대보다도 높다며 오랜만에 젊은이들을 칭찬하기 바빴습니다. 한편 《조선일보》는 2002년 제2연평해전 때는 북한의 유감 표명이 사과가 아니라며 분기탱천하더니 이번에는 유감이 곧 사과 표명이라며 박근혜 정부에 아부하기 바빴습니다. 북한이 유감 표명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말입니다.

 


출처 - 조선일보



출처 - 아이엠피터


전문가들은 안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는 정부나 언론이 할 역할도 아니며,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이대훈 성공회대 교수는 바람직한 애국이나 국방의 의무인 것처럼 부추기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며, 정치적 목적이나 이념적 목적으로 청년층의 군사적 극단주의를 부추기는 사회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와 언론은 긴장 국면에서 위기감을 조장하기보다 이건 우리가 해결할 문제이니 진정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이야기를 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전쟁 위협을 강조하고, 언론은 그 광풍에 편승해 클릭 장사를 했습니다. 혼란에 빠진 국민을 뒤로한 채 정부는 자기 입맛에 맞춰 이번 위기를 통해 얻을 것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시민의 질타를 받던 기업들은 애국심에 호소하며 은근슬쩍 자기 치부를 가리기에 바빴습니다. 이번에 전역을 연기한 장병들을 특채하겠다고 밝힌 SK의 최태원 회장은 광복절 특사로 논란 속에 사면된 바 있지요. 이러다 '5포 세대, 7포 세대' 하며 현실에 짓눌린 젊은이들이 앞으로 '참전 스펙'마저 쌓아야 하는 건 아닐지 잘 모르겠군요.

 

미국에서 심각한 안보 위기 상황으로 비화했던 9.11 테러 당시 많은 시민이 테러리스트에 대한 복수를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뉴욕 시장이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일상으로 돌아가십시오." 세월호 사고의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많은 시민에게 우리의 위정자들도 똑같이 얘기했습니다. 일상으로 복귀하라고 말입니다. 같은 말이지만 왜 이렇게 담긴 의미가 다른 걸까요?

 

안보 상업화가 점점 더 심해지는 대한민국의 상황을 국민이 두 눈을 부릅뜨고 주시해야 합니다. 국민의 생명마저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는 미치광이들이 우리에게 각자도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얘기해줍시다. "바보야, 문제는 너희야!"


지난 4일 휴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군이 매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목함지뢰가 폭발해 두 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목함지뢰는 나무상자에 TNT 화약과 신관을 넣은 지뢰의 한 형태입니다. 지난 2010년 민통선 내 임진강 부근에서 나무상자를 주운 한 모 씨가 무심코 뚜껑을 열다 폭발해 사망한 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졌지요. 지난 4일 발생한 목함지뢰 폭발사고로 김 하사는 오른쪽 발목을 잃었고, 하 하사는 양쪽 무릎 아래로 두 다리를 모두 잃었습니다. 20대 초반으로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평생토록 안고 가야 할 상처를 입은 셈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번 사건과 관련한 국방부의 긴급 현안보고를 위해 12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의 내용을 보면 지난 4일 북한 도발 가능성이 확인됐고 우리 군 하사 2명이 지뢰 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통일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다음 날인 5일 아무 생각도 없이 북한에 남북 고위급 회담을 제안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에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조차 정신 나간 짓이라고 돌직구를 날리며 정부 부처 간 엇박자를 질타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지뢰 사건이 터진 나흘 뒤인 8일에서야 열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늑장 대처는 세월호 사고 때나 메르스 사태 때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의 백군기 의원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사건 당일인 4일 밤에라도 열려야 했는데 4일이나 지나 열렸다니 이게 국가인가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메르스 때는 재난 관리의 컨트롤 타워는 청와대가 아니라며 발뺌하더니 이제는 국가안보의 컨트롤 타워조차 아니라고 발뺌하려나 봅니다. 이쯤 되면 대체 청와대의 존재 이유가 뭔지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출처 - 경향신문

 

황당한 일은 또 있습니다. 최전방의 지뢰폭발 사고는 군 관련 사건임에도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를 하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국방부 장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보고받은 것으로 안다고 했지만, 정확하게 언제 어떻게 보고를 받았는지에 관해서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간 많은 참사를 겪고도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 부재는 바뀐 게 없다는 사실만을 재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국정원 해킹 사건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지뢰 사건이 터진 다음 날인 지난 5일 경원선 남측구간 철도복원 기공식에 참석해 "북한은 우리의 진정성을 믿고 용기 있게 남북 화합의 길에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축사했습니다. 지뢰 사고에 대한 초동 대처가 재빨랐다면 대통령에게 관련 사실이 제때 보고되었을 것이고, 경원선 기공식에서 대통령이 이런 축사를 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정부 부처 간 불통 외 그 이면에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할 뿐입니다.

 

출처 - 뉴시스

 

아무튼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목함지뢰 사건의 희생자들만 불쌍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지고 가야 할 상처를 입었지만, 군인 신분인 김 하사와 하 하사는 군 당국의 불법이나 과실이 드러나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공무원은 당국의 불법이나 과실이 드러날 경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지만, 군인과 경찰은 불가능합니다. 헌법 29조 2항과 국가배상법 2조 1항인 이중배상금지 규정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군인과 경찰의 기본권, 평등권을 침해하는 이 법률을 헌법에까지 박아넣은 사람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이중배상금지는 군인이나 경찰이 전사하거나 순직, 부상했을 때 정해진 재해보상금, 유족연금, 상이연금 등만 받을 수 있을 뿐, 국가의 불법이나 과실이 밝혀져도 이에 따른 손해배상은 청구할 수 없도록 규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달러벌이 목적으로 베트남에 파병하면서 생겼습니다. 베트남전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우리나라 젊은이가 죽거나 다쳤습니다. 전쟁 상황에선 상관의 부당한 명령이나 다른 군인의 직무상 불법행위, 과실 등으로 숨지거나 다칠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정상적이라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청구해 국가 배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하지만, 박정희 정부는 이를 사전에 봉쇄하고자 국가배상법 2조를 공표한 것이죠.


1971년 대법원은 이 조항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군인과 경찰을 차별하는 조항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반기를 든 데 격노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위헌 결정을 내린 대법관들의 연임을 막고 1972년 유신헌법을 제정하여 이중배상금지를 아예 헌법에 박아넣은 겁니다. 헌법 29조에 유신헌법의 잔재가 지금도 남아 있는 셈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도 베트남전 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박정희와 박근혜 부녀를 위해 각종 맞불 시위에 동원되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이중배상금지 규정으로 군인과 경찰은 국가로부터 부당한 취급을 받거나 불법에 노출되어도 법에 호소할 길이 없어졌습니다. 이번 목함지뢰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군이 지뢰를 매설했다는 국방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는다면 무장한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우리 군이 경계 임무에 실패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죠. 작전에 실패해온 우리 군의 무능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2014년 6월 강원도 22사단 55연대 GOP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을 기억하시는지요? 국방부가 운용한 관심병사 제도의 유명무실함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뿐 아니라 최전방의 살인적인 GOP 경계근무의 문제점이 드러난 사건이었죠. 임 병장의 총기 난사 및 무장탈영 사건에서도 군의 초동 대처는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물론 군의 DMZ 감시체계의 허점이 노출된 사건은 그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2012년에 발생한 이른바 노크 귀순 사건이었죠. 북한군 병사가 철책을 넘어 우리 군의 생활관 문을 노크해서 귀순 의사를 밝힌 참으로 어이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전방 경계의 허술함과 군 기강 해이의 문제점이 드러난 사건으로 국가 안보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천안함 사건이 있습니다. 침몰한 천안함을 둘러싼 의혹은 지금도 법정 공방 중입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의 원인은 아직도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무능한 이명박 정부와 군은 북한을 원흉으로 몰아 면피하려 했을 뿐, 무고한 병사들의 죽음을 책임지는 지휘관은 없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난 4일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의 원인을 규명해 군 지휘부의 실책이나 과실이 있었다면, 그리고 이에 대해 혹시 불법적인 입막음이 있었다면, 김 하사와 하 하사는 국가에 배상을 청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여야 합니다. 이번 목함지뢰 사건에 대해 새누리당 의원인 주호영 의원조차 군의 경계 실패라는 지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요즘은 정부와 국가기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만, 지뢰 사고와 관련된 국방부의 발표가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면 정전협정을 어긴 북한의 도를 넘은 행위에 대해서는 군사정전위를 통해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울러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억울하게 희생되는 병사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이중배상금지라는 독소 조항을 철폐하는 데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무장지대(DMZ)를 '드리밍 메이킹 존(Dreaming Making Zone)'으로 만들겠다는 한심한 소릴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Dreaming Making Zone이 아니라 Dakaki Masao Zone"이겠지 하며 비웃겠습니까?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이중배상금지가 들어간 유신헌법 제정에 투표한 사람이라 썩 믿음이 가진 않지만, 아버지의 잘못을 이제라도 바로잡기 바랍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젊은이를 돌보지 않는 국가가 어떻게 애국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출처 - 경향신문

출처 -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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