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타트업이 인공지능(AI) 챗봇 서비스를 시작한 지 불과 1~2주 만에 큰 논란을 일으키며 서비스를 종료하고 말았습니다. 사람과 흡사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AI '이루다'입니다. 2020년 12월 23일 출시된 이루다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진짜 사람 같다는 입소문을 타며 열흘 만에 75만 명에 가까운 이용자를 모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유니콘 스타트업 기업의 성공 사례로 보입니다만, 실상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출처 - MBC


처음 불거진 문제는 이루다의 혐오 발언이었습니다. 출시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루다는 동성애자,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발언과 인종차별적 언어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왜 흑인 싫어?”라고 물어보면 “징그럽잖아. 난 인간처럼 생긴 게 좋아.”라고 답하는가 하면 “지하철 임산부석”에 대해 질문하면 “혐오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동성애자에 대해 물으면 “그거 진짜 혐오스러워. 질 떨어져 보이잖아”라고 답하는 등 아무런 필터링 없이 혐오 발언을 늘어놓았습니다.

 

출처 - 경인경제

 

챗봇 AI가 서비스 출시 초기에 혐오 발언을 늘어놓는 건 이루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IT 기업들도 과거 몇 년 사이에 같은 문제로 서비스를 접곤 했습니다. MS, 애플, 구글 등등 누구나 인정하는 대표 기업들이 말입니다. 챗봇 AI가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자식이 부모를 닮듯 AI는 인간을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AI는 인터넷에 만연한 인간의 잘못된 편견을 여과나 검증 없이 받아들인 탓에 AI가 내뱉는 말에 혐오와 편견이 투사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전에 생각비행에서도 인간의 편견과 안 좋은 면을 그대로 학습하게 되는 AI의 어둠에 관해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역습? 그보다 사람이 문제다!: https://ideas0419.com/736


이루다 역시 한국 사람들의 대화를 학습하고 이용자들이 가르쳐준 말을 적절한 여과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치 않은 혐오 발언을 쏟아내게 된 것입니다. 기계는 편견이 없어 사람보다 객관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의 AI는 인간이 양산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하고 진화하기 때문에 원천 데이터의 선별적 제공이 중요합니다. 아이를 부모와 사회가 계도해야 하듯이, AI도 초기에는 인간이 적절히 개입하면서 일종의 방향성을 잡아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루다가 혐오와 차별적 발언을 쏟아내는 챗봇이 된 건 결국 인간의 영향이라는 얘기입니다.


출처 - MBC


그런데 이번 이루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루다가 학습한 빅데이터가 된 대화문들이 개인정보 유출과 무단 활용 등 불법, 편법적인 방법으로 생성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루다를 서비스하던 스타트업 기업인 스캐터랩은 이루다 이전에 ‘연애의 과학’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서비스명처럼 연인들끼리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넣으면 연인과의 친밀도를 알아보는 심리 테스트를 제공하는 앱이었죠. 이 서비스에 메시지 텍스트 파일을 분석하며 수집된 개인정보를 활용한다는 고지를 하긴 했으나 AI 서비스 개발 등에 활용하겠다는 동의를 구하는 절차는 없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가능성이 큰 부분입니다. 이렇게 연애의 과학 서비스를 통해 모은 연인 간의 카톡 대화 내용이 무려 100억 건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수집된 막대한 연인들의 카톡 대화 내용을 아무런 보안 없이 회사 내부에서 불특정 다수가 돌려보고 이루다에 적용된 대화 중 일부는 필터링이나 삭제 과정 없이 연인들끼리의 대화나 계좌정보, 개인정보를 특정할 수 있는 문장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스캐터랩은 사과문을 통해 알고리즘으로 비실명화 처리된 정보를 AI에 주입했으며 개인 정보가 유출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출처 - 서울신문


사용자들이 이루다에 특정 대학교 동아리 이름을 물어보면 동아리에 가입한 멤버 이름과 학과를 이야기했고, 연인이 갔던 모텔의 이름, 특정 개인의 이름과 주소, 계좌 정보를 물어보면 이루다는 관련 정보를 술술 불었습니다. 데이터가 최소한의 비실명화 처리도 되지 않은 채 수집된 카톡 내용의 정보를 날것 그대로 내보낸 사실을 보면 애초에 이루다가 AI가 맞긴 한 건지조차 의심스러운 정황입니다. 이루다가 이렇게 내보낸 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에서 규정하는 개인정보에 해당하며 예금주명이 포함된 계좌번호, 특정인의 집 주소 등이 이루다의 대화를 통해 유출됐다면, 이는 제3자에게 동의 없이 제공한 불법 행위가 됩니다. 심지어 퇴사한 전 직원은 엑셀로 정리된 카톡 내용 중 성적인 대화나 농담 등을 사내에서 돌려 읽으며 낄낄거렸다고 폭로하기조차 했습니다. 스타트업 사업을 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윤리조차 지켜지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출처 - 아주경제


이번 이루다 챗봇 사건을 통해 드러난 문제는 우리 사회에 AI 윤리에 대한 기초적인 정립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는 AI를 만들고 학습시키는 기업은 물론이고 소비자들의 윤리적인 소비와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개인정보의 무단 수집, 무단 유용, 유출 그리고 AI 학습 과정에 대한 무능함 등 이루다 서비스는 기업이 AI와 관련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은 거의 다 저질렀습니다. 한편 소비자들이라고 다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애초 데이터의 토대가 되는 카톡 대화 내용을 기반으로 이루다가 이런 혐오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면 평소 사람들의 대화에 문제가 많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죠. 


출처 - 경향신문


다른 한편으로 이루다 서비스 시작 후 AI를 학습시키는 사람들의 비뚤어진 자세도 큰 문제입니다. 일부 남성들은 이루다가 여대성 콘셉트의 AI 챗봇이라는 걸 알고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루다 노예 만드는 법’, ‘이루다 성노리개 만들기’ 등등 입에 담기도 역겨운 방법을 공유하며 이루다를 망가뜨리는 데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인간만이 아니라 AI마저도 성 착취의 대상으로 이용하려 한 겁니다.


출처 - MBC


결국 AI에 관한 법적인 정비, 제도 개선, 일반의 인식 개선 등 전방위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뉴욕시 의회는 AI 알고리즘이 성별, 인종 등의 이유로 채용자를 차별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업이 AI를 활용해 사람을 평가할 경우 어떤 AI 모델과 SW를 활용했는지 평가 당사자에게 알려야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AI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계획입니다. 이 법에는 AI 모델과 SW를 판매하는 회사가 성별, 인종 등 각종 차별없이 공평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매년 정부와 전문기관에 데이터와 알고리즘 관련 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출처 - 전자신문


우리나라도 이루다를 둘러싼 윤리 논란이 증폭되며 방송통신위원회가 AI 이용자를 보호하고 책임소재, 권리구제 절차를 포괄하는 법 체계 정비에 나선다고 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구체적인 법과 제도 정비가 이루어질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 이루다 서비스는 제작사의 사과문 발표와 개인정보보호법 등 법률 위반 조사에 들어가며 지난 12일부터 운영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당연한 일이죠. 현재 존재하는 차별금지법에는 사람이 사람을 대할 경우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AI 윤리는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해 AI 윤리 확립에 지혜를 모을 때입니다.

경기도 의정부고의 독특한 졸업사진은 유머와 풍자로 매년 화제가 됩니다. 졸업사진을 찍는 시기가 되면 의정부고와 별 연관이 없더라도 그들의 졸업사진을 기다리곤 합니다. 생각비행도 몇 년 전 그들의 소소하지만 센스 있는 졸업사진에 감탄하며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거창한 것만이 문화인가? : https://ideas0419.com/488

 

출처 - 디스패치


그런데 올해는 의정부고의 졸업사진이 안 좋은 쪽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올해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했던 밈 중 하나인 가나의 상조회사 직원들, 이른바 '관짝소년단'을 모방한 졸업사진 때문입니다. (얼마 뒤엔 충청남도 공주시 소재 공주고등학교 학생들도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한 것으로 알려졌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패러디가 나온 관짝소년단 사진이 왜 문제일까 싶으시겠지만, 논란의 핵심은 학생 5명이 흑인을 표현하기 위해 얼굴을 검게 칠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명백한 인종차별이다'라는 의견과 흑인을 비하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었으니 '단순한 패러디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며 큰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관짝소년단과 같은 나라 사람인 방송인 샘 오취리가 자신의 SNS에 의정부고 학생들의 흑인 분장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자 이 졸업사진은 더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출처 - 인스타그램


관짝소년단 흑인 분장을 한 의정부고 졸업사진에 대해 샘 오취리는 흑인들 입장에선 매우 불쾌한 행동이라고 썼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의 SNS에 "흑인 피부색이 검어서 검게 칠한 것뿐인데 별 게 다 불편하다", "다른 나라 갔으면 공장에서 돈이나 벌었을 놈이 한국 와서 좀 뜨더니 훈계질이다" 등등 확연히 인종차별적인 언어로 댓글을 달며 비난했습니다. 거기에 의정부고 졸업사진을 올리며 학생들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게 한 점, 과거 방송에서 맥락은 좀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동양인 비하 행위를 연상케 하는 눈찢기를 했다는 사실도 언급됐습니다. 결국 샘 오취리는 하루 만에 "학생들을 비하하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 제 의견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선을 넘었고 학생들의 허락 없이 사진을 올려서 죄송하다. 학생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한다. 그 부분에서 잘못했다"라고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다른 인종이 흑인 분장을 하는 '블랙페이스'는 역사적 맥락이 있는 분명한 인종차별 행위입니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역시 어렸을 적 한 행사에서 흑인 분장을 한 사실이 밝혀져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기도 했죠. 여러 인종이 얽혀 사는 다민족 국가에서 다른 인종을 흉내 내는 행위는 무례하거나 인종차별적인 행위입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문제는 인종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는 우리나라입니다. 40~50대 정도 되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1980년대에 '시커먼스'라는 코미디 코너가 있었습니다. 코미디언 박미선의 남편으로 유명한 이봉원과 부채도사로 유명한 장두석 두 코미디언이 진행하는 코너였는데요, 힙합 같은 최신 음악을 소개하며 웃음을 주었습니다. 당시 이 코너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큰 문제가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시커먼스'라는 이름처럼 흑인 분장을 하고 흑인 흉내를 우스꽝스럽게 내는 것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코너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와서 보면 변명할 여지가 없는 또 다른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였던 겁니다. 한창 인기를 끌던 시커먼스가 갑자기 폐지된 까닭은 88 서울올림픽 때문이었습니다. 외국인 손님이 많이 오는데 인종차별적 코미디가 방송을 타선 곤란하다는 의식이 그때도 분명히 있었다는 얘깁니다.

 

출처 - SBNNEWS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에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컸으나 인종 다양성에 대한 인권 의식이 부족했습니다. 문제의식이 있는 이가 있었다곤 해도 소수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커먼스 코너를 그저 재밌는 코미디로 받아들였죠. 국민 대부분이 해외여행조차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외국인을 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핑계라도 댈 수 있는 과거의 일입니다. 최근 일어난 의정부고 졸업사진 논란처럼 인종차별적인 일에 대해 모른 척 넘어가는 건 문제가 있겠지요.


출처 - 일간스포츠


샘 오취리가 동양인을 비하하는 눈찢기를 했던 행동은 분명 잘못입니다. 하지만 그 문제는 그 문제대로 비판할 일이지 그랬기 때문에 너도 인종차별을 당해 마땅하다는 식의 대응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뿐입니다. 의정부고 졸업사진에 드러난 인종차별에 문제를 제기한 이에게 더욱 선명한 인종차별의 언어로 상처를 주고 결국 사과까지 하게 만드는 걸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이었습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K팝, K드라마, K푸드에 감탄하고 탄복할 때는 한국인인 것처럼 좋아하다가 한국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비판하면 한국에서 나가라, 니네 나라가 우리나라보다 더 심각한 주제에, 왜 한국을 혐오하느냐는 식으로 앙갚음하는 선별적 시선은 우리의 부족한 모습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완벽한 문화도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비판을 받더라도 나머지 훌륭한 문화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죠.


출처 - SBS


이제 막 인종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선생이든, 학생이든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 확대 과정에서 성장의 진통을 겪게 마련이라고 봅니다. 이번 관짝소년단 논란처럼 인종차별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시행착오가 일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비단 인종차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2020년 초 국회에서 '절름발이 총리'라는 표현이 논란이 된 것처럼 정치인의 장애인 비하 발언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죠. '절름발이'를 비롯해 온라인상에서 흔히 쓰이고 있는 '흑형' 같은 표현들이 국가인권위원회가 규정한 혐오 표현임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출처 - SBS


우리는 특히 '어디서 감히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비판을 한단 말이냐',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냐'라는 식으로 마치 한국에 인종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기는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고 봅니다. '의도가 없었다, 농담일 뿐이다'라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약한 집단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태도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도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상사나 선배 등 윗사람이 하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에 불쾌한 마음을 삭여야 했던 경험은 누구든 한 번쯤 있을 테니까요. 의정부고 졸업사진 논란을 보면서 6년 전 생각비행 블로그에 썼던 〈거창한 것만이 문화인가?〉라는 글을 들여다보니 삽입한 졸업사진 가운데 흑인 분장을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블랙페이스'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고등학생들의 귀여운 일탈과 재미라는 측면만 부각한 것이 부끄럽습니다.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출처 - 세계일보

 

2019년 5월 2일 여성가족부가 '2018년 다문화가족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다문화가족 자녀(만 9∼24세) 가운데 지난 1년간 학교폭력을 경험한 비율이 8.2%로 2015년(5.0%)에 비해 3.2%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고등학생에 해당하는 만 12∼17세의 경우 학교폭력 경험률이 2015년 5.9%에서 2018년 12.7%로 증가세가 더 두드러졌습니다.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점차 나아지는 와중에도 우리 안에 존재하는 편견을 고쳐 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문화 감수성과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일은 우리 앞에 주어진 사회의 당면 과제입니다.

최근 몇 년간 마른장마가 계속되었는데 올해는 50일 가까이 이어진 최장기 장마로 각종 피해 소식이 잇따랐습니다. 전체적인 비의 양도 엄청났지만 지역별로 단시간에 물폭탄이 터지듯 쏟아진 집중호우로 피해가 한층 컸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지난 8월 7일 문재인 대통령은 장마로 큰 피해를 본 철원, 제천 등 중부 지방을 1차 특별재난지역으로, 이어서 13일 합천, 곡성 등 남부 지방을 2차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습니다. 곡성 지역의 경우 8월 7~8일 이틀간 555mm라는 기록적인 폭우를 기록했는데요, 이로 인해 6명이 사망했고 이재민만 1230명, 재산피해액은 1114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출처 - 뉴시스


처음 기습 호우의 피해를 본 부산은 7월 강수량이 796.8mm로 평년의 2.6배에 달했고, 1년 총강수량의 절반 이상이 7월 말에 쏟아졌다고 하죠. 대전 역시 7월 29일부터 이틀 동안 내린 집중호우로 2명이 숨지고 평년 강수량의 1.6배인 544.9mm가 쏟아졌습니다. 8월 들어 중부지방에 자리 잡은 장마전선은 8월 중순까지 남부지방을 오가며 엄청난 물폭탄을 퍼부었습니다. 이로 인해 8월 12일 기준으로 역대 최장 장마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31명의 사망자(실종 11명)가 발생했던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 당시의 기록을 넘어선 겁니다. 장마가 길어지다 보니 지반이 약해져 8월 들어서만 600건이 넘는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출처 - 뉴스타파


이렇게 피해가 막중한 와중에 미래통합당의 친이계 의원들은 이명박 정권 때 만든 4대강 덕분에 그나마 폭우 피해가 이 정도에 그친 것이라는 어이없는 소릴 꺼냈습니다. 섬진강의 제방이 무너지고 피해가 확산하자 섬진강까지 4대강 사업을 했으면 홍수 조절이 잘됐을 거라는 논리입니다. 이재오, 홍준표, 정진석 등 친이계 의원들은 4대강 사업을 이어받아 지류와 지천으로 확대했다면 지금보다 물난리를 더 잘 막았을 것이라는 소릴 꺼내어 여야와 여론의 비웃음을 샀죠.

 

출처 - JTBC

 

이미 상식으로 자리 잡은 얘기지만 4대강은 홍수 예방 효과가 없습니다. 이번에 낙동강과 섬진강의 제방이 붕괴한 사례를 보면 집중호우로 강물이 많이 불어난 것은 맞지만 호우 피해의 직접적인 원인은 모래로 만들어진 제방, 제방보다 낮은 다리, 높이가 일정치 않고 갑자기 낮아지는 지형 등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홍수 대비 시설들 때문입니다. 특히 4대강 사업의 마스터 플랜에는 낙동강 335km의 노후제방 보강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번 사태가 벌어진 곳들을 보면 4대강은 홍수 방지가 목적이 아니라 운하를 만드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환경운동연합

 

4대강 사업은 4대강 본류에 사업이 집중되었습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을 하기 이전에 본류는 97.3% 정비가 이뤄진 상황이었습니다. 홍수 피해, 가뭄 피해는 모두 대부분 4대강 본류가 아닌 지천에서 발생했고, 이 때문에 환경 단체와 전문가는 모두 본류가 아닌 지천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올해 홍수도 4대강 본류에서 발생한 피해는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에 열을 올렸을까요? 홍수와 가뭄, 둘 다 해결할 수 없는데도 보를 만든 이유는 결국 '배를 띄우기 위한 구조'를 만든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에 퍼부은 예산을 전국 곳곳의 홍수 취약지점 개선사업에 투입했더라면 지금보다 홍수로 인한 피해가 적었을 겁니다. 사실 2017년 감사원의 4대강 사업 감사에서 홍수 예방 효과가 없다는 것은 결론 난 바 있습니다. 결국 4대강 사업은 예산뿐 아니라 자연의 흐름을 거슬러 생태계를 파괴하고 홍수/가뭄 피해에 도움이 되지 않은 몹쓸 사업이었을 뿐입니다.


출처 - JTBC / 서울환경연합


최근의 물난리는 장마 때문이 아니라 기후위기가 원인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립니다. 올해 물난리는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죠. 중국과 일본의 물난리가 뉴스에 심심치 않게 나곤 했습니다. 중국에서 두 달 동안 폭우가 이어져 우리나라 전체 인구만큼의 수재민이 발생하는 국가적인 재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올해 한중일을 휩쓴 폭우의 주범은 북극과 시베리아의 이상고온 현상입니다. 극지방에 따뜻한 공기가 쌓여 제트기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동아시아 상공에 머물렀는데, 이 찬 공기가 북태평양 고기압의 북상을 막은 겁니다. 

 

출처 - JTBC

 

국립기상과학원장을 역임한 조천호 박사는 JTBC 〈차이나는 클라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기후위기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기 때문에 지구 곳곳에 이상기후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작년에 미국 북부에서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이 발생해 미국 5대 호의 반이 얼고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상기후는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이상고온 현상과 관련이 깊다고 합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 기온이 오르면 반사경 역할을 하던 빙하와 눈이 녹아 햇빛을 흡수하는 흡수판이 되고 맙니다.

 

출처 - AP연합뉴스

 

북쪽의 찬 공기와 북태평양고기압의 따뜻한 공기의 온도 차가 클수록 장마전선이 강하게 발달하는데요, 올해 우리는 그 절정을 본 셈입니다. 만년설로 뒤덮여 있어야 할 북쪽이 불타고 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중위도인 한중일 삼국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이현수 기상청 기후예측과 과장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북극의 해빙이 녹으며 북극에 있어야 할 찬 공기가 중위도 쪽으로 많이 내려온 상태"이고 "찬 공기가 중위도 쪽에 장기간 정체하고 있다"며 긴 장마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우리가 물폭탄에 시달리고 있을 때 호주, 프랑스는 열폭탄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프랑스는 40도까지 오른 기온 때문에 도시 3분의 1에 폭염경보가 발령됐고, 호주는 폭염, 산불, 메뚜기 떼에 의한 재난이 덮쳤습니다. 해가 갈수록 전 세계에서 폭염, 폭우, 폭설 등 지역별 간극이 더 커지고 있는 것도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재앙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는 한 해가 갈수록 기상재앙이 점점 더 심해질 것입니다.

 

출처 - 기상청

 

미국의 국가기후평가보고서는 21세기 말 미국은 매년 자연재해로 600조 원 이상의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세계은행은 2060년이면 기후 문제로 인한 난민이 1억4천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기상 재앙으로 물 부족, 흉작, 해수면 상승, 해일 등 재해가 심해지면서 고향을 버리고 떠도는 사람들이 1억 명이 넘게 생긴다는 소립니다.

 

출처 - 기상청

 

환경부와 기상청은 지난 7월 28일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을 발간했습니다. 2014년 이후 6년 만에 발간된 이번 보고서는 연구진 120명이 최근 6년간 발표한 1900여 편의 국내외 논문과 보고서를 분석해 한국의 기후변화 상황과 전망을 정리한 것이라고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온실가스 배출이 지금처럼 지속될 경우, 21세기 중반 이후 한국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요? 우선 연간 10.1일인 폭염일수가 35.5일로 3배 이상 늘어납니다. 이에 따라 온열질환으로 인한 노인과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의 사망이 증가합니다. 다음으로 기온 상승으로 인한 동물 매개 감염병이 더 자주 발생하게 됩니다. 해수온도와 해수면도 지속해서 높아집니다. 이와 더불어 집중 호우로 인한 홍수 위험이 늘어남과 동시에 가뭄 피해도 심해집니다. 벼의 생산성이 25% 줄어들고 사과를 재배하기 적합한 조건의 땅은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기상이변은 전 지구적 현상입니다. 우리나라만 치수를 잘한다고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구의 환경과 생태계의 변화가 우리의 일상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지구온난화, 기후위기, 기상재앙에 대비해야 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더 강력하고 더 광범위한, 세계가 참여하는 '그린 뉴딜'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손정우와 n번방 사건과 같이 성범죄 관련 판결로 욕을 먹는 사법부는 정치적 판결과 비위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 행태를 보여 욕을 벌기도 합니다.


출처 - 국민일보


지난 6월 22일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취지로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표현의 자유가 신음하는 현실 – 대북전단 금지, 역사왜곡 금지법 등'이라는 글을 올려 탈북단체가 대북전단을 날리는 행위를 형사법으로 처벌하고 그 단체의 해산을 검토한다는 것 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게 된다며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겁니다.


출처 - 국민일보


언뜻 보면 소신 있는 판사가 논란을 감수하고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김태규 판사의 글은 끝 간 데 없는 내로남불의 표현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전단을 제작하고 배포했다는 이유로 시민들에게 유죄 판결을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지난 2015년 12월 당시 대구지법 부장판사이던 김태규는 박근혜를 비판하는 전단을 제작하고 배포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박성수 씨에게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또 당시 새누리당 앞에서 이 전단을 뿌리던 변홍철 씨와 신모 씨에게 각각 벌금 500만 원과 1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당시 김태규 판사의 판결문에는 "표현의 자유를 빙자해 공직자 개인을 비방하는 데만 치중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벗어난 것"이란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박근혜를 비판하는 전단은 저속한 명예훼손물이라고 하던 이가 문재인 정부를 위태롭게 하고 북한이긴 하지만 북한의 공직자를 비방하는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판사라면서 정권에 따라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게 부끄럽지 않은가 봅니다.


 

출처 - 아이엠피터



박근혜 정부 당시 사법농단에 연루된 판사 66명 중 징계위에 회부된 이는 고작 10명입니다. 지난 6월 23일 국회 법사위는 대법원과 양형위원회, 법제처 등 유관기관에 대한 업무보고를 진행했습니다. 이날 업무보고에서는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건 후속 조치와 재발 방지를 위한 개혁 방안에 대한 지적, 그리고 사법농단에 연루된 판사들에게 합당한 징계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출처 - 국민일보

 

사법농단 연루 판사에 대한 징계 현황을 묻는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해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검찰로부터 통보받은 연루 판사 66명 중에서 징계 여부를 검토할 시효가 지난 사람이 32명이었다"라며 "법관징계위원회에 회부된 것은 10명이었지만 진행 중인 형사사건의 추이를 보고 결정하자고 해서 심리가 연기돼 있는 상태"라고 답했습니다. 2017년 발생 당시에 시끄러웠는데 조사나 징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시효를 넘긴 데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어 보입니다. 사법농단 연루자 중 징계를 받은 판사들이 받은 징계는 그야말로 솜방망이 처벌입니다. 가장 높은 징계를 받은 판사가 정직 6개월일 뿐 대부분 정직 3개월, 견책, 감봉 등의 징계에 그쳤습니다. 일반 사건의 영장 발부율이 90%가 넘는 반면 사법농단 수사 당시 영장 기각률이 90%에 달할 정도였다니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출처 - 아이엠피터


법꾸라지들은 사법농단뿐 아니라 일반 비위도 숱하게 저질렀습니다. 법사위 김진애 의원은 "지난 10년 비위 판사 징계 현황을 요구했더니 지난 5년분만 왔는데 대부분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지만 금품수수,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이 많다“라며 "22개 사안이 있는데, 안 올라온 것이 얼마나 많을지 궁금하다. 정직은 1년이 딱 2건, 나머지는 감봉 4개월 식이다. 성범죄나 다른 범죄로 벌금형을 받고도 재직하는 사람이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선거법에 따르면 100만 원 벌금형만 받아도 모든 공직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판사는 성범죄를 저지르고 돈 받고 힘을 써주면서도 임기가 10년이나 보장되니 가히 철밥통이라 할 만합니다. '법꾸라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출처 - 경향신문


그나마 여론에 밀려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전직 부장검사나 판사 등 비위 공무원이 개업 변호사로 법조계에 복귀하는 것을 막는 입법이 추진 중이긴 합니다. 전관예우로 이어지는 이른바 올드보이들은 법조계의 뜨거운 논란거리였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법 개정 작업에 착수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개정안은 관련 조문 검토와 개정 조문 작성을 마쳤고 국회법에서 요구하는 발의 정족수도 채웠다고 합니다.


출처 - 세계일보


변호사법 개정안의 취지는 비위 공무원을 법조계에서 사실상 영구 퇴출하는 겁니다. 현재는 공무원 재직 시 받은 징계처분의 수위에 따라 2년에서 5년까지 변호사 자격을 얻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고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1년에서 2년까지 변호사 등록 신청을 거부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간이 지나면 변호사 복귀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개정안은 '공무원 재직 중 위법행위로 퇴직해 변호사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현저히 부적당하다고 인정되는 자'라는 7호 조항을 신설해 변호사 등록을 거부할 수 있게 했습니다. 개정안인 통과된다면 돈 봉투 만찬에 연루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나 여성 수사관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해 해임된 부천지청 마모 검사, 성매매하다 적발된 광주지검 조모 검사 등은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게 되겠죠.

 

출처 - 대한변협신문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하고 적용은 공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오늘날 대한민국은 법치주의를 표방하지만 사람들은 법이 권력에 아부하고 가지지 못한 자나 힘없는 자들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고 느낍니다. 이번 기회에 2300년 전에 법의 공평성과 형평성을 주장했던 한비자의 생각에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 

《한비자, 이게 법치(法治)다!》는 '생각비행 1318 청소년 사상사 시리즈' 고전편의 마지막 책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며 제 식구 챙기기에만 바쁜 법꾸라지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입니다. 변호사법 개정안 발의를 계기로 법꾸라지들을 사회에서 반드시 솎아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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