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군이 10년마다 한 번씩 개최하는 국제 관함식이 오는 10일 제주도에서 열립니다. 2008년에는 부산에서 열린 바 있죠. 관함식은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일종의 사열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관함식의 절정은 각국의 군함이 바다에 도열해서 주최국 함선에 예우를 표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각국 군함들이 주최국인 대한민국의 태극기와 자신들의 국기를 달고 사열하는데, 일본 해군이 일본 국기인 일장기가 아닌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달겠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입니다. 욱일기가 일본 자위대, 특히 해상 자위대의 군기 같은 것이라는 게 일본의 주장이었습니다.


출처 – SBS 유튜브


이번 관함식만이 아니라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피해국인 우리나라,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는 욱일기나 욱일 문양이 종종 논란이 되곤 했습니다. 욱일기는 메이지유신 직후인 1870년 일장기가 국기로 지정되면서 함께 육군기로 지정된 깃발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햇빛이 뻗어 나가는 모습의 욱광을 배치했다 하여 욱일기라고 불렸으나, 이때를 기점으로 군기로 지정되고 일본제국이 한반도, 만주,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로 침략을 시작하면서부터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상징성이나 역사적 맥락을 볼 때, 나치 독일이 사용해서 현재는 세계 도처에서 사용 자체가 불법이거나 금기인 하켄 크로이츠와 동급의 취급을 받아야 할 전범기이지만, 욱일기는 서구권에서 거부감이 크지 않아 문제가 불거집니다. 패전한 일본은 욱일기 사용을 잠시 중단했다가 1954년 자위대 창설과 함께 이를 자위대기로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켄크로이츠는 서구 열강의 반발이 워낙 거셌기 때문에 독일이 사용을 금지하는 법까지 명문화했지만 욱일기의 경우 서구 열강 사이에서 전범기라는 인식이 약해 국제사회에서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일본은 연합국 점령 상태가 끝나 재무장을 시작했고 미국이 중국과 맞서는 상태가 이어지면서 점차 미국에서도 욱일기에 대한 반감이 줄고 인식 자체가 희미해졌습니다. 이 틈을 탄 일본 내 극우 세력들을 중심으로 욱일기는 공공연히 내세우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서구권과 달리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아시아 각국에서는 반감이 매우 큰 상황입니다. 중국은 2014년 칭다오에서 개최됐던 국제 관함식에 일본을 초청하지도 않았습니다. 욱일기를 달고 올 거면 오지도 말라는 강경책이었죠.


출처 - 서울신문


우리나라 외교부와 해군도 욱일기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처럼 초청을 취소해버리는 외교적 부담은 피하고 싶었나 봅니다. 각 국가의 군함은 치외법권 지역이라 일본 군함은 일본 영토 대우를 받습니다. 실질적으로 초청을 취소하는 게 아니라면 자기네 군함에서 뭘 하든 저지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군이 14개국 군함을 사열하는 좌승함을 일출봉함에서 독도함으로 바꾸는 안을 고려 중이라고 하자 일본이 존재를 부정하는 독도라는 이름이 붙은 함정에 경례해야 하는 상황을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 관함칙 참가를 포기하겠다고 통보해왔습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결과적으로는 잘 마무리되었다지만 시민단체들은 욱일기를 달고 오겠다는 일본군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개천절을 맞아 열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1355차 수요집회에서도, 뒤이어 열린 청년들의 기자회견에서도 욱일기 반대의 한 목소리가 드높았습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주민회를 비롯한 시민단체와 종교단체 등은 의제를 더 확장해 '관함식'이라는 행사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2018 해군 국제관함식 반대와 평화의 섬 제주 지키기 공동행동은 제주의 군사기지화를 선포하는 해군 국제 관함식에 반대한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평화와 대화의 힘이 필요한 이 시대에 군사력을 과시하는 국제 관함식은 시대착오적이고 세금 낭비인 행사라고 밝혔습니다. 국제관함식은 평화의 섬 제주도를 해군기지로 군사적 활용 가능성을 세계에 인식시킬 것이라고 말입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앞에는 평화로운 제주 바다의 죽음을 상징하는 분향소가 차려졌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욱일기 사용과 일본의 우경화는 논란의 여지 없이 막아야 하는 게 맞습니다. 더 나아가 제주도에서 관함식 자체가 필요한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제주도의 아름다운 경관과 평화라는 가치를 미래 세대에 전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점점 고조되는 우리나라 총선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미국도 각 당 대선 주자들의 행보가 바쁘죠. 그런데 최근 미 해군 역사상 최대 부패가 적발되어 화제입니다. 미국 해군 고위 장교들이 한 회사로부터 청탁을 받고 편의를 봐줬다가 들통난 겁니다. 미 검찰에 의하면 오랜 기간 여러 나라에 걸쳐 많은 사람이 연루됐다고 하는군요. 부패 혐의로 체포된 해군 대령 대니얼 듀섹은 한 회사의 청탁을 받고 군함들을 말레이시아에 있는 여러 항구로 보내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정박한 군함들은 연료와 음식 등을 청탁한 회사에서 시가보다 비싸게 사들였습니다. 이렇게 회사에 벌어다 준 부정 이익이 3480만 달러, 우리 돈으로 410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출처 - SBS


여기서 잠깐.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이 지점에서 좀 의아한 생각이 드실 법합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절대적인 군사력 1위 국가이지요. 2~10위 국가의 국방 예산과 군사력을 다 합해도 미국 하나를 당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나오는데요. 이런 미국 해군의 역사상 최대의 부패 사건으로 꼽히는 이번 사건의 부정 이익이 '고작' 410억 원밖에 안 됩니다.


군사력이나 예산 규모로 미국에 한참 못 미치는 한국 방산비리 규모에 비해 미국의 방산비리 규모는 새 발의 피밖에 안 됩니다. 육군이나 공군을 빼고도 우리나라 해군이 단독으로 저지른 비리 중에 통영함 납품 비리가 669억, 고속함 호위함 사업 비리가 805억으로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이라고 하는 비리 사건의 2배가 넘는 규모입니다. 심지어 잠수함 인수평가 관련 비리는 1475억, 해상작전헬기 도입 비리는 무려 5890억에 이릅니다. 반농담으로 미 해군 역사상 최대 부패 사건의 무려 14배나 되는 액수의 방산 비리가 터져도 그저 몇 명 구속되면 유야무야 넘어가고 맙니다. 방산비리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군사력 규모는 트랜스포머를 만드는 우주방위군급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출처 - 매일경제


이뿐 아니라 국군 병사 전원이 1인용 침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10년간 6조 8000억 원의 혈세를 투입한 병영생활관 현대화 사업이 미궁에 빠졌습니다. 정부는 2012년에 사업이 완료됐다고 발표했지만 지난해 육군에서는 아직 3분의 1에 해당하는 부대에 사업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며 2조 6000억 원이 더 필요하다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미 해군 역사상 최대 비리의 무려 50배에 달하는 돈이 문자 그대로 '증발'한 겁니다.

 

이 돈은 우리나라 국방 연구개발 전체 예산과 맞먹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만약 국방부가 요구한 추가 지원까지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는 병사 침대 바꾸기 사업에만 약 10조 원을 쓰는 셈이 됩니다. 이는 미국 니미츠급 항공모함을 두 대나 만들 수 있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이 돈이 그냥 사라졌다고 합니다. 정부 조달업계 관계자는 애초에 예산 책정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10조 원이면 조달청 나라장터에서 1인용 고급 침대를 2500만 개 살 수 있는 돈이라고 지적했죠. 그런데도 국방부는 20만 장병에게 지급할 침대조차 못 샀다고 돈을 더 달라고 하는 형국입니다.

 

방산비리를 뿌리 뽑겠다던 박근혜 정부 출범 이전부터 국방부가 사실상 전작권 환수 준비를 중단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죠. 자주국방의 의지조차 없는 정권이 어떻게 국방 기술을 국산화하고, 방산비리를 척결하겠다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참고: 〈박근혜 정부 방산비리 척결, 말뿐인 추악함〉)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방산비리 척결을 위해 최대 규모의 수사팀을 만들어 조사를 벌인다 한들 기대하는 이가 별로 없었고, 결과적으로도 바뀐 게 거의 없었죠. 

출처 - 팩트TV


〈진짜 사나이〉나 〈태양의 후예〉 같은 TV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군대의 모습과 달리 대한민국군의 현실은 이와 같습니다. 뿌리 깊은 방산, 군납 비리가 군대라는 시스템을 매개로 얼마나 심각한 상태이며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지 아셔야 합니다. 이재명 성남시장 말마따나 우리나라는 정부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둑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런 도둑놈들이 되레 큰소리를 칩니다. 지난 3월 28일 해군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14개월 지연됐다며 5개 단체 120여 명을 대상으로 구상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에게서 34억 원을 뜯어내겠다는 속셈입니다. 가장 힘 있는 조직인 군이 가장 힘없는 강정주민들을 경제적으로도 짓밟고 마을을 깨뜨리겠다는 겁니다.

출처 - 프레시안


애초에 해군기지 공사는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문제가 터질 때마다 공사가 중지되었죠. 해군기지 공사에 대한 중지 명령은 강정마을 주민이나 시민단체가 아닌 제주도가 내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해군은 제주도에는 아무 소리도 못 하면서 만만한 주민들을 상대로 겁박하고 주머니를 털려 합니다. 제주도는 해군기지 공사 도중 무려 아홉 차례나 공사중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또한 공사 중단을 위한 청문회까지 열기도 했죠. 이는 해군기지 공사와 맞물린 불법과 편법, 탈법 때문이었습니다.

 

강정마을 주민과 시민단체는 이를 선명히 드러내어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해군은 지난해 강정마을 내 군 관사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농성용 천막을 강제로 철거하는 행정대집행 비용 8970만 원마저 강정마을회에 청구했고, 반대운동 과정에서 700명에 달하는 마을주민과 활동가들에게 부과한 벌금이 3억 7000여만 원에 이릅니다. 수천억, 수조 원에 달하는 국민의 혈세를 갉아먹은 도둑놈들이 그 세금을 낸 가장 힘없는 국민한테서 34억 원을 더 뜯어내겠다고 하는 사태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보십니까?


출처 – 제주의 소리


정의당은 해군이 강정주민들을 대상으로 34억 구상권을 청구할 경우, 해군 방산비리 책임을 물어 2000억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맞서겠다고 맞불을 놓았습니다. 김종대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는 해군참모총장 출신 3명이 줄줄이 뇌물과 비리 혐의로 기소되어 있을 정도로 군이 온갖 비리의 온상이라며, 국가안보에 끼친 손실과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고 했습니다. 해군이 강정마을에 구상권을 청구한 것과 똑같은 법적 논리로 해군에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남에게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한 군은 애초에 구상권을 운운할 자격조차 없었습니다.



생각비행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2011년부터 수차례 강정마을을 다녀왔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분께 해군기지 반대를 호소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해군기지 건설이 완료되었다고 해서 이 문제가 끝난 건 아닙니다. 해군에 의한 마을 파괴 행위는 지금도 진행 중인 심각한 문제입니다. 부디 강정마을에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선거철만 되면 안보를 부르짖으나 속으로는 혈세를 빼돌리기에 바쁜 무리가 국민의 대표로 당선되지 않도록 이번 4.13 총선에서 여러분의 권리를 현명하게 행사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 해군 역사상 최악의 비리 사건 규모의 수십, 수백 배에 달하는 여러분의 돈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누군가의 배를 불리게 될 테니까요. 시간이 되신다면 〈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23] 우리 세금을 무기 대신 복지에〉 기사도 꼭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어제 오후 7시 30분 홍대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비념> 상영회가 있었습니다.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가 주최한 행사에 70여 명의 관객이 참여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관람한 뒤 임흥순 감독의 인사말씀을 듣고 강동균 강정마을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되었습니다.  

비념 홍보용 전단

임흥순 감독이 만든 <비념>은 어떤 다큐멘터리일까요? 전단을 보니 이렇게 설명되어 있군요.

<비념>은 4.3의 진실을 설명하고자 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또한 강정의 현실을 주장하려는 영화도 아닙니다. <비념>은 4.3사건으로 희생된 제주섬과 제주사람들에 관해 읊조리는 작은 기도, 혹은 가만가만 부르는 치유의 노래입니다. 기존 다큐멘터리처럼 서사와 인물에 기대어 관객을 설득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보다는 공간, 사물의 움직임, 바람 부는 풍경, 곤충과 동물 같은 생명들을 보여줌으로써 은유와 상징을 통해 제주의 슬픔에 다가갑니다.

임흥순 감독은 오래 전부터 제주도가 아름다운 광광지면서 동시에 실은 거대한 무덤이고 치유되지 못한 영혼들의 땅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비념>의 이미지들은 제주도에 대해 우리가 만들어낸 낭만의 풍경이 아닌 현실에 밀착되어 있는 실제 풍경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명료하게 나눠진 빨강과 파랑의 지난 시대 이념의 색깔도 <비념>에서는 감귤의 주황색으로 곱게 영글고, 푸른 숲에서 따온 녹색으로 따뜻하게 감싸 안습니다.

<비념>은 임흥순 감독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제주섬을 오가며 마음을 벼리고, 2년 4개월 동안 카메라에 제주 구석구석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묻힌 역사와 기억들과 나무와 돌과 바람과 숲을 담았습니다. 바람 한 점, 돌멩이 하나에도 제주섬의 오랜 한숨과 깊은 설움이 묻어 있음을 예민하게 느꼈던 까닭입니다. 더불어 <비념>은 4.3 당시를 기억하는 분들의 이야기와 강정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묘하게 맞닿아 반복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발견합니다. 4.3은 유령이며, 동시에 강정으로 반복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인 실체입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4.3의 영혼들과 아물지 않은 기억을 '애도'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념>이 그러한 간절한 마음, 숨겨진 마음을 불려내는 요령(방울)이었으면 합니다.

1948년 4.3과 2013년 강정을 최초로 함께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은 임흥순 감독은 관객에게 제작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4.3이 어떻게 보면 현재로서의 강정마을로 보여졌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 두 가지를 왜 하느냐 이렇게 얘기하셨지만 제가 봤을 때는 제주 4.3 같은 경우가 제주 과거의 일이라면 강정마을 같은 경우는 제주의 현재 모습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걸 빼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4.3을 이야기하는 것도 현재 제주의 모습을 이해하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현재가 더 중요한 부분이 있죠. 어쨌든 4.3으로 시작을 해서 강정마을까지 갔지만 더 깊이 있게 들어갈 수 없었던 지점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들로 해서... 이 영화가 매개가 되어서 많은 부분, 또 많은 분들, 또 많은 분야에서 또 다시 현재 제주의 현재를 좀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임흥순 감독, 인사말씀 중에서

이후에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세 번째 파일에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시는 이유가 4.3 때 안 좋았던 기억들 하고 절차의 타당성에 대한 의심 그 두가지 때문인가요?"라는 관객의 질문에 대한 답변도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 월요일(4월 8일) 오후 7시 30분부터 서울 서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그대, 강정》 북콘서트가 열렸습니다. 2011년 가을부터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뜻을 함께한 작가들이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편지글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2000부 가량의 팸플릿으로 제작되어 제주 전역에 배포되기도 했는데요, 총 43명의 작가가 쓴 편지글과 제주 강정마을을 오랜 시간 촬영해온 7인의 사진가가 찍은 작품이 한데 엮여 《그대, 강정》(북멘토 출간)이라는 책으로 나왔습니다. 이 책을 보면 언론이 해군기지 건설문제를 다루지 않던 시기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강정마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공동체를 지키고자 연대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곳곳의 요지를 미군에게 내어 준 형편임에도, 비무장 평화의 섬 한 곳 확보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조국은 무력한 나라인가에 대해 슬퍼합니다. 군함에 의해 오염될 서귀포 바다와 기지촌으로 전락할 고운 마을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제주도민을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하는 게 없는 작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그 글에 제주의 아름답고 아픈 사진을 함께 담아 책으로 엮습니다.

2007년 봄에 시작된 제주도 강정 마을의 600명이 넘는 주민, 평화활동가들에 대한 연행, 구속, 투옥, 벌금 사태 뒤에는 불법 공사 상황이 있습니다. 주민 협의를 거치지 않은 강제 과정, 전쟁을 도발하는 안보 기지, 민군복합항이 입증되지 않은 설계도, 환경문제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공사, 인권 유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불법 요인에 대해 제주도지사를 중심으로 제주 주요 언론은 입을 다물거나 시실을 왜곡해 왔습니다.
심지어, 2012년 9월에 장하나 국회의원이 찾아낸 해군 문건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한미해군사령관이 요구한 설계 기준에 의해 제주해군기지는 미군 핵 항모가 입항할 규모로 설계되고 있다."
2013년 봄, 제주도 강정의 싸움은 아직 '현재진행중'입니다.
-《그대, 강정》 날개글 중에서

생각비행은 월요일 저녁 《그대, 강정》 북콘서트 현장에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가톨릭청년회관 5층 니콜라오홀은 이미 꽉 차 있었습니다. 최근 해군이 공사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다들 조금씩 강정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던 마음도 한순간에 날아가버렸습니다. 강정앓이가 아직도 이렇게 많이 있구나 하고 서로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강정마을에 건설 중인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활동으로 연대하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그대, 강정》 북콘서트 공연 모습과 섞어서 후기를 남겨볼까 합니다.

와락 꼬마 난타팀이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아이들 공연 모습을 찍지 못했는데요, 와락프로젝트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이 있어 소개합니다.

(출처: 와락프로젝트 트위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료모임인 '와락'의 꼬마들로 구성된 난타팀은 볼 때마다 실력이 느는 것 같습니다. 와락 지하에 마련된 연습실에서 진행된 난타 수업에 꾸준히 참여했기 때문이겠지요. 앞으로 이 아이들이 그려낼 세상이 기대됩니다.

다음으로 배우 곽유평 씨가 유채림 작가님의 글 <태산아, 참극이다>를 낭독해주었습니다. 

어머니에겐 신령한 곳이었고, 네게는 장엄하고 광활한 바위벌판이었던 구럼비, 그 구럼비가 지금 무자비하게 박살 나고 있는 걸 아냐. 가증스럽고 미련한 권력에 의해 처참하게 으깨어지고 있는 걸 너는 아냐. 파괴의 이유는 정히 기막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제주해군기지라나 미 해군기지라나. 그건 태평양전쟁 당시 히로시마가 어떤 곳이었는지 도대체 모르고서 설레발치는 꼴이다. 히로시마는 일본군의 제2사령부에다 통신센터, 병참기지가 있던 일본 제일의 군항이었다. 일본 제일의 군항이었기에 히로시마는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1945년 8월 6일 아침, 원폭이 도심을 강타하자 무려 16만 6천 명이나 타 죽거나 그을려 죽거나 건물의 잔해에 깔려 죽었다. 제일의 군항이 제일의 과녁이 되어 참극의 도시가 되었다는 얘기다. 해군기지 강정이 강정을 지켜 주는 게 아니라 강정의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교훈이 아니겠느냐. 해군기지 강정이 제주를 지켜 주는 게 아니라 제주의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경종이 아니겠느냐. 해군기지 강정이 대한민국을 지켜 주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절규가 아니겠느냐. 태산아, 그건 참극이다.
-<태산아, 참극이다> 중에서

곽유평 씨에 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만 목소리의 강약, 고저, 장단만으로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내공이 깊은 배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태산아, 참극이다>를 쓴 유채림 작가님은 두리반 투쟁으로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2011년 6월 24일 저녁에 "두리반에서 부르는 제주도 푸른밤"이라는 콘서트가 있었습니다. 두리반에 연대하는 분들이 강정마을을 돕기 위해 마련한 콘서트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자신의 아픔보다 마을공동체가 깨어지고 아름다운 자연이 훼손되는 강정의 상황을 걱정하시던 유채림 작가님을 기억합니다. 콘서트에 참가했던 분들이 두리반의 평화와 강정마을의 평화를 염원하며 한마음으로 소리 높여 '너영나영'을 부르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두리반에 평화가 찾아왔듯이, 강정마을에도 속히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음악인 봄눈별 씨의 연주를 배경으로 배우 송은미 씨가 시인 김근 선생님의 글 <지구의 평화를 담은 땅, 여기는 구럼비입니다>를 낭독해주었습니다. 강정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글과 잔잔한 연주 덕분에 상한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구의 역사에 비하면 생명의 역사도 하찮을 뿐인데, 그 생명의 역사에 비해서도 정말이지 인간의 역사는 얼마나 하찮은가요. 구럼비 해안이 비로소 만들어지고 연산호나 붉은발말똥게 같은 뭇 생명들이 먼저 찾아와 살기 시작한 한참 뒤에야 인간은 가장 늦게 이곳에 도착했을 테니까요.
자연과 생명이 이미 조화를 이룬 이곳에서 인간은 인간대로 그 조화로움에 기대 여태 살아왔을 것입니다. 아무리 해도, 한낱 인간이, 그것도 그 공동체에 속해 보지도 않은 인간들이, 자본과 권력이라는 거대한 괴물을 앞세워 구럼비 해안에 권리 주장을 하는 것을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연산호라면 또 모를까, 붉은발말똥게라면 또 모를까.
-<지구의 평화를 담은 땅, 여기는 구럼비입니다> 중에서
 

다음은 평화활동가 최성희 선생님과 정혜윤 피디를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최성희 선생님은 강정마을 국제팀에서 평화활동가로 연대하고 계십니다. 《그대, 강정》 북콘서트 현장에서 1년 전 구럼비 발파 현장으로 달려온 평범한 시민 한 분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예술의 힘으로 전쟁 위기를 막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하셨습니다.

 

생각비행은 최성희 선생님과 오랜 인연이 있습니다. 직접적인 관계는 강정마을 영자신문을 리뉴얼하는 작업에 참여하면서 2010년 11월부터 2012년 4월까지 약 6개월간 디자인과 제작을 맡아 연대하면서 이뤄졌습니다. 최성희 선생님은 그 당시 해군기지 공사로 바람 잘날 없는 강정마을에서 여러 국제팀원과 소통하며 한 달에 한 번 영자신문을 발간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계셨습니다. 강정의 소식을 세계로 알리기 위해 이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강정마을 국제팀과 연대하며 만든 영자신문

영자신문의 발행부수는 많지 않았지만 피디에프(PDF)로 만든 영자신문은 전 세계 곳곳으로 배달되었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밖에 도와드리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열정 덕분에  참 많은 것을 배우는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2012년 6월 13일 조계사 강정평화캠프에서 최성희 선생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매주 수요일에 진행되던 '생명평화촛불 시노래 강연회'에 평화를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방문하신 겁니다. 

최성희 선생님은 강정마을에서 평화 활동을 하던 엔지 젤터(Angie Zelter) 선생님 이야기를 서두에서 들려주셨는데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엔지 젤터가 강정마을에서 활동할 당시 세 번 체포되었는데, 자신의 이름을 '강정마을을 지키는 세계시민'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엔지 젤터는 항상 지구 깃발을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구를 찍은 사진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무력의 남용과 끝없는 전쟁이 누구도 보호해주지 못하며, 진정한 문제는 기후변화, 물과 식량의 부족, 종다양성 감소, 생태계 파괴이며, 전지구적인 협력으로 근본적을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신념을 강조하던 평화활동가로서의 발자취를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날 최성희 선생님께서 제주 해군기지 반대 활동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강정마을은 이미 생명평화의 마을로 스스로를 선포했습니다. 이제까지 기지 반대 싸움에서 이런 유래가 없습니다.스스로를 생명평화의 마을로 선포하고, 평화의 섬으로 선포한 것은 제주도의 싸움이 그 첫 번째 예가 될 것입니다. 이 싸움을 이기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체 투쟁사에서 아주 획기적인 역사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그 모범을 우리가 스스로 세우고 있고 또 그런 생명평화의 섬을 스스로 세움으로써 다른 나라 친구들의 싸움을 어떻게 고무시킬 것인가 하는 아주 중차대한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대, 강정》 북콘서트에서는 이후 순서 때문에 최성희 선생님의 이야기를 길게 들을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이후 순서는 가수 이지상 씨의 노래 공연이었습니다. 

<탄타오와 문정현>이라는 노래를 2012년 여름 강정평화대행진 전야제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그때의 감동이 《그대, 강정》 북콘서트 현장에서 고스란히 재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베트남 국민시인으로 불리는 탄타오는 1968년 3월 16일 미군이 자행한 밀라이 마을의 대규모 민간인 학살 소식을 듣고 구찌터널 안에서 틈틈이 <밀라이의 아이들>이라는 연작시를 썼다고 합니다.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 시가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서사시로 평가받고 있다고 하는군요."구럼비 학살이 강정의 학살이 밀라이의 학살과 무엇이 다른가" 하고 묻는 이지상 시인의 노랫말이 귀에 맴돕니다. 북콘서트에서 영상을 담지 못해 이지상 씨 블로그에 있는 노래 영상을 연결합니다.


(출처: 이지상 블로그)

 

탄타오와 문정현

                                                                                                    이지상 시, 곡

탄타오는 밀라이 사람 / 슬픔을 슬픔으로 엮는 시인 / 그런 일이 있었다네 밀라이에선 / 하늘과 달빛과 아이들이 뛰노는 들판 위로 / 하나의 총알이 한 아이의 심장에 / 또 하나의 대검이 여인의 가슴팍에 / 그렇게 흘린 피로 강물이 흐르고 / 꽃이 되고 시가 되고 평화가 되고 / 워 워워워~~

탄타오는 밀라이 사람 / 슬픔을 슬픔으로 엮는 시인 / 그렇게 말한다네 베트남시인 /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고 / 구럼비 학살이 강정의 학살이 / 밀라이의 학살과 무엇이 다른가 / 하늘까지 닿는 죄악은 만대가 지나도 / 지워지지 않는다네 지울 수 없다네 /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 /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네 / 워 워워워~~~

문정현은 길 위의 신부 / 슬픔의 중심만을 걷는 사제 / 그런 일이 있었다네 제주도에선 / 수만 년 사람과 파도와 바람이 놀던 바위 위로 / 육지경찰 몰려오고 굴착기 포크레인으로 / 사람들을 패대고 바위의 심장을 뚫고 / 군사기지 만들어서 평화를 팔아먹는다네 / 이런 놈의 나라는 나라도 아니라네 / 워 워워 워 워워 워~~~

문정현은 길 위의 신부 / 슬픔의 중심만을 걷는 사제 / 그렇게 말한다네 길 위의 신부 /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고 / 구럼비 발파가 대추리의 함성으로 / 강정의 외침이 용산의 비명으로 / 하늘까지 닿은 죄악은 만대가 지나도 / 지워지지 않는다네 지울 수 없다네 /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 /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네 / 워 워워 워 워~~~~

탄타오는 밀라이 사람 / 문정현은 길 위의 신부 / 탄타오는 밀라이 사람 / 문정현은 길 위의 신부...


다음 순서는 성미산 공동체 학생들의 공연이었습니다. 구럼비와 맹꽁이를 인격화하여 그들의 입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숨죽여 귀를 기울이게 하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마임이스트 이정훈 씨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온 몸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중덕바다와 구럼비 그리고 뭇 생명체들을 형상화한 듯했습니다. 마임 공연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그런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으로 《그대, 강정》 글 쓴 작가 두 분과 사진작가 두 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하여 강정마을과 연대하시는 분들을 향한 작가들의 마음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오랜 시간 강정마을의 사람들과 대자연의 풍경을 찍어온 두 분 사진작가의 이야기도 정겨웠습니다. 애정과 관심 그리고 열정이 없이는 그런 작업을 이어갈 수 없는 법이지요.      

마지막으로 두리반대책위원 유채림, 조약골, 윤성일, 정경섭, 김성섭으로 구성된 밴드 '섭섭해서 그런지'의 공연 모습까지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야마가타 트윅스타'의 공연은 담지 못했습니다. 

세 시간 가까이 이어진 북콘서트 자리를 마지막까지 지키는 분이 많이 계셨습니다. 정리 정돈을 돕는 분도 계셨고, 오랜만에 만나 담소를 나누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책 출간부터 북콘서트 성사와 참여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게 연대의 힘입니다. 《그대, 강정》 추천의 글을 보니 임보라 목사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써놓으셨네요.

"구럼비를 포함한 강정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닌 강정앓이들의 공통분모이다. 그렇기에 43명의 작가들이 쓴 강정을 향한 연애편지는 우리가 이어 가야 할 투쟁의 기록이어서 절절히 가슴에 박힌다. 끝나지 않은 투쟁, 우리가 끝끝내 이어 가야 할 투쟁, 그 투쟁은 온몸을 담아내는 사랑의 바닥소리로부터 시작된다. 이 연애편지가 그렇다." 

그렇습니다. "그대, 강정"은 우리 모두가 함께 불러야 할 이름입니다. 평화의 섬 제주 구럼비에서 다시 평화를 노래할 그날을 기다리며 그대 이름을 부릅니다. "강정아, 너는 비록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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